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의 인류 탐험 보고서 6 : 지구 최고의 라이벌 - 어린이를 위한 호모 사피엔스 뇌과학 정재승의 인류 탐험 보고서
정재승.차유진 지음, 김현민 그림, 백두성 감수 / 아울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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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고고학적으로 '동시간대'에 두 종의 인류가 존재한 것은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와 '호모 사피엔스'의 발굴이 최초다. 그 가운데 '현생인류'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것을 확인했고,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는 멸종하고 말았다. 다시 말해, 호모 사피엔스가 현존하는 유일한 인류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왜 사피엔스는 살아남고 네안데르탈인은 살아남지 못했던 것일까? 인류고고학적으로 남겨진 수수께끼인 셈이다. 물론 여러 가설이 세워졌고 널리 알려진 바다. 하지만 그 가운데 무엇을 '정설'로 삼아야 할지 '결정적 증거'는 아직 발굴하지 못했다. 그러면 가장 최근에 밝혀진 인류고고학적 사실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렌시스보다 육체적으로 현저히 왜소했다. 심지어 뇌의 총용량도 훨씬 작았기에 '피지컬'적인 면이나 '사이코'적인 면, 모두에서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렌시스보다 훌륭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객관적인 정설이다. 그런데도 '현생인류'로 살아남은 것은 더 월등한 네안데르탈렌시스가 아니라 사피엔스였다. 많은 학자들은 그 까닭으로 '사회성'을 들고 있다. 두 종의 뇌를 비교해보니 '시력'에 해당되는 후두엽은 네안데르탈렌시스가 훨씬 컸다. 이는 사냥 따위에 매우 출중한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볼 수 있고, 실제로도 더 많은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는 '육류고기'를 섭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에 사피엔스는 후두엽은 비교적 작았지만, 상대적으로 감각기능을 담당하는 두정엽이 컸으며, 특히, 언어능력과 사회성에 관여하는 소뇌는 네안데르탈렌시스보다 8배나 더 컸다고 한다. 이는 사피엔스가 '사회성'이 두드러지게 뛰어났다는 결정적 증거가 보여진다.

 

  이를 바탕으로 네안데르탈렌시스는 개개인의 능력은 뛰어나지만 10명 이상의 부족단위를 형성하지 못하였고, 이는 사냥이나 채집 등에서도 그리 뛰어난 결과를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새로 얻은 '지식축적'도 활발하게 이어나갈 수 없었을 것이라 짐작케 한다. 반면에 사피엔스는 개개인의 능력은 뛰어나지 않더라도 30~100명 단위의 부족을 형성하며 매우 활발한 집단생활을 했으며, 이들 사이에 축적된 지식이 발달한 '언어능력'으로 인해 더욱 활발하게 전파되고 전승되었을 것이고, 심지어 더 멀리 떨어져 있는 동족에게도 전파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는 증거가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단순히 '뇌용량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훨씬 더 똑똑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면, 인간보다 더 뇌가 큰 생물이 현생인류보다 더 번성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후두엽과 소뇌가 크기 때문에 사피엔스가 생존에 유리했다는 결론을 내리면, 전체 용적이 더 큰 네안데르탈렌시스가 사피엔스보다 훨씬 더 똑똑했다는 결론을 내려야 하는데, 결과는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사회성'이 낳은 잔인한 결론을 추론했는데, 인류의 문화가 덜 발달한 초기 인류에 너무 많은 '비관적 상상력'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기에 역시나 정설로 삼기에 부족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동시대를 살았던 두 인류에게 닥친 결과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한 쪽은 번성했지만, 다른 한 쪽은 멸종하게 된 까닭을 말이다. 물론 더 많은 연구를 해야 할 것이고, 미래의 인류고고학자인 어린이들이 풀어야 할 숙제일 것이다.

