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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그레이드 먼나라 이웃나라 14 : 중국 2 - 현대 편 - 이원복 교수님과 함께 떠나는 세계 역사 여행 ㅣ 업그레이드 먼나라 이웃나라 14
이원복 글.그림 / 김영사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업그레이드 먼나라 이웃나라 14 : 중국 2 현대편> 이원복 / 김영사 (2018)
[My Review MMCLXI / 김영사 33번째 리뷰] 중국을 비롯해서 동아시아 대륙의 모든 국가들의 지난 100여 년간의 현대사는 정말 너무 굴곡진 아픔의 연속이었다. 그런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 동양보다 서양이 '근대화'에 먼저 성공했다는 이유 때문이라는 점도 화가 나는 이유다. 그들은 겉으로는 '문명'을 내세우면서도 뼛속 깊이 '야만'으로 가득차 침략과 약탈만 일삼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구열강의 야욕을 그대로 벤치마킹한 '일본'은 동아시아 국가 가운데 가장 먼저 '근대화'에 성공했으면서도 문명국으로 거듭나지 못하고 뼛속 깊이 자리 잡은 '야만'을 드러내 서구열강과 마찬가지로 침략과 약탈을 하는 것에 몰두할 뿐이었다. 그로 인해 중국 같은 대부분의 동아시아 국가들은 서구열강에 모든 것이 털리고, 일본에게 또 한 번 털리는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아픔을 겪은 동아시아 각국의 나라들에게 '중국의 현대사'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을까?
한편, 중국은 역사상 '중화사상'으로 똘똘 뭉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중국의 힘이 강성할 때는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으로 콧대를 높였고, 반대로 힘이 약할 때는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원동력'으로 삼았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의 한족은 '외세의 침략'이나 '내부의 불안'이 발생할 때마다 엄청난 수의 희생을 치뤄야 했기 때문이다. 멀리 고대사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겠으나 '정확한 통계'를 낼 수 있는 기록이 많지 않기에 13세기 이후부터 손을 꼽아봐도, 몽골의 침입으로 3500만 사망, 17세기 만주족의 침략으로 2500만 사망, 20세기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때 2000만 사망을 했다고 한다. 외세의 침략으로 이만큼 피해를 봤다면, 내부의 불안으로 발생한 사망자는 19세기 태평천국의 난 때 2000만 사망, 20세기 국공 내전으로 1000만 사망, 대약진운동으로 4000만 사망, 문화대혁명으로 300만 사망, 그리고 천안문사태로 수백 만 사망(정확한 집계가 공개되지 않아 추정치)으로 중국은 안팎의 혼란을 겪을 때마다 엄청난 인명 사망과 재산 피해를 내곤 했었다.
그 결과 중국은 '강력한 통치자'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강력한 힘을 가진 '권력자'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는 모습을 띠어야 평화를 유지하고, 발전을 도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이런 경험을 너무 오랫동안 겪어왔기에 이런 사회정치 구조에 별다른 불만을 표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간 듯 싶다. 딴에는 어쩔 수 없다고 본다. 중국의 역대 통일왕조(또는 국가)는 엄청 큰 영토와 수많은 인구를 다스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넓은 영토와 많은 인구를 효과적으로 다스릴 방법은 '단 하나의 권력자'를 중심으로 삼고 똘똘 뭉치는 양상을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과거 로마제국도 영토가 넓어지고 다스릴 시민의 수가 늘어나자 '공화정'을 버리고 '황제정'을 시작하지 않았던가. 아무리 민주적인 통치 방식이 좋더라도 덩치가 커지면 민주적인 것은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러한 양상은 중국의 현대사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청 왕조가 멸망한 뒤에 수많은 군벌이 등장해서 얼마나 혼란스러웠느냔 말이다. 쑨원이 등장해서 '중화민국'을 건설했지만, 그가 강한 권력자로 등극(?)하지 못하자 위안스카이가 황제 자리를 차지하면서 권력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위안스카이는 '정통성'을 인정 받기도 전에 천명을 다하고 죽었고, 그 뒤를 '장제스'가 이어 받아 중국을 강한 힘으로 통치하려 들었다. 