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별 뜻 없이 쓰는 말과 글을 조금 더 신중히 다듬어야지 하고서는 미루다가 습관대로 말을 뱉고 글을 쏟는다. 수업준비하면서 대충대충 줄기만 잡는데 대본 쓰듯 철저하게 고쳐쓰고 여러 번 읽어야겠다고 다지기만 한다. 배우들이 대본 읽고 외우듯이 내가 하는 것도 다를 바 없다고 나도 그리해야지 하고 생각만 하지. 그러다가 한 두 번은 꼭 말을 버벅거리고 만다.



스무 자도 되지 않는 파편 같은 글자들, 문장을 이루지도 못하는 글자들이 나의 삶을 옥죄어 왔다. 그때 나는 알았다. 전쟁터에서 죽어 가는 모든 군인들은 문장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것을, 사람을 죽이는 것은 총탄도 포탄도 아니었다. 그것은 글이었다.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고 사람들을 죽이는 데에는 한 줄의 글로 족했다. 몇 개의 단어와 숫자, 구두점에 의해 소년들은 병사가 되고, 전장으로 이동하고, 전투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인두처럼 달구어진 총탄에, 차가운 적의 총검에, 고막을 터뜨리는 폭발음에 고통을 느끼지도 못한 채 죽어 갔다.
나는 죽음이 아니라 문장이 두려워 들고 있던 디킨스를 떨어뜨렸다. 바닥에 떨어진 디킨스는 나약해 보였다. "아." 정물처럼 서 있던 어머니 엄지에 붉은 피가 맺혀 있었다. 어머니는 바느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절망 앞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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