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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8
헤르만 헤세 지음, 박병덕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평점 :
[My Review MMIX / 민음사 23번째 리뷰] 며칠째, 오십견이 도져서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욱씬거리는 팔을 붙들고 지쳐쓰려져 잠이 들었다. 간만에 리뷰를 쓰려니 감이 잘 오지 않는데, 그래도 쓸 건 써야겠다. 밀려오는 고통과 번뇌에서 해방하고자 오랜만에 헤세의 책을 집어 들었다. 이번엔 <싯다르타>다. 그의 책을 읽고 있으면 마음의 평온이 찾아온다. 그리고 위대한 지혜의 눈이 새롭게 뜨이곤 한다. 그러면서 내 안에 깃들었던 한톨의 나쁜 마음까지 깨끗하게 정화시켜주는 무엇이 찾아오곤 한다. 나이 오십줄에 '지천명'이라고 소감을 밝힌 공자의 혜안에 새삼 존경을 표하는 바다. 어릴 적엔 당췌 뭔 소리인지 감을 잡지 못했던 <싯다르타>였는데, 역시 연륜이 쌓이고 나니 저절로 깨달음의 경지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럼 고타마 싯다르타가 열반의 경지에 오르게 된 이야기를 풀어보련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은 실존인물 '석가모니의 생애'와는 전혀 다른 생소한 이야기에 반감이 들 정도였다. 불교신자가 아니어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붓다의 일화들을 헤세의 소설에서는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고타마 싯다르타'라고 불리는 '동명이인'의 생애를 다룬 것이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허구의 세계'에서 '필연적인 사실'만을 추구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주제'를 탐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 깨달음 주제는 두 친구 '고타마'와 '고빈다'가 도(道, 깨달음)를 구하기 위한 여정을 통해서 엿볼 수 있었다.
각설하고, 두 친구는 대성현 싯다르타를 만나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고빈다는 싯다르타의 가르침을 받고 감명을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바로 '제자의 길'을 걸었지만, 고타마는 싯다르타의 가르침에 '한 가지 의문'을 품고 다시 '사문(탁발승)의 길'을 걸으려 친구의 곁을 떠났기 때문이다. 둘은 똑같은 '구도의 길', 즉 '깨달음'을 얻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모색한 것이지만 서로 추구하는 방향은 달랐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여기서 우리는 익히 알고 있는 '해골물 사건'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신라시대 의상과 원효는 함께 당나라 유학길을 떠났으나 한밤중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겨우 찾은 동굴속에서 지친 몸을 쉬게 할 수 있었다. 그러다 목마름을 느끼고 마침맞게 물이 담긴 바가지를 찾아들고 둘은 시원하게 해갈을 하고 잠이 들었는데, 동이 터서 해가 떠오르자 주변 사물을 식별할 수 있었고, 둘은 크게 깨달음을 얻게 된다. 먼저 동굴인 줄 알았던 곳은 사실 '허물어진 무덤속'이었고, 간밤에 마신 시원한 물은 사실 '사람의 해골이 썩어서 부패한 뇌수'였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의상과 원효 두 스님은 토악질을 하면서 뱃속이 뒤틀리는 고통을 느낀다. 그 와중에 원효는 번뜩이는 깨달음 얻게 된다. 분명 완전한 어둠속에 있을 때엔 무덤속일지라도 '편안한 잠자리'를 잘 수 있었고, 해골이 썩은물조차 '달콤하고 시원한 물'을 마신 것으로 알고 갈증을 깔끔하게 해소했으며 배가 뒤틀리는 고통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 날이 밝아 '사실'을 깨닫자 편안함과 시원함은 온데 간데 찾을 수 없이 불편함과 뒤틀림이란 '고통'만이 찾아왔던 것이다. 둘의 차이는 무엇이었나? 어둠 속에 있는 것과 광명 속에 놓인 것의 차이점밖에 없다. 간밤에 마신 물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런데도 완연하게 다른 행동을 보이는 것은 오히려 '원효, 그 자신'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원효는 '득도'를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당나라 유학길을 포기하고 '일심(一心)사상'과 '화쟁(和諍)사상'을 주장하며 불교의 대중화를 꾀한다. 당시 불교는 왕실의 후원을 받고 있었기에 일반백성들은 가까이하기 너무 멀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부처에게 갖다 바칠 헌물이 없는 가난한 이들은 사찰 근처에도 다가갈 수 없었고, 글자도 깨치지 못한 일반 민중들은 불경을 읽을 수도 없고, 들어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으니, 그저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처지였던 것이다. 그런데 원효는 그런 것이 다 무슨 쓸모가 있느냐면서 부처에게 갖다 바칠 재산이 없으면 '마음'을 바치면 되고, 어려운 불경 따위 읽지 않아도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부처님께 귀의하고 보살님을 바라봅니다)'만 외면 극락왕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평생을 '불교대중화'에 뜻을 두고 몸소 실천을 하니, 많은 이들이 큰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이라하여 '원효대사'라 높여 불렀다.
