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니까 상상 사전 1 그렇다니까 상상 사전 1
송라음 지음, 서수인 그림 / 창비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창비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그렇다니까 상상 사전 1> 송라음 / 서수인 / 창비 (2026)

[My Review MMCCLXXI / 창비 1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 번째 리뷰는 어린이들의 무한 상상력을 즐겁고 재미나게 풀어낸 <그렇다니까 상상 사전 1>이다. 어린이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너무 많아서 무엇 하나 콕 집어내기 망설여지겠지만 '미래의 주역이 될 주인공'이기 때문에 꿈을 꾸는 것을 가장 잘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어린이들이 마음껏 활약할 수 있는 시간적, 공간적,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적 여유가 없었기에 하루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했다. 어른이 되면 무한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고 강제하고 억압하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막상 어른이 되고 나니 자유는 고사하고 강제하고 억압하는 것들이 어린 시절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을 깨우치고 나서 엄청 좌절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물론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녹록치 않다는 현실을 반영한 일이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어른들이 정작 어린이들에겐 마음껏 꿈을 꾸고,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른들은 현실적으로 그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잘 알면서 왜 어린이들에게는 '꿈을 꿀 자유'를 허용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건 어린이들이 꾸는 꿈만큼 '그 나라의 국력'이 커갈 수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비록 어른들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서 실현불가능하다는 절망에 쉽게 굴복하고 좌절하지만, 어릴 적 꿈꾸던 시절에는 '현실의 벽'을 유유히 통과하며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쳤고, 그런 어린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에는 최소한 '딱 그만큼'은 실현가능했던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놀랍지 않은가? 우리의 윗세대는 불가능했던 일이 우리세대에는 가능해지고, 우리세대가 불가능하다고 여기던 일들을 우리의 후세가 믿을 수 없을만큼 눈부시게 가능케하는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어린이들에게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무한한 꿈을 꾸라고 이야기했던 것 같다. 그럼 <그렇다니까 상상 사전>에서는 어떤 상상이 펼쳐졌을까?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그렇다니까 상상 사전 1> 관점 포인트 : 책을 펼치면 처음 등장하는 배경은 엄숙하고 조용한 '도서관'이다. 엄청나게 큰 도서관에서 우리의 주인공 새하는 길다란 사다리를 타고서 책꽂이 맨 윗칸에 꽂혀 있던 낡고 먼지가 켜켜이 쌓인 '백과사전' 하나를 꺼내들고 대출하기 위해서 사서선생님께 다가간다. 하지만 새하는 사서선생님께 매몰찬 이야기만 전달 받는다. "그 책은 대출 금지야"라고 말이다. 새하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까닭을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원래 '사전'은 어느 도서관에서나 대출 금지"라는 말뿐이었다. 하지만 새하는 사서선생님이 하는 말씀의 뒷내용에 더 솔깃해한다. "이 사전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이고, 누가 빌려가서 함부로 내용을 바꾸기라고 하면 큰일난다고..."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아니, 책을 못 빌려줄 까닭이 '책의 내용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가? 암튼, 사서선생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시면 책을 원래 자리에 꽂아놓으라고 당부했지만, 호기심 많은 새하는 사서선생님이 한 눈을 파는 사이에 '무인대출기'로 백과사전을 올려놓고 대출을 시도했다. 무인대출기에서는 "대출이 완료되었습니다"라는 말이 들렸고, 새하는 무사히(?) 무거운 책을 들고 도서관을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새하는 모험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백과사전답게 책은 'ㄱ'부터 가나다 순서로 내용이 적혀 있었으며, 순서대로 주르륵 읽어가다가 '공룡'이라는 낱말에서 눈길이 멈춰섰고, 자세하게 읽기 시작했다. 왜냐면 새하는 공룡을 무척 사랑하는 어린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익숙하게 잘 알고 있는 공룡들에 대한 이야기를 쭈욱 읽어나가다가 '세상에 없던 공룡'을 상상하기에 이른다. 공룡답게 날카로운 이빨과 길다란 발톱을 가졌으면서도, 익룡처럼 날개를 가져서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데, 꼬리에는 곤봉 같은 무시무시한 무기를 가지고 있는 '상상속의 공룡'을 머릿속에 떠올렸던 것이다. 그리고 새하는 그 상상속의 공룡을 아른 공룡과 함께 어울려 다니는 꿈을 꾸며 "그렇다니까"라는 말을 되뇌었다. 그리고는 새하는 상상속에서 새하가 만들어낸 공룡과 함께 마음껏 노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다음 날 학교에 등교한 새하는 친구들과 공룡이야기를 나누다가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 새하가 친구들이 좋아하는 공룡이야기를 하는 틈에 자신이 상상했던 공룡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이다. 친구들 중에 '공룡박사'로 통하는 친구가 "그런 공룡은 세상에 없어. 거짓말쟁이야"라고 험한 말을 하자 새하도 지지 않고 "내가 본 백과사전에는 분명히 있었어"라고 맞붙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어느 새 '진실공방'으로 논쟁이 벌어지면 '증거'를 내놓으라며 새하를 윽박지르자 새하는 억울하다면서 도서관에서 몰래 빌려온 <그렇다니까 상상 사전>을 꺼내 들었고,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들어 새하가 말한 공룡을 찾으러 백과사전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당황한 것은 새하였다. 말다툼에서 지고 싶지 않아 어젯밤에 상상했던 '공룡이야기'를 꺼냈지만, 그런 공룡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이 새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새하기 빌려온 '백과사전'에 달려들어서 뒤적거리기 시작하자 마음속으로 뜨끔했던 것이다. 그리고 새하가 한 거짓말이 금세 들통이 날 것 같아 마음을 졸이고 있었는데, 아이들 사이에서 "찾았다"라는 듣고, 어리둥절한 것은 도리어 새하가 되었다. 아니, 놀라운 일이 새하의 눈앞에서 펼쳐졌던 것이다. 새하가 상상했던 공룡이 '백과사전'에 떡하니 적혀 있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백과사전을 보던 아이들이 모두 '백과사전 속으로' 빨려들어간 것처럼 주변 환경이 바뀌더니 상상속의 공룡과 새하의 친구들이 즐겁고 재미난 듯이 함께 어울려 한바탕 신나게 놀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동안 즐기던 아이들은 어느덧 잠에서 깨어난 듯 교실안으로 되돌아왔고, 친구들은 자신들이 한 경험이 정말 생생했다면서 놀라워했기 때문이다. 바로 새하가 빌려온 '백과사전'이 부린 마법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그 사실'이 백과사전에 정확하게 적혀 있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원래부터' 그런 사실이 널리 알려진 것처럼 행동했기 때문이다. 바로 '상상'이 '상식'이 되는 순간이었다.

