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영 삼국지 올컬러 완전판 8
고우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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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삼국지 올컬러 완전판 8> 고우영 / 문학동네 (2021)

[My Review MMCCL / 문학동네 39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흔아홉 번째 리뷰는 1978년 연재되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완전판으로 복간된 <고우영 삼국지 8>이다. 엄혹했던 박정희 유신정권을 이어 서슬퍼런 전두환 군사정권이 뒤를 잇는 어두운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을 '만화'를 도구 삼아 사회 비판에 앞장섰던 것이 <고우영 삼국지>의 참뜻일 것이다. 물론 대놓고 비난을 일삼지는 못했다. 건전한 비판일지라도 그것이 '부정한 권력'이라고 날선 것을 트집 삼아 쥐도 새도 모르게 '남산'으로, '삼청'으로 끌고 가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몸 성히 지낸다해도 온갖 검열과 탄압이 뒤를 이었기에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셈이었다. 그런 시절을 동경하고 전두환을 가장 존경할 만한 지도자로 추켜세웠던 윤석열에게 지지를 보내는 극우세력이 잔존하는 작금의 세태가 한탄을 금치 못하게 만든다. 그들이 그토록 목놓아 부르짓는 '자유'를 윤석열이 비상계엄으로 짓밟으려 했는데도 그걸 깨닫지 못하다니 정말 무지몽매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보자.

<고우영 삼국지 8> 관점 포인트 : 8권의 핵심은 드디어 이룬 '천하삼분지계'다. 지난 7권에서 방통을 잃은 유비가 비보를 듣고 한 달음에 달려온 제갈량과 장비의 구원을 받아 유장을 궁지로 몰아 '익주의 직인'을 건내받게 된다. 이로써 천하는 조조, 손권, 그리고 유비 세 나라가 힘을 겨루는 형세를 띠게 되었다. 이제 삼국은 요충지인 '형주'를 두고 공방전을 펼친다. 조조가 손권을 칠 때도 '형주 세력'이 뒤통수를 노리고 있기에 힘을 쏟을 수 없게 되고, 조조가 유비를 칠 때도 '형주'가 수도 허도를 깊숙이 찌르는 형국이라 맘 놓고 전력을 다할 수 없다. 그렇기에 제갈량은 그 중요한 요충지에 '관우'를 남겨 두고 굳건히 지키라고 당부했다.

그런데 관우는 이런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적임자'는 아니었다는 것이 <삼국지>를 분석한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결과적으로 관우가 지키던 형주를 어이없게 잃어버린 탓이다. 이를 위태롭게 짐작한 제갈량은 '조조에겐 강경하게, 손권에겐 유연하게' 용맹과 지혜를 함께 발휘하라 관우에게 당부하지만, 관우는 어찌 된 일인지 조조와 손권을 모두 강경하게 대할 뿐이었다. 아니 너무 얕잡아 보았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 뒷이야기는 9권에서 이어지니 다음으로 미루겠다.

유비가 유장의 세력이었던 '익주'를 차지할 때, 조조는 승상의 지위를 넘어 '왕'을 스스로 자처할 지경에 이른다. 천자인 헌제를 압박해서 '위왕'에 봉하도록 한 것이다. 왕위에 오른 조조는 더욱더 권력을 함부로 휘둘렀고, 이를 탐탁스럽지 못하게 여긴 한나라의 충신들은 '역적 조조'라는 기치를 내걸고 속속 역모를 꾀한다. 조조가 한나라의 주인도 아닌데 '역모'라 운운하는 것이 우습지만, 그만큼 조조의 위세가 황제 못지 않았던 것이다. 허나 조조의 권세가 아무리 끝을 모를 정도로 하늘을 찌른다하더라도 그것은 '정당성'이 없는 것이다. 이를 정확히 찔린 조조는 더욱더 검열을 강화하고,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에게 폭력과 탄압을 그칠 줄 모르게 된다. 급기야 '황후'까지 자신을 암살하려 배후를 조작했다는 증거를 몰아 죽이려 들자 '화흠'이란 자가 앞장 서서 복황후를 때려 죽인다. 신하란 자가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을 잃어버리고 일신의 영욕을 위해서 끔찍한 짓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해댄 것이다.