한편, 유학길을 멈출 수 없었던 의상은 그 길로 서해바다를 건너 당나라에서 '화엄사상'을 배워서 돌아온다. 그가 집필한 <화염경>은 우리 나라 불교경전 가운데 최고로 친다. 당시 불교는 수많은 종파 간의 다툼으로 골치가 아플 지경이었다고 한다. 이에 '화엄사상'으로 갈라진 종파를 한데 엮어 사상적 통합을 꾀한 이가 바로 '의상대사의 업적'이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통합을 이룬 한국의 불교는 고려시대에 '대각국사 의천(천태종, 교종)'과 '보조국사 지눌(조계종, 선종)'으로 갈라져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왔는데, 이렇게 원효와 의상은 갈라진 종파를 한데 모으는 역할을 하는데 큰 공헌을 세웠다면, 의천과 지눌은 깨달음을 얻는 수행방법을 구체화한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즉, 교종은 '경전연구'를 중심으로 경건하고 엄숙하게 교리를 연마하면 깨달음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고 주장하였고, 선종은 깨달음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방식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순간'에 깨우치는 것이니 교리에 충실하기보다는 몸소 실천하는 것이 더 낫다면서 '돈오점수'니, '정혜쌍수' 같은 말을 들어서 익히 알 것이다.
다시 말해, 고타마는 우리의 원효나 지눌의 방법으로 깨달음을 얻은 것이고, 고빈다는 의상과 의천의 방법으로 진리를 깨치려 했던 셈이다. 방법의 차이일 뿐,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마음의 순수함은 전혀 다를 것이 없다. <싯다르타>의 결말에서는 고빈다가 고타마에게 진심이 담긴 큰절을 하면서 끝을 맺지만, 이를 두고 고타마는 '싯다르타'가 되고, 고빈다는 그의 제자가 되었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 그 순간 둘은 모두 '싯다르타'가 되었고, 서로가 서로를 존경하고 존경받는 '위치'에 올라섰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이다. 제삼자가 볼 때 고타마는 빤쓰 한 장 걸치고 강가에서 배를 모는 '뱃사람'에 불과했고, 고빈다는 찬란한 법복을 몸에 두른 고승이었기 때문에 누가 더 높은 위치에 섰는지는 자명하게 판가름 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화려한 법복을 입은 승려가 빤쓰 한 장 달랑 입고 헐벗은 뱃사공에게 절을 올리는 까닭은 고타마의 깨달음이 '열반'에 들 정도로 높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고타마도 스스로 '싯다르타의 경지'에 오른 것을 깨닫게 된다. 고빈다가 몸을 숙이지 않았다면 제삼자의 눈에는 그저 빤쓰 한 장 달랑 입는 뱃사공에 불과했을테니 말이다.
사실, 교종이나 선종이나 어느 것이 더 나은 방식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결국 깨달음을 얻느냐, 얻지 못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일테니 말이다.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들은 '깨달음'은 얻기 힘드니 '방식의 차이'에만 몰두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경건하고 엄숙한 종교의 모습에 반해서 '그쪽의 길'이 옳다고 믿거나, 겉보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속마음이 깨끗한 것이 중요하다며 거지꼴을 마다 않고 '수행의 길'로 빠져드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구교와 신교로 갈라져 죽을 때까지 싸우길 멈추지 않는 어리석음도 만만치 않다. 구교(가톨릭)의 신(神)이나 신교(프로테스탄트)의 신이 다르지 않고 하나뿐인 '유일신'인 것은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삭의 종교(그리스도교)'와 '이스마엘의 종교(이슬람교)'가 다르지 않고, '야훼와 예수, 그리고 알라'가 이름만 다를 뿐, 우리가 믿는 '오직 한 분'인 것을 부정할 사람도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방법'이 아니라 '깨달음'이다.
