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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 형이하학적 성찰
기욤 르 블랑 지음, 박영옥 옮김 / 인간사랑 / 2020년 12월
평점 :
이 책은 '달리기'를 소재로 삼고 있지만 '달리기 예찬' 같은 내용은 없다. 또한 이 책은 '철학책'이지만 저 높은 이상(이데아)을 품고 쉼없이 달려야만 하는 책도 아니다. 오히려 아무런 부담감 없이, 그저 '달리기'에 대한 글쓴이의 생각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편한 책이다. 그러니 여타의 '철학책'처럼 지혜를 사랑하는 의무감 따위는 과감히 벗어던지고 그냥 읽으면 된다. 그리고 누군가는 평범한 '달리기'를 이렇게까지 생각해볼 수 있구나..하는 느낌만 가지면 된다. 외워야 할 구절도 하나 없으니 편하게 읽길 바란다.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프랑스는 대입시험으로 '바칼로레아'라는 논술시험을 치룬다. 물론 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아주 중요한 시험이긴 하지만 학생들만 시험에 참가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도 참가한다는 것이 특기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이 시험에서 1등을 차지한 사람의 글은 신문에 대서특필이 되며, 전국민이 다 함께 읽으며 논평을 일삼는다고 한다. 이처럼 프랑스 국민들은 모두가 '철학자'인 셈이다.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점은 다름 아니라 프랑스 국민들이 '답안지'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바로 '바칼로레아 시험문제'에 더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문제에 답을 저마다 나름대로 작성하며 온 국민이 열린 토론을 벌이곤 한단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대학입시시험에 지대한 관심을 쏟는 것은 '세계1등' 못지 않지만, 그 시험이 끝나면 그저 '결과'에만 관심을 둘 뿐, 무슨 문제가 출제되었는지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저 '불수능'이었는지, '물수능'이었는지, '시험점수'는 몇 점인지, 몇 점 정도가 되어야 '인서울'할 수 있는지...이런 결과물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하긴 수능시험이 전부 객관식이고, 간단한 주관식 문항만 있을 뿐이니, 문제가 궁금할 턱도 없다. 하지만 우리도 '수능논술시험'을 치루고 있는데, 논술문제가 이슈가 된 적이 없는 것에는 의아하지 않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하긴 우리나라 논술은 '찬반서술'이 고작이라서 '주어진 지문'에 대한 '논리적사고력'만을 평가할 뿐이라서 논술답안지가 천편일률적일 수밖에 없다. 조금이라도 논점에서 벗어나면 고득점을 얻을 수 없으니, 애초에 '창의적인 답안'이 나올 수 없는 환경이다. 그러니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처럼 '천차만별의 답안지'가 온 국민들에게 공개되며, 온 국민이 논술문제를 풀어내며 저마다 다양한 의견을 교환하는 대축제를 벌이는 즐거움 따위를 우리가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하긴 우리는 '철학하는 분위기'를 좀처럼 느낄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높은 자리에 앉은 양반들은 체면을 중시하느라고 '남의 의견'에는 날선 비판을 날리다 못해 비난마저 아낌없이 퍼부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의견'은 두루뭉술하게 피력하며, 술에 물 탄듯, 물에 술 탄듯, 그저 비난 받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기 바쁘다. 자그마한 권력이라도 손에 쥐게 되면 더욱더 '철학'하고 멀어진다. 그 힘쎈 권력으로 세상살이 좀 나아지게 만들려는 궁리보다 어느 땅을 사들여 투기를 일으키고 그 덕분에 호주머니 좀 두둑하게 불리려는 속셈밖에 부릴 줄 모르기 때문이다. 부정부패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아주 위인 소리 들을 지경이다. 하지만 이제는 좀 깨달으셨으리라고 본다. 우리 국민들이 '철학'도 없는 사람에게 권력을 쥐어주면 어떤 꼴을 당하는지 직관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철학'인 셈이다.
이 책 <달리기>를 보라. 우리가 일상에서 늘 마주하는 '걷기'와 '달리기'에 대한 철학적 글쓰기를 말이다. 우리는 걸을 때 그냥 '걷기'만 하고, 뛸 때 그냥 '달리기'만 하려 든다. 걷기와 달리기의 결정적인 차이점도 생각지 않고서 말이다. 걸을 땐 '목적지'가 없어도 걷게 된다. 하지만 달릴 땐 없던 '목적'도 생기기 마련이다. 왜냐면 '목표'가 없으면 달릴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걸을 때도 '목표'를 정할 수 있고, '목적'을 정해 착착 나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걷기는 아무 생각도 목표도 없이 걸을 수가 있다. 정처없이 걷고 또 걸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달리기는 다르다. 우리는 달리는 행위를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웬만한 '목적'이 없으면 절대 달리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아무런 목적도 없이 달려본 적이 있는가? 건강을 위해서 달리고, 목적지까지 빠르게 도착하기 위해 달리고,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달리기도 하고, 버스나 지하철, 그리고 항구를 떠나기 직전의 배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달린 적도 있을 것이다. 공항에서도 마찬가지다. 또는 누군가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달린 적도 있을 것이다. 정반대로 반드시 잡기 위해서 죽어라 달린 적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걷기'와 '달리기'는 목적지향적의 유무라고 하는 차이점이 두드러지는 행위인 것이다.
