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 개정증보판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2
유성룡 지음, 김흥식 옮김 / 서해문집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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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평화를 단박에 깨뜨린 '임진왜란'은 자칫 조선을 멸망시키고 일본의 지배를 받거나 엄청난 피해로 인해서 '망국의 지름길'을 열어버리는 일이 될 뻔했다. 우여곡절 끝에 '조선의 승리'로 끝맺긴 했으나, 조선이 다시 부흥하지 못하고 300여 년간 골골 대다가 끝내 일제에게 '망국'을 당하고 말았다.

 

  여말선초 시절, '왜구'들에게 큰 피해를 입었을 때는 최영, 이성계, 최무선 등의 걸출한 인물이 있어서 '멸문지화'를 당하지는 않았다. 비록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긴 하였으나 '역성혁명'으로 인해 비교적 안정적인 '교체'를 이루어낸 것이다. 그러다 조선 개국초기에는 '사대교린 정책'을 내세워서 여진과 왜는 쳐부수기보다는 잘 타일러서 교화시키는 것을 으뜸으로 삼았었다. 그러다 말을 듣지 않을 때에는 본때를 보여주며 북쪽으로 '4군6진'을 개척했으며, 남쪽으로는 '대마도 정벌'을 단행하여 조선의 국력을 만방에 떨쳤었다. 이렇게 강력했던 조선이 200년 뒤에는 '국방력'이 약해져서 왜구의 침략(삼포왜란 등)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그러다 끝내 일본을 통일한 '풍신수길'에 의해 대대적인 침공을 받게 된 것이 바로 '임진왜란'이다. 그리고 이 책 <징비록>은 그 악몽같았던 7년간의 기록을 빠짐없이 기록하여 다시는 '그날'의 비극을 다시 맞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책의 시작에는 '신숙주의 당부'로 글이 쓰여 있다. 신숙주는 세종 시절에는 '집현전 학사'로 이름을 날렸고 '계유정난' 이후에는 세조로부터 훈구공신 대우를 받았고, 성종 때 죽은 인물이다. 신숙주는 '외교의 중요성'을 잘 알았던 신하였으며, 특히 조선의 태평성대를 위해서는 '일본'을 잘 감시하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로 주변국의 정세를 잘 파악한 인재 중의 인재였다. 그런데도 조선은 일본에 대한 감시를 소홀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방력을 약화시키는 악수를 두고 만다.

 

  왜 그랬을까? 조선초기에 조선을 둘러싼 주변국들이 약한 덕분이었다. 물론 세종 때까지는 '무력시위'를 벌이고 주변국을 상대로 승리할 정도로 국방력을 자랑할 수 있었지만, 그로 인해 평화가 200년 간 이어지자 해이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시절의 '군역'은 있으나마나할 정도로 해이해졌으며, 그나마도 '군포 1필'을 내면 1년 간 군역을 면제해주는 일까지 횡행하였던 것이다. 그나마 변방의 군역을 빼낼 수 없어서 반드시 군역을 치루도록 했지만, 그나마도 '군포'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이들만 차출되어 차디찬 북방으로 군역을 보내니 '군의 사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어졌을 뿐이다.

 

  이처럼 '국방력 약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삼포왜란'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벌어진 왜구들의 대대적인 습격이었는데, 이때 왜구들이 내륙 깊숙한 충청도까지 쳐들어올 때까지 이를 막아낼 '조선군'이 없었으니 정말 형편 없는 국방력이었던 셈이다. 이 당시에 '군사체제'가 '진관체제'였는데, 이는 '지역방어'에는 유리했으나 소규모로 각기 따로 움직였기에 '대병력'으로 쳐들어오는 왜구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대규모' 쳐들어오는 적을 효율적으로 막기 위해 '조선군'도 군대를 집결시켜 대규모로 막아내는 방어책을 쓰는데, 이것이 '제승방략제'다. 어찌어찌 이 군사제도로 '삼포왜란'을 막아내긴 했는데, 그 뒤에도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하지 않아서 '제승방략제도'의 효과를 극대화시키지는 못했다. 왜냐면 '대규모 군사훈련'에는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에 '비용절감'을 위해서 또다시 국방력을 약화시키고 만 것이다. 이즈음에 율곡 이이가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다고 했으니, 시행이 되었으면 '임진왜란'의 초기에 그토록 쉽사리 밀리지는 않았겠지만, 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조선의 행정시스템이 먼저 무너져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암튼, 이처럼 해이해진 조선을 일본이 대대적으로 침공하게 된다. 명분은 '정명가도(명나라를 치러 가니 조선은 길을 열고 합세하여 같이 명을 치자)'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원인으로는 오랫동안 일본의 조공을 금지한 명나라 탓이 으뜸이다. 일본은 명나라와의 '조공무역'이 막혀버리자 경제가 침체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숨통을 틔운 나라가 '조선'이건만, 조선도 왜구들 때문에 몸살을 앓는다며 일본과의 무역에 빗장을 걸기 일쑤였다. 그러다 '포르투갈 상인'이 찾아오자 새로운 바닷길을 열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오랜 전란을 종식시킬 수 있는 '새로운 무기'인 조총도 이때 들어오게 된다.

 

  암튼, 일본은 전국을 통일하고 남아도는 '군사세력'을 활용(?)하기 위해 이웃나라를 침공하는 일을 계획하기 된다. '토사구팽'으로도 유명한 이 전략은 통일을 이루기까지 '무장의 힘'을 빌리지만, 통일을 이루고 평화가 찾아오면 '무장의 힘'은 새로운 위협이 되기 때문에 '없애야 할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다.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건국한 '한신'이 그랬고, 송나라 조광윤을 도와 송을 건국한 개국공신들은 칼을 버리고 '사대부'가 되어야만 했다. 풍신수길도 마땅히 자신을 도와 전국통일을 이룬 '사무라이들의 힘'을 분산시켜야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 이웃나라를 침공할 결론을 내리게 되었고, '임진왜란'이 발발하게 된 것이다.

