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0년, 열하로 간 정조의 사신들 - 대청 외교와 『열하일기』에 얽힌 숨겨진 이야기 서가명강 시리즈 16
구범진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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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XCII / 21세기북스 25번째 리뷰] 연암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는 너무도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지만, 정작 그 책을 완독한 이는 손으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많지 않을 것이다. 나도 그 방대한 양에 질려서 띄엄띄엄 읽거나 '축약본'을 읽었을 뿐,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허나 <열하일기>가 출간되었을 18세기 말에는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웬만한 사대부 양반들은 읽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왠고 하니, 당시 건륭제의 천수제(칠순잔치)를 맞아 정조가 파견한 사신단에 박지원의 삼종형(8촌형)인 박명원을 따라서 수행원의 자격으로 연암이 함께 할 수 있었는데, 박명원이 황제가 직접 선물한 금불상을 받아 가지고 조선으로 돌아왔기 때문(봉불지사)이다. 조선은 성리학을 따르는 유교국가인데 불교에 기인한 부처상을 사대부가 직접 가지고 조선으로 되돌왔다는 사실이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의 처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셈이지만, 당시 최강대국이자 조선이 사대를 표하는 '청나라 황제'가 생일축하를 받자 그 답례로 선사한 선물인데, 조선을 대표하는 사신으로 '황제의 선물'을 거부할 수도 없지 않느냔 말이다. 이렇게 받을 수도 없고, 그러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에 대해서 마치 직접 본 것처럼 '생생한 기록'이 <열하일기>에 담겨 있다고 하니 당시의 사대부로서 읽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편, 오늘날 우리는 <열하일기>를 다루면서 조선의 실학자이자 '북학파 사상가'로서 연암 박지원의 개혁적인 관점을 부각시키곤 한다. 바야흐로 '조선의 르네상스' 시대를 편 영조, 정조의 치세에 '개혁정치가'가 직접 쓴 책이라며 당시 시대상보다 앞선 사상이 담겼다는데 큰 의의를 두고 있다는 말이다. 허나 이 책 <1780년, 열하로 간 정조의 사신들>에서는 그런 관점보다는 앞서 언급한 '봉불지사(부처를 받들어 모신 일)'에 관한 객관적인 근거(?)를 연암의 수려한 문체로 잘 포장해 변명한 책이 <열하일기>의 진면목 가운데 하나라고 풀어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을 색다른 관점에 바라보며 '(또 다른) 해석'을 풀어낸 것이다. 모든 학문이 그렇지만 '새로운 해석'은 언제나 환영할 만하다. 왜냐면 우리의 관점을 더 넑은 스펙트럼으로 확대시켜 주며 학문하는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골머리를 썩힐 일로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학문은 그런 과정을 거치며 발전하는 법이니 어쩌겠는가. 고인물이 쉬이 썩는 것처럼 '발전' 없는 학문 또한 아무 짝에도 쓸모 없긴 매한가지다. 그런 차원에서라도 '해석'을 즐기는 자세는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암튼, <열하일기>가 세세할 정도로 '봉불지사'를 다룬 덕분에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탓에 오늘날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더불어서 연암 박지원이 지니고 있던 '북학파 사상'까지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해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열하일기>를 통해서 조선과 청의 관계는 어떠한 '인식변화'를 보이게 되었을까?

  인조 때 '병자호란(1636년)'을 겪으며 조선은 뼈아픈 패배를 당한 것으로도 모자라 '삼전도의 굴욕'까지 당하고 말았다. 병자호란보다 더 큰 피해를 보았던 '임진왜란(1592년)'에서도 조선은 패배하지 않았는데, 같은 오랑캐가 쳐들어온 전쟁인데 조선은 이를 막아내지 못하고 허무할 정도로 어이없게 참패를 당한 것이다. 이 당시 조선은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오랑캐에 당한 치욕을 되갚자'는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더구나 이자성의 반란으로 명나라가 멸망(1644년)한 뒤에는 조선이 섬겨야 할 나라(사대주의)가 망했으니 '중화질서'를 간직하고 지킬 나라는 조선밖에 남지 않았다는 '소중화 사상'이 떠오르며 조선 사대부들의 자긍심(?)이 스물스물 치솟아 오를 때였다. 이들은 중원땅에서 '오랑캐 왕조'가 100년을 넘지 못할 것이라 전망하며 명나라의 후예인 '한족'이 다시 부흥하여 청나라를 복속시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때를 같이 하여 조선이 '한족 부흥군'과 힘을 합쳐 '중화질서'를 다시 회복하게 될 것이라 굳게 믿었던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조선에서는 '북벌론'이 힘을 받았다. 이른바 오랑캐에게 받은 치욕을 되갚자는 운동으로 인조의 뒤를 이른 효종이 직접 관여하며 군사를 기를 정도로 열과 성을 다하기도 했다. 허나 그렇게 키운 '정벌군'은 청나라를 정벌하지 못했고, 되려 정벌하려던 청나라를 도와 '나선정벌'을 하는데 혁혁한 성과를 거두고 만다. 한마디로 조선은 청나라에 복수하지 못했다. 왜냐면 청나라가 가파른 성장을 하며 영토를 팽창시켰고, 나라를 평화롭게 안정시켰기 때문이다. 실제로 청나라는 강희제, 건륭제, 옹정제라는 훌륭한 임금이 연이어 나오며 국력을 자랑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조선에서는 여전히 '소중화 사상'이 팽배해서 이토록 강성해진 청나라를 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물론, 조선은 청나라의 '우수 조공국'으로 자리매김하며 없어진 명나라를 대신해서 '사대주의'를 견고하게 표방하고 있었다. 