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찰리 맥커시 지음, 이진경 옮김 / 상상의힘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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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 어릴 적부터 엄마가 힘주어 말한 성공이라는 단어가 듣기에 거슬려 한 귀로 흘려듣곤 했다. 그래서 성공(?)하지 못했나 보다. 중학교 때 전교 1등 하던 친구와 단짝이었는데 어느 날 점심 도시락을 같이 먹는데 김치 꽁다리 부분을 자기 엄마가 먹지 못하게 하셨다는 거다. 성공 못 한다고. 난  그 말을 여태 기억하는지. 김치를 썰 때마다 꽁다리를 잘라내며 그 말을 기억해 내고는 일부러 우걱우걱 씹어먹고 싶은 거다. 그저 맛없어서 안 먹을 뿐인데.


대학 때 선배네 집에 놀러 간 적이 있다. 학교가 집과 떨어져 자취하는 선배였는데 주말이라 오랜만에 부모님 댁에 간 거였다. 선배 어머니가 채소가게를 하셨는데 술 안주로 배추 뿌리를 주셨다. 난생처음 배추 뿌리를 먹어봤는데 달달하고 아삭한 것이 날고구마 맛과 비슷했다. 배추 뿌리를 먹으면서도 그 친구 엄마가 하셨다던 말씀이 떠올랐다. 


우리 사회는 왜 그리도 성공에 열을 올리는가. 한류가 열풍이고 한국을 경험한 외국인들이 꽤나 살기 좋다는 나라인 데도 다들 조금씩 또는 많이 불행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다른 사람들보다 뭔가 뒤쳐지는 듯하면 자신이 모자란 것 같고 잘난 부모를 만난 다른 이들을 부러워하며 신세한탄을 한다. 무리와 "다른" 사람을 보면 왠지 꺼려하고. 여기 이 멋진 두더지는 성공이 뭐냐는 말에 냉큼 "사랑" 이라고 대답한다. 뭘 좀 아는 녀석이네. 두더지와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내 어깨가 으쓱하다. 여기 이 대답까지 읽고 이 글을 끄적였는데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네. 다른 사람과 내가 똑같아지기를 바라는 것이 헛되고 부질없다는 생각.


"우리가 건사해야 할 아름다움이 아주 많아." 

이 문장에서 건사하다 라는 말이 걸린다. 쉬운 문장을 어렵고 거리가 멀게-작가와 독자 사이- 번역한 것을 보면 신경이 쓰인다. 우리가 "지킬", 아니면 "(보)살필" 이라고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자신에게 친절한 게 최고로 친절한 거야." 이말은 요가철학과 이어진다. '아힘사(ahimsa)'는 산스크리트어로 '비폭력'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비폭력은 외부에 대한 폭력보다는 내부, 자기 자신에게 폭력을 행하지 않는 것에 더 의미가 있다. 이 책을 가볍고 편하게 읽으면서 골똘히 생각해 보면 좋겠다. 그림에 가끔은 색을 입혔지만 선 만으로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이 한 행동과 말을 너끈히 표현해낸다. 그림으로 이야기를 미루어 짐작해보는 것도 즐거워 글이 없어도 그림으로만 읽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그네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올 거야.


살아가면서 느끼는 다정함, 은은함, 편안함, 따뜻함 보다 더 좋은 건 없더라. 어릴 땐 뭔가 특별한 존재로 사랑받고 싶어 불편하게도 무리해 자신을 혹사하곤 했다. 지나고 보니 그게 다 뜬구름이고 구름처럼 포동포동, 바람처럼 살랑살랑, 하늘처럼 푸근푸근하면 그저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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