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과 올가미》
2015년 7월 인권변호사들은 왜 중국 당국의 대탄압 대상이 되었을까. 인권변호사들은 2000년 이후 조심스럽게 싹을 틔우고 성장해온 중국 사회의 풀뿌리 시민운동, 노동운동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전국에 흩어진 운동들을 이어주는 그물 같은 존재였다.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 관영 언론에서 보도하지 않는 소식을 전하려던 시민기자들, 탄압받는 소수민족들, 공산당이 금지한 지하교회 (중국공산당이 통제하는 조직에 속하지 않은 교회)와 파룬궁 신자들, 토지를빼앗긴 이들을 변호하고 억울한 이들의 사연을 세상에 알렸다. 이렇게 인권변호사들끼리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면서 중국 전역에네트워크가 만들어졌고, 시민운동 조직들도 이들을 통해 연대할수 있었다. 톈안먼 시위 유혈 진압 이후 중국 당국의 시민사회에 대한 가장 강력한 탄압이었던 ‘709 대체포‘는 인권변호사들의 네트워크를 궤멸시킴으로써 인권운동과 노동운동의 암흑시대를 예고했다. - P166

후진타오 시대(2002~2012), 중국 당국은 사회의 둘레에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놓고 ‘중국공산당에 직접 도전하지 않는다 ‘는 암묵적인 선을 넘지만 않는다면 시민사회의 성장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 태도를 취했다. 이때는 중국의 고속 성장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였고, 당국은 경제적 과실 분배를 통해 사회를 관리하려 했다. 원자바오 총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치 개혁을 하지 않으면 개혁개방의 성과를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풀뿌리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이 성장하고, 강제철거와 환경오염에 대한 항의시위가 벌어지고, 중국이 나아갈 방향을 둘러싼 다양한 목소리가 나왔다. 많은 이들은 중국 사회 둘레의 선이 점점 확대되면서 좀 더 포용적이고 자유로운 사회로 변해갈 것으로 기대했다.
시진핑 시대 들어 그 선이 급속히 좁아지면서 당국에 복종하지 않고 비판적인 의견을 말하는 이들을 옥죄는 올가미로 변했다.
중국 경제의 초고속 성장 시대가 끝나고, 미국과의 패권 경쟁으로 외부 환경이 악화되고, 노동자들의 파업과 시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중국 지도부는 통제 강화로 사회불안 요소를 원천 차단하기로 결정했다. 공산당과 시진핑 주석의 영도에 대한 절대적 복종을 강조하면서 인민의 주체성과 아래로부터의 목소리는 철저히 통제하는 쪽으로 급속한 방향 전환이 일어났다. 광대하고 복잡한제국을 통치하는 절대 권력이 필요에 따라 지방과 백성에 대해 풀어주기(방)와 통제하기(수)를 반복해온 중국의 역사 순환에서 통제 강화의 주기가 시작되었다. 제국의 역사적 통치술에 인공지능과 생체정보를 이용한 21세기 첨단 감시가 더해지면서 중국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통제가 사회 구석구석을 뒤덮기 시작했다. - P167

‘‘709 대체포‘ 이후 5년이 지난 지금 변호사와 인권운동가들은 포기하지 않고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법학자이자 엔지오 활동가인 쉬즈융은 시진핑 주석이 코로나19 상황에 책임을 지고 하야할 것을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인터넷에 올렸다가 2020년 3월에 다시 구금되었다. 왕취안장의 변호를 맡았고 사법·정치 개혁을 공개적으로 요구해온 위원성은 2020년 6월국가 정권 전복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정권을 전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사법제도, 표현의 자유, 인권 보장,
역동적인 시민사회가 존재하는 중국을 희망한다. 고문이 없고, 어떤 피고인이든 법적 조력을 받을 수 있고, 당의 간섭에서 자유로운 재판을 요구한다. 중국 당국은 이들이 외세와 결탁해 서구 사상을 추종한다고 비판하지만, 민주와 평등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중국 현대사의 오래된 미완의 과제다. 1919년 반제국주의와 함께 민주와 과학을 요구했던 5·4운동의 과제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이후 특권에 반대하고 공정한 사회를 요구했다가 반우파 투쟁에서 희생된 학생들, 문화대혁명 이후 정치 현대화를 요구했던 민주의 벽 운동, 1989년의 톈안먼 시위를 거쳐 노동운동과 인권운동으로 이어져왔다.
- P168

