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만화 바이러스 세계사 - 모두가 쉽게 읽고 이해하는 무시무시한 전염병의 역사 3분 만화 세계사
사이레이 지음, 이서연 옮김 / 정민미디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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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인한 공포가 끝나지 않는 가운데 '판데믹 시대'는 막을 내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감염병 전문가들조차 '종식'이라는 말은 함부로 꺼내지 못할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가 열려버린 것처럼 이미 '인수공통 감염인자'가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과거에는 특정 동물을 감염시키던 '바이러스'는 다른 식물 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에게도 좀처럼 감염시킬 수 없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한 장소'에서 머물게 되면서 바이러스에게도 '돌연변이'가 생겨나는 것처럼 '이쪽'과 '저쪽'을 공통으로 감염시키는 고리를 형성시켰단 말이다. 예를 들어, 조류독감의 경우에도 조류에만 감염을 일으킬 뿐, 사람에게까지 감염을 일으키지 않았었는데, 조류를 '식용'으로 삼아 가까이 지내는 바람에 조류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감염을 일으키게 변형되었다는 말이다.

 

  따라서 앞으로 인류가 겪어야 할 감염병의 종류는 날로 늘어날 것이 분명하고, 인간이 이런 감염을 막고 극복하기 위해 '치료제'를 만들고, '백신'을 개발하는 것에는 한계를 보일 것이기 때문에 지금 '판데믹 상황'을 온 세계가 예의주시하는 것이고, 전문가들은 '백신'과 '치료제'를 완성하고 '면역체제'가 갖춰져 '엔데믹 시대'가 도래한다하더라도 긴장의 끈을 놓치 않고, 새로운 질병이 창궐하는 것을 막기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더라도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잘 알다시피, 엄청난 개발인력과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이기 이전에 '마스크'와 '손씻기' 같은 간단하고 저렴한 비용으로 감염질병의 창궐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실제로 코로나19 대유행 초기에 전세계적인 조치가 선제되었다면 이렇게까지 오래도록 '판데믹'을 맞고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마스크는 범죄자들의 전용도구라는 등, 손씻기를 게을리하는 등 감염의 전파를 확산시키는 무지한 행동으로 인해, 오래지 않아 전세계로 질병이 확산한 사태를 보고 있노라면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답답함의 최고봉은 단연, '가짜뉴스'다. 성수와 같은 '소금물'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박멸한다며 분무기로 입안에 뿌려서 감염을 더욱 부추기고, 요오드액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몰살시킨다는 전문가의 말(?)을 인용하며 콧구멍 주위에 바르고 외출하면 마스크를 쓸 필요도 없다는 허황된 말은 애교 수준으로 넘어갈 수 있을 지경이다. 더 심각한 것은 '코로나19'가 독감 수준이라면서 한 번 걸리고 낫게 되면 두 번 다시 걸리지 않는 '면역력'이 생긴다면서 코로나 확진자를 초대해 파티를 열고 광란의 시간을 함께 보내서 '집단감염'을 자처하는 꼬락서니를 볼작시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단언컨대, 절대로 그런 방식으로 이번 '판데믹'을 끝낼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자연면역'이 모든 상황을 종식시킬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도 결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변이'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백신'이나 '치료제'를 만들 여력을 절대 주지 않는다. 또한,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변이 뿐만 아니라 '감염력'과 '감염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인간이 무언가를 할 시간적 여유를 절대로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공포스럽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4차, 5차 백신이 아무런 효과를 보이지 않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마땅한 치료제가 없다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 때문이고 말이다.

 

  이런 상황에선 질병감염의 이유를 알고 대처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역사적인 감염병의 대유행과 극복과정'을 자세하게 풀어 놓은 것은 '신의 한 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아는 것이 힘'이라는 것을 실천한 셈이란 말이다. 인류는 천연두, 콜레라, 패스트, 에이즈, 홍역 등과 같은 감염병을 맞아 어떻게 대처를 했고, 어찌 극복했는지 잘 알아야만 한다. 그리고 정부가 질병감염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국민들에게 즉각적으로 알리고 대처방안을 신속하게 마련하고 시행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대한민국 정부'였다. 물론 국민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불가피한 조치도 포함되어 있었으나, 지금까지 그 어느 국가보다 '판데믹 상황'에서 잘 대처한 나라가 없을 정도다. 이는 전세계가 인정하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는 이 책의 저자가 살고 있는 '중국정부'도 알아야만 하는 불편한 진실이다. 자국에서 벌어진 심각한 '판데믹 상황'이 겁나 많은 중국인민들의 희생을 맞을 수밖에 없는지 감염전문가로서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이 책은 '중국인민들을 무지에서 깨어나게 해줄 목적'으로 출간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만화라는 재밌고 쉬운 형식으로 말이다. 그래야 '감염질병'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처해서 감염병의 확산을 막고, 피해도 줄이는 효과를 기대하고서 말이다.