이리 막나가는 조조의 최후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자가 맞이할 마지막 모습은 어때야 하는가? 요즘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면서 '수양대군'과 '세조'에 대한 평가가 다시 입에 오르고 있다. 수양대군은 '야심가'다. 그래서 왕위에 정당한 방법으로 오를 수 없자 '계유정난'이란 반정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했다. 하지만 비록 찬탈이라는 정당치 못한 방법으로 왕위에 올랐지만, 세조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후한 편이다. 조선의 역대 임금 가운데서도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많은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세조의 업적이 빛나더라도 수양대군이 벌인 끔찍한 살육과 폭력으로 저지른 악행마저 지울 수는 없는 셈이다. 그렇기에 세조가 되어서 수양대군 때 저지른 일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성찰이 뒤따라야 했던 것이다. 왕조시대에 그런 경우는 거의 없는 일이긴 하지만, 민주사회에서 한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가 '왕'처럼 군림하려 들면 어쩔 것인가?

나가는 글 : 우리가 봐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고우영 삼국지>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주제가 바로 '역적 조조'를 제대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사실 <정사 삼국지>에서 조조는 천하를 통일하는데 큰 업적을 남긴 영웅이다. 망국의 길로 들어선 한 나라의 충신으로 남고자 했으나 역부족을 느꼈기에 혼란한 세상을 평안하게 하고자 '군벌세력'을 독자적으로 키웠고, 그 힘을 바탕으로 스스로 '패왕'이 되어 태평한 천하를 만들고자 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이렇게 새로운 왕국을 세운 위인이 많았으니 조조만을 딱 꼬집어서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유독 <삼국지> 속의 조조는 이토록 인기가 없는 것일까? 그건 다름 아닌 같은 시대를 살았던 '유비'라는 또 다른 영웅과 대비되기 때문이다. 비록 역사적으로 유비는 망국을 되살리거나, 새 왕조를 개창하는 위업을 달성하지 못한 비운의 영웅이었으나, 그가 살아생전에 보인 행적은 여러 모로 귀감이 되는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인의와 도덕의 방식으로 망해가는 나라를 일으켜 세우려 무던히도 불의와 싸웠던 것이다. 비록 그것이 조조와는 '다른 방식의 야심'이었을지라도 말이다. 이런 유비의 야심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논해 보도록 하자.

암튼, 8권에서는 '역적 조조'를 벌하려는 우국지사들이 우르르 등장한다. 복황후가 그랬고, 도술가 좌자가 그랬으며, 아직 조조에게 굴하지 않고 '정당한 권력자'에게 충성을 다하는 '올바른 신하들'이 속속 조조의 빈틈을 노리고 반기를 드는 장면이 줄기차게 이어진다. 이들은 '힘의 격차'도 모르고 '자신의 그릇'도 파악하지 못한 바보들이라 그런 것일까? 속된 말로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서'도 계란이 깨어지지 않고 바위가 쩍하고 갈라질 망상에 사로잡힌 멍충이들이었단 말인가? 아니다. 그것이 아니다. 비록 처참히 깨어지는 쪽은 당연히 '계란'인 것을 불을 보듯 뻔히 알지만, 깨어진 계란에 의해 더럽혀진 바위에게 부끄러움을 안겨주기 위해서 제 한 몸을 희생한 것이다. 이래 깨어지나 저래 깨어지나 깨어지긴 마찬가지라면 산산히 부수어진 제 몸으로 위용을 자랑하는 바위를 더럽히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한순간이나마 부끄럽게 만들기 위해서다. 물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위는 제 몸을 더럽히고 고얀 냄새를 풍기던 것들을 치우며 '새단장'을 하고 다시 위용을 뽐내겠지만, 수많은 달걀들이 깨어지고 바위가 더럽혀지는 장면을 지켜본 눈들마저 씻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이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권력의 자리에 오른 이가 겪을 최후의 모습이다.

대개의 <삼국지>가 이런 역적 조조에 대한 묘사를 늘어놓았지만, <고우영 삼국지>만큼 탁월하게 그려낸 수작도 없을 것이다. 내가 <삼국지>를 꾸준히 읽는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역사가 무엇이고, 오늘날 <왕과 사는 남자>라는 영화를 통해 '단종'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까닭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비록 역사는 '승자의 입맛'대로 써내려갈지라도 역사를 읽는 독자들의 마음을 울리는 포인트는 따로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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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를 이기는 글쓰기 - 마케터, 크리에이터, 에디터, 그리고 콘텐츠를 만드는 모두를 위한
신익수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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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를 이기는 글쓰기 : 마케터, 크리에이터, 에디터, 그리고 콘텐츠를 만드는 모두를 위한> 신익수 / 매일경제신문사 (2026)