 

  이렇게 풀리지 않은 숙제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앞으로 어떠해야 할까?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아닐 때에는 우리보다 앞선 연구를 해온 '결과물'을 베껴오면 그뿐이었다. 투자 대비 회수비용이 턱없이 부족한 '기초학문'보다는 이미 밝혀진 연구를 결과를 토대로 '응용학문'에 투자하는 것이 손실을 줄이고 이익을 많이 챙길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발전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엄청난 비용을 감수하고 '기초학문'을 연구했던 나라들이 핵심기술을 허투루 알려줄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알려주어도 거의 손실이 없을 지식나부랭이만 찔끔찔끔 흘려줄 뿐, 진짜 알짜배기를 공짜로 알려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은 그런 '나부랭이' 지식을 가지고 지금의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기적을 선보였다. 그런데 그 기적을 이룬 뒤에도 여전히 '남의 나라 기초학문'을 엿보면서 성장발전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단언컨대 '기초학문'에 대한 연구 없이는 '대한민국'이란 선진국을 성장발전시킬 도리가 없게 된다.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어린이들이 그 어려운 학문에 도전해야만 하는 까닭이다. 그리고 국가는 그 어려운 학문에 도전하는 어린이들에 대한 지원과 격려를 아껴선 안 될 것이고 말이다. 그렇기에 어린이들에게 학문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책이 많이 선보여야만 할 것이다. 과학분야에서 정재승은 바로 그런 인물이다. 이제 과학을 넘어 '인류고고학', '인류생물학'이라는 분야에 대한 호기심 충전을 시도하는 이 책이 기대가 되는 까닭이다. 과연 10년 뒤에 주인공이 될 대한민국 어린이들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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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인류 탐험 보고서 5 : 용감한 전사 네안데르탈인 - 어린이를 위한 호모 사피엔스 뇌과학 정재승의 인류 탐험 보고서
정재승.차유진 지음, 김현민 그림, 백두성 감수 / 아울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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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현생인류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가 이야기 속에 등장했다. 심지어 이들은 '호모 사피엔스'와 동시대에 살았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피엔스는 현생인류로 현재까지 살아남았는데, 네안데르탈인은 살아남지 못하고 멸종하고 말았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인류고고학적으로 풀리지 않은 비밀이다. 물론 여러 가설은 존재한다. 그 가운데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현생인류의 조상을 '동족살해자'로 소개하며 네안데르탈인을 비롯해서 아직 발견되지 못한 '동족들'까지 사피엔스가 멸종시켰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 가장 그럴싸한 추측일 것이다. 허나 이를 증명할 인류고고학적 증거가 더 보충되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먼저 네안데르탈인은 사피엔스보다 더 거친 환경에서 살았다. 그래서 몸집도 더 컸고, 근력도 더 좋았으며, 후두엽이 더 큰 것으로 보아 '시력'도 매우 좋았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래서 이렇게 훌륭한 체력조건으로 사냥도 더 잘했을 것이고, 채집과 어로 활동 따위도 더욱 활발하게 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리고 만약 사피엔스와 '경쟁'을 했을 때에도 매우 유리했을 것이 틀림없다. 왜냐면 네안데르탈인의 '뇌용량'이 사피엔스보다 훨씬 더 컸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뇌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더 영리하고 똑똑했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도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하고 말았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에 대한 비밀은 다음 권에서 밝혀지게 될 것이다.

 

