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재생산 북클럽 자본 시리즈 10
고병권 지음 / 천년의상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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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첫 머리는 '실러'의 작품 가운데 <인질>이라는 제목의 시로 시작한다. 시칠리아의 참주 디오니시우스는 폭군이었다. 그래서 청년 다몬은 폭군을 암살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처형될 참이었다. 다몬은 죽기 전에 '누이의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처형장에 반드시 돌아오겠다며 '친구의 목숨'을 담보로 걸었다. 그러자 폭군 디오니시우스는 묘한 조건을 내건다. "좋다. 누이의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게 해주겠다. 만약, 네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친구를 너 대신 처형하고 네 죄는 묻지 않겠다"라고 말이다. 대놓고 도망을 치라고 권하는 조건이다. 하지만 다몬은 누이의 결혼식을 마치자마자 처형장을 향해 달렸고, 온갖 역경을 딛고서야 겨우 사형시간에 맞춰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지체없이 친구를 살리고 자신이 대신 처형장에 올라갔다. 친구의 목숨을 살리고 자신이 죽겠다는 당연한 결정이었다. 디오니시우스는 다몬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보고 받고, 둘의 우정에 '인간적인 감동'을 느껴 자신도 그들과 친구가 되고 싶다는 내용으로 '실러의 시'는 마무리 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연극'을 준비한다. 디오니시우스의 역할을 '자본가'에게 맡기고, 다몬과 친구 역할은 '노동자들'에게 맡겼다. 과연 이 연극에서도 '해피엔딩'의 결말로 마칠 수 있을까? 노동자들의 '인간적인 모습'에 감동한 자본가가 노동자들과 친구가 되는 결심을 하게 될까? 마르크스는 꽤나 회의적인 감상으로 이 연극을 관람했을 것 같다.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해피엔딩'이라면서 말이다.


  자본가들은 이윤을 얻어낼 수 있는 기막힌 방법을 잘도 찾아낸다. 자본가들은 하나를 내어줘도 두 개를 얻어내는 비법이라도 있는 걸까? 중세시대의 '영주와 농노 이야기'를 살펴보자. 농노는 일주일 중에 사흘은 '자신의 땅'을 개간하고, 또 다른 사흘은 '영주의 땅'을 개간하며, 주일엔 쉰다. 농노는 사흘간의 노동으로 '자신의 몫'을 챙기고, 사흘간의 세금을 치르는 '자유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주가 농노의 땅을 강제몰수 해버렸다. 그리고 일주일 중 6일을 일하게 만들고, 그 가운데 '사흘치 임금'을 주면서 나머지는 영주가 '자신의 몫'으로 챙겼다. 하루는 쉬게 해주고 말이다. 겉으로 봤을 땐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사흘치의 몫'을 챙기는 것은 똑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느 엄청나게 다르다고 말한다. 자유민일 때는 '생산자'이지만, 땅을 몰수 당한 뒤에는 임금을 받는 '고용자'가 되어 버린 셈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유민일 때나 몰수 당한 뒤나 '세금'을 내는 의무는 같다. 여기서 또 차이점이 발생한다. 생산자일 때는 '사흘치의 몫'만큼 영주의 땅에서 일한 것으로 세금을 셈했기 때문에 '사흘치의 몫'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지만, 고용자일 때는 6일을 일하고서 3일치의 임금만 받았는데도, 그 '3일치 임금'에서 세금을 또 떼이게 되기 때문이다. 달라진 것은 또 있다. 생산자일 때는 영주가 세금만 받고 간섭을 하지 않았지만, 고용주일 때는 "내 덕에 먹고 사니 고마운줄 알아"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마르크스의 지적이 옳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자본가들도 노동자들에게 툭하면 하는 말이 있다. "내 덕에 먹고 사는 줄 알아. 내가 일자리를 만들지 않았으면 너희들이 어떻게 먹고 살 수 있었겠니. 그러니 고분고분 말 좀 잘 들으란 말이야. 파업 같은 거 할 생각하지 말고!"...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반대임을 알 수 있다. 노동자들이 일을 하지 않으면 기업이 하루라도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느냔 말이다. 업무가 멈추는 것은 물론, 공장의 기계도 헛돌 뿐일 것이다. 그런데도 노동자들은 자본가의 눈치를 보며 쥐 죽은 듯이 시키는 일을 고분고분하게 할 뿐이다. 당장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왜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이 발생한 것일까? 모두가 평등하다고 주장하고 평등한 관계에서 '합법적인 계약'을 했다고 하면서도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순간부터 '사용자'와 '고용자'는 지배와 피지배적인 관계로 돌변하고 만다. 아무리 억울한 일이 발생해도 '고용자'는 마음대로 사표도 낼 수 없다. 애초의 계약과는 다르다고 항변하지도 못하고 그저 묵묵히 일만 한다. 부당한 처우를 받아도 그저 꾹 참고 버틴다. 왜냐면 이곳을 나가 다른 회사에 취직을 해도 마찬가지 푸대접을 받기 때문이다. 자본가들끼리 서로 '악덕'이 되자고 모종의 합의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자본가라는 계급이 되면 그냥 자동으로 착취를 할 줄 아는 스킬을 습득하게 되는 것일까? 이처럼 '자본주의'에서 자본가와 노동자들 사이에 '해피엔딩'이 되기는 애저녁에 글러 먹었다.


