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사장의 지대넓얕 6 : 성장 VS 분배 -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생각을 넓혀 주는 어린이 교양 도서
채사장.마케마케 지음, 정용환 그림 / 돌핀북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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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사장의 지대넓얕 6 : 성장 VS 분배>  채사장, 마케마케 / 돌핀북 (2023)

[My Review MMXV / 돌핀북 6번째 리뷰] 6권은 경제편 총정리다. 이 책에서는 '신자유주의의 특징'에 대해 설명하면서 비교할 수 있는 대상으로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를 살펴보았다. 마르크스는 "경제가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뀐다"고 말하면서, '상부구조'에 있는 역사, 정치, 사회, 문화, 의식 등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구조를 떠받치는 '하부구조'의 핵심이 바로 '경제'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채사장의 지대넓얕> 시리즈의 핵심주제가 바로 '경제'였던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경제'를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설명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고, 세계의 거의 모든 것은 '경제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경제편'을 총정리해보자.

이 책에선 경제체제를 크게 4가지로 구분했다. [초기자본주의], [후기자본주의], [신자유주의], [공산주의]로 말이다. 물론 더 세분화할 수 있지만 전문적인 내용을 추구하는 게 아니고 '넓고 얕은 교양'을 얻기 위해서 개념설명을 하기 위함이라고 밝혀놨다. 다시 돌아와서, 정부는 '세금'을 통해서 시장에 개입할 수 있다. 약하게 개입한다면 '시장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고, 강하게 개입한다면 '시장의 자유를 축소'하는 것이다. 그럼 어느 쪽이 좋은 것이냐? 그런 개념이 아니다. 각각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시장의 자유를 추구하면 정부는 개입을 최소화하게 된다. 이는 세금은 낮추고 복지도 낮춘다는 뜻이다. 그럼 기업(자본가)은 투자를 늘릴 것이다. 내야 할 세금이 줄어 부담이 덜어지니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럼 일자리가 늘어나니 '임금'을 받는 사람도 늘어나게 되고, 돈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소비활동'도 늘어나게 된다. 그렇게 경제가 호황을 누리게 되니 기업은 더 많은 이익을 챙길 수 있다. 거대기업일수록 말이다. 그러나 '저소득층 노동자'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소득이 많이 늘지 않아 여유자금도 별로 늘지 않는다. 그러다 덜컥 다치거나 병들어서 더 이상의 일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생산활동'에 참여할 수 없으니 더는 임금을 벌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정부의 개입이 줄어들어 세금이 덜 걷혔으니 복지로 쓸 비용도 덩달아 줄어버렸다. 그래서 저소득층은 복지혜택을 받기 힘들게 된다. 이렇게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고 빈자들은 더욱 빈자가 되는 사회구조가 되는 현상을 '부익부 빈익빈'이라고 한다. 시장의 자유를 추구하면 이런 장단점이 있다. 이게 바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진면목'인 셈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시장의 자유를 축소하면 어떻게 될까? 정부의 개입이 강화될 것이다. 그럼 당연히 세금이 올라가고 복지도 더 많이 챙길 수 있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누진세'다. 소득이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서 혜택이 필요한 '저소득층'에게 복지비용을 늘려서 사람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정책이다. 이렇게 되면 사회가 안정화된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수그러들고 '소득격차'가 줄어들어서 사회 갈등도 덩달아 줄어들게 된다. 그러다 세금을 많이 부담해야 하는 상위 계층에서는 불만이 늘어나게 된다. 어차피 많이 벌어봐야 세금으로 대부분 내야하기 때문에 '의욕'을 상실하게 된다. 기업(자본가)도 투자를 줄이고 일자리도 덩달아 없어진다. 실업자가 늘어나니 사회복지를 위한 비용이 더 많이 필요해서 세금을 더 많이 걷어야만 된다. 그러나 세금을 걷을 대상이 없어졌다. 일할 의욕을 상실한 '고소득 계층'이 더 많이 벌 의지가 사라지니 성장발전 속도가 더디게 된다. 투자가 줄어드니 일자리도 사라져서 소비를 할 수 없게 점점 위축이 된다. 결국 모두가 공평하게 누릴 수는 있게 되지만, 진실은 '하향평준화'가 되고 만다. 경제는 점점 위축이 되어 파탄이 날 수도 있다. 시장의 자유를 축소하면 이런 장단점이 있다. 이게 '후기자본주의 경제체제'의 결말이었다.

초기 자본주의는 세금도 없고 복지도 없는 '완전경쟁체제'였다. 이때에는 자본가들이 맘껏 경제활동을 했고, 그로 인해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하지만 공정한 경쟁은 아니었다. 돈을 많이 가진 자가 모든 것을 독차지하는 '독점경쟁체제'로 굳혀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큰 위기가 찾아왔는데 바로 '경제대공황'이었다. 자본주의의 특징인 '공급과잉'으로 인해서 벌어진 문제였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공급'을 중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케인스는 '일자리'를 만들 목적으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경제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뉴딜정책'이 대표적인 예다. 정부가 일자리를 창출하니 소비여력이 생긴 노동자들이 소비를 늘려나갔다. 그렇게 '공급과잉'을 해소했던 것이다.

