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비서들 - 상위 1%의 눈먼 돈 좀 털어먹은 멋진 언니들
카밀 페리 지음, 김고명 옮김 / 북로그컴퍼니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가볍다. 

재밌다는 후기가 많아 기대를 해서 그런가 아니면 내가 나이를 먹어서 인지. 어린 선수들이 읽으면 더 재미있게 읽었겠다. 이상에 가깝고 미쿡이라서 가능할 듯하고 우리나라라면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소설 주요 인물들이 죄다 비서여서 오랜만에 몇 년 전 비서로 일하던 시절이 기억났다. 상사에게 존중받지 못하는-필요하지만 그렇다고 비서를 자기와 동등한 주체로 여기지 않는- 것에 공감한다. 내 첫 번째 상관이 그랬으니까. 비서는 그냥 자기 지위에 걸맞은 도구(?) 쯤으로 여겼다. 자기 목소리를 내면 안되고 있는 듯 없는 듯도 아니고 그냥 없는 듯 없는 듯한 게 좋은 존재였다. 비서 노릇 비슷한 것도 정보 부서 사람들이 죄다 했고 나는 그냥 부속실을 지키며 결재 받으러 오는 사람들을 안내하는 정도가 다였다. 나중에 그 기관장은 결국 비위를 저질러 좌천되었다던가? 옷을 벗었다던가? 그랬다. 


그와 반대로 두 번째 상관은 지나치게 내게 의존(?)해서 자기 아들 예식이 끝난 뒤 감사인사 카드를 일일이 내게 쓰게 할 정도였다. 뭐 이런 것까지 다 시키나 툴툴거리며 문구를 궁리했다. 뭐가 궁금하면 전부 내게 묻고, 재미있는 책도 골라주어야 했다. 그건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 쉬웠지만. 행사 때 발표할 인사말조차 내가 교정해주어야 했다. 그런 건 으레 정보 부서에서 하는 일인데. 내꺼 사는 김에 마트 매대에서 파는 5천원 짜리 페도라 모자를 사줬는데 마음에 들어해 자주 쓰고 다녔다. 5천원 인 줄 몰라서였겠지만. 성격이 너무 불같아서 직원들이 다들 힘들어했다. 물론 나를 가장 힘들게 했지만 우리집 둘째언니 ㅅㅇ 보다 한 수 아래(?)여서 나는 꽤 적응을 잘 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내 상관을 가리킬 때는 남자 ㅅㅇ이라 칭하곤 했다. 내가 두 번째 상관에게 존중받는다고 느낀 것은 내가 계약기간 만료로 계약해지 6개월을 앞둔 즈음 그 상관이 먼저 다른 곳으로 발령받았는데도 내 계약 연장을 상급기관에 세 번이나 요청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이다. 사람 참 성가시게(?) 했지만 그래도 한 인간으로 존중받았다. 


소설 소개글에는 통쾌하다고 평해두었는데 뭐 그렇게 통쾌하다거나 시원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이래도 돼? 하는 의문이 들고 뭔가 시시하고 허술하다. 책을 꺼내며 언니에게 재밌었냐고 물었는데 재밌다고 대답하는 언니 말을 잘 걸러 들었어야 했는데. 아마 읽은 지 오래돼서 잘 기억나지 않았을 거다. 집에 읽을 만한 책도 없고 마침 도서관 휴관일이이서 도서관까지 갔다가 허탕치고 온 내게 재미없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뭐 그래서 건성으로 대답한 듯하다. 


내용이 얕고 가볍고 그다지 통쾌하지 않다. 납득도 잘 안 가고. 인물들이 다들 너무 쉽다. 너무 쉽게 수긍하고 너무 쉽게 일을 벌리고 수습은 하지 않는다. 인물들 편하게 수습이 자동으로 되어주는(?) 전개라 작가가 막연하게 써 내려갔으리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학자금 대출로 피 말리는 압박감을 느껴본 이에게 한줄기 시원한 꿈처럼, '내게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정도로 잠깐 지나가는 위안을 줄 수도 있을랑가. 크라우드 펀딩처럼 좋은 취지로 하는 기부방식을 다양화해 손톱 만큼이라도 부를 재분배한다면 그게 어딘가. 웬만해선 꿈쩍하지 않을 거대한 몸체를 가진 괴물이라 해도 먼지 만큼 작아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힘으로. 얼마가 걸려도, 살아있는 한 내가 죽더라도 또 다른 이들이, 그 뒷세대들이 한 발짝 내딛다 보면 언젠가 작은 생채기라도 낼 수 있겠지. 내게는 시답잖은 소설이지만 그런 희망 하나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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