그러나 장제스는 강력한 라이벌 '마오쩌둥'에게 밀려날 운명이었다. 그렇게 마오쩌둥이 공산당의 힘을 빌어 새로운 '권력자'로 등극할 수 있었고, 중국은 잠시나마 안정을 취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오쩌둥의 뒤를 이어받은 권력자는 '덩사오핑'이었다. 덩사오핑까지 무소불위의 1인 독재권력을 휘두르다 덩사오핑 이후에는 '중국 공산당'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장쩌민, 후진타오, 그리고 지금의 시진핑까지 모두 '공산당'에 충성하는 권력자로 등장했고, 앞으로도 중국은 '공산당'이 중국의 인민 모두를 강력하게 휘두르는 형태로 나아갈 것이다. 물론 '공산당'이 언제까지 그럴 수 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겠지만, 중국은 앞으로도 '강한 권력자'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는 정치체제와 사회문화를 이어갈 것이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만일 중국에 '강한 권력자'가 등장하지 못한다면 어김 없이 '내부의 불안'으로 엄청난 불상사가 다시 일어날 것이고, 현대에는 '외세의 침략' 같은 일은 대규모로 진행되기 힘든 구조이지만, 만약에 중국이 대혼란에 빠진 상태에서 대규모 침략을 받게 된다면 엄청난 인명 사상과 재산 피해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 까닭에 중국은 늘 '중화사상'을 자국민에게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게도 강요하고, 강제하는 일을 반복한다. 이런 사상적 강요도 '중국의 힘'이 강성할 때는 비교적 온건하게 표현되지만, 중국 내부에 혼란이 커지면 커질수록 '자국민'에게 공포스러울 정도로 강요하며, '다른 나라'에게까지 무리를 넘어 무례할 지경으로 인정하길 요구한다. 중국의 역사가 늘 그랬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안쓰러울 정도로 발버둥을 치며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떡해서든 살아보겠다고 말이다.
이 책 <업그레이드 먼나라 이웃나라 : 중국 현대편>의 내용을 추려보면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다. 서구열강에 의해서 청 왕조가 멸망한 뒤에 중국의 지식인들은 일본의 근대화를 벤치마킹해서 '자국의 근대화'를 꾀했다. 허나 중국의 지식인들은 '근대화 교육'에 성공적이었지만, 중국의 민중들은 전혀 근대화 교육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민주적 혁명'은 불가능했던 셈이다. 그래서 쑨원이 늘 실패했던 것이다. 하지만 쑨원의 사상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결국 중국의 민중을 깨어나게 만들었다. 교육 수준이 높아지자 중국의 자발적 근대화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허나 아직도 대다수의 중국 노동자와 농민들은 이런 '근대화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해 깨우치지 못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군벌'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힘을 쥐고 있었다. 위안스카이가 대표적인 군벌이었고, 중국의 지방 곳곳에 이런 군벌들이 중앙의 통치에서 벗어나 각 지방에서의 '왕'처럼 군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구열강은 제1차 세계대전에 휘쓸리게 되었다. 중국 침탈에 열을 올리던 유럽 각국이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모국으로 돌아간 사이 '일본'이 승전국의 지위를 차지하며 패전국의 점령지역을 야금야금 빼앗기 시작했다.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은 서구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하여 신음하고 있었는데, 일본군이 등장해서 서구열강의 군대를 대신 내몰아주니 '해방군'으로 환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도 잠시였다. 일본군은 오래지 않아 본색을 드러냈고, 서구열강을 대신해서 야만적인 침탈을 시작했다. 중국도 같은 처지였고 말이다. 그렇게 중국의 동북부 지역인 '만주'와 '내몽골' 지역에 일본의 괴뢰국이 탄생했고, 일본은 이 지역을 '만몽'이라 부르면서 일본의 이익선이라 불렀다. 이를 좌시할 수 없었던 장제스는 일본의 침탈에 항의했지만, 장제스는 일본의 침략보다 더 위협적인 존재가 있다면서 다른 짓을 하기 시작한다. 바로 마오쩌둥이 이끄는 공산군 토벌이었다. 그렇게 일본의 침탈에 속수무책으로 방관하던 장제스는 '국공내전'을 일으키며 공산당 토벌에만 열을 올리게 된다.