하지만 소련은 달랐다. '공산주의'로 경제체제를 바꾼 것이다. 정부가 경제를 완전히 통제하고 모든 생산수단을 '국영화'시켜버려서 국고수익으로 100%를 달성시킨 것이다. 그리고 복지도 100% 실현시켰다. 자본가들이 소유했던 생산수단(공장)을 정부가 뺐어서 노동자들에게 돌려주는 '공산혁명'을 성공시켰던 것이다. 그렇게 '경제대공황'을 극복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냉전이후 공산주의 국가들은 경제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위에서 언급한 '후기 자본주의'의 단점이 극명하게 나타났던 것이다. 열심히 일해봐야 '세금'으로 다 뺐어가는데 열심히 일할 의욕이 없게 된 셈이다. 물론 정부가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게 '배급(복지)'은 해준다. 단지 넉넉하지 않을 뿐이고, 제때에 주지도 않을 뿐이다. 그러나 국가경제가 '성장동력'을 잃어버린 셈이기에 공산주의는 폭망하고 말았다. 결국 1990년대에 이르러 대부분의 공산국가들은 '자본주의 체제'로 돌아서고 말았다.

한편, 독일과 일본은 또 달랐다. 이들은 자본주의를 버리지는 않았지만, 경제대공황을 이겨낼 정도의 건강한 경제상황도 아니었다. 결국 독일과 일본도 '시장확보'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공급과잉'을 해소할 수 있는 안정적인 시장(식민지)을 빼앗기 위해서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그렇게 군국주의(나치즘)로 '군사화'에 성공한 이들은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주변국들을 차례차례 점령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경제대공황을 극복해내는 것 같았으나, 얼마 가지 않아 패색이 짙어지면서 끝내 '패전국'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역사의 아이러니로 독일과 일본은 다시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거듭나서 빠르게 경제대국 대열에 접어들게 된다.

이렇게 '경제대공황'의 원인인 '공급과잉'을 해소하기 위한 나름의 방식을 거쳐 '냉전시대'에 접어들자 후기 자본주의는 활력을 잃기 시작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신자유주의(다시 초기자본주의로 되돌아가자!)'를 받아들여 빠르게 경제회복세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전세계는 고심을 하게 되었다. '후기자본주의(케인스)' VS '신자유주의(하이에크)' 중에 어느 쪽이 각 나라에 경제상황에 적합한 경제체제인지 판단을 내려야 했기 때문이다. 이는 '성장(신자유주의) VS 분배(후기자본주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어느 쪽을 먼저 시행해야 하냐는 것이다. 성장이 우선이냐? 분배가 우선이냐? 를 놓고 첨예한 대립을 할 수밖에 없다.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로 논쟁을 벌이듯 심각하게 대립해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이 '성장(신자유주의)'을 우선적으로 택했다. 어쩌면 단연한 선택이었는데, 경제성장도 하지 않고 나눠 먹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파이를 키워야 노나 먹는 맛도 나는 법이라면서, 일단 '파이'를 키우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제성장 과정에 수많은 이들의 희생이 뒤따랐다. 앞서 신자유주의의 단점에 '빈부격차 심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 하다보니 저소득층을 구제하고 싶어도 '세금'이 태부족했던 것이다. 반대로 베트남 같은 공산권 국가들은 '분배'를 우선시 했다. 그래서 오래도록 가난한 국가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었다. 그렇다면 일단 '성장'이 우선인 것은 어느 정도 옳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IMF 외환위기 극복 이후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뤄 '세계 경제 10위권'에 들어선 대한민국은 더욱 커진 '파이'를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노나 주었나? 다시 말해, 성장에 따른 '분배 정책'이 제대로 먹혀 들어갔느냔 말이다.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분명 경제성장은 이뤘는데 국민 대다수의 '행복지수'는 여전히 하위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청년실업은 만성화 되었고, 경제는 활력을 잃어가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트럼프발 관세위기'까지 몰려오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과 분배'에 대한 논의는 언제쯤 결론을 지을 수 있고, 그 성과는 언제쯤 누릴 수 있는 것일까? 제대로 된 정책이 필요할 것이다. 다음 책은 '정치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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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빌 백작의 범죄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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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빌 백작의 범죄>  아멜리 노통브 / 이상해 / 열린책들 (2017) [원작 :  Le crime du comte Neville ]

