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 먼나라 이웃나라 14 : 중국 2 - 현대 편 - 이원복 교수님과 함께 떠나는 세계 역사 여행 업그레이드 먼나라 이웃나라 14
이원복 글.그림 / 김영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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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그레이드 먼나라 이웃나라 14 : 중국 2 현대편>  이원복 / 김영사 (2018)

[My Review MMCLXI / 김영사 33번째 리뷰] 중국을 비롯해서 동아시아 대륙의 모든 국가들의 지난 100여 년간의 현대사는 정말 너무 굴곡진 아픔의 연속이었다. 그런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 동양보다 서양이 '근대화'에 먼저 성공했다는 이유 때문이라는 점도 화가 나는 이유다. 그들은 겉으로는 '문명'을 내세우면서도 뼛속 깊이 '야만'으로 가득차 침략과 약탈만 일삼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구열강의 야욕을 그대로 벤치마킹한 '일본'은 동아시아 국가 가운데 가장 먼저 '근대화'에 성공했으면서도 문명국으로 거듭나지 못하고 뼛속 깊이 자리 잡은 '야만'을 드러내 서구열강과 마찬가지로 침략과 약탈을 하는 것에 몰두할 뿐이었다. 그로 인해 중국 같은 대부분의 동아시아 국가들은 서구열강에 모든 것이 털리고, 일본에게 또 한 번 털리는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아픔을 겪은 동아시아 각국의 나라들에게 '중국의 현대사'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을까?

한편, 중국은 역사상 '중화사상'으로 똘똘 뭉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중국의 힘이 강성할 때는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으로 콧대를 높였고, 반대로 힘이 약할 때는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원동력'으로 삼았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의 한족은 '외세의 침략'이나 '내부의 불안'이 발생할 때마다 엄청난 수의 희생을 치뤄야 했기 때문이다. 멀리 고대사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겠으나 '정확한 통계'를 낼 수 있는 기록이 많지 않기에 13세기 이후부터 손을 꼽아봐도, 몽골의 침입으로 3500만 사망, 17세기 만주족의 침략으로 2500만 사망, 20세기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때 2000만 사망을 했다고 한다. 외세의 침략으로 이만큼 피해를 봤다면, 내부의 불안으로 발생한 사망자는 19세기 태평천국의 난 때 2000만 사망, 20세기 국공 내전으로 1000만 사망, 대약진운동으로 4000만 사망, 문화대혁명으로 300만 사망, 그리고 천안문사태로 수백 만 사망(정확한 집계가 공개되지 않아 추정치)으로 중국은 안팎의 혼란을 겪을 때마다 엄청난 인명 사망과 재산 피해를 내곤 했었다.

그 결과 중국은 '강력한 통치자'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강력한 힘을 가진 '권력자'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는 모습을 띠어야 평화를 유지하고, 발전을 도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이런 경험을 너무 오랫동안 겪어왔기에 이런 사회정치 구조에 별다른 불만을 표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간 듯 싶다. 딴에는 어쩔 수 없다고 본다. 중국의 역대 통일왕조(또는 국가)는 엄청 큰 영토와 수많은 인구를 다스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넓은 영토와 많은 인구를 효과적으로 다스릴 방법은 '단 하나의 권력자'를 중심으로 삼고 똘똘 뭉치는 양상을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과거 로마제국도 영토가 넓어지고 다스릴 시민의 수가 늘어나자 '공화정'을 버리고 '황제정'을 시작하지 않았던가. 아무리 민주적인 통치 방식이 좋더라도 덩치가 커지면 민주적인 것은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러한 양상은 중국의 현대사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청 왕조가 멸망한 뒤에 수많은 군벌이 등장해서 얼마나 혼란스러웠느냔 말이다. 쑨원이 등장해서 '중화민국'을 건설했지만, 그가 강한 권력자로 등극(?)하지 못하자 위안스카이가 황제 자리를 차지하면서 권력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위안스카이는 '정통성'을 인정 받기도 전에 천명을 다하고 죽었고, 그 뒤를 '장제스'가 이어 받아 중국을 강한 힘으로 통치하려 들었다. 그러나 장제스는 강력한 라이벌 '마오쩌둥'에게 밀려날 운명이었다. 그렇게 마오쩌둥이 공산당의 힘을 빌어 새로운 '권력자'로 등극할 수 있었고, 중국은 잠시나마 안정을 취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오쩌둥의 뒤를 이어받은 권력자는 '덩사오핑'이었다. 덩사오핑까지 무소불위의 1인 독재권력을 휘두르다 덩사오핑 이후에는 '중국 공산당'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장쩌민, 후진타오, 그리고 지금의 시진핑까지 모두 '공산당'에 충성하는 권력자로 등장했고, 앞으로도 중국은 '공산당'이 중국의 인민 모두를 강력하게 휘두르는 형태로 나아갈 것이다. 물론 '공산당'이 언제까지 그럴 수 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겠지만, 중국은 앞으로도 '강한 권력자'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는 정치체제와 사회문화를 이어갈 것이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만일 중국에 '강한 권력자'가 등장하지 못한다면 어김 없이 '내부의 불안'으로 엄청난 불상사가 다시 일어날 것이고, 현대에는 '외세의 침략' 같은 일은 대규모로 진행되기 힘든 구조이지만, 만약에 중국이 대혼란에 빠진 상태에서 대규모 침략을 받게 된다면 엄청난 인명 사상과 재산 피해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 까닭에 중국은 늘 '중화사상'을 자국민에게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게도 강요하고, 강제하는 일을 반복한다. 이런 사상적 강요도 '중국의 힘'이 강성할 때는 비교적 온건하게 표현되지만, 중국 내부에 혼란이 커지면 커질수록 '자국민'에게 공포스러울 정도로 강요하며, '다른 나라'에게까지 무리를 넘어 무례할 지경으로 인정하길 요구한다. 중국의 역사가 늘 그랬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안쓰러울 정도로 발버둥을 치며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떡해서든 살아보겠다고 말이다.

