백인들은 너무 약단 말이야. 종교를 앞세워 평화스럽게 조용히 들어왔단 말야. 어리석게 보이는 그들을 우습게 여기고 이 땅에 머물도록 놔두지 않았나. 이제는 우리 형제들까지 끌어들여 우리 부락이 한 몸으로 행동을 취할 수 없게 됐단 말야. 우리의 단결하는 힘에 칼을 박았단 말야. 그래서 우리 동족은 깨어져 ‘흐트러지고 말았다네.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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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하얀 피부의 아기 인형을 망가뜨렸다.
하지만 진정 공포스러운 일은 인형의 해체가 아니었다. 정말 무시무시한 일은 똑같은 충동이 하얀 피부의 여자아이들에게로 옮겨간다는 것이었다. 무심하게 그들을 산산조각낼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그 무심함이 흔들린다면 오직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해서였다. 내손아귀에서 내내 벗어나는 그것. 하얀 피부의 여자아이들은 어떤 비밀스러운 마법으로 다른 사람을 사로잡는지 알아내고 싶은 욕망. 다들 그 아이들을 보며 ‘어머나‘라고 감탄하면서 내게는 그러지 않는 이유가 뭘까? 거리에서 그 아이들이 다가올 때 검은 피부의 여자들이 그들의 몸을 훑는 시선, 그 아이들을 대하는 손길에 담긴 부드러운 소유욕.
내가 그 아이들을 꼬집으면----- 아기 인형 눈의 미친 광채와 달리-----아파서 눈을 찡그리겠지. - P38

그리고 울음소리는 냉장고 문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매혹적인 고통의 울음이겠지. 이런 무심한 폭력이 얼마나역겨운 것인지 깨달았을 때, 무심하기 때문에 역겹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내 수치심은 허둥대며 피신처를 찾았다. 가장 좋은 피신처는 사랑이었다. 그렇게 원초적 가학증이 날조된 증오로, 기만적인 사랑으로전환되는 것이다. 그것은 셜리 템플에게 다가가는 작은 발걸음이었다.
한참 뒤에 난 청결함을 기꺼워하는 법을 배운 것처럼 셜리 템플을 우러르는 법을 배웠다. 비록 그런 변화가 개선 없는 적응에 불과하다는것을 깨달았더라도. - P39

페콜라는 이런 대상들, 그리고 다른 무생물의 대상들을 보고 경험했다. 그녀에게 실재하는 것들. 그녀가 아는 것들이었다. 해석하고 소유할 수 있는 세상의 암호이자 시금석이었다. 그녀는 발이 걸려 넘어질뻔한 보도의 깨진 틈을 소유했다. 지난가을 자신이 하얀 머리를 훅 불어 날렸고, 올가을에는 노란 꽃 속을 들여다본 민들레를 소유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소유하면서 세상의 일부가 되었고, 세상은 그녀의 일부가 되었다. - P67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본다. 호기심이 들어앉아야 마땅한 자리인데 텅 빈 공간이 보인다. 그것만이 아니다. 인간적 인식의 완전한 부재, 투명한 막이 입혀진 단절, 그의 시선이 왜 중도에 정지했는지 그녀는 모른다. 아마 그는 어른이고 남자인데. 그녀는 어린 여자애라서 그럴 수도. 하지만 그녀는 지금껏 어른 남자의 눈에서 관심과 혐오.
심지어 분노까지 보아왔다. 이 텅 빈 공간이 새롭지는 않다. 거기에는 날카로운 날이 있다. 눈꺼풀 안쪽 어딘가에 불쾌감이 도사리고 있다.
그녀는 모든 백인의 눈에 그런 불쾌감이 도사리고 있는 것을 보아왔다. 그러니까. 그 불쾌감은 그녀를, 그녀의 검은 피부를 향한 것이 틀림없다. 그녀가 내면에 지닌 것은 전부 유동적이고 기대에 부풀어 있다. 하지만 검은 피부는 고정적이고 두려움의 대상이다. 백인의 눈에 불쾌감이라는 날을 지닌 텅 빈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을 설명해주는 것은 바로 흑인이라는 특성이다.
- P68