새하의 상상은 계속 된다. 'ㄴ'에서는 '세상에 없던 상상의 나라'를 떠올렸고, 'ㄷ'에서는 '상상속에서 꾸며낸 돈'을 쓰면서 경제의 원리를 깨달아갔다. 1권의 내용은 여기까지였다. 2권에서는 또 어떤 상상이 실제 현실처럼 생생하게 펼쳐지게 될까? 어린이들의 머릿속에서는 하루 종일 '상상'이 펼쳐진다. 비단 상상은 어린이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어른들도 상상을 곧잘 펼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상상은 어린이들만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 사실 어른들이 하는 상상은 곧잘 '현실의 벽'에 부딪혀서 사라져버리기 십상이라서 그런다. 어른들은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기도 전에 '실패했던 경험'과 '야박한 사회적 통념'으로 인해 애써 상상했던 것을 쓱쓱 지우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철없는 공상'이나 하는 것을 스스로 한심하게 여긴 탓이 가장 크다. 그 결과 어른들은 상상을 통해서 멋진 미래를 꿈꾸기보다 냉혹한 현실과 마주한 끝에 '현실, 그 자체'에 안주해버리는 일이 더없이 편하고 쉽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렸다. 그래서 애써 상상한 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힘든 노력을 하지 않으려 한다. 마치 '높다란 벽'을 만나면 부수어 꿰뚫어버리고 나아가거나, 훌쩍 뛰어넘어 더 높이 날아오르는 '가능성'을 믿고 부단히 노력하기보다 두꺼운 벽을 뚫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높다란 벽을 올라 넘어가는 일이 정말 힘겹다는 '변명'만 늘어놓기 일쑤란 말이다. 이런 어른과 상상하길 멈추지 않는 새하를 비교해보면 답은 뻔하다. 상상하는 힘은 당연히 어린이가 더 뛰어날 수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말이다.

나가는 글 : 이처럼 단순한 '상상'과 그것을 실현하는 힘인 '상상력'은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개념이다. 상상은 애어른 할 것 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상상력'을, 다시 말해 '상상하는 힘'을 실제로 발휘하는 데에는 어른이 어린이를 따라올 수 없다. 그리고 어른들은 어린이의 상상을 낮잡아 보고 삐뚫어진 마음을 가진 것마냥 퉁명스럽게 말하기 일쑤인데, 결코 그래선 안 된다. 비록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상상일지라도 '상상력'을 발휘했다는 그 자체만으로 대단히 높이 평가해야 하고, 후한 점수를 주며 과하다 싶을 정도로 무한한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쥘 베른의 소설 '경이의 여행(Voyages extraordinaires)' 시리즈를 보면 19세기에는 없던 잠수함과 우주선 따위가 등장한다. 더구나 쥘 베른은 실제로 여행을 해본 적도 없다고 한다. 엄격한 가정교육을 중시하던 고모 슬하에서 컸던 탓에 집밖 외출조차 마음껏 할 수 없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쥘 베른이 선택한 것은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하늘 여행을 '열기구'를 타고서, 바닷속 여행을 '잠수함'을 타고서, 우주 여행을 '우주선'을 타고서, 마치 실제 경험한 것마냥 경이로운 여행기를 써내려갔다. 그 결과 20세기가 되어서 어떻게 되었는가? 19세기 소설가의 '상상'에 불과했던 일이 20세기 이후 '상상력'을 발휘하자, 실제로 '비행기'로 하늘을 날아 여행을 하고, 바닷속으로 '잠수함'이 떠다니며, 우주속으로 '우주선'이 날아오르고 있다. 만약 '상상하는 사람'이 없었다면 '상상력'이 현실이 되는 일이 일어나기나 했을까?

그렇기에 우리는 마음껏 무한 상상하는 사람들을 '공상가'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먼 미래에 당연한 일을 시간을 거슬러 '상상력'을 발휘함으로써 미래의 '상식'을 현재의 '상상'으로 풀어낸 '마법사'로 존중해야 할 일이다. 물론 이것 저것 값싼 '물질'을 섞어서 값비싼 '금'을 만들려던 '연금술사' 같은 허튼 망상꾼도 없지 않아 있다. 그래서 '마법사의 돌'이니 '현자의 돌'과 같은 실현불가능한 마법도구를 얻기 위해 불가능을 꿈꾸는 사람들을 '연금술사'로 부르면서 놀림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허나 현대에 와서는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화학제품들이 과거 '연금술사'들이 수없이 실패했던 경험을 토대로 발전한 '화학'이 없었다면 우리는 현재 비누와 화장품 등처럼 없어서는 안 될 일상용품들을 편리하게 쓸 수 없었을 것이다. 비누나 손소독제 없는 일상에 얼마나 큰 혼란과 공포를 가져다줄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연금술사'처럼 허황된 꿈을 꾸는 사람들조차 없었으면 큰일이 났을 요즘이다.

이처럼 '상상'은 생각보다 우리에게 크나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한시라도 '상상'을 멈춰선 안 된다. 그럼에도 상상할 꺼리를 찾지 못하겠다면 지금 당장 <그렇다니까 상상 사전 1>을 펼쳐 들어라. 그리고 '상상하는 힘'을 깨우치고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그 힘을 응축해서 세상을 바꿀 '상상력'으로 발휘하는 놀라운 경험을 해보길 바란다. 2권에서 계속하겠다.

#리뷰 #그렇다니까상상사전 #송라음 #창비 #창비어린이 #상상력 #책이있는구석방 #추천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 혼자만 레벨업 1 - 만화
장성락(REDICE STUDIO) 지음, 추공 원작, 기소령 각색 / 디앤씨웹툰비즈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 혼자만 레벨업 1> 장성락(Redice Studio) / 추공 / 기소령 / 디앤씨웹툰비즈 (2019)

