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사라진 날 저학년 읽기대장
고정욱 지음, 서현 그림 / 한솔수북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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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들에겐 '상상력'을 자극하는 책이 제격이다. 그래서 '교훈'보다는 '재미'를 앞세운 책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 '책시장'은..특히, '어린이책시장'은 오직 재미만을 추구한 책이 많이 없다. 거의 대부분이 '교훈적인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미성숙한 인격체'라는 편견이 가득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우리 나라 어른들은 어린이들에게 '가르치길' 좋아해서 그런 것일까? 물론 어린이들에게 해를 끼치는 '비교육적인 요소들'은 빼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건전'해야 하고 '도덕'에 위배되지 않아야 한단 말이다. 외국의 '어린이책' 가운데에는 '재미'를 추구하다보니 위험천만한 장난질을 저지르기도 하고, 귀신과 괴물 등 상상력의 '도'를 넘어서기도 하며, 어린이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폭력'을 다룬 내용도 심심찮게 보이는데, 그런 것들은 애초에 '가져오질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 <책이 사라진 날>은 재미보다는 '교훈'적인 내용에 치중하여서 좀 안타까운 어린이책이다. 그래도 '비교육적인 요소'는 쏙 빼놓았기에 비교적 '건전한 도서'라고 볼 수 있다. 줄거리도 너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해서 '저학년 어린이'도 어렵지 않게 책을 읽고 주제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다. 그렇더라도 아무리 저학년을 대상으로 삼았더래도 '너무 뻔한 내용'인 것은 우리 아이들에게 '상상력'을 펼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격이 될테니, 조금쯤은 심오한 철학이야기를 담았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줄거리는 느닷없는 외계인의 침공으로 시작하지만, 그 때문에 세상의 모든 책들을 빼앗겨 버린다는 '설정'은 탁월했다. 그래서 온세계의 아이들은 외계인 덕분에 하루종일 놀기만 하면 된다. 학교를 갈 필요도 없고, 책을 읽을 필요도 없다. 오히려 외계인의 명령을 어기고 '책'을 읽다가 들키는 날엔 외계인 광선총에 맞아 '미생물'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니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그저 놀기만 하면 된다. 정말 아이들이 원하는 세상이 아닐까?

  그런데 '놀기'보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두 명의 어린이가 있다. 그 어린이들은 세종대왕처럼 책을 다 빼앗긴 뒤에 병풍 뒤에 남았던 '책 한 권'을 몹시 바랐다. 그래서 외계인들이 책을 뺏아다가 쌓아둔 '책산'을 향해 몰래 잠입해 갔다. 그리고 감시망이 소홀한 틈을 타서 '책 한 권씩' 빼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날마다 몰래몰래 책을 읽다가 '책산'의 내부를 마치 피라미드 속의 미로처럼 파고 들어가 손전등에 의지해 책을 무지하게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엔 외계인들에게 발각이 되고 두 명의 어린이는 '미생물'이 될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게 되는데...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두 어린이는 책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살아나게 된다. 그리고 외계인들도 책속의 '지식' 덕분에 고향별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았다면서 끝을 맺는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책속에 무슨 비밀이 담겨 있었길래 지구인과 외계인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게 된 걸까?

  아이들은 '책읽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림책과 동화책을 좋아하던 시절이 지나고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좀 더 어려운 책', '좀 더 글밥이 많은 책'으로 확장해가며 읽으려 들지 않는다. 왜냐면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 머리가 커지게 되면 '책 읽으라는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억지로 읽기는 하지만, 결국엔 '만화책'과 '게임'에 푹 빠지고 만다. 무언가 '징검다리'가 필요하단 말이다. 그림책과 동화책은 정말 재밌다. 하지만 10살(초등3학년쯤)이 넘어가면 점점 '글밥'이 많은 책을 읽으라는 강요가 시작되는데, 이때 그 많은 글밥이 '무슨 내용'이 담겨 있고, '어떻게 이해 해야' 하는지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으면 '책읽기'는 엄청난 스트레스 유발 원인이 되고 만다. 그래서 책읽기를 할 때는 '선생님'과 '학부모'의 역할이 무척이나 중요하다.