 

  애초의 의도가 어떻든 이 책은 매우 유용하다. 인류는 이번 '판데믹 시대'를 맞아 큰 깨달음을 얻어야만 할 것이다.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함부로 파괴하는 짓이 감염병을 확산시키는 원인이라는 사실을 가장 먼저 깨달아야 하고, 지금 식용으로 삼고 있는 '닭, 소, 돼지, 양고기' 이외의 다른 동물을 식용으로 삼을 생각을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인수공통감염의 고리를 끊어 인류의 건강을 확보하는 차원에서라도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근절해야 할 사항이다. 아무리 전통음식문화라 할지라도 이제는 좀 멈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는 보장할 수 없을 것이다. 끝으로 '마스크'와 '손씻기'처럼 간단하게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모든 인류의 '상식'으로 만들어야 한다. 사후약방문 같은 조치는 아무 소용이 없다. 이젠 감염병이 창궐했다는 뉴스가 나오는 즉시 '가장 빠르고 가장 쉬운 방법'으로 대처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기 때문이다.

 

  Simple is Beautiful..이라는 말이 있다. 간단한 것이 최선이라는 뜻일 게다.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던 '감염병'을 막을 방법이 의외로 간단한 방법이었다는 것은 이제 놀라운 일도 아닐 것이다. 패스트는 쥐가, 에볼라는 침팬지가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콜레라는 '더러운 공기'가 아니라 '더러운 물'이 원인이라는 것을 알고 나자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이처럼 질병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힘'이라는 것은 진리가 되었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도 명심해야 하고 말이다. 그리고 간단해야 오래도록 기억하고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가 될 것이다.

 

  코로나19도 초기에 전세계가 마스크로 예방하고,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손씻기' 등 감염고리를 끊어냈다면 빠르게 극복했거나 피해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결말이 났을지도 모른다. 그저 '감기'일 뿐이라고, 조금 심한 '독감'에 불과하다고 방심하다가, 방치했고, 방조하다 더는 손을 쓸 수 없을 지경에 이르자 '각자도생'에 맡겨버린 결과가 '지금'인 것이다. 이젠 제발 '가짜뉴스'에 속지 말고, 감염병에 대한 정확한 상식을 늘려 가자. 이것만이 '엔데믹'으로 가는 지름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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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5 - 열도의 게임 본격 한중일 세계사 5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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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권에 이어, 다시 '일본'이다. 지난 3권에서는 일본이 '개항'을 하면서 겪은 혼란을 이야기했는데, 이번에는 개항으로 인한 일본 내부의 파장과 분열, 그리고 대혼란으로 이어지는 대환장 스토리를 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바로 '존왕양이'를 기치로 내건 지사(사무라이)들이 있다. 우리로 치면 벼슬도 없는 시골양반이나 뭣도 없이 기개만 높은 젊은 유생쯤으로 여기면 좋을 듯 싶지만, 이들이 들고 있는 것이 '붓'이 아니라 '칼'을 든 사무라이라는 점이 일본을 대혼란으로 치닫게 만든 근거로 작용하고 있으니 문제가 심각해진 셈이다. 일단 '존왕양이 지사'에 대한 탄생부터 이야기하련다.

 

  그들의 탄생은 지난 3권에서 자세히 다뤘다. 오랜 평화를 지속했던 일본이 빗장을 닫아 걸고 쇄국을 해왔던 것은 다들 알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오랜 평화는 묘한 '힘의 균형'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으니, 바로 일왕가(천황)와 쇼군가(정이대장군)라는 두 개의 큰 기둥이 일본의 정국을 떠받치고 있는 형국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왕은 일찍부터 권세를 잃고, 막부(사무라이 정부)가 실질적인 권력을 쥐고 있었다. 다시 말해, 권력의 명분은 일왕이, 권력의 실체는 막부가 갖고 있는 요상한 일이 벌어진 셈인데, 우리도 고려시대 무신정부가 들어서면서 고려왕을 대신해서 '최씨무신정부'가 60여년 간 실세 역할을 한 경험을 비춰볼 때 그다지 낯선 정부형태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이 요상한 까닭은 그런 형태로 230여 년, 아니 그 이상을 버텨왔기 때문이다. 거기다 실세인 '막부'도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여러 개의 '번(지방세력)'으로 나뉘어 '다이묘(지방영주)'가 각 지역을 다스리면서 막부에 충성을 하는 '봉건제 형태'로 지속해왔던 것이다. 따라서 왕이 있으나 '충성'은 막부의 수장인 '장군(쇼군)'에게 바치는 형태로 오랫동안 지속해왔단 말이다.

 

  일본이 이런 형태로 오래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유교의 영향'을 덜 받은 까닭이 크다. 같은 시기 중국과 한국의 여러 왕조가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며 '중앙집권제'가 일반적이었던 것과는 달리, 같은 '유교권 국가'였는데도, 일본은 명분과 권력의 향방이 서로 다른 체제로 지내왔던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오래 평화가 지속되다보니 '권력층의 분화'가 일어나게 될 수밖에 없게 되었으나, 섬나라 일본의 특성상 밖으로 분출하는 것보다 속으로 곪아가는 것을 택하는 방식이 더 자연스러웠던 관계로, 개항을 할 즈음의 '지사(志士)'들이 심취한 것은 바로 '학문'이었다. 다시 말해, 칼을 든 사무라이들이 칼질보다 학문을 파고 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파고든 학문은 크게 두 갈래였는데, 바로 '난학(네덜란드 상인들이 주로 전파한 서양학문)'과 '유학(전통적인 동양학문)'이었다.