[My Review MMCCLXX / 디앤씨웹툰비즈 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아흔아홉 번째 리뷰는 대한민국 웹툰의 새로운 전설로 등극한 <나 혼자만 레벨업 1>이다. 우연찮게 애니메이션을 먼저 보게 되면서 뒤늦게 <나 혼자만 레벨업>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는데, 제주도 레이드에서 성진우과 개미왕이 결전을 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멈춘 것을 확인하고, 그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먼저 '소설 <나 혼자만 레벨업>'을 완독하게 되었다. 그 다음에는 '같은 제목'의 앱게임에 푹 빠졌다가 최근에서야 '단행본'으로 출간된 웹툰을 구입해서 읽게 되었다. 벌써 2년 째 푹 빠져서 읽고 있는데 정말 대단한 작품이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대한민국 헌터가 세계1인자로 우뚝 서서 인류 전체를 구원한다'는 이야기였다. 뭐, 이런 스토리는 그동안 미국, 유럽, 일본 등 기존 만화/애니 강국에서 질릴 정도로 우려먹었던 레퍼토리인지라 그닥 인상적이랄 것도 없겠지만, 그럼에도 인상 깊었던 까닭은 '대한민국 웹툰'에서 잘 등장하지 않는 레퍼토리였고, '다른 차원의 존재의 위협'에서 지구를 지키는 1인자가 대한민국 헌터라는 사실만으로 두근두근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지구를 구한 영웅인데 전세계인들은 '그 사실'을 잘 모른다는 설정이 기존의 만화/애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스토리였기에 더욱 감동적이었다. 미국 만화에서는 '미국영웅이라 당연하다'는 식이었고, 유럽 만화에서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영웅이야기 맛볼텨'라는 식이었고, 일본 만화에서는 '너무 잘난 일본 영웅이라 서구사회에서 알아보고 존경해마지 않는다'는 설정이 많은 편인데, 대한민국 만화에서는 애초에 그런 컨셉을 잘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 혼자만 레벨업>은 대한민국 영웅은 지구를 구하고도 남을 힘을 가졌음에도 군림하려 들지 않는다는 식의 쿨함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의에는 참지 않으며, 감히 대한민국을 깔보고 만만하게 본다면 그에 걸맞는 본때를 보여준다는 인상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나 혼자만 레벨업 1> 관점 포인트 : 나는 한 번 읽을 셈이면 절대 책을 구입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만화책이라면 열 번 이상을 볼 작정을 하고 아예 '소장본'이나 '애장본'을 구입하는 것을 즐긴다. 그래서 남들보다 현저하게 '늦게 구매하는 편'이다. 이 책도 벌써 출간된 지 7년이나 지나서 산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남들이 볼 땐 이상한 짓(?)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애니와 소설, 심지어 앱게임까지 즐기고 있다면 줄거리를 줄줄 꿰고 있을텐데, 또 만화책을 구입해서 읽은 것은 무슨 취미란 말인가하고 말이다. 하지만 <나 혼자만 레벨업>은 정말 예술 그 이상이었다. 애니메이션도 종종 '다시 보기'를 하고 있는데, 볼 때마다 '정주행'을 하고 만다. 얼른 '3기'가 방영되어 '제주도 레이드, 그 이후 이야기'를 즐길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현재까지는 그 뒷이야기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완결된 소설과 만화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이 늦었지만, 나는 <나 혼자만 레벨업>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다시 리뷰하려 한다.

<나 혼자만 레벨업>의 주인공은 성진우다. 대한민국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으로 'E급 헌터'로 활약하고 있다. 헌터란 최근에 전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게이트'를 통해서 출몰하는 마수를 상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다. 이 게이트를 통해서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는데, 그 마력을 받아들여서 '새로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헌터인 셈이다. 그리고 게이트를 통해서 출몰하는 마수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무기체제로는 결코 상대할 수 없다. 오직 게이트에서 흘러나온 '마력'으로 만든 무기나 에너지로만 마수들을 상대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마력을 제대로 다루는 '헌터'만이 유일하게 '마수'를 상대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런데 헌터라고 해서 모두 '마수'를 압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은 아니다. 마력에 감응한 헌터는 '등급'이 존재하며, 강한 순서대로 S급, A급, B급, C급, D급, E급으로 구분하고 있다. 마수들도 이런 등급에 맞춰서 등장하는 편이며, 이를 테면 C급 던전으로 판명이 되면, 그 던전안에는 대부분 C급 이하의 마수들이 나타나며, 이런 C급 마수와 맞상대를 할 정도의 헌터를 C급으로 정한 것이다. 우리 주인공인 성진우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낮은 E급 헌터로 판명되었으며, E급 던전에 나오는 마수들도 겨우 상대할 수 있는 '최약체'였던 것이다. 여기까지 본다면 이 만화는 '성장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차곡차곡 경험치를 모아 레벨업을 하며 점차 고수가 되어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스토리'를 답습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런데 <나 혼자만 레벨업>은 시작부터 그런 오해를 하지 않도록 못을 박았다. 한 번 판정이 난 '등급'은 절대 변하는 일이 없다고 말이다.

그러다 E급 헌터 성진우가 '이중던전'을 경험하면서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거대한 석상들이 헌터들을 학살하던 그 악몽 같던 경험을 겪고 난 뒤에 성진우에게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인류 최약 병기라 불리던 성진우가 '레벨업'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헌터의 '등급'은 한 번 정해지면 변하지는 않지만 '단련'을 할 수는 있다. 고도의 단련을 통해서 '등급'이 올라가지는 않지만, 그 등급 헌터들이 쓸 수 있는 능력을 숙련시켜서 더욱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능력 숙련은 '레벌업'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무리 숙련을 한들 '능력치'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레벌업'은 기존의 등급과 전혀 별개로 작동하고 있었다. 레벨 몇부터 몇까지 '어느 등급'이라고 정해진 것이 없어 알도리는 없지만 마수를 처리할 때마다 '경험치'와 '아이템'을 얻게 되고, 일정 경험치를 충족시키면 '레벨업'이 되어 '능력치 스탯'과 '아이템'을 챙길 수 있는 '인벤토리 창'이 개방되었다. 물론 그 '인벤토리 창'은 오직 성진우에게만 보인다. 물론 '메시지 창'과 함께 말이다.

이게 정말 신기한 일인 것이다. 분명 성진우는 '이중던전'에서 거대한 석상들에게 몸이 산산히 찔리고 부서지면서 결국 죽고 말았는데, 죽음 같은 잠에서 깨어나니 '병원 안'이었고, 찔리고 베이고, 잘려나간 몸도 감쪽같이 원상태로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진우만 볼 수 있는 '메시지 창'은 계속 떴고, 그 메시지 창에 적혀 있는 '퀘스트'를 이행하고 목표를 달성하면 '보상'도 받을 수 있었다. 마치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처럼 말이다. 성진우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된 것이다. 그리고 아직은 인식하지 못했지만 성진우의 플레이를 지켜보는 '시스템'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로도, 성진우는 '플레이어'가 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 '플레이어'가 된 성진우가 달성해야 할 최종목표는 무엇일까? 그 비밀은 차츰 밝혀지게 된다.

나가는 글 : 이제 1권이라서 많은 줄거리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저 '플레이어'가 된 성진우가 겪게 될 이야기가 앞으로 수없이 펼쳐질 것이라는 '예고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권 마지막에 성진우는 시스템이 마련한 '퀘스트'를 수행하지 않아서 '패널티 존'에서 또다시 죽다 살아나는 일을 겪게 된다. 바로 '일일 퀘스트'를 완료하지 않은 탓인데, 처음으로 어긴 '퀘스트 미수행'이건만 너무 가혹한 '패널티'를 매긴 것이다. 거대한 지네 마수를 피해서 '4시간 동안' 사막에서 뛰어서 도망다니게 한 벌칙이었다. 자칫하다간 주인공이 초반에 죽어버릴 수도 있는 벌칙이었다. 이런 죽을 고비는 성진우가 겪게 된 '인스턴스 던전'에서도 경험하게 된다. 퀘스트를 끝마치지 않으면 '플레이어'는 살려둘 필요가 없다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퀘스트의 목적은 '성진우의 성장' 곧 '레벨업'이었다.

