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탐정 엘리자베트 2 - 바이올리니스트의 비밀을 밝히다 공주 탐정 엘리자베트 2
아니 제 지음, 아리안느 델리외 그림, 김영신 옮김 / 그린애플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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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XLI / 그린애플 2번째 리뷰] 프랑스 공주 엘리자베트 탐정의 두 번째 사건일지다. 앞서도 밝혔지만 '추리소설'이 아닌 '소녀감성의 동화'에 가까운 책이다. 어린이책이라도 특히 '소녀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의 책이 따로 있는 법이다. <이사도라 문 시리즈>를 펴낸 해리엇 먼캐스터, <꼬마 흡혈귀 시리즈>를 쓴 앙겔라 좀머 보덴부르크 같은 책들 말이다. 이런 동화책들은 전세계 소녀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럼 이 책들과 <엘리자베트 시리즈>의 아니 제가 쓴 동화책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우선, 아주 큰 갈등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뭔가 낭만적이고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면서 아름다운 환상을 심어 준다는 것이다. 이런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이가라시 유미코의 <캔디 캔디>이기도 하다. 우리는 '들장미 소녀 캔디'로 익숙하다. 조금 후대의 작품으로는 이케다 리요코의 <베르사유의 장미>가 있고 말이다. 이런 작품들에 소녀들은 흠뻑 빠져들곤 한다.

어떤 이야기든 '갈등요소'가 없다면 재미가 없기 때문에 소녀들이 좋아하는 책들에도 명백한 '갈등'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 갈등이 도저히 풀 수 없는 숙제처럼 보이지 않는다. 왜냐면 그 갈등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초자연적인 존재(?)가 나타나서 아주 깔끔하게 해소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마치 여자아이들이 싸움이 벌어지면 엄마나 선생님이 등장해서 이렇게 저렇게 해결하라고 지시하면 그대로 따르는 것으로 일단락을 지어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남자아이들은 그런 거 없다. 끝장을 보고서 '승자'를 가르고 '승복'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억울하면 '실력'을 키워서 '도전'을 받아주겠지만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면 '남자'로 인정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엄마나 선생님을 불러오면 '비겁하다'고 낙인이 찍히고 만다. 그런 연유인지는 몰라도 '소녀감성'이 물씬 나는 작품들에는 그리 어렵지 않게 해결되는 약한고리의 갈등이 곧잘 등장한다. 물론 갈등해소가 되었다고해서 '갈등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한마디로 '싸움'이나 '다툼'의 장면이 그리 오래가지 않고, 오히려 싸움이나 다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자세히 열거되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에 남자아이들은 '과정'이 긴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누가 이겼는데?"라는 식으로 '결과'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서 승자가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에만 관심이 집중될 뿐이다. 그나마 '과정'을 즐기는 남자아이들은 '싸움과정'이나 '결투과정'의 상세함을 좋아한다. <무협지>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또 하나, 소녀감성의 작품에는 '끔찍한 묘사'는 금물이다. 낭만가득 화려듬뿍인 묘사로 충만해야 한다. 뭔가 이국적이고 환상적이어서 '낯선 느낌'마저 주어야 엄지손가락이 절로 올라갈 것이다. 그래서 '궁중 생활'을 담은 왕과 귀족의 이야기가 매력 만점이다. 왜냐면 오늘날에는 '계급적 신분'이 사라져서 왕자와 공주의 생활을 현실에서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돈 많은 부자들은 '옛날 귀족적인 모습'을 맘껏 꾸밀 수는 있지만, 그 옛날의 '궁중예법'이나 '화려하고 고풍적인 품위'를 엄숙히 지키는 사회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꽤나 낯설고 매력적으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런 고품격의 낯설음을 '뱀파이어'나 '요정' 같은 것들에게서 느끼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경향이 소녀들의 감성에 잘 먹혀 들어간다. 귀여니의 소설 <늑대의 유혹>이나 스테프니 메이어의 <트와일라잇> 같은 작품에 열광하는 여성독자들은 '미모의 남자 주인공'이 등장해서 '여주인공'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는 장면에서 까무러치지 않은가 말이다. 목숨을 건 혈투를 벌이면서도 '고품격의 매너'를 잃지 않는 이질적이고 비현실적인 상상(?)에 빠져들곤 한다.

그렇다면 <공주 탐정 엘리자베트>에도 이런 요소들이 있을까? 먼저 '프랑스 왕정'의 실존인물을 차용했다는 점이 그렇다. 실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삼았는지까지는 잘 모르겠으나 책 내용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프랑스 궁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이고 왕실과 귀족들의 일상을 아주 세세히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녀감성이 물씬 풍긴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아주 약간이 '추리적 요소'를 담아 미스터리한 사건으로 흥미를 유발시키고 있지만, 이야기 맥락상 그리 중요한 사건은 아니다. 두 번째 사건에서는 '하프시코트 연주자'에 이어 '바이올리니스트 뮤직박스'가 등장하고, 그 속에 비밀암호가 담겨 있지만, 너무 쉽게 풀려버리고 만다. 대신 '엘리자베트 공주의 일상'을 중심으로 묘사되고 있는 궁중예법에 대한 묘사가 이야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소녀독자들의 만족도가 더 높아졌을 것이다. 실제로 '여자아이'를 자녀로 부모님들이 이 책 구매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자녀가 '독서'에 흥미를 느끼고 빠져드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아빠'는 그 까닭을 잘 이해할 수 없을지 몰라도 '엄마'는 이 책을 먼저 읽어보면 단박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자기 딸이 이 책에 흠뻑 빠져들 수밖에 없는 까닭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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