[My Review MMXIV / 열린책들 21번째 리뷰] 역시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은 '변태적인 기질'이 다분해야 그나마 읽을 맛이 난다. 그럼에도 세기말에 몰아쳤던 그녀만의 '변태가학적인 기풍'은 새천년을 맞아 비에 흠뻑 젖은 아기고양이마냥 풀이 죽어버린 듯 싶다. 그나마 예쁜 작가가 '변태적'으로 썼다는 것, 하나만이 그녀의 책들에 남은 유일한 관심을 끌 수 있는 이유일 게다. 그런 이유로 그녀의 책들이 앞으로도 읽힐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베르나르와 함께 아멜리의 소설도 점점 시들해져 가서 아쉽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설의 줄거리를 살펴보면, 비극으로 시작해서 희극으로 마무리를 짓고 있어 '희비극'으로 분류되는 소설이다. 근데 나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서 읽었기에 감히 말하지만, '내 취향'은 아니다. 희극이면 희극으로, 비극이면 비극으로 시작과 끝을 맺는 '순수한 작품'을 선호하지,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갔다 하는 것은 '개그 콩트'로 족하기 때문이다. 하긴 이 소설의 분량이 딱 '콩트(단편소설)'에 어울릴 만큼 짧긴 하다. 그럼에도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에서 기대할 법한 그런 결말은 아니었다는 점에서도 좀 의외인 소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결말이 궁금한 독자분들을 위해서 '결말'은 까발리지 않으련다. 최대한 내 리뷰를 읽고 나서도 결말은 짐작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장담한다.

배경은 현대 느빌 백작가문의 성(城)이다. 아주 정직한(?) 귀족이었던 탓에 재정적 파탄을 맞아 가문대대로 물려받은 성을 팔아넘겨야 할 처지가 되고 만 '몰락 귀족'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 사정을 가진 느빌 백작의 셋째딸이 한밤중에 성밖의 숲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마침맞게 지나가던 점쟁이에게 들키는(?) 바람에 무사히 성으로 귀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점쟁이가 셋째딸만 넘겨준 것이 아니라 '예언'까지 남겨 두었는데, "파티에서 당신은 초대 손님 중 한 명을 살해하게 될 겁니다"라는 예언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느빌 백작은 매년 자신의 성에서 파티를 열었고, 이번에도 '팔게 된 그 성'에서 마지막으로 파티를 열 작정이었다. 그런데 점쟁이가 그 파티에서 느빌 백작, 자신이 초대 손님을 살해할 거라는 예언을 들었으니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그는 말도 안 된다며 점쟁이의 예언을 일축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꼭 죽이고 싶은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다는 생각에 미치자, 느빌 백작은 파티 초대 손님 목록을 다시금 찬찬히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묻기 시작한다. 귀족가문의 사람이 자신이 개최한 파티에서 초대한 손님을 살해한 '케이스'가 있는지 말이다. 기록에 따르면 아주 없지도 않다고 한다. 오히려 너무 자주 있어서 탈일 정도로 말이다. 그런 사실을 간파하자 느빌 백작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과연 그렇군. 죽어 마땅한 사람이 있는지 찾아봐야 겠군'..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다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진다. 셋째 딸이 아버지의 그런 생각을 눈치 채고서 '살해한 사람'으로 자신을 지목해달라고 조르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이 심한 정신병에 들렸으며, 모든 감각을 잃어버린 지도 오래 되어 '살 의욕'이 없다면서 말이다. 그렇게 시작한 아버지와 딸 간의 옥신각신이 이 소설의 전부다.

분명 '기발한 발상'이긴 한데, 아멜리가 이런 유의 소설을 그동안 얼마나 우려먹었는지를 감안한다면 그다지 새롭지 않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늘 같은 패턴이지 않은가. 등장인물 두 명이 등장해서 서로 길고 긴 '말싸움(논쟁)'을 벌이는 장면은 '노통브의 클리세'로 인식될 만큼 너무 많았다. 더구나 이번 말싸움은 '윤리 vs 비윤리'의 논쟁이었다. 어찌 아비의 손으로 직접 딸 자식을 총으로 쏴서 죽이는 일이 '정당화' 될 수 있겠느냔 말이다. 아무리 '사고사'로 우연을 가장한다고 한들 그것을 '필연적인 당위성'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이겠는가? 그래서 이 책은 굉장히 '부도덕한 소재'다.

그런데 이런 부도덕한 소재를 '그리스의 고전소설'에서 따왔다고 한다. 바로 <아가멤논>에서 말이다. 아가멤논이 트로이 전쟁을 시작하기 위해서 배를 출정하려고 하는데 거센 풍랑이 그칠 줄 모르자 점술가에게 신탁을 받아오라 했더니, '친딸을 제물로 바쳐야 출정할 수 있다'는 말을 전해 받았다. 이에 아가멤논은 셋째 딸인 '이피제니'를 산 채로 죽여서 제사를 지냈더니 풍랑이 멈췄고 예정대로 출정을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친족 살해'는 오랜 옛날부터 아주 흔한 일이었다. 그래서 '대의'를 위해서 '소의'를 기꺼이 희생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은 전설이 얼마 전까지도 아주 훌륭한 일이라고 칭송받기까지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동양에서도 부모님이 '고깃국'이 먹고 싶다고 하자 '자신의 아내(혹은 자식)'을 죽여서 받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종교적으로는 더 심각하다. '신이 그것을 원한다'는 말 한마디로 아브라함은 어렵사리 얻은 자식 '이삭'을 신에게 기꺼이 받치려 했다. 이런 이야기를 <성경>에서 인용하며 열변을 토하는 목사님들을 심심찮게 봤다.