이 책 <업그레이드 먼나라 이웃나라 : 중국 현대편>의 내용을 추려보면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다. 서구열강에 의해서 청 왕조가 멸망한 뒤에 중국의 지식인들은 일본의 근대화를 벤치마킹해서 '자국의 근대화'를 꾀했다. 허나 중국의 지식인들은 '근대화 교육'에 성공적이었지만, 중국의 민중들은 전혀 근대화 교육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민주적 혁명'은 불가능했던 셈이다. 그래서 쑨원이 늘 실패했던 것이다. 하지만 쑨원의 사상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결국 중국의 민중을 깨어나게 만들었다. 교육 수준이 높아지자 중국의 자발적 근대화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허나 아직도 대다수의 중국 노동자와 농민들은 이런 '근대화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해 깨우치지 못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군벌'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힘을 쥐고 있었다. 위안스카이가 대표적인 군벌이었고, 중국의 지방 곳곳에 이런 군벌들이 중앙의 통치에서 벗어나 각 지방에서의 '왕'처럼 군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구열강은 제1차 세계대전에 휘쓸리게 되었다. 중국 침탈에 열을 올리던 유럽 각국이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모국으로 돌아간 사이 '일본'이 승전국의 지위를 차지하며 패전국의 점령지역을 야금야금 빼앗기 시작했다.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은 서구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하여 신음하고 있었는데, 일본군이 등장해서 서구열강의 군대를 대신 내몰아주니 '해방군'으로 환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도 잠시였다. 일본군은 오래지 않아 본색을 드러냈고, 서구열강을 대신해서 야만적인 침탈을 시작했다. 중국도 같은 처지였고 말이다. 그렇게 중국의 동북부 지역인 '만주'와 '내몽골' 지역에 일본의 괴뢰국이 탄생했고, 일본은 이 지역을 '만몽'이라 부르면서 일본의 이익선이라 불렀다. 이를 좌시할 수 없었던 장제스는 일본의 침탈에 항의했지만, 장제스는 일본의 침략보다 더 위협적인 존재가 있다면서 다른 짓을 하기 시작한다. 바로 마오쩌둥이 이끄는 공산군 토벌이었다. 그렇게 일본의 침탈에 속수무책으로 방관하던 장제스는 '국공내전'을 일으키며 공산당 토벌에만 열을 올리게 된다.

강력한 통치자가 등장하지 못한 중국의 혼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가? 외적이 쳐들어오는 상황에서도 내부의 적을 토벌하겠다고 자국민을 학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살골'을 넣는 일을 멈춘 것은 중국 전역이 '공산화'가 되고 마오쩌둥이 '공산주의 이념'을 내세워서 강력한 독재자로 등극할 때까지였다. 비록 공산정권이 들어서긴 했지만, 강력한 지도자가 등장하자 중국은 일시에 혼란을 멈추고 '평화와 발전'을 도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공산주의는 '내부의 모순'으로 인해 성장동력을 잃어버릴 운명에 놓였고, '공산당의 부패'로 인해 인민들은 철저한 사상통제와 생활고에 시달리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중국의 대혼란을 성공적으로 극복했던 마오쩌둥은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런 중국의 혼란을 되살린 '권력자'는 다름 아닌 덩샤오핑이었다. 그는 공산주의 이념보다는 '실용'을 앞세워서 공산주의 사회체제 속에서 '자본주의'를 일부 받아들여 철저히 실리를 챙기는 개혁정책을 밀어붙였다. 그리고 이것으로 중국은 강력한 '성장모드'로 전환할 수 있었다. 사실 중국의 현대사는 '공산주의 이념(마오이즘)'을 중심으로 내세운 것을 '홍(紅)'이라 부르고, '실사구시'를 내세워 실리를 챙기는 것을 '전(專)'이라 부르는데, 이 홍과 전 가운데 어떤 것을 더 내세웠는지에 따라 성장모드가 달랐다고 볼 수도 있다. 대체로 홍의 세력이 강할 때에는 폭망하는 시기였고, 전의 세력이 강할 때에는 급성장하는 양상을 띠었다. 덩샤오핑의 개혁정책은 전형적인 '전'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덩샤오핑도 개혁정책에 한계를 보이면서 '천안문 사태'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마오쩌둥이 살아있을 때에는 공산당의 정책에 '비판'조차 할 수 없었지만, 덩샤오핑은 개혁을 부르짓었기 때문에 수많은 지식인과 학생들이 더 강력한 '개혁정책'을 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덩샤오핑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권력자가 그렇듯이 '권력의 맛'에 길들여지면, 권력을 내려놓기 싫기 마련이다. 그래서 권력에 집착하게 되고 비판을 수긍하지 못하며 차츰차츰 '독재자'가 되어 간다. 덩샤오핑도 말년에는 자신의 능력 밖을 인정하지 못하고 '독재자'로 군림하길 바라며 중국 인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눴던 것이다.