  이렇게 초등어린이들에게 적절한 '독서교육'을 시키기 위해선 선생님도 책을 읽어야 하고, 학부모님들도 부지런히 책을 읽어줘야 한다. 그래야 '같은 책'을 읽고 공감하기도 하고, 토론(이야기)을 나눌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때에는 절대로 '교훈'을 억지로 주입하려 들거나, '정답'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모든 것이 '정답'이기 때문이다. 딴에는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책에 관한 이야기가 바로 '상상력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아이들의 표현에 '맞장구'를 쳐주기 바란다. 어른들의 관점에서 "과학적으로 어쩌구~", "현실적으로 저쩌구~"라는 토씨는 절대로 하지 말길 바란다. 그저 아이들의 상상력에 함께 뛰어들고, 흠뻑 젖어들며 재미난 이야기에 빠져들길 바란다.

  물론 '시간'을 정해놓는 것은 좋다. 10분, 30분 동안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쳤으면 '일상'으로 되돌아와야 한다는 규칙을 정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경우에 따라서 '상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구분이 되지 않아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상상'보다는 '현실'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고, 그 경계에 '문'을 만들어서 언제든 스스로 드나들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이는 '놀이'를 할 때나 '게임'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시간 정하기'는 그래서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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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1 : 세계편 퇴마록
이우혁 지음 / 엘릭시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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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퇴마록>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세계편'일 것이다. 세계관이 확장되면서 '퇴마사'들의 캐릭터도 좀 더 분명해졌고, '블랙서클'이라는 대립적인 세력이 등장해서 '퇴마사'들의 활약이 더욱 돋보여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좀비나 흡혈귀, 늑대인간 등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서양귀신'들이 총출동을 하니 더욱 즐거울 수밖에 없다. 글쓴이가 밝히길 '들녘본'과는 다르게 '엘릭시르본'에서는 후반부의 이야기를 새로 썼다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된다.

