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에 반대한다 - 왜 우리는 이기기 위한 경주에 삶을 낭비하는가?
알피 콘 지음, 이영노 옮김 / 산눈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사다 둔지는 근 3여년쯤 되는 듯 합니다. 실은 이러저러한 책들을 한 달에 서너권 사는 편인데, 요즈음은 독서 말고도 할 짓(!)이 많은 터라, 웹서핑하고 운동경기 보고 애들 데리고 여기저기 쏘다니다보면 한 달에 한 권도 제대로 읽지 못하곤 합니다. 그러다보니 책이 쌓여가는데, 그런 책들 중에서도 조금 쉽고 간편한 것들을 선호하다보니, 이 책 [경쟁에 반대한다]는 근 3년이나 묵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여 동안 질질 끌다가 드디어 독서를 끝낸 지금, - 책을 잡을 때는 무직이었는데, 읽기 시작하자마자 일을 하게 되어서 독서 진도가 아주 더뎠네요 - 교사라면 그리고 부모라면, 이 책을 꼭 읽어봐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경쟁에 반대하기 위해서입니다. 적어도 지금 이 사회는 경쟁을 장려하는, 아니 그보다도 경쟁이 사회 구성의 필수 불가결 요소인 것인양 강조되고 그것이 사회화라는 명목으로 받아들여지도록 교육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것은 마치 전체주의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 것처럼 여겨집니다. 경쟁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는 비겁이요 무능이며 회피로 받아들여지는 현실. 우리는 다양성을 이야기하지만 경쟁의 반대항으로써의 협력과 공존에 대해서는 다양성이 아니라 열등함이라고 낙인찍는 모습을 바꾸기 위해서도 경쟁에 반대해야 합니다.

이것은 어찌보면 선언적 의사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경쟁이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현실과 현상에 대한 선언적인 비토인 것이죠. 만약에 우리 사회가 경쟁과 협력을 같은 위치에서 용인하고 경쟁 만큼이나 협력을 존중할 수 있는 사회라면 굳이 이런 책은 필요없을지도 모릅니다만 우리 사회는 경쟁에서의 승리를 인생 과정에서의 당연한 연결선으로 보는 시선들이 반대 없이 수용되는 사회라... [경쟁에 반대한다] 같은 어마어마한 제목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읽는데 가지는 어려움은, 경쟁에 반대한다, 같은 어마어마한 제목 속에, 그를 뒷받침해줄만한 논거나 자료, 혹은 대안이 빈약한 경우가 많고, 동어반복적인 내용으로 일관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견하게 되는 경우를 들 수 있겠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책은 방대한 참고자료를 인용하면서 저자의 논지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300여쪽의 내용에 각주 및 참고자료목록만 60여 페이지에 달하는 - 물론 외국 자료라 우리에게 그다지 효용성 있게 다가오는 자료는 아니지만 - 저자의 폭넓음은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메모하면서 독자로써의 저의 생각을 다시 한 번 살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비교하여, 요즘 같이 읽고 있는 책 중에 [나 홀로 볼링]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회적 자본'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쓰여진 두툼한 두께의 책으로써, 책의 저자는 다양한 통계 자료를 통해 현재 미국 사회의 사회적 커뮤니티가 점차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통계 자료는, 확실하게 저자의 생각을 구축해주고 있긴 하지만, 책의 분량 중 3분의 1이 넘는 통계 자료의 분석은 저자의 꼼꼼함이 과하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들기도 합니다. [경쟁에 반대한다]의 경우에는 협력 학습에 대한 최신의 다양한 자료를 인용하며 자신의 논지를 구축하는 것이 과하지 않고 적절한 양을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경쟁의 반대항으로써의 협력이 아니라, 협력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내내 강조하면서도 그에 대한 실제적 대안의 마련은 읽는 독자에게 넘기고 있는 측면이 있겠습니다. 한편으로는 대안의 마련이 어려우리라 생각하지 않는 바는 아닙니다. 막상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지금 학생들과 수업하고 있는 제 수업을 돌이켜 생각해 볼 때, 저 또한 배려와 나눔이 수업 양상에서도 구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믿고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실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실천적 방안의 마련에서는 높다란 벽에 부닥치게 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교사로서 가르쳐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학생들이 '제대로' 배웠는지에 대한 의심이 사그라들지 않는 한, 제 수업 속에서 배려와 나눔이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결국 경쟁 사회라는 구조 속에 살고 있다는 우리의 뿌리 깊고 변하기 힘든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협력 학습에 대한 어떤 시스템을 도입하더라도 결국 더 잘 경쟁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될 것이 분명합니다. 즉, 이 책을 읽으면서도, 협력을, 더 나은 경쟁을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써 자연스럽게 인지하고 있는 저를 보면서, 경쟁에 반대한다는 것이, 경쟁의 반대항으로써가 아닌 그 자체로써의 협력을 강조하고 그것을 하나의 구조로써 받아들이게 하고 당위성을 부여한다는 것이 얼마나 요원한 길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교사나 학부모가 - 혹은 교사이자 학부모인 저 같은 이가 - 읽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합니다. 적어도 경쟁에서의 승리가 유일선이라는 확고한 인식에 작은 균열이라도 내기 위해서는, 경쟁에서의 승리말고도, 나눔과 배려를 통해 모두 함께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과 경험이 이곳 저곳에서 일어날 필요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우리 아이가 뒤쳐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경쟁에서의 승리는, 이 책의 저자가 이야기하는대로, 극소수만이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가 경쟁에 뛰어든다고 해서 반드시 승리한다는 보장은 없는 것입니다. 누가 한결같이 경쟁에서 승리해서 정상에 설 수 있겠습니까. 1등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실패자가 되는 사회에서, 다만 우리 아이가 승리하기 위한 경쟁의 굴레를 못견뎌한다면, 그것을 저까지 강요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 저자도 인정하지만, 어느 시점에서 이 사회는 사회 구성체인 개인에게 경쟁을 강제합니다. 그것에 이르기 전까지라도 협력을 배우고 함께 성취하는 기쁨을 누리게 한다면, 적어도 이 책을 읽은 부모와 교사에게서 배려와 나눔의 행복을 배우는 자녀들과 학생들이 하나 둘 씩 늘어나지 않을까, 라는 것이 '경쟁에 반대한다!'라는 선언 뒤에 숨겨진 저자의 의도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이 책의 (나름대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밑줄쳐 두었습니다. 