중국의 인민들은 덩샤오핑을 끝으로 '개인적인 권력자'에게 충성하지 않고, '집단적인 권력'인 '공산당'에 충성했다. 물론 이는 덩샤오핑의 개혁정책 가운데 하나였던 '헌법 제정'에 의한 것이었다. 마오쩌둥 시절에만 해도 마오의 말씀이 '헌법'보다 우위에 있었지만, 덩샤오핑은 과감한 개혁을 하며 이를 고쳐나갔다. 비록 덩샤오핑도 말년에 '독재자'로 군림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후에는 '공산당'에서 배출한 권력자가 모든 중국 인민들을 이끌어가는 양상으로 바뀐 것이다. 허나 이런 방식에도 맹점은 있었다. 개인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공산당'에 충성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중국 인민의 '개인적 인권'보다 '공산당의 권력'이 더 우위에 서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개인의 이익에 앞서 공산당의 이익을 위해서 개인은 철저한 희생을 당해도 괜찮다는 논리가 팽배해진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의 중국인들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까닭이다. 공산당의 명령(?)에 무조건 따르는 10억 인구의 힘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미중 대결'에서 전세계 사람들이 중국을 편들지 않고 미국을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응원하고 있는 것이다. 뭐, 그렇게 싸우다 둘 다 망하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 이제 우리의 선택은 결정 되었다. 중국을 응원할 수는 없지만 중국과 싸울 필요도 없다. 저 거대한 나라와 싸워서 이득을 얻을 게 없기 때문이다. 설령 이긴다한들 5000만 인구로 10억이 넘는 인구를 어찌 지배할 수 있겠는가? 저 광활한 영토를 집어 삼킬 방법도 없다. 그렇다고 미국에 충성할 필요도 없다. 미국을 혈맹이라 부르면서 영원한 친구로 생각하던 때도 있었지만, 미국은 우리를 노예 취급할 뿐이었다. 자신들의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언제든 등치고 배신 할 나라가 바로 미국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적당히 가지고 놀기에 딱 좋은 나라다. 물론 지금도 '초강대국'인 것은 맞지만, 현재의 미국은 단물 다 빠진 껌과 다를 바가 없다.

자, 이렇게 본다면 답은 하나다. 대한민국의 힘을 더 키워야 하는 방법뿐이다. 100년 전의 처지였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21세기 현재의 대한민국은 다르다. 중국도, 미국도, 만만히 볼 수 없는 나라가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은 저들의 위협에 살짝 쫄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허나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밝다. 아직까진 초강대국이라 불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런 꽃길을 갈 수 있는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꽤 높기 때문이다. 물론 가시밭길도 놓여 있다. 그 길을 밟지 않고 잘 나아가야 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싸움에 임해서도 위태롭지 않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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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원의 영어 대모험 2 - 명사의 단수와 복수, 만화로 시작하는 이시원표 초등영어 이시원의 영어 대모험 2
이시원 지음, 이태영 그림, 박시연 글, 시원스쿨 기획 / 아울북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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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원의 영어 대모험 2 : 명사의 단수와 복수>  이시원 / 박시연 / 아울북 (2020)

[My Review MMCLX / 아울북 40번째 리뷰] 내가 영어를 구사하면서 가장 헷갈려 하는 것이 바로 '명사의 단수와 복수'다. 한국어 문법에서는 '-들'이라고 간단히 구분할 수 있지만, 영어 문법에서는 단수 명사에는 '관사'라고 하는 a, an을 붙여 써야 한다. 이게 정말 헷갈린다. 이것은 고양이다. 라고 했을 때 This is cat.이라고 표현하면 틀린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 마리의) 고양이다.라는 식으로 This is a cat.이라고 표현한단다. 그런데 난 어릴 적부터 이게 정말 헷갈렸다. 그냥 단수/복수를 구분할 때 '고양이/고양이들'이라고 하면 될 것을, 'a cat/cats'로 구분하는 것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어떤 선생님도 이렇게 구분해서 쓰는 까닭에 대해서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냥 서양의 관습이 그렇고, 그들의 방식이니 따라야 한다는 식으로만 이야기하니 그냥 외울 수밖에 없었는데, 난 이런 식으로 '이유'도 모른 채 외우려 들면 잘 외우지 못한다. 아쉽게도 이 책에도 그런 설명은 따로 해주지 않았다. 1권에서는 영어를 쓰는 '앵글로색슨 족'이 유목민으로 생활했었기 때문에 '나(아군)'와 '남(적군)'을 구분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고, 그걸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에 Who am I? I am a Warrior. 라는 식으로 '나'를 인식하고, '너'를 구분하고, '우리'를 인지하는 것처럼 '인칭대명사'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 참 인상적이어서 마음에 쏙 들었는데 말이다. 참 아쉬운 대목이었다.

그렇지만 외울 땐 외우더라도 '효과적으로' 잘 외울 수 있으면 좋은 책이다. 요즘에는 시중에 나온 책들이 '이런 효율성'이 매우 좋은 편이기 때문에 어느 책을 고르더라도 손해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책도 그렇다. 그렇기에 좀 더 '자신에게 딱 맞는 책'을 고르기 위해서는 정리되어 있는 예문이 '한 눈에 쏙' 들어오는 편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명사'는 어떤 대상의 이름을 나타내는 단어이기 때문에 정말 다양한 예문이 등장한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많은 예문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책을 출간할 때에 '분량'을 정해놓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한정 예문을 써 놓을 수는 없다. 하지만 좋은 예문이 적혀 있다고 좋은 책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왜냐면 이 책은 '학습만화'이지 '문제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 중요한 것은 책속에 담긴 '주제'와 그 주제에 딱 알맞는 '에피소드'가 잘 어우러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편은 so. so.다.

