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장각 각신들의 나날 1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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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균관 생활을 마치고 과거에 급제를 한 '4인방'은 분관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분관'이란 정식으로 관직을 받기 전에 관료들의 기본 업무를 배우는 기간으로 요즘 말로 하면 '신입 오리엔테이션'이라고 보면 된다. 대기업 사원으로서의 생활을 누리기 전에 '연수원'에서 츄리닝을 입고 '동기간의 단합'을 느끼는...뭐, 그런 느낌으로 보면 얼추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신병교육대'를 떠올리는 것이 더 어울릴 듯 싶다. 신병교육대에서 '4주간 교육'을 마치고 '주특기 교육'을 받으며 '자대 배치'를 막 받은 그 느낌이 딱이다. 뭘 해도 어색하고 일도 시키지 않으며 내무반에 멀뚱멀뚱 앉아서 '신병 교육'을 받고 있는 그 느낌이 딱이었다.


  그 뒤에 '정식 관직'을 받고서 '신참례'를 받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예나 지금이나 신입을 괴롭히는 풍습이나 인사치례를 받으려는 속셈이 참으로 가관이다. 뭐, 요즘에야 이런 일들이 '인권위'에 고발조치가 되기도 하니 점점 사라지고 있겠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출세를 위해서 윗사람에게 미리미리 잘 보이려 애를 쓰는 모습은 '일상'과도 같은 일이었다. 뭐, 요즘에도 알게 모르게 다 하는 짓들일테고 말이다.


  그렇지만 이 책의 백미는 바로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 환영하기 위해서 치루는 '신참례'가 아니라 너무나도 잘난 '4인방'을 떨어뜨리기 위한 신참례를 벌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물 김윤식은 '여자'임을 감춰야 하기 때문에 더욱 곤혹스러운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펼쳐져서 더욱 흥미진진해질 뿐이다.


  이런 굵직한 배경을 사이로 이선준과 김윤희가 혼례를 치룬다. 애초에 선준이 그토록 과거공부에 열을 올린 것도 노론 집안에 남인 며느리를 들이기 위해서 선준이 모친과 함께 벌인 일이었던 것이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2>의 말미에 선준이 윤희를 거들떠도 보지 않고 과거공부에만 매진한 까닭이 바로 김윤희와의 혼례를 약조 받았기 때문이었던 셈이다. 이번 과거시험에 '장원급제'를 하면 김윤희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며느리로 들이겠다는 약조를 말이다.


  이미 대물 김윤식의 정체가 '여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모른 체하는 걸오와 여림은 몰래 치룬 선준과 윤희의 혼례장에 쳐들어와 두 사람의 초야를 방해하고 만다. 그렇게 첫날밤을 망친 두 사람은 '시댁'으로 가서 선준의 부모님과 마주하는데, 여기서 윤희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혼인은 없었던 일이 되고 만다. 남장을 한 것이 들통나는 것만으로도 경을 칠 일인데, 거기다 임금의 앞에서까지 여인임을 속였으니 이것이 대외적으로 들통이라도 나면 온 집안이 멸문되는 것은 시간문제기 때문이다. 그렇게 선준의 아버지는 남장한 윤희를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하고, 윤식에서 윤희로 변신을 하려던 계획이 임금에 의해 좌절이 된 상황에서 혼인도 없었던 셈이 되고 만다. 그래도 둘의 사랑은 변치 않지만 '임금의 농간(?)'으로 인해 두 사람은..아니 네 사람은 점점 곤혹스러운 사건의 연속을 맞이하게 된다.


