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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문학비평, 그 비판적 대화 ㅣ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7
김영건 지음 / 책세상 / 2000년 6월
평점 :
절판
"문학 예술이 '심정의 질서 속에 자신의 왕국'을 창조하는 구성적 행위라면, 철학은 그러한 왕국의 가능성을 보살피는 비판적 행위이다."
문학의 영혼에는 통찰과 영감, 직관과 비유를 담은 언어의 샘이 마르지 않는다. 이 언어들은 순전한 주관성에서 퍼올린 샘물이기 때문에 그것이 진리의 과녁에 명중하는가의 진위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 그저 다수의 합의와 소수의 반기라는 공감의 진자 운동이 반복될 뿐이다. 이러한 문학의 '초월성'은 뛰어난 재능을 지닌 창작자들의 언어가 널리 뛰노는 마당이면서 동시에 진리를 가장한 소피스트들의 허위와 나태를 숨기는 은신처가 되기도 한다.
저자가 철학과 문학비평의 접점으로 논증에 기반한 비판(Kritik)의 방법론을 제시하는 이유는 창조성으로 포장한 거짓 언어의 향연을 파헤쳐 그들을 자신들의 고향인 무지의 동굴로 돌려보내기 위함이다. 이때의 비평은 문학의 언어를 낱낱이 해체하여 논리적으로 재구성하라는 강제가 아니라, 문학의 '초월성' 역시도 어디까지나 인간의 언어를 매개로 하기 때문에 이성이 재단하는 과학의 방법론 안에서 작품과 독자가 통약 가능함을 보여주려는 노력이다.
문학 예술이 '구성적 행위'라는 정의에는 자연과 초월을 자의적으로 뒤섞는 행위에 대한 우려가 담겨 있다. 이것은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침묵하고 이성을 통제적으로 사용하라는 칸트의 언명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칸트도 비판 작업의 너머에서 형이상학을 향한 갈망을 인정하고 양자를 매개하는 판단력을 명시했듯이, 문학비평은 '초월성'에 대한 제나름대로의 설득력 있는 해명을 내놓아야 하는 운명을 안고 있다. 철학은 결별해야 할 연인인 셈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엄정한 비판의 태도는 초월성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영역에 해당한다. 검증 가능한 통제 영역을 무시해서도 안되지만, 진리임을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거기에 다가서려는 이성의 갈망을 부정하는 것은 문학의 고유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 문학은 정합적으로 짜여진 틀 안에 정서적으로 응축된 언어를 갈무리하는 작업이다. 파악할 수 없는 미지에 닿는 일, 새로움과 낯섦에 다가서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향한 공감을 '요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