하지만 난 싫다. 타인을 제물로 받치는 것도 끔찍한 일인데, 친족을 제물로 받치는 행위가 어떻게 해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일이냔 말이다. 그걸 귀족적인 '전통'이나 종교적인 '숙명'으로 추켜세우는 일 따위는 정말이지 역겹다. 그야말로 '악당'이나 할 법한 궤변인 셈이다. 그런데 그런 악당의 발언 같은 일을 그토록 예쁜 작가가 썼다니 정말이지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이가 들어가니 '그로테스크(기괴한) 소설'은 정말 싫어진다. 말만 그럴 듯하게 해대는 '소피스트(궤변론자)'들도 정말 싫고 말이다. 그런 사람들이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는 소신을 말하는 것을 볼작시면 주둥이를 쌔려주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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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두근거리는 중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예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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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MXIII / 예담 5번째 리뷰]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소감이지만, 마스다 미리의 '만화'보다는 '(만화 형식을 가미한) 에세이'가 더 맘에 든다. 그냥 만화만 읽었을 때에는 '이해'하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았다. 여자들만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라든지, 일본인만 이해할 수 있는 유머라든지, 뭐 그런 것들을 얼마 되지 않은 '만화 컷'으로만 읽었을 때에는 공감할 수 없었는데, '에세이 형식'으로 작가가 그렇게 표현한 까닭을 구구절절 설명해주니 조금쯤 더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그제서야 '아하~ 그런 뜻으로 한 말(또는 행동)이었어'라며 무릎을 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스다 작가의 표현이 '딱 좋다'는 느낌은 아니다. 왜냐면 뭔가 이상하리만치 '이기적인 심보'에서 비롯된 일화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뭐, 한두 번 정도라면, '사람인데, 그럴 수 있지'하며 넘어가겠지만, 이건 뭐...시종일관 처음부터 끝까지 주야장천 '그러고' 있다는 것이 믿기 힘들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이 책이 '(수 년에 걸쳐) 연재된 내용'을 짜깁기해서 '단행본'으로 출간했다는 대목을 접하고서야 어느 정도 수긍이 가긴 했지만, 그럼에도 너무 많았다. 과연 무엇이 많았다는 것일까?

이 책의 원제는 [청춘, 때늦음]이란다. 이것을 뒤침책(번역본)에서는 <여전히 두근거리는 중>으로 뒤쳐냈다. 그리고 책의 내용은 작가 본인인 '마스다 미리'의 청춘시절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으며, 그 일화들은 한결같이 '그때 해보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나열을 했다. 그리고 대부분 '연애의 부재'로 인한 못해본 것들에 대한 애도를 표하는 것인지, 남들은 대수롭지 않게 하는 것들인데 자신은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서러움인지, 아니면 10대, 20대, 30대 초반에는 못했지만 '30대 후반'내지 '40대'에 진입한 지금은 꼭 해보고 싶다는 간절함인지, 그도 아니면 그저 부러움으로 인한 '이불킥'을 하고픔인지 도통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일관적이지 않은 흔들림이 가득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목이 '청춘(이니 어울릴 법한 일들을 해보지 못한 억울하고 울적한 마음에 이제라도 해보고 싶지만 나이값 못한다는 소리나 들을 것이 뻔하니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한 번만이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때늦음'이라고 지은 것 같다. 그 덕분에 뒤친책의 제목도 <(다 늙었지만 그 시절만 떠올리면) 여전히 두근거리 중>이라고 깔끔하게 뒤쳐놓았다.