  한편, 책의 이야기를 살펴보자면, 아우레인들은 자신들의 행성을 파괴한 '쿠(호모 사피엔스) 종족'을 찾기 위해 '시간탐험'을 거슬러 올라 인류의 먼 조상부터 살피는 '인류 탐험'을 떠나게 된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호모 하빌리스 아파렌시스', '호모 에렉투스'를 거쳐 이번 책에서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까지 인류고고학적인 발견을 이룰 수 있었다. 결국 이 책의 시리즈는 '고대 인류의 관찰자'로 외계인을 등장시켜 좀 더 객관적인 관점에서 인류의 조상에 대해서 서술하는 스토리라인을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한 '우주인들의 모험담'을 펼쳐보여 주면서 어린이 독자들에게 한층 광대한 '지식세계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거기다 '우주선으로 떠나는 항해 방식'을 소개하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타임머신여행', 그리고 '미지의 물질로 만든 신비한 오라클의 기능'까지 선보이며 과학적인 탐구심도 불러일으고, 동시에 과학적 호기심까지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를 선보였다. 이렇게 어렵기만한 '인류고고학'과 '우주과학지식'까지 한데 아우른 스펙타클한 이야기를 읽은 어린이 독자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허나 어린이 독자를 위한 배려가 그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청소년 독자'까지 아우르는 배려가 되지 못하는 것이 살짝 아쉬운 점이다. 거기다 요즘 학부모들은 자녀의 독서지도를 위해 '먼저 읽고, 권해주는 방식'을 선호하기도 하는데, 이런 스토리라인이 학부모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올런지 살짝 의심스럽기도 하다. 특히 학부모들이 중요시 여기는 '교육적 감동', 다시 말해 '교훈적인 내용'보다는 그저 '재미와 즐거움'만 치중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어린이 독자들에겐 너무나 바라는 점이겠지만, 책값조차 비싼 요즘시대에는 '가격대 효율'이라는 가성비를 따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부모님의 주머니사정'까지 따진다면 초등시절을 넘어 청소년 시절까지 유익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으면 더할 나위가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는 말이다. 어차피 '인류고고학적인 전문지식'은 중고등 역사와 과학 교과까지 아우르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류진화적인 관점'까지 살필 수 있다고 평가받게 되면 금상첨화가 따로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책이 되었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 책만의 장점은 '스토리라인'이 인류고고학적인 새로운 발견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 담겨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각 권에 등장했던 '초기 인류의 발자취'가 스토리라인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에 책의 줄거리만 따라가도 각 인류의 특징을 쉽게 떠올릴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단 말이다. 이 책에서도 '네안에나'라든지 '모.로.코' 같은 이름의 유래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네안데르탈인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고, 튼튼한 체력으로 용감하게 곰사냥을 하는 장면연출만으로도 네안데르탈인들의 특징을 충분히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야기' 속에서 지식을 배우는 학습방식을 '스토리텔링'이라고 하는데, 단순지식을 암기하는 학습방식보다 훨씬 더 오래 기억하고,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지식을 축적해나갈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재승의 인류탐험보고서> 시리즈는 어린이 독자를 위한 재미와 더불어서 청소년 독자를 위한 학습효과까지 꼼꼼히 배려한 훌륭한 책이란 얘기다. 물론, 직접적으로 언급한 '교과연계'가 불분명하고, 미흡한 '학습분량'과 깊이가 부족한 듯한 '덜 심화된 내용'이 아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스토리라인을 잘 따라가다보면 독자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인류고고학적 지식'을 쏙쏙 이해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시리즈는 매우 유익한 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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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 형이하학적 성찰
기욤 르 블랑 지음, 박영옥 옮김 / 인간사랑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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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달리기'를 소재로 삼고 있지만 '달리기 예찬' 같은 내용은 없다. 또한 이 책은 '철학책'이지만 저 높은 이상(이데아)을 품고 쉼없이 달려야만 하는 책도 아니다. 오히려 아무런 부담감 없이, 그저 '달리기'에 대한 글쓴이의 생각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편한 책이다. 그러니 여타의 '철학책'처럼 지혜를 사랑하는 의무감 따위는 과감히 벗어던지고 그냥 읽으면 된다. 그리고 누군가는 평범한 '달리기'를 이렇게까지 생각해볼 수 있구나..하는 느낌만 가지면 된다. 외워야 할 구절도 하나 없으니 편하게 읽길 바란다.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프랑스는 대입시험으로 '바칼로레아'라는 논술시험을 치룬다. 물론 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아주 중요한 시험이긴 하지만 학생들만 시험에 참가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도 참가한다는 것이 특기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이 시험에서 1등을 차지한 사람의 글은 신문에 대서특필이 되며, 전국민이 다 함께 읽으며 논평을 일삼는다고 한다. 이처럼 프랑스 국민들은 모두가 '철학자'인 셈이다.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점은 다름 아니라 프랑스 국민들이 '답안지'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바로 '바칼로레아 시험문제'에 더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문제에 답을 저마다 나름대로 작성하며 온 국민이 열린 토론을 벌이곤 한단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대학입시시험에 지대한 관심을 쏟는 것은 '세계1등' 못지 않지만, 그 시험이 끝나면 그저 '결과'에만 관심을 둘 뿐, 무슨 문제가 출제되었는지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저 '불수능'이었는지, '물수능'이었는지, '시험점수'는 몇 점인지, 몇 점 정도가 되어야 '인서울'할 수 있는지...이런 결과물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하긴 수능시험이 전부 객관식이고, 간단한 주관식 문항만 있을 뿐이니, 문제가 궁금할 턱도 없다. 하지만 우리도 '수능논술시험'을 치루고 있는데, 논술문제가 이슈가 된 적이 없는 것에는 의아하지 않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하긴 우리나라 논술은 '찬반서술'이 고작이라서 '주어진 지문'에 대한 '논리적사고력'만을 평가할 뿐이라서 논술답안지가 천편일률적일 수밖에 없다. 조금이라도 논점에서 벗어나면 고득점을 얻을 수 없으니, 애초에 '창의적인 답안'이 나올 수 없는 환경이다. 그러니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처럼 '천차만별의 답안지'가 온 국민들에게 공개되며, 온 국민이 논술문제를 풀어내며 저마다 다양한 의견을 교환하는 대축제를 벌이는 즐거움 따위를 우리가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하긴 우리는 '철학하는 분위기'를 좀처럼 느낄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높은 자리에 앉은 양반들은 체면을 중시하느라고 '남의 의견'에는 날선 비판을 날리다 못해 비난마저 아낌없이 퍼부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의견'은 두루뭉술하게 피력하며, 술에 물 탄듯, 물에 술 탄듯, 그저 비난 받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기 바쁘다. 자그마한 권력이라도 손에 쥐게 되면 더욱더 '철학'하고 멀어진다. 그 힘쎈 권력으로 세상살이 좀 나아지게 만들려는 궁리보다 어느 땅을 사들여 투기를 일으키고 그 덕분에 호주머니 좀 두둑하게 불리려는 속셈밖에 부릴 줄 모르기 때문이다. 부정부패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아주 위인 소리 들을 지경이다. 하지만 이제는 좀 깨달으셨으리라고 본다. 우리 국민들이 '철학'도 없는 사람에게 권력을 쥐어주면 어떤 꼴을 당하는지 직관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철학'인 셈이다.

