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장각 각신들의 나날 2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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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생들의 나날'에 이어 '각신들의 나날'을 보낸 향안랑 4인방(대물, 가랑, 걸오, 여림)들의 대미가 장식된 마지막 이야기다. 드라마로도 인기리에 방영된 까닭에 줄거리가 궁금할 까닭은 없을 것이므로 과감히 스포일러를 포함한 총평을 남기고자 한다.

 

  이 책은 <꽃보다 남자>에서 비롯된 '꽃남 속의 여주인공'을 등장시켰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남장여자'를 등장시켜 보이쉬한 여주인공이 꽃남과 달달한 연애를 이어가는 매력을 '사극 장르'로 한껏 끌어올려 독자들을 홀려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대극이 갖고 있는 중후함에다가 '조선판 F4'를 연상케 하는 '잘금 4인방'을 주인공을 캐스팅하였고, 그 가운데 한 명을 '절세미인'이면서 동시에 '꽃남'으로 변신시켜 <로맨스 소설>의 격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 정은궐 작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후속작인 <해를 품은 달>(2011년)에서 또 한 번의 시대극 로맨스를 펼쳐보였다. 정은궐 작가의 '사극 로맨스소설'은 <홍천기>(2016년)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 책이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또 다른 까닭'은 바로 <로맨스소설>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꼼꼼한 '역사고증'에 있다. 조선의 르네상스라 불리는 '정조시대'를 배경으로 '성균관 유생들'과 '규장각 각신들'의 일상사를 아주 세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기 때문에 여자주인공을 등장시킬 수 있었고, 독자들도 시대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책속으로 흠뻑 젖어들어서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시대극'에서 여자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기 어려운 까닭은 바로 '1차 사료'속에서 여자의 기록이 그다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록에 남겨지지 않았기에 상상력을 더욱 발휘할 수 있을 법 싶지만, 그시절의 여자들이 어떻게 활동을 했는지 알 수 없으니,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도 알 수 없는 까닭에 이야기를 만들기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여타의 작품들 가운데 장르는 '시대극'인데, 등장인물들은 '현대인'으로 이질감이 묻어나는 것들이 참 많다. 그런데도 정은궐은 당시의 '여성상'에서 크게 벗어나지도 않으면서 '현대극'에서처럼 달달한 로맨스를 그려내어서 감탄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물론 그 때문에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심각한 '여성차별적인 요소'가 눈에 거슬리기도 하다. 여성을 온전한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았던 시대를 열연하는 등장인물이 보일 때마다 울컥하였고, 여성이기 때문에 참아야 하는 장면에서는 답답함을 금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정은궐 작가는 연인들을 옥죄어서 독자들에게 더 큰 '사랑의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장치로 삼았다. 그런 점에서는 참 얄미운 작가다. 요리조리 잘 피해가니까 말이다.

 

  또한 정은궐 작품을 감상할 때 놓쳐서는 안 될 포인트는 바로 '출중한 능력'을 가진 등장인물이 '애민정신'까지 갖춘 반듯한 이상형이라는 점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가랑 이선준'이다. 조선시대 선비의 대명사였던 '조광조'가 떠오를 정도로 올곧고 반듯한 성품을 가진 선비가 지고지순한 사랑까지 하고 있으니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겠느냔 말이다. 비단 정은궐 작품뿐만 아니라 '시대극'을 표방하고 있는 작품의 주인공 가운데에는 꼭 이런 인물들이 있으니 주목하며 읽으면 더욱 재미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을 준 것이 바로 '대물'의 등장이다. 올곧다 못해 꼿꼿한 주인공 감을 '서브'로 밀어내고, 가난에 쩔어서 현실적인 삶의 현장을 낱낱이 보여주는 여주인공을 전면에 등장시키며, 주인공 감을 감히(?) 조연으로 출연시킨 것이다. 물론 여주인공에게도 그에 못지 않은 '절세미인'이라는 가공할 설정을 놓치지 않았다. 이런 까닭에 <로맨스소설>은 달달함을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주며 깊은 감동을 끌어내지 못한다는 설정에 충실하였지만, 이 책은 그중에서 최고라는 타이틀만큼은 놓치지 않은 듯 싶다. 지금껏 정은궐의 아성을 뛰어넘은 작품으로는 <구르미 그린 달빛>밖에 없으니 말이다.

