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들 - 히틀러 대 스탈린, 권력 작동의 비밀
리처드 오버리 지음, 조행복 옮김 / 교양인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독재자들]을 읽으려고 시도했던 것은 아마 책이 출간된 직후부터였을 것입니다. 도서관에서도 여러 차례 빌렸었고, 꼭 읽어봐야지 했던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읽지 못하다가, 작년에 책을 구매하고 올해 초에 책을 읽기 시작해서, 비로소 다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히틀러와 스탈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편으로는 독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독일의 제 3제국 체제와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의 비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20세기 이래로 지구상에 존재했던 모든 독재자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만화경 같은 구실도 합니다. 


꽤나 두꺼운 책이지만, 읽기에 부담스럽지는 않습니다. 의외로 술술 넘어가는 측면이 있습니다. 책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연대기 순이 아니라 주제 순입니다. 실은, 독소전쟁의 이야기를 기대한 측면도 있습니다. 전쟁사에는 문외한인 편이어서 이 책을 통해 2차 세계대전의 공방을 결정지은 독소전쟁의 대략이 나와있을까 생각했지만, 책은 양 독재 체제를 주제에 따라 비교하는 그런 구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두 독재 체제를 가장 잘 대조한 것은, 독일의 제 3제국은 독일의 민족적 정체성을 가장 우선순위에 둔 일사불란한 독재 체제였고, 소련의 공산 국가는 인류의 진보를 위한 이상을 가졌지만 그것을 구현할 만한 역량이 발현될 기회도 실천 의지도 박약했던 독재 체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독재 체제가 처했던 배경과도 관련이 있겠지요. 독일은 어쨌든, 1871년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급격한 공업 발전과 함께 군국주의적인 체제를 확고하게 구축한 국가입니다. 소련은, 그 공업 생산력이 세계 다섯 손가락에 들긴 했지만, 기본적인 체제는 농노 제도가 운영되는 지역이 광범위하게 남아 있었던 봉건 전제 국가이면서 농업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던 국가입니다. 두 독재 체제가 왜 하필이면 독일과 소련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참 알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두 독재 체제 모두 당 우선의 정치 질서를 구축하였고, 국민 전체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하나의 행동으로 움직여지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을 책에서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전체주의적'이란 말은 두 정당이 '절대적인' 정당이라거나 모든 것을 포괄하거나 완전한 권력을 휘두른다는 뜻이 아니다. 그 용어는 두 정당이 자신들이 활동하는 사회의 '전체성(totality)'에 관심을 가졌다는 의미다. 이러한 협의의 의미에서 볼 때 두 운동은 진정 전체주의적 열망을 품었으며, 결코 단순한 의회 정당이 아니었다. (268쪽) 

그리고 독일이 훨씬 강력한 전체 체제를 구축하였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죠. 그것이 제 2차 세계대전에 임하는 독일과 소련의 위치를 결정한 것이기도 하겠습니다. 



참 의아한 것은, 어떻게 두 독재 체제의 전체성 지향이 국민들에게 먹혔는가라는 부분입니다. 두 독재 체제 모두 유토피아적 국가 수립의 이상향을 국민들에게 지속적으로 제시하면서, 체제에 방해가 되는 존재에 대한 배제를 함께 구사하고 있습니다. 1936년부터 1938년에 걸친 소련의 숙청과 함께, 체제 수립 후에 지속적으로 유태인들에 대한 배제를 실시하는 독일의 경우에서 그러한 부분을 잘 볼 수 있습니다. 독재자 개인에 대한 숭배도 강화됩니다. 배제를 통해 반대의 목소리를 사회에서 제거해 나가면서 사회의 전체성을 강화하는 것. 두 국가는 점차 전체성을 강화하면서 독재 체제를 지속해 나갑니다. 


이 부분에서 현대의 독재 체제가 용인되는 메커니즘을 볼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두 경우에서 독재 체제의 정당성을 입증한 것은 주관적 요인(예를 들면 강한 인간들의 포부)이 아니라 자연과 역사의 객관적인 법칙이었다. 그 결과, 도덕적 전치가 발생하여 정권과 그 대리인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에서 해방되었다. 두 체제는 인간의 변덕이 아니라 생물학적 필연이나 역사적 필연이 새로운 도덕 질서를 낳고 인간의 행위를 지배했다고 주장할 수 있었고 또 실제로 그렇게 주장했다. 그러한 역사적 힘은 스탈린이 '진정한 지식'과 '객관적 진리'라고 부른 것이나 히틀러가 '준엄하고 엄정한 자연 법칙'이라고 기술한 것의 원천이었다. 두 독재자는 자신들의 체제가 역사적 우연이라는 생각을 거부했고, 이 점에서 그 시대에는 '옳았다'. (397쪽)

배제에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도덕적 문제가 이런 방식으로 정당화되고 합리화되면서, 독재 체제의 모든 비인간적인 행위가 눈 감아지는 것이겠죠. 이 지점에서 '구국의 결단'이라는 키워드가 오버랩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 합니다. 


그러면서 법치주의라는 키워드도, 국가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의미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일탈한 개인으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하려는 키워드로 작동합니다. (435쪽) 그러면서 더 높은 정의 - 독일은 아리아 민족의 이상향 건설, 소련은 모든 인민을 위한 유토피아 건설 - 아래에서 모든 행위가 정당화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책은 두 독재 체제가 드러낸 공통점을 계속 지적하는 것으로써, 결국은 두 체제의 동일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독재 체제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역자 후기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독재 체제를 가깝게 살아간 놀라운 경험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 우리나라나 북한에서 - 우리로써는 의미있게 읽어볼만한 책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족을 달자면, 총 14장 9백여쪽의 분량에서 4분의 3 정도 오는 시점부터 가독성이 떨어지는 느낌을 강력하게 받았습니다. 책이 잘 안 읽혀지더군요. 그 부분부터는 조금 힘들게 책을 읽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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