[My Review MMCCXLIX / 매일경제신문사 7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흔여덟 번째 리뷰는 전작 <100만 클릭 터지는 독한 필살기>의 저자 신익수가 새로 펴낸 <챗GPT를 이기는 글쓰기>다. 이 책은 '전작'의 내용을 '재탕'하거나 '편집'한 것일 뿐이라는 것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100만 클릭을 부른다'는 핵심 골자는 뼈대로 삼고, 그 든든한 뼈대에 '챗GPT'라고 하는 새로운 질서에 절대로 지지 않는 저자만의 노하우가 새롭게 담겨 있기에, 좋게 말해서 '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 담긴 '글쓰기 노하우'를 그대로 따라하기만 한다면, 독자들이 원하는 '100만 클릭을 부르는 글쓰기'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아닌 독자의 관점에서 '호언장담'까지는 할수야 없겠지만, '100만 클릭'은커녕 100 클릭도 달성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분명 '배울 점'이 무척 많았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담 책속으로 풍덩 빠져보자.

<챗GPT를 이기는 글쓰기> 관점 포인트 : 스포 문제도 있고, 나름 '글쓰기 비법'이 담긴 책내용이니만큼 신익수 저자가 내세우는 '글쓰기 비법' 또는 '공식'에 대한 일일이 언급을 하지는 않겠다. 다만, 글쓰기 비법의 핵심에 다가갈 수 있는 '바탕'에 대한 분석이나 클릭수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글쓰기 공식의 논리적 타당성과 이 이면에 대해서만 논하도록 하겠다. 비법이라고 하지만 이미 책으로 출간이 되었고, 상당히 널리 알려진 공식이기도 해서 굳이 밝히지 못할 이유도 없겠으나, 그럼에도 '책 내용'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끌어들여서 비판을 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논술글쓰기'를 가르치는 독서논술쌤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처음 들었던 솔직한 느낌은 '이렇게 글쓰기를 가르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상당히 비판적으로 말이다. 왜냐면 이 책을 읽고 싶었던 동기는 '개인블로그'를 운영하는데 있어서 '조회수(클릭수)'를 늘리고, 내 블로그에 올리는 콘텐츠에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읽게 되었다. 그렇지만 내 콘텐츠의 기본이 '학생들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책리뷰'인데, 본질적으로 '대입논술 글쓰기'를 신익수 저자처럼 썼다가는 폭망하기 딱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수 단단히 배우려고 읽기 시작했는데, 기대했던 내용과는 다른 내용이 한 가득이었던지라 실망을 금치 못한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서 내친김에 저자의 전작으로 이 책에서도 여러 번 언급하고 있던 <100만 클릭 터지는 독한 필살기>도 함께 읽었더랬다.

책 두 권을 읽었더니 저자의 진심(?)이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글을 잘 쓰는 것'과 '클릭을 부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사안이라는 점이 가장 먼저 눈에 띄였다. 전자는 '노력'을 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지만, 후자는 노력과는 별개로 일종의 '꼼수'가 작동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꼼수'를 나쁘게만 볼 것이 전혀 아니었다. 왜냐면 '노력'으로 10000 뷰를 달성하는 것과 '꼼수'로 10000 뷰를 달성하는 결과가 같다면 당신은 '어떤 것'에 치중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저자의 호언장담처럼 '꼼수'를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지상정'이다. 물론 '꼼수'보다 '노력'이 더 대단한 것이라는 점을 누구나 인정하지만, '플랫폼'은 노력과 꼼수를 애써 구분하지 않는다. 그저 '숫자'로만 결과를 내놓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플랫폼에서 승자가 되고 싶다면 '노력'을 하려고 애쓰기보다는 '꼼수'를 써서라도 원하는 결과를 얻는데 좀더 힘을 쓴다면 누구라도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정말 솔깃했다.

그럼 그 솔깃한 이야기를 좀더 해보자. 과연 '꼼수'란 무엇인가? 먼저 플랫폼의 생리현상(?)부터 철저히 파악하는 것이 순서란다. 손자병법에 이르길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했다. 너무 당연하다. 플랫폼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플랫폼이 돌아가는 원리'를 파악하는 것이 먼저다. 그게 뭔지는 책속에 자세히 적혀 있으니 궁금하시면 직접 읽고 보시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맥락만 이해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그 원리는 바로 '클릭'이다. 플랫폼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클릭하고 싶게 만들어라'는 것이다. 남들보다 더 많은 '클릭수'를 자랑할 수 있으면 플랫폼에서는 그 무엇보다 '강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의 대부분의 내용은 바로 '클릭수'를 늘릴 수 있는 비법과 공식으로 가득하다. 다른 거 없다. 오직 그것 하나뿐이다.