  그렇다면 자본가들은 어떻게 자본가가 되었을까? 태어날 때부터 자본을 두 손 가득 쥐고 태어나는 걸까? 그건 아니다. 그들도 애초엔 '없었다'. 그래서 악착같이 절약을 했다. 1세대 자본가들은 '수전노'와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은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을 줄이는데 노력했다. 그렇게 돈을 모은 다음에는 자신이 '돈을 버는 기술'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면서 돈을 벌기 시작한다. 이른바 '2세대 자본가'다. 이들은 자신의 일을 '도제'에게 대신 시키면서도 일(기술)을 가르친다고 생색을 냈다. 그래서 고용을 했음에도 임금을 주기보다 수업료를 챙겼다. 그렇게 돈을 벌고 또 번 셈이다. 그러다 어느 정도 '자본축적'이 이루어지면 '돈이 돈을 벌어오는 구조'를 만들어서 돈이 알아서 모이도록 만든다. 그게 바로 '자본주의'다. 정확히 말하면 '자본이 돈(자본)을 벌어오는 시스템'이다. 이것이 바로 '3세대 자본가'의 완성형 모습이다.


  이런 전통(?) 때문인지 자본가들은 '절약'이 몸에 베어 있다. 절약을 잘 했기 때문에 자본가가 될 수 있었다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절약은 노동자들이 아껴쓰는 것과는 다른 '절약'이다. 자본가들이 즐겨하는 '절약의 실체'는 바로 노동자들의 몫을 주어야 하는데도, 그 몫에서도 또 절약을 해서 빼앗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노동자들에게 제공하는 '한 끼 식사(점심)'의 재료를 값싼 재료로 바꿔치기 하면서 '비용 절감'을 유도하는 것이다.


  실제로 영국의 자본가들이 영국 노동자들의 식사에 대해서 논평한 대목이 있다. "영국의 노동자들은 호화로운 식사를 한다. 프랑스의 노동자들은 더 값싼 재료를 절반만 먹고도 영국의 노동자들보다 곱절이나 더 생산을 해낸다(이책, 146쪽)"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무슨 빵까지 먹으려 하나. 귀리와 소금만으로도 배가 부를 텐데(이책, 146쪽)"라면서 자신의 불룩나온 배를 추켜올렸다고 한다. 이들이 피골이 상접한 노동자에게 한 말이라고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심정이 들었다.


  노동자들은 건강해야 한다. 자신의 유일한 '생산수단'이 맨몸뚱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건강을 잃는 순간 '생산도구'를 잃어버려 굶어죽는 수밖에 남지 않으니 어떻게 해서라도 건강을 잃으면 안 된다. 그런데 집도, 옷도, 먹을 것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아 늘 춥고 배고픈 이들이 '영국의 노동자'다. 이런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의 몫에서 더 많은 '절약'을 해야만 할까?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짓거리다.