이에 대한 증거가 '매년 사신단'을 꾸려 청나라로 조공을 바치러 보낸 사실인데, 비록 겉으로는 사신단을 보내긴 하지만 속으로는 굴복하지 않고 호시탐탐 '북벌의 꿈'을 키워나갔다는 말이다. 이런 결의조차 효종이 붕어한 뒤에 시들해져서 '북벌의 위한 군대 양성'은 멈추게 되지만, 조선의 지배계층인 사대부들은 '실속 없는 명분'일지언정 꿋꿋하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런데 정조가 즉위하고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잔치가 열리게 되자 조선은 '청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일을 꾸미게 된다. 바로 1780년 정조의 사신단이 바로 그것이다. 이 사신단에 연암 박지원이 함께 했고, 연암은 그 사신단의 일행으로서 '낱낱이 기록하여' <열하일기>에 남겼던 것이다. 그렇게 무사히 건륭제의 칠순잔치 축하사신단이 성공적으로 일을 마치고 귀국하자, 정조는 건륭제의 선의에 보답하는 사신단을 꾸려 다시 보내게 되고, 이후 조선과 청나라의 양국은 둘도 없는 '친선관계'를 맺으며 향후 청나라가 망할 때까지 조선은 '대접'을 잘 받는 우호국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열하일기>는 바로 그런 '조선과 청의 관계개선'의 신호탄 역할을 하는 기록물이며, <열하일기>를 전후로 조선과 청나라는 '적대국'에서 '상호 우호국'으로 커다란 인식변화까지 보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커다란 '인식변화'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적대국이었던 두 나라가 서로의 이익을 위해 아낌없이 '동맹'을 맺게 된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 책 <1780년, 열하로 간 정조의 사신들>은 기존의 <열하일기>와는 크게 상관이 없는 내용이 담겨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의 관점에서 '북벌'보다 '북학'을 해서 조선의 실리를 챙기려 한 내용이 담겨 있기 않다는 얘기다. 오히려 <열하일기>의 또 다른 면모(용도)에 치중해서 <열하일기>에서 오류가 발생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 속에 담긴 '의미'가 달리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열하일기>가 쓰여진 이후에 조선과 청 사이의 관계가 크게 개선되었다는 점에서 <열하일기> 속에 등장한 '정조의 조선 사신단'의 활약에 집중했고, 그렇기에 <열하일기>를 읽을 때 새로운 관점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당부하였다. 그렇다면 이 책이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으로 봐야 할까?

  <열하일기>를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 읽어야 한다면, '북벌'과 '북학'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시선'을 펼쳐야 마땅할 것이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내편'이 아니면 '적'이라고 간주하며 서로 의견이 다를 뿐인데도 서로를 '적대시'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행태가 만연해 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전세계가 부러워할 정도로 훌륭한 민주주의 국가의 면모를 자랑할 정도였는데,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내 방식'이 옳다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는 일은 추태에 가깝다. 북벌이 옳다고 생각하면 북벌을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근거로 전국민을 설득해야 올바른 처사다. 제대로 된 근거를 내세우지도 못하면서 '북벌에 반대하는 세력'을 범죄자로 내몰고, 범죄자들이 주장하는 이야기는 들을 가치도 없다면서 비상식적인 '거부'만 한다면, 정신 똑바로 차린 국민들을 설득할 수 없을 것이며, 그런 거부에 찬성하는 국민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는 '빼박 증거'로밖에 이해될 뿐이다. 반대로 '북학을 꼭 해야만 한다'면 그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를 내세워 온국민을 설득시켜야 마땅하다. 조선이라는 국가가 성장발전하기 위해서 '북벌' 또는 '북학'을 선택해야할 때, 제대로 선택을 한다면 어느 쪽이든 조선을 성장발전할 수밖에 없게 된다. 북벌에 성공해서 초강대국 청나라를 꿀꺽 집어 삼키는 결론을 얻을 것인지, 북학에 전념해서 초강대국 청나라와 함께 윈윈하는 성과를 거두던지, 어느 쪽이든 조선에 이로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관건은 '실현가능성'이 어느 쪽이 더 높은지 따지는 일이다. 그 가능성을 따지지도 전에 '내편 vs 니편'으로 나뉘어 쌈박질만 일삼는다면, 우리가 원하는 결론도 얻지 못할 뿐더러, 성장발전은커녕 안으로부터 썩어들어가 망할 수밖에 없지 않느냔 말이다.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관점'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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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찾는 하늘빛 허브 마법의 정원 이야기 16
안비루 야스코 지음, 황세정 옮김 / 예림당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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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XCI / 예림당 9번째 리뷰] <마법의 정원 이야기>에는 '허브차에 대한 정보 한 토막'과 '어린이들에게 유익한 교훈이 담겨 있는 이야기 하나'가 함께 담겨 있는 동화책이다. 하지만 '어린이용 책'은 결코 아니다. 어른이 읽어도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평소 차를 즐기는 학부모라면 그저 맛과 향기만으로 차를 고르지 않을 수 있게 되고, 또한 자녀가 말썽을 부리거나 말 못할 고민이 있는 것 같다면, 이 책에서 '귀띔'이 될 만한 대목을 골라 훈육 같지 않은 점잖은 훈육을 배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러 모로 유용한 책이기에 학부모가 자녀와 함께 읽는 책으로 써먹어도 참 좋은 책이다.

