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를 다시 만나다 - 윤동주 | 소강석 詩 평설 나무평론가선 11
김종회 지음 / 문학나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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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윤동주를 '어떻게' 기억해야만 하는가? '시인'이라고 온국민이 떠올릴테지만, 그는 '살아생전'에 시집을 발표한 적이 없다. 그가 남긴 유일한 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는 그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체실험을 당하고 사망한 이후에 그가 쓴 시들을 모아서 펴낸 '유고시집'이다. 그렇게 우리에게 선보여진 '시인'으로서의 윤동주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는 아름답지만 유약한 청년으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시를 연구하고 분석한 이들은 윤동주를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을 펼친 '저항시인'이라고 말한다. 그가 일본유학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창씨개명'을 하고도 <참회록>이라는 시를 쓰며 배움이라는 핑계를 대고 '남의 나라'에 가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지만, 배움의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가슴 한 켠으로 '성씨'를 바꾼 아픔을 달랠 길이 없음을 토로하며, 비록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일본유학이지만, '일본제국의 개'가 되지는 않겠다는 굳은 다짐을 되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학시절에도 '교련과목'은 일부러 참석하지 않았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붙잡혀 온 죄목도 '독립운동'이었다고 밝혀졌다. 그렇게 윤동주는 한용운, 이육사, 이상화 등과 같은 '저항시인'으로 활약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윤동주를 일제를 향해 총이 아닌 펜을 든 '저항시인'으로만 기억하는 것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다시, 별 헤는 밤>이란 시집을 펴낸 '소강석'이란 목회자 겸 교육자 겸 현역시인이자, 윤동주 詩 연구가라는 분은 "시인은 예언자다"라고 말하면서 윤동주의 시는 '독립운동'만 한 것이 아니라 독립이후의 사해평등한 세상을 꿈꾼 '이상가'로 기억해야 마땅하다고 하였다. 그의 시에는 '저항의 불길' 너머에 '원수조차 사랑하라'는 그리스도교적인 '사랑'이 오롯이 담겨 있기 때문이란다. 그 어린 청년의 가슴속에 그토록 깊고 넓은 세계가 담기게 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이토록 감명 깊은 시를 써낸 시인이기에 우리 나라 사람뿐만 아니라 적국이었던 일본인도, 중국인도 윤동주 '기림시 비'를 제작해서 아낌없이 사랑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나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윤동주 시인은 과연 '한국사람'인가? 우리는 그를 '한국인'이라고 당연하게 여기지만, 그가 나고 자란 곳은 만주 길림성에 위치한 '용정(룡정)'이라는 곳이다. 현재는 중국 조선족자치지구에 속한 곳이고, 그곳에 '윤동주의 생가'를 비롯해서 윤동주에게 반해서 찾아오는 수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는 '관광지'로 거듭나 있는 상태이며, 중국에서는 그를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소개하며 자랑스럽게 '중국인'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소위 '동북공정'의 결과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우리는 맞닥뜨리게 되었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중국의 논리는 예상밖으로 견고하다. 중국은 '소수민족' 또한 자국의 영향 아래 놓인 '중국인'이므로, 조선족이 많이 살고 있는 '연변지역'도 당연히 중국의 경계 안에 있는 '중국영토'가 명백하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여기까지는 어느 나라나 내세우는 주장이기에 반박하기 힘들다. 그런데 중국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조선족'이 중국인이므로 '조선족의 문화'도 당연히 '중국문화'라는 억지주장을 펴고 있다. 이런 억지주장에 따르면 '한국의 문화'는 조선족의 문화와 일맥상통하므로 '대한민국의 전통문화, 모든 것'도 중국의 것이라는 논리를 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동북공정의 핵심'이기도 하다.

 

  허나 이런 논리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인지는 '같은 논리'로 한국내 '차이나타운'에 살고 있는 '화교'들도 한국 국적을 갖고 있으니 '화교의 문화'도 당연히 '한국의 문화'로 이해될 수 있고, '화교의 문화'가 '중국의 문화, 모든 것'과 일맥상통하니 중국의 모든 것은 자연스레 '대한민국의 것'에 속하게 된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서로 막무가내로 억지논리를 펴게 되면 종국에는 '힘의 대결'로 결판을 짓게 마련이다. 한마디로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대한민국이 '최강의 강대국'이 되어 중국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서 '정상화'를 시도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물론 이런 식의 해법은 단순명쾌해 보일 수는 있지만,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모순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정정당당한 외교력을 바탕으로 '대화'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억지를 부리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고 상호존중의 자세로 '협상의 테이블'에 마주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물론, 땅덩이는 커다래서 '대국'이라 부름직하지만, 자그마한 소갈머리를 갖고 있어 '소국'이라 불러도 시원치 않으나, 애매할 때는 대충 '중간값'을 부르는 것이 편하니 '중국'이라 불러 마땅한 애들과는 적당히 비위 맞춰주고 달래가면서 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그렇게 '한국 것' 빼앗으려다가 모든 중국인들이 '한복' 입고, '김치' 먹고, '한글'까지 쓰다가 끝내 '한국 것'만 남고 몽땅 다 사라지게 되고 말 것이라고 점잖게 타일러도 좋을 것이다.

 

  암튼, 윤동주 시인이 '독립운동'을 한 저항시인이었고, 한국적인 언어의 아름다움으로 한국을 넘어 세계인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울러 우리의 소중한 '윤동주'를 중국의 조선족이 낳은 유명인으로 전락하게 만들 수 없음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으면 바랄 것이 없겠다.

