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야화 2 열린책들 세계문학 137
앙투안 갈랑 엮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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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XLV / 열린책들 13번째 리뷰] 앙투안 갈랑이 엮은 <천일야화>는 원래의 '아랍어로 적힌 원작'의 내용의 축약본이라고 할 수 있다. 아쉽게도 앙투안 갈랑이 살던 18세기에도 '원작 <천일야화>'가 온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불완전한 원작'에서 너무 야하고 비상식적인 내용은 도려내듯 걸러낸 뒤에 '남은 것'만을 옮겨 적었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천일야화>는 이토록 방대하다. 또 하나의 <천일야화>인 리처드 프랜시스 버튼의 책에는 갈랑의 책을 참고했다고도 전해지지만 '분량'면에서는 훨씬 더 많다. 애초에 '야한 내용'을 삭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원작'이 불완전하기에 버튼의 <천일야화>도 완전한 책은 아니다. 게다가 살짝 MSG도 첨가한 듯 싶다. 그렇기에 두 가지 <천일야화>는 별개의 작품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열린책들'에서는 갈랑의 <천일야화>로 출간하였고, '동서문화사'에서는 버튼의 <아라비안 나이트>로 출간했기 때문에 앞으론 둘을 이렇게 구분하고자 한다.

이렇게 '두 가지 버전'을 소개하는 까닭은 두 작품의 '목차'부터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분량도 차이가 나지만 수록된 이야기의 '순서'가 뒤죽박죽인 것은 무슨 까닭 때문인 건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점은 '단행본'과 '어린이책'에서도 마찬가지다. 1권 짜리 '단행본'이야 애초에 주요 이야기만 추려서 냈을 것이고, '어린이책'이야 어린이가 읽어도 될 정도로 각색까지 했을테니 어쩔 수 없다치더라도, 어쩔 수 없이 건전한 내용으로 펴낸 '갈랑의 <천일야화>' 스타일을 본땄을 텐데도, 이야기가 실려 있는 순서가 사뭇 다른 것은 무엇 때문인걸까? 셰에라자드(이름도 천차만별인데, '세헤라자드'가 가장 보편적이지만, 이 책에서는 셰에라자드로 표기했으니 따르려 한다)가 매일 아침 동트기 전까지 샤리아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의 순서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만일 '샤리아 왕'이 실존 인물이었다면 이런 차이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샤리아(Shariah)'는 이슬람세계의 '율법'을 지칭한다. 이런 의미로 <천일야화>를 이해하면 매일밤 셰에라자드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바로 '이슬람율법'을 앞에 두고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해석도 할 수 있다. 마치 최종판결을 앞둔 피고인이 '최후변론'을 하는 느낌으로 읽힐 수도 있는 대목이다. 허나 이슬람사회에서 '샤리아'는 반드시 지켜야 하고 가타부타 따지며 '해석'을 논할 수 있는 대상이 결코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최후변론'을 하는 느낌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런 해석이라면 셰에라자드는 결국 '사형'에 처해질 운명이다. 율법 앞에서 '관대함'을 요청할지언정 '율법, 그 자체'를 바꿀 수는 없고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최후변론을 무려 '천하룻밤'동안 한 셈이다. 이런 식이라면 아무리 절대불변의 율법이라 할지라도 '융통성'이라는 빈틈을 파고들 여지가 있는 것은 아닐까? 더구나 샤리아 왕과 셰에라자드 왕비는 매일밤 동침을 하는 부부사이다. 물론 율법은 '부부사이'도 갈라놓을만큼 엄정하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천일야화>의 이야기 순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듯 싶다. 이 이야기를 먼저 하든, 저 이야기를 먼저 하든 샤리아 왕의 부당한 법집행 아래 '자신의 목숨'을 담보 삼아서 매일밤마다 '생명연장', '집행연기'를 위해서 네버엔딩 스토리, 다시 말해, '끝없는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몇 번째 날 밤'에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어차피 진술한 내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순서'만 바뀌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천일야화>에 담긴 이야기가 지닌 속뜻이 무엇인지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건 다음 리뷰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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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야화 1 열린책들 세계문학 136
앙투안 갈랑 엮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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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XLIV / 열린책들 12번째 리뷰] 우리에게는 '아라비안 나이트'로 익숙하지만 원제는 '천하룻밤 이야기'라는 뜻으로 <천일야화>로 전해진다. 그런데 여기에 논란거리가 하나 있다. '천일'이 千一(1001)을 가리키는 것인지, 千日(1000일)을 가리키는 것인지 불분명하다는 어깃장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왜냐면 당시 '아랍세계'에서 1000이라는 숫자나 1001이라는 숫자는 그저 '많다'는 뜻으로 통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수많은 날동안 들려준 이야기'라는 뜻으로 이해하지, 꼭 정확한 숫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어쨌든 <천일야화> 속에는 말그대로 엄청난 수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모든 이야기를 단 한 사람의 '서술자(세헤라자드)'에 의해서 들려주고 있다는 사실이 더 놀라울 따름이다. 그래서 전하는 이야기에는 이렇게나 많은 이야기가 '단 한 명의 서술자'에 의해 전해졌다기보다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한데' 모은 이야기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샤리아 왕의 엽기적인 행각을 멈추게 하려는 세헤라자드 왕비의 지혜가 <천일야화>의 핵심인 것만은 사실이다.