  <퇴마록 세계편 1>에는 좀비가 등장하는 '비어 있는 관', 유체이탈 능력자가 등장하는 '그 남자는 매일 밤 나를 부른다', 그리고 세계편에서 가장 화려한 연출을 장식하는 '세크메트의 분노'가 실려 있다. '비어 있는 관'에서 처음 '퇴마사'들은 '블랙서클'과 만나게 된다. 이들을 '블랙서클'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아직 밝혀지지 않지만, 그 멤버에 속한 인물이 죽음에 이르게 되면 '검은 회오리'가 발생하면서 영혼도 남기지 않고 빨아들이고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블랙서클'에 관한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아서 미스테리하다. 1편에서는 좀비를 다루는 호웅간이 등장하는데, 요즘 우리가 너무나도 익숙하게 알고 있는 좀비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원래 '부두교'에서 조종하는 좀비는 '살아있는 시체'가 아니다. 그보다는 특정한 약물에 취해서 '죽은 것'처럼 보일 뿐이다. 얼마나 죽은 듯 싶은지 의사조차 '사망선고'를 할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호웅간에 의해 좀비가 된 사람은 '생체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하루종일 일을 해도 전혀 피곤해하지 않는 노동자로 부려 먹는다고 한다. 아직 살아있기에 '음식'도 먹고, '잠'도 자지만, 의사소통은 거의 불가능하고, 오직 '주술사'의 명령에만 복종하기 때문에 힘든 노동에 부려먹기 딱 좋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미 '죽은 시체'를 되살려내서 부려먹는 악질적인 호웅간도 있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죽은 시체'를 되살려낸 경우엔 살점이 썩어들어가고 뼈가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는데, 그럼에도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이렇게 죽은 시체가 아니라 살아있는 좀비의 경우에는 '소금'을 아주 미량이라도 섭취하게 되면 주술에서 풀려나 정신을 되찾는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도 부두교가 활발한 '아이티'에서는 정신적으로 이상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소금을 일부러 먹이는 관습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암튼, '퇴마사'들은 이번 편에서 좀비들과 대환장 결투를 벌이며 '블랙서클'이란 조직에 대해 처음 인지하게 되고, 이렇게 거대한 검은 세력과 맞서기 위해서 '검사출신'인 백호라는 인물과 조우하게 된다. 이 인물은 향후 '말세편'까지 퇴마사들과 함께 활동을 하면서 엄청난 조력자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뒤이은 '그 남자는 매일 밤 나를 부른다'에서는 유체이탈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능력자가 등장하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 바로 '언어학의 천재, 서연희'가 퇴마사들과 합류하기 때문이다. 퇴마사들이 세계 여행(?)을 하는데 있어 절대적인 캐릭터인데, '12개 국어'에 능통한 언어천재지만 퇴마사들과는 달리 '영적 능력'이 전혀 없는 평범한 일반인이다. 하지만 아무런 영능력이 없지만, 두 가지 특기를 발휘할 수 있어서 퇴마사들의 '짐'이 되지는 않는다. 하나는 '심연의 눈'이라는 능력이다. 특히, 블랙서클의 일원에게는 톡톡히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데, 바로 '연희의 눈'과 마주치게 되면 '닫혔던 마음'이 활짝 열려 버리는 효과를 낳는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승희의 투시력(독심술,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게 되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연희의 심연의 눈이 활약을 하게 되면서 당당하게 '퇴마사들과 함께 하는 동료'가 된다. 다른 하나는 '염체가 담긴 낡은 구리십자가'다. 염체는 '사념(생각)'에 의해서 만들어지는데, 소설속이 아닌 '실제'로도 가능한 능력이라고 한다. 그래서 집념이 가득한 '생각'을 담아 물체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도 있고, 살아있는 생명체와 똑같은 존재를 만들어서 조종할 수도 있다고 한다. 연희가 갖고 있는 구리십자가에 바로 그 '염체'가 담긴 것이고, 그 염체가 '연희의 수호신' 역할을 하며 위기 때마다 도움을 주곤 한다. 그런데 그 '염체'는 바로 블랙서클의 일원이었던 어떤 남자가 전해준 것이다. 처음 등장했을 땐 악당으로 등장했으나 연희의 '심연의 눈'과 마주한 다음에는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선한 마음(좋은 추억)'만을 담은 염체를 만들어 자신의 유일한 유품이었던 '닳아빠진 구리십자가'에 담아서 연희에게 '마음의 정표'로 전해준 것이다.

  마지막 이야기인 '세크메트의 분노'에서는 다시 한 번 퇴마사들이 총출동을 하며 '고대 이집트 유물'을 둘러싼 비밀을 풀어내고, 깨어나면 인간에 대한 증오가 분노로 온 나라를 피바다로 만들어버린다는 '세크메트'를 깨우려는 블랙서클과 이를 막으려는 퇴마사들 간에 엄청난 대결이 펼쳐진다. 그런데 그 대결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세크메트의 심장'에서 나온 '세크메트의 눈'이란 보석이다. 이 빨간 보석은 길쭉한 반달모양인데 길쭉한 방향으로 둘로 쪼개져 있다. 그렇게 나뉜 두 조각을 하나씩 서로 다른 사람이 손에 쥐고 있으면, '서로의 생각'을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나눌 수 있게 된다. 이를 테면, '텔레파시' 같은 능력인데, '정신적인 능력'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아무 조건도 없이 거리에도 구애를 받지 않고 서로 말없이 생각만으로 '의사소통'이 되는 도구를 얻게 된 것이다. 이 '세크메트의 눈'은 승희의 능력을 통하게 되면 '승희의 투시력'으로 제3자의 생각까지 함께 엿볼 수 있게 되며, 연희의 능력을 통하면 '천재적인 언어해독력'으로 별다른 통역 없이도 바로바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준후의 능력을 통하면 준후가 느낄 수 있는 '영적인 감각'으로 퇴마사들을 노리는, 혹은 퇴마사의 도움이 필요한 '영적 존재'와도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이번 편이 왜 중요한 것인지 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세크메트의 눈'만 있으면 그 어떤 제약과 구속을 받지 않고 '세계관'을 확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퇴마록 세계편>은 이렇게 퇴마사들의 특징을 더욱 돋보여주는 '고대유물'들이 줄줄이 나온다. 이런 유물의 등장은 '세계편' 뿐만 아니라 '혼세편'과 '말세편'까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훌륭한 도구로 쓰일 뿐 아니라, 퇴마사들의 '능력치'를 더욱 높여주는 용도로도 쓰이게 되니 꼭 알아두면 유용하다.

