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영웅들이 세계를 구하는 방법
이소연 지음 / 비일비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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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IV / 비일비재 1번째 리뷰] 마블 영웅들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어벤져스 : 엔드 게임> 이후로 그 인기는 점점 시들해지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세계관이 점점 확장하면서 마블히어로들은 '이상한 행보'를 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의 행보가 아주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백인 일색의 히어로들'에서 '유색인종 히어로들'이 등장하고, '소수인권'을 보호하는 영웅들의 서사가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캡틴 마블>의 히어로는 백인이긴 하지만 '여성 히어로'라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 이전에도 여성 히어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당당히 주인공으로 나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언맨 2>의 '블랙 위도우'가 그렇다. 나중에 '엔드 게임' 이후에 영화상영을 하긴 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간판'을 일찍 내리는 수모를 겪었다.

왜 여성 히어로가 등장하자마자 비판을 받은 걸까? 여성은 지구를 구하는 영웅으로 적합하지 않기 때문인가? 하긴 '엔드 게임'에서도 캡틴 마블은 뒤늦게 등장하긴 했지만 등장하자마자 '게임 체인저' 역할을 했고, 아예 '전쟁 종결'을 확정 짓기까지 할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선보였다. 그렇게 능력이 뛰어나지 초반부터 나올 수(?) 없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토록 강력한 능력의 소유자가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배우라며 맹비난을 받더니, 영화내용에서조차 '우주인 난민 보호'라는 헛짓거리를 한다며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이런 내용은 <더 마블스>에서 더욱 짙어졌다. 여기 등장하는 <미즈 마블>의 주인공은 '인도-파키스탄 난민 후손'이기까지 했다. 이렇듯 '소수자들을 위한 영웅'의 등장은 마블 영화팬들에게 마냥 반가운 일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세계관의 확장은 당연한 일 아닌가? 인권은 '특정 인종'과 '특수 계층'만을 위해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으로 확대되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소수자'이면서 '약자'인 사람에게도 인권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히어로 배역'이 주어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은 것은 'MCU의 세계관 확장'이 설득력을 갖추지 못한 '일방적'이었다는 점에서 그럴 수도 있다는 쪽으로 선회하게 만든다. 왜냐면 '엔드 게임' 이후의 마블영화들이 하나같이 '복잡한 서사'를 갖고 있고, 단 한 번의 영화관람으로 그 서사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심지어 여러 번 돌려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오히려 '엔드 게임'에 등장했던 빌런들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릴 정도다. 타노스가 전 우주의 생명체를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주는 '공멸'할 수밖에 없다면서 생명체가 거주하는 행성을 방문(?)하며 학살을 자행한다. 누가 봐도 '학살'은 나쁜 짓이니 타노스는 '악당'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런 악당이 저지르는 행위가 묘하게도 '설득력'을 갖췄다. 왜냐면 당장 지구에서조차 '인간'이 너무 많아서 몸살을 앓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80억 인류를 지구는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는 시점에서 '타노스의 주장'은 묘한 공감을 선사한다. 그런데 쉽게 동의할 수는 없다. 과연 40억 인류를 학살할 명분이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명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누구'를 명단에 올릴 수 있겠는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작위 학살'밖에 없다. 그런데 인류 역사를 되짚어봐도 그런 적이 있었던가? 정말 '무작위'였었나? 여기에 '약육강식'이라는 무시무시한 논리가 작동한다는 끔찍한 설계가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타노스'가 튕긴 손가락으로 타노스 쪽 군대도 절반이 날아가 버린 것은 사실이다. 허나 이를 지켜보면서 '공평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들조차 '자발적 희생'이 아니라 '무원칙 학살'의 희생자였기 때문에 마음속에선 화를 감추지 못했을 것이다. 단지 '타노스의 힘'이 무서워서 감히 말을 하지 못한 것일 뿐이었다.