  암튼, 자본가들의 '자본축적'은 이와 같은 '근검절약'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미 노동자들의 '잉여생산'을 통해서 이윤을 챙긴 자본가들은 '자본을 재생산'하는 방법을 통해서 또 한 번의 '자본축적'을 시행한다. 돈이 돈을 벌어오는 시스템이라는 것이 이렇게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참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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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2 - 개정판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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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물 김윤희와 가랑 이선준의 로맨스가 더욱 뜨거워졌다. 아직 가랑은 대물의 본모습이 '여자'인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뜨거워지는 몸'만이 사랑의 화살표를 정확히 가리키고 있지만, 가랑의 이성은 '남색(男色: 동성애)이면 안 된다'고 경고등을 밝히고 있는중이다. 한편, 대물 김윤희는 여전히 가랑에게 향하는 자신의 마음을 오롯이 지키고 있다. 하지만 본모습을 감추고 있는 실정이라 그 애뜻한 마음을 속시원히 밝히지 못하고, 그저 가랑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어차피 '당색(선준은 '노론', 윤희는 '남인')'이 서로 달라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핑계로 좋아한다는 마음만 감춘 채 좋아한다는 티는 내고 다녔던 것이다.


  선준과 윤희의 사랑이 무르익어갈 즈음에 여림 구용하와 걸오 문재신은 우연찮은 계기로 대물 김윤식이 '여자'임을 알게 된다. 놀라움도 잠시 그간 허물없는 동무지간으로 지냈던 터라 나름의 우정 때문이라도 대물의 정체를 밝힐 생각은 없었다. 도리어 김윤희로 인해서 서로의 당파가 다름에도 친우지간으로 지냈을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며 누구에게도 알릴 수 없는 비밀이 되어 버린 셈이다. 그 비밀은 정작 '대물' 자신도 알지 못했다. 이미 자신의 본모습이 여자인 것을 들통났는데도 계속 남자행세를 하는 것을 그저 귀엽게 바라볼 뿐이었다.


  물론 달라진 점도 있었다. 걸오가 어느새 '대물'을 짝사랑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다른 이에게는 여전히 '미친 말' 걸오였지만, 대물에게만은 살랑살랑 얌전한 조랑말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대물의 사랑은 이선준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 자신의 마음을 전하지 않을 뿐이다. 사랑하는 이를 곁에 두고도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아픔은 무엇으로 달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 '사랑의 화살표'가 잘못 방향을 잡은 이들은 더 있다. 바로 대물을 짝사랑하는 초선과 선준을 짝사랑하는 부용화다. 이들은 자신들의 사랑이 변함없음을 확고히 보여주지만, 그 사랑의 주인공들인 선준과 윤희는 자기들끼리 서로 사랑하느라 애달프기만 하다. 더욱 괘씸한 것은 선준과 윤희가 자기들끼리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하면서 초선과 부용화를 헷갈리게 만든다는 점이다.


  사랑의 감정에 있어서 '노선'을 확실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법이고, 가장 중요시 하는 예의일텐데, 선준과 윤희는 그 확실한 노선을 스스로 밝힐 수 없는 '사정' 때문에 그 옆에서 '사랑의 깜빡이'를 켜고 있는 초선과 부용화를 더욱 불쌍하게 만든다.