그런데 성진우의 레벨업은 너무 속도가 빠른 감이 없지 않다. 이제 겨우 '재각성'을 한 듯한데 능력치는 '최하위권'에 속하고 있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쪼렙'인 처지다. 그런데 레벨은 '쪼렙'인데, 그런 쪼렙이 감당해야할 시련은 너무 가혹했기 때문이다. 마치 어릴 적에 읽었던 <공포의 외인구단> 같은 설정이다. 개인적인 복수를 하고 궁극적으로 야구경기에서 승리를 하기 위해서 외딴섬에서 무지막지한 훈련을 이겨내고 복귀한 선수들이 맹활약을 펼친다는 이야기처럼 말이다. 지옥에서 살아돌아온 그들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무지막지한 수련을 통해서 빠르게 레벨업을 한 성진우에게 닥칠 시련은 무엇이고, 과연 무엇 때문일까? 2권에선 '인스턴스 던전'에서 살아돌아온 성진우가 맹활약을 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다음에 계속.

#리뷰 #나혼자만레벨업 #장성락 #추공 #기소령 #만화 #이중던전 #플레이어 #책이있는구석방 #추천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가치함의 심리학 - 무가치하다는 감정과 싸우는 이들을 위한 심리 처방전
네모토 기쓰오 지음, 최주연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가치함의 심리학 : 무가치하다는 감정과 싸우는 이들을 위한 심리 처방전> 네모토 기쓰오 / 최주연 / 문예춘추사 (2026)

[My Review MMCCLXIX / 문예춘추사 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아흔여덟 번째 리뷰는 너무 겸손해야 한다는 강박을 떨쳐내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이 담긴 <무가치함의 심리학>이다. 제목만 봤을 땐 AI 인공지능이 너무 발달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조차 AI에게 다 맡겨버린 가까운 미래를 대비해서 '인간소외 현상'이 심화될 수 있으니, 설령 그런 참담한 일을 당한다하더라도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꿋꿋하게 '자기 가치를 증명하라'는 내용으로 짐작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자신감을 잃고 자포자기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쓴 '자기계발서'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 책은 우리 나라보다 '일본인의', '일본인에 의한', '일본인을 위한' 심리학으로 봐야 할 것이다. 왜냐면 일본인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상당히 많이 위축되어 있고, 그로 인해서 일본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내용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 근거로는 일본인은 스스로 판단하기에 자신이 '가치가 없다'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전체를 100%로 보았을 때, [남자 50 / 여자 60]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한국을 비롯해서 미국, 중국 등에서는 남녀 모두 10~20% 사이에 불과했다.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무가치함의 심리학> 관점 포인트 : 이 책에서 말하는 '무가치함'이라는 뜻은 '가치가 없다'는 의미로 읽어도 되지만 '자기존중을 하지 않는다'로 읽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굳이 명사형으로 꼽는다면 '좌절감'으로 해석해도 의미가 상통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어느 누가 자신의 가치를 한껏 낮추어 잡고 스스로를 비관하며 살아갈까? 언뜻 생각해보면 그런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고, 있다하더라도 그냥 찌질한 사람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왜냐면 한국인들은 자기 자신을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오히려 너무 기세등등한 편이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절대적으로 기가 죽으면 안 된다는 국룰(?)이 있을 정도다. 이를 테면, "아니, 왜 우리 애를 기죽이려고 하는 거예요? 틀렸어도 혼내지 마세요! 무조건 칭찬만 하란 말예요!! 선생이고, 뭐고, 우리 애 기죽이면 내가 가만 안 둘거야. 당신 각오해요!!!" 이런 억지를 부리는 것이 일상일 정도니, 우리 사회에서는 스스로를 '무가치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웃 나라인 일본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폐(弊)를 끼치면 안 된다'는 것을 너무 강압적으로 가르치려다보니 어릴 적부터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너무 강해 '경각심'마저 들 정도인 것이 오히려 폐단이 된 듯 싶다. 살다보면 가까운 이웃이나 친구끼리 서로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신세를 끼칠 수도 있는데, 일본은 이를 극도로 싫어하고, 그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다고 할 정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탓이 단단히 한 몫 한 듯 싶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이렇게 남에게 폐를 끼치는 사람을 '온전치 못한 사람', '자기 몫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 따위로 취급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루스 베네딕트가 쓴 <국화와 칼>에도 그런 일본 문화를 소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에게 폐나 끼치는 모자란 사람이 되지 말자는 경향이 강한 사회에서 남들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는', 아니 '비교 당하는' 일이 너무 많다보니 스스로 '무가치하다'는 생각까지 하는 이들이 높은 비율로 존재하는 듯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일본인들의 병폐 현상을 해소하고 건강한 심리상태로 되돌리기 위해서 써낸 책이 <무가치함의 심리학>이 아닌가 짐작해봤다. 애초에 AI시대에 도래할 위험요소인 '인간 불필요'가 실현될 때를 대비한 책이 아니었기에 이런 저런 상념에 빠져들어서 요런 죠런 생각들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그 결과는 한국 사회에서도 병폐현상으로 등장한 '청소년 자살' 비율이 상당히 높다는 뉴스를 떠올리게 했다. 이들이 왜 젊은 나이에 끔찍한 선택을 하게 되었던 것일까? 그건 한국사회가 대단히 '완벽주의'에 대한 강박이 심하고, 조금이라도 흠이 잡힐까봐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불안요소가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완벽하지 않을 바에야 '살 가치가 없다'는 섣부른 결론에 다다랐고, 그 결과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이 책이 조금 쓸모가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책에서도 일본 가정에서 벌어지는 '완벽함을 요구하는 부모'가 자기존중을 하지 못하는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엄격한 양육 환경 속에서 숨쉴 여유도 없이 자녀를 다그치고 닥달하게 되면 자녀의 자존감이 오히려 위축되면서 스스로 자신을 평가절하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자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은둔하게 만들어 '사회부적응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고도 했다. 이는 비단 한국과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다. 잘못된 양육으로 소중한 자녀가 스스로 비관하게 만드는 경우가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서구사회처럼 법적으로 해결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특히나 동양의 사고가치관으로는 '내 자식, 내 마음대로 키우겠다는데 누가 상관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너무 팽배하기 때문이다. 너무 강한 잘못된 신념이 자녀를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부모에게 미치지 못한다면 다른 어느 누구도 섣불리 간섭할 수 없는 것도 문제이긴 하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 '가치가 없다'고 여기거나 '자존감이 낮다'고 생각이 든다면, 이런 '열등감'을 당연하다고 여기지 말고 스스로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자기 긍정마인드'를 가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가장 효과적이며 실현가능성도 굉장히 높다고 글쓴이도 여러 임상과 관련 기사를 들어서 주장하고 있다. 그럼 스스로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첫째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야 한다. 둘째는 스스로 무력해지려는 마음과 작별해야 한다. 셋째는 일상에서 보람을 느끼도록 인생 설계를 해보는 것이다. 넷째는 성실하고 꾸준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자아실현을 성취해보는 것이다. 다섯째는 나를 사랑하듯 남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여섯째는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쾌락을 즐길 줄 아는 성숙한 어른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 일곱째는 지금까지 앞서 해온 자신을 무한 신뢰하는 것이다. 어떤가? 해볼만 한가? 사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막 어려워서 도망치고 싶을 정도는 아닐 것이다.