 

  이때 만약 신숙주의 유언대로 '일본'과 관계개선을 끊임없이 하며, 감시도 철저히 했었더라면, 일본의 이런 움직임을 진작에 간파하고 대비도 충분히 할 수 있었을 테고, 전쟁도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허나 조선은 관계개선도 하지 못했고, 감시도 하지 않았고, 대비도 하지 못했으며, 전쟁도 막지 못했다. 마지막 기회였던 '통신사 파견'도 끝내 '동인과 서인의 갈등(당파)'으로 인해 아무런 소득도 없이 흐지부지 결론을 내지 못했던 셈이다. 그나마 서애 류성룡만이 일촉즉발의 위기를 감지하고, 권율과 이순신을 천거해 각각 바다와 육지를 맡게 되니 '조선'으로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탁월한 선견지명이었다 아니할 수 없다.

 

  결국 '임진년(1592년 4월)'에 전쟁은 발발했고, 부산에 상륙한 일본군은 한 달 남짓한 시간만에 한양을 점령해버리는 기염을 토하고 만다. 도대체 조선군은 뭘하고 있었단 말인가? 류성룡의 지적을 보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일본군이 '조총'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들고 와서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고는 하지만, 조선에는 더 강력한 '화포'로 무장하고 있었기에 철저한 대비만 하고 있더라도 이렇게 허무하게 뚫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는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수군'의 모습에서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전쟁의 승패는 '무기의 강력함'으로 결정지어지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수비하는 처지'에서는 성을 쌓고 버티거나 길목을 지키고 버티는 것만으로도 그보다 수백 배, 수천 배 더 많은 수의 공격을 받아도 결코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이 그랬고, 양만춘의 안시성전투가 그랬으며, 김시민의 진주성전투가 잘 보여준다. 그러니 조선이 국방에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고 대비를 철저히 했다면 어떤 공격이라도 능히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대비'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이 '임진왜란'의 실체였던 셈이다. 류성룡은 <징비록>을 통해서 그러한 '사실'을 낱낱이 파헤친다. 그리고 '대비'를 못한 결과가 얼마나 치욕스럽고 잔인했으며 끔찍했는지 처절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도 이 책은 '병자호란'을 막아내는 결과를 낳지 못했다.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한 까닭이다. 류성룡은 <징비록>을 '교훈'과 함께 '경고'의 의미로 써내려갔는데도, '임진왜란'의 책임을 지는 이들이 아무도 이 책을 읽으려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오히려 '선조의 행적'과 함께 '지배층의 무능'을 낱낱이 보여주는 책이라며 감추기 급급했다. 훗날 조선이 아니라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 <징비록>을 더 많이 읽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금지 목록'에 올려 다른 나라에 빼돌리지 못하게 막는 일에만 관심을 가졌을 뿐, 이 책을 '교과서' 삼지 않고 끝내 조선이 멸망하고, 대한민국이 들어선 지도 한참 지난 199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것도 '이순신'이 새삼 주목받는 계기 덕분이었고, 얼토당토 않은 '원균'이 충신(?)이라는 '뉴라이트'의 주장에 반박하면서 겨우 관심을 받게 된 셈이다.

 

  그러고 나서도 한참이 지난 201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징비록>의 가치를 우리가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이제라도 느끼고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를 일이다. 물론 이 책이 <징비록>의 전부는 아니다. <징비록>에 대한 연구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을지라도 우리 독자들이 즐겨보는 책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의 전성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전세계가 대한민국을 주목하고 있는 이때가 바로 <징비록>을 읽고 '디딤돌'로 삼아야 할 때다. 모처럼 찾아온 절호의 기회를 허투루 날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대한민국의 저력은 바로 '실패'를 거울 삼아 '성공'을 다시 쓰는 역사를 통해서 발휘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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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18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김미조 엮음, 규하 그림 / 인디고(글담)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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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익스피어의 작품 가운데 유일하게 즐겨 읽는 책이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물론 영화의 영향이 컸다. 68년도작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올리비아 허쉬(Olivia Hussey)'가 열여섯 살에 보여준 열연은 너무나도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흔히 '올리비아 핫세'라고 발음하곤 하는데, 이는 'Hussey의 일본식 발음'인 '핫세'를 따와서 불러왔기 때문에 관행적으로 붙은 이름이다. 실제로 핫세의 두 번째 남편이 일본인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여배우'가 예뻐서 읽게 된 <로미오와 줄리엣>은 96년에 개봉한 '디카프리오' 주연의 동명영화를 보고서 한동안 멀리하게 되었다. 여배우가 인상적이어야 할 영화가 남배우가 인상적인 영화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96년작의 여배우인 '클레어 데인즈'는 기대이하였다는 평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96년작 이후로는 <로미오와 줄리엣>로 '핫세'가 아닌 '디카프리오'가 떠오를 정도였다.

 

  영화 이야기는 이쯤하고, <원작>으로 돌아와서, <로미오와 줄리엣>은 젊은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로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운명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원수 집안'인 탓에 두 남녀의 사랑은 뜨겁게 따오르다 꺼져버리는 슬픔을 자아냈다. 그런 탓에 젊은 시절에 이 책을 읽으면 '사랑이야기'만 보인다. 사랑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고, 늘 옳기만 하다는 메시지에만 열광하며, 뜨거운 사랑에만 관심을 보일 뿐이다.

