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를 다시 만나다 - 윤동주 | 소강석 詩 평설 나무평론가선 11
김종회 지음 / 문학나무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인 윤동주를 '어떻게' 기억해야만 하는가? '시인'이라고 온국민이 떠올릴테지만, 그는 '살아생전'에 시집을 발표한 적이 없다. 그가 남긴 유일한 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는 그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체실험을 당하고 사망한 이후에 그가 쓴 시들을 모아서 펴낸 '유고시집'이다. 그렇게 우리에게 선보여진 '시인'으로서의 윤동주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는 아름답지만 유약한 청년으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시를 연구하고 분석한 이들은 윤동주를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을 펼친 '저항시인'이라고 말한다. 그가 일본유학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창씨개명'을 하고도 <참회록>이라는 시를 쓰며 배움이라는 핑계를 대고 '남의 나라'에 가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지만, 배움의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가슴 한 켠으로 '성씨'를 바꾼 아픔을 달랠 길이 없음을 토로하며, 비록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일본유학이지만, '일본제국의 개'가 되지는 않겠다는 굳은 다짐을 되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학시절에도 '교련과목'은 일부러 참석하지 않았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붙잡혀 온 죄목도 '독립운동'이었다고 밝혀졌다. 그렇게 윤동주는 한용운, 이육사, 이상화 등과 같은 '저항시인'으로 활약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윤동주를 일제를 향해 총이 아닌 펜을 든 '저항시인'으로만 기억하는 것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다시, 별 헤는 밤>이란 시집을 펴낸 '소강석'이란 목회자 겸 교육자 겸 현역시인이자, 윤동주 詩 연구가라는 분은 "시인은 예언자다"라고 말하면서 윤동주의 시는 '독립운동'만 한 것이 아니라 독립이후의 사해평등한 세상을 꿈꾼 '이상가'로 기억해야 마땅하다고 하였다. 그의 시에는 '저항의 불길' 너머에 '원수조차 사랑하라'는 그리스도교적인 '사랑'이 오롯이 담겨 있기 때문이란다. 그 어린 청년의 가슴속에 그토록 깊고 넓은 세계가 담기게 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이토록 감명 깊은 시를 써낸 시인이기에 우리 나라 사람뿐만 아니라 적국이었던 일본인도, 중국인도 윤동주 '기림시 비'를 제작해서 아낌없이 사랑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나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윤동주 시인은 과연 '한국사람'인가? 우리는 그를 '한국인'이라고 당연하게 여기지만, 그가 나고 자란 곳은 만주 길림성에 위치한 '용정(룡정)'이라는 곳이다. 현재는 중국 조선족자치지구에 속한 곳이고, 그곳에 '윤동주의 생가'를 비롯해서 윤동주에게 반해서 찾아오는 수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는 '관광지'로 거듭나 있는 상태이며, 중국에서는 그를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소개하며 자랑스럽게 '중국인'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소위 '동북공정'의 결과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우리는 맞닥뜨리게 되었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중국의 논리는 예상밖으로 견고하다. 중국은 '소수민족' 또한 자국의 영향 아래 놓인 '중국인'이므로, 조선족이 많이 살고 있는 '연변지역'도 당연히 중국의 경계 안에 있는 '중국영토'가 명백하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여기까지는 어느 나라나 내세우는 주장이기에 반박하기 힘들다. 그런데 중국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조선족'이 중국인이므로 '조선족의 문화'도 당연히 '중국문화'라는 억지주장을 펴고 있다. 이런 억지주장에 따르면 '한국의 문화'는 조선족의 문화와 일맥상통하므로 '대한민국의 전통문화, 모든 것'도 중국의 것이라는 논리를 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동북공정의 핵심'이기도 하다.

 

  허나 이런 논리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인지는 '같은 논리'로 한국내 '차이나타운'에 살고 있는 '화교'들도 한국 국적을 갖고 있으니 '화교의 문화'도 당연히 '한국의 문화'로 이해될 수 있고, '화교의 문화'가 '중국의 문화, 모든 것'과 일맥상통하니 중국의 모든 것은 자연스레 '대한민국의 것'에 속하게 된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서로 막무가내로 억지논리를 펴게 되면 종국에는 '힘의 대결'로 결판을 짓게 마련이다. 한마디로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대한민국이 '최강의 강대국'이 되어 중국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서 '정상화'를 시도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물론 이런 식의 해법은 단순명쾌해 보일 수는 있지만,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모순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정정당당한 외교력을 바탕으로 '대화'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억지를 부리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고 상호존중의 자세로 '협상의 테이블'에 마주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물론, 땅덩이는 커다래서 '대국'이라 부름직하지만, 자그마한 소갈머리를 갖고 있어 '소국'이라 불러도 시원치 않으나, 애매할 때는 대충 '중간값'을 부르는 것이 편하니 '중국'이라 불러 마땅한 애들과는 적당히 비위 맞춰주고 달래가면서 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그렇게 '한국 것' 빼앗으려다가 모든 중국인들이 '한복' 입고, '김치' 먹고, '한글'까지 쓰다가 끝내 '한국 것'만 남고 몽땅 다 사라지게 되고 말 것이라고 점잖게 타일러도 좋을 것이다.

 

  암튼, 윤동주 시인이 '독립운동'을 한 저항시인이었고, 한국적인 언어의 아름다움으로 한국을 넘어 세계인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울러 우리의 소중한 '윤동주'를 중국의 조선족이 낳은 유명인으로 전락하게 만들 수 없음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으면 바랄 것이 없겠다.

 

책드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