그럼 '클릭수'를 어떻게 늘릴 수 있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것도 책에 자세히 나와 있으니 직접 보시길 바란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너무 많아서 일일이 옮기기에 부적합하다. 그렇다고 일부분만 '보여주기'에도 감질난다. 하나를 터득하면 고구마줄기를 먼저 걷어내고 난 뒤에 엉금엉금 빠른 호미질로 '고구마'를 캐내는 방식으로 따라하면 줄줄이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니 너무 어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클릭수'를 늘릴 수 있는 핵심적인 방법이 다름 아닌 '자극적'이고, '낚아채는' 방식이며, 본질은 나중 문제이고 일단 '속여서'라고 꼬여내는 것이 장땡이라는 식이었다. 물론 저자가 '비도덕적인 비법이나 공식'을 전달하려는 목적이 아님은 확실하다. 결국 저자도 '낚시성 유혹'으로 클릭수를 늘리는데 방점을 찍었지만, 그렇게 꼬여낸 뒤에는 반드시 '진심'을 담고, '진실'만을 이야기하여, '신뢰'를 쌓아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두 번은 속일 수 있어도 '가치 없다'고 판명된 콘텐츠는 반드시 외면 당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작인 <100만 클릭...>에서 더 진화한 <챘GPT를 이기는...>에서는 '인간보다 더 글을 잘 쓰는 인공지능'의 등장에 쫄지(?) 않고 당당하게 '클릭수'를 부르는 '인간다운 글쓰기 비법'을 공개했다. 역시 신익수 저라라고 할만한 기똥찬 글쓰기 공식이었다. 역시나 책을 읽으면 저절로 터득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그 가운데 핵심 키워드는 다름 아닌 '도파민'이었다. 전작에 비해서 '더 자극적'인 강조를 한 셈이다. 감히 챗GPT는 따라할 수 없는 '인간만의 강점'에 도파민이라고 하는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할 정도로 더 자극적인 글쓰기 공식을 선보인 것이다. 이것의 핵심은 아무리 뛰어난 인공지능이라도 절대로 따라할 수도, 흉내낼 수도 없는 '인간만의, 인간다운 글쓰기' 공식이다.

왜 '인간다움'을 강조했냐면 불과 3년이란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플랫폼 생태환경'이 확 바뀐 탓이 크다. 과거에는 '인간이 제작한 콘텐츠만' 업로드 되었다면, 지금에 와서는 '챗GPT'가 제작한 콘텐츠가 플랫폼을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이 만든 것보다 더 훌륭한 콘텐츠가 많다는 사실이다. 이게 경악스러운 것이다. 인간이 무던히도 애써서 하루에 1개의 콘텐츠를 제작한다면, 챗GPT는 프롬프트에 간단히 몇 자 입력만 하면 '인간이 손수 만든 콘텐츠'보다 훨씬 더 좋은 양질의 콘텐츠를 하루에도 수십 개씩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플랫폼에서 '인간 vs 인공지능'의 대결이 알게 모르게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과연 인간이 이길 수 있을까?

나가는 글 : 다행히 아직은 '인공지능'이 완벽하지는 않다. 세심하게 눈여겨 보지 않아도 '인간이 손수 제작한 콘텐츠'와 '챗GPT가 양산한 콘텐츠'를 구별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전히 '클릭수 경쟁'에서 인간이 유리한 면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다움'으로 승부수를 꺼내면 이 책의 제목처럼 '챗GPT를 이기는' 글쓰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좀더 강한 '도파민'을 꺼내 들었다. 아무래도 챗GPT가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논술글쓰기 선생'이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온 비법과 공식을 '그대로' 차용해서 쓰기에는 부적합한 면이 많았다. 하지만 결국 학생들도 '챗GPT'를 비롯한 '인공지능'과의 대결에서 지지 않아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이 책에서 배운 점이 솔직히 많았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앞으로 AI 시대가 도래하면 '인간 vs 인공지능'의 대결구도가 펼쳐지면 안 된다. 만약 이런 구도가 펼쳐진다면 '인간의 필패'는 당연하기 때문이다. 결코 이길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패배를 받아들여야만 하는가? 그럴 필요는 전혀 없다. 왜냐면 애초에 '승부'를 펼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에게 '유용한 도구'일 뿐이니, 인간이 그 편리한 도구를 '얼마나'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처럼 '챗GPT'를 이기는 글쓰기를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더 편리하고, 더 쉽게 콘텐츠 제작에 열성을 보이면 될 것이다. 그럼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인공지능이 결코 '따라할 수도', '흉내낼 수도' 없는 인간만의 특징을 최대한 살려내서 '클릭수'를 늘리는 비법을 활용하면 될 것이다. 쉽게 비유하자면, '용 그림'은 인공지능에게 맡기고, 마지막 '화룡점정'은 인간이 손수 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여기에 인간만의, 인간다움을 오롯이 담아내면 된다. 그 '인간다움의 요건'이 이 책에 아주 잘 담겨 있다.