 

책드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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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60선 60 : 칸트 실천이성비판 NEW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60선 60
심옥숙 지음, 주경훈 그림, 손영운 기획 / 주니어김영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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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트의 철학을 한마디로 말하기에는 너무도 숭고한 면이 없지 않지만, 어줍잖은 내가 느끼기에는 '양심'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흔하디 흔한 '도덕적 미사여구'에 그럭저럭 모양새를 갖춘 '허례허식' 따위는 감히 입에 올릴 수도 없을 '칸트 철학'의 핵심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게 만들 맑고 깨끗한 양심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선한 행동을 한다고 하더라도 '칭찬'을 바라거나 '금전적 이득'을 챙기고 싶다는 마음가짐으로 행하였다면, 그것은 진정한 선함이 아니라고 말한 칸트는 '도덕'과 '윤리'라는 모호한 잣대를 자신의 양심을 '바로미터'로 삼는다면 절대적으로 타당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흔히 칸트철학 3부작은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도 쉬이 읽을 수는 없다. 내용이 너무 어려운 탓도 있지만, 읽다보면 '칸트에 대한 존경심'에 우러러 보다가 도저히 쳐다볼 수 없을 지경에 다다른 탓이 더 클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칸트가 자신의 철학을 신념으로 삼고 머릿속으로만 정념을 품은 것이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를 몸소 실천해 나갔다는 아는 순간 부끄러움이 샘솟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칸트'가 좀 싫다. 사람이 조금 빠지는 구석도 있고 빈틈도 보여야 '사람처럼' 보이기 마련인데, 거짓부렁도 일절 없이 언제나 올곧고 반듯한 모습만 보여주고 있으니 쫓아가기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감히 쫓아갈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흉내내는 것만으로도 이미 성인군자일텐데 말이다.

 

  그래서 칸트철학을 어렵게만 생각하기에 앞서 쉽게 풀이하자면, 칸트 철학은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라고 이야기해도 무방할 것이다. <순수이성비판>이 '순수한 앎'에 대한 철학을 다루었고, <실천이성비판>이 '도덕적 행동'에 대한 철학을, 마지막으로 <판단력비판>이 '생각(바람)하는 힘'에 대한 철학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칸트철학의 핵심은 "뭘 알게 되었으면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꿀만한 이상을 펼쳐라"라는 것이라고 보아도 크게 틀린 내용은 없을 것이다. 칸트는 평생을 바쳐 '자신의 철학'을 몸소 실천한 '행동하는 철학자'로도 유명하다. 따라서 칸트는 자신의 양심에 거리낄 것이 하나 없는 '순수, 그 자체'로 살아간 철학자이기에 그가 말하는 바를 쫓는 후학으로서 '절대불변의 진리'를 마주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기에 감동할 수밖에 없기에, 그렇게 간추려 본 것이다.

 

  그 가운데 <실천이성비판>은 그야말로 도덕적, 윤리적으로 '양심의 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생각해보라.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양심'에 어긋나는 것이 하나도 없고, 그로 인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으니, 세상을 대하는 '나의 자세'가 얼마나 당당하고 떳떳하겠느냔 말이다. 그런 '바른 행동'에 귀감을 받고 따라하는 이들이 생길테니, 상상만으로도 세상살이가 살맛 나지 않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왜 칸트와 같이 당당하고 떳떳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바른 행동'이 무엇인지 익히 알면서도 흐트러진 행동을 일삼곤 한다. 그건 다름 아니라 '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굉장히 억울해 하는 탓이다. 다시 말해, '바른 행동'을 하는 것을 어리숙하거나 답답한 사람으로 취급하기 일쑤고, 왠지 모르게 '손해'를 보는 것이라고 여기기 십상인 탓이다. 이를 테면, 길을 가다 10만 원의 현금이 들어 있는 지갑을 주웠다면 주변에서 지갑을 잃어버린 이를 찾고, 찾을 수 없을 경우, 가까운 경찰서에 분실물 신고를 하는 행동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누가' 본 사람도 없고, '아무도' 찾아갈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라 여기고서 '제돈 마냥' 슬쩍하고서 써버리는 비양심적이고 몰염치하며 도둑질과 다를 바가 없는 행동을 일삼는 사람을 은근히 부러워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꽁돈'이 생기길 바라며, '꽁돈'을 챙긴 사람을 부러워하는 세태가 만연하다 못해 도덕이고 양심이고 그저 '눈먼 이득'만 챙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버리는...그런 만족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비리마저 기꺼이 눈감아주는...솔직히 까놓고 얘기하면 '누구나' 다 그러할 것이라 '성급한 일반화'시키는 오류까지 감행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칸트가 말하는 '양심'이니, '정언명령'이니, '최고선'이니 하는 것들은 시험문제일 때만 맞추는 '정답'에 불과하고, 일상생활에서는 온갖 비리가 판을 쳐도 '원래 다 그런 것'이라면서 푸념을 늘어놓기 다반사다.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바른 소리'는 낼 필요가 없는 걸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닷! 과학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후쿠시마 오염수'가 식수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전하다면서, 일본국민들의 '식수'로도 부적합하고, '농업용수'로도 쓰지 않고, '저장탱크'를 늘려 2045년까지 보관하지도 않고 있다. 심지어 일본국민들의 손에는 '닿지도 않게' 하고 일본땅에는 '한방울의 오염수'도 남기지 않고 모두 바다에 내다버린다고 하는데, 도대체 '그 바다'는 안전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러면서 '후쿠시마'를 비롯한 '일본산 수산물'을 세계 각국에 내다 팔 궁리부터 하고 있으며, 일본산 수산물을 수입거부하는 국가에는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라고 한다. 정말로 과학적으로 '안전'하기 때문에 말이다. 정녕 '양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대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가? 누구나 다 그러니 '바른 소리'를 꺼낼 생각도 말고, 당분간 일본산 수산물을 사먹지 않겠다는 결심만 하면 그럭저럭 원만하게 해결될 것 같은가?

