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방에서 나와 발끝으로 조용히 계단을 내려갔다. 개들이 저희를 두고 간 걸 알면 실망할 것이다. 그래도 예배 보는 곳에 개들을 데려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층 홀에서는 남두라는 한국인 하인이 우리가 외출하기 전 마지막 지시 사항을 듣고 우리를 배웅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차 마시는 시간에는 돌아올 거예요." 남두 곁을 지나며 내가 말했다.
우리는 한국의 가을이 펼쳐내는 황금빛 장관 속으로 들어섰다. 진입로와 양쪽 잔디밭에는 노란 낙엽의 카펫이 깔려 있었다. 화단에서는 암녹색의 회양목과 삼나무를 배경으로 스러져가기 직전의 백일홍들이 가지각색의 보석들처럼 마지막 찬란함을 뿜어내고 있었다. 나무에 매달린 감들은 첫 서리가 내려 빛을 밝혀줄 때를 기다리는 작은 램프들 같았고, 높게 자란 포플러 나무들은 보초를 서듯이 우리 정원의 경계에 빙 둘러서 있었다. 잠이라도 자고 있었는지 문지기가 자기 방에서 뛰쳐나와 대문을 열어젖히자, 마치 구름의 바다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서울 시내 전경이 대문이라는 액자속에 담긴 한 폭의 그림처럼 우리 눈 아래로 펼쳐졌다. 아침밥을 짓느라 불을 지핀소나무 장작 내음이 사방에 번지며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어느 계절보다 가을을 좋아한다. 가을에 태어났기 때문일까. 아무튼 가을만 되면 늘 치맛단을 질끈 올려 잡고 계절을 한껏 만끽하며 뛰어다니고 싶어진다. 이런 마음은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을 것 같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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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매머드를 사냥하는 대신 울창한 숲에서 마을을 이루며 살게 되었다. 온대지방의 경우 가을에 사방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도토리는 농한기인 추운 겨울을 나게 해주는 고마운 식량 자원이었다.
경남 창녕군 비봉리에서 발견된 8,000년 전 신석기시대 유적에서는 흐르는 물에 도토리가 담긴 망을 넣어서 타닌을 빼고 도토리를 가공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살림터가 발견되었다. 도토리를 묵형태로 가공해서 먹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뿐이다.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에도 도토리묵이라는 요리가 없다. - P26

만주에서 역사상 첫 번째 소주를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새로운 질문을 던져보자. 왜 하필 거란에서 세계 최초의 증류주가 만들어졌을까?
거란이 세계 최초의 소주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들의 생활 방식(유목민)과 지리적 환경(만주) 때문이다. 증류주는 순도가 높은 술이기 때문에 많은 양을 갖고 다니지 않아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즉, 유목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는 휴대가 편한 술이었다. 또한, 만주는 겨울이 긴 지역이어서 증류 과정중 냉각 시 필요한 얼음을 구하기 쉬웠다. 만주 일대에는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함께 살았기 때문에 누룩과 같은 술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구하기도 쉬웠다. 한마디로 소주를 대량 생산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는 의미다.
유목 민족이었던 거란은 거대한 제국을 만들고 몽골까지 진출하여 실크로드를 통해 중앙아시아와 다양한 교류를 했다. 그 무렵 아랍인들은 이미 증류 기술을 갖고 있었다. - P31

소주가 ‘세계의 술‘이 된 것은 몽골제국 건국 시기부터다. 거대한 제국이었던 몽골의 정복 활동과 역참으로 세계는 하나가 되었다. 동서양 할 것 없이 몽골제국의 영향력이 미친 곳에서는 저마다의 방법으로 증류주를 만들었다. 황실에서 증류주 제조를 관리했던 거란과 달리 몽골제국은 증류 기술을 숨기지 않고 널리 확산시켰다. 여기에는 어떤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수많은 정복지에 소주 제조법을 전해주면 현지인들이 그 소주를 즐기는 가운데에 자연히 몽골제국에 대한 반감을 누그러뜨릴 것이라는 전략이었다. 일종의 동화 정책이다.
피지배인들을 알코올로 다스렸던 것은 몽골뿐만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술 식민주의(alchoolosialisme)‘라는 용어가 따로 있을 정도다. - P32