끝으로, 아쉽게도 '내 콘텐츠'에는 이 책에서 말하는 비법을 대부분 차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당장 지금 쓰고 있는 '리뷰'도 챗GPT로 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며, 야하고 자극적인 제목으로 '떡밥'을 뿌려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직 솔직하고 책에 대한 느낌을 진심을 담아 소개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더구나 학생들에게 가르칠 '글쓰기 비법'으로도 쓰기에 적당하지 않은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논술답안에 '도파민'이 터지고, 채점관을 홀리고 낚을 자극적인 제목과 문장에 고득점을 보장해주면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배운 점은 '콘텐츠 제작'을 하는데 있어서 '자기 만족'에 그치지 말고 '콘텐츠 소비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클릭수'를 부를 수 있다는 깨우침이었다. 그동안 나는 '나만 즐거우면 된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던 모양이다. 이제는 '콘텐츠 제작'을 즐기면서 꾸준히 제작하되, '내가 보고 싶은 것' 위주가 아닌 '클릭을 하는 사람들의 관심사'를 알아보려 무던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도전해 보련다. 당장 '클릭수'를 늘리기보다는 '한 명의 구독자'라도 더 늘리는 목표를 세우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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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지 키즈 - AI 시대의 새로운 인재상
한지우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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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지 키즈 : AI 시대의 새로운 인재상> 한지우 / 한국경제신문 (2026)

[My Review MMCCXLVIII / 한국경제신문 4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흔일곱 번째 리뷰는 <세금 내는 아이들>로 유명한 옥효진 선생님이 강력 추천한 <퍼지 키즈>다. 우선 '퍼지(fuzzy)의 뜻'이 궁금할 것이다. 흔히 쓰는 단어는 아닌데, 사전을 보면 '흐릿한', '명확하지 않은', '애매한'이란 뜻으로 적혀 있다. 그럼 '퍼지 키즈'는 애매한 아이들이란 뜻일까? 그건 아니다. 복잡하고 애매한 상황, 애초에 명확한 답이 존재하지 않은 상황에서 쓰이는 '퍼지 논리'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아니 정답이 없는데 쓰이는 논리 도구가 무슨 뜻인지 궁금하다면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퍼지 키즈> 관점 포인트 : 먼저 '퍼지의 뜻'부터 정리하면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뜻을 품고 있다고 한다. 인간의 능력은 애초에 한 가지로 정해지지 않았다. 그런데 과거에는 그런 '다양성'을 이해하기에 너무 복잡했기에 이를 '단순도식화'하여 비슷한 것끼리 묶어서 퉁치는(?) 방식으로 학습을 하곤 했다. 그게 학습하기에 편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은 컴퓨터를 발명하고 복잡한 계산도 가능한 시대가 되자 더는 '단순도식한 정보'만으로는 새로운 것을 창조해낼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점점 다양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는데, 바야흐로 '정보화시대'가 도래하자 너무나도 복잡다양한 문제가 현실에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퍼지 논리'라는 도구를 쓰곤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활개를 치는 AI 시대가 도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애초에 명확하게 분류해 놓았던 것이 더는 하릴 없게 된다. 인간의 뇌는 '단순도식화'한 것을 편리하게 생각하고, 이런 방식을 사용하면 아무리 복잡한 문제라도 술술 풀어낼 수 있었지만, 점점 변수가 다양해지고 세분화되면 다뤄야 하는 '경우의 수'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인간은 도저히 접근조차 할 수 없게 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컴퓨터를 발명했고, 인터넷 등 수많은 정보를 다룰 수 있는 기계(도구)를 개발하게 되었다. 그런데 다뤄야 할 정보는 점점 더 '빅데이터'화 되고, 스스로 생각하는 '인공지능'까지 개발되고 나면 인간은 무얼 해야 하는 걸까? 아니 정확하게는 무얼 할 수 있을까?

