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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탕에서 생긴 일 ㅣ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1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3월
평점 :
[My Review MMXII / 비채 2번째 리뷰] 어제는 어깨(오십견) 치료와 더불어서 팔꿈치(엘보) 치료까지 병행했다. 통증이 심해지니 손가락 끝까지 찌릿찌릿거려서 몹시 힘든 날이었기 때문이다. 당분간 리뷰가 많이 밀릴 것 같다. 담주 연휴를 맞아서 몰아쓰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들쭉날쭉해도 양해해주시길 바란다. 다시 '마스다 미리의 책'이다.
이런 책의 분류는 뭣으로 하면 좋을까? 잡다한 내용이 담겨 있으니 '수필'로 분류하면 제격일 것 같은데, 굳이 '만화'로 분류되었다. 분명 '만화'가 수록되어 있긴 한데, 그보다는 '에세이(수필)'가 더 많이 담겨 있는데 말이다. 이런 분류방식이라면 옛날 구멍가게에서 팔던 '풍선껌'속에 '껌만화'가 수록되어 있으니 '츄잉껌'으로 분류할 것이 아니라 '만화'로 분류해서 서점에서 판매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마스다 미리'가 만화연재를 자주하다보니 이렇게 분류를 한 모양이다. 만화가가 쓴 에세이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을테니, 앞으로도 '마스다 미리의 책'은 만화(웹툰)로 분류하겠다.
그나저나 책제목 덕분에 들고 다니며 읽는 습관을 지닌 나로서는 꽤나 민망하기까지 했다. 보통 출퇴근길이나 공원 산책을 할 때 책을 들고 걸어다니며 읽는다. 대학시절부터 그랬으니 30년이 넘는 습관이다. 그나마 시력이 좋은 편이라 이렇게 읽는 것도 가능하다. 요즘에는 살짝 노안이 와서 '지하공간'이나 '실내'로 들어서면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기도 하다. 그리고 집의 '낮은 조도' 아래에서 책을 읽을 때에도 활자가 한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서 '돋보기'를 쓰고 읽기도 한다. 그런데 돋보기나 안경을 쓰면 오래 읽지 못해서, 지금은 다시 '맨 눈'으로 책을 읽고 있다. 글자가 두 개로 보이긴 하지만 이렇게 읽어야 '눈의 피로도'가 쉬이 오르지 않고 진득하니 오래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암튼 책제목이 <여탕에서 생긴 일>이라서 조금은 민망했다.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손에 들고 다니며 읽는 책이 하필 '여탕'이라니...이걸 집중하면서 읽고 있는 남정네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고 머릿속에 떠오를 적마다 두 볼에 발그레하니 열이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도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까닭은 정작 책 내용은 야시시한 내용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뭐, 목욕탕에서 생긴 일화를 이야기하다보니 여인네들이 샅을 샅샅이 씻는 장면이 아주 없진 않지만, 19금 내용은 전혀 없고 '전체 이용가' 등급이라는 점을 밝혀둔다. 오히려 이런 점을 밝혀서 실망하실 독자분들도 계실 수 있겠지만 말이다.