  자, 이제 퇴마사들은 국내를 넘어 세계로 나아간다. '세크메트의 분노'를 해결한 퇴마사들은 국내를 넘어 세계 저편에서 울부짖는 억울한 영혼들의 아우성을 달래주러 떠난다. 그들이 바라는 건 돈도, 명성도 아니다. 어지러운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자신들의 능력이 끝닿는 데까지 어디든 달려갈 것이다. 이렇게 표현하니 대단한 것 같지만, 뚱뚱한 신부 하나, 조폭 건달처럼 생긴 깍뚜기 하나, 불과 번개를 다루는 한복 입은 꼬맹이 하나, 그리고 앙칼진 눈매에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는 날라리 아가씨 일 뿐이다. 이렇게 '이세상'에서는 평범하기 이를데 없지만 '저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완전히 다른 네 사람이다. 이들이 바다 건너 섬나라 '영국'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 다음 편을 기대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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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관한 짧은 우화 - 반 룬 전집 2
헨드릭 빌렘 반 룬 지음, 김흥숙 옮김 / 서해문집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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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화'는 도덕적인 명제나 행동의 원칙을 인간이 아닌 동식물에 빗대어서 들려주는 짧은 이야기를 말한다. 그래서 우화속에는 유머가 담겨 있고, 교훈을 알아채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여기 '코끼리'가 코끼리로 남게 된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이야기는 '인간'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황새들이 인간 아기를 날라다주는 일이 점점 줄어들게 된 것이다. 그렇게 감소하는 인간들을 대신하기 위해서 동물들 가운데 가장 '현명하다'는 코끼리들이 점점 줄어드는 인간을 대신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었다. 그래서 코끼리는 '인간세상'을 먼저 경험해보기로 결정한다. 그러고 나서 '인간'이 되기로 결정해도 늦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한 코끼리가 용감하게 뉴욕으로 떠난다. 그곳이 인간세상 가운데 가장 번화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직접 읽어보시길 바라고, 결론은 '코끼리'는 인간이 되길 포기하고 코끼리로 남기로 했다. 그건 '인간세상'에서 겪은 일들이 인간이 아닌 동물들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분명 인간도 '동물'과 함께 살아가던 시절이 있었는데, 인간세상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다른 동물들은 감히 인간세상에 적응조차 할 수 없게 된 것일까? 정녕 '무엇'이 인간과 동물을 다르게 만든 것일까?

  인간이 '문명'이란 것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다른 동물과는 별개로 살아가기 시작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그 문명은 오직 '인간'만이 살아갈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다. 다른 동물들은 해당사항이 전혀 없다. 그렇게 인간은 스스로 고립된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그 덕분에 인간들은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잃어버렸다. 문명이 점점 확장되면 확장될수록 동물들은 서식지를 잃고 떠나야만 했다. '그곳'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동물들은 끝내 멸종되고 말이다. 그래도 인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오직 '문명'이 유지되고 번영하는 일에만 골몰할 뿐이다.

