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18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김미조 엮음, 규하 그림 / 인디고(글담)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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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익스피어의 작품 가운데 유일하게 즐겨 읽는 책이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물론 영화의 영향이 컸다. 68년도작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올리비아 허쉬(Olivia Hussey)'가 열여섯 살에 보여준 열연은 너무나도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흔히 '올리비아 핫세'라고 발음하곤 하는데, 이는 'Hussey의 일본식 발음'인 '핫세'를 따와서 불러왔기 때문에 관행적으로 붙은 이름이다. 실제로 핫세의 두 번째 남편이 일본인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여배우'가 예뻐서 읽게 된 <로미오와 줄리엣>은 96년에 개봉한 '디카프리오' 주연의 동명영화를 보고서 한동안 멀리하게 되었다. 여배우가 인상적이어야 할 영화가 남배우가 인상적인 영화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96년작의 여배우인 '클레어 데인즈'는 기대이하였다는 평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96년작 이후로는 <로미오와 줄리엣>로 '핫세'가 아닌 '디카프리오'가 떠오를 정도였다.

 

  영화 이야기는 이쯤하고, <원작>으로 돌아와서, <로미오와 줄리엣>은 젊은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로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운명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원수 집안'인 탓에 두 남녀의 사랑은 뜨겁게 따오르다 꺼져버리는 슬픔을 자아냈다. 그런 탓에 젊은 시절에 이 책을 읽으면 '사랑이야기'만 보인다. 사랑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고, 늘 옳기만 하다는 메시지에만 열광하며, 뜨거운 사랑에만 관심을 보일 뿐이다.

 

  그러나 나이가 드니 '시대배경'이 보이기 시작하고, '집안'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희곡에서 몬테규와 캐플릿 가문이 서로 원수가 된 배경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저 복수가 복수를 부르는 일만 끊임없이 반복될 뿐이다. 그런 탓에 '배로나의 영주'는 두 집안이 골칫덩이일 수밖에 없다. 어차피 귀족가문이야 한 다리만 건너도 친척이고 가족인 탓에 영주 또한 두 집안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도 서로 만나기만 으르렁거리고 싸움은 예삿일이며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르고 다니니 망나니가 따로 없는 셈이다.

 

  이런 두 가문에서 젊은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다는 설정은 '비극적 결말'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장치일 뿐이었다. 허나 '보는이(독자)'로서는 뻔한 이야기보다는 아슬아슬한 이야기가 더 흥미로울 뿐이다. 그러나 고작 '열네 살의 나이'에 그토록 열렬한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 요즘과는 잘 맞지 않다. 실제로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에게 이 책을 읽히니, 주인공인 '로미오'와 '줄리엣'에 아무도 공감하지 않았더랬다. 얘들에게는 '사랑'보다 중요한 '성적'이 더 절실했던 탓이다. 그래서 '시험'에 나온다고 뻥을 치고서야 겨우 수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하긴, 로미오가 로잘린에게 사랑고백을 했다가 거절 당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곧바로 줄리엣에게 한 눈에 반하는 대목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나조차 전혀 공감이 가지 않았다. 이를 두고서 로렌스 신부는 혀를 차며, "젊은이들의 사랑이란 마음속에 있지 않고 눈 속에 있나 보구나"라고 말했을 정도다. 뜨겁게 타오르는 사랑이라는 성질과 젊은이들의 성격 상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지만, 수업을 받는 아이들은 '성적' 때문에 '사랑'에 빠질 새도 없고, 수업을 하는 선생은 사랑을 너무 잘 알아서 어처구니가 없는 로미오의 처사에 떨떠름 할 뿐이다.

 

  반면에 줄리엣은 좀더 분명하다. 로미오와 첫 만남을 통해 사랑을 확인하지만, 로미오가 원수집안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고민도 하고, 로미오에게 사랑맹세까지 시키는 것으로 좀더 신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허나 부모님에게는 '고해성사'를 다녀온다는 핑계를 대고 몰래 '비밀결혼식'까지 저지르는 모습에 치기어린 어린아이의 모습을 영락없이 보여주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은 결혼식을 올린 바로 그 날에 벌어지고 말았다. 줄리엣의 사촌인 '티볼트'가 로미오의 친구인 '머큐쇼'를 칼로 찔러 죽이고 만 것이다. 졸지에 친구를 잃은 로미오는 그 자리에서 '티볼트'를 쫓아가 찔러죽이고 만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을 찾자 곧바로 후회가 밀려오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운명의 시곗바늘은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 로미오는 정상참작이 되어 사형은 면했지만 '추방형'을 받고 말았다. 그렇지만 사촌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보다 로미오의 추방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줄리엣은 복받쳐오는 슬픔에 눈물을 쏟아내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패리스와 결혼하라'는 받아들일 수 없는 명령을 내리고 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 두 젊은 남녀는 각자 '로렌스 신부'를 찾아가 방법을 구하지만, 로렌스 신부라고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베로나에서 명망 높은 명성을 얻고 있다고는 하지만 '권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름의 계획'을 갖고 있었던 신부는 두 남녀를 도와주기로 결심한다. 마침맞게 '묘한 효과'를 내는 독즙을 찾아낸 신부는 그 독즙을 이용해서 '계획'을 완성하려 한다. 그래서 먼저 찾아온 로미오에겐 때를 봐서 연락을 할테니 어서 떠나라고 했고, 뒤늦게 찾아온 줄리엣에겐 패리스와의 결혼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며 '독즙의 사용법'을 일러준다. 그리고 곧바로 로미오에게 이 '계획'을 알렸지만, 전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고, 도리어 '줄리엣의 죽음'이 더 먼저 로미오에게 전해지고 만다.

 

 

  그러자 '로렌스 신부의 계획'은 차질을 빗는 것처럼 보였다. 두 젊은 남녀의 사랑이 이루어져서 '원수'처럼 으르렁거리던 짓거리를 멈추게 하려던 계획이 두 남녀의 죽음으로 실패한 듯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마침 영주가 등장하며 상황은 급반전한다. 두 남녀의 주검 앞에서 낙담한 '두 가문의 아버지들'이 두 사람의 사랑을 확인하고서 그동안의 원한을 눈 녹듯 사라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영주의 현명한 판단과 로렌스 신부의 절절한 목소리로 전달된 '두 남녀의 비밀결혼식' 이야기 덕분이었다. 이로써 두 집안은 더는 싸우지 않고, 두 남녀의 사랑을 길이길이 기리면서 베로나에 평화를 가져오게 된다는 결말로 끝맺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극중 등장인물들의 죽음과 비극적 소재를 다루었음에도 '비극'에 포함되지 않는 까닭은 이처럼 나름의 '해피엔딩'으로 끝맺었기 때문이다. 해피엔딩에 큰 공을 세운 것은 '로렌스 신부의 계획'이 컸고 말이다. 신부의 계획은 두 남녀의 사랑이 성공해도, 실패해도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40대가 되어서 다시 읽은 <로미오와 줄리엣>은 이처럼 '로렌스 신부'가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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