 

  아쉬운 점은 이 책이 아직까지도 '미완'이라는 느낌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분명 작가도 주인공 일행이 '청나라에 다녀온 뒤'를 구상했을 것이다. 왜냐면 아직 풀어나갈 이야기가 넘치기 때문이다. 먼저 선준과 윤희가 펼쳐나갈 '신혼이야기'가 몹시 궁금하다. 또한 윤희와 윤식이 서로의 역할을 바꾸고 난 다음에 벌어질 일들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어디 이뿐인가. 문재신과 반다운의 알콩달콩한 사랑이야기도 못다 그렸으며, 여림 구용하가 암행어사를 갔을 때 보여주었던 활약상으로 짐작할 수 있었던 '슈퍼파워'도 채 그리지 못했다. 더구나 <외전>의 성격을 보여주는 '여림의 본처 이야기'도 전혀 나오지 않았다. 왜 여림이 처를 사랑하면서도 온세상 여자들과 썸씽을 나누는 것인지 이야기를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김윤식'의 이야기도 자못 궁금할 따름이다. 누님에게 가리워져서 본래의 능력을 1도 보여주지 못했지만, 대물의 동생이기에 보여줄 수밖에 없는 그만의 '슈퍼파워'가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니면 '잘금 4인방'이라는 명성을 이어나갈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뒷이야기'가 나올 수 없는 까닭도 있으리라. 무엇보다 '잘금 4인방'이 몸 담고 있는 규장각을 든든히 해야할 정조의 수명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청나라에 다녀온 뒤에 활약할 수 있는 기간도 그리 길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겠다. 정조의 사후에 벌어질 일을 전개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지만, 무엇보다 정조가 승하한 직후부터 '탕평'은 무너지고, '노론 천하'가 되어버린다는 점이 '잘금 4인방'을 어제의 동지에서 오늘의 적으로 그릴 수밖에 없다는 점도 한몫 단단히 했을 것이다. 그러면 더는 <로맨스소설>일 수 없게 되어 정은궐 작품이 되기에 적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뒷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 거라는 예상은 되지만, 그럼에도 애독자로서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래도 수많은 팬들은 이 책을 <로맨스소설>의 정석으로 손꼽을 것이다. 소설보다 드라마를 더 좋아했던 팬들도 더 많았으니 두말 하면 입 아플 것이다. 가랑 역할을 맡았던 이가 '현실의 변태'로 밝혀지면서 대실망을 하였지만, 드라마의 품격까지 떨어지지는 않았다고 본다. 물론 팬들의 충격은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암튼 또 다른 '정은궐 작품'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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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것이 당연합니다 - 어른을 위한 단단한 마음 수업
한덕현 지음 / 한빛비즈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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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은 불안으로 가득한 해였다. 혹시라도 코로나 감염에 걸리는 것은 아닌지, 이렇게 돈벌이가 시원치 않아도 괜찮은 것인지...지난 해, 마지막 남은 적금을 깨며 다달이 통잔잔고가 줄어드는 것을 지켜볼 때의 심정은 정말 착찹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는 원인이 되었다. 비단 나 혼자만의 고민은 아니었을 것이다. 판데믹 시대를 맞아 전세계가 똑같은 고민을 하며 모두가 불안에 떨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원인 말고도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대표적으로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들이 그렇다. 이들은 아주 사소한 이유로도 죽을 것 같은 공포가 밀려온다고 하는데, 막상 죽지 않을 원인이기 때문에 죽지는 않는단다. 또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도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고통을 호소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누구에게 손을 내밀지도 못하고 그런 고통을 그저 감수하며 불안에 떨다가 생을 달리하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하는데, 이런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분들을 치료하는 심리적 접근은 의외로 그런 '공포'와 '고통'을 마주하는데서 시작한다고 한다.

