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쇠락하는 제국 미국을 대신해 중국이 언젠가는 대안적질서와 가치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품고, 오랫동안 중국을 취재해왔다. 시진핑 시대 중국이 점점 오만해지고 강압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며 곤혹스러웠다.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한-중 협력이 절실한 상황에서 중국에 대한 실망감이 한국의 외교·안보 선택지를 좁히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혐중의 목소리는 넓고 깊게 퍼지고 있다. 혐중은 중국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을 막고, 중국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 중국인들의 고민을 들으려는 관심까지 차단하는 위험한 현상이다. 혐중을 넘어 중국과 협력은 넓히되 비판할 부분은 비판하고 연대할 부분은 연대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14억 중국인들의 각양각색 고민과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시진핑 시대, 중국과 홍콩, 대만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중국의 현재를 이해할 실마리를 찾아보려 한다. - P23
손인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시진핑 시대의 중국을 "두려움의 정치"로 설명한다. 시진핑 1인 권력의 강화는 그의 권력욕 같은 개인적 요소보다는 통치 엘리트들의 집단적 위협 의식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감보다는 두려움이 공격적 본능보다는 방어적 본능이 시진핑으로의 빠른 권력 집중과 공산당의 영도 강화를 추동했다"는 해석이다. 손 교수는 중국 지도부의위협 의식은 권위주의 체제 자체가 지닌 구조적 문제로부터 발생했다고 설명한다. "지배연합으로부터 배제된 대중과의 갈등과 지배연합 내부의 권력 갈등이 엘리트들이 느끼는 위협 의식의 뿌리"라는 것이다. 개혁개방 40년 동안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지만, 부는 불공정하고 불평등하게 분배되었다. 기득권층에 대한대중의 분노는 커졌다. 기득권층의 이익을 제어하고 공정한 부의 재분배를 실현할 개혁이 필요했고 시진핑이 이런 개혁을 해낼 것이란 기대도 컸다. 하지만 점점 개혁보다는 대중의 불만을 통제하고 억누르는 쪽으로 기울었다. 2012년 권력 교체기에 일어난 보시라이 사건‘도 지도부의 불안감을 고조시키면서 권력 집중에 대한 필요성을 뒷받침했다. 서구 자유주의가 중국공산당의 일당통치를 위협한다는 해묵은 두려움도 커졌다. - P27
빈부격차를 원망하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마오쩌둥 시기의 평등에 대한 향수가 커지는 가운데 시진핑은 마오쩌둥의 이미지를 빌려서 듬직한 아버지의 이미지, 공산당의 이상주의적 뿌리를 회복시키고 외세에 단호히 맞서는 강력한 지도자상을 구축해왔다. 마오쩌둥 시대에 대한 향수를 이용하고 부패와의 전쟁으로 인기를 얻는 것은 시진핑의 라이벌인 보시라이가 충칭에서 실험했던 방법인데, 그를 숙청한 시진핑도 이를 고스란히 활용하고 있다. 시 주석은 ‘부패와의 전쟁‘에 이어 농촌과 농민들의 ‘빈곤 탈출‘(脫貧·탈빈)을 주요한 정치적 업적으로 내걸고 있다. 그리고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앞둔 2021년 2월 빈곤 퇴치 완수를 공식 선언했다. - P29
2021년 7월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앞두고 ‘전면적인 샤오캉 사회‘(의식주를 걱정하지 않는 물질적으로 안락한 사회) 달성의 업적을 과시하고, 신중국 수립 100년이 되는 2049년까지 사실상 세계 최강국으로 도약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이루겠다는 게 그의 청사진이다. 하지만 리커창 총리가 2020년 5월 28일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 기자회견에서 "중국인 6억명의 월수입이 1000위안(약 17만 원)에 불과하다"고 밝히면서 파문이 일었던 것처럼, 빈곤 퇴치 완수는 아직 현실과는 거리가 먼정치적 구호의 성격이 강하다. 시 주석이 문화대혁명과 마오쩌둥의 이미지를 활용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노동자와 농민, 학생들이 21세기 홍위병이 되어 아래로부터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을 두려워하는 문화혁명 트라우마도 깊이 도사리고 있다. 인권운동가들과 변호사들, 소수민족, 농민공(농민호구를 가진 노동자)들에 대한 국가의 통제와 탄압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중국 전역에 설치된 감시카메라, 안면인식 기술을 통한 감시, 인터넷 검열을 통한 디지털 빅브라더 사회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다. 베이징의 한 학자는 익명을 전제로 현재 중국의 상황에 대해 비관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덩샤오핑 시대에는 광활한 중국의 복잡한 상황 속에서 인민들에게 일정 정도 자유로운 공간을 보장해 인민과 지방의 적극성과 열정을 동원했다. 그러나 시진핑 시대에는 지도자와 당이 이미 진리를 모두 장악했으니 인민들은 당과 지도자를 신앙하며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변했다. 지방과 기층 조직들의 탐색 공간도 주어지지 않고, 언론의 자유도 주어지지 않는다. "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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