한편, '캡틴 마블'이 갖고 있는 힘을 빼앗기 위해서 '크리인들'은 자신들의 역량을 총동원했다. 그렇게 앞선 기술력으로 전우주를 점령하고 식민지로 삼아 학살을 자행했으면서도 반성이라는 것을 모르고 계속 그짓거리를 한다. 그래서 캡틴 마블이 '각성'한 뒤에 크리인들의 인공지능을 박살내버렸다. 그 사이에 지구를 침공한 타노스가 손가락을 튕기는 바람에 '또 다른 학살'은 막지 못했고 말이다. 만약, 그 손가락에 캡틴 마블마저 사라졌으면 어쩔 뻔 했겠는가? 암튼, 크리인들의 잔혹한 통치에 희생을 당해서 우주 난민 처지로 전락한 이들이 바로 '스크럴인'들이다. 이들의 외모가 끔찍하고, 감쪽같은 변장술(?)은 기분 나쁠 정도지만, 그런 이유로 그들을 학살할 권리가 온당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래서 그런 불쌍한 이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은데, 막상 도우려니 이게 또 쉽지 않다. 학살자 크리인들이 주장한 것이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싶은 것이다. 만약 '스크럴의 변신'이 악용되어 크리인들이나 인간의 '지도자 행세'를 한다고 생각해보면, 그들의 능력을 마냥 반길 수만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평화롭게 공존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지만, 눈 뜨고 당할 '위협(?)'이 아주 없고, 또 그런 '안전'을 위해하지 않고 '평화'를 보장하겠다는 말을 누가 보증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이렇듯 아주 민감한 주제로 'MCU'가 확장을 하자 마블영화를 편하게 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이 책에서는 언급하지 않지 않았지만, 올해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 : 브레이브 뉴 월드>에서는 '흑인 영웅(팔콘)'이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로 등장했다. 일단 성공적인 데뷔로 마감하긴 했지만, 과연 '흑인'이 미국을 지키는 영웅이라는 것을 얼마나 반길지는 앞으로 '미지수'일 것이다. 백인 영웅은 이런 고민 따윈 하지 않겠지만, 흑인 영웅은 그런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 현재의 미국이다. 비단 미국만의 '시선'은 아니다. 전세계인들이 열광하던 '마블 영웅'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마블 영화는 '엔드 게임'으로 종결되었다는 목소리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런 시점에서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저 심심풀이로 보던 '마블 영화'에 이토록 심오한 인문학적 관찰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줄 것이다. '계몽'은 이럴 때나 쓰는 말인데...

사족이지만, <이터널스>에 대한 이 책의 명쾌한 설명은 얼마간 도움이 되긴 했다. 엔드 게임에도 참여하지 않은 '신들의 이야기'에 타당한 이유를 선사하긴 했지만, 애초에 '인류'를 파멸로 이끌기 위해 존재했던 히어로 서사물을 만들어서 무엇하려 한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점으로 남았다. 마동석이 맡았던 '길가메시'의 대사가 너무 인상적이지 않던가. "우리가 영웅인줄 알았는데, 악당이었네"...이런 서사를 만들어놓고 과연 <이터널스 2편>을 기대할 수 있을까? 나온다 한들, '만들어진 신들'이기에, 또 다른 '종결자(터미네이터) 이터널스'가 등장할 뿐일텐데 말이다. 당췌 이해할 수 없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행보에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세계관의 확장'을 시도하는 것에는 환영한다. 비록 지금 시점에서는 '불편한 것들' 투성이일지라도 그런 불편함을 감수해낼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새는 알에서 태어난다'는 <데미안>의 문구를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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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7 - 새로운 나라 미국의 탄생과 위기 극복 벌거벗은 세계사 7
최호정 그림, 김우람 글, 김봉중 감수,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기획 / 아울북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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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III / 아울북 30번째 리뷰] 미국이 이상해지고 있다. 비단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다들 이상하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상한 지도자들에게도 한결같은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자국이기주의'를 무한대로 늘리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세계화'를 외치며 전세계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만들어 '자유무역'을 확대하자고 똘똘 뭉치더니, 어느 순간부터 '자유무역'에 대해서 손절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미국이고 말이다. 더구나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재선을 하자마자 '관세카드'를 꺼내들고 연일 경제적 압박을 하고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GA, Make America Great Again)'는 구호를 내세우며 미국 안에 '공장'을 세우지 않으면 미국은 '무역적자'를 면치 못할테니, 미국에 물건을 팔고 싶으면 미국인 노동자를 고용해서 미국인들을 부자로 만들든지, 아니면 '관세폭탄'을 받든지, 알아서 설설 기어라라는 고압적인 자세로 날마다 엄포를 늘어놓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미국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정책인 것인지 잘 모르겠다. 무역이라는 것이 '서로 이익'을 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지, '일방적인 이익'을 내는 쪽이라면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뭐, 당장이야 초강대국 미국에게 어깃장을 대놓고 놓을 나라는 없을 테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꼴랑 4년밖에 안 될 것인데, 막상 미국내 공장을 짓겠다고 하더라도 '실효성'이 있을 것인지 의심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껏 공장을 지었더니 그에 상응하는 '이익'을 얻을 수 없거나, 경제정책 기조가 바뀌기라도 하면 '막대한 손실'을 볼 수도 있을테니 어쩔 수 없이 신중한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기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어디로 튈지 예상도 되지 않는 인물인데, 막말처럼 내뱉은 말을 그저 밀어붙이기만 하고 있으니, 전통적인 미국 동맹국들조차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과연 미국의 이런 정책들이 향후 전세계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 것인지 궁금해진다.