  하지만 가장 좋은 훈육 방법은 '가르치는 티'를 내지 않아야 되는데, 이 책에서 소개하는 방법들은 하나같이 '그런 티'가 팍팍 나는 점이 아쉽긴 하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봐도 꼭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다양한 애니가 참 많지만, 꼭 들어가 있는 '공통요소'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일본의 언어'를 친절히(?) 가르치려 또박또박 말을 하고, 눈에 띌 정도로 반복을 한다. 둘은 '일본의 문화'를 알리기 위해서 이야기와 아무 상관도 없이 등장인물들이 '온천욕'을 하고, 일본 청국장인 '나또'를 먹는 장면이 꼭 들어가고, 일본의 전통명절에 '기모노'를 입고서 예쁘다를 연발하는 장면이 거의 대부분의 일본 애니에서 등장한다. 이런 티를 팍팍내고 '반복학습'을 받듯 계속 보게 되면 자연스레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의 훈육에는 성격이 무던한 아이들에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만, 성격이 칼 같고 예민한 아이들에겐 '훈육 목적'이 드러나는 순간 부작용이 더 크다는 점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 까닭에 <마법의 정원 이야기> 같은 동화책도 고상한 취미를 가진 학부모의 취향을 그대로 자녀에게 '주입'시키고자 억지로 읽히려 들면 아무런 효과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자녀가 이 책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접하고 자녀가 '직접' 고를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사실 이런 방식의 '책 선택법'은 여러 '학습책'을 선택할 때에도 유용한 방법이다. 주위에서 참 좋다고 권하는 책이라도 '자기'가 싫으면 좋은 책이 아닌 법이다. 그러니 책을 즐겨 읽을 때까지 기다려주고 최대한 책과 가깝게 지내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독서교육법이다.

  그렇다면 이 책을 '직접' 선택한 아이들에게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앞서 말했듯이 이 책에는 '정보'와 '교훈'이 함께 담겨 있다. 그렇기에 '정보'를 추려내서 짤막하게 요약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하고, '교훈'에 담긴 주제를 간략히 파악하는 방법도 함께 가르쳐야 한다. 이번 책의 정보는 '블루 멜로차'라는 허브차이고, 교훈은 모리스 마테를링크가 쓴 동화 <파랑새>의 주제 '행복을 찾는 방법'이다. 블루 멜로차는 특별한 허브차는 아니다. 뜨겁게 마셔도 좋지만 차가운 물에도 잘 녹기 때문에 시원한 청량감을 즐길 수 있고, 목을 진정시켜주는 효능이 있기에 '모과차'처럼 마시면 좋다. 그런데 동화 <파랑새>와 블루 멜로차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파랑새>의 주제가 '행복'이니까 '블루 멜로차'를 마시면 행복한 기분이 들 수 있다는 것과 연관을 시켰을까? 안타깝게도 그건 아니다. '행복'은 우리의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지 눈에 보이지도, 손으로 만질 수도 없기에 '블루 멜로차'를 마신다고해서 행복해지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틸틸과 미틸이 행복을 구하러 '파랑새'를 쫓아간 것처럼 '파란색의 허브차'를 마시면 행복해지는 느낌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과거의 발레리나'가 이번 책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블루'라는 이름으로 소개하는 여인은 자신의 몸과 주위의 모든 것을 '파란색'으로 물들여 버렸다. 까닭인 즉슨,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발레를 더는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고로 인해 다리를 다친 뒤로 그렇게나 좋아하던 발레를 할 수 없었고, 그렇게나 즐거웠던 발레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괴로워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블루'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행복의 상징인 '파랑새'를 찾아 떠난 틸틸과 미틸처럼 자신의 몸에 지니는 것은 온통 '파란색'으로 바꾸었고, 자신이 머무는 주위 공간조차 모조리 '파란색'으로 꾸미게 되었다. 그래서 허브 마녀인 자렛에게 '행복해지는 허브차'를 주문하게 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행복해지는 주문'을 받긴 했지만, 허브 마녀 자렛도 이미 알고 있다. 세상에 마시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음료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단지 '블루'가 파란색을 좋아하니 '파란색 허브차'를 찾아냈고, 그렇게 '블루 멜로차'를 블루에게 마시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소용 없었다. 파란색이 기분을 좋게 해줄 수는 있어도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이름은 '치르치르와 미치르'일 것이다. 하지만 벨기에 동화인 <파랑새>의 원작에서는 '틸틸과 미틸'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원작의 이름이 '일본 발음'을 거쳐 한국에 전해진 탓에 그동안 '치르치르와 미치르'로 불렸던 것이다. <파랑새>의 주제는 아시다시피 '행복을 전해준다는 파랑새'를 쫓아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지만, 진짜 '파랑새'는 틸틸과 미틸의 집에 기르던 새였다는 것이 전체 줄거리다. 이 동화의 주제는 바로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으며, 행복은 엄청나게 큰 것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에서 얼마든지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는 진리를 가르쳐주고 있다. 이를 통해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도로시도 오즈의 나라에 도착하자마자 갖게 된 '동쪽마녀의 은구두'에 도로시가 소망했던 것을 해결할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애초에 이미 갖고 있었던 능력(행복)인데, 그 능력(행복)을 깨닫지 못하고 온갖 모험을 다 겪고 나서야 그 소중한 것을 깨닫게 된다는 교훈을 얻게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블루의 행복도 이미 블루가 갖고 있었다. 블루가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던 '발레'를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행한 사고로 다리를 다치자 블루는 그만 절망에 빠지고 만다. 더는 스스로 발레를 할 수 없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없다고 '발레'를 멀리해버린 것이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그렇게나 좋아하는 발레를 '다친 다리'로는 할 수 없겠지만, 자신이 갖춘 능력으로 얼마든지 '발레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발레를 가르칠 수 있을테니 말이다. 그렇게 깨달은 블루는 '발레를 가르치는 선생'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블루는 다시 행복해질 수 있었다는 교훈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이렇게 유용한 정보와 유익한 교훈이 담긴 책을 즐겨 읽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그렇게나 좋은 기분이 드는 책인데도 살짝 어색한 느낌이 드는 것은 그 정보와 교훈을 익히기 위한 '짜여진 각본'이란 느낌이 든다는 점이다. 