 

  그러나 나이가 드니 '시대배경'이 보이기 시작하고, '집안'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희곡에서 몬테규와 캐플릿 가문이 서로 원수가 된 배경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저 복수가 복수를 부르는 일만 끊임없이 반복될 뿐이다. 그런 탓에 '배로나의 영주'는 두 집안이 골칫덩이일 수밖에 없다. 어차피 귀족가문이야 한 다리만 건너도 친척이고 가족인 탓에 영주 또한 두 집안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도 서로 만나기만 으르렁거리고 싸움은 예삿일이며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르고 다니니 망나니가 따로 없는 셈이다.

 

  이런 두 가문에서 젊은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다는 설정은 '비극적 결말'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장치일 뿐이었다. 허나 '보는이(독자)'로서는 뻔한 이야기보다는 아슬아슬한 이야기가 더 흥미로울 뿐이다. 그러나 고작 '열네 살의 나이'에 그토록 열렬한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 요즘과는 잘 맞지 않다. 실제로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에게 이 책을 읽히니, 주인공인 '로미오'와 '줄리엣'에 아무도 공감하지 않았더랬다. 얘들에게는 '사랑'보다 중요한 '성적'이 더 절실했던 탓이다. 그래서 '시험'에 나온다고 뻥을 치고서야 겨우 수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하긴, 로미오가 로잘린에게 사랑고백을 했다가 거절 당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곧바로 줄리엣에게 한 눈에 반하는 대목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나조차 전혀 공감이 가지 않았다. 이를 두고서 로렌스 신부는 혀를 차며, "젊은이들의 사랑이란 마음속에 있지 않고 눈 속에 있나 보구나"라고 말했을 정도다. 뜨겁게 타오르는 사랑이라는 성질과 젊은이들의 성격 상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지만, 수업을 받는 아이들은 '성적' 때문에 '사랑'에 빠질 새도 없고, 수업을 하는 선생은 사랑을 너무 잘 알아서 어처구니가 없는 로미오의 처사에 떨떠름 할 뿐이다.

 

  반면에 줄리엣은 좀더 분명하다. 로미오와 첫 만남을 통해 사랑을 확인하지만, 로미오가 원수집안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고민도 하고, 로미오에게 사랑맹세까지 시키는 것으로 좀더 신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허나 부모님에게는 '고해성사'를 다녀온다는 핑계를 대고 몰래 '비밀결혼식'까지 저지르는 모습에 치기어린 어린아이의 모습을 영락없이 보여주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은 결혼식을 올린 바로 그 날에 벌어지고 말았다. 줄리엣의 사촌인 '티볼트'가 로미오의 친구인 '머큐쇼'를 칼로 찔러 죽이고 만 것이다. 졸지에 친구를 잃은 로미오는 그 자리에서 '티볼트'를 쫓아가 찔러죽이고 만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을 찾자 곧바로 후회가 밀려오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운명의 시곗바늘은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 로미오는 정상참작이 되어 사형은 면했지만 '추방형'을 받고 말았다. 그렇지만 사촌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보다 로미오의 추방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줄리엣은 복받쳐오는 슬픔에 눈물을 쏟아내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패리스와 결혼하라'는 받아들일 수 없는 명령을 내리고 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 두 젊은 남녀는 각자 '로렌스 신부'를 찾아가 방법을 구하지만, 로렌스 신부라고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베로나에서 명망 높은 명성을 얻고 있다고는 하지만 '권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름의 계획'을 갖고 있었던 신부는 두 남녀를 도와주기로 결심한다. 마침맞게 '묘한 효과'를 내는 독즙을 찾아낸 신부는 그 독즙을 이용해서 '계획'을 완성하려 한다. 그래서 먼저 찾아온 로미오에겐 때를 봐서 연락을 할테니 어서 떠나라고 했고, 뒤늦게 찾아온 줄리엣에겐 패리스와의 결혼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며 '독즙의 사용법'을 일러준다. 그리고 곧바로 로미오에게 이 '계획'을 알렸지만, 전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고, 도리어 '줄리엣의 죽음'이 더 먼저 로미오에게 전해지고 만다.

 

 

  그러자 '로렌스 신부의 계획'은 차질을 빗는 것처럼 보였다. 두 젊은 남녀의 사랑이 이루어져서 '원수'처럼 으르렁거리던 짓거리를 멈추게 하려던 계획이 두 남녀의 죽음으로 실패한 듯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마침 영주가 등장하며 상황은 급반전한다. 두 남녀의 주검 앞에서 낙담한 '두 가문의 아버지들'이 두 사람의 사랑을 확인하고서 그동안의 원한을 눈 녹듯 사라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영주의 현명한 판단과 로렌스 신부의 절절한 목소리로 전달된 '두 남녀의 비밀결혼식' 이야기 덕분이었다. 이로써 두 집안은 더는 싸우지 않고, 두 남녀의 사랑을 길이길이 기리면서 베로나에 평화를 가져오게 된다는 결말로 끝맺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극중 등장인물들의 죽음과 비극적 소재를 다루었음에도 '비극'에 포함되지 않는 까닭은 이처럼 나름의 '해피엔딩'으로 끝맺었기 때문이다. 해피엔딩에 큰 공을 세운 것은 '로렌스 신부의 계획'이 컸고 말이다. 신부의 계획은 두 남녀의 사랑이 성공해도, 실패해도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40대가 되어서 다시 읽은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처럼 '로렌스 신부'가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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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토 원종우의 태양계 연대기 - 과학과 역사, 우주적 상상력이 결합한 다큐멘터테인먼트
원종우 지음 / 동아시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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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난다. 진짜 우연히 책꽂이에서 이 책을 꺼낸 뒤에 그날 밤을 꼴딱 새며 책을 완독해버렸던 기억을 말이다. 정말 재미 있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딴지일보>에 연재가 되었던 내용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개정판>이 나왔다는 소식에 바로 구매를 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추억 속의 기억'과는 달리 '두 번째 책읽기'에서는 감흥이 살짝 떨어졌다. 내용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책이 '은비주의(진실은 감추고 직관적인 느낌에만 충실한 사상적 경향)'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그동안 꽤나 '인문학적 교양'을 쌓아 해박해진 '또 다른 나'가 된 탓이 크다. 그 때문에 그 당시에 원종우의 '구라적 상상력'에 열광하던 나를 다시 만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진면목이 무색해진 것은 절대 아니다. '개정'을 거듭하며 뭔가 탄탄해진 '내용 전개'를 만날 수 있었기에 또 다른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지금부터 그 즐거움을 전개해 보려 한다.

