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큐를 위한 변명 - 대륙이 만들어낸 중국정신의 두 얼굴
이상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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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기질(하오커好客, 호객정신)'과 '아큐 기질(주커逐客, 축객정신)'—지식인 특유의 '은자 기질'을 부록 삼아—로 중국인의 심성을 간결하게 들여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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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앞에서 주역을 읽다 - 삶의 역풍도 나를 돕게 만드는 고전의 지혜
이상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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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상성(相反相成, 만물은 음양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다)'과 '물극필반(物極必反, 사태가 극에 이르면 반대방향으로 바뀐다)'으로 주역(周易)을 간소하게 해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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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학비평, 그 비판적 대화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7
김영건 지음 / 책세상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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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문학 예술이 '심정의 질서 속에 자신의 왕국'을 창조하는 구성적 행위라면, 철학은 그러한 왕국의 가능성을 보살피는 비판적 행위이다."

문학의 영혼에는 통찰과 영감, 직관과 비유를 담은 언어의 샘이 마르지 않는다. 이 언어들은 순전한 주관성에서 퍼올린 샘물이기 때문에 그것이 진리의 과녁에 명중하는가의 진위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 그저 다수의 합의와 소수의 반기라는 공감의 진자 운동이 반복될 뿐이다. 이러한 문학의 '초월성'은 뛰어난 재능을 지닌 창작자들의 언어가 널리 뛰노는 마당이면서 동시에 진리를 가장한 소피스트들의 허위와 나태를 숨기는 은신처가 되기도 한다.

저자가 철학과 문학비평의 접점으로 논증에 기반한 비판(Kritik)의 방법론을 제시하는 이유는 창조성으로 포장한 거짓 언어의 향연을 파헤쳐 그들을 자신들의 고향인 무지의 동굴로 돌려보내기 위함이다. 이때의 비평은 문학의 언어를 낱낱이 해체하여 논리적으로 재구성하라는 강제가 아니라, 문학의 '초월성' 역시도 어디까지나 인간의 언어를 매개로 하기 때문에 이성이 재단하는 과학의 방법론 안에서 작품과 독자가 통약 가능함을 보여주려는 노력이다.

문학 예술이 '구성적 행위'라는 정의에는 자연과 초월을 자의적으로 뒤섞는 행위에 대한 우려가 담겨 있다. 이것은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침묵하고 이성을 통제적으로 사용하라는 칸트의 언명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칸트도 비판 작업의 너머에서 형이상학을 향한 갈망을 인정하고 양자를 매개하는 판단력을 명시했듯이, 문학비평은 '초월성'에 대한 제나름대로의 설득력 있는 해명을 내놓아야 하는 운명을 안고 있다. 철학은 결별해야 할 연인인 셈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엄정한 비판의 태도는 초월성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영역에 해당한다. 검증 가능한 통제 영역을 무시해서도 안되지만, 진리임을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거기에 다가서려는 이성의 갈망을 부정하는 것은 문학의 고유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 문학은 정합적으로 짜여진 틀 안에 정서적으로 응축된 언어를 갈무리하는 작업이다. 파악할 수 없는 미지에 닿는 일, 새로움과 낯섦에 다가서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향한 공감을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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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들의 심리학 - 그들은 어떻게 친구가 되고 왜 등을 돌리는가
레이철 시먼스 지음, 정연희 옮김 / 양철북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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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시소의 타고난 운명은 평형과의 어긋남.
혼자일때도 그러하니, 다시금
운명이리라

 

너와 내가 만난다는 건,
눈을 마주친다는 건,
미소짓는다는 건,
대화한다는 건,

 

함께 시소에 올라타는 일

 

내가 올라가면 네가 내려가고,
내가 내려가면 네가 올라가고,

 

서로 다름을 각인하는 일

 

우리에게 평형이란 헤어짐의 다른 이름.
둘이어서 더욱 그러하니, 이제는
삶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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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없는 수단 - 정치에 관한 11개의 노트
조르조 아감벤 지음, 김상운.양창렬 옮김 / 난장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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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역사, 문학, 세 가지 학문의 초석(礎石)을 단순화해서 표현하면, 철학은 사유를 구축하고, 역사는 사실을 배열하며, 문학은 언어를 자유롭게 한다. 이것들은 각각 인간의 정신 자체와 정신의 표상물, 그리고 이 둘을 이어주는 매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작업이다. 본래 하나의 학문이었으므로 굳이 '통섭'이란 이름으로 재규정할 필요가 없으며, 끊임없이 상호 교차를 시도하는 것이 낯설거나 부자연스러운 일도 아니다.

문제는 자신의 심장부를 개방하면서까지 다른 분야에 기대거나 영합하려는 태도이다. 정신에 대한 탐구를 특정한 사태와 합치시켜 설명하거나, 언어의 직조를 통해 멋들어지게 포장하는 일이 여기에 해당한다. '공존'과 '혼합'이 혼재된 곳에서는 영역을 구분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낡고 진부한 것으로 간주되기 마련이다. 선언이 사유를, 염원이 사실을, 수사가 논증을 대체한 자리에 쓰여진 글은 잊혀질 구호들로 가득하다.

~에서만 / 유일하게 / 전지구적 내전 / 역사의 종언 / 가로지르기 / 생명정치 / 구멍 / 진동 / 변형 / 분열 / 전복 / 저항 / 도래...

이 비장한 어휘들은 기성의 권위에 가려져 있던 소외 지대를 비춘다. 그들이 발견[발굴]한 현상들은 엄숙한 정의定義의 망토를 걸치고 과過대표된다. 복잡다단하게 얽힌 인과의 고리가 하나로 정리되면서 해석의 위력이 상상 속에서 증폭된다. 본래 있던 자리를 파국으로 내몰고, 균열된 틈에서 교배하며, 새로운 세계를 여는 이 어휘의 성찬은 사유를 앞질러서 성대한 축제를 연다. 그리고 사유가 도착하기 전에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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