  한편, 남몰래 윤희를 짝사랑하고 있었던 걸오 문재신도 장가를 가게 되었다. 윤희를 사랑하면 할수록 더욱 괴로운 걸오는 아버지가 마련한 혼례를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다. 헌데 혼례식을 치루고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색시가 '반토막'이다. 나이는 열네 살이라고 하는데 겉보기에는 키도 짜리몽땅하고 모습도 어리다 못해 열 살도 채 되어 보이지 않은 어린색시였다. 걸오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의 반려자로 애기를 데려온 셈이다. 허나 어쩌겠나. 걸오가 아무리 미친 사람처럼 괴팍한 짓만 하고 돌아다닌다해도 '여자'에게만큼은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상남자 아니겠는가.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걸오의 색시 '반다운'이 더 성장한 다음의 이야기를 못다한 상황에서 이 시리즈가 끝나버린 것이다.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 2>에서도 어린 색시를 두고서 청나라 사신으로 다녀온다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었기 때문에, 걸오와 다운의 알콩달콩 사랑이야기가 영영 감춰진 셈이다. 만약에 이 책의 '세 번째 시리즈'가 출간이 된다면, 이 두 사람의 못다한 사랑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뭐,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감감무소식인 것을 보면 영영 나오지 않을 모양이지만 말이다.


  암튼, '4인방'의 신참례가 한창일 때 '또 하나의 사건'이 맥을 이어간다. 바로 '청벽서의 등장'이다. 신참례를 치루는 와중에 '청벽서'가 등장해서 '홍벽서'를 대신하여 벽서를 붙이고 다녔기 때문에 '4인방'은 청벽서가 자신들을 도와주고 있다고 안심을 하였더랬다. 그런데 뒤에 '동고놀이(양반들이 거지로 꾸미고서 가난한 백성들에게 음식과 술을 나누어주면서 노는 마을 잔치)'를 하는 와중에 '청벽서'가 진짜 홍벽서인 걸오의 앞에 나타나 자신이 청벽서이고, 홍벽서가 다시 돌아와서 기쁘다는 소식을 전하고 홀연히 사라지고 만다.


  이에 '4인방'은 '청벽서'가 자신들의 정체를 잘 알고 있으며 '진짜 홍벽서'가 다시 등장하길 바란다는 것도 알아챘다. 과연 이 사건은 '4인방'에게 어떤 결말을 안겨다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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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재생산 북클럽 자본 시리즈 10
고병권 지음 / 천년의상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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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첫 머리는 '실러'의 작품 가운데 <인질>이라는 제목의 시로 시작한다. 시칠리아의 참주 디오니시우스는 폭군이었다. 그래서 청년 다몬은 폭군을 암살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처형될 참이었다. 다몬은 죽기 전에 '누이의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처형장에 반드시 돌아오겠다며 '친구의 목숨'을 담보로 걸었다. 그러자 폭군 디오니시우스는 묘한 조건을 내건다. "좋다. 누이의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게 해주겠다. 만약, 네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친구를 너 대신 처형하고 네 죄는 묻지 않겠다"라고 말이다. 대놓고 도망을 치라고 권하는 조건이다. 하지만 다몬은 누이의 결혼식을 마치자마자 처형장을 향해 달렸고, 온갖 역경을 딛고서야 겨우 사형시간에 맞춰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지체없이 친구를 살리고 자신이 대신 처형장에 올라갔다. 친구의 목숨을 살리고 자신이 죽겠다는 당연한 결정이었다. 디오니시우스는 다몬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보고 받고, 둘의 우정에 '인간적인 감동'을 느껴 자신도 그들과 친구가 되고 싶다는 내용으로 '실러의 시'는 마무리 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연극'을 준비한다. 디오니시우스의 역할을 '자본가'에게 맡기고, 다몬과 친구 역할은 '노동자들'에게 맡겼다. 과연 이 연극에서도 '해피엔딩'의 결말로 마칠 수 있을까? 노동자들의 '인간적인 모습'에 감동한 자본가가 노동자들과 친구가 되는 결심을 하게 될까? 마르크스는 꽤나 회의적인 감상으로 이 연극을 관람했을 것 같다.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해피엔딩'이라면서 말이다.


