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권위주의 2.0》

왕후닝과 함께 중국 신권위주의를 대표하는 학자인 샤오궁친 상하이사범대 교수는 덩샤오핑의 중국을 신권위주의1.0, 시진핑의 중국을 신권위주의 2.0의 시대로 구분한다. 샤오 교수는 2018년 11월 텐저연구소가 개최한 ‘개혁개방 40주년 토론회‘에서 덩샤오핑이 구축한 중국식 신권위주의 1.0은 공산당의 강권통치를 기초로 시장경제를 발전시키려는 것이었지만, 공산당의 통치 지위에 도전하지만 않는다면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 모든 체제를 수용할 수 있다는 다원성을 내포한 유연한 신권위주의였다고 평가한다. 장쩌민·후진타오 시기까지는 이 모델에 기초해 경제 체제 전환과 성장의 성과를 거뒀지만, 심각한 부작용도 누적되었다. 권력과 자본이 결탁하면서 부패와 빈부격차, 이익집단끼리의 경쟁과 충돌이 극심해졌다. 이를 해결할 방법을 놓고 문화대혁명의 구호로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극단좌파와 서구식 민주혁명을 외치는 극단우파가 거리에서 충돌할 수도 있는 정치적 위험에대한 심각한 인식이 시진핑 시대 신권위주의 2.0의 출현 배경이라는게 샤오궁친의 해석이다.
시진핑 시대 신권위주의 2.0은 강경 신권위주의라고 볼 수 있다. 공산당의 전통 조직과 이념을 강화해 지도자와 당의 중앙에권력을 고도로 집중시키고, (서구식 민주주의 이념 등) 보편가치, 삼권분립
같은 민감한 용어는 아예 거론하지 못하도록 금지령을 강화해 사회의 다원성을 억제하고 통치질서의 안정성을 강화함으로써 개혁에 대한 반발을 억누르고 개혁을 심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 명분이었다. - P51

《양날의 칼, 애국주의》
왜 시진핑 시대 들어서 중국 외교는 이토록 공세적으로 변했을까.
중국 외교의 강경함은 국내 정치에서 나온다. 중국공산당 통치의 정당성은 마오쩌둥 시기에는 외세를 몰아내고 통일을 이루어서 건국한 것(站起來), 덩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 시대에는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룬 것(起來)에서 나왔다. 하지만 시진핑 시대들어 초고속 성장은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워졌고 화려한 성과 뒤에 가려진 빈부·도농·지역 간의 격차는 사회의 안정을 위협하는 동시에 공산당 통치의 정통성을 흔들었다.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강해짐(強起来)으로 새 정통성을 만들기로 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으로 중국의 꿈(중국)을 이루겠다고 선포했다. 그에 따라시진핑 주석은 21세기의 황제로서 천하를 호령하고, 천하가 중국을 떠받드는 강력한 중화제국의 부활을 보여주려 한다. 그러려면 실력을 과시하지 않고 조용히 힘을 기르는 덩샤오핑 시대의 외교전략인 도광양회의 틀에서 벗어나 힘을 과시하며 할 일을 하는 분발유위의 행보로 강한 중국을 과시해야 한다. 한편에선 근대에 들어와 중화민족이 서구와 일본 등 외세의 침략으로 겪은 지난한 고통을 강조하면서 중국공산당이 100년에 걸쳐 중국을 구원했다는 애국주의 서사를 더욱 요란하게 선전한다. 시진핑 시대의
"구호인 ‘네 개의 자신‘은 인민들이 중국의 노선 · 정치 체제·지도 이념•문화에 자신감을 가질 것을 요구하며, 서구의 이념과 체제를 배격한다. - P60

《 ‘국가자본주의를 겨누다‘》
반도체와 통신장비의 기술 우위는 누가 미래 산업의 주도권과 군사적 패권을 쥐게 되느냐와 직결된다. 인공지능, 자율주행차를 비롯한 미래 산업, 금융, 무기 시스템도 모두 네트워크와 반도체 기술이 결정한다. ‘중국제조 2025‘는 중국 정부가 나서 이 분야를 적극 육성하려는 것이고, 미국은 이를 포기하라고 요구했다. 미국은중국의 성장 모델을 국가자본주의로 지목했다. 중국 정부가 국유기업들에 특혜를 주고 금융 시장을 통제하고, 중국 시장에 진출한해외 기업들에게 강제로 기술 이전을 요구하는 등의 불공정한 모델로 초고속 성장을 이루었다고 비난하면서 중국이 이런 모델 자체를 바꿔야만 한다고 요구했다.
미국의 전방위 공세로 중국 경제의 위기감이 고조되자 류허가 추진하던 개혁은 더는 진행될 수 없었다. 당과 국가가 경제 전반을 강하게 통제하면서 미국과의 전면적인 경제 기술 패권 전쟁에 대비하는 일종의 ‘전시 경제‘의 지휘관으로 류허의 역할도 수정되었다.
미중 갈등은 중국 개혁개방 이후 40년에 걸쳐 형성된 두 나라의 경제적 윈윈 관계의 구조 자체가 바뀐 결과다. 흥호펑 존스홉킨스대 정치경제학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1990년대 중국 정부가 국유기업 민영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미국 월가의 금융기업과 대자본가들이 큰 이익을 얻었고, 중국공산당돠 월가 사이에는 협력 관계가 형성되었다. 중굳은 미국의 주요 기업들에게 중국 시장을 열어주고 생산기지 건설에 특혜를 주면서 이들을 미국 내에서 중국의 이익을 대변해 줄 우군으로 만들었다. 이는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 가입으로 이어졌고,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변신해 초고속 성장을 이어갔다. - P74

시진핑 지도부는 공산당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는 가장 심각한 기득권 세력이 금융 분야에 있고, 개혁의 최대 난제라고 본다.
하지만 이미 9년 차에 접어든 부패와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라이샤오민의 천문학적 뇌물수수가 보여주듯 부패의 깊은 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만연한 부패의 근본 원인은 공산당과 국유기업에 너무 큰 권력과 자원이 집중된 시스템 자체이기 때문이다. 권력을 감시할 시민사회의 역할은 오히려 더욱 억압되고, 부패와의 전쟁은 반대파에 대한 숙청으로 변질되었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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