이번 편에서는 영어를 즐겁게 공부하는 '예스잉글리쉬단'과 영어 공부가 지겹게 느껴지게 만드는 '노잉글리쉬단'의 대립구도가 불명확했다. 또한 '명사의 단수와 복수'를 이해하기 위해 '외계생물체(alien)'를 등장시킨 까닭도 살짝쿵 언벨런스한 느낌이었다. 굳이? 더구나 좁디 좁은 '국제우주정거장' 안에서 우주인을 납치하고 감금시키는 것도 상상불가인데, '비밀통로'까지 있어서 영웅과 악당이 활극(?)을 펼친다? 그리고 1권부터 '방귀'라는 소재는 왜 자꾸 등장시키는 것인지...어린이 독자들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서 나름의 '장치'를 한 것으로 이해는 되지만, 방귀를 너무 자주 써먹으니까 좀 식상하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뭐, 이건 어른 독자인 '나만의 관점'일 수도 있다. 실제로 어린 독자들은 이걸 재밌어 할 수도 있으니 무조건 단점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조금은 '수준'을 높여주는 것은 어떨까 싶다. 어린이 독자들의 교양 수준을 한없이 낮춰서 보는 것도 실례일테니 말이다.

1권에서 너무 감동을 한 탓인지 '눈높이'가 너무 높아진 것 같다. 2권도 나름 유익한 점이 분명 있었는데, 1권에서 감동스러웠던 '매력포인트'가 2권에서는 전혀 보이질 않아서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이 눈에 띈 모양이다. 3권에서는 다시 기대했던 '매력포인트'가 다시 두각을 드러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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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13 : 인간은 모두 호기심 대마왕 - 어린이를 위한 뇌과학 프로젝트 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김현민 그림, 정재은 글, 정재승 기획, 이고은 자문 / 아울북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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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인간탐구보고서 13 : 인간은 모두 호기심 대마왕>  정재승 / 정재은 / 아울북 (2023)

[My Review MMCLIX / 아울북 39번째 리뷰] 공부를 잘하는 사람의 뇌는 정말 다를까? 똑똑한 사람들이 똑부러지게 말을 잘 하는 것을 볼 때마다 부럽기는 하다. 그런데 정말 '똑똑한 사람'은 뇌부터 다른 걸까? 그런 호기심에 아인슈타인이 죽은 뒤에 그의 뇌를 훔쳐서(?) 전세계 과학자들에게 '아인슈타인의 뇌'를 잘게 썰어서(!) 보낸 뒤에 함께 연구를 해보자는 취지의 실험결과가 나왔는데, 엄청난 호기심의 결과치고는 꽤나 간단한 결론이 나왔다. '아인슈타인의 뇌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 일반 사람의 뇌보다 뇌세포의 수가 조금 더 많았고, 뇌피질이 조금 더 두꺼웠을 뿐이다.' 이 실험이 유족에게 허락을 받지 않고서 진행된 탓에 엄청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비난보다 '결과'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똑똑한 사람의 뇌에는 특별한 점이 없다는 사실 말이다. 하지만 이 실험은 결론부터 실패작이었다. 뇌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살아있는 뇌'를 먼저 연구했어야 하는데, 뇌과학이 발전하기 이전에 '죽은 뇌'를 가지고, 그것도 뇌 전체가 아닌 조각조각난 일부분을 가지고 제한된 연구를 해야 했으니, 그 결과가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공부 잘하는 비법은 따로 있는 것일까? 실제로 '천재의 뇌'와 '일반인의 뇌'는 큰 차이가 없다.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뇌를 활용하는 빈도'를 비교한다면 현격한 차이가 두드러진다. 다시 말해, '생각하는 힘'이 천재들에게선 남다르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공부를 잘 하고 싶다면 '생각하는 뇌'로 바꿔야 한다. 특히, '기억력'을 높이는 학습을 하면 똑똑한 뇌로 바꿀 수가 있다. 다른 말로 '메타인지 학습법'이라고도 한다. 요즘 '상위 1% 학습법'으로도 널리 알려진 학습법인데, '같은 시간'을 공부했는데도 '성적(결과)의 차이'가 보인다면 공부 효율이 좋은 학생의 학습법에 주목해보면 알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뭐, 메타인지 학습법에 관해서는 시중에 널리 나와 있는 책이 많으니 참고 삼아 읽어보시면 된다. 제목은 제각각이지만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무슨 큰 비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집중'했느냐? '산만'했느냐? 이런 정도의 차이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메타인지 학습'을 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하고 싶을 때' 하는 공부가 무진장 학습효과가 좋다는 점이다. 이 책 <정재승의 인간탐구보고서 13>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공부 잘하는 비법은 딱 하나다. 공부를 '하고 싶게' 만드는 것 말이다.