이 책은 18세기 초 프랑스 작가인 앙투안 갈랑의 <천일야화>다. 이외에도 19세기 영국 작가인 리처드 프랜시스 버튼이 쓴 <천일야화>도 있다. 이 두 버전은 각각 다른 소설이라고 불릴 정도로 색다르다 하겠다. 분명 '아랍어로 쓰인 원작'이 존재할테지만, 이를 각각 '프랑스어'와 '영어'로 뒤쳐서 소개할 때 차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갈랑의 <천일야화>'는 원색적이고 노골적인 야한 이야기는 걸러내고 교훈적이며 이국적인 정취를 최대한 살려서 썼다면, '버튼의 <천일야화>'는 그야말로 도색(桃色)적인 원문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아서 그야말로 야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이런 차이점 때문에 <천일야화>를 기본적으로 두 가지 버전으로 즐길 수 있지만, 어느 것이 더 원작에 가깝냐고 묻는다면 나는 '앙투안 갈랑의 책'으로 꼽고 싶다.

애초에 '야한 이야기'는 원작에 담긴 핵심요소다. 왜냐면 샤리아 왕이 자신의 아내가 저지른 난잡한 불륜 때문에 분노했고, 그 때문에 온 왕국의 처녀를 왕비로 삼은 '첫날밤'을 치르고 나서 처형을 해버리는 일을 자행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왕의 아내가 정절을 지키지 않은 죄를 애꿎은 왕국의 처녀들에게 뒤집어 씌워서 죽여버리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이는 분명 '샤리아 왕의 명백한 잘못'이다. 이에 세헤라자드 왕비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 왕국의 처녀들을 처형하는 '왕의 잘못'을 스스로 깨우치려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다. 그렇다면 세헤라자드 왕비가 이야기를 들려준 것만으로 샤리아 왕이 처형을 미룬 까닭은 무엇일까? 단순히 '이야기'가 재밌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수많은 이야기를 듣는 동안 깨닫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여자의 정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내가 부덕한 짓'을 저지른 것이 핵심이고, '남녀의 성행위, 그 자체'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자 행복이고, 더할나위 없이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랍어로 적혀 있는 '원작'에서는 가감없는 성묘사가 드러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영국 작가인 버튼은 <천일야화>에 담겨 있는 본질적인 '교훈'은 쏙 빼놓고 원색적이고 말초적인 '야한 이야기'만 골라서 노골적으로 추려놓았다. 이런 식이면 애초에 샤리아 왕이 세헤라자드 왕비를 살려줄 이유가 사라져버린다. 아내의 불륜으로 분노한 왕을 달래기 위해서 '야한 이야기'를, 그것도 '천하룻밤'동안 주절댄다고? 네 년의 더러운 생각보따리를 다시는 입밖으로 꺼내지 못하도록 단칼에 목을 자르리라고 말할 것 같지 않은가 말이다. 이는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성행위 묘사'를 노골적으로 강조하여 '영어'로 뒤쳐낸 오류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에 프랑스 작가인 갈랑은 <천일야화>에 담긴 핵심요소인 '잘못의 깨달음'에 주목해서 매일밤마다 세헤라자드 왕비가 샤리아 왕에게 '교훈적인 이야기'를 전하려는 끝없는 노력이 아주 잘 담겨 있다. 그렇기에 점잖은 문화(?)를 가진 프랑스 국민들에게 노골적인 성묘사는 과감히 삭제하고, 내용을 축약하여 '건전한(?) 내용'만을 골라서 전달하려 했다. 이런 갈랑의 노력을 후대 작가인 버튼도 간파했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아주 원색적인 성묘사만 골라담아 추려내었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허나 버튼의 '야한 버전'도 읽는 맛이 있기는 하다. 건전한 성생활을 즐기는(?) 분이라면 일독을 권해..쿨럭