  자본가들은 이윤을 얻어낼 수 있는 기막힌 방법을 잘도 찾아낸다. 자본가들은 하나를 내어줘도 두 개를 얻어내는 비법이라도 있는 걸까? 중세시대의 '영주와 농노 이야기'를 살펴보자. 농노는 일주일 중에 사흘은 '자신의 땅'을 개간하고, 또 다른 사흘은 '영주의 땅'을 개간하며, 주일엔 쉰다. 농노는 사흘간의 노동으로 '자신의 몫'을 챙기고, 사흘간의 세금을 치르는 '자유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주가 농노의 땅을 강제몰수 해버렸다. 그리고 일주일 중 6일을 일하게 만들고, 그 가운데 '사흘치 임금'을 주면서 나머지는 영주가 '자신의 몫'으로 챙겼다. 하루는 쉬게 해주고 말이다. 겉으로 봤을 땐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사흘치의 몫'을 챙기는 것은 똑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느 엄청나게 다르다고 말한다. 자유민일 때는 '생산자'이지만, 땅을 몰수 당한 뒤에는 임금을 받는 '고용자'가 되어 버린 셈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유민일 때나 몰수 당한 뒤나 '세금'을 내는 의무는 같다. 여기서 또 차이점이 발생한다. 생산자일 때는 '사흘치의 몫'만큼 영주의 땅에서 일한 것으로 세금을 셈했기 때문에 '사흘치의 몫'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지만, 고용자일 때는 6일을 일하고서 3일치의 임금만 받았는데도, 그 '3일치 임금'에서 세금을 또 떼이게 되기 때문이다. 달라진 것은 또 있다. 생산자일 때는 영주가 세금만 받고 간섭을 하지 않았지만, 고용주일 때는 "내 덕에 먹고 사니 고마운줄 알아"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마르크스의 지적이 옳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자본가들도 노동자들에게 툭하면 하는 말이 있다. "내 덕에 먹고 사는 줄 알아. 내가 일자리를 만들지 않았으면 너희들이 어떻게 먹고 살 수 있었겠니. 그러니 고분고분 말 좀 잘 들으란 말이야. 파업 같은 거 할 생각하지 말고!"...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반대임을 알 수 있다. 노동자들이 일을 하지 않으면 기업이 하루라도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느냔 말이다. 업무가 멈추는 것은 물론, 공장의 기계도 헛돌 뿐일 것이다. 그런데도 노동자들은 자본가의 눈치를 보며 쥐 죽은 듯이 시키는 일을 고분고분하게 할 뿐이다. 당장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왜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이 발생한 것일까? 모두가 평등하다고 주장하고 평등한 관계에서 '합법적인 계약'을 했다고 하면서도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순간부터 '사용자'와 '고용자'는 지배와 피지배적인 관계로 돌변하고 만다. 아무리 억울한 일이 발생해도 '고용자'는 마음대로 사표도 낼 수 없다. 애초의 계약과는 다르다고 항변하지도 못하고 그저 묵묵히 일만 한다. 부당한 처우를 받아도 그저 꾹 참고 버틴다. 왜냐면 이곳을 나가 다른 회사에 취직을 해도 마찬가지 푸대접을 받기 때문이다. 자본가들끼리 서로 '악덕'이 되자고 모종의 합의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자본가라는 계급이 되면 그냥 자동으로 착취를 할 줄 아는 스킬을 습득하게 되는 것일까? 이처럼 '자본주의'에서 자본가와 노동자들 사이에 '해피엔딩'이 되기는 애저녁에 글러 먹었다.


  그렇다면 자본가들은 어떻게 자본가가 되었을까? 태어날 때부터 자본을 두 손 가득 쥐고 태어나는 걸까? 그건 아니다. 그들도 애초엔 '없었다'. 그래서 악착같이 절약을 했다. 1세대 자본가들은 '수전노'와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은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을 줄이는데 노력했다. 그렇게 돈을 모은 다음에는 자신이 '돈을 버는 기술'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면서 돈을 벌기 시작한다. 이른바 '2세대 자본가'다. 이들은 자신의 일을 '도제'에게 대신 시키면서도 일(기술)을 가르친다고 생색을 냈다. 그래서 고용을 했음에도 임금을 주기보다 수업료를 챙겼다. 그렇게 돈을 벌고 또 번 셈이다. 그러다 어느 정도 '자본축적'이 이루어지면 '돈이 돈을 벌어오는 구조'를 만들어서 돈이 알아서 모이도록 만든다. 그게 바로 '자본주의'다. 정확히 말하면 '자본이 돈(자본)을 벌어오는 시스템'이다. 이것이 바로 '3세대 자본가'의 완성형 모습이다.