  이런 '엇갈린 사랑'은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지켜보는 관중이나 재밌지, 당사자들은 피말리는 상황의 연속일 뿐이다. 어디 그뿐이면 다행이다. 사랑의 감정이 크면 클수록 '틀어진 사랑'만큼 무서운 복수로 되돌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초선에게 이별을 고하는 윤희는 '없는 꼬추'를 잘릴 형국에 빠지고, 선준은 마음에도 없는 혼사를 거절했다가 '홍벽서'로 모함을 받아 고초를 겪게 된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선준과 윤희는 서로의 마음과 본모습을 확인하고 사랑을 맺게 되는데...과연 그 둘의 사랑이 아무 탈없이 맺어지게 된 것인가. 두둥~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서는 둘의 사랑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원작 소설'에서 보여준 애달픈 사랑이야기를 느낄 수가 없다. 다만 '비주얼'적인 면에서 잘생기고 어여쁜 두 남녀가 보여주는 로맨스에 푹 빠질 수 있었기에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재밌게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랑의 감정'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선 '영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로 전해 듣는 것이 더 감질나고 애간장을 녹이기 마련이다. 이제 무대는 '성균관'에서 '규장각'으로 옮겨간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로맨스는 또 어떤 맛일지...이미 알고 있지만, 새삼스레 모른 척 엿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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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 Principles
레이 달리오 지음, 고영태 옮김 / 한빛비즈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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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운다는 점에서 이 책은 <자서전>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잘난 사람의 일대기'를 그려내는데 그치지 않고 '인생역전'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삶의 원칙'을 추려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자서전'과는 그 '결'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위대한 원칙일수록 '간단한 요약'이 쉽다. 우리가 학습을 할 때도 '개념이해'가 술술 잘 되는 강의를 분석하면, 가장 먼저 '강의자'가 개념을 완벽히 이해했을 때 학생들에게 가장 쉽고 재밌게 가르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레이 달리오가 전하는 '성공원칙'은 또 다른 책 <성공원칙>이라는 책에 아주 잘 요약되어 있다. 다섯 가지 성공원칙만 익히고 싶다면 그 책을 권한다. 사실 이 책에서 말하는 '원칙'도 바로 그 다섯 가지인 '목표-문제-진단-계획-실행'을 계속 반복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성공'에 다다르는 가장 빠른 길을 원한다면 이 책을 다 읽기도 전에 '실천'부터 하는 것을 권할 뿐이다.


  하지만 왜 성공해야 하는지, 성공에 다다르기 위해서 무엇을 준비하고 대비해야 하는지 궁금하다면 두껍지만 이 책을 권한다. 누구에게는 그렇지 못하지만 많은 이들의 '인생'은 길기 때문이다. 이 책 한 권을 다 읽을 때까지 충분한 여유시간은 있을 것이다. 분명 당신에게도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한 사람들의 결과'에만 집중하기 마련이다. "나도 당신처럼 성공하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되죠?"라고 묻지만 '과정'을 진득하니 듣기보다는 '결과'에만 서둘러 가고 싶을 뿐이다. 또한 '과정'이 어렵고 복잡하면 으레 포기하기 십상이다. 그리고서는 '성공한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라는 섣부른 결론을 내려버리고 자신과는 '다른 사람의 인생'이라고 단정하기 바쁘다. 그리고서는 또 다른 성공한 사람에게 찾아가 똑같은 질문을 던지고 실망하기를 반복한다.


  '문제점'이 무엇인지 보이는가? 아직 성공에 다다르지 못한 당신의 문제점은 '인생을 허투루 낭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집중하지 못하고 변화를 꾀하지 못하는가? 변화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십중팔구는 '변화'를 시도조차 하지 않은 사람이거나 한두 번 '실패'를 맛보고서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간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 책에서도 매번 강조하는 것이 '실수는 괜찮지만 실수에서 배우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평범한 진리다. 늘상 성공하는 인생이 어디있겠는가?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완벽한 계획'도 없다. 그렇다면 매번 '수정'을 거듭하고, 올바른 수정을 하기 위해 '진단'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그렇게 수정된 계획을 들고 다시 실행에 옮기면, 언젠간 그 노력에 합당한 결과를 얻게 된다. 이것이 바로 레이 달리오가 자기 인생을 통해 얻은 '단 하나의 철학'이자, <원칙>인 셈이다.


  여기까지는 '개인적인 성공'에 해당하는 조언이다. 더 큰 성공을 위해선 '남'과 함께 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기꺼이 '동반자'가 되어줄 사람이 필요하단 말이다. 우리는 그들을 '인재'라고 부른다. 이런 인재를 뽑기 위해서는 어떤 <원칙>이 필요할까?


  인재를 뽑는 원칙이 중요한 까닭은 '동반자의 실수'가 곧 '나의 실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까탈스런 <원칙>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재를 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재를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인재를 제대로 뽑기 위해선 '누구'를 뽑을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외모'만 보고 뽑을 수 없는 것처럼 '능력'만 보고 뽑는 것도 나쁜 결과를 얻기 위한 첫걸음일 뿐이다. 무엇보다 '나의 목표'에 적합한 사람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꾸준히 교육시키고 관리해야 한다. '나의 목표'가 이것이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이해시키고, 따르도록 해야 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조직관리'로 이어진다. '조직관리'는 기계처럼 완벽하고 철저해야 한다. 예외규정 따윈 없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관행'이 쌓이고, 한 번 어긋난 관행은 조직을 와해 시켜버리기 때문이다.