 

  이 책 <달리기>를 보라. 우리가 일상에서 늘 마주하는 '걷기'와 '달리기'에 대한 철학적 글쓰기를 말이다. 우리는 걸을 때 그냥 '걷기'만 하고, 뛸 때 그냥 '달리기'만 하려 든다. 걷기와 달리기의 결정적인 차이점도 생각지 않고서 말이다. 걸을 땐 '목적지'가 없어도 걷게 된다. 하지만 달릴 땐 없던 '목적'도 생기기 마련이다. 왜냐면 '목표'가 없으면 달릴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걸을 때도 '목표'를 정할 수 있고, '목적'을 정해 착착 나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걷기는 아무 생각도 목표도 없이 걸을 수가 있다. 정처없이 걷고 또 걸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달리기는 다르다. 우리는 달리는 행위를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웬만한 '목적'이 없으면 절대 달리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아무런 목적도 없이 달려본 적이 있는가? 건강을 위해서 달리고, 목적지까지 빠르게 도착하기 위해 달리고,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달리기도 하고, 버스나 지하철, 그리고 항구를 떠나기 직전의 배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달린 적도 있을 것이다. 공항에서도 마찬가지다. 또는 누군가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달린 적도 있을 것이다. 정반대로 반드시 잡기 위해서 죽어라 달린 적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걷기'와 '달리기'는 목적지향적의 유무라고 하는 차이점이 두드러지는 행위인 것이다.