 

  우리는 'UFO(미확인 비행물체)'를 봤다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곤 한다. 비록 예전보다는 시들한 내용이긴 하지만, '외계인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 사이에선 'UFO'는 '외계인'이 존재한다는 증거로 통하곤 한다. 그렇다면 외계인은 실제로 존재할까? 일찍이 칼 세이건은 이토록 광활한 우주에 오직 지구에만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우주는 엄청난 '공간낭비'일 거라고 말했다. 우주의 크기는 정말로 크다. 가장 빠르다는 '빛의 속도'로 137억 년을 달려야 겨우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우주의 끝'에 도달할 수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는 계속 팽창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우주 안에서 별(항성)은 계속 태어나고 죽고 있다. 이처럼 광활한 우주에 지구에만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생각은 쉽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외계인(지적생명체)'도 분명히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머나먼 항성계에서 지구가 있는 '태양계'로 외계인이 방문할 가능성은 어떨까? 현재 지구의 과학기술로는 고작해야 '달'에 사람을 보낼 수 있을 정도다. 근래에는 '편도'이긴 하지만 '화성'까지는 사람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호언장담하고 있는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물론 머지않아 더 먼 곳까지 사람이 왕래할 수 있게 될 테지만, '워프'나 '웜홀'과 같은 우주항법이 개발되지 않고서는 더 먼 우주까지 가는 것은 고사하고, 돌아오는 일은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까지 지구에서 '외계생명체'가 타고 왔을 법한 'UFO'가 심심찮게 발견되었다. 과연 이들은 지구의 과학기술보다 앞선 기술력으로 우주를 항해해서 찾아온 방문객일까?

 

  많은 과학자들이 여기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고 있다. 설령 '외계문명'이 고도로 발달해서 그런 우주항법을 알고 있다하더라도, '지적생명체'의 육신을 갖고서 그런 항법이 통용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지구와 가장 가까운 별인 '알파센타우리 별'도 빛의 속도로 4.3년이나 걸리는데, 웬만한 별에서 지구까지 오려면 수백 년에서 수천 년이 걸리는 셈이다. 아무리 외계인이라지만 그렇게 오랜 수명을 갖고 있을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결론은 딱 하나다. 외계생명체는 '태양계' 안에 있을 거라는 가정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다면 외계인은 어디에 있을까? 태양에서 너무 가까운 수성과 금성은 탈락이다. 이곳에 '생명체'가 산다고 해도 '지적 생명체'로 진화하기에는 너무나도 척박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목성 뒤편의 행성들은 '가스'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곤란하고, 천왕성과 해왕성은 태양으로부터 너무 멀어서 그마저도 '얼음행성'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지구를 제외하면 꼴랑 '화성'이 남는다.

 

  그런데 '화성'이 수상하다. 화성을 유심히 관찰하다보면 '물'이 흐른 흔적이 보이는데, 자연스럽다기보다는 인위적인 모습을 띤다. 일단 매리너스 계곡은 지구의 그랜드캐넌에 빗대곤 하는데, 실제로는 그랜드캐넌보다 훨씬 크다. 그리고 꽤나 '직선형태'를 띠고 있다. 만약 물이 흐른 흔적이라면 좀더 구불구불거렸지 않았을까? 더구나 태양계에서 가장 큰 화산인 올림푸스화산 역시 정말 거대한 느낌만 준다. 화성이 지구보다 1/3만큼 작은 행성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어떻게 지구보다 더 큰 화산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그밖에도 수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어쩌면 이것들이 '우주전쟁'의 흔적들이 아니었을까?

 

  이번엔 화성과 목성 사이로 가보자. 이곳에 '소행성대'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 만한 분들은 다 알고 계실 것이다. 근데 이 소행성들 가운데 '우주전쟁'에 쓰였을 법한 금속성 물체들이 관측되고 있다. 더구나 미국의 나사에서 이 소행성에 착륙을 시도한 적도 있다는데, 그에 대한 자료는 아직 미공개하고 있는 실정이다. 수상한 소행성을 찍은 사진조차 '희미하게' 조작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더구나 수많은 과학자들이 이 소행성대에 '행성'이 존재했을 거라는 가정을 참 많이 하고 있다. 어쩌면 '화성'과 이곳 소행성대에 있었던 행성(이하 '행성 Z') 사이에 우주전쟁이 벌어졌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뭔가 더 가공할 만한 전쟁무기가 존재할 것이다.