 

  바로, 이 점을 주목하면서 일찍이 일본이 서양학문에 눈을 떠서 동양 최초로 '근대화'에 성공했다고 썰을 푸는 이들이 많지만, 이 당시에 '난학 열풍'이 분 것은 사실이지만, 극소수에 불과했고, 그나마 쇄국의 영향으로 외국인(네덜란드인은 제외)이 풍랑으로 일본해안에 떠밀려오면 사형을 시키던 상황에서 대놓고 '서양학문'을 공부하고 있다고 자랑할 사무라이들은 그닥 많지 않았었다. 그보다는 사상적으로 친숙했던 동양의 학문인 '유학'에 빠져드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던 모양이다. 헌데 '유학'이 강조하는 사상은 바로 '충(忠)'인 관계로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유학에 심취하면 할수록 묘한 괴리감에 빠져들게 된다. 다름 아니라, 왕에게 충성하는 것이 옳으냐, 장군에게 충성하는 것은 그르냐..하는 혼란 말이다.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본래 왕족과 귀족이 아닌 '평민계층'이었다. 이들 로열패밀리들이 서로 치고 받고 싸울 때 '무사'가 필요하니, 전쟁을 수행하고 자신을 보호할 칼 쓰는 '싸울아비('사무라이'의 어원이라고 주장하기도 함)' 필요했기에 칼 좀 쓰는 이들이 대거 '전문화 과정(?)'을 거쳐 '무사집단'을 형성하였고, 이들이 나중에 무능한 귀족을 썰어버리고, 자신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일왕을 '바지 임금'으로 만들고서 자신들이 권력행사를 해왔던 것이다. 기왕 권력쟁탈에 성공했으면 스스로 '왕좌'를 차지할 법도 하련만, 섬나라 사람들의 기질이 '조화(섭리)'를 깨는 것을 매우 기피한다고 해서 차마 '왕족'까지 갈아치우지는 못하고, 그렇게 간판은 '일왕(명분)'으로 내걸고서 실권은 '장군(실리)'이 챙기는 형태로 이어왔던 셈이다. 물론, 이를 반대하던 반란세력이 있어 여러 차례 '막부'를 치는 '반막부 세력'이 등장해서 일왕에게 충성을 바치는 일도 실행되곤 했지만, 번번히 실패를 하고 '반세력'을 처단했단다. 물론, '간판'은 내비두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막부'가 쇄국을 포기하고 '개항'을 선택하니, 뜻 있는 사무라이들이 들고 일어나게 되었다. 이른바 '존왕양이(나라에 충성하고 서양오랑캐를 무찌르자)'를 내세운 것이다. 이는 그만큼 '막부의 힘'이 약해지고 무력해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랫동안 평화를 구축해오면서 '막부'는 사실상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여러 번'들을 지배하는 구조를 이어왔는데, 페리제독의 함포 몇 방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백기를 든 막부에 대한 실망감이 이만저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못난 막부가 하는 짓이라고는 '권력다툼'과 '내부총질' 뿐이었고, 그로 인해 '민생경제'는 파탄에 이르고, 급기야 서양세력의 꼼수(환수이익)로 인해 '물가상승(인플레이션)'이 엄청나게 오르는 등 민심마저 '막부'를 등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물렁해진 '막부'를 향해 가장 먼저 칼을 빼든 것은 '다이묘(지방영주)'들이었다. 특히, 막부와 친하지 않았던 다이묘들, 다시 말해, 막부에게 멸시받던 지방영주들이 먼저 반기를 들어 막부를 공격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물렁해졌다고 해도 막부는 막부. 힘겨운 과정을 통해 '반막부 세력'을 처단하였지만, 이번엔 '일왕'쪽에서 막부를 공격했다. 이것이 좀 묘한데, 서양 세력의 힘이 무서워서, 일단 '개항'에 도장을 찍긴 했지만, 명목상으론 '일본의 대표'는 일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개항'을 결정한 막부는 '일왕'에게 사건의 일말을 보고하고 '도장'을 받기로 했건만, 돌연 '일왕'이 도장찍기를 거부하고 나선 것임. 이를 부추긴 세력이 바로 '존왕양이 지사'들이고 말이다. 모처럼 일본이 충성을 바쳐야 할 '방향성'을 제대로 잡긴 했지만, 그 방향이 하필이면 아무런 힘도 없는 '일왕가'였고, 당연히 실세였던 막부로서는 기가 찰 일이었다. 그리고 이런 '존왕양이 지사'들에게 기름을 부으며 불을 지핀 세력이 바로 '반막부파'였고 말이다.