과연 무엇이 그토록 해보고 싶었던 것일까? 그 가운데에 나도 해보고 싶은 것은 놀이공원 대관람차 안에서 하는 둘 만의 키스다. 작가는 10대에는 연애경험이 전무하단다. 20대가 남친이 생겼지만 '대관람차'를 타본 적은 없었고, 그렇게 30대에 접어들었지만, 이제와서 남친이 생기는 것도 우습고, 생긴다한들 30대에 놀이공원에 들어가서 논다는 것 자체가 어색할 것 같단다. 그런 까닭에 '대관람차 키스' 같은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되어서 아숩다는...뭐, 그런 에피소드다. 나도 해본 적이 없다. 뭐, 연애 경험이 태부족하기도 하지만, 함께 '놀이공원'에 갈 정도로 진척된 적이 없는 것이 핵심이었다. 기회가 아주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글쎄...번번히 다음 기회에, 라고 미루다가 어느새 옆구리가 허전해졌다. 그러다 30대 이후로는 거의 연애를 해본 적이 없으니 '대관람차'는커녕 놀이공원도 별로 가본 적이 없다. 그런 까닭에 난 '롯데월드'와 '자연농원(현 에버랜드)'을 구경해본 적이 없다. 애인이 생기면 꼭 가야지 했는데, 그럴 애인이 없었던 탓이다. 가난한 연인이던 젊은 시절에는 '돈'이 없어서 제대로 데이트를 못했다면, 돈 좀 만지는 지금은 '애인'이 없어서 데이트를 못 한다. 마스다 미리는 '연애감각'이 없어서 예나 지금이나 남들처럼 찐한 연애를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뭐, 이런 식이다. 학창시절 '가사실습 시간'에 만든 사과구이를 포장했다가 남친에게 건내주는 에피소드도 있었고, 졸업시즌 때 좋아하는 선배에게 '두 번째 교복단추'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는 에피소드도 종종 나온다. 일본에서는 '남자교복의 두 번째 단추'를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선물하는 전통(?)이 있단다. 마스다 미리는 자신의 작품들에 이런 에피소드를 참 많이 소개하고 있는데, 정작 작가 본인은 '그 단추'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 속상하고 서러운 마음도 있지만, 그런 '선물'을 많이 받았다고 자랑하는 '능력녀'를 만날 때면 부러움도 느끼지만 잘난 척 하는 것 같아서 지청구를 해주고 싶다는, 뭐 그런 이야기를 종종 하고 있다. 또 학창시절의 단골 메뉴인 '발렌타인데이 초콜릿'도 실려 있는데, 역시나 마스다 미리는 줘 본 적이 없던 모양이다. 그래서 살짝 빈정거리는 투로 "어차피 '수제초콜릿'이란 게 시중에 파는 초코릿을 녹였다가 틀에 넣어 굳힌 것에 불과하다"는 문구를 넣은 것을 읽을 때,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내 경우에는 '그 흔한 초콜릿도 못 받아봤다'는 쪽이지만 말이다. 왜냐고? 초콜릿을 못 받을 정도로 못 생기고 인기가 없었던 거야? 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난 '남중', '남고', '공대', '군대'를 나와 취직을 하니, 부서에 여직원이 꼴랑 한 명(경리, 40대 노처녀)이라 아예 줄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이렇게 열악한 주변 환경 덕분에 발렌타인 초콜릿은 받을래야 받을 수 없었다. 그나마 초등시절이 유일한 기회였는데, 그 시절엔 이상하리만치 선생님들이 '발렌타인데이 초콜릿 선물'은 근본도 없는 일본 백화점 상술에 불과하니,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맙시다'라는 캠페인이 벌어지는 바람에 2월에 초콜릿을 구경하기 힘들었다. 더구나 여자아이들도 3월이 되면 응당 받아야 할 '화이트데이'때가 되면 학년이 올라가고 반이 갈라져서 '받을 수 없겠다'는 계산이 서자, 초콜릿 선물은 정말 '인기남' 몇 명에게만 몰래 주는 비밀스런 일이 되고 말았다. 한 반에 6~70명이었고, 보통 남학생 34명, 여학생 32명으로 짜여져 있었는데, 그 가운데 나는 단 한 번도 초콜릿을 받지 못했었다. 그러다 남중에 올라가니 '여학생 동창'은 씨가 말랐고, 남고에 오르니 여학생은 등굣길 버스안에서만 볼 수 있었다. 그나마 대학에 오르니 함께 캠퍼스를 오가며 만나는 폭은 넓혔지만, 정작 '강의실'에 들어서면 또다시 '남탕'에 들어간 듯 했으니, 내 인생에 여자는 씨가 마른 것 같았다.

그런 탓에 난 어릴 적부터 '순정만화'나 '로맨스소설', '로코드라마', '로맨틱영화' 따위를 정말 좋아했다. 물론 지금도 좋아한다. MBC 드라마 <질투>를 시작으로 달달한 러브라인이 주된 줄거리를 가진 드라마/영화는 거의 섭렵하다시피 했다. 정말 녹화까지 떠놓고 '보고 또 보는' 연애박사였다. 그렇게 난 '이론'에 빠삭하고 '실전'에는 약한 청춘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납득(!)'이 가지 않지만 말이다. 참고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사랑의 블랙홀>이다. 참사랑에 눈을 뜰 때까지 계속 되풀이 되는 '시간의 굴레'속에 빠져서 정말이지 제대로 된 '나'를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영화속에선 '여자의 마음까지 사로잡는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뜬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뤘지만, 나는 그 반대가 되고 싶었다. 내 사랑의 깊이를 온전히 느낄 수 있을 때까지 '무한 타임슬립'에 빠진 여자가 주인공이 되는...그런 연출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참나..내 사랑은 너무 하이레벨인가? 아님 최종보스인가? 나를 '클리어'하는 여자 플레이어가 당췌 없어서 탈이다. 알고보면 참 쉬운 남자인데 말이다. 인썰트 코인~(feat. 비트 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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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탕에서 생긴 일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1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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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MXII / 비채 2번째 리뷰] 어제는 어깨(오십견) 치료와 더불어서 팔꿈치(엘보) 치료까지 병행했다. 통증이 심해지니 손가락 끝까지 찌릿찌릿거려서 몹시 힘든 날이었기 때문이다. 당분간 리뷰가 많이 밀릴 것 같다. 담주 연휴를 맞아서 몰아쓰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들쭉날쭉해도 양해해주시길 바란다. 다시 '마스다 미리의 책'이다.