  자, 여기까지다. <원칙>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점만 추려서 정리해보았다. 이해 못할 내용이 있는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중요하지 않은 원칙도 없을 것이다. 너무나 당연해서 도리어 실망할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도 당신이 실패를 맛 보았다면 그건 <원칙>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그랬나?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나? 때론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시련의 늪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한 경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명백한 것은 그건 '당신의 책임'이라는 점이다. 누구에게도 전가할 수 없는 '당신의 책임' 말이다.


  우리는 살면서 소소한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결과보다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야 왜 성공을 했고, 왜 실패를 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을 미리 대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알지 못하는 것'이 닥쳤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미리 대비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적절한 비유는 아닐지라도 '코로나19'에 대처했던 여러 나라의 방식은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감기에 걸렸을 때 '마스크'와 '손씻기'를 잘 준수하면 예방과 함께 확산을 차단하는 가장 쉽고 간단하고 당연한 <원칙>을 지킨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의 결과는 엄청나게 달랐다. 이해가 되는가? <원칙>이란 이처럼 가장 기본적인 것을 잘 지키는 것을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그 외에 다른 세세한 원칙들은 각각의 상황에 알맞게 대처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중요한 것은 '기본원칙'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원칙>을 잘 지키고 꾸준히 실행하는 것이고 말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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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면서 보는 해부학 만화 한빛비즈 교양툰 8
압듈라 지음, 신동선 감수 / 한빛비즈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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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에 우연히 접한 '의학 백과사전'이 나의 첫 '해부학책'이었다. <가정의학 백과사전>이란 책이었는데,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피부와 골격, 근육, 신경을 이루고 있는 단원 설명이 끝나면, 갖가지 병의 이름과 증상, 치료법 따위가 적혀 있는 백과사전이었다. 물론 초등생 시절이라서 '글'보다는 '그림'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림을 다 훑어보고서는 덮어버린 '해부학과의 인연'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묘한 흥미만은 갖고 있었다.


  그리고 성인이 될 때까지 '해부학'과는 인연이 없었다. 과학수업시간에 그 흔한 '개구리 해부실습'도 하지 않은 세대였기 때문에 '살아 있는 생명체'를 오직 글과 그림으로만 배울 뿐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봤을 때에도 묘한 흥미와 함께 읽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압듈라'라는 이름 때문에 머뭇거렸다. '해부학'과 '아랍인(?) 작가'가 서로 매칭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나토미 분야'에서 아랍권은 그닥 유명하지 않다는 어줍잖은 상식 때문에 '외국인(?) 작가'가 쓴 해부학 만화를 그닥 읽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 그랬다. 난 '압듈라'가 누군지 몰랐던 것이다.


[출처: 압듈라 페이스북]


  위의 그림체를 보면 단박에 알 수 있지만, 압듈라는 '개그만화가'다. 정확히 말하면 '아재개그의 대가'라고 할까..암튼, 그의 책을 읽으면 느닷없는 개그에 뿜게 될 것이다. 원래 개그는 설명을 하면 안 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살짝 해설을 하자면, <까면서 보는 해부학 만화(이하 '까해만')>의 E-book편이 나온다는 한 컷 만화다. 그런데 만화가 자신을 '김정은'을 연상하게끔 그렸다. 까닭인 즉슨, E-book을 '이북'이라고 발음나는대로 소개하고 있는 황당한 시츄에이션을 풀어놓고 있다. 그리고 크기가 작아서 말풍선이 보이지는 않겠지만, 해부학과 관련된 '뼈대 있는 곧츄~'를 논하며 오늘날에 멸종된 공룡에 비유하면서 '포유류의 곧츄뼈는 말랑한 해면체로 변해서 사라졌다'는 은유적인 표현을 하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살아있는 곧츄뼈'는 댕댕이, 미국너구리, 수달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요약하고 있다. 물론 '지켜야 할 선은 분명히 지킨다'는 의지(?)를 표명하며 '건전하다'고 강조하고 있는 장면이다.