  그렇다고 '문명'에 아무런 문제가 안 생긴 것은 아니다. 인간조차 살 수 없을 정도로 '환경오염'을 시켰고, 맘놓고 살 수 없을 정도로 '치안'이 확보되지도 않았으며, 착하게 살기보다는 못된 짓만 골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욕심' 때문이었다. 남을 위하는 마음은 '자기만을 위하는 마음' 앞에 설 자리를 잃고 내쫓긴 지 오래 되었다. 그렇게 무법천지로 만들고서도 인간들은 '귀찮은 일'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으려 한다. 그저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이었다. 그래서 뉴욕에 간 코끼리도 불운한 사건에 휘말렸던 것이다. 그 불운한 일을 겪고도 코끼리가 무사히 고향으로 되돌아 갈 수 있었던 것은 몰인정한 인간사회에서도 '착한 마음'을 잊지 않은 사람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도시에 살아가는 '착한 동물들'이 먼저 도움을 주었지만 말이다. 이런 사건을 통해서 '인간사회'에도 아직 따뜻한 온정이 남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결국은 나쁜 마음을 품은 사람들이 더 많기에 결국 '인간사회'는 멸종해 버릴 것이라는 게 이 '짧은 우화'의 주제다.

  도대체 인류 문명은 언제부터 '나와 다른 것을 포용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게 된 것일까? 왜 인간은 다른 동식물처럼 '한 곳'에서 나고 자라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곳까지' 정복하지 않고서는 직성이 풀리지 않게 된 것일까? 더구나 씀씀이는 너무나 헤퍼졌다. 지구의 자원으로도 모자라 '지구밖의 자원'을 탐내서 굳이 지구로 가져와 쓰려고 혈안이 될 지경으로 '욕심'이 그득하다. 핑계는 참 좋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구인들의 삶'이 평안하고 윤택해질 것이란다. 그럼 지구에 사는 '다른 동식물들의 삶'도 그러할까? 인간이 확장해온 '문명' 아래 인간 이외의 다른 생명들도 모두 평안하고 윤택한 삶을 '더불어'서 살 수 있을까? 답은 너무도 뻔해서 답하는 것이 민망할 정도일 것이다. 정답이 '아니오'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간들이 '도덕적인 삶'을 말하면 위선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문명'이란 것도 인간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해코지 하기 위해서 만든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판국에 '도덕'은 두말 할 것도 없다.

  이 책을 쓴 '반 룬'은 네덜란드계 미국인으로 살다 1944년에 62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러니 이 책이 쓰여진 때는 20세기 초반이었을 것이다. 무려 100여년 전에 쓰여진 책이다. 그때 쓰여진 책인데도 '인간세상'은 살기에 썩 적합한 곳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하긴 100여 년전이 '세계대전'이 벌어지던 때였으니, 인간이 저지른 가장 끔찍한 만행을 경험한 탓일지도 모르겠으나, 그 당시의 서양인들에게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며, 특히 '백인'에 대한 우월주의가 판을 치던 시절이었는데도 '하얀 인간'이 쓴 책치고 꽤나 진보적인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그가 쓴 대표작이 <인류이야기 (전3권)>라니 조만간 다시 읽어보아야 겠다. 십 몇년 전에 휘뚜루마뚜루 읽은 기억이 나긴 하는데 말이다. 전반적인 느낌을 다시 정리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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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신장판 1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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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듄2>가 개봉을 했다. 아직 관람전이긴 하지만 엄청난 대작으로 명성이 자자할 것이 분명하다. 예상컨대, <듄2>에서 폴 무앗딥은 황제와의 결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새로운 제국의 통치자로 우뚝 설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고작 1편의 결말일 뿐, 6부작까지 이어지는 대서사에 비하면 고작해야 '첫발'을 내딛은 것과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런 김에 <듄 신장판 1>에 해당하는 줄거리를 대강이나마 찌끄려보려 한다.