 

  방사능물질은 '반감기'라는 것이 있는데,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원래의 방사능보다 반으로 줄어들어 결국엔 사라질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반감기'가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수 초만에 반감기를 반복해 하루이틀이면 사라져버리는 것도 있지만, 수만 년이 지나도 반감기에 도달하지 못해 영구적으로 위험한 방사능을 뿜어내는 것도 있다고 한다. 일본정부가 '알프스'라는 시설로 오염수를 처리(?)해서 바다에 방류할 오염수도 방사능물질을 모두 걸러낼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실제로 십 수년간 오염수를 처리하다가 알게모르게 새어나오는 방사능물질도 있는 것이 당연하단다. 물론 그러지 않게 하기 위해 '만반의 대비(?)'를 한다고 하는데, 인류 역사상 한 번도 시행해보지 못한 일을 어찌 그렇게 호언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기에 만에 하나라도 걸러지지 못한 방사능물질이 바다를 오염시키지 못하도록 '방류 철회'를 요청한 것인데, 이를 '막대한 비용'를 감당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하나 뿐인 바다'를 그대로 오염시키겠다는 심보는 무어란 말인가?

 

  칸트는 말한다. 스스로도 도덕적이지 못한 행동이라 여긴다면 결코 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하물며 다른이가 온당치 못한 일이라 여겨 하지 말라고 한다면 마땅히 행동으로 옮기기에 앞서 온당치 못한 구석부터 명명백백히 밝혀낸 뒤에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은 유치원에 간 어린이도 다 알고 지키는 '규칙'이다. 비단 '후쿠시마 오염수'에만 해당하는 일일까? 개인의 사리사욕을 지키기 위해 편법을 용납하게 되면 모두를 위한 공정함을 영영 잃어버리게 된다. 특정 소수의 이득을 지키기 위해 대다수의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게 된다면 특정 소수는 '공공의 분노'를 직면하게 된다. 비록 칸트는 혁명적인 투사가 되라고 가르친 바는 없지만,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최고선'을 망각하는 순간, 공공의 분노를 직면하게 되는 절체절명의 순간도 예상밖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잠시 외면한 '양심'은 결국엔 돌고 돌아 사회적 불안을 야기하게 된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눈 떠보니 후진국'이 된 것도 결국 '양심문제'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국민 모두에게 '양심적인 삶'을 살라고 호소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개개인에게 맡겨야 할 성질의 것을 '공공선'을 위해 '개인적 희생'을 강요하며 '도덕적인 삶'을 강제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판단의 몫'도 개별적인 성질의 것이다. '나의 판단'이 옳으니 무조건 따르라고 하는 건 '오만'이고, 권력자가 그런다면 '독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 국민 모두가 도덕군자가 될 필요도 없다. 다만 '양심'에 어긋나지 않고, '양심'에 따른 행동을 하기로 결심하는 순간부터 '성숙한 시민의식'은 싹 트게 될 것이다. 나의 양심에 깃든 바른 몸가짐 하나하나가 성숙한 실천가로 거듭나게 된다면 대한민국은 분명히 '선진국'을 넘어 '선도국가'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선진국에도 개또라이는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개또라이짓'을 부끄러워하는 성숙함이 차고 넘쳐야 한다. 우리가 오늘날 '칸트철학의 유효함'을 느끼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우리의 내면에 '도덕적 양심'의 성숙함이 차고 넘칠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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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24-02-15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님이 상정하는 국가상과 정치에 대한 부분들에 올바른 소리 등을 드러내면 님이 그릇된 것으로 드러납니다. 님같은 진보대학생들이라고 불리는 현 기성세대와 현 젊은 세대의 괴리가 극심하게 큽니다. 대학권에서 7년을 토론해왔는데 이미 젊은 세대의 각종 커뮤니티들에서는 현 586 정치인들의 부조리를 넓은 범위에서 보고 있고 단 한 주간의 언론에서의 보도중에서도 수많은 오류와 문제를 지적합니다. 극도의 편향성과 왜곡과 허위성을 띄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제로콜라(보도와 현실의 차이) 같은 것입니다. 현 사회에서는 님이 말하는 것들이 거대한 부조리 상을 이루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 젊은 세대도 기성세대가 되면 그때의 젊은 세대가 어떤 고착화되고 감정에 눈멀며 경도된 부조리를 발견할 겁니다. 그러나 언제든 좋은 사람은 그 자기 오류를 인정하려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異之我_또다른나 2024-02-17 21:48   좋아요 0 | URL
자기오류를 인정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데 공감합니다. 허나 ‘올바른소리‘를 내면 그릇된 것으로 드러난다는 말은 이해하기 힘들군요. ‘정치적 올바름(PC)‘을 지적하시는 내용인 듯 싶은데...‘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소리를 낼 용기도 없는 사회가 더 끔찍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지적질‘은 듣기 싶은 법입니다. ‘견해‘가 다른 경우라면 더욱더 그런 법이지요. 허나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다면, 다시 말해,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조차 거리낄 것이 없는 ‘양심적 올바른 소리‘는 울림이 큰 법입니다. 그 큰 울림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정치적 올바름‘과 같은 걸림돌만 걱정할 것 같으면, 애초에 말이나 표현을 하지 말아야겠죠.