  이런 전통(?) 때문인지 자본가들은 '절약'이 몸에 베어 있다. 절약을 잘 했기 때문에 자본가가 될 수 있었다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절약은 노동자들이 아껴쓰는 것과는 다른 '절약'이다. 자본가들이 즐겨하는 '절약의 실체'는 바로 노동자들의 몫을 주어야 하는데도, 그 몫에서도 또 절약을 해서 빼앗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노동자들에게 제공하는 '한 끼 식사(점심)'의 재료를 값싼 재료로 바꿔치기 하면서 '비용 절감'을 유도하는 것이다.


  실제로 영국의 자본가들이 영국 노동자들의 식사에 대해서 논평한 대목이 있다. "영국의 노동자들은 호화로운 식사를 한다. 프랑스의 노동자들은 더 값싼 재료를 절반만 먹고도 영국의 노동자들보다 곱절이나 더 생산을 해낸다(이책, 146쪽)"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무슨 빵까지 먹으려 하나. 귀리와 소금만으로도 배가 부를 텐데(이책, 146쪽)"라면서 자신의 불룩나온 배를 추켜올렸다고 한다. 이들이 피골이 상접한 노동자에게 한 말이라고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심정이 들었다.


  노동자들은 건강해야 한다. 자신의 유일한 '생산수단'이 맨몸뚱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건강을 잃는 순간 '생산도구'를 잃어버려 굶어죽는 수밖에 남지 않으니 어떻게 해서라도 건강을 잃으면 안 된다. 그런데 집도, 옷도, 먹을 것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아 늘 춥고 배고픈 이들이 '영국의 노동자'다. 이런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의 몫에서 더 많은 '절약'을 해야만 할까?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짓거리다.


  암튼, 자본가들의 '자본축적'은 이와 같은 '근검절약'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미 노동자들의 '잉여생산'을 통해서 이윤을 챙긴 자본가들은 '자본을 재생산'하는 방법을 통해서 또 한 번의 '자본축적'을 시행한다. 돈이 돈을 벌어오는 시스템이라는 것이 이렇게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참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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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2 - 개정판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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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물 김윤희와 가랑 이선준의 로맨스가 더욱 뜨거워졌다. 아직 가랑은 대물의 본모습이 '여자'인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뜨거워지는 몸'만이 사랑의 화살표를 정확히 가리키고 있지만, 가랑의 이성은 '남색(男色: 동성애)이면 안 된다'고 경고등을 밝히고 있는중이다. 한편, 대물 김윤희는 여전히 가랑에게 향하는 자신의 마음을 오롯이 지키고 있다. 하지만 본모습을 감추고 있는 실정이라 그 애뜻한 마음을 속시원히 밝히지 못하고, 그저 가랑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어차피 '당색(선준은 '노론', 윤희는 '남인')'이 서로 달라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핑계로 좋아한다는 마음만 감춘 채 좋아한다는 티는 내고 다녔던 것이다.


  선준과 윤희의 사랑이 무르익어갈 즈음에 여림 구용하와 걸오 문재신은 우연찮은 계기로 대물 김윤식이 '여자'임을 알게 된다. 놀라움도 잠시 그간 허물없는 동무지간으로 지냈던 터라 나름의 우정 때문이라도 대물의 정체를 밝힐 생각은 없었다. 도리어 김윤희로 인해서 서로의 당파가 다름에도 친우지간으로 지냈을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며 누구에게도 알릴 수 없는 비밀이 되어 버린 셈이다. 그 비밀은 정작 '대물' 자신도 알지 못했다. 이미 자신의 본모습이 여자인 것을 들통났는데도 계속 남자행세를 하는 것을 그저 귀엽게 바라볼 뿐이었다.


  물론 달라진 점도 있었다. 걸오가 어느새 '대물'을 짝사랑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다른 이에게는 여전히 '미친 말' 걸오였지만, 대물에게만은 살랑살랑 얌전한 조랑말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대물의 사랑은 이선준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 자신의 마음을 전하지 않을 뿐이다. 사랑하는 이를 곁에 두고도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아픔은 무엇으로 달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 '사랑의 화살표'가 잘못 방향을 잡은 이들은 더 있다. 바로 대물을 짝사랑하는 초선과 선준을 짝사랑하는 부용화다. 이들은 자신들의 사랑이 변함없음을 확고히 보여주지만, 그 사랑의 주인공들인 선준과 윤희는 자기들끼리 서로 사랑하느라 애달프기만 하다. 더욱 괘씸한 것은 선준과 윤희가 자기들끼리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하면서 초선과 부용화를 헷갈리게 만든다는 점이다.