73쪽. 교실이 경쟁의 장이 된다면 아이들은 오히려 잘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칠 것이다. 확실히 교사의 입장에서 보면 학생들의 주의를 끌고,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경쟁적인 게임으로... 그러나 이런 방법의 실질적인 매력은 더 쉽게 가르치는데 있지, 더 효과저으로 배우도록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즉, 가르치는 방법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라 회피책이다.
... 이러한 게임이 평소의 지루한 수업을 대신했기 때문에 - 게임에 경쟁적 성향이 있어서가 아니라 - 아이들이 흥미를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78쪽. ... 7세에서 11세... 소녀들... 콜라주 작품... 몇 명은 상을 타기 위해 경쟁하도록 했고, 몇몇에겐 보상이 전혀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7명의 예술가에게... 평가하게... "상을 위해 경쟁하다록 한 실험 그룹... 독창성이 현저히 떨어졌다." 경쟁하도록 유도된 아이들의 작품은 자발성, 복합성, 다양성 면에서 부족함이 드러났다... 경연이라는 제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라운드가 진행될 수록 참가자들의 정서는 메마르며, 쇼팽의 연주곡을 위한 감수성은 경연에 별 필요가 없어진다." 
->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이 생각났네요.

80쪽. 왜 경쟁이 일반적으로 최상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가를 이해하려면 '잘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남을 이기려고 애쓰는 것이 전혀 다른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선생님의 주의를 끌려고 애쓰면서 손을 들고 "저요! 저요!"를 외치는 아이를 생각해보자. 결국 아이는 지목받았으나 얼이 좀 빠진 것 같다. 아이는 "근데 문제가 뭐였죠?" 라고 다시 묻는다 아이는 다른 친구들을 이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차서 문제에 대한 집중력을 잃었던 것이다. 
... 우수하다는 것과 승리한다는 것은 다른 '개념'일 뿐만 아니라 전혀 다른 '경험'이라고 말하고 싶다. 
-> 실제 학교에서 이런 경우를 '종종' 겪게 됩니다.

88쪽. 타인이 나를 의지하고 있음을 깨닫는 책임감은 협력을 가능케 하며, 그 어떤 외적 보상보다 더 큰 성과를 이루게 한다. 

91쪽. ... 협력하는 집단이 더 높은 생산성을 올리는 또 하나의 이유를 불안감의 감소라고 지적했다. 