미래가 궁금해지면 어쩔 수 없이 '과거'를 되돌이켜 보아야 한다. 현재시점이 '과거의 미래'로 가정한다면 과거시점은 '과거의 현재'일 수 있으니,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되돌이켜 보는 것으로 미래의 역사가 어떻게 만들어가는지 '예측가능한 검증'을 시도해볼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를 어느 정도 예측가능한 미래로 가정하고, 조금이나마 불확실성을 낮추고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마련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초강대국 미국'이 만들어진 과정을 살펴보고, 미국의 앞날을 점쳐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점쳐본 미래가 꼭 맞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아주 틀리다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면 우리네 역사가 완전 똑같지는 않지만 늘 '반복적인 모습'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공부는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이 책 <벌거벗은 세계사 7>에서는 미국의 탄생과 경제 발전, 그리고 대공황의 극복까지 다루고 있다. '미국 혁명'이라고도 불리는 미국의 독립전쟁 과정은 세계 최초의 '대통령제 국가'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받아 자유와 평등의 사상을 바탕으로 세상에 없던 새 나라를 건국했지만, 어렵사리 건국한 초창기의 미국은 가시밭길이 매우 험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은 '명백한 운명'이라는 계시를 받은 듯이 영토를 넓혀가며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가히 '신의 축복'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광활한 대륙과 비옥한 토지를 바탕으로 미국인들의 마음속에 '프론티어 정신'을 심어주게 된다. 단순한 '도전정신'을 넘어선 미국인만의 자부심이 녹아 있는 사상으로 자리매김을 한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은 경제발전의 길목에서 '남북전쟁'이라는 위기를 맞이 한다. '노예제도 존폐 문제'로 촉발되었다고도 오해하지만, '노예 해방'이 주목적은 절대 아닌 '미국내 경제문제'로 인한 갈등이 심화된 탓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라고 보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링컨 대통령이 당선될 당시의 미국은 남북으로 첨예한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미국의 남부는 전통적으로 '목화 농장'과 같은 농경을 주력산업으로 하고 있었기에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서라도 '노예제도'가 절실히 필요했다. 이에 반해 미국의 북부는 공장제 산업이 급속히 발달하여 날마다 '공산품'이 쏟아져 나오던 때였다. 이렇게 물품이 많이 양산된 경제체제에서는 물건을 소비할 수 있는 '노동자 확보'가 절실했다. 그래서 무일푼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예를 없애는 것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이렇게 미국내에서는 상반된 시선을 갖고 있을 즈음, 유럽에서는 '노예해방'을 주장하는 사상가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과거 제국주의시절의 폐해에 대한 일련의 반성적 분위기가 싹 튼 것인데, 문명을 전파하는 입장에서 비윤리적인 노예제도를 개선하고자 하는 의식이 싹트고 있던 시절이었기에 미국내에서도 이런 분위기에 동조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져 간 것이다.

하지만 미국 남부의 농장주들은 반갑지 않은 분위기였다. 힘든 노역을 값싼 노동력으로 착취할 수 있는 '노예제도'를 반대한다면 애써 재배한 '생산물'을 유럽에 수출하는 것으로 경제적 부를 유지하던 남부 농장주들에겐 큰 타격이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내에서 '노예제도 폐지'에 대한 여론이 점점 늘어나자 '남부 7개주'가 연방 탈퇴라는 강한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에 '미국의 분열'을 방관할 수 없었던 링컨 대통령은 전쟁을 선포했다. 하지만 전쟁 초기에는 '북부군'이 불리했다. 전쟁물자는 풍족했으나 전쟁을 지휘할 지휘관들이 대부분 '남부 출신'이라 남부군을 지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은 어파피 '물량공세'를 이길 수 없는 법이다. 전황은 다시 북부군에게 유리하게 돌아섰다. 그러자 남부군은 '유럽'에 군사지원요청을 한다. 영국과 프랑스의 도움을 받는다면 '북부군'은 양쪽에서 협공을 받아 불리해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링컨 대통령은 그 유명한 '노예해방선언'을 해버린다. 당시 유럽에선 '노예제도 폐지론'이 우세했는데, 미국내 전쟁에서 '노예제도'를 찬성하는 남부군을 돕게 된다면 여론의 뭇매를 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링컨의 예상은 적중했고, 유럽은 '남북전쟁'에 불참하게 된다. 그렇게 '게티스버그 전투'를 승리하며 전쟁은 북부가 차지하게 된다. 이로써 '노예제도 폐지'는 명문화하게 된다.

그렇지만 진정한 노예해방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실현되지 못한다. 법률상으로는 '흑인노예'는 있을 수 없었지만, 법률의 빈틈을 노리고 '흑인노예'는 계속 존속했으며, '흑인'은 미국시민권이 없다는 법률 판결을 내세워서 흑인들의 인권은 오래도록 보장받지 못했다. 이런 암울한 현실속에서 미국내 '흑백갈등'은 점점 고조되었고, 지금까지도 미국은 '인종차별'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한다. 프론티어 정신에 이은 '뉴프론티어 정신'으로 미국인들의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고 결국엔 우주정복까지 해낼 기세였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를 거두고서 새로운 '패권국가'로 거듭난 미국은 대영제국의 뒤를 이어 명실상부한 '세계제일 강대국'으로 등극하게 된다. 그리고 맞이한 경제호황은 미국인들에게 엄청난 부를 안겨 준다. 하지만 그런 호황은 오래가지 못한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유럽의 경제 사정'이 차츰차츰 나아지면서, 미국에서는 '과잉생산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농업은 말할 것도 없고 공장 산업에서 쏟아지는 물품이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가는 기세가 점점 꺾여나갔기 때문이다. 주식 투자 붐이 일 때는 '사는 족족, 대박 행진'을 거듭했지만, 경기가 한풀 꺾이자 주식 시장에는 '거품'이 끼기 시작했다. 판매는 점점 감소하는데 투자는 계속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거품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꺼지기 시작하자 주가는 겉잡을 수 없이 곤두박질을 쳤고, 급기야 '검은 목요일' 사태가 발생했다. 이튿날 떨어진 주가에 '사자 열풍'으로 반등을 하기도 했지만, 주말이 지나고 월욜이 되어 뒤늦게 소식을 접한 투자자들의 투매현상이 일어나면서 주가는 다시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다. 이를 감당하지 못한 수많은 공장들은 문을 닫았고, 은행은 대출금을 돌려받지 못해 파산해버렸다.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된데다 저축한 돈마저 잃어버리고 투자한 주식은 휴짓조각이 되어 버리니 미국의 경제는 폭망해버렸다. 이를 '대공황'이라고 한다.