 

  이를 테면, 공포와 고통이 밀려오는 원인을 담담히 이야기를 하면서 '마주서기'만 해도 어느 정도 공포와 고통이 줄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비행기를 타는 것을 무서워하는 환자와 함께 '비행기 타는 것 때문에 생기는 공포'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면 환자는 정작 자신이 '진짜 무서워하는 원인'을 생각하게 되고, 실제로 '별것 아니다'라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면 공포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된다고 경험담을 늘어놓기도 했다. 치료자가 한 일이라고는 고작 환자와 비행기가 이륙할 때부터 착륙할 때까지 환자와 '이야기'를 나눈 것 뿐이었다. 그런데도 환자는 평생 처음으로 수면제나 술의 도움이 없이 편안하게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고 답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환자가 진짜로 무서워하는 것은 '비행기 사고'로 인해서 발생할 수 있는 무엇이었다. 만약에 비행기 사고가 난다면 자신은 죽을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히자 비행기에 관한 모든 것이 '공포'로 다가오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비행기는 안전하게 이륙해서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비행을 한 뒤에 안전하게 착륙하곤 한다. 실제로 그 환자도 시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비행기를 타고 다녔지만, 단 한 번도 사고를 경험해본 적은 없었던 것이다. 치료자는 바로 그 점을 '확인'시켜주며 '만약'에 일어날 사고에 대한 생각보다는 '다른 생각'을 해보라고 권한 것만으로도 환자를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알게 모르게 '불안'을 겪으며 산다. 하지만 대부분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무한한 걱정일 뿐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죽을 것 같은 공포가 찾아와도 '지나가면' 아무렇지도 않고 대수롭지도 않은 일이 태반이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불안 증세를 흔하게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을 채찍질하듯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불안을 몰아내는데 집중해야 할까? 그건 아니다. 그런 방법은 도리어 '불안 증세'를 더욱 심하게 할 뿐이다. 그럴 때에는 그저 '불안'해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불안한 상황인데, 불안하지 않다고 '부정'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무서워하는 것이 있는 것처럼 불안해하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그걸 부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불안 증세'를 극복하기 위해서 차분하게 되돌아볼 필요는 있다. 자신이 '필요 이상'으로 불안에 떨지는 않는지, 또 쓸데없이 '예민'하게 구는 것은 아닌지도 말이다. 사람은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본능적으로 '불안'을 이용하게 된다. 위험으로부터 빨리 벗어나기 위해 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깨워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기제로 '불안'을 이용했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불안을 느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필요 이상'으로 불안 증세를 겪기 때문에 생긴다. 그렇게 필요 이상으로 발생한 불안을 '마주할 용기' 또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리고 차근차근 자신이 불안을 느끼는 증세를 '바로' 보고, 당당히 '마주'할 수 있다면 누구나 불안을 이겨낼 수 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에게 발이 닿지도 않은 깊은 물에 빠뜨리는 '충격요법'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새를 무서워하는 사람에게 새가 무섭지 않다는 것을 아무리 각인시켜도 별반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물가에서 발을 담그는 정도는 손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물을 살짝 첨벙거리면서 물을 이겨내는 시도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겨낼 수 있는 힘은 바로 '수영'을 배우는 것일 것이다. 그러면 물에 빠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이겨낼 수 있는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되는 것이다. 새를 무서워한다면 새의 생김새나 생태가 나와 있는 '조류백과사전'을 보면서 새의 특징과 행동을 먼저 '관찰'하게 한 다음에, 덩치가 작은 새부터 푸드덕푸드덕 날아오르는 모습을 지켜보게 하면 좋은 효과를 얻게 될 것이다.

 

  이처럼 불안은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한 막연한 공포에서 찾아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가 알게 된 것'에 대해서는 더는 무서워하지 않게 된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조그만 소리에도 더욱 예민하고 무서워하게 된다. 머릿속에서 온갖 상상이 다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등불' 하나만 켜도 그런 불안 증세는 싹 사라진다. 소리가 나는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안 증세를 극복하기 위한 것으로 '아는 것'이 중요하기도 하다. 무서워하는 대상의 '실체'를 밝혀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불안 증세를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 누구도 '아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는 없다. 왜냐면 '해결 방법'이나 '대처 방안'을 알고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늠할 수도 없고, 전혀 알지 못하는 것에 의해서 불안에 떠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또, 내가 두렵지 않은 것을 남은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그 또한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불안'해지면 차분히 되돌아보면서 '불안의 이유'나 '원인'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극복 방법이다. 가까운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불안 증세는 어느 정도 사라진다. 그래도 해소가 되지 않으면 전문가와 상담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경정신과의 문은 높지 않다. 그곳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경험을 통해 얼마든지 '불안'을 극복할 수 있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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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쁨 중독 - 매 순간 바쁘게 살아야 한다는 착각
셀레스트 헤들리 지음, 김미정 옮김 / 한빛비즈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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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수많은 '자기계발서'에서 근면성실함을 강조한다. 게으르면 안 된다. 나태하면 뒤쳐진다. 심지어 아침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먼저 잡는다면서 부지런함을 열심히 강조한다.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리고 성실함은 어디에서건 사랑받고 존중받고 인정받는 '으뜸'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누구보다 바쁘게 살아가는 당신은 행복하신가? 이 책은 바로 이 질문에 적절한 답을 찾지 못하는 독자들을 위한 책이다. 사실 요즘과 같은 '돈이 돈을 벌어다 주는 시스템'을 장착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성실함이 돈을 벌어다주지 못하고 있다. 마치 시지프스가 받는 형벌처럼 말이다. 또는 대한민국에서 아파트 한 채를 사기 위해 평생을 열심히 일을 해도 절대로 살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초등시절부터 '스펙'을 쌓으며 12년을 죽어라 공부해도 돈 받은 부모 덕을 보는 '금수저'를 결코 이길 수 없게 만들어 버린 시스템에서 성실함은 유명무실해질 법도 하다. 아, 이 책에서는 이런 사회문제와는 좀 다른 '바쁨 중독'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사회에서도 더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꿀 수 없을 정도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노골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위와 같은 문제점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 수 없긴 하다.