어디선가 본 듯하고 이미 익숙해서 어딘지 모르게 살짝 진부한...물론, 너무 많은 책을 읽은 탓일 수도 있다. 어른이자 독서논술쌤이라는 '직업' 때문에 느껴지는 진부함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 '진부함'을 살짝 걷어내고 이 책 <마법의 정원 이야기> 시리즈를 읽으면 매우 유용하고 유익할 것이다. 오랜만에 시리즈를 다시 접하니 좋았다. 몇 편 더 소개해드려도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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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사 산책 14 - 세계화 시대의 '팍스 아메리카나' 미국사 산책 14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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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XC / 인물과사상사 21번째 리뷰] 서양은 왜 동양을 두려워하는가? 서구중심주의나 백인우월주의 같은 것도 따지고보면 서양이 주도하는 세계에 반하는 모든 것을 '타자'로 삼고 배타적으로 내몰고서 '통제할 수 없음'을 두려워하는 일련의 행위로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서양은 애써 '융합'을 이야기하고 '공존'을 모색하려 애쓴다. 하지만 융합과 공존마저도 '서구화'를 전제로 한 것이지 다양성을 용인하거나 이질적인 요소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한없이 경계하고 최대한 '자기네 방식'으로 길들이려 한다. 이는 '국제기구' 따위가 서양인들의 주도로 이끌려가고 있는 것이나 '서구적 질서'를 꽤나 합리적이라고 포장하며 '세계화' 따위조차 '서구화'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뻔히 알 수 있다. 허나 이는 명백히 불합리한 것이다. 저들은 온지구의 생명체를 절멸시키고도 남을 정도로 '핵무기'를 제조하고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오직 '평화'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들은 '이성적인 판단'으로 사용할 뿐 그 누구를 위한 위협을 하지 않는다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비서양국가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면 일단 '통제'하려 든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나쁜 나라'로 내몰아버린다. 자신들이 만든 질서를 위협하기 때문에 말이다. 자연스럽게 자신들은 꽤나 '정의롭다'면서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정말 그들이 정의로우냔 말이다. 서구적인 질서는 인류역사상 평화보다 끔찍한 전쟁을 치른 때가 더 많았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벌어진 20세기는 그야말로 '살육의 세기'였다. 두 차례의 끔찍한 경험을 하고서야 '국제연합(UN)' 같은 것을 만들어서 두 번 다시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며 다짐했지만, 그건 '서구 강대국의 영토'를 지칭한 것이었나보다. 국제연합이 창설된 지 얼마되지 않아 '한국전쟁'이 발발했으며, 공산주의의 확산을 방지하겠다며 '베트남전쟁'도 불사했다. 두 전쟁 모두 미국이 깊숙이 관여했으며, 미국은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며 정의롭지 못한 전쟁에 불쑥불쑥 참전해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가난한 나라의 내전을 부추기거나 방치하며 '서양, 저들만의 이익'을 챙길 뿐이었다. 심지어 미국은 '친미정권'이라면 독재자라도 기꺼이 지지하고 그들 나라에서 폭력과 학살을 자행하는 '반민주적', '비인권적' 행위를 일삼더라도 크게 관여를 하지 않았다. 이는 '친미정권'을 표방했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권을 경험했던 우리도 해당하는 일이다.

  비록 '친미주의'로 인해 우리 나라의 경제성장에 보탬이 되는 측면이 있었더라하더라도 심각하게 따져볼 일이다. 세 차례의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우리가 얻은 이득과 손실이 무엇인지 말이다. 다른 빈국에서는 '친미정권'이 들어섰더라도 경제성장은커녕 반민주적, 비인권적 부정부패가 팽배해서 지금도 엉망진창이 되었으나, 대한민국은 그나마 빠른 경제성장과 더불어 '민주화 투쟁의 역사'가 빛을 발해서 지금의 대한민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허나 이는 겉으로 드러난 각종 지표만 그럴 듯 할 뿐, 우리 내부의 문제는 전혀 해결이 되지 않아 지금까지도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분단문제'를 비롯해서, 망국과 매국하는데 앞장 섰던 '친일매국노'에 대한 심판이 아직도 해소되지 않아 첨예한 갈등을 조장하고 있으며, 반민주 세력들이 '기득권'을 차지하고서 여전히 국가지도자와 엘리트 계층을 점유하고 '저들만의 천국'을 만들려 나라꼴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고, 일련의 문제들이 심각한 '빈부격차'로 인해 점점 갈등의 골만 넓히고 있는 꼴이 대한민국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모든 문제의 발단이 '미국의 무지'와 '한국에 대한 몰이해' 덕분인데도,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제의 거의 대부분을 '미국에 의존'해서 해결하려는 행보를 보이는 것이다. 심지어 안보 문제가 생겨도 '미국'이 해결해줄 것이라 맹신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대통령을 '감시'하고 '도청'한 당사자가 미국인데도, 그 문제를 미국이 해결해줄 것(?)이라고, 한미관계는 동맹국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얼버무리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정말 문제가 되지 않느가?

  이렇듯 미국이 주도하는 것에 아무런 비판이나 검증도 없이 믿고 따르는 모습은 '정상국가'가 할 일이 아니다. 미국이 정의로운 나라여도 그래선 안 되는데, 미국이 저지른 '정의롭지 못한 일들'을 뻔히 지켜보면서 그런 것은 더더군다나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이라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이기도 하다. 선진국이라면 '자국이익'을 위해서 그 어떤 나라와도 당당히 마주해야 한다. 하나를 주었다면 또 다른 하나를 얻어낼 자세를 취해야 마땅하다. 혈맹이니 동맹이니 그딴 '냉전주의적 사고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 같은 편이었다가도 뒤통수 맞는 것이 '국제관계'다. 미국이라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은 툭하면 한국과의 우애를 강조하면서도, 자기네 이익을 위해서라면 한국보다 일본을 편드는 나라다. 그 대표적인 예가 '독도영유권'과 '동해 명칭'에 관해 중립적인 자세를 취한다는 점이다. 명백히 '독도는 한국땅'이고, '동해'라는 명칭이 더 근거가 많음에도 미국은 애써 일본편을 들어 '다케시마'와 '일본해'라고 공식문서화 시켰다. 또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인해 '명백한 해양오염'이 있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미국의 이익'을 위해 흥정을 마치고 '해양오염에 대한 과학적 근거 미비'를 핑계삼아 눈감아 주었다.