미국발 경제대공황은 전세계로 뻗어나갔다. 그나마 식민지를 갖고 있던 '제국주의 국가들'은 자신들이 받을 경제적 타격을 식민지인들에게 떠넘기는 방식으로 어찌어찌 버텼지만, 그마저도 없었던 '신흥제국주의국가'들은 여지없이 경제적 타격을 받게 되었다. 이때 의외로 경제대공황을 잘 버티던 국가가 바로 '소비에트 연방국가'였으니, 공산주의국가들이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비웃으며 자신들의 우위를 자랑할 수 있는 호시절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런 호시절도 오래 가지 못했다. 미국의 경제대공황은 '뉴딜 정책'으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뉴딜 정책'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만능열쇠를 제공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물꼬를 마련하고, 경제회복의 신호탄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자본주의가 '회생할 수 있다'는 능력을 선보여 준 셈이다. 이에 반해 공산주의는 '제자리걸음'으로 더 큰 경제성장을 보여주지 못하고 답보상태에 빠져버렸고, 곧이어 터진 '제2차 세계대전'으로 전세계는 다시 재편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전쟁이 끝난 뒤에 이어진 '냉전'은 경제체제를 양극화시켰고, 그 양극단에 있는 '이데올로기(이념) 대결 양상'으로 20세기 내내 크고 작은 전쟁을 일삼더니, 1990년대 공산주의는 완전한 패배를 선언하고 말았다. 소련연방이 해체되었고, 독일은 통일되었다. 그리고 맞이한 21세기는 바야흐로 '미국의 패권주의'가 판을 치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미국의 패권도 종종 흔들렸다. '팍스 아메리카나'로 영원할 것 같았지만 '9·11 테러', '금융위기사태', '아프가니스탄 패전' 등등 미국의 위상을 깎아내리는 일련의 사건들이 줄기차게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트럼프 시대'가 도래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가장 예측불가한 '지도자'가 미국의 행정부를 장악해버린 셈이다. 이제 미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비해야 한다. 그 대비에 따라서 우리의 미래가 결정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만 하고 있을 것도 아니다. 위기는 곧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미국에 대해서 철저히 공부하고 대비한다면, '미국발 위기'가 위기만은 아닐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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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9 - 인류 최악의 전염병과 바이러스 벌거벗은 세계사 9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기획, 이현희 글, 최호정 그림, 송대섭.장항석 감수 / 아울북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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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II / 아울북 29번째 리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인류는 '전염병과 바이러스'에 관한 관심도 부쩍 늘어났고, 새로운 질병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초등학생도 '감염병 대유행'에 대한 지식도 많이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질병에 대해서 '대처방법'까지도 잘 알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르다. 팬데믹이 지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올해 '독감대유행'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장소에선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에티켓을 잘 지키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기침예절'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잘 지켜지지 않는 장면도 상당히 많이 볼 수 있다. 가뜩이나 '탄핵정국'이라 대규모 집회를 빈번하게 치루고 있는 요즘인데, 자칫 '대규모 감염'이 다시 일어나게 된다면 지난 팬데믹 때와는 달리 속수무책으로 전염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는 다시 한 번 '감염경로'를 상기시키고 '마스크와 손씻기' 같은 위생수칙을 지켜나가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그럼 우리는 인류를 위협한 전염병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과거의 사례를 살펴보면 '전염병'이 대유행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질병으로 고통을 받다가 죽었다는 기록이 상당히 많다. 고대 로마제국을 멸망에 이르게 한 전염병은 '말라리아'였단다. 이탈리아 반도의 늪지대가 확대되면서 늘어난 인구수를 감당하지 못하고 불결한 지역까지 거주지를 늘려나가는 바람에 모기의 창궐을 방치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말라리아'에 감염되어 넓은 지역으로 전염시켰고, 그로 인해서 로마제국은 인구절감으로 인해 외적의 침입을 막아내지 못했고, 경제도 위축되면서 끝내 멸망했다고 한다. 물론 말라리아가 직접적인 멸망 원인이 될 수는 없었겠지만, 수많은 원인 가운데 하나로 작용하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단다.