 

  하지만 '바쁜 생활'을 하는 본래의 원인을 들여다보면 좀 다르게 보일 지도 모르겠다. 이를 테면, 정말 우리는 스스로 원해서 바쁜 것인가? 물론 성공신화를 쓰기 위해 미친듯이 커리어를 쌓아가는 일꾼들에게 하는 말이다. 이 책이 '자기계발서'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당연한 질문이다. 정말 눈코 뜰 새도 없이 바쁜 일꾼들이 있다. 막중한 책임을 맡은 책임자들, 다른 사람으로 대체불가인 능력자들, 그리고 정말로 좋아서 미친듯이 몰입하는 재주꾼들이 그렇다. 이들이 하는 일은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이 책의 저자도 그닥 반대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 '성공'이란 문턱을 넘지도 못했는데 벌써 자신의 일상이 너무나도 바쁜 이들이 있다. 이들은 아직도 '비효율'이라는 선을 넘지 못한 '예비 성공꾼들'인 셈이다. 아직 성공하지도 못했고, 성공하기에는 뭔가 2% 부족한 이들 말이다. 그들이 아직 성공신화를 쏘아 올리지 못한 까닭은 무엇인가? 이 책에서 말하길 '하릴없이 바쁜 척 하기' 때문이란다.

 

  성공한 사람들은 일에 '쫓기는' 사람이 아니라 일을 '쫒는' 사람들이다. 일에 치여 허덕이며 겨우 마치는 이들이 아니라 일을 다스리고 관리하며 즐기는 이들이 바로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이다. 그렇다면 당신도 여유를 즐기며 성공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은가? 당연한 말이다. 누구든 바라 마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방법은? 간단하다. 자신의 삶을 우선 순위에 두고 일을 즐기면 된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철저한 '자기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단, 자신이 진짜로 바쁜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내야 한다. 허투루 낭비하는 '시간'이 있다면, 과감히 줄이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 이를 테면, 낼모래가 시험인데 '인스타그램'을 서핑하며 '좋아요'만 누르는 시간이 2시간이라면, 과감히 줄여야 한다. 아예 하지 않으면 시험공부할 시간이 2시간 늘어난다는 원리다. 말로는 파악하기 쉽지만 실천하기 힘들다면, '기록하는 습관'부터 가져 보아라. 자질구레한 것까지 몽땅 기록한 다음에 '지난 일주일간', 또는 '지난 한 달간' 자신이 한 일들을 꼼꼼히 살펴보길 바란다. 정말로 시간을 낭비한 것과 같은 일들은 과감히 삭제해 나가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 관리'를 시작했다면, 본격적으로 하릴없이 바쁜 일상을 고쳐 나간다. 예를 들어, 자신을 남과 비교하는 일부터 버려라. 정말 쓰잘 데 없는 짓이다. 전교1등이 쓰는 참고서를 내가 쓴다고 전교1등 되는 것 아니다. 나에게 맞는 참고서를 써야 공부의 능률이 오르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그리고 충분한 휴식을 즐겨라. 사람은 쉬어야 다시 일할 수 있는 힘을 회복할 수 있다. 일 중독에 빠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잠을 자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여가를 충분히 활용하라. 잘 놀아야 일의 능률도 오르기 마련이다. 일과 전혀 상관없는 여가생활을 통해서 참신한 아이디어가 샘솟기 마련이다. 그리고 친구를 많이 사귀고, 일도 혼자 하지 말고 함께 하라. 일하는 방법에만 몰두하지 말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안목을 넓히고 목표를 분명하게 세우는 것...이런 것들이 삶과 일을 둘 다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들이다.