  사랑의 감정에 있어서 '노선'을 확실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법이고, 가장 중요시 하는 예의일텐데, 선준과 윤희는 그 확실한 노선을 스스로 밝힐 수 없는 '사정' 때문에 그 옆에서 '사랑의 깜빡이'를 켜고 있는 초선과 부용화를 더욱 불쌍하게 만든다.


  이런 '엇갈린 사랑'은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지켜보는 관중이나 재밌지, 당사자들은 피말리는 상황의 연속일 뿐이다. 어디 그뿐이면 다행이다. 사랑의 감정이 크면 클수록 '틀어진 사랑'만큼 무서운 복수로 되돌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초선에게 이별을 고하는 윤희는 '없는 꼬추'를 잘릴 형국에 빠지고, 선준은 마음에도 없는 혼사를 거절했다가 '홍벽서'로 모함을 받아 고초를 겪게 된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선준과 윤희는 서로의 마음과 본모습을 확인하고 사랑을 맺게 되는데...과연 그 둘의 사랑이 아무 탈없이 맺어지게 된 것인가. 두둥~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서는 둘의 사랑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원작 소설'에서 보여준 애달픈 사랑이야기를 느낄 수가 없다. 다만 '비주얼'적인 면에서 잘생기고 어여쁜 두 남녀가 보여주는 로맨스에 푹 빠질 수 있었기에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재밌게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랑의 감정'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선 '영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로 전해 듣는 것이 더 감질나고 애간장을 녹이기 마련이다. 이제 무대는 '성균관'에서 '규장각'으로 옮겨간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로맨스는 또 어떤 맛일지...이미 알고 있지만, 새삼스레 모른 척 엿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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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 Principles
레이 달리오 지음, 고영태 옮김 / 한빛비즈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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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운다는 점에서 이 책은 <자서전>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잘난 사람의 일대기'를 그려내는데 그치지 않고 '인생역전'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삶의 원칙'을 추려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자서전'과는 그 '결'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위대한 원칙일수록 '간단한 요약'이 쉽다. 우리가 학습을 할 때도 '개념이해'가 술술 잘 되는 강의를 분석하면, 가장 먼저 '강의자'가 개념을 완벽히 이해했을 때 학생들에게 가장 쉽고 재밌게 가르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레이 달리오가 전하는 '성공원칙'은 또 다른 책 <성공원칙>이라는 책에 아주 잘 요약되어 있다. 다섯 가지 성공원칙만 익히고 싶다면 그 책을 권한다. 사실 이 책에서 말하는 '원칙'도 바로 그 다섯 가지인 '목표-문제-진단-계획-실행'을 계속 반복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성공'에 다다르는 가장 빠른 길을 원한다면 이 책을 다 읽기도 전에 '실천'부터 하는 것을 권할 뿐이다.


  하지만 왜 성공해야 하는지, 성공에 다다르기 위해서 무엇을 준비하고 대비해야 하는지 궁금하다면 두껍지만 이 책을 권한다. 누구에게는 그렇지 못하지만 많은 이들의 '인생'은 길기 때문이다. 이 책 한 권을 다 읽을 때까지 충분한 여유시간은 있을 것이다. 분명 당신에게도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한 사람들의 결과'에만 집중하기 마련이다. "나도 당신처럼 성공하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되죠?"라고 묻지만 '과정'을 진득하니 듣기보다는 '결과'에만 서둘러 가고 싶을 뿐이다. 또한 '과정'이 어렵고 복잡하면 으레 포기하기 십상이다. 그리고서는 '성공한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라는 섣부른 결론을 내려버리고 자신과는 '다른 사람의 인생'이라고 단정하기 바쁘다. 그리고서는 또 다른 성공한 사람에게 찾아가 똑같은 질문을 던지고 실망하기를 반복한다.