여기에 철학을 더해 보면 어떨까? 달리기를 통해서 숭고한 업적을 남긴 역사자료를 들춰보면, '마라톤전투'의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40여킬로미터를 쉼없이 달렸던 사실을 말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마라톤의 유래'다. 여기에 제1최 올림픽 개최지였던 그리스 아테네에서 승리한 선수가 '그리스 선수'였다는 사실로도 우리는 철학적 관점을 펼쳐낼 수 있다. 쿠베르탱 남작이 근대올림픽을 성사시키면서 과거 그리스에서 열렸던 대축제를 재현해서 세계 평화를 이바지하려 했다는 숭고한 업적 또한 철학을 해보잔 말이다. 우리나라의 손기정선수가 히틀러가 개최한 베를린올림픽에서 마라톤 경기에 참가해서 우승을 했고, 1등을 했음에도 가슴에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를 달고 있어 '승리자의 포즈'를 취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던 사연도 철학하기 딱 좋을 것이다. 이쯤 되면 누구라도 '철학'을 해봄직하지 않은가?
굳이 유명한 일화를 소개하고, 누구의 이야기를 소재삼아 쓰지 않아도 좋다. 그저 자신만 알고 있는 이야기도 얼마든지 철학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의 철학은 '형이상학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건 플라톤이나 칸트 따위에게 맡겨 두고, 우리는 그냥 '형이하학적인 철학적 담론'을 이야기하면 그뿐이다. 난 이래저래해서 어떻게저떻게 '달렸어'. 그랬더니 이런저린 일이 벌어지게 된거야. 그래서 난 깨달았지. 나에게 달리기란 이런 거라고 말이야. 어떤가? 어려운가? 되게 쉽지 않은가. 이런 것도 철학인 것이다. 이 책의 내용 또한 그렇고 말이다. 이 책이 괜히 [프랑스청소년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던 철학책]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것이 아니다. 청소년도 이해할만한 쉬운 철학이란 얘기다.
그런데도 난 이 책을 읽고서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겠어..라고 말한다면, 철학책이라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간 '철학'과 담을 쌓고 살다보니 '철학적 사유'에 대해 굉장히 낯설게 느끼고 있는 것일 뿐이다. 이 책에서 비유하고 있는 '철학책'들은 모두 프랑스청소년이라면 학창시절에 한 번쯤 읽거나 들어봤던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에 주눅들 필요는 전혀 없다. 프랑스 청소년들은 이렇게나 어려운 책들을 읽었고, 다 이해하고 있구나...싶어서 위축될 필요가 전혀 없다. 그 청소년들도 철학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철학적인 내용은 '전문가'에게 맡겨두고 그냥 즐기면 된다. 철학책에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어. 그래서 난 '이렇게' 생각해. 그런데 넌 '어떻게' 생각해? 하고 말이다. 이 책은 절대 '그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부러웠다. 어려운 철학을 언급하며 주절거리는 저자의 박식함이 부러운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나의 철학'은 이런데, '너의 철학'은 어떠니? 라고 부담없이 묻고 답하는 분위기가 말이다. 경험이니 관념이니 어려운 철학은 '전문가'에게 떠넘겨주고, 우리는 일상에서 '철학'을 하면 된다. 그리고 그런 일상적인 철학을 바탕으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해주면 된다. 정치이야기도 좋고, 경제이야기도 좋고, 사회, 문화, 이슈 등등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는데 난 저렇게 돌아가면 좋다고 생각해. 넌 어떠니? 라고 가볍게 묻고 답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 말이다.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분위기가 아닐까 하고 좀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다시,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로 되돌아간다면, 난 '달리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목표와 목적 뚜렷하게 두다보니 '방향'은 옳게 잡았고, 촌각을 다툴 정도로 급박한 것이 아니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늘 '여유'를 두고 일찍 서두르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보니, 나는 뚜렷한 목적과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부지런히 걷는 편이다. 그리고 걸을 땐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고 똑바르게 곧장 걷곤 한다. 걷다가 지칠 우려도 있으니 늘 손에는 책을 들고서 읽으며 걷는다. 책을 읽으며 걸으면 '집중력'이 향상되고, '잡념'이 별로 생기지 않으니 참 좋다. 물론 여유롭게 걷다보니 주위의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휘뚜루마뚜루 빠른 속도로 걷는 것이 아니다보니 풍경조차 '주의깊게' 볼 수 있어서 좋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면서 걷는 것을 난 참 좋아한다. 그래서 난 '달리는 법'이 거의 없다. 필요할 땐 누구보다 빠르고 힘차게 뛰어가겠지만 말이다. 이런 나와 '철학적 사유'를 함께 할 분은 없으신가요? 진지한 분이면 환영입니다.
인간사랑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