 지배 국가가 피지배인들에게 술을 공급하여 저항의 의지를 상실시키는 식민주의 전략이다. 러시아가 시베리아 원주민을 정복할 때, 유럽인들이 신대륙을 정벌할 때, 현지인의 반발을 누르고자 사용한 방법이 바로 술을 전파하는 것이었다.
몽골제국의 영향력은 소주를 뜻하는 단어 ‘아라기‘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몽골, 카자흐스탄, 튀르키예 등 유라시아 대부분의 지역은 물론이고, 동남아 일대에도 증류주를 가리키는 말에 ‘아라기‘의 흔적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에서 소주를 ‘아랄길(吉)‘이라고 표현한 기록이 존재한다. 경상도 일대 방언에서는 ‘아기‘가 술 또는 술지게미를 가리킨다. 아라기는 아랍 지역의 증류 시설인 ‘알렘빅‘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아랍어로 ‘땀‘이라는 뜻이다. 증류 과정에서 술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땀과 같았기 때문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우리나라는 소주를 ‘이슬‘에 비유하곤 한다.
고려 시인 목은 이색이 자신의 시에서 소주를 이슬로 표현한 이래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역시 불순물을 걸러내고 정화된 술을 만드는 증류과정을 담고 있는 비유다. 오늘날 우리가인터넷으로 소통하기 훨씬 전에 이미 세계는 소주(증류주)로 대동단결하고 있던 셈이다. - P33

연해주와 함경도 일대에서는 약 5,000년 전부터 빗살무늬토기를 빚었던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하지만 이 지역은 점차 기후가 추워지면서 위기를 맞는다.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은 추운 기후가 최고조에 달하던 시기였다. 이 무렵 연해주와 동북한 지역의 집터에서는 거대한 항아리들이 다수 발견되었지만발굴되는 곡물은 적었다. 이 시기를 살던 사람들은 추워진 기후에 따라 농사 대신 사냥을 해야 했고 기나긴 겨울을 견디기 위해 커다란 항아리에 많은 음식을 보존해야 했을 것이다.
월동 음식으로 풍부한 비타민을 함유한 김치 같은 발효 채소가빠질 수 없다.  - P38

구덩이는 마을의 김장독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은 아닐까? 이후에도 옥저에서 발해로 이어지던 시대의 마을로 추정되는 이 지역 집터에서는 빠짐없이 거대한 항아리가 집 근처에 묻힌 채로 발굴되었다. 내가 크라스키노(Kraskino) 발해 성터 발굴에 참여했을 때도 집 근처에서는 늘 거대한 항아리들이 발견되었다. 함께 발굴 작업을 하던 러시아 학자들도 입을 모아서 그 항아리들이 ‘고려인들의 김장독‘과 똑같다며 신기해했다. 겨울이 매섭고 긴 지역에서 마을을 이루며 농사를 지었던 우리 민족에게 이런 저장 토기는 필수품이었을 것이다.

절임 배추, 유라시아인을 살리다

앞서도 말했지만 유라시아를 중심으로 동서양 곳곳에서는 김치와 매우 유사한, 배추를 발효시킨 음식들이 널리 유행한다. 가령, 독일의 사우어크라우트, 오스트리아 알자스 지역의 슈쿠르트,
러시아의 절임 양배추(카푸스타)와 그것을 넣어 끓인 수프(시)가 그것들이다. 이 ‘시‘라는 수프는 고춧가루를 조금만 더 넣으면 김치찌개와 흡사한 맛이 난다.
값도 싸고 양도 푸짐한 배추를 절여서 만든 음식은 러시아인들에게 단순한 요리가 아니었다. 고기를 쉽게 먹기 어려웠던 가난한 러시아 농민들의 배를 따뜻하게 채워주는 영혼의 수프였다.  - P41

...강추위를 여섯 해나 경험하는 동안 나를 추위와 허기에서 지켜준 음식은 단연 돼지비계를 염장한 ‘살로(salo)‘였다. 살로를 만드는 레시피는 지역과 사람마다 정말 다양하다. 하지만 그기본은 대개 비슷하다. 서늘한 봄이나 가을에 돼지비계 또는 삼겹살을 준비해 큼지막하게 잘라서 항아리에 넣고 그 위에 소금을 넉넉히 뿌린다. 며칠이 지나면 삼투압 현상으로 소금이 비계에 배어들며 염장이 된다. 기호에 따라서 소금과 함께 후추나 고추 같은향료를 넣기도 한다. 완성된 살로는 얇게 잘라서 빵 위에 얹어 먹는다. 살로는 고열량인 데다 각종 비타민이 풍부하기 때문에 러시아인들이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다. 살로는 우크라이나의 전통음식인데, 시베리아와 극동 지역에는 우크라이나 출신이 아주 많기때문에 그들의 음식이 자연스럽게 시베리아의 토착 음식처럼 여겨지게 됐다. - P50