  '문제점'이 무엇인지 보이는가? 아직 성공에 다다르지 못한 당신의 문제점은 '인생을 허투루 낭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집중하지 못하고 변화를 꾀하지 못하는가? 변화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십중팔구는 '변화'를 시도조차 하지 않은 사람이거나 한두 번 '실패'를 맛보고서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간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 책에서도 매번 강조하는 것이 '실수는 괜찮지만 실수에서 배우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평범한 진리다. 늘상 성공하는 인생이 어디있겠는가?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완벽한 계획'도 없다. 그렇다면 매번 '수정'을 거듭하고, 올바른 수정을 하기 위해 '진단'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그렇게 수정된 계획을 들고 다시 실행에 옮기면, 언젠간 그 노력에 합당한 결과를 얻게 된다. 이것이 바로 레이 달리오가 자기 인생을 통해 얻은 '단 하나의 철학'이자, <원칙>인 셈이다.


  여기까지는 '개인적인 성공'에 해당하는 조언이다. 더 큰 성공을 위해선 '남'과 함께 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기꺼이 '동반자'가 되어줄 사람이 필요하단 말이다. 우리는 그들을 '인재'라고 부른다. 이런 인재를 뽑기 위해서는 어떤 <원칙>이 필요할까?


  인재를 뽑는 원칙이 중요한 까닭은 '동반자의 실수'가 곧 '나의 실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까탈스런 <원칙>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재를 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재를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인재를 제대로 뽑기 위해선 '누구'를 뽑을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외모'만 보고 뽑을 수 없는 것처럼 '능력'만 보고 뽑는 것도 나쁜 결과를 얻기 위한 첫걸음일 뿐이다. 무엇보다 '나의 목표'에 적합한 사람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꾸준히 교육시키고 관리해야 한다. '나의 목표'가 이것이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이해시키고, 따르도록 해야 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조직관리'로 이어진다. '조직관리'는 기계처럼 완벽하고 철저해야 한다. 예외규정 따윈 없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관행'이 쌓이고, 한 번 어긋난 관행은 조직을 와해 시켜버리기 때문이다.


  자, 여기까지다. <원칙>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점만 추려서 정리해보았다. 이해 못할 내용이 있는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중요하지 않은 원칙도 없을 것이다. 너무나 당연해서 도리어 실망할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도 당신이 실패를 맛 보았다면 그건 <원칙>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그랬나?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나? 때론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시련의 늪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한 경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명백한 것은 그건 '당신의 책임'이라는 점이다. 누구에게도 전가할 수 없는 '당신의 책임' 말이다.


  우리는 살면서 소소한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결과보다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야 왜 성공을 했고, 왜 실패를 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을 미리 대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알지 못하는 것'이 닥쳤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미리 대비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적절한 비유는 아닐지라도 '코로나19'에 대처했던 여러 나라의 방식은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감기에 걸렸을 때 '마스크'와 '손씻기'를 잘 준수하면 예방과 함께 확산을 차단하는 가장 쉽고 간단하고 당연한 <원칙>을 지킨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의 결과는 엄청나게 달랐다. 이해가 되는가? <원칙>이란 이처럼 가장 기본적인 것을 잘 지키는 것을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그 외에 다른 세세한 원칙들은 각각의 상황에 알맞게 대처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중요한 것은 '기본원칙'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원칙>을 잘 지키고 꾸준히 실행하는 것이고 말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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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면서 보는 해부학 만화 한빛비즈 교양툰 8
압듈라 지음, 신동선 감수 / 한빛비즈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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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에 우연히 접한 '의학 백과사전'이 나의 첫 '해부학책'이었다. <가정의학 백과사전>이란 책이었는데,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피부와 골격, 근육, 신경을 이루고 있는 단원 설명이 끝나면, 갖가지 병의 이름과 증상, 치료법 따위가 적혀 있는 백과사전이었다. 물론 초등생 시절이라서 '글'보다는 '그림'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림을 다 훑어보고서는 덮어버린 '해부학과의 인연'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묘한 흥미만은 갖고 있었다.