강력한 통치자가 등장하지 못한 중국의 혼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가? 외적이 쳐들어오는 상황에서도 내부의 적을 토벌하겠다고 자국민을 학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살골'을 넣는 일을 멈춘 것은 중국 전역이 '공산화'가 되고 마오쩌둥이 '공산주의 이념'을 내세워서 강력한 독재자로 등극할 때까지였다. 비록 공산정권이 들어서긴 했지만, 강력한 지도자가 등장하자 중국은 일시에 혼란을 멈추고 '평화와 발전'을 도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공산주의는 '내부의 모순'으로 인해 성장동력을 잃어버릴 운명에 놓였고, '공산당의 부패'로 인해 인민들은 철저한 사상통제와 생활고에 시달리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중국의 대혼란을 성공적으로 극복했던 마오쩌둥은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런 중국의 혼란을 되살린 '권력자'는 다름 아닌 덩샤오핑이었다. 그는 공산주의 이념보다는 '실용'을 앞세워서 공산주의 사회체제 속에서 '자본주의'를 일부 받아들여 철저히 실리를 챙기는 개혁정책을 밀어붙였다. 그리고 이것으로 중국은 강력한 '성장모드'로 전환할 수 있었다. 사실 중국의 현대사는 '공산주의 이념(마오이즘)'을 중심으로 내세운 것을 '홍(紅)'이라 부르고, '실사구시'를 내세워 실리를 챙기는 것을 '전(專)'이라 부르는데, 이 홍과 전 가운데 어떤 것을 더 내세웠는지에 따라 성장모드가 달랐다고 볼 수도 있다. 대체로 홍의 세력이 강할 때에는 폭망하는 시기였고, 전의 세력이 강할 때에는 급성장하는 양상을 띠었다. 덩샤오핑의 개혁정책은 전형적인 '전'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덩샤오핑도 개혁정책에 한계를 보이면서 '천안문 사태'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마오쩌둥이 살아있을 때에는 공산당의 정책에 '비판'조차 할 수 없었지만, 덩샤오핑은 개혁을 부르짓었기 때문에 수많은 지식인과 학생들이 더 강력한 '개혁정책'을 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덩샤오핑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권력자가 그렇듯이 '권력의 맛'에 길들여지면, 권력을 내려놓기 싫기 마련이다. 그래서 권력에 집착하게 되고 비판을 수긍하지 못하며 차츰차츰 '독재자'가 되어 간다. 덩샤오핑도 말년에는 자신의 능력 밖을 인정하지 못하고 '독재자'로 군림하길 바라며 중국 인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눴던 것이다.
중국의 인민들은 덩샤오핑을 끝으로 '개인적인 권력자'에게 충성하지 않고, '집단적인 권력'인 '공산당'에 충성했다. 물론 이는 덩샤오핑의 개혁정책 가운데 하나였던 '헌법 제정'에 의한 것이었다. 마오쩌둥 시절에만 해도 마오의 말씀이 '헌법'보다 우위에 있었지만, 덩샤오핑은 과감한 개혁을 하며 이를 고쳐나갔다. 비록 덩샤오핑도 말년에 '독재자'로 군림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후에는 '공산당'에서 배출한 권력자가 모든 중국 인민들을 이끌어가는 양상으로 바뀐 것이다. 허나 이런 방식에도 맹점은 있었다. 개인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공산당'에 충성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중국 인민의 '개인적 인권'보다 '공산당의 권력'이 더 우위에 서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개인의 이익에 앞서 공산당의 이익을 위해서 개인은 철저한 희생을 당해도 괜찮다는 논리가 팽배해진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의 중국인들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까닭이다. 공산당의 명령(?)에 무조건 따르는 10억 인구의 힘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미중 대결'에서 전세계 사람들이 중국을 편들지 않고 미국을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응원하고 있는 것이다. 뭐, 그렇게 싸우다 둘 다 망하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 이제 우리의 선택은 결정 되었다. 중국을 응원할 수는 없지만 중국과 싸울 필요도 없다. 저 거대한 나라와 싸워서 이득을 얻을 게 없기 때문이다. 설령 이긴다한들 5000만 인구로 10억이 넘는 인구를 어찌 지배할 수 있겠는가? 저 광활한 영토를 집어 삼킬 방법도 없다. 그렇다고 미국에 충성할 필요도 없다. 미국을 혈맹이라 부르면서 영원한 친구로 생각하던 때도 있었지만, 미국은 우리를 노예 취급할 뿐이었다. 자신들의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언제든 등치고 배신 할 나라가 바로 미국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적당히 가지고 놀기에 딱 좋은 나라다. 물론 지금도 '초강대국'인 것은 맞지만, 현재의 미국은 단물 다 빠진 껌과 다를 바가 없다.
자, 이렇게 본다면 답은 하나다. 대한민국의 힘을 더 키워야 하는 방법뿐이다. 100년 전의 처지였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21세기 현재의 대한민국은 다르다. 중국도, 미국도, 만만히 볼 수 없는 나라가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은 저들의 위협에 살짝 쫄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허나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밝다. 아직까진 초강대국이라 불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런 꽃길을 갈 수 있는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꽤 높기 때문이다. 물론 가시밭길도 놓여 있다. 그 길을 밟지 않고 잘 나아가야 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싸움에 임해서도 위태롭지 않은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