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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것이 당연합니다 - 어른을 위한 단단한 마음 수업
한덕현 지음 / 한빛비즈 / 2020년 12월
평점 :
2020년은 불안으로 가득한 해였다. 혹시라도 코로나 감염에 걸리는 것은 아닌지, 이렇게 돈벌이가 시원치 않아도 괜찮은 것인지...지난 해, 마지막 남은 적금을 깨며 다달이 통잔잔고가 줄어드는 것을 지켜볼 때의 심정은 정말 착찹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는 원인이 되었다. 비단 나 혼자만의 고민은 아니었을 것이다. 판데믹 시대를 맞아 전세계가 똑같은 고민을 하며 모두가 불안에 떨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원인 말고도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대표적으로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들이 그렇다. 이들은 아주 사소한 이유로도 죽을 것 같은 공포가 밀려온다고 하는데, 막상 죽지 않을 원인이기 때문에 죽지는 않는단다. 또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도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고통을 호소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누구에게 손을 내밀지도 못하고 그런 고통을 그저 감수하며 불안에 떨다가 생을 달리하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하는데, 이런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분들을 치료하는 심리적 접근은 의외로 그런 '공포'와 '고통'을 마주하는데서 시작한다고 한다.
이를 테면, 공포와 고통이 밀려오는 원인을 담담히 이야기를 하면서 '마주서기'만 해도 어느 정도 공포와 고통이 줄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비행기를 타는 것을 무서워하는 환자와 함께 '비행기 타는 것 때문에 생기는 공포'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면 환자는 정작 자신이 '진짜 무서워하는 원인'을 생각하게 되고, 실제로 '별것 아니다'라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면 공포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된다고 경험담을 늘어놓기도 했다. 치료자가 한 일이라고는 고작 환자와 비행기가 이륙할 때부터 착륙할 때까지 환자와 '이야기'를 나눈 것 뿐이었다. 그런데도 환자는 평생 처음으로 수면제나 술의 도움이 없이 편안하게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고 답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환자가 진짜로 무서워하는 것은 '비행기 사고'로 인해서 발생할 수 있는 무엇이었다. 만약에 비행기 사고가 난다면 자신은 죽을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히자 비행기에 관한 모든 것이 '공포'로 다가오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비행기는 안전하게 이륙해서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비행을 한 뒤에 안전하게 착륙하곤 한다. 실제로 그 환자도 시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비행기를 타고 다녔지만, 단 한 번도 사고를 경험해본 적은 없었던 것이다. 치료자는 바로 그 점을 '확인'시켜주며 '만약'에 일어날 사고에 대한 생각보다는 '다른 생각'을 해보라고 권한 것만으로도 환자를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알게 모르게 '불안'을 겪으며 산다. 하지만 대부분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무한한 걱정일 뿐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죽을 것 같은 공포가 찾아와도 '지나가면' 아무렇지도 않고 대수롭지도 않은 일이 태반이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불안 증세를 흔하게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을 채찍질하듯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불안을 몰아내는데 집중해야 할까? 그건 아니다. 그런 방법은 도리어 '불안 증세'를 더욱 심하게 할 뿐이다. 그럴 때에는 그저 '불안'해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불안한 상황인데, 불안하지 않다고 '부정'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무서워하는 것이 있는 것처럼 불안해하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그걸 부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불안 증세'를 극복하기 위해서 차분하게 되돌아볼 필요는 있다. 자신이 '필요 이상'으로 불안에 떨지는 않는지, 또 쓸데없이 '예민'하게 구는 것은 아닌지도 말이다. 사람은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본능적으로 '불안'을 이용하게 된다. 위험으로부터 빨리 벗어나기 위해 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깨워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기제로 '불안'을 이용했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불안을 느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필요 이상'으로 불안 증세를 겪기 때문에 생긴다. 그렇게 필요 이상으로 발생한 불안을 '마주할 용기' 또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리고 차근차근 자신이 불안을 느끼는 증세를 '바로' 보고, 당당히 '마주'할 수 있다면 누구나 불안을 이겨낼 수 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에게 발이 닿지도 않은 깊은 물에 빠뜨리는 '충격요법'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새를 무서워하는 사람에게 새가 무섭지 않다는 것을 아무리 각인시켜도 별반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물가에서 발을 담그는 정도는 손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물을 살짝 첨벙거리면서 물을 이겨내는 시도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겨낼 수 있는 힘은 바로 '수영'을 배우는 것일 것이다. 그러면 물에 빠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이겨낼 수 있는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되는 것이다. 새를 무서워한다면 새의 생김새나 생태가 나와 있는 '조류백과사전'을 보면서 새의 특징과 행동을 먼저 '관찰'하게 한 다음에, 덩치가 작은 새부터 푸드덕푸드덕 날아오르는 모습을 지켜보게 하면 좋은 효과를 얻게 될 것이다.
이처럼 불안은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한 막연한 공포에서 찾아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가 알게 된 것'에 대해서는 더는 무서워하지 않게 된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조그만 소리에도 더욱 예민하고 무서워하게 된다. 머릿속에서 온갖 상상이 다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등불' 하나만 켜도 그런 불안 증세는 싹 사라진다. 소리가 나는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안 증세를 극복하기 위한 것으로 '아는 것'이 중요하기도 하다. 무서워하는 대상의 '실체'를 밝혀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불안 증세를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 누구도 '아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는 없다. 왜냐면 '해결 방법'이나 '대처 방안'을 알고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늠할 수도 없고, 전혀 알지 못하는 것에 의해서 불안에 떠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또, 내가 두렵지 않은 것을 남은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그 또한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불안'해지면 차분히 되돌아보면서 '불안의 이유'나 '원인'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극복 방법이다. 가까운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불안 증세는 어느 정도 사라진다. 그래도 해소가 되지 않으면 전문가와 상담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경정신과의 문은 높지 않다. 그곳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경험을 통해 얼마든지 '불안'을 극복할 수 있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