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매운 고추장으로 떡볶이를 만들어 저녁을 먹고, 프랑스 문화에 관한 책을 찾다가 다음에 읽어야겠다고 다시 꽂아 놓은 책이 아른거려서 도서관으로 가려고 나서려는 순간 캐나다로 이민 간 친구에게서 전화가 오는 바람에 2시간 동안 통화를 하고 나니 말썽쟁이 막내아들의 거듭된 말썽이 진을 쏙 빼는데, 잠이 안 와 읽기 시작한 '화차'는 별로 무서운 내용도 아니었건만 살짝 소름은 돋는 것이어서 주방에 남은 떡볶이를 책상으로 가져오는 일이 좀 꺼려졌지만 꼬르륵거리는 뱃속의 공명이 더 공포스럽다는 결론을 내리고 남김없이 그것을 먹어치운 다음, 이어서 책을 읽다가 평소보다도 더 늦은 시각에 잠이 들었고, 아침엔 여느 때와 같은 시각 눈을 떠 후다닥 아침을 먹이고 모두를 내보낸 잠깐의 여유를, 빨래도 널지 않은 채로 어제 읽던 부분에 이어서 읽다가 살짝 잠이 들었고 띠리링 카톡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테니스 레슨이 임박하여 화요일 클럽 회장언니가 준 원피스 테니스복을 입어야 이쁨을 받는다는 여시 같은 생각이 퍼뜩 떠올라 얼른 걸쳐 입고 5분 남은 시각에 맞추느라 전속력으로 달리고 싶었지만, 신호에 막힌 차들을 날아서 앞지를 수는 없는 일이어서 머릿속으로는 변명을 찾는 동시에 입으로는 연신 욕을 한 바가지 퍼부으며 도착한 테니스장엔 코치가 썩소를 날리며 기다리고 있는 얼굴을 보며 변명이고 자시고 걍 늦잠을 자다 왔노라고 말해버리고 나서 역시 나답다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었고, 가출한 줄만 알았던 컨디션이 의외로 내 몸에 꼭 붙어있어서 천만다행이라고 안도의 숨을 쉬고는 쥐꼬리만큼의 여유가 돌아온 것 같아 기분이 나아지는 찰나, 세탁기 속에서 푹 숙성되고 있는 빨래가 떠오르면서 보기 싫은 것은 잠시 외면하자는 내면의 울림도 있고 해서 일단 밥부터 챙겨 먹고 나니 외면과 내면의 오묘한 대립 속에서 헝크러지고 마는 이성은 될 대로 되라는 비 이성으로 탈바꿈되고 급기야 며칠 쉬겠다고 다짐했던 페북의 세계로 발걸음을 하고 만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