나가는 글 : 속된 말로, 사람은 누구나 '자기 멋'에 취해서 살아간다. 저 잘난 맛을 즐길 줄 알아야 진짜 즐거운 인생이란 뜻이다. 그런데 자기 스스로 '가치 없다'고 느끼는 사람은 이런 즐거운 인생을 맛보지도 못하고 저승으로 가는 지름길을 찾으려 애쓰는 셈이다. 인생는 '게임'이 아니다. 맘에 들지 않는다고 '다시 시작'하거나, 함부로 '끌' 수도 없다. 잘나든 못나든 그냥 사는 것이 인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왕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좀 멋지게 사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멋지게 사는 인생일까?

사람마다 멋지다는 기준은 다르겠지만, '자기 존중'만큼은 꼭 필요할 것이다. 이 세상에 '아무런 가치가 없는 사람'은 없다. 평범한 사람보다 '더 잘난 것'이 많아서 인기인이 되고 탑스타가 되어 호의호식을 누리는 특별한 사람도 있겠지만,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저마다의 개성을 살려, 자기만의 멋을 부리며' 살아간다. 이런 멋만큼은 그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 아니 감히 건드리게 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마음이 바로 '자존감'이다. 반대로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마음에 상처를 내거나 아프게 하면 '좌절감'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허나 그렇다고해서 '가치가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그 판단은 남이 함부로 내릴 수도 없다. 만약 그 누가 당신을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폄하한다면, 결코 참아선 안 된다. 만약 상대가 너무 강하고 무서워서 당장 치고 받고 싸워서 이길 자신이 없는 상황이라면 조금 시간이 걸리는 방법이지만, 3~40년간 오래 참다보면 결국 그 상대가 늙고 병들거나 이미 죽게 된다. 그때 분연히 일어나서 '자존감'을 드높이면 된다. 그러니 결코 자신이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섣부른 결론을 내리지 말고, 자신만의 가치를 내세울 만큼 강심장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당신을 그럴 가치가 충분하니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트로 책담 청소년 문학
최이랑 지음 / 책담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트로 : 책담 청소년 문학> 최이랑 / 책담 (2026)

[My Review MMCCLXVIII / 책담 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아흔일곱 번째 리뷰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사회초년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인트로>다. 고등학교 청소년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무엇일까? 얼마 있으면 어른이 된다는 설렘에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두근거림은 느낄까? 아니면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할까봐 어른이 되는 것이 싫다고 떼를 쓰는 것은 아닐까? 어른들이 생각하는 청소년들의 고민과 설렘은 상상도 하지 못한 범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꼰대 같은 어른들은 섣부른 지레짐작으로 '청소년들의 고민'을 제멋대로 결정하고 판단을 내리며 가르치려 든다. 정작 그들이 가진 고민이 '무엇' 때문이고, '왜' 그런 고민을 하는지 이해도 하려 들지 않으면서 말이다. 흔히 말하는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산전수준 다 겪은 듯한 경험담을 늘어놓지만, 세월도 흘렀고 시대도 바뀌었으니 제발 그런 헛소리는 집어 넣고 꺼내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럼 이쯤으로 각설하고,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인트로> 관점 포인트 : 이 소설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에는 고등학생이 현장실습을 나가서 겪을 수 있는 고충을 하소연 하는 구나 싶었다. 그래서 어줍잖은 푸념 나부랭이나 늘어놓을 심산이면 그냥 '수능대비' 공부모드로 전환해서 명문대는 아니더라도 '4년제 대학 졸업장'이라도 따놓고 사회경험을 시작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생각을 품고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왜냐면 우리 청년들의 가장 큰 고민이 '취업 문제'인데, 그걸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번듯한 '대학졸업장'인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대학졸업장'이라도 따놓으면 '입사 때' 서류면접이라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비록 '정규직'은 아니더라도 '계약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고, 대학 학자금 갚아나가면서 차곡차곡 밑천을 모아다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인생을 거는 모험을 하는 것이 정석코스 중의 정석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청년들이 그런 삶을 살아가곤 한다.

그런데 '나도 다 경험해 봤다'는 식의 그런 '꼰대 같은 마음'으로 책을 읽어나가다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으레 첫 취직을 하면 '중요 업무'에서 배제되고, '잔심부름'이나 '사무실청소', '식사셋팅' 등 자기가 맡은 업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허드렛일만 하다가 하루 일과가 끝나곤 하니까 말이다. 아무리 학교에서 '현장실습'을 나간 실습생일지라도, 학교에서 역할분담을 한 것처럼 '실제 업무'를 배당받아 주요업무나 중요 프로젝트에 바로 참석해서 '아이디어'를 내고, 열심히 일을 한 결과, 기대한 '성과'를 내는 그런 꿈 같은 직장생활은 감히 꿈꿀 수도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정규직 사원으로 입사한 뛰어난 인재라고 하더라도, 어디까지 '사회초년생'이고, '회사 말단 신입사원'인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회사에서 '신입사원'에게 막중한 책임감을 느낄 수 있는 실무를 던져주지는 않는다. 그런데 고작 '현장실습' 나간 고3 학생에게 학교에서 배운 '이론'을 바로 적용해서 '실습'해볼 기회를 주는 그런 회사가 얼마나 되겠느냐는 말이다. 그러니 그런 회사분위기가 어색하고, 때론 억울하다고 하더라도 묵묵히 참고 견디는 모습을 보여 '성실함'을 인정 받게 되면 자연스레 '간단한 업무'부터 시작해서 회사일을 배우게 될 거라고 잔소리를 잔뜩 늘어놓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중후반으로 넘어가는 대목에서 아차 싶었다. 그런 이야기가 아니구나 싶었다는 말이다.

