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기

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무척 기다렸던 정유정의 신작이다. 『7년의 밤』이 충격적으로 좋았기 때문에, 되지도 않는(?) 내게 글쓰기를 자극한 정말 멋진 소설이어서 무척 기대기대하며 책을 펼쳤다. 도입부에 나온 재형의 아이디타로드 경주와 앨래스카의 풍광은 눈부시게 매혹적이었다. 살아남기 위한 인간종의 잔인함은 끝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이라는 것을 원하지 않아도 소설을 읽는 내내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류의 재난이야기는 왜 이리도 마음 불편한 것인지. 그 일들과 우리 일상은 아주 먼 거리인 것 같지만 사실 지나치게 사실적이어서 소름 돋을 만큼 실감이 난다. 내가 그 고립 속에, 말도 안되는 처우 속에 던져진다면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주요인물들 하나하나의 내면과 그들의 행동을 따라가며 서술하는 흐름이 참 좋다. 독자가 그들을 이해하기는 좋지만 실상 그들끼리는 소통의 부재와 고립 속에서 고통받는다.  

이 책을 읽으며 구제역 때 살처분되던 돼지들을 떠올렸는데 작가도 거기에서 이야기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주인공이 꿈꾸던 "인간없는 세상"은 어쩌면 "탈인간중심" 세상이 아닐까. 인간만이 전지전능한 것이라 인식하지만 실제로는 비인간적인 모순된 세계. 그래서인가. 팀버 울프인 "링고"를 인간과 대등하게 주체적으로 그려낸 점이 독특하고 좋다. 개의 심리를 어쩜 그리도 잘 그려냈는지. 다른 누구보다 링고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작가의 애정이 투영되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처음과 끝이 좋다. 그러면 다좋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난 전작인 『7년의 밤』이 더 좋다. 이 소설은 뭐라 하기 힘든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 작가가 꽤 고생한 흔적은 엿보이지만 전작만큼 파괴적(?)이고 신선하지 않다. 기대가 너무 커서였을까? 소재가 조금은 상투적인 것이 내 마음을 붙들어두지 못한 게 아닐까. 살면서 걸작 한 편 써내기 힘든데 그런 면에서 대단한 작가지만 그 후에도 훌륭한 작품을 써내는 사람들이 진짜 실력자란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