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더 하우스 2
존 어빙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2008년 생일에 친구가 무얼 받고 싶냐 물어 조금 수줍어(?)하며 콕 집어 얘기해 선물받게 된 책이었는데, 번역이 고르지 못해 몇 번이나 읽기를 시도하다 이제야 겨우 읽었다. 저자의 다른 소설인 『가아프가 본 세상』은 다행히 안정효 번역이다. 작가가 마음에 들어 그 책도 얼른 읽어보고 싶다.

 

처음엔 그저 성장소설이겠거니 여겼는데 속내를 들여다보니 사회고발소설인거다. 시대배경을 아주 오래 전으로 하고서 그 시대에 살았던 진보적인 사람을 주인공으로 선정한 것이 참신하다. 그래서 오히려 설득력을 갖게 된다.

 

소설에서 "낙태"를 정면으로 다룬 것에 무척 놀랐다. 우리가 함께 논의할 문제이긴 하다. 낙태는 오래 전부터 찬반으로 나뉘어 왈가왈부가 끊이지 않는 논쟁거리이고 이 소설의 시간(시점)에서 100년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여전히 문제로 남아있다. 생명의 문제와 원치않는 임신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이 옳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사전 피임부터 사후피임까지도 어차피 살인행위가 아닌가까지로 파고 들게 된다. 수정 전이라면 그것들은 생명체가 아니랄 수 있느냐는 말이다. 낙태를 찬성하는 우리부부는 사전, 사후 피임에 대해 함께 얘기하고는 했다. 불과 몇 년 전에야 겨우 사후피임약을 허용했을 만큼 우리나라는 낙태에 대해 부정적이다. 사후피임은 낙태의 전단계인데도 말이다.

 

낙태에 찬성하는 경우를 보통 성폭력 피해자만 예로 들곤 했다. 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산모와 태아의 건강 상 이유는 제외하고. 이 책의 주(註)에 따르면 정식부부 사이에서 출생한 아이들 중 22퍼센트가 원치 않는 아이였다고 한다. 그때가 피임이 지금보다 덜(?) 인식(?)되고 피임방법도 덜 발달된 1960~1965년이긴 하지만 현대에도 원치 않는 임신을 하는 경우가 꽤 되지 않을까.

 

지금 부모가 된 사람들도 사실은 아이를 원해서 낳았다기 보다 어쩔 수 없이(?) 생겨서 낳은 경우가 많지 않을까 남편과 얘기하곤 한다. 불가피(?)하게 아이가 생겨 억지결혼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그렇다고 그런 경우 무조건 아이를 지워도 좋다고 할 수도 없지만 그런 애정 없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과연 행복하게 사랑받으며 자랄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 그럴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론 부부가 살아가면서 아이 때문에 성장하고 사랑이 더 깊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을 거다. 또한 아이 때문에 "자기" 인생을 포기하며 지옥같은(?) 부부 생활을 견뎌내는 사람들도 많다. 그냥 내 주위만 둘러봐도 그러지 않냐고. 당장 우리 부모세대만 보아도 실감할 수 있다. 내겐 부모의 불화 때문에 고통스러운 10대를 보낸 친구만 둘이다. 지금까지도 그 영향을 받아 자신의 인생마저 불행 속에 밀어넣고 있다. 그리 살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인생을 숙명처럼 여기며. 

 

소설의 재미를 얘기하려다 주제가 워낙 민감하고 중대해서 심각해져 버렸다. 이 책 정말, 재미있다. 문장 곳곳에 작가의 재기가 흘러 넘친다. 문장 하나하나가 의미를 담고 있어 껄껄 웃다가 한참을 생각하게 된다. 묘사도 탁월해서 문장을 몇 번씩 다시 읽어보고 어떤 문장은 소리를 내어가며 읽기도 하며 어루만지듯 읽었다. 아, 영어는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구나 느끼고 원어로는 어땠을까 궁금해지고 이럴 때마다 원서를 읽지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럽다.

 

작가의 의식을 반영한 것인지, 어찌보면 북유럽식의 자유로운 성관념(?)을 보여주는 것도 같다. 부부이기도 하고 아무 사이도 아니기도 한, 그 시대라면 없었을 관계를 그리는데 일부일처제의 폭력성(?)에 대한 반감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놓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그 여자가 얄밉다. 두 남자 모두를 힘들게 하고 아들마저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했을테니. 라다크처럼 일처다부가 허용된 나라라면 모를까.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 살아왔으며 고아 출신이라는 낙인을 안고 살아갈 주인공을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주인공에게 좌절을 안겨주고 사랑이라는 무기(?)로 주인공을 구속하고 "가진" 자를 선택한 그 여자는 계산적이고 권력적이다. 이른바 된장년이 아니냔 말이다. 이런 것도 권력관계로 보는 내가 지나친 건지도 모르겠다.

 

세인트 클라우즈 만큼 이상적인 고아원이 있을까? 닥터 라치처럼 지.극.히. 인간적인 의사이자 고아원장이 있다면 생각만 해도 어둡고 우울한 고아원도 지낼 만 한 곳이겠다. 하지만 고아의 삶이 결코 녹록지 않음을 작가는 얘기한다. '고아는 ... 내색을 하지 않는다' 등등 고아는 이러저러하다고 정의내리며. 세인트 클라우즈 출신 인물들이 매력적이어서 만나서 얘기 나누고 싶다. "후배는 강하게 키워야 써" 입버릇처럼 말하며 만날 갈궈대던 징글징글한 선배들이 떠오르네. 역시, "인간은 강하게 키워야 해" 나도 모르게 되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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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6-21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재미있따니 함 읽어봐야겠네요. 소설책은 안 사기로 결심했으니 도서관 가서 빌려야겠습니다.

samadhi(眞我) 2015-06-21 13:00   좋아요 0 | URL
막상 재밌다고 했는데 곰발님이 재미없다시면 어이한단 말이오리까. 육각수의 ˝흥보가 기가 막혀˝ 를 최근까지 들으며 남편과 이 노래 참 잘 만들었어를 서로 연발하곤 합니다 이 노래 들었다는 표시로 중독적인 노랫말투로 ㅋㅋ

samadhi(眞我) 2015-06-21 23:27   좋아요 0 | URL
크게 결심하셨네요. 저도 그래야지 하고서는 두 번은 읽을거야. 라고 지키지도 못할 다짐을 하며 노란북을 뒤지고 중고책을 뒤져가며 소설을 질러대곤 합니다. 도서정가제 때문에 정부 욕을 바가지로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