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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도 이브도 없는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세계사 / 2008년 12월
평점 :
[My Review MMX / 문학세계사 4번째 리뷰] 첫 소설 <살인자의 건강법>(1991)을 내놓은 이후에 아멜리 노통브는 '히트제조기'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내놓는 소설마다 상을 휩쓸었고, 평단의 호평과 함께 독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었다. '천재 작가'라는 수식어가 어울릴 정도로 아주 매력적이고 흥미롭고 독특한 소설들을 쏟아냈다. '다작 작가'답게 매년 그녀의 소설이 출간될 정도였으니, 2025년인 지금까지 단순 계산을 해봐도 35권 이상의 소설을 쏟아냈을 것이다. 그런데 난 그만큼의 수를 헤아릴 정도로 많은 소설을 읽지는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소설이 더는 흥미롭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처음 <살인자의 건강법>(우리 나라에서는 2004년에 첫 출간)을 접하고서 5권 정도의 소설을 더 읽었는데, 그대로 멈춰버리고 말았다. 더는 새로운 면모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게 2010년이 되기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들을 다시 읽고 있다. <아담도 이브도 없는> 이 책은 지금 처음 읽었다. 그녀의 첫사랑에 관한 장편소설이란다.
결론만 말하자면, 아멜리 노통브의 첫사랑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상대는 한 살 어린 일본남성이었고, 90년도 당시엔 '대학생'이었단다. 그래도 재벌 못지 않은 부잣집 도련님이었고, '콘크리트 성(城)'에 부모와 조부모도 함께 살고 있었으며, 흰색 벤츠를 승용차를 직접 몰고 다닐 정도로 부티나게 사는 남자였다. 물론 '독립'해서 혼자 살고 있는 건실한 청년이기도 했다. 그리고 외국여자의 마음을 훔칠 정도로 젠틀한 매너남이었고, 무엇보다 화를 내지 않는 상냥한 성품과 귀여움까지 탑재한 멋진 남성이었다. 이런 남성과 찐한 연애를 하고 청혼(?)까지 받았지만, 노통브는 결혼식도 치루지 않고 고국인 벨기에로 냅다(?) 도망친 뒤에, 그녀의 첫 소설인 <살인자의 건강법>을 내놓고 '인기작가'로 등극하였다. 이게 이 책의 결론이다. 물론 그 앞의 줄거리에는 그녀가 그 남자(이름은 '린리'다)와 사랑(愛)에 빠질 수는 없었고, 연인(戀) 사이까지는 될 수 있었다는 핑계 아닌 핑계를 늘어놓았다. 일본인들은 아직도 사랑하는 사이끼리도 '알러뷰(愛, Love)'라고 하는 표현 대신 '코이비토(戀, 사모하다)'라고 하는 '연인관계'라는 표현을 즐기기 때문이라는 변명(?)을 둘러대지만, 정작 노통브 그녀 자신은 일본인이 아니라 '서양인(벨기에 국적)'이지 않느냔 말이다. 그런데 왜 일본인이라도 된 듯이 변명을 늘어놓는가?
사실, 노통브는 태어난 곳이 '일본'이었단다. 그리고 다섯 살때까지 살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외교관 출신'이었던 탓에 노통브는 어린 시절을 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국가에서 지냈다고 한다. 심지어 일본인 유모가 그녀를 돌봐준 탓에 '일본풍습'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기억이 나고, 일본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후지산'에 대한 애정도 꽤나 남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왜 그녀는 '일본인 흉내'를 곧잘 내다가, 자기에게 불리할 때에는 어엿한 '서양인(이 책에서는 '자라투스트라 혈통'을 꽤나 강조한다)이라면서 상황을 모면하려 든다.
린리와의 연애담도 그렇다. 분명 '좋아하는 감정'이 분명하다. 그런데 '심각한 사이'가 되는 것은 곤란하다고 둘러댄다. 이유도 가지가지다. 처음엔 나이가 어려서, 연애가 시작되었을 때에는 일본의 풍습이 낯설어서, 중반을 넘어서자 일본남성의 단점이 보였기 때문이고, 종반에는 사랑의 감정은 있지만 결혼까지는 아직 결심이 서지 않는다는 핑계를 둘러대다가, 잠결에 실수로 린리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뒷감당을 할 수 없자 비행기를 타고 벨기에로 날아가버린다. 끝내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말도 하지 않고서 말이다. '관계'를 매정하게 끊어버릴 정도로 매몰찬 여자라는 얘기는 듣기 싫으니, 그냥 사라지는 편이 더 낫다는 식으로 둘은 그렇게 헤어졌다.