현자가 '달'을 가리키는데 어리석은 사람은 달은 보지 않고 '현자의 손가락'만 쳐다본다고 한다. '싯다르타'의 가르침도 다르지 않다. 깨달음을 얻는 방법을 터득하고도 '열반(해탈의 경지)'에 들기보다 '속세의 쾌락'에 빠져 또 다른 고통을 스스로 맛보려는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곤 한다. 책속에서도 고타마는 '올바른 수행의 길'을 걷고 있다고 굳게 믿었지만, 그 길을 걸어가면서도 '사랑의 기술'을 터득하려고 애쓰고, '부자로 성공하는 길'을 개척하며, 인생의 온갖 '쾌락'을 맛보며 즐기는 삶을 살아간다. 허나 고타마는 그런 쾌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앎'조차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앎'에서 또 다른 '고통'을 맛보았던 것이다. 자신은 크게 깨달았으니 세상의 온갖 고통이 닥친다해도 능히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자만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고타마는 거대한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조금도 벗어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깨달음을 정진하는 삶을 살아갔지만, '자식이 받는 고통'까지 외면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허나 이는 부모가 자식에게 주기만 하는 '일방적인 사랑'에 불과했다. 자식이 부모의 사랑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전적으로 '자식의 선택'에 달렸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모가 아무리 자식을 사랑해도 절대 '온전한 사랑'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식을 놔주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렇게 자식이 제갈길을 가게 두면, 다시 말해, '독립'을 하게 되면, 부모의 마음은 찢어지듯 아파온다. 생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에 다시 자식을 품에 안고, 곁에 가까이 두려하면 결국 자식을 망칠 수 있기에 아파도 모른 척 하려고 노력하지만, 애초에 부모 마음은 그럴 수 없다. 이때 고타마는 불현듯 자신의 어린시절을 떠올린다. 자기 자신도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문의 길'로 뛰어들었던 과거를 말이다. 거대한 수레바퀴는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버지의 마음에 대못을 박고 떠난 '고타마'처럼 고타마도 아버지의 처지가 되어 자식의 떠남으로 인해 그 상처와 고통을 겪게 된 것이다. 어찌할 것인가? 그 아픔을 참지 못해 '윤회'를 거스르지 못하고, 또 다시 자식에게 '윤회의 고통'을 심어줄 참인가? 그게 아니라면 과감히 아픔을 이겨내고 '윤회의 수레바퀴'를 끊어내고, 자식에게 고통을 되물림하는 일을 멈추어야 할 것이다. 비록 고타마는 고통스러울지라도 자식에겐 그 고통을 고스란히 떠넘기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이러한 온갖 '쾌락과 고통'을 몸소 겪고 난 뒤에야 고타마는 비로소 큰 깨달음을 얻고 '해탈의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 친구였던 고빈다의 '과정'과는 사뭇 다르게 말이다. 근데 그게 중요한가? 과정의 다름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좋다는 식이어서도 안 될 일이지만, 결국 '깨달음'을 깨우칠 수 있다면 자기 자신에게 딱 맞는 방법으로 깨달음을 얻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인 것이다. 그리고 깨달음은 누구라도 얻을 수 있다. 마음의 평온을 얻는 일인데 높으신 양반들만 얻으라는 법이 어디 있느냔 말이다. 속세를 떠나야만 얻을 수 있는 깨달음도 결국은 반쪽짜리일 뿐이다. 그리고 '죽음(열반)'에 이르러서야 겨우 고통을 면하게 되는 깨달음도 참은 아니다. 부족한 것을 모르고 풍족하고 여유로운 삶을 '성공'이라고 부르는 것도 부질없는 일이다. 자기 자신은 그 자체로 만족하며 살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자식들'은 그 넉넉함과 풍요로움으로 인해 '또 다른 고통'에 신음하며 패가망신하는 삶을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득도의 길은 어렵지도, 그렇다고 쉽지도 않다.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며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면 부끄러워하고, 실수를 하면 반성할 줄 알고, 실력이 부족해서 남을 피곤하게 하고 남에게 일을 떠넘기면 자기 스스로 '무책임'한 것을 깨우치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게 쉬우면서도 참 어려운 게 바로 '인생'이다. 적어도 그걸 깨달았다면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살아있는 싯다르타(부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