 

  이 책은 일을 하지 말라는 내용이 아니다.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열심히 사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수많은 이들이 성공과는 별개로 너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말을 하고 싶은 셈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행복하고 여유로운 삶을 포기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일중독은 금물이다. 행복한 삶을 동반하지 않은 성공은 성공이 아니란 말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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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짝 심리학 2 -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의 병 한빛비즈 교양툰 9
이한나 지음 / 한빛비즈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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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설하고, 요즘에는 '마음의 병'에 걸린 사람들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곤 한다. 유명 연예인이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을 한 뉴스, 공황장애에 시달렸다고 토로하는 연예인도 참 많아졌다. 그리고 조현병에 걸린 이웃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뉴스도 종종 장식한다. 이와 같은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조현병은 모두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이상증세'들이다.

 

  한편, '사이코페스'와 '소시오페스'가 주목을 받기도 한다. 이들이 저지르는 '폐륜'은 인간이 아닐 것만 같을 정도로 심각한 범죄를 일으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이상증세'를 보이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 이것은 주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서 생기는 '마음의 병'인데, 실제로 우리 주변에 너무나도 흔하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다. 100명 가운데 1명 정도 꼴로 많다는데,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는 까닭은 이들이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할 뿐, 의외로 평범한 일상을 하며 살 수 있을 정도로 '평범하다'는 점 때문이다. 그래도 간간히 들려오는 '가정폭력', '동물학대'와 같은 끔찍한 사건이 장식하는 것을 보면, '감정'을 못느끼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이 있는지, 그들이 얼마나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뭔가 느껴지는 것이 없는가? '마음의 병'에 걸렸다고 해서 우리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시켜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들이 '이상증세'를 보이는 원인을 파악해서 잘 치료하면 누구나 평범한 일상을 보낼 수 있다는 말인 셈이다. 마치 '신체장애'를 가진 사람이 목발이나 의수, 휠체어, 지팡이, 안내견 등의 도움을 받아 일상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것처럼,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도 호르몬 치료, 감정교감 치료 등을 통해서 얼마든지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우울즐이나 공황장애, 조현병 같은 경우에는 '호르몬' 조절이 안 되어서 발병하기 때문에 의사의 처방을 받아 약을 복용하면 얼마든지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심각한 공포를 느끼거나 환각이나 환청에 시달리는 경우에는 '병원'에 입원해야 할 테지만, 대부분은 간단한 약물치료만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한편, 사이코페스와 소시오페스의 공통점은 '감정이 없다'는 것인데, 가장 큰 차이점은 '사이코페스'의 경우에는 감정이 1도 없다는 것이고, '소시오페스'의 경우에는 감정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감정이 격해지기 전에는 누구보다 멀쩡하게 생활을 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미쳤다'는 것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감정이 격해지는 상황에서 이들은 '인간이길 포기한 것'처럼 비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이들이 저지른 끔찍한 행위는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법의 처분을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들이 그렇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게 된 '원인'을 살펴보면, 이들이 얼마나 '감정'을 제대로 배울 수 없었는지 알게 된다.

 