  이런 걸 보면서도 우리는 '미국'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미국은 대단히 비이성적인 나라다. 자국에서만도 총기사고로 인해 '초당 1명씩' 사망하고 있는데도 '총기규제'에 대한 법안을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로 독립운동 당시 '민병대'가 자발적으로 조직했기에 막강한 영국군과 맞서 싸워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다는 그럴 듯한 '역사적 이유'를 들고 있으며, 자기 집안에 침입한 무장강도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총이라며 누구라도 총기를 소지할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 미국을 더 안전하게 만드는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거대기업이 '총기판매수익'으로 엄청난 이득을 챙기고 있기에 이를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마치 우리 나라에서도 '담배가 백해무익'하다며 금연을 광고하지만, 담배에 붙은 엄청난 세금수익 때문에 '담배, 자체'를 없애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담배와 총기를 직접적인 비교대상으로 삼기에는 논란이 있지만, '같은 논리'라는 것이다. 사람이 죽고 다치는데도 '대대적인 총기단속'이나 '불법무기 소지금지'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고, 오히려 살고 싶으면 '더 강력한 무기'로 스스로 무장을 하라고 하는 것이 어찌 이성적이라고 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하긴, 미국의 방송매체에서 연일 쏟아내고 있는 '선정적인 방송'과 '폭력적인 영상'이 이러한 비이성적인 행태를 더욱 부추기고 있으니 더 할 말도 없다. 성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좋은 취지이고, 여성인권을 해방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서 '성희롱'과 '성폭력', '강간'이 만연해진 부정적인 경향을 막지 못하고 있다. 폭력적인 장면이 가득한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영상이 '가족시청시간'에 버젓이 방송을 타며 온가족이 함께 시청하는 미국사회에서 '폭력'이 일상에서 비일비재한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심지어 미국 대통령조차 '성스캔들'에 휘말리지 않는 이가 없을 정도다. 오히려 문란한 성생활을 하지 않는 대통령은 '여성적'이고, 그 반대면 '강한 남성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오히려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백악관은 유명 스타가 출연하는 '포르노의 장소'로 전락하고, 미국민들은 이를 '시청'하는 일이 매번 반복되고 있다. 오히려 청교도적인 금욕생활을 하는 대통령에 대한 인기가 형편없을 정도란다. 정말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이제 <미국사 산책>도 막바지로 다가가고 있다. 하지만 매번 '초강대국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섹스와 폭력이 되풀이 되고 있고, 그런 부도덕적인 미국의 행정부가 저지른 부정부패와 비리를 감추기 위해 벌이는 '국외공작'으로 인해 세계 경제는 흔들리고 세계 평화는 말뿐이다. 도대체 이런 미국에 의한 '팍스 아메리카'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강력했던 로마제국도 '팍스 로마나' 시절을 오현제와 함께 지내며 잠시나마 평화로웠지만, 사실상 로마제국이 흔들리고 망할 징조를 보여준 시기도 바로 그때부터였다. 뒤이어 펼쳐질 21세기 미국사는 나도 직접 경험해본 '익숙한 시절'인 까닭에 기대가 크다. 물론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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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사 산책 13 - 미국은 '1당 민주주의' 국가인가? 미국사 산책 13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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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LXXXIX / 인물과사상사 20번째 리뷰] 미국은 '다문화사회'다. 다양한 인종과 수많은 민족이 미국이라는 '하나의 사회'로 묶여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를 바라보는 미국의 보수와 진보 진영이 서로 다른 '시각'을 보이고 있다. 보수쪽은 이를 한데 섞여서 융화된 '용광로 사회'로 보았고, 진보쪽은 융화되기보다는 골고루 섞여 있는 '다양성 사회'로 보았다. 미국에서는 이를 '멜팅 스폿(융화)'과 '스뫼르고스보르드(공존)'라고 부른다. 허나 어느 시각으로 바라보던 '재미교포'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 'LA 흑인폭동(1992)'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이 폭동은 백인 경찰이 '로드니 킹'이라는 흑인을 집단 폭행한 사건으로 촉발되었는데, 전형적인 흑백갈등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는데도 폭력시위는 엉뚱하게도 '한인타운'으로 번졌고 끝내 '한국계 미국인 vs 흑인 미국인'의 양상으로 갈등양상이 폭발된 것이다. 물론 흑인들이 한인상가를 골라서 테러한 것에 대한 까닭이 있다. 바로 '두순자 사건(15살 흑인 소녀 라타샤 할린스 살해 사건)'이다. 한인상가의 주인이던 두순자가 매장에서 흑인 소녀가 '오렌지 주스'를 훔치는 것으로 오인해서 다퉜는데, 흑인 소녀가 두순자의 얼굴을 네 차례 폭력을 가하자 방어 목적으로 권총을 깨냈다가 오발탄이 그만 소녀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이었다. 당시 권총이 '고장이 난 상태'였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두순자보다 훨씬 어린 소녀였으나 덩치는 월등히 컸던 탓에 일방적인 폭행을 당하다 '고장난 권총'으로 벌어진 사건이라 무죄 판결이 났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다수의 흑인들은 '미국땅'에서 성공과 출세만을 위해 백인들에게 알량거린다며 '한국계 미국인'들을 향해 린치를 가하기 시작했고, 로드니 킹 사건으로 폭동이 시작되자 '백인 경찰'들은 백인거주지역에만 방어선을 형성하고 성난 폭동자들을 '한인타운'으로 내몰았다. 이에 LA한인사회는 밀려오는 폭동자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중무장'을 하고 방어에 나서게 되는데, 그로 인한 엄청난 사상자와 재산피해가 발생하고 말았다.