각설하고, 갈랑의 <천일야화>는 모두 여섯 권으로 되었으며, 그 첫 번째 책에는 <상인과 정령>, <어부 이야기>, 그리고 <세 탁발승과 다섯 아가씨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이 각각의 이야기는 모두 별개의 이야기지만, 이야기속의 이야기, 다시 말해 '액자식 구성'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에 '단 하나의 이야기'로 봐도 무방하다. 이는 세헤라자드 왕비가 매일밤 '동트기 한 시간 전'에 일어나서 해가 뜰 때까지 이야기를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세헤라자드 왕비가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끊어서 한 까닭은 그렇지 않으면 '날이 밝는대로' 샤리아 왕의 아내는 처형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샤리아 왕의 분노로 인한 '법령'이며, 그 집행 또한 샤리아 왕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그런 왕의 분노와 의지를 꺾게 만든 것이 바로 '호기심'이었다. 바로 이 호기심이 '이야기에 담긴 힘'이라는 걸 세헤라자드 왕비는 간파하고 있었고, 이 힘을 통해서 잘못된 법령을 바로 잡고, 다시금 현명하고 사려 깊은 국왕으로 되돌리기 위한 '여인의 지혜'가 발휘된 셈이다.

이처럼 '남녀의 구분'이 명확했고, '왕의 군림'이 강력했던 시절에도 단 하나뿐인 목숨을 보전할 수 있는 것은 '지혜'뿐이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이런 교훈은 전세계 '옛이야기'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그렇게 해서 '지혜는 인류의 유산'이 되어 입에서 입으로, 글을 통해 배움을 익히고 연구하는 방법으로 세대를 거듭하며 전승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지혜와 교훈을 '직접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속에 녹여내어 스스로 깨우치도록 만들기 때문에 더욱 유익할 수밖에 없다. <천일야화>속에도 명확히 나오지는 않지만, 샤리아 왕은 하루 업무를 진행하기에 앞서 세헤라자드 왕비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서 얻은 '지혜'로 왕국을 현명하게 통치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처음엔 뒷이야기가 궁금해지는 '단순한 호기심'에 처형을 하루하루 미루지만,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면서 그 처형은 한달두달 자꾸 미뤄지게 된다.

자, 그럼 계속되는 <천일야화>의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질지 다음 리뷰에서 다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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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라이크 유니버스 - 만화로 보는 우주탐사 이야기 한빛비즈 교양툰 35
비둘기덮밥 지음, 강성주 감수 / 한빛비즈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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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XLIII / 한빛비즈 166번째 리뷰] 어릴 적엔 천문학도를 꿈꿨다. 순수학문에 속하는 '천문학'은 입문하기가 너무 쉽기 때문이다. 밤하늘에 별이 가득한 모습만 바라봐도 천문학은 충분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 쉽게 입문하고 난 뒤에 '천문학 깊이 읽기'에 들어가면 결코 쉽지가 않다. 천문학적 지식이 아무리 풍부해도 기본적으로 '수학과 과학(특히, 물리(더 파고들어 '양자역학'))'과 친숙하지 않다면 천문학도에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더 뼈아픈 진실은 '천문학'만해서는 알바비도 벌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집안이 부유해야..쿨럭쿨럭. 암튼 '천문학'은 아무나 접근하기 쉽지 않다.