  이런 '마음의 병'을 가진 이들의 어린 시절은 매우 불우했으며,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보호받지 못한 경우가 흔하다고 하다. 한편, 어릴 적부터 부모가 '과잉보호'를 한 경우에도 이런 '이상증세'를 보일 수 있다는데, 어린 시절의 '감정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는 부분이다. 한마디로 '사이코페스'나 '소시오페스'는 가정환경과 교육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인간적인 것'을 주고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해준다. 우리 주변에 이런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분들에게 따뜻한 인간의 정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직장의 상사가 이런 '사이코'나 '소시오'라면 마땅한 방법을 찾기 힘들겠지만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의 병'이 왜 일어나게 되는지, 그 '원인'을 잘 알게 되어 참 좋았다. 하지만 알게 되면서 고민이 되기도 했다. '마음의 병'으로 인한 범죄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우리 사회가 '심신미약'이라는 이유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무죄' 판결이나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사회로 복귀되는 경우가 참 많기 때문이다. 흔한 경우는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감형이 되는 경우인데, 정작 '마음의 병'에 걸린 사람은 혜택도 받지 못하는 '심신미약'을 왜 음주한 분들까지 확대하는 것인지 참 맘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사이코나 소시오 같은 이들 때문에 평범한 감정을 가진 이들이 얼마나 상처를 받는지 안다면 정말이지 '영원히 격리'시키는 기준으로 삼고 싶을 정도다. 이들이 벌이는 '언어폭력'과 '성적수치심'을 유발하는 말본새는 그야말로 '범죄 수준'이다. 그런데도 이들에게 늘 솜방망이 처벌만이 뒤따른다. 우리 사회는 아직 '정신병'에 관대하지 못한 사회인데도 이들이 가진 '사회적 지위'가 사이코나 소시오 '판정'을 머뭇거리게 만든다. 흔히, 말하는 '갑질'도 바로 이런 감정표출을 조절하지 못하는 사이코와 소시오 들의 작품 아닌가?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마음의 병'에 대한 경계를 어디까지로 보아야할지 좀 난감해지고 말았다. 분명 '몸의 병'에 걸린 이들처럼 '마음의 병'에 걸린 이들도 일상생활에 불편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편견을 없애야 한다는데에 십분 동의하면서도, 사이코페스나 소시오페스와 같은 '정신병'으로 인한 범죄에 우리는 어떻게 단칼을 내려야 할지 난감해졌기 때문이다. 심리학에 대한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까닭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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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사파리 - 하층계급은 왜 분노하는가
대런 맥가비 지음, 김영선 옮김 / 돌베개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해마다 연말 이맘 때쯤이 되면 양로원과 고아원을 찾는 이들이 많다.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불우이웃을 돕겠다는 고마운 이들이다. 그런데 정작 도움을 받는 이들은 '그들'이 찾아오는 것을 그닥 달가워하는 표정이 아닐 때가 많다. 우리가 흔히 보는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서도 그런 장면을 참 많이 다루고 있기 때문에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인 셈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그들'에게 없는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구호물품'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정치인을 비롯한 유명인사들의 환한 표정에서 '진정성'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렇게 찍은 사진들은 주로 '언론사'에 배포되어 자신들의 치적(?)으로 이용될 뿐이라는 것을 양로원과 고아원에 머무는 사람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년에 딱 한 번 찾아오는 그들을 반갑게 맞아줄 수밖에 없는 '절실함'이 겨우 미소를 짓게 만들 뿐, 그들이 떠나고 난 자리에 따스함은 애초부터 기대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정녕 '가난한 이들'을 도와줄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은 없는 걸까? 이 방법을 찾기 전에 '가난'에 빠지게 되는 원인 분석부터 해야 할 것이다. 가난해지는 원인을 보통 '두 가지'로 보고 있다. 하나는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의 문제'로 보는 견해다. 먼 옛날부터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할 수 없다면서 '개인의 문제'로 취급하곤 했다. 그러다가 근대화 이후에는 사회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개인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푸념하곤 했다. 가난한 이들 가운데 '성공의 문턱'을 넘은 사례들을 살펴보면, 두 가지 원인이 모두 맞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특별한 사례일 뿐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누구나 같은 방법으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우선 '인식'해야 할 것은 바로 우리가 가난을 바라보는 '시선'부터 바꾸는 것일테다. 우리는 모두 교통사고를 당하면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는 '예비 장애인'인 것처럼 '가난'도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보편적인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금수저'는 영원히 금수저일 것처럼, '흙수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대를 이어 흙수저일 것처럼 '부의 계급화'를 견고하게 쌓고 있다. 마치 '한 번 부자는 영원한 부자다'라는 믿음처럼 굳어져 버렸다. 하긴 아주 틀린 말처럼 들리지 않기도 하다.


  그런데 왜 이런 생각을 '견고하게' 만들고 부수려 하지 않는 것인가? 그닥 훌륭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것 같은데 말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노력을 하면 그 대가를 반드시 보상받는 사회가 더 아름답지 않은가? 또한, 부자를 존경하고, 그들이 쌓은 부로 우리 사회를 더욱 행복하고 즐겁게 만드는 고민을 하려는 시도는 왜 하지 않으려 하는가?


