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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0년, 열하로 간 정조의 사신들 - 대청 외교와 『열하일기』에 얽힌 숨겨진 이야기 ㅣ 서가명강 시리즈 16
구범진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3월
평점 :
[My Review MDCCXCII / 21세기북스 25번째 리뷰] 연암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는 너무도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지만, 정작 그 책을 완독한 이는 손으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많지 않을 것이다. 나도 그 방대한 양에 질려서 띄엄띄엄 읽거나 '축약본'을 읽었을 뿐,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허나 <열하일기>가 출간되었을 18세기 말에는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웬만한 사대부 양반들은 읽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왠고 하니, 당시 건륭제의 천수제(칠순잔치)를 맞아 정조가 파견한 사신단에 박지원의 삼종형(8촌형)인 박명원을 따라서 수행원의 자격으로 연암이 함께 할 수 있었는데, 박명원이 황제가 직접 선물한 금불상을 받아 가지고 조선으로 돌아왔기 때문(봉불지사)이다. 조선은 성리학을 따르는 유교국가인데 불교에 기인한 부처상을 사대부가 직접 가지고 조선으로 되돌왔다는 사실이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의 처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셈이지만, 당시 최강대국이자 조선이 사대를 표하는 '청나라 황제'가 생일축하를 받자 그 답례로 선사한 선물인데, 조선을 대표하는 사신으로 '황제의 선물'을 거부할 수도 없지 않느냔 말이다. 이렇게 받을 수도 없고, 그러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에 대해서 마치 직접 본 것처럼 '생생한 기록'이 <열하일기>에 담겨 있다고 하니 당시의 사대부로서 읽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편, 오늘날 우리는 <열하일기>를 다루면서 조선의 실학자이자 '북학파 사상가'로서 연암 박지원의 개혁적인 관점을 부각시키곤 한다. 바야흐로 '조선의 르네상스' 시대를 편 영조, 정조의 치세에 '개혁정치가'가 직접 쓴 책이라며 당시 시대상보다 앞선 사상이 담겼다는데 큰 의의를 두고 있다는 말이다. 허나 이 책 <1780년, 열하로 간 정조의 사신들>에서는 그런 관점보다는 앞서 언급한 '봉불지사(부처를 받들어 모신 일)'에 관한 객관적인 근거(?)를 연암의 수려한 문체로 잘 포장해 변명한 책이 <열하일기>의 진면목 가운데 하나라고 풀어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을 색다른 관점에 바라보며 '(또 다른) 해석'을 풀어낸 것이다. 모든 학문이 그렇지만 '새로운 해석'은 언제나 환영할 만하다. 왜냐면 우리의 관점을 더 넑은 스펙트럼으로 확대시켜 주며 학문하는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골머리를 썩힐 일로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학문은 그런 과정을 거치며 발전하는 법이니 어쩌겠는가. 고인물이 쉬이 썩는 것처럼 '발전' 없는 학문 또한 아무 짝에도 쓸모 없긴 매한가지다. 그런 차원에서라도 '해석'을 즐기는 자세는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암튼, <열하일기>가 세세할 정도로 '봉불지사'를 다룬 덕분에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탓에 오늘날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더불어서 연암 박지원이 지니고 있던 '북학파 사상'까지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해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열하일기>를 통해서 조선과 청의 관계는 어떠한 '인식변화'를 보이게 되었을까?
인조 때 '병자호란(1636년)'을 겪으며 조선은 뼈아픈 패배를 당한 것으로도 모자라 '삼전도의 굴욕'까지 당하고 말았다. 병자호란보다 더 큰 피해를 보았던 '임진왜란(1592년)'에서도 조선은 패배하지 않았는데, 같은 오랑캐가 쳐들어온 전쟁인데 조선은 이를 막아내지 못하고 허무할 정도로 어이없게 참패를 당한 것이다. 이 당시 조선은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오랑캐에 당한 치욕을 되갚자'는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더구나 이자성의 반란으로 명나라가 멸망(1644년)한 뒤에는 조선이 섬겨야 할 나라(사대주의)가 망했으니 '중화질서'를 간직하고 지킬 나라는 조선밖에 남지 않았다는 '소중화 사상'이 떠오르며 조선 사대부들의 자긍심(?)이 스물스물 치솟아 오를 때였다. 이들은 중원땅에서 '오랑캐 왕조'가 100년을 넘지 못할 것이라 전망하며 명나라의 후예인 '한족'이 다시 부흥하여 청나라를 복속시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때를 같이 하여 조선이 '한족 부흥군'과 힘을 합쳐 '중화질서'를 다시 회복하게 될 것이라 굳게 믿었던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조선에서는 '북벌론'이 힘을 받았다. 이른바 오랑캐에게 받은 치욕을 되갚자는 운동으로 인조의 뒤를 이른 효종이 직접 관여하며 군사를 기를 정도로 열과 성을 다하기도 했다. 허나 그렇게 키운 '정벌군'은 청나라를 정벌하지 못했고, 되려 정벌하려던 청나라를 도와 '나선정벌'을 하는데 혁혁한 성과를 거두고 만다. 한마디로 조선은 청나라에 복수하지 못했다. 