그녀가 자기 일로 찾아가면 그녀를 깔아뭉갰던 채권자와 수리공들도 피셔네를 대신해 말하는 그녀에겐 공손한 태도를 보였고, 약간 주눅들어 보이기도 했다. 약간이라도 거뭇해졌거나 비계를 제대로 떼어내지 않은 소고기는 퇴짜를 놓았다. 자기 가족이 먹을 생선이라면 조금 비린내가 나도 그냥 받았겠지만, 피셔네 집에서 그런 걸 내밀면 생선장수 얼굴에 냅다 집어던질 기세였다. 이 집안에서는 권력과 칭찬과사치가 그녀의 것이었다. 평생 가져보지 못한 것. 곧 폴리라는 애칭도 가지게 되었다. 하루 일과를 끝낸 뒤 부엌에 서서 자신이 해놓은 일을둘러보는 것이 그녀의 기쁨이었다. 비누가 여남은 개나 있고 베이컨도 짝으로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반짝반짝 닦아놓은 냄비와 프라이팬, 광이 나는 마룻바닥을 한껏 즐겼다. "폴리가 그만두면 절대 안 돼.
저런 사람은 다시는 구하지 못할 테니까. 구석구석 완전히 깔끔해지기전에는 부엌을 나가는 일이 없다니까. 정말이지 이상적인 하인이야."
이런 말을 들으며.
폴린은 이 질서정연함과 이 아름다움을 자신만의 세계에 혼자 간직했지. 예전에 가게였던 자기 집이나 자기 아이들에게 도입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아이들을 억지로 점잖음이라는 가치로 몰고 갔고, 그러면서 두려움을 가르쳤다. 어설픈지 모른다는 두려움, 아버지처럼 될수 있다는 두려움. 신의 사랑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촐리의어머니처럼 미쳐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 아들은 두들겨패서 이 집에서나가버리고 싶다는 요란한 욕망을 심어주고, 딸은 두들겨패서 어른이되는 것의 두려움. 타인과 삶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줬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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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작품이란 "그 책이 없다면 스스로 보지 못했을 것을 볼 수 있도록 작가가 독자에게 제공하는 일종의 광학기구"라고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 유명한 문장을 인용하면서 밀란 쿤데라는 친절하게도 "독자는 독서하는 순간 자기 자신에 대한 고유한 독자가 된다" (커튼)라고 덧붙였습니다. 책을 읽을 때 독자가실제로 읽는 것은 책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뜻입니다.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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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작품이란 "그 책이 없다면 스스로 보지 못했을 것을 볼 수 있도록 작가가 독자에게 제공하는 일종의 광학기구"라고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 유명한 문장을 인용하면서 밀란 쿤데라는 친절하게도 "독자는 독서하는 순간 자기 자신에 대한 고유한 독자가 된다"(커튼)라고 덧붙였습니다. 책을 읽을 때 독자가실제로 읽는 것은 책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뜻입니다.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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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그랬듯이 사람들은 언제나 겉모습만 보고 판단했다.
70년의 성상(星)을 보낸 할머니의 영혼은 풍상에 찌들지 않아 소녀 시절의 생기발랄함, 그리고 이와 더불어 하늘의 은총으로 탐스럽게 익은 결실을 베풀기 위해 자비로 뒤덮인 과일나무의 거룩한 사명감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신비주의자들이 입으로 읊는 기도문처럼 할머니가 베푸는 따뜻한 대접은 나에게 무한한 지평을 열어줄 줄 알았고, 내 영혼의 신비한 갈망을 채워가고 있었다. 따라서 내가 그녀를 따랐을 뿐만 아니라 사랑했고, 모든 진정한 사랑이 그러듯이 그 시작과 끝에서 나는 나 자신을 찾고 있었다고 말한다고 해도 과장은아닐 것 같다. 비록 당시 나는 어렸지만, 여행, 전쟁, 슬픈 일과 기쁜 일,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등 기나긴 세월 동안 여러사건으로 점철된 그녀의 따뜻한 생애는 우울한 정취가 깊이배어 있는 박물관으로 보였다. 거기서 나는 삶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직 내게 주려고 하지 않는 숭고한 모든 감정을 내 취향에 따라 실컷 누릴 수 있었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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