《노학연대라는 불씨》
고작 50여 명의 대학생이, 노조를 결성하려다 해고된 노동자들을
‘지원한 ‘작은 사건‘에 왜 당국은 이토록 무자비한 탄압을 벌였을까?
2001년 세계무역기구 가입 이후 중국 수출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농촌 출신 노동자들이 동·남부 연해 지역의공장으로 모여들었다. 호적에 ‘농민‘으로 분류된 이들은 도시에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견디고 주거, 자녀 교육, 복지, 의료 등에서차별을 받으며 ‘2등 시민‘으로 살아간다. 이들 2억 9000만 농민공들의 희생으로 중국이 벌어들인 엄청난 무역흑자는 공산당, 국유기업, 권력층과 연결된 기업가들에게 큰 부를 가져다주었지만, 농민·농민공들은 성장의 정당한 몫을 받지 못했다.
2010년대 들어 더 나은 처우와 독립노조 설립 등을 요구하는젊은 노동자들의 시위와 저항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 P175

동남아 국가 등으로 이전하면서 제조업 일자리는 줄고, 음식배달,
택배 등 플랫폼으로 통제되는 노동이나 일용직으로 일하는 건설업·서비스업 중심으로 일자리 구조가 바뀌고 있다. 윤종석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인문한국 연구교수는 "80년대 한국의 대규모 노동운동은 산업 고도화와 대공장화, 중산층 확대를 기반으로 일어났고, 국제적 환경도 노동자들에게 유리했다"며 "지금 중국 노동자들은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불안정 노동이 확대되고, 당·국가의 강력한 탄압 등 매우 복잡하고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한다. 중국 청년들은 도시의 복지 시스템에서 소외된 ‘농민공‘이란 차별의 굴레를 벗기도 전에, 첨단기술의 통제와 국가의 강력한 감시라는 이중·삼중의 굴레에 매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0년 무렵까지는 중국 노동운동의 희망이 확산되었던 시기였다. 파업의 물결이 광둥성과 상하이 등 연해 지역 곳곳을 뒤덮고 노동계약법이 도입되어 임금이인상되고, 노동연령층의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노동자들의 발언권이 강해졌다. 사람을 기계처럼 부리는 관리 체제와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임금을 인상하라는 요구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2010년 애플 아이폰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의 첨단 전자제품을 조립 생산하는 중국 폭스콘 공장에서 10대와 20대 초반 노동자 18명이 잇따라 고층건물에서 몸을 던졌다. 연쇄 자살의 비극을 통해, 이들은 일주일에 6~7일, 하루 12시간 넘게 로봇처럼 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하며, 모든 일상을 통제당하는 고통을 세상에 폭로했다. - P184