 

  막부로서는 밖으론 서양세력의 압력에 쩔쩔 맸고, 안으론 '말 안 듣는 세력'이 생겨나 일본을 위기에서 구해낼 '핵심주체'인데도 이도저도 못하는 사단이 나고 만 셈이다. 이를 난제를 풀기 위해 꼼수를 생각해냈으니 바로 '공무합체(일왕가와 막부가가 서로 혼인을 해서 한 가족이 되는 것)'였다. 이는 '명분'과 '실세'가 한 몸이 되는 것이니, 어려운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하는 묘수가 될 수도 있었으나, 이는 물과 기름을 하나로 섞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식으로 물색없는 핑계만 대려는 꼼수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어찌 '개항'을 하면서 동시에 '양이(또는 쇄국)'를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일본은 늘 이런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는 일이 비일비재 했던지라 '핵심관계자'들은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물에 물 탄듯, 술에 물 탄듯 어물쩍 넘어가버린다.

 

  하지만 '존왕양이 지사'들은 이런 뜨뜻미지근한 해법에 가만 있지 않는다. 그들은 오로지 '충성'만을 외치며 일본의 자존심을 지키려 했고, 이런 똘끼를 보이는 시골무사들에게 일본의 민중은 외세에 꿀리지 않는 자긍심을 느끼며 지지의사를 보내게 된다. 여기에 똘끼로 똘똘 뭉친 두 집단이 있었으니 바로 '조슈(長州)'와 '사쓰마(薩摩)' 번이었다. 이 두 개의 번은 일찍부터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서양 학문과 무기를 배우고 익힌 자신감과 더불어 자신들이 일본의 마지막 충의지사라는 자부심까지 갖게 되자. 아주 지독한 '존왕양이'를 내세우며 일왕과 막부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안달을 냈다. 그로 인해 개항 이후 무역을 위해 일본 내에 들어온 외국인 관리와 상인을 향한 무차별 사냥(?)에 나설 정도였고, 막부쪽 사람이라면 암살도 자행하는 등 막가파식으로 '양이'를 실천하곤 했다.

 

  이렇게 실질적인 피해를 입은 영국과 프랑스, 미국 등등의 열강들은 군함을 보내 일본에 실력행사를 하려 했고, 막부는 이런 분란이 일본 전역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어디까지나 '조슈와 사쓰마'의 독단적인 행동이라고 선을 긋고, 열강들이 '그쪽'만 공격하는 것에 '이면합의'까지 하고 말았으니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만 셈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아편전쟁'에서 확인되었 듯이 일본이 자력으로 서양함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둘 수 없음을 직시한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뜻밖에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음에도 서양함대를 상대로 꽤나 분전했던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함대를 보내 조슈와 사쓰마를 공격해서 상당한 피해를 준 것은 사실이지만, 영국과 프랑스의 함대도 큰 피해를 보았고, 특히, 조슈 번은 좁다란 해로를 막아 서양배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데 성공함으로써 완전한 패배는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서양도 청 왕조와는 달리 큰 이득이 없는 일본을 상대로 전쟁을 확대하는 뜻이 없었기에 이쯤해서 물러나는 것(물론, 막부로부터 엄청난 배상금은 챙기고서)으로 마무리하였다.

 

  이제 억울한 것은 일왕에게 충성을 받쳤지만 일왕이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은 것이었다. 이에 조슈 번은 일왕이 머무는 '교토(京)'로 억울한 사연을 전하러 군대를 보내고, 막부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교토로 오는 길을 막는다. 물론 실질적인 군대를 보낸 것은 '친막부파'였던 지방영주들이었고, 사쓰마 번의 영주는 이번 전쟁을 치루면서 막부가 옳았음을 지지하며 조슈 번에게 칼을 겨누게 되니, 홀로 남은 조슈 번은 외로운 전투를 벌이다 전멸에 가까운 큰 피해를 받고 본진으로 후퇴를 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님을 알리는 듯, 전투중에 일어난 화재로 인해 일왕이 머무는 교토 전체가 불타는 '교토 대화재'로 번지니, 앞으로의 일본 향방은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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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4 - 태평천국 Downfall 본격 한중일 세계사 4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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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권에 이어 다시 '태평천국'이다. 각설하고, 태평천국 운동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에 대해서 살펴보려 한다. 서구열강의 힘 앞에서 무력하기만 했던 '청 왕조'가 무너져가는 와중에 안팎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사상을 내세우며 등장한 '태평천국 운동'은 끝내 청 왕조의 승리로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진정한 승리는 아니었다. 아편은 여전히 중국을 병들게 만들고 있었고, 관료주의의 부정부패는 여전했으며, 외부의 침략에 무력한 대응으로 백성들의 삶은 나락을 전전하게 만들고 삶의 희망을 꺾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나 4억 인구의 청 왕조에서 3천 만명이 때죽음 당하고 말았으니 피비린내 나는 전장속에서 백성들의 삶이 비참했을지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1851년부터 1864년까지 무려 14년 동안에 벌어진 비극이다. 전체인구의 약 7%의 피를 부른 이 사건을 도대체 어떻게 바라봐야만 하는 것일까? 주목해야 할 점은 '사이비교주'에게 속아 피해를 당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오랜 기간이었고, 너무나도 많은 희생이었다. 그렇기에 '태평천국 운동'을 그저 그런 난리로 치부하기엔 궁금증을 자아내는 점이 너무나도 많다. 먼저 태평천국 운동이 내세웠던 기치는 '반봉건', '반외세'였다. 아편전쟁의 패배로 청 왕조의 무능력이 전세계에 널리 알려진 상황에서 '새로운 세력의 등장'은 자연스러운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것이 '하느님의 둘째 아들이 중국인이고, 그가 바로 홍수전이다'라는 사이비종교의 냄새가 물씬 나더라도, 민생을 우선으로 삼고, 남녀평등을 주장했으며, 사회부조리한 정책(변발, 전족 금지 등)에 반대를 분명히 하면서 교인들끼리 서로 궁휼히 여기는 태평천국의 사상은 '초기 사회주의'에 버금갈 정도로 혁신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마르크스조차 초기에는 '태평천국 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정도였다. 그렇기에 '태평천국 운동'은 중국사회에 보기 드문 '개혁운동'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그러나 남경(난징)을 수도로 삼고 반군을 조성해 청 왕조의 수도인 북경(베이징)을 공격하면서부터 태평천국 운동은 '초심'을 잃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북경 공략이 예상과 달리 실패하면서 운동의 핵심인사들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이기 시작했고, 급기야 지도부의 '권력다툼'이 심화되면서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일조차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청 왕조는 애로우 사건이 원인이 되어 '2차 아편전쟁'에서 패배하며 무능함을 여전히 증명하고 있었지만, 태평천국 운동은 내부갈등을 겪으며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태평천국 운동의 영향력은 건재했던지라 장강(양쯔강) 이남에서 보여주는 위력은 대단했고, 중국대륙의 남동부를 거의 장악하기에 이른다. 서구열강에게도 못난 모습을 보이던 '청 왕조'는 태평천국 세력과의 대결에서도 여전히 못나게만 굴 뿐이었다.

