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전야의 고요 같은 아침.

잔잔하기만 하다고 그것이 행복이나 안정은 아니다. 곧이어 들이닥칠 폭풍이 있으니.

돌아보면 안정을 안정대로 느껴 본 적은 있었나.

쫓기듯 산발적으로 느껴지는 감정들을 늘어놓고 분류작업이라도 해서 같은 감정끼리 모아 보면 가능할까.

언제부턴가 내가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 그것의 진위가 의심스러워졌다.

일상의 즐거움에 왜 불안한 그림자를 감지하고 있어야 하는지.

그것은 불행할 때 앞으로 행복해질 날이 올 것을 믿는 것과는 다르다.

이미 나의 감정은 감정을 넘어서 감각화되어 있다.

흔들리는 바람 앞에선 촛불과도 같은 불안감은 일상의 작은 행복도 허용하질 않는다.

쫓기듯 웃고 쫓기듯 읽고.

여유라는 말이 나이에서 오는 지, 수양에서 오는 지, 나이던 수양이던 채우지 못한 게 확실하다.

나의 목구멍과 식도는 아직도 공황의 상태로, 다가올 미래를 견지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감정의 감각화 현상이 아닐까 싶다.

태곳적에 채워야 할 감정들의 결핍이 유치한 것에 집착하는 편집을 낳고, 제때 소유하지 못한 미련과 집착이 하나의 죄의식으로 나타나는 걸까.

이젠 그 불안함의 근거에도 다소 저항할 힘은 생긴 것 같은데

습관보다도 무서운 감각화란 놈은 어찌 당할 수가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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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그립다
아픔이 깊어 더 한 아픔에 늘 무디기만 한 네가
상처를 달고도 제 살과 상처를 구분 못 하는 네가
사거리 모퉁이에 박아두고
떠 오를 때 마다 그렸던 너는 내가 아는 네가 맞는지
미련한 선택만이 네 것이라고
그렇게 너는 아픔을 가져갔다
하지만
그리움도 아픔도 제 몫이 있는 걸까
네가 가져간 아픔만큼
오늘은
내가 그리움에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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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훤칠한 키에 조그마한 얼굴, 남다른 패션 감각과 부드러운 인상의 남자.
일주일에 한 번, 그와의 데이트는 고교 시절 풋풋한 교생 선생님과의 추억을 연상시키는 설렘이 있다.
'예술하는 남자는 성격이 괴팍하다'
'전공이 음악인 남자는 예민과 까칠의 극치'
뭐 요런 편견과 통념을 와장창 깨뜨린 남자.
하지만 세상에 이런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밖에 없다는 믿음을 주는 남자라고나 할까.
바로 나의 바이올린쌤이다.
늘 밝고 긍정적이며 솔직하고 당당하다.
유머 있고 재치가 넘치며 예의 바르고, 친절하며 사업수완도 뛰어나고 모든 일에 적극적이다.
뭐 이런 엄친남이!
화요일 오후의 렛슨은 그 덕분에 은혜로움 그 자체다.
음악을 즐기고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이 여유와 사치를 대변하던 시대도 있었지만, 이제는 개인의 취미이자 인생을 즐기는 한 방편이 되고 있다.
나 또한 지루한 일상에,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만 하는 것에서 벗어나 직접 감각으로 느끼고 싶어서 선택한 악기가 바이올린이다.
날카롭고 예민하기만 한 그 선율 때문에, 같이 예민해지지 않으면 사실 쉽지 않은 게 바이올린인 건 맞는 말 같다.
심호흡 한 번 하고 자세 잡으면 바로 연주할 수 있는 악기도 아닐뿐더러, 온몸이 각자가 맡은 역할을 충분히 견지하고 스텐바이하고 있어야 하는 참 까탈스런 그것이다.
턱으로 본체를 고정하여 중심을 잡고 왼팔과 왼손가락은 힘을 빼되 정확히 제 음을 짚어야 하고, 오른팔과 어깨는 뒤로 빠지지 않게 자신의 각을 인지하면서 오른손 역시 힘을 빼고 현에 얹은 활에 검지로 강약을 조절한다.
거기에, 내 몸 주변으로 충분한 동선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 절차다.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편차도 심하고, 의욕이 앞서서도 안 되며, 하루 이틀만 연습을 걸러도 바로 티를 내는 참으로 치사한? 악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런 민감함과 도도함을 지닌 이 악기가 난 왜 이렇게 좋은 걸까.
우리 인생과 똑 닮아서인가.
스스로 깨칠 수 없는 인생의 속성과 너무도 닮았다.
의욕 하나만으로 이룰 수 없고, 시간과 노력과 경험과 어려움과 방향과 지식과 비교와 비전과 습관의 관성과 기타등등 기타등등...
그 중 하나만 어그러져도 제 음을 내기 어려운 그 속성이.
렛슨 도중에 많은 잡담도 주고받는다.
사업 이야기, 아이들 교육 이야기, 이성관에 대한 이야기...
끝도 없이 주고받다가 정작 렛슨은 뒷전일 때도 잦다. 
하지만 그런 잡담도 나에겐 렛슨의 일부분이다.
말이 통하고 죽이 잘 맞아서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에 때론 친구라는 관계를 덤으로 얹은 것 같다.
오늘도 끝활, 중간활, 시작활의 포지션 연습을 하다가 어느새 쌩 둥 맞게도 유학과 여행이라는 주제로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주고받는 경지에 이르렀기에...푸히히~

사랑스런 악기로,
아름다운 선율을,
멋진 사람에게 배우는
꿈같이 황홀한 나의 화요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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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려 하지 않아서 잊혀지지 않는 게 아니에요

눈물이 가려

기억이 남은 줄 몰랐어요

오래된 자국을 이젠 어쩔 수 없네요

그냥 이렇게 놔두면 안 될까요

지지리도 못난 몰골

오른뺨은 퀭하고 어깨는 삐딱하죠

햇살 속을 걸어요

눈부심으로 가려 잊은 척이라도 하면 좀 나아요

그러니

내가 지우지 않은 건 아니예요

아무래도 당신 안에 내가 한 조각 남아 있나 봐요

내 안 사거리 모퉁이에 당신이 앉아 있는 것처럼

눈 부신 햇살 속을 걸어요

모두 다 잊은 척

웃으면서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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