 

  여기에 철학을 더해 보면 어떨까? 달리기를 통해서 숭고한 업적을 남긴 역사자료를 들춰보면, '마라톤전투'의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40여킬로미터를 쉼없이 달렸던 사실을 말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마라톤의 유래'다. 여기에 제1최 올림픽 개최지였던 그리스 아테네에서 승리한 선수가 '그리스 선수'였다는 사실로도 우리는 철학적 관점을 펼쳐낼 수 있다. 쿠베르탱 남작이 근대올림픽을 성사시키면서 과거 그리스에서 열렸던 대축제를 재현해서 세계 평화를 이바지하려 했다는 숭고한 업적 또한 철학을 해보잔 말이다. 우리나라의 손기정선수가 히틀러가 개최한 베를린올림픽에서 마라톤 경기에 참가해서 우승을 했고, 1등을 했음에도 가슴에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를 달고 있어 '승리자의 포즈'를 취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던 사연도 철학하기 딱 좋을 것이다. 이쯤 되면 누구라도 '철학'을 해봄직하지 않은가?

 

  굳이 유명한 일화를 소개하고, 누구의 이야기를 소재삼아 쓰지 않아도 좋다. 그저 자신만 알고 있는 이야기도 얼마든지 철학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의 철학은 '형이상학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건 플라톤이나 칸트 따위에게 맡겨 두고, 우리는 그냥 '형이하학적인 철학적 담론'을 이야기하면 그뿐이다. 난 이래저래해서 어떻게저떻게 '달렸어'. 그랬더니 이런저린 일이 벌어지게 된거야. 그래서 난 깨달았지. 나에게 달리기란 이런 거라고 말이야. 어떤가? 어려운가? 되게 쉽지 않은가. 이런 것도 철학인 것이다. 이 책의 내용 또한 그렇고 말이다. 이 책이 괜히 [프랑스청소년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던 철학책]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것이 아니다. 청소년도 이해할만한 쉬운 철학이란 얘기다.

 

  그런데도 난 이 책을 읽고서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겠어..라고 말한다면, 철학책이라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간 '철학'과 담을 쌓고 살다보니 '철학적 사유'에 대해 굉장히 낯설게 느끼고 있는 것일 뿐이다. 이 책에서 비유하고 있는 '철학책'들은 모두 프랑스청소년이라면 학창시절에 한 번쯤 읽거나 들어봤던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에 주눅들 필요는 전혀 없다. 프랑스 청소년들은 이렇게나 어려운 책들을 읽었고, 다 이해하고 있구나...싶어서 위축될 필요가 전혀 없다. 그 청소년들도 철학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철학적인 내용은 '전문가'에게 맡겨두고 그냥 즐기면 된다. 철학책에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어. 그래서 난 '이렇게' 생각해. 그런데 넌 '어떻게' 생각해? 하고 말이다. 이 책은 절대 '그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부러웠다. 어려운 철학을 언급하며 주절거리는 저자의 박식함이 부러운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나의 철학'은 이런데, '너의 철학'은 어떠니? 라고 부담없이 묻고 답하는 분위기가 말이다. 경험이니 관념이니 어려운 철학은 '전문가'에게 떠넘겨주고, 우리는 일상에서 '철학'을 하면 된다. 그리고 그런 일상적인 철학을 바탕으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해주면 된다. 정치이야기도 좋고, 경제이야기도 좋고, 사회, 문화, 이슈 등등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는데 난 저렇게 돌아가면 좋다고 생각해. 넌 어떠니? 라고 가볍게 묻고 답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 말이다.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분위기가 아닐까 하고 좀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다시,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로 되돌아간다면, 난 '달리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목표와 목적 뚜렷하게 두다보니 '방향'은 옳게 잡았고, 촌각을 다툴 정도로 급박한 것이 아니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늘 '여유'를 두고 일찍 서두르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보니, 나는 뚜렷한 목적과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부지런히 걷는 편이다. 그리고 걸을 땐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고 똑바르게 곧장 걷곤 한다. 걷다가 지칠 우려도 있으니 늘 손에는 책을 들고서 읽으며 걷는다. 책을 읽으며 걸으면 '집중력'이 향상되고, '잡념'이 별로 생기지 않으니 참 좋다. 물론 여유롭게 걷다보니 주위의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휘뚜루마뚜루 빠른 속도로 걷는 것이 아니다보니 풍경조차 '주의깊게' 볼 수 있어서 좋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면서 걷는 것을 난 참 좋아한다. 그래서 난 '달리는 법'이 거의 없다. 필요할 땐 누구보다 빠르고 힘차게 뛰어가겠지만 말이다. 이런 나와 '철학적 사유'를 함께 할 분은 없으신가요? 진지한 분이면 환영입니다.