 

  조사결과 놀라운 결과가 밝혀졌다. 하나는 토성의 위성인 '이아페투스'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바로 지구의 위성인 '달'이었다. 이 두 위성은 생김새부터 의심쩍다. 먼저 '이아페투스'의 모습은 영락없이 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한 제국군의 무기인 '데스스타'를 쏙 빼닮았다. 더구나 이곳에 화성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무기로 공격을 받은 듯한 '흔적'들이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 또한 '달'도 매우 수상쩍다. 지구를 공전하고 있는 달에 매우 일정한 간격으로 '지진'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공간'이 텅빈 범종 같은데서 발견하기 쉬운데, 그렇다면 달의 내부공간은 '텅빈 공간'이 존재하는 셈이다. 더구나 그 지진파의 속도는 지구보다 훨씬 빨랐다. 이는 암석으로 이루어진 지구와 달리 달의 표면이 '금속'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럼 달은 내부 공간이 텅빈 금속제 '위성'이란 얘기가 되는데, 달의 내부에 과연 누가 살고 있다는 말인가? 혹시 '우주선'은 아닐까?

 

  정리하면, 현재 화성에 생명체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다. 그런데 어마어마한 전쟁의 상처를 갖고 있다. 한편 소행성대에 있었을 법한 '행성 Z'는 전쟁으로 인해 파괴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화성'과 '행성 Z'에 살고 있던 사람들 가운데 '생존자'는 없을까?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생존자들은 각각의 전쟁무기인 '이아페투스'와 '달'의 내부 공간에 머물면서 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활동을 멈춘 것처럼 보이는 걸까? 그건 아마도 전쟁으로 인해 '고장'났을 가능성이 많다. 달에 머물고 있다면 특별히 여건이 나쁜 편은 아니기 때문에 항해할 수 있더라도 여차하면 출동할 수 있게 전력을 아끼고 있는 것일 테고, 이아페투스 같은 경우에는 '심각한 고장'이 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 없어 태양에서부터 먼 방향으로 속절없이 튕겨져나갔고, 우연히 토성의 중력에 사로잡혀 지금의 위치에 겨우 안착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화성인'과 '행성 Z인'이 각각 어느 위성에 숨어살고 있는 것일까? 아무래도 달에는 '행성 Z인'이, 이아페투스에는 '화성인'이 머물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면 호전적인 화성인이 '달'에 머물고 있었다면 가까운 곳에 있는 지구를 가만 냅두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까닭으로 더 확실한 증거는 지구인이 갖고 있는 '화성'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지구에서 바라본 밤하늘에 '붉은 빛'을 내는 별이 '화성'뿐만이 아닌데도, 유독 '화성'에 대해서만큼은 불길하다느니, 전쟁을 상징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인이 무엇일까? 아무리 곱씹어봐도 '화성인'이 호전적인 문명을 갖췄었다는 것밖에는 다른 결론을 내기 힘들 것이다.

 

  그럼 화성과 행성 Z가 생명체가 몰살되고 행성이 파괴될 정도 엄청난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 지구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아마도 지구도 둘 중 어느 한 편을 지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행성이 파괴되면서 날아든 엄청난 '중력폭풍' 때문에 지구에도 대재앙에 가까운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말았다. 지구의 시간으로 대략 1만 500년 전에 전지구를 뒤덮은 '대홍수'가 일어나고 만 것이다. 이는 전지구적인 '공통적인 기록'으로 남아있으며, 대표적인 기록이 바로 <성경>에 나와있는 '노아의 홍수'다. 이는 행성 Z가 파괴되면서 지구로 날아든 '중력폭풍'의 결과였으며, 그로 인해 지구에 있었던 초고대문명이 바닷속으로 사라지는 비극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 비극 역시 '전세계'에 남아 있으며, 대표적인 기록이 바로 '아틀란티스 대륙의 침몰설'이다.

 

  허나 그런 대재앙이 일어난 뒤에도 지구 곳곳에 '초고대 문명'의 흔적은 남아있다. 대표적으로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그렇다. 일일이 돌 하나하나를 깎아서 만들었다는 거대건축물인 피라미드는 존재 자체가 미스테리할 뿐이다. 돌 하나의 무게는 약 1톤, 그런 돌을 '오차'도 거의 없이 차곡차곡 쌓아놓을 수 있는 기술력은 도대체 '누구'에게 배웠느냔 말이다. 현대의 건축기술로도 피라미드를 세우기 곤란하다. 무거운 돌을 옮기고 쌓는 어려움 뿐만 아니라 그런 돌을 반듯하게 자르는 일부터 대단히 어렵다. 지금이야 '강철톱'이나 '다이아몬트 커트'로 자를 수 있다손치더라도, 당시는 '청동기시대'인 탓에 거대한 돌을 자르고 다듬을 수 있는 도구가 고작해야 '돌로 만든 석기'였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청동기'는 그 수가 많지 않았고, 비교적 무른 금속인 '구리와 주석'의 합금이었기 때문에 수많은 돌들을 일일이 청동기로 쪼아 자르고 깎아서 수십만 개를 쌓아올렸다는 것이 정말 미스테리할 뿐이다.

 

  그래서 피라미드를 '외계문명'이 만들어놓았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곤 한다. 그 증거로 피라미드 내외부에 적힌 '상형문자' 가운데 '우주인'을 형상화한 그림(혹은 문자)이 보인다고 하는데, 화성과 행성 Z에서 우주전쟁이 벌어지는 마당에 지구에 그런 고대문명이 발달하지 않았을리 만무하다. 그런데 그만 '대홍수'로 인해 초고대문명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만 셈이다. 대홍수 이후에 지구인은 다시 '석기시대'로 돌아가고 말았다.