극도의 편향성과 왜곡, 그리고 허위성에 따른 ‘부조리‘를 겪는 상황에서는 더욱더 ‘올바른 목소리‘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비난이 아닌 비판은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누군가 ‘올바름‘에 대해 말을 한다면, 경청한 다음에 비판을 더하시길 바랍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누구‘도 완벽하게 옳은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완벽하지 않은 목소리‘를 내지도 말라고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누가 ‘진실‘을 말하고, 누가 ‘거짓‘을 말하는지는 모든 사람이 평가할 것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대화와 타협을 거쳐 우리가 바라는대로 나아갈 겁니다.
 
NEW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60선 59 :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NEW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60선 59
손영운 글.기획, 이진영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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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는 3권에 해당하는 방대한 분량의 책이다. 이책을 우리 나라에서는 6권으로 나누어 출간하였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각권은 평균 700여 쪽에 달하는 '벽돌책'이다. 이렇게나 방대한 분량의 '역사책'인만큼 사료에 충실하였다는 것을 방증하기 때문에 브로델을 일컫어 '노벨 역사학상 수장자'라고 불릴 정도란다. 안타깝게도 노벨상에는 '역사학 분야'가 없으니 말이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이 아무리 청소년에게 유익한 필독서라고 하더라도 꼭 읽기히게는 무리한 일일 수밖에 없는 일이며, 방대한 원전에 일일이 '주석'을 달아놓은 <해설서>라도 읽힐라치면 더욱 골머리를 싸잡아쥐는 악순환이 반복될 뿐일 것이다. 앞서 <대승기신론>이란 석가모니의 말씀을 압축한 책에 '해석'이 분분하니 원효를 비롯해서 유명한 고승이 <대승기신론소>를 펼쳐내어 읽고 해석하기에 불편함이 없게 해주었으나, 그로 인해 <대승기신론>의 분량보다 10배가 더 많은 '주석'을 달아놓을 수밖에 없었음을 떠올린다면, 이 책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또한 그럴 폐해가 얼마든지 나올 법 하다. 그런 까닭에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시리즈'가 대단한 시도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쉽고 재미나게 읽으면서 '만화형식'으로 단번에 '원전의 이해'를 도모하기 때문이다. 물론 '전부'가 아니라 '맛보기'에 불가하다는 지적을 피할 순 없겠지만 '청소년 독자'들에겐 유용한 시도가 분명할 것이다. 반드시 '원전'에 도전하겠다는 다짐만 얻어낼 수 있어도 이 책이 지닌 '의도'는 십분 발휘한 셈일 것이니 말이다.

 

  암튼, 역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로도토스'와 '사마천'에 버금가는 영예를 누리어 마땅한 '페르낭 브르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를 살짝 이해해보도록 하자. 먼저,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기준의 중요성'을 강조한 브로델의 주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초의 역사서라 불리는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기존의 왕조 중심(권력자)의 역사관이 아니라 방대한 사료를 바탕으로 이성에 의한 '합리적인 연구'를 통해 역사를 서술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평가받았다. 또한, 중국 전한시대의 역사가인 사마천은 <사기>를 집필하면서 역사를 '본기(제왕의 역사)', '열전(신하의 역사)', '지(법률, 경제, 사회의 역사)', '연표(역사적 흐름을 표로 정리)'로 정리하는 '기전체'라는 역사서술 방식을 확립하였다. 이후의 동양역사가들은 거의 대부분 사마천의 '기전체' 방식을 본따 역사를 서술하였다.

 

