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일본 제94대 수상으로 菅 直人(かん なおと:간 나오토)가 선출되었다.
간 나오토라 하면 내가 되새기는 건 일본의 AIDS문제.
요즘에는 많은 일본 국민의 인식이 바로잡혔지만 1990년대는 AIDS라 하면 오직 성적접촉만이 감염 경로라고 오해한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당시 성적접촉보다 더 훨씬 심각한 감염 경로가 수혈(輸血)이라는 걸 알았을 때의 충격은 매우 컸다.
나도 병에 걸려 수술을 하여 수혈을 했다면 즉시 AIDS에 감염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말이다.
(일본에서 문제된 건 수혈이라 하기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혈액응고 인자제제)
1980년대 일본에서 주로 혈우병환자에게, 가열방법으로 바이러스를 불활성화하지 않은 혈액응고 인자제제(비가열 혈액제제)을 치료에 사용하여 많은 HIV감염자를 만들어 낸 사건이 있었다.
흔히 “薬害エイズ事件(やくがいえいずじけん: 야쿠가이 에이즈 사건)”이라고 한다.
이 사건에서 논의된 것이, 당시 담당 의사, 제약 회사, 제약 담당 국가관료들이 비가열 제제의 위험성을 미리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였다.
즉 이들이 그 약의 위험성을 미리 알면서도 그걸 환자에게 투여하고, 판매하고, 또 승인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피해자가 그걸 증명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거의 불가능했다.
1996년 厚生大臣(こうせいだいじん:후생대신)에 취임한 간 나오토는 프로젝트 팀을 조직한다.
그래서 당시 관료들이, 절대 없다고 주장하던 행정의 명백한 과오를 증명하는 어느 퇴임 관료의 기록 파일을 찾아내는데 성공하였으며 관료들의 철저한 저항을 무릅쓰고 그 기록파일을 공개하였다.
혈액제제에 의해 AIDS에 감염한 많은 피해자 앞에서 처음으로 행정기관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많은 피해자들 앞에서 土下座(どげざ:도개자 )까지 하여 사죄하는 모습에 많은 피해자가 감동하였다고 한다.
厚生大臣이 되었다고 해도 그가 취임하기 이전 문제는 그에겐 전혀 책임이 없는데 말이다.
(土下座 どげざ:도개자 =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바닥에 대고 사과하는 것. 현대 일본에서 가장 굴욕적인 사죄방법)
그가 土下座 까지 해낸 건 그 이상 관료들이 저항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 사건이 계기로 되여 일본 관료들에게 Accountability(설명의무)의 정신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높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 이후 여러가지 우여곡절은 있었으나, 일본에서 겨우, 정치적 밑천이 없는, 재력의 밑천이 없는, 오직 굳센 의지만이 있는 그런 정치가가 수상으로 되었다.
단, 그가 올해 오키나와 미군 기지 문제에 관해서 보인 태도 즉 국가의 부수상이면서도 “난 그 문제에 관해선 아무 일도 안하고 있습니다(≒나에겐 책임이 없습니다)”, 이 말이 좀 마음에 걸린다.
“아, 다음 수상 자리를 노리는 구나…”
암튼, 이 살벌한 일본에서, 약자를 위한 정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 공평한 정치를 이룩하기를 빌고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