또한, 14세기 중세유럽 인구의 1/3을 사망케 한 전염병은 '흑사병 대유행'이었다. 쥐벼룩이 옮기는 '페스트균'에 의해서 온몸이 타들어가는 듯 '까맣게 죽어가는 병'으로 '블랙 데쓰'로 불리기도 했다. 그래서 이 전염병의 이름이 '흑사병'이다. 이 질병이 유독 중세유럽에서 기승을 부린 까닭은 '소빙하기(14~17세기)'에 접어들어 기근이 만연해서 면역력이 약해진데다가 기독교인들의 풍습(?)으로 '목욕'을 하지 않고, '하수도시설'이 없어 거리거리마다 똥오줌이 가득한 불결한 환경이 한몫 하였고, 전염병의 원인이 '쥐벼룩'이라는 것을 모르고 쥐들(특히, 곰쥐)이 창궐하는 것을 방치했으며, 또한 '호흡기(비말감염)'를 통해서도 감염이 되었는데, 질병에 걸리자 신에게 기도를 드리고 치료를 바란다다면서 '교회와 성당'으로 몰려드는 바람에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었다고 한다. 더구나 '흑사병'은 아침에 걸리면 저녁에 죽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는 질병이라서 여러 모로 '중세유럽인들'에게는 치명적인 감염병이었던 셈이다.

한편,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새로운 감염원인을 파악할 수 있었다. 바로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바이러스'는 있었지만 맨 눈으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작기 때문에 '현미경'이 발명된 이후에야 원인으로 지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첫 시작은 바로 '스페인 독감'이다. 사실 이 독감은 미국 캔자스 주에서 최초로 발병했다. 그렇기에 이름을 굳이 붙이자면 '미국 독감' 또는 '캔자스 독감'이 되어야 할 텐데, 어이 없게도 이 감염병이 대유행하던 시기가 1918년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접어들 때였다. 이 독감의 특성이 초기 증상은 '감기'와 다를 바가 없는데, 갈수록 증상이 심해지다가 온몸이 파랗게 변하는 '청색증'을 보이다 심한 고열과 함께 환자가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독감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미국은 전쟁에 참전했고 '독감'에 걸린 병사를 유럽에 파견해 버렸다. 1차 세계대전은 지독한 '참호전'이 펼쳐졌고, 이 참호는 '불결한 환경'으로 최고봉을 찍을 정도로 악명 높았다. 그래서 미군 병사가 옮긴 '독감 바이러스'는 삽시간에 전 유럽에 퍼져나갔다. 그런데 '전시상황'이었기에 이런 감염병이 돌고 있다는 사실을 각국 정부는 감추고 있었고, 당연히 언론도 보도할 수 없었다. 그런데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았던 '에스파냐(스페인)'에서만 이런 대유행 사실을 최초로 보도하자 전세계는 깜짝 놀라게 되었고, 자국에도 번지고 있는 '독감 대유행'을 스페인 언론을 통해서 보도하기 시작하게 되니, 독감의 명칭을 엉뚱하게도 '스페인 독감'으로 짓게 되었다. 애초에 '스페인'하고 아무런 관련이 없던 '피해 당사국(?)'인데 억울하게 최초로 보도했다는 이유로 그렇게 명명된 것이다. 어쨌든 '스페인 독감'은 전세계 5000만 명이나 사망하게 이른 끔찍한 감염병이었고, 감염원인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조류독감)'이 인간에게까지 전염된 사례로 밝혀지게 되었다.

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90년 뒤, 2009년에 '신종플루'라는 이름으로 다시 유행하게 되는데, 이때는 감염경로가 '조류'에서 '돼지'를 거쳐 '인간'에게 감염되는 사실을 밝혀냈다. 조류독감이 인간에게 곧바로 전파되지는 않았지만, '돼지'를 매개로 해서 새로운 '연결고리'가 생겨나게 된 셈이다. 이런 일을 계속 발견된다.

2014년에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최초 발병했는데, '과일박쥐'에게서 '인간'으로 감염된 사례이고, 2003년에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스'로 대유행했고, 2012년에는 '메르스'로,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대유행을 했다. 이는 각각 '사스'가 박쥐-사향고양이-인간에게, '메르스'가 박쥐-낙타-인간에게, '코로나19'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아마도 박쥐-천산갑 또는 사향고양이-인간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2003년 '원숭이두창(엠폭스)'으로 알려진 천연두 감염병도 '원숭이-프레리도그-인간'에게 감염전파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렇게 새로운 감염병 대유행은 '인수공통감염'을 기본 매개로 전파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이를 막기 위해서 감염의 원인인 '야생동물'을 멸종시켜야 하는걸까? 그건 옳지 않은 방법이다. 야생동물을 '인위적인 방법'으로 말살시켜버리면 당장은 살기좋은 세상이 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는 결국 '생태계 균형'이 파괴되어 생태계의 일부인 '인간의 삶'까지 말살시켜버리는 최악의 결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니 자연속에서 어우러져 살아갈 궁리를 해야지 자연환경을 훼손하고서는 결코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야생동물'과 밀접한 접촉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결국, '인간'이 문제의 원인이라는 각성을 해야 한다. 80억명의 인구가 지구 곳곳의 터전을 독차지하고 있기에 '야생동물'이 살 수 있는 서식지가 자꾸 파괴되어 사라진 탓에 인간과 야생동물의 '접촉'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새로운 감염이 발생하지 않도록 '밀접 접촉'을 차단하는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러기 위해선 야생동물이 인간의 활동공간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런데 인간의 탐욕이 '아마존 밀림'을 불태우고 '경작지'로 만들어 경제적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남미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인간은 '야생동물'과 따로, 또 같이 살아갈 궁리가 아니라 '야생동물의 서식지'마저 인간의 터전으로 삼고 경제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려고만 하고 있으니, 결국은 살 곳을 잃어버린 야생동물은 자꾸만 인간들이 사는 곳으로 넘어오게 되고, 그렇게 '접촉'을 늘려나가다 보니 '인수공통감염 경로'가 활짝 열려 버린 것이다.