  이에 반해 브로델은 역사를 '누구의 입장에서 기록할 것'인지 따져 물었단다. 역사에 기록될 만한 '사건'이 발생하였더라도 '보는 관점'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른 방식의 서술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80세를 맞이하여 축하할 만한 사건이 발생했더라도 '왕과 귀족'이 맞이한 80세 잔치와 일반 '평민과 천민'이 맞이한 80세 잔치는 극명한 차이를 보일 것이다. 또는 '교통사고'가 났더라도 고급차와 중고차라는 '대상'에 따라 '보는 관점'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고, 이는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관점이 더해지면 더욱더 다양한 역사로 기록될 가능성이 농후해질 수밖에 없다. 브로델은 바로 이런 점을 중요시 여겼던 것이다. '역사기록'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역사학자가 역사를 기록한다면 분명 전문성이 높은 '정치/사회사 역사기록'이 서술되겠지만, 경제사학자가 똑같은 역사를 기록하게 된다면 '경제사 역사기록'으로 서술되면서 '역사관점'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과학사학자나 미술사학자가 마찬가지로 기록한 '역사책들'은 기존의 역사책과 사뭇 다른 '역사관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세계사' 단위로 역사를 기록할 것인가? '국가' 단위로, 또는 '100년' 단위, '1000년' 단위 등등으로 여러 단위로 역사를 쓰게 되는 것에 따라 서로 다른 '역사학파'가 결정지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브로델은 인류 전체를 바라보는 '유연한 자세'를 강조하며 기존의 역사학자들이 지나치게 '정치적 사건'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것에 반대하였고, 이러한 역사학파를 '아날 학파'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는 1929년에 <경제사회사 연보(아날)>창간된 잡지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는데, 이 잡지의 이름은 각각 46년에 <아날, 경제, 사회, 문명>으로, 94년에 <아날, 역사와 사회과학>으로 바뀌었다. 아날 학파는 이러한 경향을 주도한 학자에 따라 3개의 세대로 나누는데 '페르낭 브로델'은 제2세대에 속하며 시기적으로 1945~1968년에 주름잡았다. 브로델이 '68혁명' 이듬해에 아날학파 편집위원직을 넘겨주었는데, 프랑스대혁명에 버금가는 '68혁명'의 주역들이 바로 브로델의 역사학을 맥락으로 잡아 기존의 기득권자들에게 반기를 든 대학생과 지식인이 연대를 하였으니, 유심히 지켜볼 시점임에 분명하다. 어찌보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란 저서는 아싸(아웃사이더)들의 개론서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 어디를 찾아봐도 '혁명의 지침서'가 될 만한 내용은 찾을 수 없다. 이 책은 '역사를 총체적으로 조망한다'는 생각을 정확히 구현해낸 책이지만, 조금 달리 해석하면 '유럽은 어찌해서 성공가도를 달렸고 중국을 비롯한 동양은 어찌하며 쇠망하게 되었나'라는 자화자찬, 아전인수 격의 책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인류의 역사를 '짧은 시간'이 아니라 '긴 시간'을 통해 지난한 과정과 여러 관점을 살펴보야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논조로 일관하였을 뿐이다. 따라서 짧은 시간 안에 극심한 변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혁명의 논의'는 거대한 역사적 흐름으로 봤을 땐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하였기 때문이다. 허나 거대한 역사적 흐름속에서도 '프랑스대혁명' 같은 '혁명의 필연'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부인하지도 않았기에 이 책을 읽고 공감한 '68 혁명가들'도 꽤나 많았을 것이다. 이는 브로델의 삶속에서도 짐작할 수 있는데, 그는 보수권력자나 기득권층에게 유리한 역사를 쓰지 않는 일관적인 논조를 유지하며, 어쩌면 세상사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처럼, 오직 '학자의 길'만을 걷고자 했을 뿐이다. 그 때문에 진보적인 논객들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는데, 그때에도 마찬가지로 '거리'를 유지하는 소신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브로델은 오직 '학자'로서 책임과 본분을 다할 뿐, 변화하는 세상사에 일일이 관여하는 모습을 보여주진 않았다. 하지만 그는 '행동하는 실천적 지성인'이었던 샤르트르에 대해서 칭찬과 비판을 계속하면서 '학자로서 중도의 길'을 지킬 뿐이었다. 그 때문이었는지 그의 '물질문명'를 논할 때의 관점은 꽤나 '제국주의자들의 논조'와 유사한 점을 찾아볼 수 있다. 이른바 '서양의 성공과 동양의 실패'는 서양일변도의 제국주의의 성패와도 유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식민지에서의 생활을 겪어보았던터라 '식민지생활의 참담함'도 날카롭게 비판하며 마냥 제국주의를 옹호하지만은 않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부자들에겐 천국을, 빈자들에겐 고통을 선사한다'는 논조로 비판하며 자본주의를 만병통치약처럼 신봉하는 부류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허나 정작 이 책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라는 책에는 그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가 없어서 모호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사료'를 중시하는 '랑케의 사관'과 '해석'을 중시하는 '카의 사관'의 중간적인 시기에 '방대한 사료'를 바탕으로 '다양한 해석'을 통해 역사관을 사유해야 한다는 '총체적 역사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역사적 관점의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총체적 역사관'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에게 '랑케의 사관(실증사학)'은 식민사관이란 병폐를 낳았으며, '카의 사관'은 '친일적폐사관 vs 종북좌파사관'이라는 극심한 대립만 끝없이 되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오직 역사만을 위한, 역사적 해석이 필요한진데, 단순히 '정치사학'을 넘어서 '친일편향적인 경제사학' 또한 능가해버리고 '민족자존의 긍지'도 살리면서도 누가 보더라도 '공정하고 합당한 역사서' 편찬을 위해 노력해줄 이가 필요한 때이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정치성 편향'이란 잣대를 들이대는 반푼이들은 없길 바란다. 이런 반푼이들의 어줍잖은 공격을 가뿐히 넘어설 이 시대의 양심적 시민들이 넘쳐야할 까닭이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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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0
헤르만 헤세 지음, 김이섭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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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위플래쉬>에서 독단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명성만을 위해 제자들에게 기꺼이 '채찍질'을 하는 교수가 등장한다. 이 영화가 상영할 당시 미국에서는 '교육적 관점'에서 매우 부정적인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만약 자신에게 자녀가 있다면 '저따위' 교수에게는 교육받지 않게 하겠다고 말이다. 특히 교수의 '언어구사'에도 지적이 많았는데, 인종차별적이고 인격모독적인 욕설이 난무하여 수많은 질타를 받기도 했단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우리 나라에서는 '호평일색'이었던 것이 주목할 만하다. 우리말로 '뒤쳐진 자막'으로 인해 교수의 '폭력적인 언어'들이 상당히 순화(?)된 덕분이었는지, 아니면 우리 나라 교육현실이 그런 '언어폭력'에 길들여진(?) 탓인지 모르겠지만, 자기밖에 모르는 교수의 폭력적인 언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고, '재즈음악의 강렬한 비트'에 몸이 들썩이는 흥겨움에 보는 내내 즐거웠다는 평과 함께, '성공'을 위해선 저 정도(?) 강도의 수업은 달게 받아야만 한다는 '강압적인 교육의 정당성'을 들이대며 제자의 성공을 위한 교수의 헌신(?)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평도 압도적으로 많았다.

 

  과연 그럴까? '위플래쉬'라는 뜻이 채찍질을 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우리도 '선생님이 되다'는 뜻으로 '교편을 잡는다'고 표현하는데, '교편'이 바로 선생님이 학생을 가르치면서 사용하는 가느다란 막대기를 이른다고 한다. 한때는 수업을 시작하거나 수업분위기를 다잡기 위해 바로 이 교편으로 교탁을 탕탕 두들겼고, 학생들의 훈육을 위해서 아이들의 엉덩이와 종아리, 손바닥, 옆구리, 명치, 관자놀이 등등 학생들의 신체를 가릴 것 없이 때리고 찌르고 패는데 썼던 '선생님의 권위(?)'를 상징하는 무기(!)로 주로 쓰이기도 했다. 이렇게 흉악한 무기를 들고서 잘 휘둘러야만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렇기에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되면서 학생들에게 으레 내려졌던 '체벌'을 없애는 방향으로 우리 교육이 변화했던 것이다. 요새 이런 '학생인권'과 '선생님의 교권'에 대한 논란이 충돌하면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는데 깊은 공감을 하지만, 여기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심도 깊게 이야기를 하겠다.