이런 책의 분류는 뭣으로 하면 좋을까? 잡다한 내용이 담겨 있으니 '수필'로 분류하면 제격일 것 같은데, 굳이 '만화'로 분류되었다. 분명 '만화'가 수록되어 있긴 한데, 그보다는 '에세이(수필)'가 더 많이 담겨 있는데 말이다. 이런 분류방식이라면 옛날 구멍가게에서 팔던 '풍선껌'속에 '껌만화'가 수록되어 있으니 '츄잉껌'으로 분류할 것이 아니라 '만화'로 분류해서 서점에서 판매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마스다 미리'가 만화연재를 자주하다보니 이렇게 분류를 한 모양이다. 만화가가 쓴 에세이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을테니, 앞으로도 '마스다 미리의 책'은 만화(웹툰)로 분류하겠다.

그나저나 책제목 덕분에 들고 다니며 읽는 습관을 지닌 나로서는 꽤나 민망하기까지 했다. 보통 출퇴근길이나 공원 산책을 할 때 책을 들고 걸어다니며 읽는다. 대학시절부터 그랬으니 30년이 넘는 습관이다. 그나마 시력이 좋은 편이라 이렇게 읽는 것도 가능하다. 요즘에는 살짝 노안이 와서 '지하공간'이나 '실내'로 들어서면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기도 하다. 그리고 집의 '낮은 조도' 아래에서 책을 읽을 때에도 활자가 한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서 '돋보기'를 쓰고 읽기도 한다. 그런데 돋보기나 안경을 쓰면 오래 읽지 못해서, 지금은 다시 '맨 눈'으로 책을 읽고 있다. 글자가 두 개로 보이긴 하지만 이렇게 읽어야 '눈의 피로도'가 쉬이 오르지 않고 진득하니 오래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암튼 책제목이 <여탕에서 생긴 일>이라서 조금은 민망했다.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손에 들고 다니며 읽는 책이 하필 '여탕'이라니...이걸 집중하면서 읽고 있는 남정네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고 머릿속에 떠오를 적마다 두 볼에 발그레하니 열이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도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까닭은 정작 책 내용은 야시시한 내용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뭐, 목욕탕에서 생긴 일화를 이야기하다보니 여인네들이 샅을 샅샅이 씻는 장면이 아주 없진 않지만, 19금 내용은 전혀 없고 '전체 이용가' 등급이라는 점을 밝혀둔다. 오히려 이런 점을 밝혀서 실망하실 독자분들도 계실 수 있겠지만 말이다.

이 작가가 1969년생이라서 70, 80년대 목욕탕 풍경을 무척이나 생생하게 그려내어 그 시절을 경험한 독자들은 한껏 추억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의 대중목욕탕'과 '일본의 목욕탕'은 다른점도 있겠지만, 상당부분 닮은점도 많이 있었다. 특히 그 시절엔 말이다. 당시엔 집집마다 '욕실'이 딸려 있지 않은 주택이 많았기 때문에 동네마다 '대중목욕탕'이 인기를 끌던 시절이었다. 더구나 뜨거운 물속에 온몸을 푹 담그는 목욕스타일이었기에 집에 욕실이 딸려 있었어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대중목욕탕'을 이용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렇게 많이 이용하던 '공용시설'이었기에 본래의 기능 이외에도 '만남의 장소'로 쓰임새를 확장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특히, 엄마손을 붙잡고 '여탕'에 출입할 수 있었던 '미취학 시절(보통 7살까지)'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한데 섞여서 난리법석을 피우기 일쑤였다. 그래도 그렇게 아이들끼리 정신없이 놀고 있을 때 엄마들이 때를 불리고 때를 밀고 비누칠로 씻고 빨래(?)할 수 있는 짬이었기에 그냥 냅두기도 했다. 그러다 수다까지 다 끝나고 볼일을 마칠 즈음에야 온몸이 쭈글쭈글해진 나는 허연 김이 서린 욕실에서 나와 '바나나 우유(일명 '뚱바')' 앞으로 달려 갔다. 하지만 마실 수는 없었다. 일반우유가 100원 정도인데, 뚱바는 그 당시에도 150원, 200원에 육박했기 때문이다. 목욕비도 아낄려고 초등2학년까지 '소인(미취학아동) 요금'을 내고 버텼는데, 2배나 비싼 노란우유를 맛볼 수 있는 기회는 애초에 있을 턱이 없었다. 그렇게 엄마손에 끌려서 '여탕'에 들락거리다가 아빠손으로 갈아타게 된 계기는 '초등 3학년'에 막 올라간 3월에 '같은 반 여학생'을 만났기 때문이다. 나는 아는 얼굴을 만나서 반갑게 인사했는데, 그 여학생이 시선을 회피하고 엄마몸 뒤로 숨어버렸는데, 더 민망한 건 그아이의 엄마도 수건으로 '내 시선'을 막으려 온몸을 가리기 바빴다는 점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여탕'을 들어갈 수 없었다.

그렇게 아빠손을 잡고 들어간 '남탕'은 여탕과 완전 딴판이었다. 내 또래 아이들도 있긴 했지만 아주 적었고, 그나마 아저씨손에 붙들려서 찍소리도 못하고 얌전하게 앉아서 씻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무서웠던 건 동네 할아버지들이었다. 자신들은 온탕에 들어가서 목청껏 노래를 불러재끼면서 아이들이 달리기라도 하면 큰소리로 야단을 치셨고, 냉탕에서 수영을 하고 있으며 조용히 하라며 "요즘 젊은 것들은 예의가 없어서 탈이야. 말세다, 말세야"라는 레파토리를 돌아가면서 읊으셨다. 그 덕분에 남탕은 '공포의 집' 저리 가라였다.