이제 인간은 감염병 대유행을 쉴 틈 없이 겪어야만 할 것이다. 다행히 '코로나19 팬데믹'은 잘 넘어갔다. 하지만 머지 않은 시기에 또다시 '새로운 감염병'이 어떤 동물의 감염매개로 삼고 인간에게 질병을 퍼뜨릴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인간이 살 곳과 야생동물이 살 곳을 '따로' 격리 시킬 방법도 없다. 지구는 딱 하나 뿐이기 때문이다. 지구가 엄청나게 큰데도 인간의 탐욕은 그보다 훨씬 더 크기에 결국 '인수공통감염'이라는 고리를 끊어내고, 인류를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조만간 '인간'이 인수공통감염의 연결고리를 자처해서 야생동물의 멸종을 부추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멸종이 '인간'이 아니라서 참 다행이라고 안심하고 있다가 '생태계 파괴'로 인해 한꺼번에 몰살 당하는 대멸종을 겪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는 멸종 당하는 이유도 알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최후를 맞이할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이라도 '야생동물'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그런 비참한 최후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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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안 나이트 - 천일야화 현대지성 클래식 8
작자 미상 지음, 르네 불 그림, 윤후남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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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I / 현대지성 11번째 리뷰] 갈랑의 <천일야화>를 완독하면서, 이 책도 함께 읽었더랬다. 제목이 <아라비안 나이트>지만, 앞서 구분했던대로 리처드 버튼의 <천일야화>는 아니다. 아예 '작자미상'으로 소개하며 유럽의 작가에 의해서 새롭게 엮어지기 전에 '아랍 지역에서 구전되던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하지만 바로 뒤에 '엮은이'에 따라 내용이 바뀌거나 새로운 이야기가 덧붙여지면서 <아라비안 나이트>의 세계는 더욱 풍성해졌다는 말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 '엮은이의 판본'을 참고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책 <아라비안 나이트>는 대단히 점잖은 표현으로 '고전미'를 풍기는 문장으로 엮어진 것으로 보아 '앙투안 갈랑의 판본'을 참고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이 책의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르네 불'이라는 삽화가의 삽화들이다. [현대지성] 출판본에 대부분의 삽화가 수록되어 있는데, 1900년대 초반에 주로 삽화를 그렸던 터라 많은 분들이 한 번 보면, '아하~'하고 단박에 알아챌 것이다. 그만큼 익숙한 그림체다. 한 번 보면 잊지 못할 정도로 대단히 인상적이고 말이다. 삽화가의 위대함은 '단 한 장의 삽화'만으로 책의 내용이 자동적으로 떠오르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삽화가가 되기 위해선 '책의 내용'을 완벽하게 섭렵하지 않고선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 책 <아라비안 나이트>도 '삽화'만으로 전체 내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히 완성도가 높은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만약 이 삽화를 보고도 내용파악이 안 된다면 아직 <천일야화>를 읽지 않은 독자일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의 삽화는 인상적이다. 예술적이고 말이다.