 

  암튼, 우리는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으면서 '모범생(한스 기벤라트)'와 '문제아(헤르만 하일너)'를 비교하며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기성사회'에 잘 적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강변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곤 한다. 우리 나라의 학생 대부분은 이 책을 읽으면서 '문제아'가 되면 퇴학조치를 당해 '성공의 지름길'을 갈 수 없으며, '모범생'으로 성실하게 학업에만 열심히 하는 학창시절을 잘 견디기만 하면 '인생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해석이 옳다면 '한스의 죽음'을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어찌하여 '잘 나가던 모범생'이 친구의 죽음과 퇴학을 당하는 슬픈 경험을 이겨내지 못하고 신경쇠약에 걸려 끝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 시도 끝에 죽음에 이르게 되었냔 말이다. 앞서 '모범생과 문제아의 관점'으로만 이 책을 읽게 되면 한스의 죽음은 고작 '불성실하고 의지박약한 모범생의 뻔한 귀결'이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연 헤르만 헤세가 그런 메시지를 주제로 삼아 <수레바퀴 아래서>를 썼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

 

  이 책 <수레바퀴 아래서>는 헤세의 '자전적 소설'로 분석될 만큼 '작가의 경험'이 잘 스며든 소설이다. 실제로 헤세도 학창시절 '두 번의 퇴학'을 당하고 '자살시도'도 했으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괴로운 나날을 지내다가 어머님의 헌신과 친구들의 우정, 그리고 진정한 사랑에 눈뜨게 되면서 다시금 '삶의 의욕'을 되찾게 된 경험담이라고 이 책에 대한 소개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목표를 상실하고 아무런 목적도 없이 공부만 강요당했던 학창시절이 끔찍할 정도로 괴로웠다는 고백을 털어놓으며 <수레바퀴 아래서>를 쓰게 된 까닭도 밝혔다. 이런 '작가의 의도'를 투영하여 <수레바퀴 아래서>를 이해하게 되면 분명 '교육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지적한 소설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기벤라트'에는 '충고(조언) 좀 해줘'라는 뜻이, '하일너'에는 '치유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면 한스와 하일너의 우정이 괜한 설정이 아니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레바퀴'는 무엇을 의미할까? 왜 학생들은 그 '아래'에 놓이게 된 것일까?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고 있으면 한스 기벤라트의 주위 어른들이 모두 하나같이 '고지식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스의 아버지는 공부성적이 뛰어난 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아들인 한스가 정작 무엇을 바라는지도 알려고 하지 않는 고루한 인물로 등장한다. 그저 한미한 집안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유용한 도구'로 훌륭히 성장해주기만을 바라는 욕망덩어리에 불과하다고 느낄 정도로 막무가내일 뿐이었다. 또한, 학교 선생님들조차 한스를 '마을의 자랑'으로 여길 뿐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은 찾아볼 수 없다. 그들 역시 '마을의 명성'을 빛낼 뛰어난 인재로서 한스를 대할 뿐, 한스의 방황과 실패 앞에서 그저 '방관자'로 일관할 뿐 '한스의 성적과 결과' 이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는다. 한편, 마을의 목사와 신학교의 교사들도 '미래에 걸출한 예비목사'로써만 한스를 대할 뿐, 그밖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행여나 성적이 뛰어난 학생이 '목사'가 아닌 다른 '존재'를 꿈꾼다는 것조차 인정할 수 없는 편협한 성격의 소유자들일 뿐이다. 이렇게 '기성세대'가 만든 '기성사회'는 자신들의 성공(?)만이 유일한 정답인 것마냥 학생들에게 강요를 '되풀이'하는 반푼이였던 것이다. 수레바퀴는 바로 이런 '모자란 어른들'이 만든 맹목적인 사회를 상징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일이 고작해야 '수레바퀴 아래'에 학생들이 깔리지 않도록 '수레바퀴 위'로 끌어올려 '수레바퀴 안'에서 맴도는 삶을 가장 숭고한 업적으로 여기는 모지리들인 것이다.

 