[왼쪽부터 '골격퀸', '신경퀸', '심장퀸' (출처: 압듈라 페이스북)]


  그림체는 보면 알겠지만, 한 눈에 봐도 '순정만화 스타일'이다. 쉽게 말해 '일본만화'스러운데 실제로도 작가는 수많은 '일본만화'에서 모티브를 따와서 적절하게 버무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려운 해부박'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며, 책의 내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래서 '원작만화'를 알아도 재밌고, 몰라도 재밌기만 하다. 그런데도 이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는 '그와 그녀의 사정'은 해부학이라고 하는 어렵고 인기없는 학문에 대한 접근을 유도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얼마나 이해하기 쉽냐면, 척추뼈를 부드럽게 지탱하고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디스크'를 멍멍이에 비유하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인류가 '직립보행'을 하면서 다른 동물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허리통증'을 갖게 되는데, 그 이유가 바로 척추뼈가 중력에 의해 아래로 힘을 받게 되면 '디스크'가 척추뼈에서 이탈하게 되고, 그러면 척추뼈를 감싸고 있는 예민한 신경을 건드리게 되면서 통증을 유발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것을 '척추퀸'이 기르고 있는 '댕댕이(디스크)'가 옆방으로 탈주하면 옆방에 있던 예민한 '신경퀸'을 자극해서 자지러지는 통증을 유발한다고 설명한 것이다. 얼마나 쉬운 설명인가.


  이렇게 '해부학'을 공부하면 우리 몸의 움직임 뿐만 아니라 감각, 통증, 병의 원인까지 단박에 알 수 있게 되는 해박한 학문이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단언컨대 이 책을 읽으면 '해부학'이 결코 어렵기만한 학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리고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뼈와 근육', '척추', '신경', '심장' 등등 모르는 것들을 단박에 아는 것으로 바꿔주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공룡', '곤충', '의학', '와인', '퀀텀', '성차별' 등의 [교양툰 시리즈]를 읽어왔지만, 이 책이 단연코 최고다. 다들 '관련분야'에 해박함을 주는 교양있는 만화책이었지만, 이 책만큼 '이해도'가 높은 교양툰은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2편을 기대한다. 더 세심하고 깊이 있는 해부학의 세계로 이끌어주길 바란다. 의대생들도 꺼려한다는 '해부학실습'을 마스터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을테고 말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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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택트 이코노미 2021 - 비대면 경제 시대의 맞춤형 투자 전략
최성근 외 지음 / 한빛비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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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많이 쓰고 있는 '언택트'라는 단어는 'un-contact'의 줄임말로 영어에는 없는 표현으로 지적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 말로는 '대면(contact)', '비대면(un-contact)'으로 너무나도 일상적인 용어인지라 많이 쓰고 있는 형편이다. 이른바 '콩글리쉬'라는 얘기인데...기왕에 '한류'가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마당에 '한국식 영어'가 널리 퍼진다는 것이 그닥 나쁠 것 같지 않을 뿐이다. 다만 '엉터리 영어'를 쓴다는 자격지심 따위는 훌훌 던져버리길 바란다. 한국사람이 '미국/백인/상류층 영어스타일'만 고집스럽게 지켜야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설령 '미국 남부억양'으로 발음을 한다고 한들 '그들'이 우리를 깔보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영어를 하지 못한다고 폭력을 휘두르는 '그들'을 향해 고풍스럽고 세련된 한국말을 선보이며 품격 높은 자태를 보여주는 것이 더욱 멋진 반격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언택트 시대(비대면 시대)'를 맞아 바람직한 투자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 어느 곳도 '안전한 투자처'가 없는 상황이다. 국내를 비롯해서 세계 어느 곳도 경제가 활성화 된 곳이 마땅히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투자'는 멈출 수 없다. '수전노'처럼 안전한 자산을 확보하고 끌어안고 있는다고 해서 '경제'가 살아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돈을 버린다는 생각으로 과감하고 적절한 투자를 해야만 경제가 살아나게 된다. 돈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구석구석 돌고 돌아야 경제도 살리고 사람도 살리기 때문이다.