AI가 유용한 도구로 널리 쓰이는 시대가 도래하면 '인간'은 지식을 암기하거나 쌓을 필요..아니 '수고'를 덜 수 있게 된다. 엄청 방대한 '빅데이터' 정보도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해서 수고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저 이렇게 유용한 AI라는 도구를 잘 써먹기만 하면 그뿐이다. 근데 인간은 '뭘'하면 되는 걸까? 그동안에는 '지적탐구'를 위해서 방대한 지식을 암기해서 적재적소에 써먹는 '컴퓨터형 인간'이 유능한 인재였는데, 앞으로는 그런 인재는 더는 필요가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AI 시대의 어린이들은 '어떻게' 학습을 해야 하는 걸까? 지식이나 정보를 암기할 필요가 없다면 무슨 공부를 해야 하냔 말이다.

그래서 '퍼지 키즈'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AI는 '명확한 정보' '정확한 지식'을 검색하고 '방대한 정보'를 순식간에 처리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는 인간보다 훨씬 더 잘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AI가 잘 할 수 없는 영역을 탐구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건 바로 '생각하는 힘'이다. 명확하고 분명한 '사실'을 떠올리는 생각이 아니라 불명확하고 불분명한 아주 애매하고 흐릿한 '퍼지한 생각들'을 하는 것이다. 이건 AI는 거의 못한다. 오직 인간만의 영역인 셈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AI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몰입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것이 바로 '인문학적 감각'이고, 삶을 주도하는 '부의 감각'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 둘을 합치면 '하이퍼 센서(초월적 감각)'을 갖게 되는데, 이런 초월적 감각을 키운 어린이를 '퍼지 키즈'라고 정의했다.

나가는 글 : AI가 인간보다 더 똑똑한 시대에는 AI가 결코 흉내낼 수 없는 '초월적 감각(하이퍼 센서)'을 숙지한 '퍼지 키즈'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제다. 그래서 AI가 인간을 대신하는 세상에 AI가 결코 대신 할 수 없는 '퍼지형 인간'이 되어야 AI 시대에도 삶을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핵심 포인트다. 맞는 말이다. 인문학적 감각으로 AI에게 대체되지 않은 독보적인 인간이 되고, 부의 감각으로 직접 노동하지 않고 돈이 돈을 벌어들이게 해서 부유한 삶을 영위하게 된다면 앞으로 AI 시대가 도래한다고 해도 아무런 걱정이 없는 삶을 살 수 있다는 멋진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런 '퍼지한 인간'은 오늘날의 '상류층'에 속한 계급에 다다른...흔히 말하는 '상위 1%'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다시 말해, 사회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속하는 소수의 인간들 말이다. 과연 AI 시대에는 모든 인류가 이런 '상위 1%'의 삶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될 것인지 궁금해졌다. 물론 AI가 인간의 노동을 완벽히 대체하고 모든 인간이 먹고 살 수 있을만큼의 '잉여생산'을 끊임없이 해낸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지구의 자원은 '유한'하고 퍼쓰고 또 쓰다보면 결국 '고갈'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AI가 아무리 노동을 해도 더는 생산할 것이 남지 않게 되어 인간은 굶주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또다시 '계급적 분화'가 발생하여 힘 있는 계층만 부를 누리고 힘 없는 계층은 몰락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런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는 발생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퍼지한 인간'만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이 만들어지는 일도 경계한다면 충분히 '대안'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말미에도 '나눔의 감각'을 지닌 사람이 진정한 부자라고 방점을 찍고 있긴 하다. 그래서 '퍼지 키즈'는 자신의 생각으로 교양과 부를 얻게 되지만, 그렇게 쌓은 넉넉함에 인색하지 않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또한 그러해야 건강한 사회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퍼지 키즈'들이야말로 AI 시대의 진정한 인재상이라고 말한 것이다. 백 번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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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엄마가 먼저 알아야 할 최상위 공부법 - 2032~2033 AI가 채점하는 서·논술형 입시가 온다
오주연.김지예.김현아 지음 / 한빛비즈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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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엄마가 먼저 알아야 할 최상위 공부법 : 2032~2033 AI가 채점하는 서·논술형 입시가 온다> 오주연, 김현아, 김지예 / 한빛비즈 (2026)