  이런 모자란 어른들이 만든 사회에 반기를 든 학생이 바로 '헤르만 하일너'다. 그는 과감히 '수레바퀴'에 탑승을 거부하고 '수레바퀴 바깥세상'을 꿈꾸며 반듯한 어른으로 성장했다고 후일담을 전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한스 기벤라트'는 수레바퀴에 탑승하는 것이 자기 스스로 원하는 것이 아님을 직감하긴 했지만, 하일너처럼 '극복'하지 못하고 '고민'만 하다가 우울에 빠지고 신경쇠약에 시달리다 사회에 적응하지도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음을 맞이한 청소년으로 보여진다. 우리 주변의 청소년을 살펴보자. 그들이 되바라지고 싸가지도 없으며 행동 하나하나가 이해할 수 없는 '위험천만한 존재'라는 비난을 들이대기에 앞서, 그들이 스스로 '정체성'을 발견하고 '자기만의 가치관'을 제대로 형성하고 있으며, 그렇게 꿈꾼 미래를 실현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는지 살펴보잔 말이다. 그때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시기적절한 '충고(조언)'가 필요한 것이다. 꼰대처럼 들릴 소리지만 '라떼'도 좀 섞어가면서 우리 청소년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그리고 '돈(경제력)'도 잘 벌 수 있는 인생상담을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레바퀴 아래서>는 청소년 뿐만 아니라 선생님과 학부모를 비롯한 모든 어른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인 셈이다. 그리고 반성해야 할 주제가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아이에겐 '왕의 DNA'가 있으니 특급서비스(?)를 해줘야 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학부모이자 고위관직자가 되어선 안 된다. 또한, 선생님들도 사랑스런 제자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서 '모범생'과 '문제아'로 구분하는 어리석음은 저질러선 안 된다. 진상짓만 골라서 하는 학부모들의 민원과 그런 학부모의 눈치만 살피는 교장 이하 '윗선'에 의한 고충은 별개로 치고 진정 자신의 제자를 위해서 해줘야 할 '충고'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고, 아끼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일선 선생님들의 고충은 알고도 남는다. 비록 사교육 과외교사에 불과하지만 나도 논술쌤으로 '교육상담'을 하다보면 말도 안 되는 진상부모들의 요구사항을 듣고, 어처구니 없는 학생들의 무도한 헛짓거리를 보면서 혀를 끌끌 찬 적이 헤아릴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선생님이기에 가슴에서 삭히고 가슴으로 품어야만 할 때가 더 많았다. 그것이 '진정한 교육'이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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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60선 58 : 원효 대승기신론소 NEW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60선 58
서기남 글, 박수로 그림, 손영운 기획 / 주니어김영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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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가운데 명백히 '우리 것'도 있는데, 실로 '우리 고전'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낮은 것은 정말 아쉬운 일이다. 물론 학문의 경계가 따로 없고 '내것'과 '네것'으로 나눌 수도 없는 것이 '고전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분명 '우리 고전'에는 한국적인 정신이 오롯이 새겨져 있는데, '그것'을 헤아려 오늘에 맞게 되살리려는 노력이 부족한 듯 하여 아쉽다는 것이다.

 

  딴에는 '서양의 학문'이 체계적인 듯 싶고, 서양과 쌍벽을 이룬 듯한 '동양의 학문'은 대개 고대 중국과 인도에서 비롯한 것이 많다하여 '한국적인 것'을 따로 찾아내기 힘들다고 토로하는 이들도 있기는 하다. 허나 이웃한 '일본의 학문'은 그 뿌리가 조악하다 못해 베꼈다는 것이 명확한데도 '일본의 것'이라 당당히 밝히고 있는데 반해, 우리는 이렇다 할 것을 내세우지도 못하고 '한국적인 무엇'을 내세우기 앞서 대개 '중국에서 유래한 것'을 우리의 형편에 맞게 '독자성'을 내세워 고쳐쓴다며 당당히 '원조'를 내세우지 않고 그저 '외래에서 흘러온 것'을 우리의 정서와 형편에 맞게 '고쳐쓴 것'이라며 애써 '겸손'을 떨고 있지 않은가 싶을 정도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느끼고 있다. '우리의 독자성'을 내세우지는 않지만, 일단 '외래의 것'이 우리의 품안에 들어오면 '원래의 것'과는 사뭇 다른 '우리 것'으로 변화하여 '원래의 것'보다 훨씬 좋은 '한국적인 것'으로 탈바꿈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바로 이런 '한국적인 것'이 바로 '우리 것'이고, '우리 고전'인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우리 고전'에 대한 자긍심을 드높이고, '원래의 것'보다 더 좋은 '한국의 것'을 바로 세우려는 노력을 등한시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여기 원효가 쓴 <대승기신론소>도 마찬가지다. 불교의 창시자는 인도의 왕자 싯다르타(부처)라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불교가 '인도의 것'은 절대 아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인도에서 유래한 불교는 '현지의 사정'에 알맞게 변해 왔고, 인도의 승려 마명이 쓴 <대승기신론>에 덧붙여 중국에 전래된 불교가 '대승불교'로 모습을 바꾸었고 '대승불교적 관점'이 우리에게 전해지면서 신라의 원효에 의해 석가여래의 말씀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독자적 해석'을 담은 책이 바로 원효가 쓴 <대승기신론소>이다. 허나 1900여 년전에 마명이 산스크리트어로 썼다는 <대승기신론>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고, 현재는 6세기 중국 양나라 승려 진제와 당나라 승려 살치난타가 쓴 책만 전해지고 있을 뿐이고, <대승기신론>을 해석한 <대승기신론소>도 수나라 혜원, 신라 원효, 당나라 법장의 해석이 담긴 책을 으뜸으로 치고 있다고 한다.

 

  헌데, 사실 <대승기신론>은 매우 짧은 책인데 반해 이에 대한 '해석'을 담은 <대승기신론소>는 두껍고 방대하기로 유명하다. 왜 그럴까? 그건 '불교 경전의 핵심'만 담아 놓은 <대승기신론>을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라서 그렇다. 아무런 주석도 달아놓지 않고 '경전의 핵심'만 간추려서 '불교란 이런 것이다'라고 써놓았는데, 그 핵심적인 내용이 석가모니가 살아있을 당시, '붓다의 말씀'을 거의 직접적으로 옮겨놓다시피 했으니 담긴 내용이 얼마나 '함축적'일지 가늠조차 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어떤이는 '천재들만 이해할 수 있는 경전'이라 불리는 간편한(?) 책, <대승기신론>에 일일이 해석을 달아놓았으니, 누구라도 한 번 읽으면 단박에 이해가 될 정도로 쉽고 재밌는 책(?)이라 불리는 <대승기신론소>가 탄생한 것이다.