  모래행성으로 알려진 '듄'에는 '스파이스'라는 귀한 자원이 있다. 복잡한 설명은 책속 '부록'에 적혀 있으니 참고하시길 바라고, 암튼 이 귀한 자원은 '에너지'로 쓸 수도 있으며, 그 자체로 '화폐'의 역할도 하고, 심지어 '먹을 수'도 있는 아주 유용한 자원이다. 그래서 이 '스파이스'를 둘러싼 인간들의 탐욕이 바로 <듄>의 이야기를 이끄는 원동력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누가 '스파이스'를 탐하는가? 그건 바로 '제국의 황제', '하코넨', 그리고 '아트레이데스'라고 불리는 대가문들이다. 물론 '스파이스'를 탐하는 이들은 더 많지만, 1편에서의 줄거리에서 알아볼 대가문들은 이 세 가문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대가문 말고도 '스파이스'와 동화되어 살아가는 듄의 원주민 '프레멘'도 잊지 말아야 한다. 물 한 방울조차 목숨과 직결될 정도로 소중히 다뤄야 하는 척박한 모래행성에서 살아가는 '프레멘'들은 오랜 세월 스파이스와 더불어 살아간 덕분에 '눈의 색깔'마저 파랗게 스파이스를 닮아 버렸다. 그래서 대가문들이 '스파이스'를 약탈해 갈수록 프레멘들의 삶은 고달파지는 셈이다.

  이런 '프레멘'에게 고달픔을 견디게 해주는 전설이 하나 있다. 퀴사츠 해더락이라 불리는 구세주가 나타나 자신들을 노예와 같은 삶에서 해방시켜줄 것이라고 말이다. 그 구세주는 '무앗딥(사막생쥐)'이라고도 불리며, '우슬', '리산 알 가입'이라고 불린다. 원래는 '베네 게세리트 학교'에서 의도적으로 퍼뜨린 전설인데, 오랫동안 예언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졌다가 '폴 아트레이데스'의 등장으로 드디어 예언이 실현된 것이다. 이는 전형적인 '영웅의 탄생'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전혀 어려움 없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정작 <듄>을 이해하기 힘든 것은 온갖 '음모'가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주대서사라는 낯선 이야기에 제대로 몰입도 하기 전부터 '음모'가 펼쳐지고, 그 '음모'속에 '또 다른 음모'가 진행되며 초반부터 스펙타클한 장면들이 연출되는 탓이다. 그래서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 알 지 못하는 상황에서 펼쳐지는 속고 속이는 이야기가 독자와 관객을 혼돈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주 간단하게 '대립하는 세력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먼저 '하코넨 vs 아트레이데스'다. 둘다 대가문에 속하며 명칭상 하코넨은 '남작가문', 아트레이데스는 '공작가문'으로 소개하고 있으나, '공-후-백-자-남작'이라는 순서로 위계질서가 정립되어 있는 건 아닌 듯 싶다. 그렇다고 '지휘고하'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닐 것이니, 대강이나마 이름 정도만이라도 기억해두면 <듄>을 이해하는데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암튼, 이 두 가문이 서로 대립하는 이유는 '대가문의 자존심(명예)'라고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원래 귀족가문끼리는 서로 '정략결혼'을 통해서 가문의 친밀감을 높이기도 하고, 권력과 영지를 더 높이고 더 넓히는데 유리한 까닭에 서로 적대시하는 가문일지라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서로를 존중하는 척하지만, 뒤돌아서서는 서로 죽이지 못해 사족을 못쓰는 '앙숙'인 것이다. 두 가문에 뭣 때문에 서로 사이가 틀어졌는지는 이야기에 심취해가면서 알아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어쨌든 두 가문은 서로 '앙숙'인 상태다.

  그런데 이렇게 서로 앙숙인 두 가문이 서로 싸운다면 누가 이길지 장담을 하지 못할 정도로 '호각지세'다. 그래서 하코넨은 황제의 사다우카(황제의 광전사) 집단을 '용병'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모든 것을 서로 노나먹겠다는 합의(?)를 하고서 '음모'를 펼쳐놓은 것이다. 그래서 하코넨이 다스리던 '아라키스(듄)'를 황제의 명령에 의해 아트레이데스의 영지로 내려주는 척하면서 '우연한 사고'인척 가장한 채 아트레이데스의 '레토 공작'을 암살하고, 아라키스는 다시 '하코넨의 영지'로 삼아, 그곳에서 나는 '스파이스'를 꿀꺽하겠다는 음모를 펼친 것이다. 물론 레토 공작도 멍청이는 아니기 때문에 이런 '하코넨의 꼼수'를 마냥 당하지만은 않았다. 뛰어나고 충직한 신하들의 도움으로 '하코넨의 야욕'을 간파하고 충분히 대비까지 해놓은 상태였다.

