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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 4
아베 야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09년 9월
평점 :
치정(癡情): 남녀 간의 사랑으로 생기는 온갖 어지러운 정. 치정이라는 말이 참 좋다. 뭔가 잔인하기도 하고 별 추잡한 짓까지 다 하게 만들어 체면이고 뭐고 다 내 팽개쳐 사랑이라는 놈에게 목숨따위 얼마든지 걸어주마 큰소리 치는 것. 꽁꽁 감춰둔 내면의 밑바닥에 있는 본능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미친 짓을 호쾌하게 웃으며 할 수 있다니까.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의 명장면 처럼 남자 둘이 비오는 진흙탕에서 개싸움을 벌이며 치고 받고, 지붕 있는 벤치에 앉아 담배를 입에 문 여자가 연기를 내뿜으며 그 모습을 지그시 바라본다. 순간 정적이 찾아온다. 느린 화면으로 빗발이 날리며 헛손질만 계속 되다가 결국 지쳐 흙 바닥에 드러누운 두 사람 앞에 여자가 다가오며 "배고프지? 뭐 먹을까?" 어처구니가 없고 자만(?)심이 상하지만 힘이 빠져 말 할 기운도 없다. 그러고는 따끈한 국물을 찾아 헤매는 세 사람. 이런 장면이 저절로 그려지는 "치정"이라는 단어가 몹시 끌리는걸.
1권부터 4권까지, 7권 이렇게 5권 겨우 알라딘에서 중고로 사서 읽었는데 예스24, 인터파크 등등 인터넷서점 어디에서도 서점직배송중고를 구할 수가 없네. 출판계의 단통법이라는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거의 중고책 위주로 사고 있다. 대단한 악법 덕분에 책을 사는 사람이 줄어 그런지 요즘은 원하는 중고책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구.
4권에 나오는 「차가운 토마토」일화가 제일 좋더라. 심야식당 나머지 책을 더 읽으면 이보다 괜찮은 일화를 발견하게 될 지 모르지만. 심야식당 주인장에게 스쳐간 사랑 이야기. 동병상련인 처지를 서로 알아보고 눈빛이 찌릿! 마주친 두 사람. 차가운 토마토가 떼구르르 구르고... 아침 꽃이 활짝 피었다. 이 작가 표현력 기가 막히는 구나. "차가운" 이라는 느낌씨(형용사)도 알기 쉬운 "뜨거운" 이라는 말보다 더 치명적이다. 이 일화 만으로도 4권을 읽어볼 만하다. 내게는 오래 묵을수록 더 애틋하고 설레지만 번히 독인 줄 알면서도 한 입에 털어넣게 되는 사랑이란, 한 순간 떨림을 위해 일생을 걸어볼 만한 것인지 모른다. 그러고나서 곧 땅을 치겠지. 오늘만 살려고 했더니 아차, 허옇게 날이 밝아오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