 

  그런데 불교의 경전은 크게 세 가지로 '경', '율', '논'로 나뉜단다. 경은 석가모니의 '말씀'을 모아놓은 책이고, 율은 불교 교단에서 지켜야 할 계율을 모은 책이다. 그리고 논은 위대한 스승들이 경과 율을 해석한 것을 모아놓은 책이란다.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하자면, 경은 '교과서', 율은 '교칙', 논은 '참고서'인 셈이다. 이렇게 경장, 율장, 논장, 셋을 함께 이르는 말이 바로 '삼장'인데, <서유기>에 등장하는 '삼장법사'는 바로 이 세 가지에 통달한 위대한 스승이란 뜻이다. 수천 권에 달하는 '불교경전'을 통달했으니 '삼장법사'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대단한 칭송인 셈이다. 쉽게 비유하자면 '팔만대장경'이 불교경전을 압축해서 '팔만 개 이상의 목판'에 새겨넣은 것인데, 그걸 달달 외울 정도의 실력자(?)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따라서 <대승기신론소>는 '논'이란 글자가 보이니 불교의 위대한 스승들의 '해석'을 보다 쉽게 풀어놓은 해설집인 셈이다.

 

  그렇다면 <대승기신론소>의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깨달음'에 대한 해설집이다. 인간의 마음에 깃들어 있는 '고통', 그리고 연속적인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참고서, 달리 표현하자면, '안내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는 자기개발서쯤으로 이해해도 좋을 듯 싶다. 그런데 그런 좋은 안내서가 너무 방대한 것이 탈이다. 그리고 쉽게 설명했다고 하지만 너무 오랜 옛이야기라서 '현대적 가치관'에서 보기에는 사뭇 이치에 맞지 않은 설명도 곳곳에 눈에 띄어서 오히려 읽기에 따분한 책이 되어 버린 듯도 싶다. 하지만 원효의 사상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 것일 뿐이다)'에 함축되어 있기에 원효가 지은 <대승기신론소>의 핵심도 '원효 사상'에 입각해서 이해를 하면 그닥 어렵지 않을 것이다.

 

  원효의 대표적 사상인 '일체유심조'는 해골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일찍이 불교의 가르침을 깊이 이해하고자 중국(당) 유학을 결심한 원효과 의상은 함께 중국으로 가려고 했지만, 가던 도중에 천재지변으로 인해 급히 몸만 피해 동굴에 들어갔을 때였다. 한밤중에 목이 말라 잠에서 깬 원효는 깜깜한 암흑속에서 '물바가지'를 찾아 맛있게 해갈을 하고 다시 잠에 들었는데, 날이 밝아 깨어보니 동굴이라 여겼던 것은 '무덤속'이었고, 맛있게 마셨던 물은 시체가 썩어 만들어진 '뇌수'였던 것이다. 한참을 역겨움을 느끼며 구역질을 하던 원효는 문득 어젯밤에 마셨던 맛있는 물과 시체의 썩은 물이 '똑같은 물'일진데, 어찌하여 '그때'는 맛있었고, '지금'은 역겨워 뱃속을 뒤집어 놓은 것인가 의문을 품은 끝에 세상 만사 '고통'이라 불리는 것도 오직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이렇게 단박에 큰 깨달음을 얻은 원효는 중국 유학도 포기하고 신라로 돌아가 '유심종(마음먹기에 달렸다)'을 널리 퍼뜨렸으며, 의상은 계획대로 당 유학을 마치고 '화엄종(華嚴宗: 엄격함에서 빛이 남)'을 개창했으니 반듯한 의상대사의 인품이 더해져 '해동화엄종'을 널리 퍼뜨렸다. 암튼, 이런 원효가 쓴 <대승기신론소>가 어떤 깨달음을 담았는지 대충이라도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불교는 다른 종교와는 달리 '전지전능한 신'이 등장하지 않는다. 누구나 도를 닦아 마음으로 깨달음을 얻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칠 뿐이다. 물론 누구나 '부처'가 될 수는 없다. 해탈의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선 끝없는 고통과 욕심을 끊어버리는 '무아(無我)의 경지'에 다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무아'의 경지에 다다르지 못하고 고작 '또다른나(異之我)'를 만들어 온갖 번민에서 달아날 궁리만 하고 있을 뿐이다. 문제해결을 위해선 '회피'가 아니라 당당히 '맞서야함'을 잘 알고 있지만 말이다. 허나 나를 대신해서 '대신' 두들겨 맞으며 온갖 역경을 이겨낸 '또다른나'는 대단히 맷집이 단련되었다. 그렇게 '무아'의 경지에 아직 도달하진 못했지만 '이지아'의 경지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나'는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을 따름이다.

 

  암튼,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교도 석가모니 때에는 '누구나' 될 수 없었고, 오직 석가모니만이 유일한 '붓다'였을 뿐이다. 이런 불교의 교리가 중국에 전래되었을 땐, 대승(큰수레)적인 가르침으로 새롭게 바뀌었다. 마치 유대의 하느님이 유대인만을 '선택'하였는데, 하느님의 아들 예수의 제자들이 '온인류'에게 사랑을 전파하면서 그리스도교로 바뀐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우리 나라에 전래된 '대승불교'는 누구나 가르침을 받아 깨달음을 얻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해석'을 이어받아 원효대사는 세상만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으니 신분의 높고 낮음과는 아무런 상관 없이 누구나 깨달음을 얻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하여 '불교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하였다. 비록 원효의 <대승기신론소>가 읽기에 부담스런 책일지는 몰라도 원효대사가 남긴 가장 한국적인 정서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정신을 되살려 읽어내면 한국의 고전을 읽는 맛도 색다르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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