그렇게 '천문학 입문'에 일찍 빠져든 나는 기어오르기 힘든 '수학과 물리역학'을 오르는 대신, '점성술과 신화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래도 천문학과 관련된 이야기는 어느 정도 읽어낼 수 있는 짬이 있었기에 '천문관련 책들'은 틈틈이 읽어재꼈다. 하지만 그렇게 알게 된 내용을 쉽게 풀어서 쓴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칼 세이건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스티븐 호킹도 열심히 쓰긴 했지만, 이 양반의 책은 결코 쉽지 않다는 점에서 세이건보다 한수 아래라고 할 수 있지만, 천문학적 천재는 단연 '호킹'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의 책을 읽지 않고선 최근의 천문학에 접근조차 하기 힘들 것이다. 바로 여기서 천문학에 관심이 많은 이들의 괴리감이 시작된다.

천문학을 깊이 읽기 위해서 굳이 어려운 책을 읽어재껴야하는가? 아니면 쉬운 책으로 만족하며 곁가지만 맴돌 것이냐? 대중독자들은 이 두 갈래길에서 헤매기만 할 뿐, 좀처럼 나아갈 길이 어느 쪽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이 대다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징검다리'나 '디딤돌'이 될만한 적정 수준의 길라잡이 책들이 필요한 법인데, 이런 책을 찾기가 좀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너무 쉽거나 너무 어려운 '양극단'에 치우친 책들이 주를 이룬다. 그나마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책인데, 너무나도 유명한 '벽돌책'이자, 살짝 '고전'에 가까운 책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렇다고 스티븐 호킹의 책을 섭렵하자니 '이건 뭐' 기초적인 수학과 물리역학의 기본을 이해하지 못하면 '접근불가'를 선언한 것 같은 어려움에 직면하니 난감할 따름이다. 그렇다고 '별자리 이야기' 같은 대중서적만 읽고 있으면 그저 수박겉핥기 수준밖에 되지 않으니 감질나고 말이다.

그런데 <우주 라이크 유니버스>를 읽고 나면 좀 달라질 것이다. 어려운 공식에 대한 개념이해가 어느 정도 필요한 수준이긴 하지만 '웹툰'이라는 성격으로 인해서 부담을 덜 수 있고, 우주탐사와 관련된 일련의 '기초상식'을 쌓을 수 있도록 쉽게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그저 '읽기만 했는데도' 어느 정도의 천문학적인 상식이 마구 쌓이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만화책의 내용이 수준이 낮은 편이냐하면 그렇지 않다. '블랙홀 사진'에 대한 설명만 읽어보아도 기초적인 설명은 다 되어 있다. 그 설명을 이해한 뒤에 웬만한 천문학자들이 쓴 전문서적을 읽어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될 것이다. '천체망원경'에 대한 설명은 또 어떤가. 세상에 이렇게나 많고 커다란 망원경이 있었고, 그 망원경들이 해낸 위대한 업적이 무엇인지 절대로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짤막하게 설명하는데도 다 이해가 된다. 정말 대단하다 칭찬을 아니 할 수가 없다. 또한 '빅뱅이론'을 무색하게 만드는 언론들의 무식함도 여실히 돌려깠다. 최근의 언론기자들의 수준이 형편없어진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기본적인 '팩트체크'나, '교차검증'을 통한 진위파악조차 하지 않고서 클릭수만 늘리려는 꼼수를 부리는 양아치들 때문에 대중들만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다.

이 책의 백미는 '우리가 왜 달에 가려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말이다. 어떻게 오해하고 있었던가. 바로 '달에 있는 자원선점을 하기 위해서'라는 경제적인 면만 부각시켜 놓은 언론들의 무책임한 발언들이 그 원인이었다. 물론 아주 근거가 없는 발언은 아니다. 천문학에 관련된 정부예산은 '천문학적인 수준의 비용'이 청구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다수의 국민들이 엄청난 혈세를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이라고 변명거리를 늘어놓으려는 목적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제적 효과는 아주 먼 이야기다. 당장 달나라에 우주선 하나 쏘아보냈다고, 그 달에 있는 '천연자원'을 몽땅 가져올 방법이 없지 않느냔 말이다. 이는 아주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해보아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서 '달'에 가려는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천문학자들은 열이면 열 모두 '궁금하니까?'라고 답변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천문학은 단지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서 천문학적인 돈을 들이는 호화로운(?) 학문이다. 물론, 그런 호기심을 해결하고 난 다음에는 '부수적인 발명품(스핀오프)'이 등장해서 인류에게 편리한 혜택을 선사한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순수한 목적은 '호기심 해결'을 위해서 엄청난 비용을 들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그걸 아주 심플하게 까발렸다. ㅋㅋㅋ

