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서울
최종현.김창희 지음 / 동하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서울이라는 공간은 우리나라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꽤나 의미있는 공간입니다. 일단 수도이고, 그 이상으로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역사가 밀집해 있는 공간입니다. 과연 서울이 한반도에서 의미있는 공간이 된 것은 언제인가요. 백제의 온조왕이 수도를 정한 AD 18년? 혹은 조선의 태조가 경복궁을 법궁으로 정하고 천도한 1394년? 책의 시작은 서울의 지금의 서울과 시공간적으로 연결을 시작하는 바로 그 시기를 밝히는 것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책의 첫 1부는 마치 심도있는 답사기와 같은 모양새를 보여줍니다. 고지도를 들여다보고, 사료를 꼼꼼하게 복기하여, 그 길을 하나하나 차근차근히 걸어보는 것으로 서울의 시작을 반추합니다. 아니, 어찌보면 답사기를 넘어서는, 시공간을 복원하여 제시하는 듯한 입체감을 줍니다. 가장 인상깊은 부분은 남경역의 위치를 추론하는 장면과, 남경역에서 남경행궁으로 들어가는 길을 추론해내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은, 그 발자취를 뒤돌아보면 어디론가 사라져 온 길을 찾을 수 없는 곳입니다. 켜켜이 더께어 앉은 세월의 두께는 깊고 두꺼우나, 도대체 무엇이 앉아있는지는 알 수 없는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요즘 장안의 화제인 '꽃보다 할배'를 보면서 감동했던 부분이 있습니다. '할배'들과 '짐꾼'이 찾은 프랑스의 국경도시 스트라스부르, 그 곳의 거대한 시간과 공간을 점유해온 노트르담 성당의 입지를 보면서, 지금과 옛날이 그렇게 한 공간에 이질감없이 어울리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스트라스부르의 노트르담 성당 만큼이나 오랜 세월을 지내온 서울의 옛날이 과연 지금과 어떻게 어울리고 있는지를 생각해본다면... 서울의 옛날은 마치 거대한 콘크리트의 물결 속에 외로이 서 있는 하나의 섬 같은 그런 입지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어색함 속에서, 옛것은 망가지고 묻히고 닳아서 그 위에 아주 다른 새것이 또 얹어지고, 그것이 다시 망가지고 묻히고 닳으면 아주 다른 새것이 또다시 오고... 서울의 역사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저자들은, 망가지지 않고 묻히지 않고 닳지 않은 고지도와 고문서를 가지고, 이제는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서울의 예전을 다시 우리의 일상으로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도시가, 서울이라는 오랜 삶의 터전이, 그 시공간적인 역사성을 가지려면, 지나간 것을 지금의 것에 연결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이 책은 강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저자들은 정말 큰 노력을 했고, 그것은 서울을 살아가고 있는 독자의 마음을 공명시켰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1부의 노정을 통해 현재의 서울에 역사적 시간을 둘러얹었다면, 2부와 3부에서는 그 중에서도 '서촌'에 주목하여 그 공간 위에 역사적 시간을 얹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안타까왔던 것은, 인왕산의 품에 넉넉히 안겨 조선의 법궁 경복궁을 내려 섬기며 지내온 '서촌'의 역사적 시공간성이, 이제 어떻게 망가지고 묻히고 닳아 없어진 후 무언가 아주 다른 새것이 얹어지게될지, 그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다가온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이전부터 북촌의 공간이 어떻게 과거와 분절되고 있는지를 익히 들어온터라, 적어도 서촌의 공간은 시공간적 과거가 현재와 어울릴 수 있는 방식으로 성숙하기를 막연하게나마 바라고 있었습니다. 책의 2부와 3부에서 저자들은 왕족의 공간으로, 벌열의 공간으로, 중인들의 공간으로, 그 공간적 연속성을 지켜온 서촌에 대해 언급하다가, '팔지 말아야 할 것'을 팔아버리고 '살 수 없는 것'을 산 몇몇 친일 인물들에 의해서 연속성을 훼손당한 이후로 계속 그 단절이 심화되어 가는 것을 안타까와하는 마음을 가득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자들의 고민은 과연 서촌이 북촌의 전철을 밟게 되지 않을까라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자들은 2부에서 서촌에서 바라본 인왕산, (폐허의) 경복궁 등을 배경으로 하는 다양한 그림들 - 특히 겸재 정선 - 의 시선을 좇으면서 서촌이 가지고 있는 고즈넉한 매력을 엄밀하게 고증하고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왕족이, 벌열 양반이, 중인들이 이 곳에 터잡고 산과 내를 벗삼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인왕산과의 어울림은, 결국 일제 시대에 모두 단절되고 맙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속상한 부분은, 인왕산에서 흘러나와 청계천으로 들었을 시내가 일제시대를 지나면서 모두 복개되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옛것과의 단절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자연경계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소유하려는 탐욕이 그것을 심화하였으며, 이제 서촌은 옛것의 흔적을 찾으려면 고지도를 뒤지고, 폐쇄 등기부등본을 탐색하고, 발품을 팔고 경치를 내리보면서 공부해야 찾을 수 있는 그런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조금만 더 지나면 공부해도 찾을 수 없는 그런 공간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개발과 보존의 명제는 항상 대척점에 서서 양자택일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에게 철학이 부재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이 책은, 서촌을 탐사하면서 독자에게, 과연 '너의 철학은 무엇이냐'라고 되묻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리라 여깁니다. 책을 읽기 전, 북촌이 과거와 분절되어간다는 정도의 막연한 인식만 가지고 있던 제게, 이 책은 옛것과의 어울림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그런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서울은 매력적인 공간입니다. 아이를 낳고, 아이들과 서울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천만 인구가 사는, 활기와 생기가 넘치는 현대적인 공간인 서울을 가득 느낄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옛 공간을 찾아다니는 길은 망망대해를 헤엄치다가 외따로이 서있는 고도(島)에 정박한다는 느낌을 늘상 받아왔습니다. 이 책은 서울의 옛 모습을 저자들의 노력으로 현재에 얹음으로써, 지금의 서울에서 옛날을 오버랩할 수 있는, 그래서 서울의 의미를 중층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 단초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늘상 학교를 오고가며 지나쳐 온 '대광고등학교'가 이제는 고려시대 남경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맞이하던 '남경역'으로 그 의의를 확장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이번에는 서촌이지만, 저자들은 서울의 곳곳을 둘러볼 의지를 책의 머리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서울을 발딛고 사는 처지에, 서울의 시공간적 역사성을 체화할 수 있는 또다른 기회가 저자들에 의해서 계속 만들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저자들의 에필로그처럼, 3부의 말미에는 서촌을 살아낸 인물 쪽에 치우친 감이 있습니다. 그래도 덕택에 윤동주 시인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