그런데 아이가 '공부를 하고 싶게 만들 방법'은 따로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딱히 없다. 우리 속담에 "말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서, 강제로 물가까지 끌고 갈 수는 있어도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니 억지로 시킬 생각은 아예 포기하는 게 좋다는 말이다. 그럼 '물을 스스로 마시도록' 꼬실 수는 있지 않을까? 바로 그렇다.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뿐이다. 그럼 아이가 공부를 스스로 하도록 꼬실 수 있는 방법에는 뭐가 있을까? 그건 바로 '호기심 자극'이다. 아이들은 경험한 바가 현저히 적고, 체험의 폭이 훨씬 좁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아무런 '경력'을 쌓지 못한 어린 뇌는 '생각하는 힘'도 아주 미약할 수밖에 없다. 천재들의 뛰어난 상상력도 애초의 시작은 아주 작은 호기심에서 무럭무럭 자란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천재라도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다. 아주 미약하더라도 '작은 호기심'이 생기고, 그런 호기심으로 '무작정 따라(모방)해' 보고, 그런 모방을 '반복'적으로 하고 또 해보는 과정이 '축적'된 뒤에야 비로소 '창의력'이 발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일련의 과정을 지치지 않고 오랫동안 '숙련'시키기 위해서라도 '자기주도학습'이라고 불리는 스스로 학습을 할 원동력을 찾지 못하면 절대로 공부를 자발적으로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게 바로 '천재'와 '평범'의 유일한 차이점인 셈이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경험해보지 않았는가? 공부가 얼마나 재미 없는 일인지 말이다. 그런데 가끔이긴 하지만 공부가 즐겁다고 느꼈던 적이 있지 않은가? 시간 가는 줄도 모를 정도로 푹 빠져서 '공부하던 경험' 말이다. 바로 진짜로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때, 우리는 남다른 집중력을 발휘하게 된다. 누구라도 이런 경험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공부하려고 책상에 앉으면 집중이 안 되지만, 뭔가에 꽂히면 '그 일'을 할 때에는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가수가 노래 부르고, 댄서가 춤을 추고,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그리고 운동선수가 '최고 기록의 순간'을 맞을 때, 이럴 때의 '집중력'이 정말 남다르지 않던가. 그걸 공부(학습)에 적용시킬 수 있다면 된다. 수학 천재, 역사 천재, 국기를 보고 나라 이름 맞추는 '신동'을 보면 어쩜 그렇게 어린 나이인데도 잘 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래서 신동들에게 비결을 물어보면 별 것 없다. 그저 '좋아서 했다'는 말만 할 것이다. 재밌으니까 한 것이고, 즐거우니까 힘든 줄도 모르고, 어려운 줄도 모르고 잘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호기심 자극'을 할 수 있는 방법을 하나 더 터득할 수 있다. 재밌고 즐겁게 공부를 하게 만드는 비법 말이다. 바로 '칭찬'이다. 공부하는 아이에게 칭찬을 하면 효과는 바로 나타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대충 두루뭉술하게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콕 짚어서 정말 잘한 것에 칭찬을 하는 것이다. 그래야 효과가 크다. 이런 칭찬을 한다는 것은 '관심'이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아이는 그런 관심을 받고 재미를 느끼고 즐거운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분이 '어렵고 힘든 상황'을 이겨내게 해준다. 사실 공부라는 것이 정말 지겨운 일이지 않은가. 초집중을 한다고 해도 고작 5분이 맥시멈이다. 아무리 집중력이 좋더라도 50분 수업 시간 내내 집중을 하는 아이는 없다. 천재도 마찬가지다. 5분 정도 집중한 뒤에는 '딴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천재들은 그런 '딴 생각'마저 호기심과 관련이 있는, 즉, 공부와 관련이 있는 '잡념'에 빠지는 반면,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공부와 전혀 상관이 없는, 다시 말해, 지금 하고 있는 공부와 '연관'시킬 줄 모르는 딴 생각에 빠져서 비효율적인 학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걸 '메타인지 학습법'에서는 '연상법'과 '장기기억'의 메커니즘을 연결시켜서 바꿔주는 방법이 있노라고 역점을 두고 있는데, 사실 대단한 비법도 아닌 셈이다.

정리하자면, 우리 아이를 공부 잘하는 뇌로 바꿔주고 싶다면 '아이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잘 관찰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그 '관심사'에 무한 칭찬으로 효과를 증폭시켜 줘야 한다. 그런 다음에 노련하게 '아이의 관심사'와 '주요 학습내용'과 잘 연계시켜주는 것이 학부모에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다. 비법 아닌 비법을 소개하자면, 내가 '공대' 갈 수 있는 수학실력의 비결은 초중등 시절에 질리도록 했던 '부루마블'이었다. 방학기간이면 하루종일 그 게임만 했다. 단지 주사위를 던지고 땅을 사고 건물을 지어서 상대방의 자산보다 더 많은 부를 쌓으면 승리하는 게임인데, 그 일련의 과정에서 '확률'과 '전략'을 터득해 승리하는 기쁨을 알고 있었기에, 수학은 늘 잘하는 과목이어야만 했고, 자신감이 넘쳐 있었다. 그래서 여러 차례 어려운 고비를 맞았지만, '나는 수학을 잘 한다'는 이미지 트레이닝(?) 만으로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고, 늘 상위권의 수학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책 <정재승의 인간탐구보고서 13>에서도 공부하고는 담을 쌓았던 '생선파의 두목(?)'인 대호가 공부에 재미는 느끼게 된 계기도 공부 잘하는 예쁜 여학생과 우연한 만남을 가졌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여학생이 생겼는데, 마침 그 여학생이 공부를 잘 했고, 서로 사귀기 위해서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하라고 해도 하지 않던 공부인데, 정말 공부를 잘 하게 된 비결이 너무 엉뚱하지 않은가? 그런데 사실은 '뇌과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엉뚱한 결과가 아니다. 뇌에서 '좋아한다'는 자극을 받고 난 뒤의 자연스런 행동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뇌는 그걸 계속 하려고 할 뿐이다. 그게 사랑이든, 놀이든, 공부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하면 기분이 좋기 때문에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뇌의 메커니즘은 그렇게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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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더 잘 알아야 할 교양 : 에너지 위기, 어디까지 왔나? 내인생의책 세더잘 시리즈 7
이완 맥레쉬 지음, 박미용 옮김 / 내인생의책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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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더 잘 알아야 할 교양 7 : 에너지 위기, 어디까지 왔나?>  이완 맥레쉬 / 박미용 / 내인생의책 (2012) [원제 : Energy Crisis (2005)]