이렇게 솔직담백한 천문학 책이 있었던가? 내 기억으로는 없었다. 심지어 칼 세이건조차 자신이 품었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외계생명체'에 대한 연구에 대한 변명거리로 'SETI' 프로젝트를 실현시키지 않았느냔 말이다. 아직까지도 '외계지적생명체'를 발견하지 못한 것을 보면, 세이건은 분명 '사기'를 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천문학자'를 사기꾼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저 우리가 보기에 우주는 너무도 광활하다고 말할 뿐이다. 다시 말해, 우주는 '빈 공간'이 너무 많다.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까지도 빛의 속도로 4년 남짓을 가야만 할 정도다. 너무나도 유명한 안드로메다 은하까지 가는데 250만 년이나 걸린다. 우주의 끝자락에 있는 별까지는 137억 년이 걸린단다. 도대체 그토록 넓을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무한한 공간이 펼쳐져 있다. 그런 우주에 '생명체'가 존재하는 행성이 오직 지구뿐일리 없다는 주장으로 칼 세이건은 천문학적인 연구비용을 써재꼈다.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가? 그런 분들이라면 '천문학'을 멀리하는 게 좋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천문학을 연구한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엄청난 비용도 써재낀다. 왜냐면 단 하나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다. 바로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궁극적인 답을 과학적으로 풀어주는 유일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우주를 연구한다는 것은 단순히 '세금 낭비'가 아니다. 인류의 미래가 달려 있는 아주 중요한 연구란 말이다. 그런 연구에서 대한민국이 선점하고 있는 것이 거의 없기에 우리는 더욱더 분발해야만 한다. 향후 '우주 패권경쟁'에 불이 붙을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과거 미국과 소련이 벌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 경쟁에서 패배한 소련은 결국 해체되고 말았다. 이제 다시 전세계는 '우주'를 향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가장 먼저 경쟁을 벌이는 곳은 '달'이다. 그 달에 대한 소유권(?)을 독점하는 나라가 결국 승리하게 되는 단순무식한 대결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물론 달이 끝이 아니다. 그곳은 새로운 시작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천문학'에 꾸준한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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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와 기회의 사이클 - 반복되는 경제의 역사를 관통하는 절대불변의 수익 원칙
강병욱 지음 / 한빛비즈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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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XLII / 한빛비즈 165번째 리뷰] 나의 투자성향은 굉장히 소극적이다. 좋게 말해서 '돌다리도 두들겨 본다'는 성향인 셈인데, 그로 인해 수익률도 형편 없다. 그저 '원금손실'을 보지 않으면 만족하기 때문이다. '소소한 이자'만 생겨도 좋아라한다. 그렇기에 가장 선호하는 투자처는 '은행 예/적금'이다. 그밖에도 몇몇 군데 '수익금'을 챙기려 찔러보고 있지만, 워낙 '치고 빠지는 전략'을 귀찮아하는 장기투자 선호자이자, 워낙 '소액 자산'을 보유한 턱에 그에 따른 이자율도 큰 기대를 할 것이 못 된다. 그래도 차곡차곡 쌓고 모으는 재주는 있어서 미미하지만 자산은 점점 불어나고 있다. 이쯤 되면 엄청난 부자는 아니어도 꽤 자산을 긁어모은 '중산층' 이상의 거금 소유자가 되어야 마땅한데, 집안에 한두 명쯤은 있지 않은가. '블랙홀'처럼 펑펑 몫돈 탕진하는 가족 말이다. 그렇게 모으는 족족 탕진을 하니 지금은 겨우 '집 한 채' 달랑 남겨놓은 축에 속한다.