  이 책은 <가난 사파리>라는 제목을 달았다. '사파리'라는 말의 뜻이 자동차를 타고서 야생동물을 구경한다는 것인데, 주로 맹수들을 풀어놓은 동물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앞에 '가난'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으니 '가난한 이들'을 마치 동물원의 위험한 동물, 또는 통제가 불가능한 무능력자들을 '구경'하기 위해서 부자들이 안전한 차량 안에서 지나가는 장면이 연상된다. 하지만 책 내용은 저자의 '불우한 경험담'이 대부분이다. 하층 계급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험난한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회 고위층에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를 분석해서 가난에 쪄든 이들을 '구제'하려 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행복할까? 중산층인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며 '가난한 이들'이 왜 노력을 하지 않는지, 불우한 환경을 왜 개선하려 하지 않는지 '지적질'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하층 계급의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나도 비슷한 처지였어"라고 자조적인 말투로 공감을 표시할 것 같다.


  저자가 표현하듯이 '하층 계급'이 가난한 까닭은 여러 가지다. 개인적인 노력을 최선으로 하지 않고, 불우한 환경을 탓하며, 사회나 국가가 자신들을 돕지 않는다고 불평불만만 늘어놓기 일쑤라고 말이다. 그런데 가난한 이들이 하소연을 할 때 들어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당장 가난한 이들이 부자를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면 반갑게 맞아줄까? 국가에 청원을 하면 가난을 극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적극적으로 도와줄까? 전혀 그렇지 않다. 가난한 이들을 벌레 보듯 불쾌해하며 적절한 도움을 주기는커녕 내몰아서 '격리(?)'시키기 바쁘다. 사회복지센터나 은행을 찾아가서 '가난 극복 프로그램'이 있는지 물으면 적절한 대답을 해줄까? 그렇지 않다.


  그러면서도 '가난한 이들'이 나태하고 게을러서 그들을 도와주고 싶어도 도울 수가 없다는 헛소리나 지껄이기 일쑤다. '기부'를 통해서 도움을 주고 있지 않느냐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거액의 '성금'을 모아서 해마다 도와주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가난한 이들에게 물어보라. 그렇게 '기부'와 '성금'으로 도움 받은 것이 정말로 '가난 극복'을 할 수 있는 희망이 되고 있는지 말이다.


  가난을 극복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누구나 아무런 조건도 없이 연봉 3000만 원 정도를 받고 살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아무런 조건도 없이'라는 문구가 거슬린다면, 적당한 일자리를 마련해주면 될 것이다. 그런데 마련해준 일자리라는 것들이 '연봉 3000만 원'과는 거리가 멀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연봉 3000짜리' 직장을 구하기 너무 힘들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이 계속 발생하는 것이다. 정말로 정신 못차리고 헤롱헤롱 사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까지 구제해달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성실함'과 '정직함'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마저 가난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만들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고 해도 '있는 사람들'만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이 아니라 '노력하는 사람들'이라면 가난에 빠지지 않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문제점'도 해결하려 최선을 다해야 하고, '개인적인 문제점' 따위는 기본적으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할 것이다. 가정이 불우하다면 '불우한 원인'을 파악해서 적극적으로 국가와 이웃이 개입해서 개선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마약이나 범죄와 같은 '잘못된 길'로 빠졌다면 엄벌과 함께 '갱생'할 수 있는 기회를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물론 '부적응자'로 판명되면 영원히 격리시키는 방안도 필요하고 말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인생을 살다가 '실패'를 했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줘야 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소리'하지 말라는 비판도 할 수 있겠다. 적절한 비판일 수도 있겠지만 '단 한 번의 실패'로 인생이 망가지게 냅두는 사회는 참으로 불행한 사회라는 점을 상기했으면 좋겠다.


  저자는 '랩 가사'를 쓰는 워크숍을 통해서 가난한 이들이나 불우 청소년들에게 나름의 희망을 심어주는 일을 했다. 그 희망이란 '자기 목소리'를 마음껏, 그리고 당당하게 외치라는 것이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은 '행복한 사회'는 다름 아니라 가난한 이들이, 또는 불우한 이들이 직접 만들어나가야 한다. 국가시스템이나 사회고위층이 가난한 이들의 입맛에 딱맞게 세상을 바꿔줄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말한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지지만 '하층 계급의 분노'가 역사를 바꾼다고 말이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면 꼭 분노가 아니어도 충분히 바뀔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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