  헌데, 아시다시피 '코로나19'가 전세계를 강타하면서 이른바 '판데믹 시대'를 맞이하고 말았다. '판데믹(pandemic)'이란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병으로 100여 년 전, 5000만 명의 사상자를 낳은 '스페인 독감'처럼 불특정 다수에게 감염을 일으키며 수많은 인명피해를 낳는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 선언하곤 한다. 다행히 원인도 규명하지 못하고 당하기만 했던 '스페인 독감'과는 달리 일찌감치 '감염 원인'을 파악한 덕분에 지금도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지만, 아직 '완치'를 할 수 있는 '완벽한 백신'과 '완벽한 치료제'가 나오고 있지 않아서 전세계가 우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계절성 독감'처럼 해마다 백신을 맞을 수 있을 정도로 '안전성'이 확보되어야 예전의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 텐데, 인류가 처음 맞닥뜨린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감염력과 치사율이 둘 다 높은 최악의 바이러스로 기록될 전망이다. 보통은 감염력이 높으면 치사율이 낮던가, 아니면 그 반대가 대부분이어서 대처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했는데, '코로나19'는 감염력이 매우 높으면서도 중증환자로 전환되는 속도와 반응이 너무나도 빠르고 강력해서 '치료제'도 없는 의료진을 당혹케 만들곤 한다고 전한다.


  이런 상황에서 '안전한 투자처'란 어디에 있을까? 먼저 세계적으로 '자국중심주의'와 '보호무역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와 시진핑의 줄다리기는 결국 선을 넘어서 '미중갈등'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판도 커지고 말았다. 이제는 어느 한 쪽이 '백기'를 들고 투항하는 일만 남았을 정도로 각을 세웠지만,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한 지금 시점에서는 일단 '진정세'가 엿보이곤 한다. 하지만 미국의 새 대통령인 '바이든(민주당)'도 지금의 미중갈등을 계속 이어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기 때문에 그 무엇도 속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과 그 패권을 빼앗겠다는 '중국'의 속셈이 너무나도 빤히 보이는 마당에 둘의 힘겨루기가 '일단락'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각 나라'다. 유럽과 일본, 그밖의 '경제협력' 무리 등등의 이합집산이 얼마나 먹혀들지가 관건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코로나의 영향'으로 인해 깜깜할 지경이다. 지금 상황으로서는 '방역과 의료행위에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속단할 수 없는 지경이다. 그러니 여러 가지 투자전망을 두루두루 엿보고 있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점이 되었다는 것밖에 아무 것도 속단할 수 없다. 다행히 내년에는 '안전하고 확실한 백신'이 나올 거라는 전망이 경제에도 희망적인 작용을 하겠지만, 그것도 지나 봐야 알 일일 것이다.


  한편, 국내상황은 확진자가 수없이 쏟아지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는 안정적인 상황이지만, 내수 경제만으로는 결코 우뚝 설 수 없는 한국의 경제는 결국 '안정적인 수출입처'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리고 빠르게 변하고 있는 '비대면 시장'을 선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문제는 '비대면'으로 빠르게 전환할 수 없는 '제조업 분야와 자영업자' 들의 생계를 해결한 마땅한 방책이 없다는 것이 최대 관건이다. 그나마 '고용분야'에서는 공공일감을 대거 풀어내면서 서민들의 호구지책을 마련하여 급한 불을 끌 수 있었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청년실업'과 '자영업자들의 한숨'이다. 특히, 올해 고3 수험생들은 수능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부터 걱정해야 할 정도 학습지도가 엉망이 되었고, 기업들의 신규채용이 현저히 줄어들어서 대졸자들의 취업 전망도 어둡기만 하다. 더구나 출근도 하지 않고 '자택근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비대면 행정지침'이 내려지면서 자영업자들에게 직격탄을 날리게 되어 하루가 다르게 '폐업신고'를 하는 서민들이 점점 빠르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내년 전망도 어둡게 만들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제조업'을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전세계적인 '마스크 대란', '화장지 사재기' 현상이 일어난 것만 보아도 모든 제품을 '중국산'에 의존하고 자국의 제조시설을 없앤 나라들은 하나 같이 엉망진창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로 인해 중국 전체가 봉쇄되는 상황이 벌어지자 이런 생필품조차 부족해져서 곤란을 겪었던 셈이다. 더구나 우리 나라에서는 일본의 일방적인 '무역보복'이 일어나자 일본에 부품생산을 의존했던 기업들이 연쇄도산을 걱정했을 정도로 큰 우려를 겪기도 했다. 그러므로 '제조업'은 단순히 수지타산의 셈법으로 결론을 내릴 것이 아니라 '최소안의 경제 안전망'을 꾸린다는 생각으로 자국 안에 안정적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또한, 우리 나라는 노후대책 마련이 현저히 부족한 탓에 퇴직을 하면 '자영업자'로 전환해서 살아가야만 하는 '복지 후진국'에 속한다. 따라서 우리 나라는 향후 노년에도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정부대책이 뒷받침이 되어야만 '자영업자들의 한숨'을 불 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경제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자영업자들'이 몰락하지 않게 해야만 한국의 경제가 되살아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선 정부의 노력이 무엇보다 앞장서야 한다. 그동안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도와줬을지 몰라도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는 지금에서는 '최저임금'이나 '기본소득' 등과 같은 안정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영업 쪽의 투자도 꼼꼼한 시장조사를 바탕으로 뛰어들어야만 할 것이다. 다행히 '코로나 시대'에도 사람들의 일상생활은 쭉 이어지고 있다. 다시 말해, 먹고 마시는 문제는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단 말이다. 하지만 '비대면'이라는 숙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분명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빠르게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자영업자들'이 해결해야 할 코 앞의 문제가 될 것이다.