왜냐면 청나라가 가파른 성장을 하며 영토를 팽창시켰고, 나라를 평화롭게 안정시켰기 때문이다. 실제로 청나라는 강희제, 건륭제, 옹정제라는 훌륭한 임금이 연이어 나오며 국력을 자랑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조선에서는 여전히 '소중화 사상'이 팽배해서 이토록 강성해진 청나라를 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물론, 조선은 청나라의 '우수 조공국'으로 자리매김하며 없어진 명나라를 대신해서 '사대주의'를 견고하게 표방하고 있었다. 이에 대한 증거가 '매년 사신단'을 꾸려 청나라로 조공을 바치러 보낸 사실인데, 비록 겉으로는 사신단을 보내긴 하지만 속으로는 굴복하지 않고 호시탐탐 '북벌의 꿈'을 키워나갔다는 말이다. 이런 결의조차 효종이 붕어한 뒤에 시들해져서 '북벌의 위한 군대 양성'은 멈추게 되지만, 조선의 지배계층인 사대부들은 '실속 없는 명분'일지언정 꿋꿋하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런데 정조가 즉위하고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잔치가 열리게 되자 조선은 '청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일을 꾸미게 된다. 바로 1780년 정조의 사신단이 바로 그것이다. 이 사신단에 연암 박지원이 함께 했고, 연암은 그 사신단의 일행으로서 '낱낱이 기록하여' <열하일기>에 남겼던 것이다. 그렇게 무사히 건륭제의 칠순잔치 축하사신단이 성공적으로 일을 마치고 귀국하자, 정조는 건륭제의 선의에 보답하는 사신단을 꾸려 다시 보내게 되고, 이후 조선과 청나라의 양국은 둘도 없는 '친선관계'를 맺으며 향후 청나라가 망할 때까지 조선은 '대접'을 잘 받는 우호국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열하일기>는 바로 그런 '조선과 청의 관계개선'의 신호탄 역할을 하는 기록물이며, <열하일기>를 전후로 조선과 청나라는 '적대국'에서 '상호 우호국'으로 커다란 인식변화까지 보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커다란 '인식변화'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적대국이었던 두 나라가 서로의 이익을 위해 아낌없이 '동맹'을 맺게 된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 책 <1780년, 열하로 간 정조의 사신들>은 기존의 <열하일기>와는 크게 상관이 없는 내용이 담겨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의 관점에서 '북벌'보다 '북학'을 해서 조선의 실리를 챙기려 한 내용이 담겨 있기 않다는 얘기다. 오히려 <열하일기>의 또 다른 면모(용도)에 치중해서 <열하일기>에서 오류가 발생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 속에 담긴 '의미'가 달리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열하일기>가 쓰여진 이후에 조선과 청 사이의 관계가 크게 개선되었다는 점에서 <열하일기> 속에 등장한 '정조의 조선 사신단'의 활약에 집중했고, 그렇기에 <열하일기>를 읽을 때 새로운 관점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당부하였다. 그렇다면 이 책이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으로 봐야 할까?
<열하일기>를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 읽어야 한다면, '북벌'과 '북학'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시선'을 펼쳐야 마땅할 것이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내편'이 아니면 '적'이라고 간주하며 서로 의견이 다를 뿐인데도 서로를 '적대시'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행태가 만연해 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전세계가 부러워할 정도로 훌륭한 민주주의 국가의 면모를 자랑할 정도였는데,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내 방식'이 옳다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는 일은 추태에 가깝다. 북벌이 옳다고 생각하면 북벌을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근거로 전국민을 설득해야 올바른 처사다. 제대로 된 근거를 내세우지도 못하면서 '북벌에 반대하는 세력'을 범죄자로 내몰고, 범죄자들이 주장하는 이야기는 들을 가치도 없다면서 비상식적인 '거부'만 한다면, 정신 똑바로 차린 국민들을 설득할 수 없을 것이며, 그런 거부에 찬성하는 국민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는 '빼박 증거'로밖에 이해될 뿐이다. 반대로 '북학을 꼭 해야만 한다'면 그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를 내세워 온국민을 설득시켜야 마땅하다. 조선이라는 국가가 성장발전하기 위해서 '북벌' 또는 '북학'을 선택해야할 때, 제대로 선택을 한다면 어느 쪽이든 조선을 성장발전할 수밖에 없게 된다. 북벌에 성공해서 초강대국 청나라를 꿀꺽 집어 삼키는 결론을 얻을 것인지, 북학에 전념해서 초강대국 청나라와 함께 윈윈하는 성과를 거두던지, 어느 쪽이든 조선에 이로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관건은 '실현가능성'이 어느 쪽이 더 높은지 따지는 일이다. 그 가능성을 따지지도 전에 '내편 vs 니편'으로 나뉘어 쌈박질만 일삼는다면, 우리가 원하는 결론도 얻지 못할 뿐더러, 성장발전은커녕 안으로부터 썩어들어가 망할 수밖에 없지 않느냔 말이다.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관점'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