 

  물론, 살아남은 '화성인'과 '행성 Z인'이 있었기 때문에 지구가 맞은 대재앙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전해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어머니별'을 잃고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고 나니, 정작 지구를 도와줄 여력이 남지 않았다. 그래서 고작해야 'UFO'를 보내서 간혹 지구를 관찰하는 것 정도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때, 고대 이집트에서 '모세'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모세는 '이집트 왕자'로 40년을 지냈고, 그후 자신의 동족을 이끌고 '40년'을 방황하다 끝내 이스라엘을 세웠다. 과연 모세는 누구일까? 아마도 모세는 '이집트 왕자'로 있던 시절에 '과거의 기록'을 해석한 천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고대에 있었던 '초고대 과학기술'을 깨닫고, 외계문명과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듯 싶다. 그리고 때가 도래했을 때, 노예상태로 전락한 자신의 동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해 '시나이 반도'에 도착한다. 그는 이곳에서 '약속된 땅'을 찾아 무려 40년 간이나 헤매고 다닌다. 지금은 자동차로 6시간이면 주파할 수 있는 대단히 좁은 지역을 혼자도 아니고, 무리를 이끌고 40년 동안이네 방황한 것일까? 혹시 방황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찾으려 한 것은 아닐까?

 

  실제로 모세는 '이곳'에서 유대인의 성물인 '성궤'를 얻는다. 그리고 이 '성궤'로 이민족들을 물리치고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에 도착한다. 그런데 실제로 '가나안'은 척박하기 이를데 없는 곳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왜 모세는 자신의 동족에게 약속한 것과 다른 곳에 데려다 놓았을까? 혹시, 모세가 '시나이 반도'에서 만난 이들이 '화성인'들은 아니었을까? 그곳에서 모세는 '화성인'과 접촉하는 방법을 알아냈고, 그들과 합류해서 지구를 떠나 화성에 정착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우주전쟁 이후에 화성은 생명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했고, 고장난 이아페투스에 간신히 숨어살고 있는 처지인지라, 모세가 이끌고 온 무리를 모두 수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모세는 이들과 '협상'을 하느라 시간을 지체하였고, 협상이 결렬될 위기에 봉착하자 '무기'인 '성궤'라도 챙긴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모세가 만난 '외계인'이 왜 '행성 Z인'이 아니라 '화성인'이었던 것일까? 그건 '성궤'가 갖고 있는 엄청난 위력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모세가 형용한 '하나님'이 너무나도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성서>에도 적혀 있는 내용이기에 <모세오경>이라 불리는 '구약성경'의 앞부분을 읽어보면, 이에 대한 내용이 아주 잘 적혀 있다. 특히, '성궤'가 보여주는 '가공할 만한 위력'으로 유대인들이 적의 성(여리고성)을 공격할 때도 쓰고, 이민족을 물리칠 때에도 '성궤'가 보여준 이적은 대단히 많다. 심지어 유대인이라도 '성궤'를 잘못 다루면 엄청난 파괴력을 보여주곤 했다. 이런 정황으로 봤을 때, '행성 Z'조차 한 방에 날려버릴 엄청난 위력을 간직한 '화성인의 무기'로 보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암튼, 모세는 '화성인'을 만나 '화성적인 가치관'을 이용해 주변 민족을 장악하고, 이스라엘을 건국하였다.

 

  그럼 '행성 Z인'은 가만히 있었을까? 아니다. 이들도 '예수'라는 인물을 통해서 자신들의 가치관을 지구인에게 전파하는데 열심이었다. 모세가 이민족에 대해서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보여주었다면, 예수는 반대로 이민족이라도 기독교적인 가치관으로 포용하고 사랑으로 감싸는 가치관을 선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과 '부활'이라는 기적을 몸소 보이고서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전세계에 퍼뜨렸으니, 이는 '행성 Z인'이 가진 가치관이 대단히 평화롭고 조화를 추구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지구에는 그동안 '화성적 가치관'과 '행성 Z적 가치관'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지구인'의 가치관 형성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가치관은 중세를 거쳐, 근대를 지나,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른바 '성당기사단'이 십자군 전쟁을 통해서 예루살렘이 묻혀 있다는 '성궤(전쟁무기)'를 찾아내려다 실패했고, 이후 이들은 '이단'으로 몰려 말살되고 만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생존자가 남아서 훗날 '프리메이슨(석공조합)'를 조직하는데 성공하고, 오늘날까지 그 영향력을 전하고 있는 셈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성당기사단은 '화성적인' 파괴를 일삼으려 하였고, 프리메이슨은 '행성 Z적인' 평화와 조화를 이루려고 노력하였다.

 

  이제 지구인은 과거에 잃어버렸던 '기술력'을 되찾아 다시 우주로 나갈 수 있는 기술력을 갖게 되었다. 여전히 '화성인'과 '행성 Z인'의 생존자가 남아 있겠지만,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쇠퇴한데 반해, 어머니별인 '지구'는 날로 번성하여 지구의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동안 지구인을 품어주었다. 자, 그렇다면 지구인은 어떤 미래를 맞이해야 할 것인가? 화성인의 가치관에 따라 우주전쟁을 일삼으며 새로운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해 우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아니면 행성 Z인의 가치관에 따라 우주에 평화와 공존, 그리고 번영을 위한 메시지를 전파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인가? 태양계 안에서 거의 유일한 지적생명체로 성장한 지구인이 펼쳐나갈 우주시대가 자못 궁금할 따름이다.

 

  어떤가? 'UFO'의 실체를 통해서 고찰한 우주적 픽션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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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층 나무 집 456 Book 클럽
앤디 그리피스 지음, 테리 덴톤 그림 / 시공주니어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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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집이 39층에 다다르고 나서야 '교훈'을 들먹였다. 모르긴 몰라도 항간에 떠도는 지적질을 많이 받은 모양이다. 작가가 말이다. 나도 1, 2권에서 아이들이 읽는 책인데도 '교훈'을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질을 좀 했더랬다. 물론 '재미'를 추구하는 책에서 '교훈' 운운하는 것은 하릴없는 짓이라 생각하지만서도 '아이들의 즐거운 상상놀이'로 치부하기에는 '앙팡 테리블'하기 때문이다. '앙팡 테리블'이란 직접 풀이하면 '귀여운 악동'쯤으로 뒤칠(번역할) 수 있지만, '짓궂은 짓만 골라하는 골칫덩어리'로 뒤치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다.