 

인간사랑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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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클모닝 확장판 - 더 쉽고 더 확실하게 더 원하는 삶으로 바꿀 수 있다 미라클 모닝
할 엘로드 지음, 윤영삼 옮김 / 한빛비즈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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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계발의 저자들이 '아침'을 주목한다. 하루일과를 일찍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분명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서 말이다. '아침형 인간'이라는 단어가 꾸준히 메가히트 되는 것만 보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책의 저자 할 엘로드도 [당신의 하루를 바꾸는 기적 / 아침, 6분이면, 충분하다]는 문구로 '미라클 모닝'을 쉽게 풀어냈다. 하지만 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단지 '아침형 인간'이 되고자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만은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무려 10년 전부터 '미라클 모닝'은 '아침형 인간'과 다르다고 말해왔지만, 여전히 '그렇게' 오해하는 분들이 많아서 당혹스럽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할이 이야기하는 '아침 기적'은 단순히 하루일과를 '일찍' 시작하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일어나자마자 '6분이면 충분할' 자기만의 긍정루틴을 짜고 하나하나 실현해 보라는 조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조건 아침에 일찍 일어날 필요도 없는 기적인 셈이다. 분명 '아침형 인간'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할도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도 매우 중요한 '긍정루틴'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무작정 '일찍' 일어나야만 한다는 것에는 우려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왜냐면 사람마다 '자기만의 생활리듬'이 있는데, 무리하게 바꾸다보면 기적을 이루기는커녕 오히려 망칠 우려가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렇게 무리하게 하루를 시작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차라리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는 것이 더 낫다고 권한다. 그리고 일어나면 하룻동안에 '할 수 있는 일'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그 일'을 차근차근 실행으로 옮기기만 한다면, 누구라도 충분히 '삶의 기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어려운 일'을 겪기 마련이다. 그럴 때 누구는 좌절하고, 누구는 절망을 딛고 일어나 성공하곤 한다. 할은 후자에 주목했다.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미라클'을 내밀고 싶었던 것이다. 누구라도 그런 도움을 받는다면 마다할 리 없기 때문이다. 실패를 딛고 성공에 이르는 삶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무나 그러지 못한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할은 그 기적을 '누구나' 갖게 할 수 있는 힘을 선사하고 싶었다. 다름 아닌 '자신'도 그런 실패를 경험했고, 그 실패를 딛고 성공적인 삶으로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담이야말로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에게는 '기적'같은 일이 아니겠느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라클 모닝'이 너무 어렵기만 하다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광휘(아우라) 앞에 두 눈을 꼭 감고 말 것이기에 할은 최대한 쉬운 방법을 제시하였다. 바로 일상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로 말이다. 이를 테면, 내 일상을 '방해하는 요소'를 없애버리기. 어지럽혀진 '방 청소'하기. 스트레스 받는 일은 과감히 없애버리고,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그리고 무엇보다 '안 될거야'와 같은 부정적인 생각은 버리고, 항상 '긍정적인 생각'으로 '나만의 루틴'으로 일상을 꾸미기 등과 같은 누구나 간단히 조언만 들으면 바꾸고 실천할 수 있는 일들로 '하루일과'를 기운차게 시작하라고 조언할 뿐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긍정루틴'이다. 할 수 없다기보다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만 가지는 것으로도 충분히 '기적'을 일으킬 모든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자신감마저 갖기 힘든 분이라면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끄적거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마저도 '쪼개서' 정말로 간단히 실천할 수 있는 '자기만의 루틴'으로 하루를 시작해보라고 조언한다. 그러면서 얻게 되는 '성취감'이야말로 진정한 '미라클 모닝'의 핵심이니, 그것을 온몸으로 느껴보라고 말이다. 그렇다 '성취감'만큼 강한 '기적의 공식'은 없다.