그래서 더욱더 '주식투자'와 같이 적극적인 투자처를 찾아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변의 유혹도 많다. 허나 내가 '주식'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는데 어떻게 투자를 하겠는가? 그런 거 잘 몰라도 그냥 '알짜베기' 주식에 몰빵을 하면 알아서 황금알을 가져다주는데 무슨 걱정을 하느냐면서 투자를 적극 권유하지만, 그들의 일상을 살펴보고 있노라면 그러고 싶지가 않다. 왜냐면 '하루종일' 주식장만 쳐다보면서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익률이 좀 높냐고 물으면, 매번 '오늘은 얼마를 벌었다'면서 자랑을 늘어놓는다. 어제도 그만큼 벌었다더니 금방 '강남 아파트' 사겠네? 라고 물으면, 손사레를 치면서 그정도는 아니라고 겸양을 떤다. 나도 안다. 그게 겸양이 아니라는 것을. 왜냐면 늘상 대답은 '수익이 오른 것'만 얘기하고, '손실을 본 것'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그런 투자는 절대 사양이다. 내가 원하는 투자처는 '은행이자'만큼이나 적은 수익일지라도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는 확실한 수익을 보장하는 투자처를 찾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경제공부'가 필수라는 것이 기본이라는 것은 당연하고 말이다.

하지만 요즘의 경제상황은 온통 '불확실한 것' 투성이다. 국내 경제는 '내란후폭풍'으로 혼돈의 도가니가 되었고, 국제 경제도 '트럼프 발' 미치광이 전략에 따른 '관세보복 전쟁'이 시작되는 것을 보면,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어디에 투자를 해야 확실한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인지 깜깜하기만 하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더 '기본'에 충실한 투자를 해야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 '기본의 틀'조차 뒤흔들고 있는 '불확실성' 때문에 무엇이 호재이고 악재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불확실성 투성이'인 경제속에서도 누군가는 초대박을 내고 부자가 될 것이란 사실이다. 그렇다면 누가 그런 투자성공을 거두게 될 것인가?

작금의 국내외 경제상황은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안정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흔히 말하던 '골디락스 경제'는 종말을 고했다고 보는 것이 정설로 여기지는 시대다. 전세계가 '경제호황'을 맞아서 전세계가 고르게 '경제성장'을 누리던 안정된 경제시기가 끝을 보이고 있다는 말이다. 이제 '세계화'라는 신자유주의무역을 보호하던 시스템이 붕괴되고 '자국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관세보복전쟁이 다시금 불타오르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의 패권'이 위협받았기 때문이고, 그 상대는 바로 거세게 성장하던 '중국경제력'이었다. 지난 80년대에는 '경제대국 일본'을 가뿐히 즈려밟던 미국이었다. 소위 '플라자합의'라는 것으로 일본경제에 낀 거품을 한순간에 날려버려 미국의 패권을 가볍게 지켜내던 것과는 달리, 중국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하던 시기와 맞물려 미국은 '금융위기(리먼브라더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를 겪으면서 내우외환에 시달리며 가까스로 방어하는데 성공하지만, 그 사이에 중국은 '경제대국'으로 성장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에 미국은 '미중 전쟁'을 방불케할 정도로 거세게 경제전쟁을 선포했지만, 중국도 그냥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고, 현재까지도 이 전쟁은 진행형이라는 것이 오늘날의 불확실한 경제상황을 만든 주요 원인이 된 셈이다.

그렇다고 미국의 패권이 유지되어서 세계경제가 안정되었을 때가 마냥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간섭'도 많았고, 그로 인한 폐해가 산적해서 나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로 인해 '석유' 일변도의 화석에너지 사용에 제한을 두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점점 높아져만 갔고, 이를 대체할 '원자력에너지'는 일본대지진으로 인해 안정성에 불안감만 높아지게 만들었으며, 이제는 완전한 '탄소제로'를 시행할 수 있는 '신재생에너지' 개발요구와 함께 'RE100'을 2050년에는 무조건 시행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이를 100%를 달성한 몇몇 선진국가들과 선도기업들은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경제지평을 열어갈 것이다. 다시 말해,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조건'을 맞추지 못하면 엄청난 '세금 부담'을 안아야 할테니 '경쟁력'을 잃고서 그대로 좌초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 나라는 아직도 '화석에너지 의존도'가 너무 높다. 이를 보완하고자 '원자력에너지'를 더 많이 사용할 계획을 구상중인데, 안타깝게도 원자력에너지는 '신재생에너지'로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효율적인 대안은 아니다. 더구나 우리 나라는 '수출'로 경제성장을 하는 나라다. '내수경제'로는 대한민국 국민이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경제를 보장할 수 없다. 그런데 'RE100'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당장 수출길이 막혀버릴 상황에 처했는데도 그 위기를 직감하고 있지 않는 것이 어처구니 없다.