우리는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을 '노동자'라고 부른다. 회사는 이 노동자들에게 일을 시키고, 일한 대가로 '임금'을 지불하며, 노동자가 열심힌 일한 결과로 '영업이익'을 낸 뒤에, 그 차액을 '회사수익'을 챙기게 된다. 이게 보통이다. 그런데 모든 회사가 '영업이익'을 많이 내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회사수익이 '마이너스'가 되어서 적자를 보고, 영업손해를 보게 되면 회사는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된다. 하지만 이 때에도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노동한 대가로 '임금'을 정상적으로 지불해야 한다. 회사가 손해본 것은 슬픈 일이지만, 그렇다고 노동자가 '노동'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혹 나쁜 회사들이 있다. 회사가 수익을 낼 때에는 '경영진'이 잘 나서 수익이 난 것이고, 손실을 낼 때에는 '노동자'가 게으름을 펴서 회사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얘기를 꺼내면서 '노동자 해고' 운운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에는 그럴 경우에도 함부로 '노동자 해고'를 하면 안 된다고 나와 있다. 노동자들에게 안정된 '고용 보장'을 해줘야할 의무가 정부나 회사에 다 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인권'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이런 노동 인권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일이 세 가지나 나타났다. 하나는 미아의 아버지가 3일 연속 '장거리 운전'을 하는 바람에 졸음운전을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교통사고를 당해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미아의 삼촌이 '호텔 주방장'으로 취직해서 열심히 일 했는데, 호텔이 경영난을 겪으면서 '경영진'이 바뀌는 일이 발생했고, 그 때문에 호텔측은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를 우선적으로 해고하는 부당한 일이 발생했고, 미아의 삼촌은 이에 불복하며 '부당해고 철회'를 호텔측에 요구하는 시위를 이어갔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미아의 절친인 '서수지'가 현장실습을 나간 곳에서 '실습'과는 무관한 허드렛일만 시키면서, 그것 또한 '사회생활을 배우는 일'이라면서 강요했고, 사무실 청소, 커피 심부름, 식당 예약 등 허드렛일이라도 묵묵히 참고 견뎌내면 '좋은 점수'를 받아서 취업할 수도 있다면서, 정작 '현장실습'을 증빙할 실습보고서에 적어놓을 수도 없는 잔업만 잔뜩 시키며, '업무시간 초과'는 부지기수고, '주말 근무'는 당연한 거라는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를 해대는 일이었다. 여기에 하일라이트는 '실습생'의 허리를 감싸며 '성희롱'을 하는 일이 발생했는데, 회사측에서는 '증거'도 없으면서 억지를 부리면 학생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거라면서, 오히려 피해자인 학생에게 '사과'를 강요하는 일이 발생해버린 것이다. 자, 당신에게 벌어진 일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가는 글 : 노동자는 자기 몸과 영혼을 갈아넣어서 회사일을 하며 '임금'을 받는다. 그저 단순히 '돈벌이'만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맡은 업무에 '보람'을 느끼길 바라며, 자기가 한 일이 보람찬 것을 넘어 '사회공헌'까지 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는 기쁨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돈', '보람', '공헌'이라는 세 가지가 바로 '노동의 3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노동자는 자신의 몸과 영혼을 아낌없이 쏟아붓곤 한다. 그래서 노동자는 일을 하면서도 '건강'을 챙겨야 한다. 육체적인 건강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까지 말이다. 그런데 미아의 아버지는 '육체적인 건강'을 챙길 수 없는 업무환경을 만들어 놓았기에 열심히 일하다가 돌아가셨다. 이건 노동자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욕심을 부린 것이라 보아선 절대 안 된다. 설령 노동자가 그런 욕심을 부린다고 하더라도 회사측에서 말려야할 의무가 있다. 거대한 컨테이너 상자를 움직이는 트럭 운전은 고된 일이다. 대부분 고속도로를 고속으로 운전하는 일이고, '장거리 운전'을 하게 되면 중간에 쉬지도 못하고 하루 8~10시간 동안 운전대를 잡고 꼬박 밤을 새워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데 그런 '장거리 운전'을 3일 연속으로 한다는데도 회사가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면 분명 책임을 져야만 한다.

또, 미아 삼촌의 경우도 '부당 해고'가 확실하다. 호텔 경영진이 바뀐 사정은 '노동자 책임'이 아니다. 영업 이익이 나지 않아서 호텔 경영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면 사측은 노동자와 '협의'를 통해서, '임금동결', '인원감축' 등을 신중히 결정하고, 사측과 노동자측 모두에게 큰 피해가 나지 않도록 만전을 기했어야 했다. 그런데 호텔 경영난을 이유로 '인원감축'을 강행했고, 해고된 노동자가 '노조가입자'가 대부분이었다면, 이는 명백한 고의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도 법원에서는 1심 판결을 '경영진'에게 유리하게 판결을 내렸고, 호텔측에 경영난이 있었기에 '부당 해고'가 아니다라는 호텔 경영진의 손을 들어주었던 것이다. 이를 근거로 노조가입자들이 대거 해고되었고, 노동자측의 권리를 주장할 '노동조합'이 와해되어 정상적인 '노조활동'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면 법원도 이를 참고해서 판결을 뒤집을 수도 있고, 그럼 해고되었던 노동자들도 '복직'이 될 수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를 '법정다툼'에서 승소할 수 있게 도와줄 '법조인'과 그에 따른 '소송비'를 충당할 여력이 노동자측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점이다. 이게 현실적으로 힘 없는 사람들을 더욱 억울하게 만드는 원인인 셈이다.

이처럼 미아의 아버지와 삼촌은 우리 사회의 노동자들이 겪게 되는 어려움을 아주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이제 막 사회에 첫 발을 내딛으려는 미아의 친구, 서수지에게 크나큰 시련을 마주하게 되었다. 학업성적이 우수해서 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가고 싶어하는 '판타스틱 에이전시'라는 회사에 현장실습을 나가게 된 수지를 부러워했는데, 막상 '현장실습'을 나간 수지는 기대이하도 아닌 '절망'만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회초년생이 마주할 냉혹한 현실세계일 수도 있으니, 어떤 어려움과 시련도 묵묵히 참고 이겨내면 된다는 충고와 조언이 뒤따를 법도 하지만, 그런 어려움도 '일을 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어야 참을 수 있는 것인데, 판타스틱 에이전시라는 회사는 애초에 '현장실습'을 온 학생을 최소한의 기준이나 예의조차 차리지 않고 '노예'처럼 부려먹기만 했던 것이라 아주 큰 문제였던 것이다. 계약된 3개월동안 실습하는 것이 고작 '커피 사오기', '사무실 청소', '식당 예약', '손님 접대' 뿐이라면 애당초 '현장실습'을 왜 받았느냔 말이다. 더구나 '손님 접대'를 하면서 고객이랍시고 찾아온 사람이 "실습생이야? 어리네."라는 말을 하면서 허리를 감싸는 '성희롱'을 당했다면, 무례하고 막돼먹은 손님에게 확실히 따지고, 사과를 하라고 해도 모자랄 판에, 되려 성희롱을 당한 학생에게 '사과'를 강요하고, 그동안 실습한 것도 없던 일로 하겠다는 '협박'까지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왜 어린 학생에게 이런 시련을 줄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이렇게 세 가지 부당한 일이 발생했는데, 미아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사회초년생들이 으레 겪는 불운이니 다 잊고 애초에 없었던 일인 것 마냥 그냥 넘기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더러운 세상에서 살기 싫다며 한강 다리 같은 높은 곳에 올라가서 인생의 마지막 점프를 하는 것이 좋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노동자가 당연히 누릴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 머리띠를 질끈 묶고 시위를 해야 하는 걸까? 솔직히 말하자면, 어느 것 하나 쉬운 결정이 없다. 엄청나게 힘겨운 일이며, 고통스럽고, 앞길이 깝깝한 심정을 느낄 수밖에 없는 비극인 것이다. 그렇다면 힘 없는 노동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일까? 애초에 금수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못한 죄를 짊어진 '노동자의 삶'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쓰디 쓴 인내를 운명처럼 씹어야만 하는 걸까?