그러다 남탕이 즐거워진 까닭은 동네친구들과 형들이 함께 우르르 관광을 하듯 목욕을 하러 가기 시작하면서였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 형의 인솔로 올망졸망 열댓 명의 아이들이 대중목욕탕을 향하는 광경은 참으로 볼만할 정도였다. 그리고 들어서자마자 '체중계'에 올라 서로의 몸무게를 재고, 온탕의 온도를 발가락으로 체크하고, 뜨거운 김을 뿜어내는 한증막을 1초컷으로 들어갔다 나오면서 목욕은 시작되었다. 목욕 순서는 딱히 없었다. 냉탕과 온탕을 왔다갔다 신나게 놀다보면 때는 불다못해 문지르면 바로 밀릴 지경이었고, 그 정도로 밀리면 둘씩 짝을 지어서 '쓰다가 버린 때수건'을 챙겨서 서로의 몸을 밀었다. 그렇게 한바탕 소리와 비명을 지른 뒤 몸에 붙은 때를 온탕에서 막퍼온 바가지물로 '물싸대기' 때리듯 뿌리고 나면 목욕은 끝이 났다.

이 책속의 에피소드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내 추억'을 꺼낼 수 있어서 즐거웠다. 단지 '내 미소'를 본 이들이 <여탕에서 생긴 일>이란 책 제목을 보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싶을 뿐이다. 여자들이 발가벗은 내용이 담겨 있긴 하지만, '야한 이야기'는 없다. 그러니 몰래 보고 그럴 필요가 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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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레벨업 2
추공 지음, 이백 그림 / 파피루스(디앤씨미디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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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MXI / 파피루스(디앤씨미디어) 2번째 리뷰] 애니메이션으로 먼저 접하고서 '원작소설'을 읽으니 행간 사이마다 '미장센'이 펼쳐지는 느낌이 든다. 애니의 스토리에서는 짐작할 수 없었던 '비약적인 전개'로 인한 빈틈도 차곡차곡 메꿀 수 있었고 말이다. 암튼 2권의 주요 내용은 성진우의 '전직'과 '시스템의 비밀'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레벨업'을 위한, '레벨업'에 의한 배경일 뿐이고 말이다. 그리고 그 결말은 단초는 성진우 캐릭터가 왜 끝없는 레벨업을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풀리는 것으로 대단원을 내릴 것이다. 내가 애니메이션 시청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원작소설'을 구매하게 된 까닭도 바로 그 결말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차차 밝혀질테니 서두르지는 말고 즐겨보련다.

성진우가 '전직 퀘스트'를 어렵사리 성공하고서 선택한 직업은 바로 '네크로멘서'다. 흔히 '해골과 망령의 군주'로 불리는 마법계열 직업인데, 당황스럽게도 성진우가 '전직 퀘스트'를 수락하기 이전까지는 '전투계열'이었다는 점이다. 주로 쓰는 무기도 '단검' 종류였고, 스킬도 '암살계열'이었다. 그런데 전직을 하고 선택할 수 있는 '직업란'에 마법계열이라니, 게임 좀 해본 이라면 누구라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에 대개는 '전직'을 포기하거나, 계정을 삭제하고 다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냐면 전투계열의 직업은 '근력 / 민첩 / 체력' 스탯을 주로 올리기 마련인 까닭이다. 상대적으로 '지능 / 감각' 스탯은 소홀히하기 일쑤다. 물론 전투계열이라도 '스킬'을 주로 쓰는 캐릭터인 경우에는 '지능 수치'가 높아야 하지만, 그래도 웬만해서는 올리지 않고 적은 량의 '마나'라도 저절로 채워지게 구성하기 때문이다. 고레벨이 될수록 올릴 수 있는 '스탯 수치'는 귀해지기 마련이라 저레벨일 때 '집중투자'를 해야 고레벨이 되었을 때 손해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진우는 '전투계열의 전직'을 예상하고, '근력'에 집중투자하는 선택적 편향성을 노골적으로 보였는데, 막상 '퀘스트'를 성공하고 나니, 마법계열 전직이 떠버렸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성진우는 자신이 끝없이 레벨업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 '네크로멘서'로 전직을 선택했다. 왜 그랬을까? 현재 20레벨을 막 넘긴 시점의 전직이 불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성진우의 레벌업은 어디까지가 '한계치'인지 가늠할 수 없다. 보통의 헌터들은 S급이 '최고치'이지만, 성진우는 그 S급을 넘어서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에 초기에 집중투자한 '근력 / 민첩 / 체력'의 스탯 수치는 헛되이 낭비한 것이 아니라 '하나 뿐인 생명'을 유지하는데 아주 좋은 투자인 셈이다. 그리고 부족한 '지능 / 감각' 스탯은 고레벨을 달성하면서 차곡차곡 쌓아올리면 된다. 어차피 '레벨의 상한선'이 없는 캐릭터로 재각성한 것 같으니 말이다. 물론 이런 짐작이 맞는지 틀린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장점이 있다. 대부분의 '마법계열' 헌터는 높은 공격력에 비해서 형편없는 방어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지켜줄 '호위 캐릭터'가 없다면 대책없이 무너지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성진우는 그런 염려가 없다. '네크로멘서' 직업으로 불러들인 '어둠의 병사들'이 자신을 지켜줄 호위무사가 되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진우는 애초에 '전투계열'로 각성한 탓에 혼자서도 '접근전'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전투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끝없는 레벨업으로 '독자적인 전투능력치'도 꽤나 높아서 호위무사가 있으면 좋고, 없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만능캐릭터'로 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완벽한 '전직 퀘스트'를 클리어했기에 엄청난 보너스까지 받게 되었다. 그래서 곧바로 '2차 전직, 그림자군주'로 전직 업그레이드까지 할 수 있었다. 이젠 소환할 수 있는 캐릭터가 '그림자 형태'로 소환이 되어, 마음대로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소환'하는 능력까지 갖추게 되었다. 이는 성진우의 전투스타일을 상대가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앞으로 S급을 넘어서는 능력을 소유하면서도, '전용스킬'과 '전투스타일'까지 예측불허하게 만들고, 설령 예측하였다고 해도 도저히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게 만드는 엄청난 능력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물론 아직은 쪼렙 캐릭터에 불과하다.