그럼에도 '투자'는 이루어져야 한다. 국내기업에 희망이 없다면 국외기업에라도 투자를 해서 수익을 내야하는 것이 올바른 투자일 것이다. 이 책 <위기와 기회의 사이클>에서 진단한 투자동향은 이렇다. "시장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들을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계속 늘어나는 유동성의 영향, 시가총액 순위를 통해 알아볼 수 있는 산업의 변화, 시장의 중심 상품으로 자리 잡은 ETF가 가져올 시장의 변화, 상장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막대한 현금이 가져올 변화, 미래 투자를 결정할 ESG 경영,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신재생 에너지 열풍, 최고경영자들의 욕망이 투영된 자사주 매입 열풍, 대중자본주의가 진행되면서 외면받고 있는 주주총회와 경영진의 독주, 이를 견제하기 위해 나타난 주주행동주의와 스튜어드십코드의 강화,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의 진행은 앞으로 10년 주식시장의 진행 방향을 알 수 있는 나침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라고 정리되어 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하자면 난 이 내용들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대략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이게 정확하게 '어느 종목'에 투자를 해야 내가 이익을 볼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공부와 확신을 더 가져야 가능할 것 같다.

현재 주식투자는 모두가 다함께 수익창출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누군가는 수익을 내겠지만 그 수익만큼 손실을 갖게 되는 '제로썸 게임'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수익을 내기 위한 최적의 투자방법은 무엇인가? 이걸 가장 궁금하고 나만 알고 싶지만, 투자의 최종결정은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이어야만 한다. 이 종목에 투자하면 반드시 오른다는 정보는 '사기'일 가능성이 농후하고, 누구나 아는 정보라면 곧 '하락장'이 될 가능성이 높고, 수익을 내더라도 적은 금액일 게 분명하다. 오히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종목 가운데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종목'이 대박을 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주식투자 초보에게 그런 안목이 있을 턱이 없다. 그렇기에 경제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진리는 '투자의 세계'에서도 통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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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탐정 엘리자베트 2 - 바이올리니스트의 비밀을 밝히다 공주 탐정 엘리자베트 2
아니 제 지음, 아리안느 델리외 그림, 김영신 옮김 / 그린애플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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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XLI / 그린애플 2번째 리뷰] 프랑스 공주 엘리자베트 탐정의 두 번째 사건일지다. 앞서도 밝혔지만 '추리소설'이 아닌 '소녀감성의 동화'에 가까운 책이다. 어린이책이라도 특히 '소녀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의 책이 따로 있는 법이다. <이사도라 문 시리즈>를 펴낸 해리엇 먼캐스터, <꼬마 흡혈귀 시리즈>를 쓴 앙겔라 좀머 보덴부르크 같은 책들 말이다. 이런 동화책들은 전세계 소녀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럼 이 책들과 <엘리자베트 시리즈>의 아니 제가 쓴 동화책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우선, 아주 큰 갈등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뭔가 낭만적이고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면서 아름다운 환상을 심어 준다는 것이다. 이런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이가라시 유미코의 <캔디 캔디>이기도 하다. 우리는 '들장미 소녀 캔디'로 익숙하다. 조금 후대의 작품으로는 이케다 리요코의 <베르사유의 장미>가 있고 말이다. 이런 작품들에 소녀들은 흠뻑 빠져들곤 한다.