이 작가가 1969년생이라서 70, 80년대 목욕탕 풍경을 무척이나 생생하게 그려내어 그 시절을 경험한 독자들은 한껏 추억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의 대중목욕탕'과 '일본의 목욕탕'은 다른점도 있겠지만, 상당부분 닮은점도 많이 있었다. 특히 그 시절엔 말이다. 당시엔 집집마다 '욕실'이 딸려 있지 않은 주택이 많았기 때문에 동네마다 '대중목욕탕'이 인기를 끌던 시절이었다. 더구나 뜨거운 물속에 온몸을 푹 담그는 목욕스타일이었기에 집에 욕실이 딸려 있었어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대중목욕탕'을 이용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렇게 많이 이용하던 '공용시설'이었기에 본래의 기능 이외에도 '만남의 장소'로 쓰임새를 확장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특히, 엄마손을 붙잡고 '여탕'에 출입할 수 있었던 '미취학 시절(보통 7살까지)'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한데 섞여서 난리법석을 피우기 일쑤였다. 그래도 그렇게 아이들끼리 정신없이 놀고 있을 때 엄마들이 때를 불리고 때를 밀고 비누칠로 씻고 빨래(?)할 수 있는 짬이었기에 그냥 냅두기도 했다. 그러다 수다까지 다 끝나고 볼일을 마칠 즈음에야 온몸이 쭈글쭈글해진 나는 허연 김이 서린 욕실에서 나와 '바나나 우유(일명 '뚱바')' 앞으로 달려 갔다. 하지만 마실 수는 없었다. 일반우유가 100원 정도인데, 뚱바는 그 당시에도 150원, 200원에 육박했기 때문이다. 목욕비도 아낄려고 초등2학년까지 '소인(미취학아동) 요금'을 내고 버텼는데, 2배나 비싼 노란우유를 맛볼 수 있는 기회는 애초에 있을 턱이 없었다. 그렇게 엄마손에 끌려서 '여탕'에 들락거리다가 아빠손으로 갈아타게 된 계기는 '초등 3학년'에 막 올라간 3월에 '같은 반 여학생'을 만났기 때문이다. 나는 아는 얼굴을 만나서 반갑게 인사했는데, 그 여학생이 시선을 회피하고 엄마몸 뒤로 숨어버렸는데, 더 민망한 건 그아이의 엄마도 수건으로 '내 시선'을 막으려 온몸을 가리기 바빴다는 점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여탕'을 들어갈 수 없었다.
그렇게 아빠손을 잡고 들어간 '남탕'은 여탕과 완전 딴판이었다. 내 또래 아이들도 있긴 했지만 아주 적었고, 그나마 아저씨손에 붙들려서 찍소리도 못하고 얌전하게 앉아서 씻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무서웠던 건 동네 할아버지들이었다. 자신들은 온탕에 들어가서 목청껏 노래를 불러재끼면서 아이들이 달리기라도 하면 큰소리로 야단을 치셨고, 냉탕에서 수영을 하고 있으며 조용히 하라며 "요즘 젊은 것들은 예의가 없어서 탈이야. 말세다, 말세야"라는 레파토리를 돌아가면서 읊으셨다. 그 덕분에 남탕은 '공포의 집' 저리 가라였다.
그러다 남탕이 즐거워진 까닭은 동네친구들과 형들이 함께 우르르 관광을 하듯 목욕을 하러 가기 시작하면서였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 형의 인솔로 올망졸망 열댓 명의 아이들이 대중목욕탕을 향하는 광경은 참으로 볼만할 정도였다. 그리고 들어서자마자 '체중계'에 올라 서로의 몸무게를 재고, 온탕의 온도를 발가락으로 체크하고, 뜨거운 김을 뿜어내는 한증막을 1초컷으로 들어갔다 나오면서 목욕은 시작되었다. 목욕 순서는 딱히 없었다. 냉탕과 온탕을 왔다갔다 신나게 놀다보면 때는 불다못해 문지르면 바로 밀릴 지경이었고, 그 정도로 밀리면 둘씩 짝을 지어서 '쓰다가 버린 때수건'을 챙겨서 서로의 몸을 밀었다. 그렇게 한바탕 소리와 비명을 지른 뒤 몸에 붙은 때를 온탕에서 막퍼온 바가지물로 '물싸대기' 때리듯 뿌리고 나면 목욕은 끝이 났다.
이 책속의 에피소드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내 추억'을 꺼낼 수 있어서 즐거웠다. 단지 '내 미소'를 본 이들이 <여탕에서 생긴 일>이란 책 제목을 보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싶을 뿐이다. 여자들이 발가벗은 내용이 담겨 있긴 하지만, '야한 이야기'는 없다. 그러니 몰래 보고 그럴 필요가 없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