[My Review MMCCXLVII / 한빛비즈 180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흔여섯 번째 리뷰는 AI 시대 초중고 입시교육대비가 궁금한 모든 이들을 위한 <AI 시대 엄마가 먼저 알아야 할 최상위 공부법>이다. 책제목에 '엄마'가 들어가 있긴 하지만 학부모가 읽어도 좋을 책이고, 선생님은 물론이고 학생들도 AI 시대에 걸맞는 '자기주도학습'을 위해서 읽어도 좋을 책이다. 각설하고, 대한민국 교육트랜드는 뭐니뭐니해도 '대학입시'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훌륭한 학생이고, 좋은 대학에 많은 학생을 보내야 훌륭한 학교, 훌륭한 학원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AI 시대에도 이런 대한민국 교육트랜드는 계속 유지될 것인가? 안타깝게도 그럴 것 같다. 적어도 AI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진입 초기'에는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면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AI 시대가 본격화되면 분명 달라질 거라는 예상은 누구나 하지만, '언제', '어떻게' 달라질지 아무도 예측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재의 대학입시제도 자체를 완전히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히 바뀔 수밖에 없는 것은 있다.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서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AI 시대 엄마가 먼저 알아야 할 최상위 공부법> 관점 포인트 : 먼저 가장 확실한 것은 '객관식 평가의 종말'이다. AI 시대가 되면 '정답'을 맞추는 공부는 전혀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유능한 도구인 AI를 누구나 간단히 쓸 수 있게 될텐데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정답맞추기 학습을 할 필요가 전혀 없게 된다. 그래서 '있다/없다', '맞다/틀리다'와 같은 단순지식을 외우는 학습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서술/논술형 평가'가 다시 주목 받게 될 것이다. 물론 지금도 실시하고 있는 평가방식이지만, 조금 달라지는 것이 있다. 바로 'AI 채점의 도입'이 확실시 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서술/논술형 평가에서 골머리를 썩히던 것이 '평가의 공정성'이었다. 운동경기에서도 '심판의 판정 시비'가 많아지면서 'AI 판정'이 일부 도입되지 않았는가 말이다. 학교현장에서도 이를 적극 수용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로써 '평가의 공정성 시비'에서 작게 나마 벗어날 수 있고, '교사의 평가 부담'에서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아주 빠르게 도입/확대될 가능성이 아주 많다.

그럼에도 문제는 있다.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AI가 평가한 점수를 '공정하다' 할 수 있을까? 또는 AI의 채점결과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겠는가? AI가 인간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활용하기 때문에 채점을 하는데 있어서 '공정성'을 높아질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정성이 높아졌다고 해서 '완벽하다'고 할 수 있을까? 100% 완벽하지 않은데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그 유명한 '세종대왕 맥북 던짐 사건'은 AI가 얼마나 거짓말에 능숙한지 가늠해볼 수 있는 척도가 되었다. 현재도 많이 개선되었고, 앞으로는 놀라울 정도로 개선될 것으로 전망하지만, 인간의 지능을 초월한 AI가 감쪽같이 인간을 속이지 않고 항상 '참'말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AI 채점을 도입했을 때, 아이들은 '어떤 방식의 학습'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뒤따른다는 점이다. 좀 더 설명을 덧붙이자면 '채점'만 AI가 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학습을 할 때에도 AI를 '학습도구'로 활용해서 학습을 할 것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수행평가의 경우에 아이들이 AI에게 '문제'를 묻고 AI가 풀어낸 '답변'을 정리해서 내놓은 '과제'를 선생님은 거둬서 AI에게 '채점'을 의뢰하고, AI는 'AI가 푼 과제'를 채점하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뭔가 괴리가 생기고 만다. AI 시대에 AI는 유용한 '학습도구'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숙제와 과제 뿐만 아니라 시험을 치룰 때에도 학생들은 AI를 유용하게 '학습도구'로 사용해서 제출하고, 평가를 위한 답안도 제출하게 될 것이다. 그걸 AI에게 다시 채점을 받는 것이 과연 학습에 도움이 될 것인가 말이다.

분명 초기에는 이런 문제점들이 나올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AI 시대가 본격화되면 학생들이 학습방법은 바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유능한 학습도구인 AI를 아주 잘 사용하는 학생이 유리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관건은 AI 시대 대입수능은 어떻게 정착될 것이냐로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앞서 말한 대로 '객관식 평가'는 무의미해지게 되고, 학생들의 지적 수준을 보다 정확하고 공정하게 평가하기 위한 방법으로 '서·논술형 평가'가 정착하게 될 것이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것도 '즉문즉답 형식'으로 바로 묻고 바로 답하는 평가를 하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런 '즉문즉답의 평가'의 끝판왕은 다름 아닌 '면담/토론하기'가 될 것이고 말이다. 과연 우리 학생들이 이런 평가 방식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학습을 해야 할까?