농민공들은 현실의 모순을 명확히 자각하고 더 나은 현실을 꿈꾸며 노동운동에서 희망을 찾았고, 《전태일 평전》과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 등을 읽으며 ‘취안타이이‘ (전태일의 중국 발음)가 준 희망의 불씨를 마음에 품었다.
시진핑 정부는 노동자들의 각성과 권리 의식 성장을 사회불안정 요소로 판단했다.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운동가들을 대대적으로 체포했고, 2016년 자선법, 2017년 해외비정부조직관리법을 시행해 시민단체들이 정부 승인 없이는 모금을 할 수 없고 홍콩이나 외국의 지원도 받을 수 없게 했다. 국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 많은 노동운동가들은 국가가 원하는 형태의 사회복지 서비스를 노동자들에게 제공하는 역할로 변모해야 했다. 국가가 허용하는 만큼 지원을 받아 활동하고, 노동자가 변화의 주체가 될 생각은 하지 말라는 ‘당근과 채찍‘이다.
중국의 노동운동은 암흑시대를 맞았고 많은 노동운동가들은 체포되거나 지하로 숨어들었다. 판이라는 성만 밝힌 한 노동운동가는 2020년 9월 좌파 사이트 궁차오가 마련한 온라인 세미나에서 "노동자 조직화를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계속되는 당국의 괴롭힘과 체포, 억압 때문에 활동이 매우 어렵다. 노동운동에 참여하려는 조직가, 운동가를 찾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로봇도 노동자들의 경쟁자로 등장했다.  - P185

노동은 한없이 불안정해지고 권리를 외칠 목소리마저 억압당하는 사회에 절망으로 저항하는 이들도 있다. 광둥성 대도시 선전의 반허 인력 시장 주변에서 살아가는 ‘싼허청년들‘은 고정된 주거지도 없이 돈이 떨어지면 배달이나 건설 일용직으로 버는 일당에 의지해 하루 벌어 3일 노는 삶을 살아간다. 이들 가운데신분증도 팔아버리고 가족과의 연락도 끊고 노숙 생활을 하면서자포자기한 채 시간을 보내는 이들은 ‘싼허다선和大神"(싼허의 신)으로 불린다.
싼허청년들의 생활을 연구해 《어찌 돌아가고 싶지 않겠는가》(並不懷歸)란 책을 펴낸 사회학자 펑은 중국 언론 인터뷰에서
"싼허청년들은 어려서부터 도시의 생활을 봐왔기 때문에 생활에대한 기대도 높고 권리 의식도 강하고 불공평에 대해서도 더욱 민감하다. 하지만 권리를 지킬 수단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항의 방식, 즉 대도시에서 아무렇게나 끼니를 때우며 죽음을 기다리는 방식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가 싼허청년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착취당하고 떼먹히고 차별당하기 싫어서 일하지 않는다‘였다. 이들은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을 버린국가‘에 저항하고 있다. - P187

《중국 특색 자본주의》
미국은 중국의 국가자본주의를 정면 공격하려 한다. 중국 경제가 발전할수록 공산당의 통제가 약화되고, 계획경제는 시장경제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했던 미국의 계산은 틀렸다. ‘시진핑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은 중국이 서구식 모델이 아닌, 공산당의 지도와 국유경제의 우위를 유지하는 중국식 모델을 고수할 것임을 명백히 선언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국가자본주의가 기존의 시장경제를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정부는 중국 정부의 집중적인 자금과 기술 개발 지원을 받는 국유기업들이 전 세계 시장에서도 민간기업에 대한 불공정 경쟁을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2020년포춘》이 집계한 글로벌 500대 기업에서 중국 기업이 124개로 미국의 121개를 추월했는데, 그 가운데 91개가 국유기업이다. 미국은 중국의 국가자본주의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며 기존 시장자본주의 체제를 위협하고 있다고 보고, 중국의 굴기를 반드시 꺾어야 한다고 선전포고를 했다. - P242

 중국도 국유기업을 강화하고 모든 역량을 집중해 반격에 나서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미국식 시장자본주의와 중국식 국가자본주의의 우열을 가리는 체제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마윈은 2016년에 계획경제의 미래에 대해 의미심장한 예언을 한 적이 있다. "100년 넘게 우리는 시장경제가 최고의 시스템이라고 믿었지만, 앞으로 30여 년 안에 계획경제가 점점 커질 것이다. 빅데이터는 시장의 힘을 예측해 마침내 계획경제를 실현하게 할 것이다"라고, 중국공산당은 국유경제와 첨단기술을 결합시킨 21세기 계획경제로 미국을 뛰어넘는 위대한 중화 자본주의를꿈꾸고 있을까.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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