  그리고 성인이 될 때까지 '해부학'과는 인연이 없었다. 과학수업시간에 그 흔한 '개구리 해부실습'도 하지 않은 세대였기 때문에 '살아 있는 생명체'를 오직 글과 그림으로만 배울 뿐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봤을 때에도 묘한 흥미와 함께 읽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압듈라'라는 이름 때문에 머뭇거렸다. '해부학'과 '아랍인(?) 작가'가 서로 매칭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나토미 분야'에서 아랍권은 그닥 유명하지 않다는 어줍잖은 상식 때문에 '외국인(?) 작가'가 쓴 해부학 만화를 그닥 읽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 그랬다. 난 '압듈라'가 누군지 몰랐던 것이다.


[출처: 압듈라 페이스북]


  위의 그림체를 보면 단박에 알 수 있지만, 압듈라는 '개그만화가'다. 정확히 말하면 '아재개그의 대가'라고 할까..암튼, 그의 책을 읽으면 느닷없는 개그에 뿜게 될 것이다. 원래 개그는 설명을 하면 안 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살짝 해설을 하자면, <까면서 보는 해부학 만화(이하 '까해만')>의 E-book편이 나온다는 한 컷 만화다. 그런데 만화가 자신을 '김정은'을 연상하게끔 그렸다. 까닭인 즉슨, E-book을 '이북'이라고 발음나는대로 소개하고 있는 황당한 시츄에이션을 풀어놓고 있다. 그리고 크기가 작아서 말풍선이 보이지는 않겠지만, 해부학과 관련된 '뼈대 있는 곧츄~'를 논하며 오늘날에 멸종된 공룡에 비유하면서 '포유류의 곧츄뼈는 말랑한 해면체로 변해서 사라졌다'는 은유적인 표현을 하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살아있는 곧츄뼈'는 댕댕이, 미국너구리, 수달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요약하고 있다. 물론 '지켜야 할 선은 분명히 지킨다'는 의지(?)를 표명하며 '건전하다'고 강조하고 있는 장면이다.


[왼쪽부터 '골격퀸', '신경퀸', '심장퀸' (출처: 압듈라 페이스북)]


  그림체는 보면 알겠지만, 한 눈에 봐도 '순정만화 스타일'이다. 쉽게 말해 '일본만화'스러운데 실제로도 작가는 수많은 '일본만화'에서 모티브를 따와서 적절하게 버무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려운 해부박'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며, 책의 내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래서 '원작만화'를 알아도 재밌고, 몰라도 재밌기만 하다. 그런데도 이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는 '그와 그녀의 사정'은 해부학이라고 하는 어렵고 인기없는 학문에 대한 접근을 유도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얼마나 이해하기 쉽냐면, 척추뼈를 부드럽게 지탱하고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디스크'를 멍멍이에 비유하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인류가 '직립보행'을 하면서 다른 동물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허리통증'을 갖게 되는데, 그 이유가 바로 척추뼈가 중력에 의해 아래로 힘을 받게 되면 '디스크'가 척추뼈에서 이탈하게 되고, 그러면 척추뼈를 감싸고 있는 예민한 신경을 건드리게 되면서 통증을 유발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것을 '척추퀸'이 기르고 있는 '댕댕이(디스크)'가 옆방으로 탈주하면 옆방에 있던 예민한 '신경퀸'을 자극해서 자지러지는 통증을 유발한다고 설명한 것이다. 얼마나 쉬운 설명인가.


  이렇게 '해부학'을 공부하면 우리 몸의 움직임 뿐만 아니라 감각, 통증, 병의 원인까지 단박에 알 수 있게 되는 해박한 학문이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단언컨대 이 책을 읽으면 '해부학'이 결코 어렵기만한 학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리고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뼈와 근육', '척추', '신경', '심장' 등등 모르는 것들을 단박에 아는 것으로 바꿔주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공룡', '곤충', '의학', '와인', '퀀텀', '성차별' 등의 [교양툰 시리즈]를 읽어왔지만, 이 책이 단연코 최고다. 다들 '관련분야'에 해박함을 주는 교양있는 만화책이었지만, 이 책만큼 '이해도'가 높은 교양툰은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2편을 기대한다. 더 세심하고 깊이 있는 해부학의 세계로 이끌어주길 바란다. 의대생들도 꺼려한다는 '해부학실습'을 마스터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을테고 말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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