수록된 이야기는 많지 않다. '단행본'인 관계로 수많은 이야기들 가운데 그나마 가장 유명하고 재미난 이야기만 엑기스마냥 꼭꼭 짜서 수록한 듯, '12개의 이야기'만을 담았다. 하지만 <아라비안 나이트>가 '액자 구도'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 12개의 이야기속으로 들어가서 또 읽을 수 있는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많은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그렇지만 수록된 이야기는 아주 알차다. 가장 유명한 '알라딘과 요술램프',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어부 이야기', '신밧드의 모험', '아메드 왕자와 요정 이야기', '하룬 알 라시드 왕의 모험', '바그다드 상인 알리 코기아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부 하산, 자면서 깨어 있는 자의 이야기' 등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알라딘과 알리바바' 이야기는 갈랑판본에서만 전해지기 때문에 그 책을 참고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이야기가 야하지 않고 건전하기에 그렇게 짐작할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런 까닭으로 이 책은 '청소년용'으로 권장하기에 딱 좋다. 기본적으로 <천일야화>는 5권 이상의 방대한 분량을 자랑한다. 전체 쪽수로도 1700쪽이 훨씬 넘는다. 이런 책을 공부하기에 바쁜 학생들에게 권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을 것이니, 아무래도 '단행본'으로 권장할만 할텐데, 그렇다고 분량을 대폭 축소한 책을 권하기엔 아쉬울 것이니 약 300여쪽 분량으로 줄여놓은 이 책이 딱 적당할 듯 싶다. 그리고 전체적인 줄거리를 크게 해치지 않는 정도로 알맞게 축약해놓은 점도 아주 좋았다. 원작의 분량이 방대하다보니 '서술'이 너무 길고 '호흡'이 늘어져서 '읽는 맛'이 상당히 떨어지게 된다. 이는 사실 셰에라자드가 '천하룻밤'동안이나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늘리고 또 늘린 면이 없지 않아 작용한 것일테다. 그런데 전체적인 맥락만 파악하는데 있어서, 그렇게 늘여서 한 이야기는 오히려 방해만 될 것이다. 그러니 적당히 내용을 간추린 '축약본'이 필요한데, 그래도 줄거리가 '기승전결'로 분명하게 전달되는 축약본을 골라야 할 것이다. 이 책이 바로 바쁜 '청소년을 위한' 그 좋은 책임에 분명하다.

아쉬운 점은 셰에라자드의 '서바이벌 스토리텔링'과 샤리아르의 '심적인 변화과정'이 <천일야화>의 핵심 키포인트인데, 그 원전의 맛을 전혀 느낄 수가 없다. 그저 샤리아르 황제가 배신을 당한 분노로 새로 맞이한 아내를 처형하는 폭군으로 변했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셰에라자드가 자청해서 혼인을 청했으며, 매일밤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샤리아르 황제가 큰 깨달음을 얻고 분노를 가라앉히면서 셰에라자드를 정식 아내로 맞이하며 행복하게 살았다는 주된 줄거리만 요약했을 뿐이다. 그래서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에 슬쩍슬쩍 드러나는 '서스펜스'를 전혀 맛볼 수 없고, 목숨줄을 걸고 외줄타기를 하는 살떨리는 '흥정의 장면'도 전혀 맛볼 수가 없다. 이런 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원전'을 읽는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책 자체는 아주 훌륭하다. 군더더기 없이 '축약'을 해놓았기에 핵심파악하는데에는 아주 탁월할 정도다. 단지 이런 '축약본'만으로 느낄 수 없는 '원전의 깊이'가 아쉬울 따름이다. 감동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맛을 보아야 하는데 말이다. <천일야화>를 완독함과 동시에 '단행본'을 같이 읽으니 이런 아쉬움이 먼저 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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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탐정 엘리자베트 3 - 마지막 수수께끼를 풀다 공주 탐정 엘리자베트 3
아니 제 지음, 아리안느 델리외 그림, 김영신 옮김 / 그린애플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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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 / 그린애플 3번째 리뷰] 1774년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중심 배경으로 '세 개의 뮤직박스에 담긴 수수께끼'를 공주 탐정 엘리자베트와 그녀의 친구들이 풀어나가는 모험담이라고 소개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탐정이라는 제목이 눈에 띄지만 '추리소설'이라기엔 너무 초보적이고, 그렇다고 소녀들이 좋아하는 '애정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천방지축이다. 엘리자베트 공주가 말이다. 물론 소녀 독자들이 좋아하는 왕실의 비밀 가득한 이야기들이 호화로운 드레스와 아름다운 장식들과 함께 어우러져 있기에 '모험'이라는 단어와는 사뭇 어울리지 않지만, 이 책의 주인공 '엘리자베트 공주'는 여느 소녀스런 공주와는 완전 다르다. 이 공주는 말을 타고서도 달리길 좋아하니까 말이다.

말을 타면 '달려가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싶겠지만, 여성의 말타기는 남성의 방법과는 다르다. 양다리를 벌리고 말안장 위로 올라타는 남자들과는 달리, 양다리를 모으고 한쪽 방향으로 걸터 앉아서 말을 타는 여자들은 기본적으로 달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왜냐면 말안장에 올라타서 양 발을 '등자'안으로 끼어넣어야 말이 달릴 때 말등에서 떨어지지 않고 착 붙을 수 있는데 반해, 여성용 말안장은 양 발을 '한쪽'으로 모으고 '등자'도 한쪽으로 모아져 있기에 말이 달리게 되면 그 반동으로 인해 낙마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남성은 '바지'를 입고, 여성은 '치마'를 입기에 그렇다. 아무리 '속바지'를 입었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다리를 벌리고 말을 타는 방식은 '숙녀답지' 못하다는 지적 때문에 귀족여성은 말을 타더라도 엉덩이만 살짝 걸쳐서 사뿐사뿐 걷는 속도로밖에 말을 탈 수 없으며, 여성은 말을 타지 않고 '마차'를 타는 것이 기본이었던 시절이다. 그런데 엘리자베트는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고서 양다리를 벌리고 말을 타는 '야만스런(?)' 장면까지는 연출하지 않더라도 '여성스러운 승마자세'로도 말고삐를 바투 잡고 다그닥다그닥 달리는 말타기를 즐길 정도였다. 이 정도면 '모험소설'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까?