애초에 힘이 약한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있다. 바로 '연대'다. 함께 할 때 큰 힘을 낼 수 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부당한 일을 당했다면 참지 말고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노동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약하디 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뭉치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한 목소리를 내면 더 큰 힘을 낼 수 있다. 그럼 부당하고 잘못된 결정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 사회초년생들이라면 더욱더 명심해야 할 것이다. 옳지 못하고 부당한 일을 당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미아의 선택'이 큰 참고가 될 것이다. 사회초년생들이라면 심금을 울림과 동시에 현실직시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꼭 읽어보길 바란다.


#리뷰 #인트로 #최이랑 #책담 #청소년노동 #노동인권 #연대 #청소년사회진출 #청소년소설 #한솔수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이로매니악 1
이우혁 지음 / 반타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파이로매니악 1> 이우혁 / 반타 (2026)

[My Review MMCCLXVII / 반타 5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아흔여섯 번째 리뷰는 정확하게는 27년 만에 새롭게 돌아온 <파이로매니악 1>이다. '미컴' 출판사에서 98년에 1권이 나오고 99년에 3권까지 출간되었다가 연재 중단이 된 <파이로매니악>이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너무 오랜만이다. 그나마 나는 작년에 '구판'으로 나온 <파이로매니악>을 읽고 리뷰까지 작성했기에 기억이라도 생생하지, 전작을 읽고 감동했다가 27년 만에 다시 만난 오랜 팬들은 정말이지 기억조차 가물가물 할 지경일 것이다. 암튼 '이우혁이 돌아왔다'는 사실에 만족할 따름이고, 본격적인 이야기는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본 뒤에 다루도록 한다.

<파이로매니악 1> 관점 포인트 : 스포일러는 아니지만, '구판'의 내용과 '개정판'의 내용이 완전 딴판이라 놀라는 팬들도 많을 것 같다. 구판 <파이로매니악>에서는 동훈과 영, 희수가 사회의 암적인 존재들을 '폭탄 한 발당 나쁜놈 한 개씩' 처단하는 방식으로 진행시켰는데, 개정판 <파이로매니악>에서는 시작부터 '원샷 원킬'을 하면서 속도감이 엄청 빨라졌다. 그래서 전체적인 줄거리 진행까지 덩달아 빨라져서 짜릿함이 미친듯이 상승했다. 사실 <파이로매니악>의 매력 포인트는 뭐니뭐니해도 엄청난 폭발감이다. 화약이 빵빵 터지는 장면이니 폭발 장면이 당연한 것이지만, 단순히 폭발했다는 느낌이 아니라 딱 원하는 곳에, 딱 알맞게 빵빵 터지기 때문에 더욱 짜릿한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집 한 채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시원한 폭발감이 아니라 집 안에서도 '안방', 안방 중에서도 '침대밑', 침대밑에서도 '남편이 잠자는 쪽, 남편이 잠자는 쪽에서도 '허리'가 놓인 곳만 딱 골라서, 그곳만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 '한 남자의 허리'가 흔적도 없이 산산조각이 나고 상반신과 하반신은 멀쩡한 상태 그대로 남겨 둘 수 있고, 같이 잠이 든 여자는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고 멀쩡할 수 있도록 아주 정밀하게 폭발을 시키는 방식으로 깔끔한 '복수'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복수'다. <파이로매니악>에서 가장 핵심적인 주제가 다름 아닌 '복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순히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죽여서 공포심을 자아내는 '테러'와는 다르다. 아주 치밀하고 정밀한 '살인' 수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절한 복수를 명분으로 삼은 살인자들이 주인공인 탓에 독자들은 살인범인 주인공들에게 동정을 하고, 그들이 복수를 할 수밖에 없는 비극을 겪었기에 공감을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파이로매니악>의 매력이다. 그런데 말이다. 아무리 끔찍한 일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사사로운 복수'가 허용되는 사회를 사는 것이 너무 불안하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우리는 '공권력'을 국가에게 맡기고, 국가는 사법부에 죄를 지은 사람을 벌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하고, 죄인에게 벌을 줄 수 있는 근거인 '법'에 따라 만인에게 공평하고 공정한 판결을 받게 한 것이다. 그렇게 판사, 검사, 경찰에게 죄인을 벌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피해자가 억울한 일이 없게끔 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대한민국 법이 '가해자'에게 유리한 것일까? '피해자'에게 유리한 것일까? 범죄자의 인권은 그토록 꼼꼼하게 지켜보려 애쓰면서, 범죄자에게 피해를 본 이들에게는 제대로 된 '배상'은커녕, 피해를 받은 만큼의 '보상'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오히려 죄 지은 '가해자'가 떵떵거리고 죄를 지은 적도 없고 남에게 피해를 줄 생각도 하지 않던 '피해자'는 씻을 수 없는 상처와 복구할 수 없는 피해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가해자'가 감옥에 수감되면 '피해자'는 배상을 포기해야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가해자가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해서 피해자와 '합의'를 하고 '보상'을 하면 가해자는 감옥에 가지 않고 풀려나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까지 버젓이 벌어지곤 한다. 그래서 부유한 가해자는 죄를 지어도 돈으로 풀려나고 가난한 피해자는 그렇게 풀려난 가해자가 두려워서 일상을 포기하고 숨어 지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에 과연 '사법정의'는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심지어 이 땅에 나라 팔아먹은 '매국노'는 떵떵거리고 플렉스하며 잘 사는데 반해서,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목숨을 내놓고 지키는데 앞장선 '애국자'는 팔다리 잃고 병신으로 살거나, 가진 재산 다 빼앗기고 거지로 살아야 한다. 더 기가 차는 일은 '매국노의 후손'은 나라 팔아먹은 돈으로 풍요롭고 넉넉하게 살다가 명문가도 거듭나서 '사회지도자'를 배출하는 상류사회를 살아가는 반면에, '애국자의 후손'은 부모가 병신이고 거지가 되는 바람에 덩달아서 굶주리며 살며 '기초수급자'가 되어 사회 밑바닥을 기어다니며 살아가게 된다. 대한민국이 먹고 살기 급급하던 시절에는 이런 '애국자의 후손'들에게 아무런 지원도 해주지 못해 더욱더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다 울분을 참지 못하고 범죄를 저지르거나 생을 포기하는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과연 대한민국 '사회정의'는 살아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구판 <파이로매니악>에서는 그런 '매국노 같은 새끼'들만 골라서 처단을 일삼는 동훈, 영, 희수를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갔던 것이다. 때는 90년대 후반 '민주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동안 억눌려 왔던 매국노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군사독재시절의 참고 견뎌야 했던 울분을 막 토해낼 수 있었던 시기였기에 <파이로매니악>을 읽는 독자들은 간접적이나마 소설을 읽으며 '해방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런데 3권을 끝으로 세 명의 주인공들이 '윤영대 검사'의 수사망이 좁혀오는 와중에 연재가 중단되어서 참으로 안타까워했다. 뒷이야기도 궁금했지만, 사무쳤던 원한을 풀지 못하고 '원귀'가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개정판'이 나왔으니 그 한을 풀 수 있을 것 같다.