 

  이런 혼란을 틈타 '태평천국 세력'은 힘을 다시 모았고, 다시금 세력확장을 도모하며 내부결속을 다졌고, 동서 양쪽 방향으로 정벌을 떠나게 된다. 이 와중에 '청 왕조'는 영국, 프랑스, 미국, 러시아에게 밀려 '북경 함락'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직면하고, 황제(함풍제)가 열하로 피난을 갔으며, 보물창고인 '원명원'이 죄다 털리고 방화로 인해 전부 불타버리는 웃지 못할 비극이 벌어진다. 청 왕조가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데도 '태평천국 운동'은 왜 성공하지 못했을까? 그건 서양세력이 원치 않는 결과였기 때문이다.

 

  영국을 비롯한 열강들의 목적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차지해 무역으로 이득을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 나게 '청 왕조'를 두들겨(?) 유리한 조약(!)을 얻어냈는데, 이것이 새로운 태평천국 세력의 손을 들어주게 되는 꼴이 된다면, 그들의 이득에 큰 손실이 날 것을 걱정했던 것이다. 그래서 북경을 한창 두들겨패고 있는 와중에도 상해(상하이)쪽에서는 청 왕조를 도와 '태평천국 세력'과 전쟁을 불사한 것이다. 여기서 서구열강들의 속셈이 뻔히 드러나게 된 셈이다. 그들은 '문명개화'를 목표로 전쟁도 불사한다고 하지만, 개뿔,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서 등쳐먹고 빨대 꽂았을 뿐이었던 것이다. 결국, 중국은 스스로 '근대화의 문'을 열 수도 있었던 '태평천국 운동'을 그저그런 난리로 치부하며 '태평천국의 난'으로 확정짓고 마무리 되는 수순을 밟게 되었다.

 

  그럼에도 14년간이나 태평천국 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져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중국민중의 각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청 왕조의 지배 아래에서는 살 수 없겠다는 깨우침이 '태평천국 운동'을 지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되었고, 이쪽도 저쪽도 살 수 없겠다 싶은 민중들은 비록 '노예 같은 삶'일지라도 외국으로 발길을 돌려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구는 쪽으로 결론을 내었기 때문이다. 마침, 서구열강에서도 수많은 인력이 필요(특히, 미국)했던지라 중국인의 해외진출을 돕는 방향으로 청 왕조를 압박했고, 이때를 계기로 전세계로 뻗어간 중국인들은 '차이나타운'을 형성하며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태평천국 운동' 때문에 이 모든 결과를 도출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다른 이견들이 많다. 그 덕분에 '태평천국 운동'에 대한 평가 또한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고 말이다. 너무나도 많은 피를 흘린 결과치고는 좀 허무한 감이 없지 않지만, 그에 대한 연구가 아직도 '진행중'이라는 것으로 일단락 지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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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선생의 시끌벅적 과학교실 11 : 태양계 - 태양계의 끝엔 무엇이 있을까? 용선생의 시끌벅적 과학교실 11
사회평론 과학교육연구소 지음, 김인하 외 그림, 맹승호 감수, 이우일 캐릭터 / 사회평론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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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선생 시리즈를 처음 읽었다. 그간 '한국사', '세계사'도 출간했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정작 읽지는 않았다. 내가 그쪽 분야는 꽉 잡고 있기에 책표지만 보아도 무슨 내용인지 감이 잡혔기..쿨럭쿨럭. 암튼 '누리호 발사 소식'을 접하고서 아이들에게 '우주'에 관련된 논술책을 고르다 이 책이 적당하다 생각되어 선정해보았다. 물론, '로켓'에 관한 책을 고르는 것이 가장 좋을 테지만, 그쪽 분야가 워낙 난해하고, 관력책도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에 '과학초보자'를 위해서 선정하게 되었다.

