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 훤칠한 키에 조그마한 얼굴, 남다른 패션 감각과 부드러운 인상의 남자.
일주일에 한 번, 그와의 데이트는 고교 시절 풋풋한 교생 선생님과의 추억을 연상시키는 설렘이 있다.
'예술하는 남자는 성격이 괴팍하다'
'전공이 음악인 남자는 예민과 까칠의 극치'
뭐 요런 편견과 통념을 와장창 깨뜨린 남자.
하지만 세상에 이런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밖에 없다는 믿음을 주는 남자라고나 할까.
바로 나의 바이올린쌤이다.
늘 밝고 긍정적이며 솔직하고 당당하다.
유머 있고 재치가 넘치며 예의 바르고, 친절하며 사업수완도 뛰어나고 모든 일에 적극적이다.
뭐 이런 엄친남이!
화요일 오후의 렛슨은 그 덕분에 은혜로움 그 자체다.
음악을 즐기고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이 여유와 사치를 대변하던 시대도 있었지만, 이제는 개인의 취미이자 인생을 즐기는 한 방편이 되고 있다.
나 또한 지루한 일상에,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만 하는 것에서 벗어나 직접 감각으로 느끼고 싶어서 선택한 악기가 바이올린이다.
날카롭고 예민하기만 한 그 선율 때문에, 같이 예민해지지 않으면 사실 쉽지 않은 게 바이올린인 건 맞는 말 같다.
심호흡 한 번 하고 자세 잡으면 바로 연주할 수 있는 악기도 아닐뿐더러, 온몸이 각자가 맡은 역할을 충분히 견지하고 스텐바이하고 있어야 하는 참 까탈스런 그것이다.
턱으로 본체를 고정하여 중심을 잡고 왼팔과 왼손가락은 힘을 빼되 정확히 제 음을 짚어야 하고, 오른팔과 어깨는 뒤로 빠지지 않게 자신의 각을 인지하면서 오른손 역시 힘을 빼고 현에 얹은 활에 검지로 강약을 조절한다.
거기에, 내 몸 주변으로 충분한 동선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 절차다.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편차도 심하고, 의욕이 앞서서도 안 되며, 하루 이틀만 연습을 걸러도 바로 티를 내는 참으로 치사한? 악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런 민감함과 도도함을 지닌 이 악기가 난 왜 이렇게 좋은 걸까.
우리 인생과 똑 닮아서인가.
스스로 깨칠 수 없는 인생의 속성과 너무도 닮았다.
의욕 하나만으로 이룰 수 없고, 시간과 노력과 경험과 어려움과 방향과 지식과 비교와 비전과 습관의 관성과 기타등등 기타등등...
그 중 하나만 어그러져도 제 음을 내기 어려운 그 속성이.
렛슨 도중에 많은 잡담도 주고받는다.
사업 이야기, 아이들 교육 이야기, 이성관에 대한 이야기...
끝도 없이 주고받다가 정작 렛슨은 뒷전일 때도 잦다.
하지만 그런 잡담도 나에겐 렛슨의 일부분이다.
말이 통하고 죽이 잘 맞아서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에 때론 친구라는 관계를 덤으로 얹은 것 같다.
오늘도 끝활, 중간활, 시작활의 포지션 연습을 하다가 어느새 쌩 둥 맞게도 유학과 여행이라는 주제로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주고받는 경지에 이르렀기에...푸히히~
사랑스런 악기로,
아름다운 선율을,
멋진 사람에게 배우는
꿈같이 황홀한 나의 화요일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