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랫동안 무딘 칼 좀 갈아달라 닦달해서-내가 다칠까봐 안갈아줬다는데-잘 드는 칼로
음식을 한 어제,
냉동실에 얼려있던 단단한 홍고추를 썰다가 손가락까지 썰었다.
피는 멈출줄 모르고 혼자서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휴지로 피를 닦고
음식할 때 쓰던 청주를 들이붓고
밴드로 감았다가 붕대를 둘렀다가
아 어떡하지, 병원 가서 꿰매야 하나.
하여간 덜렁덜렁덜렁이 주인 만나 내 몸이 고생많다.
어디 한두번이어야지.
2주전 냄비뚜껑 모서리에 찍힌 왼쪽 셋째 발가락 피멍이 채 가시지도 않았구만.
잔뜩 마음이 약해져서 울먹울먹(울지는 않았지만) 전화걸었더니
"으이그 그러게 다칠 거라고 조심하랬잖아! 지혈은 잘했어?"
만날 내가 그에게 "에미 말 좀 들어라!" 하고 잔소리 해댔는데
이제는 그가 애비노릇 한다.
유독 엄살이 심한 막둥이 기질을 가지고 있어
당장 머리는 어떻게 감지
설거지는 어떡하지
자잘한 걱정들이 무색하게도
자판을 쓸 때 검지 대신 중지로 "ㄱ"을,"ㄹ"...을 쓰는 게 익숙지 않지만
별탈없이, 나답지 않게 조심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별 거 아닌데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