 

  책의 내용은 '초등교과 5학년'와 '중등 2, 3학년'에 수록된 교과서 내용을 중요내용으로 선별해 '태양계에 관한 기본 상식'을 소개하고 있다. 이런 책을 읽을 때의 관건은 '교과서의 내용'을 얼마나 잘 간추려 깔끔하게 정리했느냐를 으뜸으로 삼고, 책에 '정리된 내용'이 얼마나 눈에 잘 들어오느냐를 마무리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어차피 내용은 '교과서'나 웬만한 '참고서'에 다 나와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다 알고 있는 내용'인데, 얼마나 쉽고 재미나며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정도로 '인상적'으로 구성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류의 책으로 '학습만화'인 <WHY?> 시리즈가 이미 있다. 그리고 학습만화가 훨씬 더 쉽고, 재미나며, '인상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학습만화'가 가지고 있는 한계도 분명히 있다. 그건 아이들이 '만화형식'에 꽂혀서 정작 '학습지식'을 배우고 익히는데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하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즉, 만화속의 주인공이 엉뚱발랄한 행동으로 배꼽을 빼놓는 재미에 푹 빠져서 가장 중요한 '교과학습지식'을 쌓는데 소홀히 한다는 단점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그런 재미와 함께 학습적인 내용도 잘 익히는 까닭에 아무 상관 없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만화적인 재미'는 덜 하지만, '교과지식'을 심층적으로 집중할 수 있도록 구성된 '용선생 시리즈'가 훨 낫다는 평가를 내릴 수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좀 밋밋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좀 '교과서스러운 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알찬 느낌'은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었다. 꼭 알아야 할 지식을 바탕으로 '잡다한 지식'은 쏙 빼버려서 매우 깔끔하고 '본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내용 구성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과학지식책들 가운데에는 '여백의 미'를 살리지 못하고 눈을 어따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빼곡하게 채워넣기 급급한 책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책들이 진짜 알짜배기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정작 그 책을 읽어야 할 초중등생은 책을 펼치자 마자 졸음이 쏟아지는 지루한 책이기 십상이라 좋은 책은 결코 아닐 것이다.

 

  인류가 쏘아올린 탐사선이 '태양계의 끝자락'에 도착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우주'에 대한 관심을 쏟아야 할 때가 되었다. 더구나 대한민국이 독자적으로 우주발사체(누리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했다는 점에서 '우주강국의 시발점'이 되는 역사적인 순간이니 조금 더 관심을 두어야 마땅할 것이다. 누리호 발사 성공이 갖는 의미는 이제 우리 손으로 '인공위성'을 마음껏 쏘아올릴 수 있다는 점이고, 국제적인 달탐사 프로젝트에 당당한 일원으로 참가함은 물론, 향후 달에 있는 자원(헬륨-3 등)을 선점하는데 유리한 고지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우주강국'으로 발돋움해야만 한다. 이는 마치 '대항해시대'에 미지의 대륙에 누가 먼저 깃발을 꽂느냐 꽂히느냐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볼작시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핑크빛일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서구열강들의 경쟁이 해피엔딩으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우리는 적어도 이런 식으로 '우주개발'에 뛰어들면 안 된다. 어디까지나 '인류공영'을 이바지하기 위한 선도국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대항해시대의 결말이 끝내 세계대전이었던 것과는 달리 '우주개발의 결말'이 우주전쟁의 서막이 되어서는 곤란하단 말이다. 대한민국이 이런 전쟁에 휘말리는 것은 더더군다나 노땡큐고 말이다. 우리는 '문화강국'으로 세계를 이끌어나가는 모범국으로 성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모든 면에서 '강대국'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아이들이 읽는 책에서는 꿈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암기할 사항이 아니라 원대한 포부를 담는 '그릇 같은 책'이어야 하고 말이다. 그리고 나 같은 선생이 해야 할 일은 책 속에서 그 '꿈의 조각'을 찾아내어 아이들이 마음껏 꿈을 꿀 수 있게 펼쳐 보여줘야 하고 말이다. 이 세상엔 그런 선생님이 참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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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코노미 - 돈도 벌고 세상도 바꾸는 밀레니얼 경제 공식
크레이그 킬버거.홀리 브랜슨.마크 킬버거 지음, 이영진 옮김 / 한빛비즈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착한 일을 했는데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면 누구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자선사업'을 말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자선사업의 두 얼굴'을 종종 맞대곤 하기 때문에 덜컥 의심부터 들기도 하지만, '오프라 윈프리'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달라질 것이다. 선한 일을 하면서 유명세와 돈방석에 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것이 바로 착한 기업의 대명사인 '위코노미'가 되겠다.