91쪽. "실패를 피하려는 경향은... 성취 지향적인 행동을 억제하는 작용을 한다."

102쪽. 우리는 대부분 '희소성'을 재화 공급이 부족하다는 의미로 생각한다. 즉 어떤 물건(상품)이 모두가 사용할 만큼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충분하다는 말이 정확히 얼마 만큼인지 명백히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 지구상에는 모든 인류가 먹고도 남을 정도의 식량이 있다는 것이다. 토지와 재생 가능한 에너지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 중요한 문제는 왜 생필품들의 분배가 이토록 불균형한지의 대한 것이다. 예를 들어 세계 인구의 5%를 차지하는 미국이 왜 지구 자원의 40%를 소비하는가? 희소성이나 부족함의 문제는 다시 살펴보면 분배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주류 경제학자들은 분배 문제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어떤 시스템이 생산적인가, 혹은 효율적인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누구를 위한 것이냐?"고 물어야 한다. 높은 국민총생산을 달성한다고 해도 누가 그 재화들을 차지하느냐에 대해선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특정 개인이나 국가에 재화가 부족하다면 우리는 다른 누군가가 너무 많이 갖고 있지 않은지를 물어야 한다. 


211쪽. 예를 들어 학교에서 잘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해 우리가 어떤 판단을 내리는지 살펴보자. 우리는 그 원인이 그저 아이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거나, 학교 선생들이 열심히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이중적인 교육제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유능한 교사와 부유한 학생들은 모두 사교육 시장으로 흡수되고, 공립학교에 그대로 남아 있는 아이들은 좋은 교육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한다. 학습에 대한 평가가 왜 모두 똑같은 시험을 봐서 점수를 매기는 것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왜 비판적 사고보다 무조건적인 복종이 가치 있는 것으로 가르쳐지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수동적이고 복종적인 인간을 길러내는 학교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우리는 비판하지 않는다. 

이것은 빈곤, 범죄 등 대부분의 사회문제에 적용되는 이야기다. 


213쪽. 어떤 스포츠 심리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운동선수이든 일반인이든 스포츠에 대해 말할 때엔 그 외의 기준보다 더 낮은 수준의 도덕성을 적용했다. 이 결과는 경쟁을 할 때엔 평균적인 도덕적 규범이 사라지고, 그보다 낮은 자기중심적 도덕관이 자리 잡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조사들이 나타내는 것은 경쟁이 매우 낮은 수준의 도덕성을 초래한다는 사실이다. 


223쪽. ... 성공과 승리(경쟁)의 개념을 혼동... 최근의 한 실험에서도 '남들 보다 내가 더 잘할 때 행복하다.', 혹은 '경쟁에서의 승리는 협력에서 얻는 보상보다 더 만족스럽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성공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런 조사 과정의 문제점이 의미하는 것은 여성들이 피하려 하는 것은 타인을 패배시키는 것이지 성공 그 자체는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251-2쪽. 현재의 구조를 존속시키는 많은 특징들과 마찬가지로 경쟁 역시 사회의 취약 계층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많은 연봉과 품위 있는 생활과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제도적으로 박탈당한 사람들은 오히려 경쟁이 해롭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들은 "나의 유일한 희망은 경쟁에 참여하여 다른 사람들을 패배시키고 올라서는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억압받는 사람들이 이러한 반응을 보인다면 가장 기뻐할 사람들은 권력과 힘을 가진 이들이다. 왜냐하면 이 방법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 거의 분명하고,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승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다음번에도 이길 수 있는 유리한 고지에 올라서 있다. 에드거 프리덴버그는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분배의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전형적인 방법이 바로 경쟁이다. 경쟁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똑같은 규칙이 적용되는데, 일괄적으로 규칙을 적용함으로써 사회의 지위 체제는 보호받을 수 있으며, 정당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사회 구성원은 스스로를 승자와 패자로 구분하며, 패자들도 승리하지 못한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를테면 초등학생과 대학생의 경기에 똑같은 규칙을 적용하고 공정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상대방의 출발점은 저 앞에 있는데, 결승선만 같다고 해서 공정한 게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아주 가끔 이러한 경주에서 이기는 사람들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는 경쟁에서 승리하면 이렇게 대우받을 수 있다고 요란하게 선전하는 데 이용된다. 그리고 이 선전의 효과는 매우 커서 사회적 약자들에게 구조를 바꾸기 보다는 다음엔 승리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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