 

  여기까지가 기존의 <미라클 모닝>에서 말한 기적의 공식이었다면, 이번 '확장판'에서는 '미라클 이브닝'까지 제시하였다. 바로 다음 날 아침에 맞이할 '미라클 모닝'을 위해서 하루일과를 행복하게 마무리하고 꿀잠을 잘 수 있는 비법이 담겨 있다. 물론 이미 '미라클 모닝'을 경험한 분들이라면 이번 '확장판'이 제시하는 미라클 이브닝을 이미 실천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삶은 이미 충분하게 성공했을테니 말이다.

 

  정리하면, 상쾌한 아침을 시작하며 '하룻동안 느낄 수 있는 성취감'을 계획표에 짜넣고, 차곡차곡 쌓은 성취감으로 성공의 문을 활짝 열라는 메시지가 <미라클 모닝>의 핵심 키포인트다. 물론 날마다 성공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성취감이 충만하게 느껴지지 않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에도 '긍정적인 생각'을 떠올리고, 다음에는 성취감을 반드시 느낄 수 있는 계획을 짜넣어주면 된다. 그렇게 날마다 차곡차곡 쌓인 기적들이 여러분들의 삶에 성공을 선사할 것이 틀림없다면서 말이다. 어떤가? 성공이라는 것이 아직도 멀게만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이 책 <미라클 모닝, 확장판>으로 자기계발을 시작해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 책의 특장점이 바로 성공이 저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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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인류 탐험 보고서 4 : 화산섬의 호모 에렉투스 - 어린이를 위한 호모 사피엔스 뇌과학 정재승의 인류 탐험 보고서
정재승.차유진 지음, 김현민 그림, 백두성 감수 / 아울북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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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권에 이어 이번에도 '호모 에렉투스'에 대한 내용이었다. 3권에 등장한 에렉투스는 추운지방에 살던 '북경원인'이다. 반면 4권에 등장하는 호모 에렉투스는 더운지방에 살던 '자바원인'이다. 이 둘의 차이점은 크게 두 가지인데, 뇌용량은 북경원인이 1000cc이고, 자바원인은 900cc라고 한다. 반면에 신체적인 조건은 북경원인보다 자바원인의 키와 덩치가 더 컸다고 한다. 이런 차이점이 나타난 까닭은 무엇일까? 여기서부터 여러 가지 '해석'이 필요하다. 명백이 드러난 두 가지 차이점을 두고서 '어떤 이유'로 둘 사이에 차이점이 나타나게 되었는지 논리적으로 타당한 근거를 대면서 '과학적 가설'을 세우고, 그에 딱 맞는 증거들을 더 찾아내게 되면 '정설'로 인정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의 정설이었다하더라도 연구를 거듭하게 되면 새로운 정설이 정립되는 법이다. 이렇게 학문은 끝없이 발전하게 된다. 그러니 공부는 지치지 않는 열정이 있어야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추운지방에 '적응'한 북경원인은 체구는 작지만 눈 덮힌 산속에서도 체온을 덜 빼앗기도록 진화를 거듭했을 것이다. 더운지방에 적응한 자바원인은 찌는 듯한 더위에 열을 더 잘 발산할 수 있도록 체구를 키웠던 셈이다. 또한 이 둘은 주위 환경이 제공하는 '먹을거리'에도 차이가 있었기에 섭취하는 영양분의 한계를 뛰어넘는 방식으로 진화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테면, 신선한 채소를 섭취하기 힘든 얼음땅에서 생존한 '이누이트'들은 주식인 바다표범에서 우리몸이 필요한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도록 진화했다고 과학자들이 밝혀냈다. 그렇다면 북경원인과 자바원인도 주어진 자연환경에 훌륭히 적응하면서 제한된 먹거리를 통해서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하도록 진화했을 것이 틀림없다.