[My Review MMCLVIII / 내인생의책 14번째 리뷰] 산업혁명 이후, 우리는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고 있다. 산업을 발전시키면 경제가 더 커지고, 더 활발해지기 때문에 더 풍요롭고 윤택한 삶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바로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더 효율이 높은 에너지를 속속 찾아냈다. 석탄에서, 석유로, 석유에서 핵분열로, 핵분열에서 핵융합으로. 우리는 첨단기술을 개발하면서 아주 효율이 높은 에너지를 찾을 수 있었고, 그로 인해 경제규모를 더욱 키우며 더 잘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위기가 찾아왔다. 기존의 에너지원으로 쓰던 '화석연료'를 너무 많이 쓴 탓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기후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화석연료를 너무 많이 태워서 대기중에 '온실가스(이산화탄소, 메테인 등)'의 농도가 짙어져서 지구가 점점 뜨거워진 것이다. 그로 인해 '해수면 상승', '이상기온', '허리케인' 등등 단순한 자연재해로만 볼 수 없는 이상한 현상들이 자주 포착되었고, 그로 인한 피해가 심각할 정도가 되었다.

다행히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핵발전소'를 가동하면 지구의 기후변화에 영향를 끼치지 않는 청정에너지를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핵에너지는 절대로 '청정에너지'가 아니었다. 2011년 3월 11일에 일본 동부해안을 강타한 '동일본 대지진'은 엄청난 강진이었고, 지진으로 인한 피해도 상당했지만, 그보다는 해안가를 휩쓸고 지나간 '쓰나미(지진해일)' 때문에 더 큰 피해를 보았다. 그 피해 가운데 가장 심각했던 것은 바로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로 인한 방사능 유출로 인해 후쿠시마 인근 지역의 주민은 전부 소개시키고 피해보상을 하고 있으며, 더 우려스러운 점은 일본정부가 2025년인 지금까지도 '복구중'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상 '핵발전소 가동'이 얼마만큼 큰 위험성을 갖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긴 1986년에 단순 조작 실수로 인한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사고'와 비슷한 양상이다. 체르노빌 지역 역시 지금까지 방사능 누출로 인한 '접근금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러-우 전쟁'으로 인해 전장으로 변한 상태지만 말이다. 암튼, 한때 '청정에너지'로 불렸던 핵에너지는 '방사능 유출'이 발생하면 그 즉시 엄청난 피해를 주는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청정에너지' 지위를 박탈 당했다. 또한 핵에너지는 결코 값싼 에너지가 아니라는 것으로도 '좋은 에너지'가 아니라는 판정을 받았다. 일단 전세계적으로 '우라늄 매장량'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재처리 과정'을 거치면 '플루토늄' 등으로 재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꽤 효율적인 에너지 자원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에너지 '생산 단가'는 매우 낮은 편인데 반해서 '핵에너지'를 뽑아 쓰고 남은 쓰레기 처리 비용이 너무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이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하기 위해서 땅속 깊이 200미터 이상으로 파고 들어야 하고, 그리고 5미터가 넘는 콘크리트 벽으로 완벽히 감싸서 '방사능'이 조금이라도 누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하고 깔끔하게 폐기해야 하는데 드는 비용이 가히 천문학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핵발전소의 '사용기한'이 보통 20년 정도인데, 이 사용기한이 넘은 핵발전소를 정지하고, 폐기하는데 드는 비용 또한 엄청나다는 점에서 '핵에너지'는 절대 효율이 좋은 에너지도 아니며, 전혀 위험하지 않은 '안전한 에너지'도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래서 위험한 핵에너지를 대신해서 값싸고 깨끗한 '청정에너지'로 '천연가스'가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천연가스가 내뿜는 이산화탄소와 메테인의 양이 현저히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화석연료'인 까닭에 온실가스 배출에서 완전 자유롭지는 않다. 그럼 온실가스 배출을 전혀 하지 않는 깨끗한 에너지는 무엇일까? 바로 '재생에너지'다. 재생에너지의 장점은 자연에서 얻는 에너지이기 때문에 자연환경을 파괴하지도 않고, 훼손시키지도 않으며, 가장 중요한 '온실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요즘 '기후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서 전세계는 '재생에너지'만을 사용해서 제품을 생산하기도 약속하는 'RE100'을 2040년에는 완벽하게 달성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만약 재생에너지가 아닌 재래식 화석에너지를 이용해서 만든 제품에는 엄청난 부가가치세를 매기는 방식으로 '무역상품'에서 저절로 퇴출되게 만들겠다고 한다. 그래서 전세계가 '재생에너지'를 강제로 쓰게 된다면 '기후위기'를 잘 극복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는중이다. 물론, 그런 실효를 기대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이 중론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든 '재생에너지'를 더 많이 쓰고 '화석에너지'는 점차 줄여나가겠다는 의도가 명백히 보이기 때문에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으로 적극 지지하고 싶긴 하다.