나가는 글 : 개정판 <파이로매니악>은 구판에서 멈춘 이야기가 이어지는 내용이 아니다. 비슷한 설정이라고는 주인공들의 이름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모든 내용을 새로 펴냈다. 이는 대한민국의 90년대와 26년인 오늘날이 격세지감이 들 정도로 현격한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우혁 작가도 변을 늘어놓았지만, 그 시절에는 '가로등'도 드문드문 있던 시절이라 단독으로 몰래 움직이는 범행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거리거리마다 CCTV가 설치되어 있고, 한밤중에도 대낮만큼 환하게 밝은 곳 투성이라 과거와 같은 방식의 범행은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화약기술'도 첨단화가 진척되어서 그 당시에는 최고의 전문기술자만이 겨우 만들 수 있던 폭탄도, 오늘날에는 웬만한 기술자도 레시피만 있다면 척척 만들어내는 시대가 되었기에 <파이로매니악>에도 변화를 줄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야기 진행 속도가 구판에서는 너무 느렸다. 개인적인 서사는 둘째치고 '매국노 처단'을 하기까지 다짐하고 결심하고 결행하는 일련의 과정이 너무 지루할 정도로 장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국노를 한놈 한놈 처단할 때마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워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면서 '카타르시스'보다는 '연민'이 앞서곤 했다. 물론 사람을 죽이는 '살인'을 저지르고도 눈 하나 깜짝 안하는 캐릭터라면 그냥 '살인마'를 내세운 스릴러 소설에 불과했을 테지만, 매국노와 악질중대범죄자를 처단하는 '영웅들'인데 그토록 괴로워하는 장면을 묘사하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정판'에서는 그런 고민을 싹 날려버린 듯 싶다. 죽이는 게 더 낫다 싶을 정도로 악질들은 폭탄 한 방으로 시원하게 날려버려 영원한 '격리조치'를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빠르게 해치우고 있기 때문이다. 속도감 쩔어서 읽는 맛이 아주 좋을 정도였다.

단, 범죄는 명백하기 때문에 '공권력'이 발동되면 우리의 주인공들의 활동에는 제약이 걸릴 수밖에 없다. 구판에서는 '윤영대 검사'가 등장했는데, 철두철미한 성격에 냉혈한 기질까지 보이며 주인공들을 점차 궁지로 몰아가는 수사를 보여줬지만, 개정판에 등장하는 '구일문 검사'는 꼼꼼하고 냉철한 기질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인간미'가 넘치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앞으로 2권, 3권에서 어떤 모습과 활약을 보일지 살펴봐야겠지만, '파이로매니악(일명 '피엠')'을 뒤쫓는 모습은 확연히 달라 보였다.

이는 '사적인 복수'에 대한 과거와 현재의 인식 변화에서 비롯된 것 같다. 과거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은 준수해야 하고, 악법도 법이기 때문에 무조건 따라야 하며, 법 집행에 있어서 사사로운 감정은 불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면, 오늘날에는 '사법부의 무능'을 넘어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조차 없는 불공정한 권력의 산실로 인식하고 있음을 감안한 듯 싶다. 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밖에 없다. 사회정의가 무너지고 사법부가 제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에서 바로 설 길은 오직 '사법부 개혁'뿐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개혁의 핵심은 '인사개편'이다. 썩은 부위는 과감히 도려내야 한다. 당장은 고통스럽고 힘겹겠지만 '사법부의 정상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공정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란범들이 내란을 저지르고도 최대 '사형', 최소 '무기'를 판결받지 아니하고 '20년형 이상'도 아닌 '5년형 이하'를 받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 암담할 따름이다. 누구 말마따나 "내란을 저질러도 꼴랑 5년만 깜방에 들어갔다 나오면 되니, 저지를만 하구나! 내란에 성공하면 영웅으로 둔갑해서 평생을 누리며 살 수 있는데, 꼴랑 5년형이 무서워서 내란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겁쟁이가 따로 없는 셈일테니 말이다" 이런 걸 '사법정의'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개정판 <파이로매니악>에서는 거대한 범죄브로커가 '내부자'와 손을 잡고 '대한민국 방산업체'에서 기밀을 빼돌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군용 시제품'이나 '현물'까지 빼돌려서 엄청난 이익을 차지하려고 한다. 동훈과 영, 토끼928(희수)은 이 사실을 모른 채 이 사건에 '이용' 당했다가 구사일생으로 죽임을 당하고 만다. 세 주인공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들까지 모두 말이다. 그러다 모종의 '루트'를 통해서 되살아나 '파이로매니악'으로 변신한 이들이 앞선 범죄브로커와 연관된 일당들을 하나하나 처단해 나가는 것이 주요 줄거리다. 그러면서 항변한다. "착한 네가 참아"라고 말하는 이들을 용서할 수 없다고 말이다. 착하면 '희생'을 당연하게 여겨야 하고, 착하면 '피해'를 당해도 꾹 참아야 하는 법이라도 있는가? 다행히 대한민국 법에는 그런 조항이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착한 '파이로매니악'이 결의를 하고 '사적 복수'를 감행하게 되었다. 나쁜 놈들을 벌주러 말이다. 다행히 대한민국 법에는 나쁜 놈들 벌주라고 적혀 있다. 물론 '공적인 판결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단서조항을 달아놓긴 했지만, 마침맞게 사법정의가 무너졌으니 '사적 정의'를 빵빵 불태워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다음에 계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