  그밖에도 '금리/환율', '주식', '부동산' 등등의 대책이 담겨 있는 책이다. 허나 이쪽으로는 까막눈에 가깝기 때문에 이해를 했다손 치더라도 뭐라고 정리하기가 난감하고 첨예할 뿐이다. 언론을 봐도 도통 알 수 없는 이야기만 전하고 있다. 다시 말해, 언론과 실재가 전혀 다르게 '접근'하고 있다는 것만 느낄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만 할 것이다. 왜냐면 이쪽 분야에는 '전문가'라고 불리는 세력들의 농간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동산 전문가'라고 나온 사람의 이력을 보면 '자기가 소유(투자)하고 있는 지역'을 아주 좋은 투자처라고 떵떵거리며 전하고 있는 실정이란다. 이것을 뻔히 알면서도 '언론들'은 아무런 여과장치도 없이 그대로 방송하고 있는 실정이다. 무슨무슨 '경제책'은 어떨까? 마찬가지다. 대부분 그럴싸한 이론으로 철저히 무장해서 반드시 투자에 성공하는 내용이라고 호언장담하지만...지나고 보면 다들 '짜고치는 고스톱'마냥 온갖 비리가 쏟아지곤 한다.


  그래서 난 이쪽 분야의 '경제전망'은 일단 쉴드를 치고 읽는 편이다. 물론 모든 경제전문가들을 '작전세력'으로 몰아세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라는 속단도 내릴 수 없는 상황에서 '중단기적 전망'은 아무래도 믿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다만 '장기적인 안목' 만큼은 주목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금리는 점점 내려가기만 하고, 주식은 대기업 쏠림 현상이 유력하고,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투자자들이 부동산 시장으로 몰려드는 상황에 주목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투자를 하더라도 누군가의 희생을 발판으로 삼아 이득을 취하는 방법만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그동안의 경제적 호황은 '집없는 서민들'의 피땀눈물을 자양분으로 삼아서 거대한 경제를 굴려왔다. 하지만 그 결과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날로 심각해져서 '집없는 서민들'은 평생 집 한 채 갖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천정부지보다 더 높은 우주꼭대기로 집값을 올려놓고 어떻게 안정적인 삶을 살라는 것인가. 금리가 떨어질만큼 떨어졌으면 경기라도 활성화되어야 할텐데, '제로 금리'에 도달했는데도 경기가 회복될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는다. 이것은 그동안의 '경제상식'이 이제는 무용지물이 되었단 얘기가 아닌가? 그렇다면 '다른 경제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은 그 대안을 마련할 능력이 없는 것인가? 용기가 없는 것인가? 이젠 능력이 없으면 용기라도 내보아야 할 때가 도래하였다는 생각 뿐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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