  미국사회에서 백인들이 외면한 '소수인종간 갈등'으로 비화된 LA폭동은 이후 '한인사회'와 흑인 미국인간의 대화와 타협, 그리고 화해의 장을 마련하면서 수습되었지만, 이로 인해서 '한인사회'는 자신들도 미국사회에서 얼마든지 '차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교훈을 남겼다. 물론 백인들의 '아시아계 인종차별'은 수없이 받았고 익히 알고 있는 문제였지만, 같은 '소수인종'인 흑인들과 라틴계(폭동 당시 가장 많이 참여하고, 가장 많은 폭력과 약탈을 했다) 이주민들 사이에서 '한국계 미국인'이 소외되고 미움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깨달았던 것이다. 까닭인 즉슨, 재미교포들이 미국사회에서 성공과 출세를 위해서 '백인처럼' 행세했다고 비춰진 것이다. 쉽게 말해, 백인처럼 땅을 사모으고 빈민들의 어려움을 외면하며 '저들끼리'만 똘똘 뭉쳐서 악착같이 성공과 출세를 위한 행보만을 보이는 경향이 강했던 탓이다. 백인도 아니면서 백인처럼 구는 '한국계 미국인들'의 모습이 빈곤한 미국인들의 눈에는 곱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재미교포'들도 할 말은 있다. 근면과 성실이야 한국인들의 DNA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빈곤해서 겪는 어려움은 '나라 잃은 설움'과 '전쟁 발발'로 인해 뼛속 깊이 박혀 있는데 이를 벗어나기 위해 '미국사회에서 성공한 백인'을 따라하는 것이 무에 잘못이냐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빈곤한 소수인종들의 눈에는 그런 '한국계 미국인의 모습'이 가증스럽게 보인 것이다. 그렇게나 어려움을 잘 아는 소수인종이면서 고작 1달라 남짓한 오렌지 주스를 훔쳤다고 총으로 쏴죽이느냐는 것이다. 아무리 '고장난 권총'으로 인한 명백한 실수라 하더라도 억울함에 치밀어올라 분노에 휩싸인 성난군중들의 눈에는 '남의 땅'을 빼앗고, '인권'을 유린한 백인들과 한통속으로 비춰졌을 뿐이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계 미국인'은 미국사회에서 '융화'되지 못한 것일까? '공존'하지 못한 것일까? 우리는 당당히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다. 어차피 미국사회는 '융화'되기 힘든 사회다. 다양한 인종이 살고 있는데도 '인종차별'은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으며, 수많은 민족이 이주해 갔는데도 '공존'은커녕 '각자도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 오늘날에도 미국사회는 '백인우월주의'가 팽배하다. 미국내에서조차 순수한 백인들이 점점 '소수'로 전락해가고 있는데도 미국 경제의 90%를 독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소수 엘리트가 지배하고 있는 사회에서 '융화'과 '공존'을 떠들어봐야 그들의 눈에는 들어오지도 않을 게 뻔하다. 그럼에도 미국내 다수의 유권자는 명백하게도 '유색인종'이다. 미국 인국의 절반을 넘은 지 오래이며 7~80%가 '유색인종'이며, 많이 봐줘야 백인유권자는 2~30%밖에 안 된다. 하지만 성공한 엘리트만 따로 본다면 여전히 백인들이 90% 이상이며, 꼴랑 10%도 넘지 못하는 '유색인종'만이 성공한 백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뿐이다. 미국사회도 경제적 빈부격차가 엄청나게 심각해진 것이다. 거기다 경제성장 둔화로 인해 미국에서는 '빈곤한 노동자들'이 점점 넘쳐나는 사회가 되었다. 그런데도 이런 빈곤층에 대한 '사회제도정책'마저 사회주의에 대한 반감으로 나날이 감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찍부터 이런 차별정책으로 형편없는 대우를 받고 있던 '흑인사회'에 '한국계 미국인'들이 불쏘시개를 던져준 것과 같은 효과를 낸 셈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공존'을 노래해야 할 것이다. 물론 미국사회에 녹아든 '융화정책'에 한목소리를 냄과 동시에 '한국계 미국인'으로써 자신의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다. 그래야 다시는 'LA폭동'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성공과 출세를 지향하는 것은 누구나 바라마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성공하고 출세했을 때 '약자들을 위한 정책'을 실현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심지어 트럼프 전 대통령도 '빈곤한 백인들을 위한 정책'을 시연하는 척해서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지 않았느냔 말이다. 물론 그 정책이 실제로 실현되었는지는 좀더 검증해봐야겠지만,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한 노력이라는 점에서 '한국계 미국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백인 지도자가 백인을 위한 정책을 쏟아내고, 흑인 지도자가 흑인을 위한 정책을 쏟아낼 때, 우리 '한국계 미국인' 지도자가 등장해서 모든 미국인들을 위한 정책을 쏟아낼 준비가 되었을 때, 미국은 다시금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미국사회에서 융화와 공존을 넘어선 '한국계 지도자'가 정계와 제계에 두각을 나타낼 필요가 있다. 흑인들도 하원의원을 배출하고, 상원의원을 배출한 뒤에 끝내 '오바마 대통령'을 선출하지 않았느냔 말이다. '한국계 미국인'이 주류에 나서야 할 때다. 미국의 보수와 진보는 죄다 '백인의 몫'이긴 하지만, 변화의 조짐은 계속 있어왔다. 제3당의 출현은 언제나 미국사회에서 이슈를 몰고 다녔기 때문이다. 요원한 일이긴 하지만...