  허나 '적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법이다. 하코넨은 아트레이데스의 감시망에 일찌감치 걸려들 것을 알아채고 레토 공작이 신임하는 '충성스런 신하들' 중에 한 명을 포섭해서 레토 공작의 암살에 성공한다. 하지만 그 심복의 배신은 '더 큰 음모'를 품고 있었다. 비록 자신이 '개인적인 사연' 때문에 배신하긴 하지만, 하코넨을 전적으로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토 공작을 이용해서 '하코넨 블라디미르 남작'을 독살하려는 계획을 짜지만, 교활한 악당이 그런 얄팍한 술수에 걸려들지 않고 말았다. 하지만 일련의 '음모와 음모'속에서 레토 공작의 아들인 '폴 아트레이데스'와 그의 부인 '레이디 제시카'는 살아남게 된다. 그리고 그 둘은 사막 한복판에서 '프레멘'과 합류하게 된다.

  한편, 하코넨의 공격으로 대혼란에 빠진 아트레이데스의 군대는 주군인 레토 공작을 잃고, 주군의 아들인 폴 마저 행방불명이 되자 '복수심'에 불타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이 '배신자'에 의해 벌어졌다고 믿어 의심치 않게 된다. 그리고 그 배신자는 엉뚱하게도 '레이디 제시카'라고 결론을 내린 끝에 '하코넨의 부하'가 되고 만다.

  그러거나 말거나 '폴과 제시카'는 사막에서 합류한 프레멘과 점점 동화되어 간다. 애초에 선택받은 영웅이었던 폴은 자신의 영감과 예지력으로 보았던 것이 '프레멘'과 밀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빠르게 적응(?)하면서 폴은 서서히 '퀴사츠 해더락'으로 각성하게 되고, 프레멘들의 구세주가 되어 '하코넨'과 맞서 싸우게 된다. 허나 하코넨은 겉으로 드러난 '음모'에 불과하고, 진정한 음모를 꾸민 악당은 '황제'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황제의 막강한 '사다우카 군대'와 맞서 싸우게 된다. 이후의 이야기는 영화 <듄2>에서 펼쳐질 테니, 영화관람을 즐겁게 마치고서, 이 책 <듄 신장판 1>을 마저 읽어도 좋을 것이다. 허나 잊지 마시길. <듄>의 진정한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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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엔 기대만큼 많이 쓰진 못했다. 300편의 리뷰를 쓰려면 월평균 25편 이상은 써야 할텐데 말이다. 좀더 분발하도록 하고. 그렇다고 해서 '숫자'에 연연하진 않으련다. '나만의 리뷰'를 완성해야 할 중요한 고비를 넘기고 있는데 '숫자'를 채우기 위해서 쓰기에 급급한 리뷰를 남기고 싶지는 않다. 그저 오래 기억에 남는 리뷰를 쓰고 싶을 뿐이다. 그러기 위해선 '나만의 인상'이 드러나는 리뷰를 써야할텐데, 이게 쉽지 않다. 암튼 노오력 중이다.


  리뷰 기록에 큰 변화는 없다. '전자책'의 비중이 좀 늘어났을 뿐이다. 슬슬 노안이 오고 있는지 '글자크기'가 작은 책들은 점점 읽기 힘들어졌다. 그래서 '글자크기' 조절이 가능한 전자책이 좀더 읽기에 수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1~2월엔 '어린이책'을 많이 읽었다. 3월엔 '장르소설'을 많이 읽을 것 같은데, 두고 볼 일이다. 덕분에 '비문학 분야책'을 좀 소홀히 하고 있는데, 곧 균형점을 찾아갈 것이다.


  '소설' 분야에 이어 '역사' 분야도 200권을 돌파했다. 그 책들을 일일이 나열하기보다 독서와 리뷰에 열중하련다. 언젠간 '빅히스토리'를 보여줄 날이 올 것이다. 주절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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