 

  이처럼 '인류의 진화'는 주어진 환경에 완벽히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인류는 '어떻게' 환경변화에 적응하게 될 것일까? 인류세라고도 불릴 정도로 엄청 빠른 변화를 보여주어 '기후위기'로 불릴 지경인 지구는 멀지 않은 미래에 인류가 살기 힘든 환경으로 바뀔 것이 분명해졌다. 이제는 '탄소중립'이나 '탄소제로' 같은 느슨한 대책으론 '기후위기'가 초래할 인류대멸종의 시나리오를 막을 수 없다고 많은 과학자들이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끔찍한 시나리오가 시작될 시기는 멀게는 2050년, 가깝게는 2035년을 점치고 있다. 불과 10여년 밖에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런 증거들은 전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온난한 기후의 영향으로 북극의 빙하가 현저히 줄어들자 북극의 냉기를 가둬두던 '제트기류'가 느슨해졌고, 그로 인해 '북극한파'로 중위도지역까지 하강하는 바람에 북미대륙과 북유럽을 영하 40도 이하로 떨어지는 맹추위를 겪고 말았다. 이에 반해 남유럽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때아닌 홍수와 태풍으로 물난리를 겪고 있고, 해변가에 형성된 저지대 도시들이 엄청난 해일과 침수피해를 받아 재산피해가 극심하고, 인명피해까지 벌어지는 끔찍한 일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거기다 대규모 화산폭발과 지각변동으로 인한 지진피해까지 지구촌 곳곳에서 심심찮게 일어나는 현상을 앞으로는 더욱 자주 겪게 될 것이라는 예상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라고 안전지대가 아님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이러한 극심한 환경변화에 얼마나 충실히 대비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당하고 나서야 엄청난 자연재해의 위력을 실감하는 건 너무 무능할 뿐이다. 그렇다고 '위기대응'을 잘 한다고해서 극심한 환경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를 잘 극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적응력'이다. 과연 현생인류는 인류의 먼 조상과 같이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적어도 도시에 살고 있는 인류는 '기후위기'로 인한 인류멸종 시나리오에서 많이 살아남지 못할 것 같다. 무엇보다 도시의 자연환경이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먹여 살릴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경제적 논리'로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콘크리트 건축물만 잔뜩 확장하는데 열중한다면, 그 가능성은 점점 더 희박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말이다.

 

  그렇다면 답은 뻔하지 않은가? 도시, 근처에 도시사람들을 먹여 살리고도 남을 숲과 자연환경 그대로인 생태계를 조성해야만 할 것이다. 그래야 적어도 도시 유지시스템이 망가진다고 하더라도 '자연의 품속에서' 근근히 버티며 살아남을 수 있지 않겠느냔 말이다. 물론 진화속의 '적응'이라는 것이 백만 년 단위의 긴 시일이 걸리는 일이고, 기후위기로 파괴되는 것이 도시뿐만 아니라 '자연환경, 그 자체'일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섯 번째 대멸종'은 지구의 모든 것을 바꿔놓고 말 것이다. 그럼에도 그 속에서 '적응'해낼 인류가 남기를 희망할 뿐이다. 나약하기 그지없는 몇몇 부자와 권력자 들만 살아남는 최악의 시나리오 말고 말이다. 인류 진화는 건강한 신체와 밝고 맑은 정신의 소유자의 몫이어야만 할 것이다. 점점 이 책을 통해 발휘하는 상상력이 흥미로워진다. 아직 이야기의 흐름은 따라가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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