  강력한 미국을 제창했던 레이건 대통령 시절을 이어받은 '아빠 부시' 대통령은 여전히 강한 미국을 표방했지만 '경제지표'가 발목을 잡았다. 그래서 클린턴과의 경쟁에서 패배하고 제42대 미대통령은 '빌 클린턴'이 당선되었다. 그 유명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말이다. 이로써 90년대 미국은 경제대국으로 다시 발돋움 했을까? 여전히 초강대국의 위용을 자랑하는 미국이었지만 '경제문제'만큼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국이기주의'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을 관세무역 장벽을 없애고 궁극적으로 미국경제의 회복을 위한 무한이기주의의 발효였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의 기술, 캐나다의 자원, 멕시코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단일 통합 시장'을 구축한다는 계획이었으나, 언제나 주도권을 잡는 쪽은 '거대자본'을 대는 쪽이었고, 주도권을 잡은 쪽에서 온갖 이권을 챙기기 마련이었다. 허나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기 마련이라, 값싼 자원과 노동력이 제공되자 상대적으로 미국내 자원가격 하락과 노동시장 불안정이 심화되면서 '높은 기술력'으로 얻은 이익보다 심해진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적 갈등만 심각해질 뿐이었다. 그나마 90년대에는 큰 문제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그 문제가 두드러지게 된 셈이다.

  이렇게 경제문제로 골머리를 썩는 와중에 '클린턴 행정부'를 곤혹스럽게 하는 일들이 여기저기에서 터지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주목을 끈 사태는 '아이티와 북한'에서 비롯되었다. 아이티 사태는 프랑스와 미국을 종종 곤란하게 했는데, 이는 따지고 보면 프랑스와 미국이 자초한 일이다. 제때에 아이티를 독립시키고 경제안정을 이룬 뒤에 민주정권이 들어서게하여 안정시켰다면 전혀 일어나지 않았을 '독재정권의 등장'과 '자연재해로 인한 심각한 경제난'인데, 아이티에서 이 두가지 문제로 곤란을 일어날 때마다 미국사회를 불안하게 만들곤 했다. 대표적인 문제가 '아이티 난민문제'다. 독재정권에 맞서다 가까운 미국으로 망명하는 것도, 경제난으로 인해 수많은 난민들이 미국으로 몰려드는 것도 '처치곤란'하긴 매한가지였기 때문이다. 한편, 1994년 북한은 '서울 불바다' 발언을 하며 영변 핵실험을 강행하겠다고 선언했다. 서구사회가 이를 방해한다면 '제2의 한국전쟁'이 발발할 것이며, 이로 인해 한반도는 다시 통일되겠지만, 남한의 핵발전소과 파괴될 것이며 미군을 비롯해 남한 인구 100만 명이 몰살 당한 뒤에야 가능할 일이라며, 미국의 전쟁시나리오 추진에 북한이 극렬한 반응을 내비치게 되었다. 이에 미국의 CIA는 북한의 발언이 괜한 발언이 아니라며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고 '클린턴 행정부'에 속속 보고를 올리고 있었단다. 이에 평화의 해결사로 지미 카터 전 미대통령이 각각 '아이티'와 '북한'에 특사로 파견되었다. 결론만 놓고 보면 카터의 특사파견은 대성공이었다. 아이티의 독재정권이 '반미정책'을 철회하였고, 북한 김일성도 한미 경제지원을 받는 대가로 '핵시설 가동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과도 잠시 '김일성 사망'으로 인해 북한은 김정일 후계자 구도의 혼란으로 남북관계는 다시 불안해졌으며, 아이티의 경제난도 하루 아침에 해결될 일이 아니기에 여전히 문제는 '현재진행중'이었다.

  그나저나 미국사회는 끊임없는 총격사건으로 인해 '폭력문제'가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수많은 미국인들이 총기사고로 죽어나가는데도 '총기소지'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총기를 들고 싸우는 강한 미국인의 이미지만 더 강해질 뿐이었다. 이러한 '마초 기질'은 강한 남성에 대한 동경을 부추겼고 이로 인한 '섹스 스캔들'과 '선정성'은 텔레비젼을 통해 '안방'까지 침투했다. 특히, 90년대 TV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선정성과 폭력성은 극을 달릴 정도였다. 수많은 평론가와 사회운동가 들의 지적에도 <베이 워치>와 같은 드라마는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해변에서 수영복 하나 달랑 입고 젊은 남녀의 몸을 클로즈 업하다가도 매회마다 '충격적인 사고'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살인사건이 동시에 벌어지는데도 미국민들의 '섹시한 등장인물들의 강한 액션'에 환호했다. 또한 '헐리우드 영화'에서는 <로보캅>과 <다이하드>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장면이 여과없이 연출되었고, <쥬라기월드>처럼 호대형 블럭버스터 영화가 연이어 성공을 거두면서 미국은 점점 폭력과 섹스로 물들어갔다. 그로 인해 '픽션'이 아닌 '논픽션'인 현실에서도 똑같이 살인, 강간, 성폭력 등등의 테러가 끊이질 않았다. 과연 이것이 미국인들이 진정 바라는 '아메리칸 드림'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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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전 서해문집 청소년 고전문학 8
채윤미 지음, 예란 그림, 송동철 해설 / 서해문집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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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Review MDCCLXXXVIII / 서해문집 12번째 리뷰] '같은 작품'을 여러 번 감상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같은 여행지를 반복해서 가도 '늘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경험은 없었던가? 같은 음식점을 가서 같은 음식을 주문했는데, 평소와 '다른 맛'을 경험한 적은 없었나? 내가 <운영전>을 세 번째 리뷰하는데 '같은 리뷰'를 쓰지 않는 까닭도 바로 그런 것이다. 바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생긴단 말이다. 이번에 주목한 내용은 바로 '궁녀들의 이유 있는 저항'이다.