이게 말인지 방구인지, 나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자들은 다들 이런 식인가? 여자들은 이런 상황이 이해가 되는가? 싫으면 싫다든가, 실수라면 실수였다고 말이라도 해줘야지. 이것 저것 '불편한 상황'을 연출할 수 없으니 냅다 도망쳐 놓고서는 천연덕스런 '자기 변명'을 늘어놓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줘야 한단 말인가? 그래놓고서 자신의 첫소설 <살인자의 건강법>이 초대박을 치고, 심지어 일본에서도 출간한 기념으로 '6년만의 귀향(?)'이란 소감을 발표하듯 '린리와의 뜨거운(?) 재회'를 에피소드 형식으로 써놓는 것은 무슨 심보란 말인가? '린리, 네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네가 보내준 '청첩장'을 받고서 알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널 뜨겁게 사랑하고 있어. 우린 아직도 '연인'사이가 맞는거지?' 이런 말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인가?
그것도 그거지만, 아멜리 노통브는 이 책 <아담과 이브도 없는>에서 동양에 대한 '비하 발언'이 정말 수위를 넘어섰다고 본다. 자신이 태어난 땅에 대한 애찬은 늘어놓으면서 '일본의 문화'는 서양에 비해서 한참 수준이 낮다고 애둘러 표현하고, 정작 자신의 '일본어 수준'은 형편 없으면서 일본인들의 '프랑스 발음'이나 '영어 발음'은 정말 형편없다고 깎아내리고, 정작 일본남성과 연애를 하고 있으면서도 '일본인 폄하'도 서슴지 않고 한다. 그러면서 일본의 경제, 전통문화 등등에는 아낌없는 칭찬을 퍼붓는다. 그렇지만 자신이 취직한 '일본 기업문화'는 지독하다는, 자신은 '서양여자'인데 왜 '일본인'처럼 일을 부려먹으려 드느냐는 식의 투정(?)을 있는대로 부리곤 한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하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이 책이 일본에서 호평일색이었다고 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소설을 써줘서 고맙다는 팬레터도 상당수 받았다면서 말이다. 대놓고 비하를 하고 있구만, 서양인이 쓴 소설에 '일본'을 소개한 것만으로도 감개무량하다는 것인가? 하긴 일본인들은 오페라 <나비부인>에도 열광한다고 하니 말 다한 셈이다. 서양 남자에게 버림받아 자결을 한 일본여성의 비극적 사랑이야기인데, 왜 분노를 하지 않는가? 그건 그렇고 이 책이 한국에서 '호평'받을 만한 자격(?)이 있기는 할까? 소설의 전반부에 '일본인 린리'에게 일방적으로 화를 낸 남성운전자가 있는데, 린리가 그 남성의 화를 받아내고도 참은 이유가 '한국인(칸코쿠진)이라서'라고 설명한다. 이걸 노통브는 '이해했다'는 식으로 린리가 아무 잘못도 한 게 없는데, 무턱대고 화를 낸 남성이 참으로 무례(!)하다는 식으로 찌끄렸다. 나는 이 대목을 읽을 때 눈쌀이 찌푸려졌다.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이냔 말이다.
이걸 두고서 '뒤친이(역자)'는 노통브가 이 소설에 '패러디'를 잔뜩 담아놓아서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장면이 수두룩하다는 해설을 늘어놓았다. 특히 노통브가 '언어학 전공'을 했기 때문에 '언어유희'와 더불어서 수많은 '패러디 장면'을 담아둔 명저라는 소개와 함께 말이다. 그런데 한국독자는 '뒤쳐진 한국어'로 읽고 있는데, 프랑스어와 일본어 사이의 미묘한 표현차이에서 벌어지는 '언어유희'를 어떻게 즐길 수 있단 말인가? 또한 이런 이유로 노통브는 '표현적 실수(이중부정문)'로 린리가 보낸 청혼의 메시지에 승낙하는 대답을 하고서도 이를 끝내 정정하지 않고 훌쩍 사라져버리는 '도망자'가 되고 만다. 이걸 '언어유희와 패러디가 낳은 유쾌한 사랑의 도피'라고 이해해야 할까? 설령 '뒤친이의 느낌'은 그렇더라도 '독자의 느낌'은 전혀 아니올시다였다. 굳이 노통브의 실수(?)가 아니라면 '뒤친이의 실패'가 확실하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이 책도 두 번 다시 읽을 리 없는 책으로 결론을 내렸다. 노통브의 사랑이야기는 더더욱 사양하련다. 그녀의 소설 가운데 그나마 볼만한 내용은 '살인' 뿐이니 말이다. 그냥 예쁘게 죽여주면 봐줄만 한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