그런데 '재생에너지'는 장점만 있고 단점은 없을까? 실제로 태양광에너지를 모으는 장치에서 '화재 발생' 빈도가 빈번한 것이 사실이고, 바람에너지를 활용하는 '풍력 발전기'는 바람이 불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을 뿐더러, 원하는만큼 많은 양의 에너지를 생산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발전소를 촘촘히 여러 개를 설치해야 하는 문제점도 있을 뿐더러, 자연경관을 해치기도 하고, 엄청 빨리 도는 바람개비(날개) 때문에 애꿎은 새들이 부딪혀서 죽는 일이 굉장히 많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풍력발전소는 고장도 자주 일어난다는 단점이 가장 크다. 또, 수력발전소나 조력발전소, 조석발전소 등은 조그만 규모로 만들었을 때에는 '여러 개'를 만든다는 조건 하에 꽤 효율이 높은 '재생에너지'를 얻을 수 있어서 효과만점이란다. 그런데 이런 발전소를 수십 개 만들 수 있도록 허가받는 일이 더 힘든 일이다. 그리고 규모가 작으면 정부의 관점에서 별로 실익이 없기 때문에 '댐 건설 규모'를 자꾸 키워서 크게 만들려고 하기 마련이다. 그래야 대규모 공사가 되기 때문에 건설 쪽의 경기부양에도 효과가 크고, 일자리 창출 효과도 키우기 위해서 '건설되는 댐 규모'를 키우는 방향으로 잡기 십상이다. 그런데 큰 댐을 만들게 되면 '환경 파괴'가 그만큼 커지게 된다. 또한 '자연생태'에도 악영향을 끼쳐서 '물길'이 막히거나 달라져서 자연지형이 바뀌는 것으로 시작해서 댐 안쪽에 엄청난 양의 '토사물'이 쌓이게 되면 '고인물'이 썩듯 댐 주변에 악취가 발생하고, 오염도 쉽게 발생하게 되어서 이익보다 손실이 더 큰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또 '수몰지역'이 넓어지게 되면 그 지역에 살고 있던 사람도 강제로 떠나야 하고, 그 지역의 모든 것이 '물속'으로 가라앉기 때문에 또 다른 피해를 낳게 되는 단점이 분명히 있다.

그래서 '재생에너지'가 기후 위기를 극복하고 지구환경도 되살리는 깨끗한 이미지를 갖고 있긴 하지만, 완벽하게 장점만 가지고 있는 '청정에너지'는 아니라는 점을 꼭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당장 '기후 위기'와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기에 너무나도 좋은 이점이 있기에 관심이 높은 것이다. 그렇다면 '재생에너지'를 적극 사용하게 되면 우리가 그간 걱정하고 우려했던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에너지 위기'가 사라지게 되는 걸까? 지속 가능하고 깨끗한 에너지를 제공하는 기술을 확보하면 일단 큰 문제는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만, 재생에너지로 혜택을 보는 나라는 선진국과 강대국 들 뿐이고, 개발도상국으로 불리는 후진국과 약소국 들에게는 오히려 상황이 더욱 좋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재생에너지'를 100% 쓸 수 있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선진국과 첨단기술력을 갖춘 강대국 들은 자신들의 부를 아낌없이 투자해서 더욱 효율 높은 '재생에너지'를 충분히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빈곤한 후진국과 첨단기술을 갖지 못한 약소국 들은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나라들에게 '기술력'도 사오고, '제품'도 사다 쓸 수밖에 없어서 양극화는 더욱더 심해질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후진국과 약소국 들은 '재생에너지 원천기술'을 갖기 위해 R&D 분야에 더 많은 투자를 하며 전국민의 허리띠를 졸라매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허나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그렇게 세계는 더욱 불공정해지고, 불평등해진 탓에 '세계대전'과 같은 비극과 혼란이 다시 찾아올 수도 있다.

이 책이 출간된 2005년 쯤에는 당장 코앞에 닥친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개발'에 앞장 서는 것만으로 최선의 결과를 얻을 것으로 전망했지만, 2025년이 된 지금은 심각한 '경제 불균형'으로 인한 문제가 전세계를 위기로 내몰고 있는 상황이라 '기후 위기' 같은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난 듯도 싶다. 언제 어디서 전쟁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재생에너지'를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돈을 쏟아부어야 할 때인데, '경제위기'에 이어서 난데 없이 '전쟁위기'까지 등장하면서 '기후위기'가 후순위로 밀려나는 듯한 인상마저 주는 요즘이다. 허나 가장 심각한 위기는 여전히 '기후위기'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인류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는 곧 '에너지위기'이기도 하다. 인류는 점점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에너지를 충당하기 위해서 다시 '화석연료'를 더 많이 사용하게 된다면, '기후위기'는 절대 극복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로 변하고 만다. 이 위기만큼은 결사적으로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경제위기'도 막고, '전쟁위기'도 막고, '기후위기'도 막기 위해서라도 '에너지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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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사장의 지대넓얕 11 : 시공간의 비밀 -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생각을 넓혀 주는 어린이 교양 도서
채사장.마케마케 지음, 정용환 그림 / 돌핀북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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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사장의 지대넓얕 11 : 시공간의 비밀>  채사장, 마케마케 / 돌핀북 (2024)

[My Review MMCLVII / 돌핀북 11번째 리뷰] 솔직히 말하자면, 그동안 '양자역학'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뉴턴이 '고전 물리학'을 최종 정리한 뒤에 아인슈타인이 등장해서 뉴턴을 뛰어넘는 '상대성 이론'을 밝혀내면서 '양자역학의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를 제공했는데, 정작 아인슈타인은 만물이 고정불변이라는 '고전 물리학'에 집착하면서, 모든 것은 예측될 뿐, 고정된 것은 없다는 양자역학(불확정성의 원리)을 끝내 부정했기 때문이다. "신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도 바로 여기에서 기원한 것이다.