어떤 이야기든 '갈등요소'가 없다면 재미가 없기 때문에 소녀들이 좋아하는 책들에도 명백한 '갈등'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 갈등이 도저히 풀 수 없는 숙제처럼 보이지 않는다. 왜냐면 그 갈등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초자연적인 존재(?)가 나타나서 아주 깔끔하게 해소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마치 여자아이들이 싸움이 벌어지면 엄마나 선생님이 등장해서 이렇게 저렇게 해결하라고 지시하면 그대로 따르는 것으로 일단락을 지어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남자아이들은 그런 거 없다. 끝장을 보고서 '승자'를 가르고 '승복'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억울하면 '실력'을 키워서 '도전'을 받아주겠지만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면 '남자'로 인정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엄마나 선생님을 불러오면 '비겁하다'고 낙인이 찍히고 만다. 그런 연유인지는 몰라도 '소녀감성'이 물씬 나는 작품들에는 그리 어렵지 않게 해결되는 약한고리의 갈등이 곧잘 등장한다. 물론 갈등해소가 되었다고해서 '갈등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한마디로 '싸움'이나 '다툼'의 장면이 그리 오래가지 않고, 오히려 싸움이나 다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자세히 열거되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에 남자아이들은 '과정'이 긴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누가 이겼는데?"라는 식으로 '결과'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서 승자가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에만 관심이 집중될 뿐이다. 그나마 '과정'을 즐기는 남자아이들은 '싸움과정'이나 '결투과정'의 상세함을 좋아한다. <무협지>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또 하나, 소녀감성의 작품에는 '끔찍한 묘사'는 금물이다. 낭만가득 화려듬뿍인 묘사로 충만해야 한다. 뭔가 이국적이고 환상적이어서 '낯선 느낌'마저 주어야 엄지손가락이 절로 올라갈 것이다. 그래서 '궁중 생활'을 담은 왕과 귀족의 이야기가 매력 만점이다. 왜냐면 오늘날에는 '계급적 신분'이 사라져서 왕자와 공주의 생활을 현실에서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돈 많은 부자들은 '옛날 귀족적인 모습'을 맘껏 꾸밀 수는 있지만, 그 옛날의 '궁중예법'이나 '화려하고 고풍적인 품위'를 엄숙히 지키는 사회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꽤나 낯설고 매력적으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런 고품격의 낯설음을 '뱀파이어'나 '요정' 같은 것들에게서 느끼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경향이 소녀들의 감성에 잘 먹혀 들어간다. 귀여니의 소설 <늑대의 유혹>이나 스테프니 메이어의 <트와일라잇> 같은 작품에 열광하는 여성독자들은 '미모의 남자 주인공'이 등장해서 '여주인공'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는 장면에서 까무러치지 않은가 말이다. 목숨을 건 혈투를 벌이면서도 '고품격의 매너'를 잃지 않는 이질적이고 비현실적인 상상(?)에 빠져들곤 한다.

그렇다면 <공주 탐정 엘리자베트>에도 이런 요소들이 있을까? 먼저 '프랑스 왕정'의 실존인물을 차용했다는 점이 그렇다. 실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삼았는지까지는 잘 모르겠으나 책 내용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프랑스 궁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이고 왕실과 귀족들의 일상을 아주 세세히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녀감성이 물씬 풍긴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아주 약간이 '추리적 요소'를 담아 미스터리한 사건으로 흥미를 유발시키고 있지만, 이야기 맥락상 그리 중요한 사건은 아니다. 두 번째 사건에서는 '하프시코트 연주자'에 이어 '바이올리니스트 뮤직박스'가 등장하고, 그 속에 비밀암호가 담겨 있지만, 너무 쉽게 풀려버리고 만다. 대신 '엘리자베트 공주의 일상'을 중심으로 묘사되고 있는 궁중예법에 대한 묘사가 이야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소녀독자들의 만족도가 더 높아졌을 것이다. 실제로 '여자아이'를 자녀로 부모님들이 이 책 구매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자녀가 '독서'에 흥미를 느끼고 빠져드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아빠'는 그 까닭을 잘 이해할 수 없을지 몰라도 '엄마'는 이 책을 먼저 읽어보면 단박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자기 딸이 이 책에 흠뻑 빠져들 수밖에 없는 까닭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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