 

  위코노미가 말하는 것은 명확하다. 비즈니스에 성공하기 위해선 '사회적 대의'를 도모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경제, 환경에 영향을 받고 살고 있으며 지독한 가난과 열악한 환경에 처한 이웃을 위해 사회복지를 강력하게 추진해야 할 '사명감'을 느끼곤 한다. 그런데도 그런 사명감을 느끼면서도 '어찌 해야 할 바'를 몰라 어쩔 줄을 모르기 일쑤다. 심지어 '가난은 나랏님도 못 고친다'라는 부자들의 어처구니 없는 변명에 휘둘려서 가난을 '게으름병'으로 치부하며 나몰라라 방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조금만 도와주면 가난을 스스로 물리치고 일어나 건강하고 건전한 사회 일원으로 얼마든지 복귀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렇다. 문제는 도와주고 싶어도 적절한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적절한 도움이 되고자 '금전적인 기부'를 가장 손쉽게 접하기 일쑤지만, 이 방법은 그다지 효율적이지도, 실천적이지도 못한 방법이다. 또한 대부분의 자선단체들도 적극적 활동을 하기보다 소극적으로 '기부'만 받아 '물품'을 전달하고 '사진'을 찍어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것에만 집중하기 마련이다. 정작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지도 않고서 말이다. 이를 테면, 연말이면 '연탄'을 배달하며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라는 정성을 아끼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당장의 급한 불은 끌 수 있다. 허나 방바닥만 따뜻하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추운 날씨에 오그라든 손발은 녹일 수 있을지언정 매서운 칼바람에 꼭 닫아버린 마음의 문은 열지 못하고 '사회일원'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소일거리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것에 그치고 말 뿐이다. 이래서는 제대로 된 자선사업이라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보다는 가난으로 내몰린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사람 사는 동네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골목골목에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들리게 해야 하고, 하루 일과에 지친 아빠엄마들이 아늑한 집에 돌아와 함께 저녁을 준비하며 오순도순 살아가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동네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자영업자들이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손님들로 북적거리는 마을로 만들어야 한다. 이런 찐도움이 되는 사업을 벌여야 진짜 자선사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차가운 달동네로 방치하면서 연탄 몇백 장 쟁여 놓는다고 해결될 사업이 아닌 것이다.

 

  이 책에는 유명한 자선사업가와 자선기업들을 소개하고 있다. 일일이 이름을 거론할 필요도 없다. 그보다는 그들이 하는 '적극적인 자선활동'에 주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하는 공통적인 활동은 바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저소득층이 살고 있는 열악한 환경에 '학교 짓기'와 '수도관 사업' 등과 같은 일을 벌이는 것이다. 학교를 짓는 것은 개발도상국 이하의 나라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이 '아동 노동착취'에 심하게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은 '가난'이라는 굴레에 갇혀 미래를 빼앗긴 채, 당장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최전선'으로 내몰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10대 이전에 '밥벌이'라는 명목으로 구걸을 하거나 저임금 노동현장에 강제로 들어가거나 힘든 농사를 해야만 하는 처지로 전락하고 만다. '학교에 갈 나이'가 되어도 이런저런 이유로 배우지 못하고, 배움이 없기에 성인이 되어서도 가난한 농민이나 노동자가 되어 가난을 되물림하는 악순환에 빠져버리고 만다. 그래서 '무료교육'이 절실하다. 그리고 자녀가 학교를 졸업하면 온가족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 다름 아닌 자기 나라와 자기 사회가 말이다. 그래야 온나라가 빈곤을 떨치고 경제성장을 이루어 먹고 살만한 나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가난한 나라에 '인재'가 얼마나 소중한 자원인지는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또한, 식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도 저소득국가에서는 '마실 물'이 없어서 어린아이들이 죽어가는 안타까운 현실이 펼쳐지곤 한다. 그리고 어른들이 돈벌이를 하러 나가면 아이들은 '마실 물'을 길러오기 위해 하루에 수십 킬로를 물통을 이고지고 밀고끌고가며 몇 번이고 왕복해야 한다. 그러니 '학교'는 고사하고 집에서도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없는 것이다. 그보다 더 절실한 문제는 '건강'을 위해서 깨끗한 물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물부족국가에서는 우물을 파기 위해서 땅속 깊이 파고들어가야 하는 어려움을 공통적으로 겪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땅속 깊은 곳의 지하수까지 '수도관'을 뚫는 기계가 절실한데, 그 기계를 마련하지 못해 마실 물을 구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펼쳐지곤 한다. 그래서 자선사업 가운데 '수도관 사업'이 많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 자선사업이 집중하고 있는 것은 '여성인권'이다.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에 비해서 더욱더 열악한 환경에 처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여자아이들은 어린 나이부터 집안일을 비롯해서 농사일, 심지어 공장노동자가 되어 '노동착취'를 쉽게 당한다. 또한, 열악한 환경에서는 '성착취'도 종종 벌어지곤 하는데, 10살도 안 된 '어린 신부'가 아버지 손에 이끌려 늙은이들의 첩 가운데 한 명으로 팔려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또, 그렇게 길들여진(?) 여자아이들이 엄마가 되어서 자신의 딸이 헐값에 노동을 착취 당하고, 성노예(!)로 전락하는 것을 뜬눈으로 지켜봐야 하는 지옥 같은 현실 앞에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여성인권'이 유린되는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여자아이'에게 도움을 손길을 지속적으로 주는 것이 자선사업이 해야 할 '일순위'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여성의 경제독립'이 절실하다. 여성도 얼마든지 경제적 활동을 통해서 자기 인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만 한다. 그러지 못한 사회에서는 '발전가능성'조차 없으며, 나아가 '정상국가'로 발돋움할 수조차 없게 된다.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 정권의 손아귀로 되돌아가자 벌어진 참혹한 현실이 그것이다. 여성에게 족쇄를 채우고 강요를 일삼는 국가는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제대로 생길 수 없는 것이다. '절반의 엔진'만으로 어떻게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가능하단 말인가. 양성평등은 선진국, 나아가 선도국가가 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것이다.