  조선시대 궁녀들의 삶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면이 있음에도 '유교적 가부장, 신분제도'에 얽매인 처량한 신세라는 점에서 매우 이질적이다. 허나 이런 모습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여성인권의 향상으로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비교적 자유로운 현대에도 시댁에선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며느리로 살아야 한다. 남성은 낮에는 회사업무에 전념을 하더라도 밤이 되어 집에 돌아오면 달콤한 휴식이 허용되는 분위기인데 반해, 여성은 낮에는 회사업무, 밤에는 가사, 육아 노동까지 전담해야 하는 살인적인 노동강도에 시달려야 한다. 근래 들어서 '핵가족화'된 가정에서는 부부가 맞벌이하면서 가정의 전반적인 노동을 서로 분담해서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남녀가 할 수 있는 '분리된 영역(출산, 육아 따위)'에서는 남성이 도와주고 싶어도 할 수 없고, 그 대신에 '가사와 양육'등에서 더 많은 부담을 하는 것으로 보편화되는 추세다. 허나 조선시대 궁녀들은 이런 꿈조차 꿀 수가 없었다. 왜냐면 전문직을 가진 커리어우먼이 되었으나 그러한 경력을 갖추고서 '가정'을 꾸릴 수 없는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즉, '임금의 여자'가 되었기에 궁궐밖으로 나가는 일이 금지되었고, 궁궐밖의 남자와 교제할 수도 없었으며, 운이 좋아 '후궁'이 되고, '아들(왕자)'까지 낳게 되면 '또 다른 삶'을 살 수도 있겠으나, 그런 삶조차 '궁궐안'에서 이루어지는 한정된 삶이기에 갇혀지내는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그런 운명에 당당히 도전한 여성이 있다. 바로 안평대군의 수성궁에 살고 있는 궁녀 '운영'이다. 그녀는 '안평대군의 여자'로 평생을 살아야하는 운명에서 당당히 벗어나 '김진사의 여인'이 되고자 궁을 벗어날 꿈을 꾸었으며, 그 꿈이 실현되지 못하자 현실(궁녀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자신의 선택'에 부끄럼이 없었음을 스스로 증명하였다. 안타깝게도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아 주어진 운명에서 벗어나는 일을 실현시키지는 못하지만, '주어진 운명'대로 살아가는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다. 폐쇄적인 조선시대의 신분제도 틀 안에서 이토록 놀라운 일을 벌인 여성이 얼마나 되겠느냔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운영'이란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 더 놀라운 점은 수성궁에서 '운영'과 목숨을 함께하겠다는 '아홉 명의 궁녀'가 더 있었다는 것이다. 그 이름은 '소옥', '부용', '비경', '비취', '옥녀', '금련', '은섬', '자란', '보련'이다. 이 궁녀들은 운영과 함께 글과 시를 배운 '동문'이면서 '궁녀의 삶'에 문제의식을 공유한 '동지'였던 셈이다. 궁녀의 삶에 어떤 문제의식이 있었던가? 그건 바로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답게 살아가며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데, 어찌하여 궁녀는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고, 궁밖을 나서기만 해도 사형, 외갓남자에게 존재를 들키는 것만으로도 사형, 부모에게서 사랑을 받고 자랐는데도 혼인조차 할 수 없는 불효를 저지르게 만드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간 수많은 궁녀들이 '이유'도 모른채 궁궐에 갇혀서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하찮은 존재로 살아가는 것에 의문을 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아홉 명의 궁녀들'은 운영이 김진사와 사랑에 빠지는 범죄를 보고도 눈 감아주었고, 심지어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지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을 뿐만 아니라, 운영의 죄가 안평대군에게 들통이 나서 죽을 위기에 처하자 모두가 나서서 운영을 살려주십사 구명운동을 나선 것이다. 왜냐면 저들도 같은 궁녀로서 운영의 사랑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자신들도 '기회'가 닿았다면 운영처럼 사랑에 빠졌을 것이고, 사랑하는 님과 한가정을 이루는 꿈을 꾸었을 테고, 그 사랑과 꿈이 죽을 죄인 것을 알았다고해도 기꺼이 죽을 각오를 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이런 당찬 여성들이 참 많았을 것이다. 헌데도 우리가 익히 알지 못한 까닭은 '여인들의 목소리'에 귀담아 듣는 남정네들이 없었던 탓이고, '여성, 자신들의 의견'을 스스로 기록하지 못해서 발생한 안타까움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운영전>은 더욱 소중하다. 그런 몇 안 되는 '조선여인들의 한맺힌 절규'가 아니겠느냔 말이다.

  <운영전>에는 '금지된 사랑'의 애달픔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다. 여성도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가 있음을 목숨을 걸고 증명한 이야기다. 이러한 한맺힌 절규조차 당당히 이름을 밝혀지 못할 정도로 조선사회는 견고했다. 그래서 한맺힌 이야기를 '사랑'으로 한꺼풀 발림했고, 꿈속에서 들은 이야기라는 '몽유록'으로 또 한겹 포장을 덧붙였다. 그래도 조심스러워 그 이야기를 들었다는 '유영'이라는 사람조차 속세를 버리고 훌쩍 피안의 세계로 떠나버리는 '결말'로 마무리 지었다. 어쩌면 이런 장치가 있었기에 오늘날까지 전해진 것은 아닐까? 만약에 '궁녀의 저항정신'만을 강조한 글귀로 남겨졌다면 조선시대를 벗어나지도 못하고 불살라졌을지도 모르며, '금지된 사랑'이라는 불경스런 내용으로 전해졌다면 풍기문란하다는 이유로 소설의 내용이 왜곡되거나 윤색되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겹겹히 싸여진 채로 온전히 그 내용이 전해진 탓에 읽는 이의 눈썰미가 더욱 필요해진 이야기가 되었지만, 그 단단한 껍질을 깨고 '이야기의 진면목'을 꺼내는 대단한 독자들이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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