암튼, 엘리자베트와 친구들은 '세 번째 뮤직박스'를 찾아냈고, '플루티스트 뮤직박스' 속에서 마지막 비밀암호를 찾아냈고 마침내 그 비밀문구를 풀어냈다. 그것은 바로 '천사를 따라가라'였다. 그 천사가 있는 곳에 테오의 할아버지가 감춰둔 보물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테오의 집에 있는 천사는 모두 찾아보았는데... 추리에 관한 내용은 여기까지다. 이 다음에는 바로 추리의 결말이 나오고 만다. 추리소설로는 영 꽝인 셈이다. 그럼에도 '간단한 추리'를 통해서 '논리적인 사고'를 키우는 것이 아주 중요하고, 심지어 그런 추리적 사고력이 '공부'가 된다는 사실을 아주 간결하게 알려주기 때문에 소녀 독자들도 '수학공부의 매력'을 알아채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사실, 여학생이 '수학'을 잘 못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는데,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어릴 적부터 그런 '잘못된 편견'에 노출된 탓에 여학생은 '수학'을 못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래도 된다는 잘못된 선입견마저 갖게 되어 전체 여학생들의 수학 평균점수가 형편없게 나온다는 과학자들의 분석결과도 이미 나왔다. 그러니 여학생이 '수학공부'를 못할 것이라는 편견은 그냥 깨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의 주인공 엘리자베트도 공부를 하기 싫어하고, 수학은 덧셈도, 곱셈도 하지 못하는 허당이었는데, '비밀암호문'을 척척 풀어내는 놀라운 일을 해냈다. '암호문 해독'은 세계 최초의 컴퓨터 창조자 '엘런 튜링'의 수학적 사고력으로 풀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수학문제는 '간단한 규칙'만 알면 누구라도 쉽게 풀 수 있다. 흔히 '수학공식'을 대입하면 쉽게 문제가 풀리는 것도 바로 그런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관건은 어떤 '공식'을 어떤 '문제유형'에 알맞게 대입해야 쉽게 풀릴 것인지 알아채는 것이다. 그것만 이해하면 누구나 수학천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수학적 사고력'에 '원리이해'를 더하면 된다. 수학공부는 그게 전부다. 구구단도 외우지 못하는 엘리자베트 공주가 '비밀암호문'을 풀 수 있었던 비결도 바로 이런 원리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자, 이쯤 되면 수학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은가? 수학문제가 풀리지 않아 답답하다면 '원리'를 가르쳐 달라고 조르면 된다. 한 번 풀어서 이해가 되지 않으면, 두 번을. 그래도 풀리지 않으면 '한 번 더' 시도를 하면 결국 어렵던 수학문제도 풀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차곡차곡 '원리이해'를 쌓게 되면 어렵던 '미적분 공식'도 결국 쉽게 풀 수 있게 된다. 프랑스 왕실의 바보라고 소문난 엘리자베트 공주도 해낸 일 아니던가 말이다.

이 책은 '수학공식'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공부'도 할 수 있다. 18세기 프랑스에선 '천연두'가 대유행을 했다. 그래서 프랑스 왕실도 베르사유 궁전을 떠나 시골귀족들의 저택을 전전하며 피신을 할 정도였는데, 안타깝게도 '루이15세(엘리자베트 공주의 할아버지)'가 그만 천연두에 걸려서 사망하기에 이른다. 이에 그치지 않고 파리 시민들에게도 천연두가 급속도로 전파가 되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루이16세'는 자신이 먼저 '우두접종(천연두백신)'을 하면서 천연두를 극복해보자는 의지를 엿보인다. 이는 '왕실이 먼저' 모범을 보여서 프랑스 국민들 모두를 '천연두의 위협'으로부터 이겨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렇게 왕실이 모범을 보인 덕분에 '천연두 백신 접종'은 빠르게 퍼져나갔고, 다행히 루이16세를 비롯해서 왕실 사람 대부분이 '접종'을 받아서 천연두를 극복했기에 백성들도 안심하고 '접종'을 했고, 천연두 대유행도 한풀 꺾이게 되었다.

당시의 '접종 실시'는 지금처럼 '주사 한 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천연두균'을 대량 배양할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에 '천연두에 걸린 환자의 고름'을 실에 묻혀서, 그 실을 접종대상자의 팔뚝에 두세 번 바늘로 꿰어 통과시키는 방법으로 실시하였다. 이를 대규모로 실시할 경우 '소독방법'도 아직 마련되지 않았기에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대단히 비위생적인 방법으로 실시된 것을 알 수 있었는데, 당시에는 '천연두(마마)'에 걸리면 거의 대부분 사망에 이르는 끔찍한 질병이었기에 그 정도의 비위생적인 방식이었다해도 '살 사람'은 대부분 살아남는 기염을 보여준 셈이다. 어떤가? 재밌는 동화책속에서 '역사적 사실'도 배울 수 있다는 점이 꽤나 유익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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