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 - 환경과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유전체에 관한 행동 후성유전학의 놀라운 발견
데이비드 무어 지음, 정지인 옮김 / 아몬드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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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유전자 결정론적인 관점에서 발달을 이해하는 모습입니다. 타고난 유전자가 이미 우리가 살아가며 이루는 성취를 이미 다 결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탁월한 성적을 거두는 이유는, 부모에게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라는 것 같은. 간혹, 부모의 사회적 지위에 비해 자녀의 성취가 저조할 경우 또한, 가진 유전자가 탁월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빛을 볼 것이다, 와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됩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셈입니다. 성취가 탁월하든 저조하든, 모든 것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자면, 개인이 뭔가를 할 여지는 없어보입니다. 이미 유전적으로 다 결정이 되어 있는데, 노력은 해서 무엇할 것이며, 자기계발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물론, 자신의 유전적 가능성을 알 수 없으니 일단 뭔가를 해 봐야겠지만, 부모를 살펴보고, 뭔가를 조금 해 본 다음에,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뭔가를 이루기 위해 달려가기를 멈출 뿐입니다.


난 재능을 물려받지 못했는걸.



후성유전학은 조금 다른 관점에서 유전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가령 이런 것입니다.


아무리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우리 염기서열 속에 잠들어 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스위치를 켜는 것. 그래서 잠든 유전자를 깨워서 내 속에서 발현되게 하는 것.


이렇게보자면, 유전적 요인 만큼이나 환경적 요인도 중요해 보입니다.



더 나아가서 후성유전학은, 우리가 쌓은 경험이 염기서열 속에 자리잡아 자손에게 유전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전적 결정론에 비하면, 우리가 처한 환경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는 셈입니다.


이 책은, 후성유전학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사례와 함께, 우리가 가진 유전적 요인을 발현시키기 위해 그 만큼의 경험과 자극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차근차근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이 무엇보다 좋은 것은, 여타의 책들이 첫머리를 읽고 나면 계속 주장의 동어반복일 뿐인 반면에, 조금씩 조금씩 후성유전학에 대한 이야기를 진전시키고 있다는 점이며, 따라서 사례도 다채롭고 다양하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시점 쯤 되면 시시하고 지루해질만도 한데, 독서의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라고 여겨집니다.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자녀 혹은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제공하기 위해 고민할 여지가 더더욱 생긴다는 점입니다.



후성유전학은, 탁월한 성취를 드러낸 부모 아래 자녀가, 그만큼의 성취를 거두지 못하는 상황을, 유전자 결정론적 관점보다 더 설득력 있게 설명합니다.


우리는 어떤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는지 알 수 없습니다. 물론, 유전학의 발달과 함께 유전자 염기서열이 해독되고 있으며, 개중 어떤 것은 이미 어떤 현상의 원인임이 알려진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우리가 어떤 유전자를 가졌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스위치 온'을 하기 위해 다양한 자극과 경험을 투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의 탁월함에 미치지 못하는 자녀에게, 부모가 물려준 유전자를 발현시키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환경과 경험이 필요한 셈입니다.


더 나아가, 부모와 자녀가 가진 유전적 요인이, 부모에게서도, 자녀에게서도 발현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부모가 물려주었으나, 부모도, 자녀도 이를 '스위치 온' 시킬 환경과 경험과 자극에 놓이지 않아 여전히 유전자 속에 묻혀 있는 것을 끄집어 낼 무언가를 자녀와 학생들에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후성유전학은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는 셈입니다.


더더 나아가, 내 경험을 나의 유전자에 새겨 내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다면, 더 나은 경험을 위해 더 좋은 환경과 자극에 대한 고민도 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은, 유전자 결정론으로 설명하던 성장과 발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다양한 사례와 근거를 통해 새로운 유전적 이론을 정립하는 책입니다.


개인적으로 2023년도 최고의 독서가 되었다 생각하고 있으며, 앞으로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좋은 환경과 경험과 자극을 위해 고민해 볼 생각입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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