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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더 잘 알아야 할 교양 : 테러, 왜 일어날까? ㅣ 내인생의책 세더잘 시리즈 2
헬렌 도노호 지음, 전국사회교사모임 옮김, 구춘권 감수 / 내인생의책 / 2010년 7월
평점 :
'테러'의 기원은 1605년 '영국의 가톨릭 신자들'이 국왕 제임스 1세의 가톨릭 박해에 저항하기 위해 영국 의회를 폭파하려고 시도한 것이 테러의 첫 시도다. 하지만 '테러'라는 명칭은 프랑스 혁명 때 자코뱅파가 수많은 사람들을 처형했던 '공포정치'에서 비롯되었다. 이처럼 테러의 역사는 꽤나 오래되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끔찍한 테러를 저지르는 것일까?
그건 '불의'에 저항하기 위한 '정의로운 행동'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너무나도 강력한 불의 앞에서 정의의 외침은 종종 힘을 내지 못할 때가 있다. 그래서 정의로운 행동을 '보여주기' 위해서 때때로 과격한 정의의 모습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우리는 '독립운동가'로 기억하고 있는 안중근을 일본의 과격한 보수집단들은 '테러리스트'로 깎아내리는 것처럼 말이다. 조선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해서 '이등박문'을 저격한 안중근을 과연 '살인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만약 안중근을 '살인자'라고 본다면 일본제국의 선두에 선 '이등박문'은 동양평화를 위해 혁혁한 활동을 벌이고 있었는데, 악의 소굴인 조선에서 '불령선인(일본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조선인)'이 난데없이 등장해서 정의로운 이등박문을 암살했다고 봐야 할까? 결단코 그렇게 바라볼 수 없을 거다. 전범국으로 동양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빠뜨리고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킨 일본제국을 '정의'라고 말하는 이는 제정신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정의로운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안중근이 사람을 죽인 일을 무한히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을 거다. 이것이 바로 '테러'가 보여주는 딜레마다. 분명히 정의로운 일인데도 '방법적인 면'에서 결코 정의로울 수 없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테러'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해야 할까?
우리가 기억하는 가장 선명한 테러는 '9·11 테러'일거다. 2001년 9월에 벌어진 이 사건은 '빈 라덴'과 '알카에다'라는 테러단체가 벌인 사건으로 알려져 있는데,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개입에 불만을 품은 집단의 보복 테러라는 점에서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이 뛰어든 전쟁 가운데 아름답고 평화로운 전쟁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남의 나라 내전'에 개입한 결과, 개운하지 못한 뒤끝을 남기는 '전통(?)' 덕분에 미국은 그 톡톡한 값을 치룬 셈이다.
하지만 이유를 불문하고 '테러'라는 행위를 우리가 용인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다. 과연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인 평가와 결론을 내릴 수 있는가? 난 없다고 본다. 테러를 당한 쪽도, 테러를 일으킨 쪽도, 어느 한쪽을 두둔하기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엄청난 사건일수록 옳고 그름을 가리기 힘든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테러'를 용인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소수와 약자가 보여주는 정의로운 행동일지라도 수많은 무고한 희생자를 양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테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은 셈이다. 소수의 약자들이 '최후의 결단'을 보여주기 전에 소수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방법 말이다. 그리고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것만으로도 대다수의 테러는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유 없는 테러'도 왕왕 일어나고 있다. 1995년에 일본에서 벌어진 '옴 진리교 도쿄 지하철 테러'는 밑도 끝도 없는 종말론을 앞세워서 벌인 테러이기에 미연에 막을 도리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들의 목소리라는 것이 '비이성적'인 탓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비이성적인 목소리'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들어야만 하는 피곤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처럼 '정당한 테러'도 '비이성적인 테러'도 끔찍한 결과를 낳을 뿐이므로 근절해야만 한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에 '테러지원국'을 선포하고 공격적인 양상을 보였다. 또한 공항의 안전을 위해 '보안검색'을 높였고, 이로 인해 승객들의 소지품까지 일일이 검사하는 불편을 감수해야만 했다. 물론 안전을 위해서 감수해야 할 일이고 당연히 협조해야 할 일이지만,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이 떠오르는 건 어쩔까? 과연 언제까지 그렇게 높은 보안수준을 유지해야 하며, 불편을 감수해야 할까? 혹시 더 좋은 방법이 있지는 않을까? 방향이 옳다면 아무리 어렵고 오래 걸린다고 하더라도 그 길을 갈 수 있을 거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