 

  그밖에도 자선기업이 할 일은 많다.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환경을 되살리는 일이라든지, 자연재해로 일순간에 터전을 잃어버린 국가나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는 일, 누구에게나 부여받은 평등할 권리를 빼앗긴 채 '소수자'로 전락해 온갖 사회적 불평등을 한몸으로 겪고 있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 등등 '할 일은 많고 일손은 부족한 것'이 자선사업의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물론,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일에 앞장서는 것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모든 자선사업가가 '오프라 윈프리'가 될 필요는 없다. 남을 돕고는 싶은데 천성적으로 남 앞에 나서는 것을 힘들어 하는 이들도 얼마든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착한 일에 많고 적음이 따로 없고, 적극적이냐 소극적이냐도 따질 것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착한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멋진 '자선사업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쳐보이는 것으로 남을 도울 수 있다. 연예인들의 '재능기부'도 바로 그런 일환의 하나다. 자신의 재주를 '많은 이들과 나누려는 마음'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가능할 것이다. 기부금을 전달하는 방법도 아주 좋은 일이다. 자선사업에는 항상 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저 돈만 전달하는 것으로 그치고 나면 아무런 보람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도움을 주고 싶은 이들에게 분명히 전달될 수 있도록 '확실한 기부'를 해야 한다. 이를 테면, 생리대가 없어서 신발깔창을 쓴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도움을 주고 싶다면 그 소녀에게 확실히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자선단체를 찾아 '정확하게' 기부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왜냐면 기부에는 함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길거리에서 화상 자국을 보여주며 구걸하는 어린아이에게 돈을 쥐어주면 안 된다. 그 돈이 그 어린아이에게 쓰이기보다는 그 아이에게 일부러 화상을 입혀 '앵벌이' 시키는 나쁜놈들에게 선량한 마음을 이용당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기부금만 전달하는 자선사업도 마찬가지다. 정작 '그 자선기업'이 기부금을 대신 모아 정확한 용도에 맞게 쓰이고 있는지 '투명도'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맹목적인 기부만으론 '사기' 당하기 딱 좋다.

 

  우리 나라에서도 '형제복지원' 같은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었다. 거리의 부랑아를 거두어 건전한 사회일꾼으로 만들어 사회에 환원시킨다는 명목으로 벌어진 '인권유린'과 '노동착취'로 수십 년간 노예처럼 부려진 끔찍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런 '형제복지원'이 정부의 지원과 수많은 후원가들의 기부금마저 착복한 사실이 밝혀져 우리 사회의 경종을 울렸지만, 악마 같은 원장은 구속은커녕 법적처벌도 미미하게 받은 뒤 그 돈으로 호의호식하며 살았더라는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지금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것 같지만 지하철역 앞에서 하루종일 엎드린 채 구걸을 하는 불쌍한 사람도 '나쁜놈들'에게 사지를 절단 당하고 새벽에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는 '기업형 구걸꾼'으로 이용당한 나쁜 사례다. 장님 행세를 하며 구걸한 이들도 사기꾼들이고 말이다.

 

  이처럼 선량한 마음이 상처 받지 않고, 사기 당하지 않으려면 '자선사업'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착한 기업이 하는 일에 주목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도 알아야 하며, 자선사업가로 활동하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런 사람들을 정부가 알아서 척척 도와주면 좋으련만, 정부를 꾸려나가는 돈은 '세금'으로 쓰이는 탓에 특정한 사람에게만 세금을 펑펑 쓴다면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자선사업가가 필요한 법이다. 그렇게 쓰이는 세금이 절대 아까운 돈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일도 자선사업가가 할 일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부자에게 쏠리는 돈이 가난한 이들에게 적재적소에 쓰이는 것이 우리 사회를 건전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분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만인 분들이 있다. 세금을 많이 내야만 하는 부자들의 볼멘소리 말이다. 그들은 권력을 이용해서라도 세금을 덜 내고 '자신들의 몫'이 더 많이 돌아가도록 법마저 바꾸려고 지랄발광을 한다. 법인세 감면, 상속세 인하 따위 말이다. 종부세는 더더군다나 내기 싫은지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안 내겠다는 각오가 정말 대단하다. 우리 나라에도 "세금을 더 많이 거둬달라"고 외치는 착한 부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분들이 이 책을 꼭 읽어줬으면 좋겠다. 그분들이 착해지면 정말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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