 

  근래에 '소년법을 없애자'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아이들의 범죄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과거에는 '수박서리', '참외서리'처럼 먹을 것이 부족한 시절에 저지른 철없는 짓을 '형법'으로 다스리는 것보다 '훈계'로 다스리는 것이 더 낫다는 취지에서 '소년법'을 마련한 것으로 알고 있다. 허나 지금 '어린이들'이 저지르는 장난(?)은 거의 범죄수준에 가깝다. 편의점의 기물을 파손하고도 죄송하다는 말도 없이 냅다 내빼는 아이들이 있고, 소위 '있는 집' 자식들이 부모의 권세를 믿고 적반하장으로 어른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짓도 서슴지 않으며, 심지어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형량이 가볍다는 것을 악용하여 범죄를 저지르고도 뻔뻔하게 구는 태도가 '정도'를 넘어섰기에 하는 말들일 게다. 이처럼 '어린이(미성년자 포함) 범죄'가 날로 심각해지는 이때에 '교훈'도 없이 무한한 상상력을 동원해서 말썽을 부리는 책이 웬말이냔 말이다.

 

  물론, '잔혹 동화'를 어린이에게 읽히는 것이 좋은 효과를 가져온다는 이론을 다들 아실 것이다. <백설공주>나 <신데렐라>에서 계모가 아닌 친엄마가 자신의 딸에게 독사과를 먹여 죽이려 하고, 왕자님의 내놓은 유리구두에 커다란 발을 넣기 위해 발가락을 자르고 뒤꿈치를 자르며, 끝내 비둘기에게 두 눈을 쪼인다는 내용이 아이들에게 '교훈'을 줄 수 있다는 이론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으로 '교훈'을 주는 것도 온당치 못하다고 본다.

 

  어린인들이 봐야 할 책에는 '선과 악'을 명확히 구분해줄 수 있는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용납하는 '기준'은 무엇이며, 용납하지 않고 '처벌'하는 기준은 무엇인지도 잘 알려줘야만 한다. 이를 '교훈의 필요성'이라는 말과 '상상의 자유'라는 말로 함부로 포장해서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주어선 곤란하다. 따라서 이 책에서 말하는 '교훈'이라는 개념은 매우 불합리하다. 왜냐면 애초부터 찾아볼 수 없는 '교훈'을 소재로 삼아 또다시 엉뚱한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모방심리'가 굉장히 강하다. 아이들이 동경하는 '나무집'에 대한 상상력을 넘어서서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규범'조차 거스르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두 명의 주인공인 앤디와 테리는 엉뚱하다 못해 거의 범죄 수준의 장난을 저지른다. 이를 테면, 나무집에 만들어놓은 '절대로 다시 나올 수 없는 미로'에 누군가가 죽었는데, 그 누군가가 '아는 사람'이었다는 설정인데도, 그저 그런갑다 하고 얼렁뚱땅 넘어간다. 일말의 죄책감이나 이런 것은 만들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은 찾아볼 수 없다. 1권에서는 친구의 고양이를 13층 나무집에서 떨어뜨리는 장난을 치자, 떨어지는 고양이에게 날개가 돋아나서 '날개 달린 고양이(고양새)'가 되었다는 상상력을 발휘한다.

 

  한편, 3편에서도 어김없이 '큰코 사장'이라는 출판사 사장이 마감기일을 지키라고 호통을 치면서 '단 하루'만에 원고를 마감하라고 독촉을 한다. 그래서 앤디가 '책 만드는 기계'로 단 하루만에 책을 완성하려고 이것저것 설정했다가 '설정'에 충실한 책 만드는 기계가 '자기 책'을 보호(?)하기 위해서 주인인 앤디와 테리를 나무집에서 내쫓는 것으로도 모자라 생명까지 위협하게 된다. 그래서 앤디는 '뭐든지 없애버리기 박사'를 찾아가서 말썽을 일으킨 기계를 없애려고 하지만, 결국 온 우주를 '없애버리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런 다음에 다시 '세상을 재창조'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그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상상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스펙타클한 즐거움을 선사하곤 한다.

 

  이처럼 대략의 줄거리를 보면 큰 문제는 전혀 없어보인다. 하지만 그 과정속에서 '인명 경시 풍조', '동물애호가를 희화하는 장면', '막연히 자본주의만이 유일한 가치'이며, '그것을 충족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설정 등이 문젯거리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이들이 웃고 즐겁게 책을 읽고 난 다음에 이러한 잘못된 가치관을 갖고 아무 거리낌없이 '모방'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아이들도 나름의 '필터링'을 갖췄기 때문에 '이런 장난을 치면 안 된다'는 것쯤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즉, '개념 있는 아이들'은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우리 주위에도 '소년법'을 적용해도 아무런 말썽을 피우지 않는 모범생들이 많지 않느냔 말이다. 허나 걱정스러운 것은 '철없는 아이들'이 이 책을 읽는 경우다. 아직 '가치관'도 형성하지 못한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깔깔거리다 친구들에게 혹은 어른들에게 저지른 장난이 '범죄'에 해당하는 일이라면 어쩔 셈인가.