이제 성진우에게 필요한 것은 더욱더 '레벨업'이다. 현재 30레벨이 못되는 시점에서 '그림자군주'는 큰 힘을 발휘할 수 없다. 더구나 마법계열 전직을 예상하지 못하고 전투계열 스타일로 '스탯'과 '스킬'을 쌓은 것이 패착이었다. 물론 고레벨을 달성하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애매한 현재 레벨로는 한순간에 위험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성진우에게 C급 게이트를 서둘러서 공략하는 것은 아주 중요해졌다. 한시라도 레벨업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송이라는 E급 각성자이자 초보 헌터라는 혹이 생기고 말았다. 자신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인데 코흘리개까지 챙기고 뒤치닥거리할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이게 또 '레드 게이트' 공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운이 따랐다. 바로 백호 길드 '신입 교육 던전'에 참여했다가 협회의 마력 계측 실수로 인해 C급 게이트에서는 발생할 수 없는 '레드 게이트'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이 게이트에 성진우와 한송이가 참가하게 되었고 말이다.

성진우로서는 '레벨업'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은 셈이다. 단지 '보는 눈'이 많다는 점이 참이었는데, 어차피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비상상황'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에 성진우는 '레드 게이트' 안에서 전직한 직업의 능력을 마음껏 뽐내게 된다. '레드 게이트'는 형성되는 순간 '외부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고, 레드 게이트 안으로 들어간 헌터가 '보스'를 처지하거나 '던전 브레이크'가 되지 않은 한 나갈 수도 없는 '완전 차단된 공간'이 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성진우는 새로 얻은 '그림자군주'의 실력을 마음껏 뽐낸다. 물론 아직 충분한 '레벨업'을 하지 못한 탓에 간신히 클리어 했지만, 같이 들어 갔던 A급, B급 헌터조차 성진우의 능력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 수준으로 보일 정도로 월등히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제 성진우는 레벨 50 정도이고, 거의 S급과 맞먹을 정도의 실력을 쌓은 셈이다.

한편, 미국에서는 마수들이 나오는 게이트에서 '인간'이 출현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 사람의 정체는 바로 '성일환', 바로 '성진우의 아버지'다. 10년 전에 게이트가 나타났던 초기에 각성해서 마수와 싸우다가 행방불명이 되었던 바로 그 사람이다. 성일환은 등장하자마자 심상찮은 발언을 한다. 마수니, 게이트니, 이런 건 더 끔찍한 전쟁의 서막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그러니 인간들은 힘을 모아 그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데 '황동수 헌터'와 시비가 붙어서 만나자마자 대판 싸우게 된다. 그 까닭은 바로 황동수의 형, 황동석의 죽음이 성진우가 관련이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성진우의 아버지가 바로 눈 앞에 나타났으니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승패는 싱겁게 끝났다. 황동수의 완패, S급끼리의 전투는 '핵전쟁'에 비유할 정도로 주변을 초토화시키는 어마어마한 피해를 불러 일으킨다. 그런데 성일환은 아주 간단하게 황동수를 제압하고 유유히 사라진 것이다. 자신의 아들을 만나러 한국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는 경고만 남기고 말이다. 어이 없게 패배한 황동수는 자신의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을 확인하고도 복수를 다짐한다. 그리고 부족한 능력치는 '아티팩트'로 채울 생각을 하고서 말이다.

마침맞게 성진우도 '악마성'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엄청난 레벨업과 함께 새로 얻은 '아티팩트'로 엄청난 능력치 향상을 꾀할 것이다. 그리고 유진호는 유진 길드를 창설하기 위해서 성진우를 영입하라는 아버지의 조건을 받아들이는데, 끝없이 올라가는 레벨업은 또 어떤 이야기를 전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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