돼지비계를 먹는 풍습은 우크라이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대 로마의 ‘라르도‘라는 음식도 돼지비계를 활용한 것이다. 영국과 미국에서도 돼지비계는 ‘포크 스크래칭‘이라고 하는 요리에 사용된다. 우리 역사에서는 북방의 추운 곳에 살던 루인과 그들의후손인 만주족들이 돼지비계 요리를 해먹었다.
사실 많은 나라에서 돼지비계를 먹는 것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재료의 특성상 상하기 쉽고, 역한 냄새가 강하기 때문에 잡내를 없애고 요리하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빈곤층이나 고기를 손질하는 일부 사람들만 먹는 음식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의 살로에 대한 사랑은 남다르다. 한때는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르비우에 살로박물관이 있었을 만큼 이들은 살로를 민족의 음식으로 자부한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든다. 우크라이나는 ‘체르노젬(chernozem)‘이라는 흑토 지대가 발달한 세계의 곡창지대다. 쉽게 말해 신선한 곡물과 야채가 풍부하다. 그런데 어떤 연유로 돼지비계 요리가 우크라이나를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을까? 그 배경에는 힘든 환경을 개척한 우크라이나인의 역사가 숨어 있다. - P51

살로의 어원도 이처럼 동쪽에서 지속적으로 밀려온 유목민들의 등장과 관계가 있다. 살로는 ‘말안장(saddle)‘이라는 뜻을 가진고대 슬라브인의 언어 ‘sadlo‘에서 유래했다. 돼지 속살 위에 얹어진 지방이 마치 푹신한 안장 같아 보였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유럽에서는 육회의 일종인 타르타르 스테이크가 기마민족이 말안장밑에 말고기를 넣어 육질을 부드럽게 만든 것으로부터 유래했다는 설(說)이 있는데, 사실은 살로를 잘못 이해한 데에서 기인한 것이다.
살로는 오랫동안 외세의 지배를 받아온 우크라이나의 역사가 담긴 음식이다. 16세기 이후 우크라이나는 코사크인들의 발흥으로 역사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들은 초원 유목민의 오랜 풍습인 변발의 일종인 ‘추드‘를 하고, 강인한 기마민족으로서 독립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살로가 우크라이나인들 사이에서 널리 유행한 것도 이 무렵이다. 당시 이 지역을 지배했던 무슬림인 튀르크나 유대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장 구하기 쉬운 재료였던 돼지비계를 이용한 요리가 발달하기 시작한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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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의 일반적 경향 중에 하나가 죽음에 이르러서야 멈추는
그들의 끝없고 쉼 없는
권력에 대한 욕망이다.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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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든 삶은 무너져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외부로부터 갑작스럽게 날아온 펀치는 크고 강한 충격을 남기기 때문에 당신에게 오래 기억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게 그 충격 탓인 듯해서 약해질 때마다 친구들에게 그 얘기를 들려주지만, 그 효과가 단번에 나타나지는 않지요. 내부로부터 오는 충격은 또 다른 종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감각하게 있다가 손 써보지도 못하고 당하는 경우입니다. 결코 다시는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하겠구나 하는 깨달음만 종국에 얻는다고 할까요. 첫 번째 종류의 충격은 순식간에 찾아오는듯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슬며시 찾아왔다가 갑자기 번뜩 깨닫게 되는 거죠. - P22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요. 잡념이 끼어들려고하면 뭔가 목록을 만들어보다가 찢어버리기를 반복했어요.
그렇게 버린 종이가 수백 장도 넘을 겁니다. 기병대 대장들과미식축구 선수, 투수들의 이름에서부터 시작해 도시, 유명한노래, 행복한 기억, 취미, 전에 살았던 집, 제대 후 구입한정장과 신발 같은 것을 생각나는 대로 끄적거렸어요.
(참, 소렌토에서 샀던 줄어든 정장이나 수년 동안 지니기만하고 한 번도 입지 않았던 와이셔츠와 넥타이, 신발 같은 건 목록에 포함시키지 않았어요. 신발은 눅눅해지고 거칠어진데다가 셔츠와 넥타이는 누렇게 변색되고 풀 먹인 자리에 곰팡이까지 생겨서 그럴 수밖에 없었지요.) 거기에 더해 좋아했던 여자들, 그리고 능력이나 성격이 나보다 못 미치는 사람들에게 무시당했던 기억들까지.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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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이 여름을 말하기 시작할 때


나는 학교에서 나온다 재빨리
그리고 정원들을 지나 숲으로 간다.
그리고 그동안 배운 걸 잊는 데 여름을 다 보낸다

2 곱하기 2. 근면 등등,
겸손하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법,
성공하는 법 등등,
기계와 기름과 플라스틱과 돈 등등.

가을쯤 되면 어느 정도 회복되지만, 다시 불려간다분필가루 날리는 교실과 책상으로,
거기 앉아서 추억한다

강물이 조약돌을 굴리던 광경을,
야생 굴뚝새들이 통장에 돈 한 푼 없으면서도
노래하던 소리를,
꽃들이 빛으로만 된 옷을 입고 있던 모습을.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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