그런데 난 이런 아인슈타인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왜 고전 물리학의 패러다임을 깨버렸으면서도 어째서 '현대 물리학'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일까? 그런데 이 책 <채사장의 지대넓얕 11>을 읽으니 드디어 이해가 되었다. 바로 토마스 쿤이 지적했던 '패러다임의 문제'였던 것이다. 과학은 혁명적으로 급변하지, 점진적으로 발전하면서 변화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 혁명은 '정치적인 권력 투쟁의 결과'처럼 일관성도 없고, 방향성도 없는 '수평적 변화'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진보를 함에 있어서도 '지체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인슈타인도 바로 그 '지체현상'을 보인 것 뿐이었던 것이다. 그동안에는 그렇게 똑똑한 사람이 왜 '현대 물리학'의 문을 활짝 열고서 다른 과학자들이 다 건너갈 때, 아인슈타인 혼자만 '고전 물리학'에 남으려 했는지 도통 이해를 할 수 없었는데, 이 책에서 '양자역학의 역사'와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을 비교분석하면서 보여주니 쉽게 이해가 되었던 셈이다. 정말이지 채사장의 인문학적 교양은 정말 범접하기 힘든 경지에 올랐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대단하다 정말.

채사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갈릴레이, 뉴턴,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자들은 '고전 물리학'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원인과 결과'가 딱 맞아떨어지는 결정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증명하자 본격적인 '양자역학의 시대'가 열렸고, 흔히 '코페하겐 학파'로 불리는 닐스 보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볼프강 파울리, 막스 보른 같은 과학자들이 등장했고, 이들은 소립자의 세계를 연구하며 '현대 물리학'을 크게 발전시켰다. 그리고 이들은 양자역학의 결과값이 확률로만 예측할 수 있을 뿐, 확정된 것은 없다고 보았기 때문에 비결정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정리하면, 고전 물리학자들은 '절대주의'에 속하고, 현대 물리학자들은 '상대주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인슈타인 이후 '양자역학'은 크게 발전하였다. 그리고 소립자를 연구하면서 '고전 물리학'의 결정론적인 세계관으로는 결코 해석할 수 없는 '미시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러자 수많은 과학자들은 설왕설래를 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도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고정불변의 법칙'이 존재한다고 믿는 과학자들이 그 법칙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좀처럼 그 법칙은 찾을 수 없었다. 이런 회의감이 들자 과학자들은 점점 '상대주의'적 관점으로 모든 것은 정해진 것이 없고, 오직 확률로만 예측 가능할 뿐이라는 '비결정론적인 세계관'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런 세계관이 바로 '양자역학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그 예측이 매우 정확했기에 오늘날의 현대 기술은 '양자역학'을 바탕으로 큰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은 '정해진 것'이 없고, 관측자의 관찰만이 유일한 결정 방법이고, 관찰되지 않을 경우에는 그저 확률에 의존해야 하는 것일까? 쉽게 말해서, 우리가 달의 존재 유무도 '관측'으로만 결정할 수 있고, 관측하지 않거나 달을 떠올리지 않는다면 달은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왜냐면 '결정'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뭔가 '괴리감'이 들지 않는가? 우리는 '과학'에 대한 믿음이 거의 절대적인 삶을 살고 있는데, 현대 과학은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며, 확률적으로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이따위 과학(!)'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이는 '고전 과학'에 길들여진 탓이 클 것이다. 갈릴레이나 뉴턴의 시대 때만해도 우리는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 같은 '과학주의'에 절대적 믿음을 부여했다. 그래서 사기꾼들의 뻔한 속임수일지라도 "과학자들의 말에 따르면..."라는 문구만 곁들였을 뿐인데도 '신뢰도'는 향상한다. 이것이 바로 '결정론적 세계관'에 길들여진 대중들의 생각이다. 그런데 현대 물리학(양자역학)에서는 이런 맹신이 위험하게 된 것이다. 왜냐면 아직까지도 많은 대중들은 '비결정론적 세계관'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비결정론적 세계관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양자역학의 결실'인 스마트폰은 거의 모두가 손에 들고 다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마트폰에서 '눈으로 보는 세상'은 사실은 전부다 '허상(가상)'에 불과하다. '실제'가 아닌 디지털 세상에 구현된 이미지와 텍스트를 보여줄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허상에는 온갖 '거짓'이 난무하고 있다. 그렇기에 스마트폰 속 세상을 절대로 '맹신'해서는 안 된다. 수많은 정보를 회의적으로 비판하고, 그 가운데 자신에게 꼭 필요한 정보, 유익한 정보, 신뢰할 수 있는 정보 등을 따로 걸러내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지금 쓰여 있는 '이 글'도 어떤 이의 주관적 생각일 뿐, 100% 사실만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물론 나처럼 선하고 착한 사...쿨럭쿨럭

우리는 이제 '불확정성의 원리'로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하고 싶어도 그럴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자역학이란 과학이 발전한 세상을 잘 헤쳐나가며 살기 위해서는 '철학'이 필요해지게 되었다. 이 책의 다음 편이 바로 '철학'인 이유다. 참 신비롭지 않은가? 과학이 첨단을 걸을 때엔 과학자도 철학을 연구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말이다. 물론 절대적인 '고전 철학'이 아닌 데카르트 이후 '고정불변의 것'이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결국 세상은 '변화무쌍'한 것이 훨씬 더 많다고 깨우친 근현대 철학자들을 조명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러다보면 '철학의 기초'를 닦은 고전 철학자들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말이다. 참으로 학문의 길은 멀고도 멀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공부할 것이 많아지는 것을 깨닫게 된 사람은 절로 고개를 숙이고 겸손해지는 법이다. 옛 어른들이 "공부해야지"라고 하신 말씀은 알고 보니 "겸손해져야지"라는 말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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