 

  이런 걱정을 '하늘이 무너질 걱정'이라고 한다. 아이들이 철없는 건 당연한 일인데, 무슨 걱정을 사서 하느냐고 비난한다고 해도 할 말은 없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이 '이 책'보다 더 무시무시한 내용이 담긴 '너튜브'를 보면서 따라한다는 뉴스를 본 적이 없는가? 얼마전에는 부모님이 '전세금'으로 마련한 1억 8천만 원을 자신이 좋아하는 BJ에게 '별풍선'으로 쐈다가 우여곡절 끝에 돌려받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런 일을 저지른 아이는 '별풍선'을 많이 쏠수록 '자본주의적 대접'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서 자신도 그걸 누려보고 싶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나마 일찍 여론이 형성되고 '해당 BJ'에게 돌려주는 것이 맞다는 결론에 다달아서 다행이었지, 행여라도 돈을 잃어버리고 법정소송까지 가게 되었다면, 한 집안이 쑥대밭이 되어 버렸을 일이지 않은가 말이다. 도대체 '누가' 그 아이에게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주었느냔 말이다. 어른들의 철없는 '우스꽝스러운 짓거리들'이 그 아이에게 그릇된 가치관을 심어준 것이 아닐까?

 

  이 책을 재미나게 읽다가도 문득문득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을 접할 때마다 '이 부분은 부모님의 지도가 필요한데..'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 흔한 [절대 따라하면 안 됩니다]라는 '경고문구'라도 달아놓았으면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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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더 잘 알아야 할 교양 : 테러, 왜 일어날까? 내인생의책 세더잘 시리즈 2
헬렌 도노호 지음, 전국사회교사모임 옮김, 구춘권 감수 / 내인생의책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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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러'의 기원은 1605년 '영국의 가톨릭 신자들'이 국왕 제임스 1세의 가톨릭 박해에 저항하기 위해 영국 의회를 폭파하려고 시도한 것이 테러의 첫 시도다. 하지만 '테러'라는 명칭은 프랑스 혁명 때 자코뱅파가 수많은 사람들을 처형했던 '공포정치'에서 비롯되었다. 이처럼 테러의 역사는 꽤나 오래되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끔찍한 테러를 저지르는 것일까?

 

  그건 '불의'에 저항하기 위한 '정의로운 행동'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너무나도 강력한 불의 앞에서 정의의 외침은 종종 힘을 내지 못할 때가 있다. 그래서 정의로운 행동을 '보여주기' 위해서 때때로 과격한 정의의 모습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우리는 '독립운동가'로 기억하고 있는 안중근을 일본의 과격한 보수집단들은 '테러리스트'로 깎아내리는 것처럼 말이다. 조선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해서 '이등박문'을 저격한 안중근을 과연 '살인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만약 안중근을 '살인자'라고 본다면 일본제국의 선두에 선 '이등박문'은 동양평화를 위해 혁혁한 활동을 벌이고 있었는데, 악의 소굴인 조선에서 '불령선인(일본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조선인)'이 난데없이 등장해서 정의로운 이등박문을 암살했다고 봐야 할까? 결단코 그렇게 바라볼 수 없을 거다. 전범국으로 동양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빠뜨리고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킨 일본제국을 '정의'라고 말하는 이는 제정신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정의로운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안중근이 사람을 죽인 일을 무한히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을 거다. 이것이 바로 '테러'가 보여주는 딜레마다. 분명히 정의로운 일인데도 '방법적인 면'에서 결코 정의로울 수 없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테러'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해야 할까?

 

  우리가 기억하는 가장 선명한 테러는 '9·11 테러'일거다. 2001년 9월에 벌어진 이 사건은 '빈 라덴'과 '알카에다'라는 테러단체가 벌인 사건으로 알려져 있는데,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개입에 불만을 품은 집단의 보복 테러라는 점에서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이 뛰어든 전쟁 가운데 아름답고 평화로운 전쟁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남의 나라 내전'에 개입한 결과, 개운하지 못한 뒤끝을 남기는 '전통(?)' 덕분에 미국은 그 톡톡한 값을 치룬 셈이다.

 

  하지만 이유를 불문하고 '테러'라는 행위를 우리가 용인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다. 과연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인 평가와 결론을 내릴 수 있는가? 난 없다고 본다. 테러를 당한 쪽도, 테러를 일으킨 쪽도, 어느 한쪽을 두둔하기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엄청난 사건일수록 옳고 그름을 가리기 힘든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테러'를 용인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소수와 약자가 보여주는 정의로운 행동일지라도 수많은 무고한 희생자를 양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테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은 셈이다. 소수의 약자들이 '최후의 결단'을 보여주기 전에 소수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방법 말이다. 그리고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것만으로도 대다수의 테러는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유 없는 테러'도 왕왕 일어나고 있다. 1995년에 일본에서 벌어진 '옴 진리교 도쿄 지하철 테러'는 밑도 끝도 없는 종말론을 앞세워서 벌인 테러이기에 미연에 막을 도리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들의 목소리라는 것이 '비이성적'인 탓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비이성적인 목소리'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들어야만 하는 피곤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처럼 '정당한 테러'도 '비이성적인 테러'도 끔찍한 결과를 낳을 뿐이므로 근절해야만 한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에 '테러지원국'을 선포하고 공격적인 양상을 보였다. 또한 공항의 안전을 위해 '보안검색'을 높였고, 이로 인해 승객들의 소지품까지 일일이 검사하는 불편을 감수해야만 했다. 물론 안전을 위해서 감수해야 할 일이고 당연히 협조해야 할 일이지만,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이 떠오르는 건 어쩔까? 과연 언제까지 그렇게 높은 보안수준을 유지해야 하며, 불편을 감수해야 할까? 혹시 더 좋은 방법이 있지는 않을까? 방향이 옳다면 아무리 어렵고 오래 걸린다고 하더라도 그 길을 갈 수 있을 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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