그 해답은 바로 '문해력 학습법'이다. 문해력은 말 그대로 '글을 이해하는 힘'이다. 물론 글 뿐만 아니라 '그림', '도표', '사진', '영상' 등이 주어져도 바로 이해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문해력'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독서'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배경지식'을 풍성하게 해야 문해력이 강해지는 것이다. 이처럼 배경지식을 넓고 깊게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도 다름 아닌 '독서'고 말이다. 이래저래 독서 열풍이 다시 불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단순히 '다독'만이 정답은 아니다. 많이 읽는다고 문해력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많이 읽기도 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깊이 읽기'를 해서 '생각하는 힘'을 길러내는 것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배경지식도 넓히고 자기 주장도 강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기 주장'만 고집하면 안 된다.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읽고 '다른 생각'도 곰곰이 따져보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사고력이 확장되어 여러 가지 생각을 요모조모 따져서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토론하기'까지 활동이 이어지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런데 여기서도 문제점이 생긴다. 현행 우리 나라 교육현장에서 '독서교육'과 '토론수업'을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각 학교와 학급을 맡은 선생님들이 이런 방식의 학습지도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역량이 갖춰져 있으며, 대한민국 교육당국이 '독서교육'과 '토론수업'을 실시하고 공정한 평가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는 '지침'을 내릴 만한 로드맵이 있느냐는 것이다. 2032년이면 불과 6년 뒤다. 현재 초등학생들은 이미 이런 학습을 시행하고 있어야 '달라진 대학입시'에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이래 저래 AI 시대를 맞이할 대비가 시급하기도 하고 철저해야 하는 어려움이 산적해 있는 현실이다.

나가는 글 :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 말한 '대안'으로 나온 '밥상머리토론', 'NIE글쓰기', '역지사지토론', '대입논술글쓰기' 등을 이미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실행해보았기에 더 크게 공감했다. 매우 효과적인 방법일 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가장 좋은 학습법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조차 이런 수업을 다양한 학생들에게 적용하여 효율적인 학습을 시키기 위해서 지난 20여 년간 '다독'을 몸소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영재교육의 시작도 다름 아닌 '독서'였다. 평소 독서습관이 몸에 밴 아이들만이 '영재반'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으며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도 자신의 꿈을 실현하며 당차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아왔다. 이는 AI 시대가 되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한, '국제 바칼로레아(IB)' 학습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에도 오래 전부터 찬성하는 쪽이었다. 서술과 논술을 기본으로 올바른 독서습관을 길러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밑바탕이 될 수 있게 해주는 '뿌리깊은 학습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IB 학습법이 그렇게나 많은 '로열티'를 내야하는 것인줄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아무리 좋은 학습법이라도 '국부'가 줄줄 새는 방식이라면 당연히 바꿔야 한다. 애초에 대한민국 교육부가 능력이 없으면 어쩔 수 없겠지만, 늘 그랬듯이 '차고 넘치는 실력'을 갖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한국형 바칼로레아(KB)' 학습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오히려 전세계에 'K-논술프로그램'을 선택하게 만들면 될 것이다. 늘 그렇듯이 말이다.

끝으로 공감하는 한 가지를 더 말하자면, '문과형 영재 프로그램'을 확충해서 이제 다시 기지개를 켜는 '인문학 붐'을 되살리고, 전세계에서 '한글공부 열풍'에 발맞춰서 '한국어로 풀어낸 인문학'도 영재교육 지원을 늘려나가 더욱 번창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데 크게 공감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확인시켜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세계가 '한국어 공부'에 열을 올리는 시대적 조류에 흐름을 타야하는 것이 백 번 옳은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과 일본이 해마다 엄청난 자원을 뿌려가며(?) 중국어와 일본어를 전세계에 알리려 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한국어 지원에 상대적으로 인색할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전세계인들이 아무런 지원도 없는데, 그저 좋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어 공부'를 선택하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옛말에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말이 있다. '문과형 영재'를 길러내는 프로그램을 AI 시대에 발맞춰서 확충하게 된다면, 대한민국이 AI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순간, 전세계인들이 '한국어와 한글'로 된 빅데이터를 알아서 제공하는 덤까지 누리게 될 것이다.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서 후회하면 정말 안 될 일이다.

이제 AI 시대로 접어드는 것은 '기정 사실'이 되었다. 그 끝이 '어떤 모습'인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적어도 그 시작만큼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AI 시대로 변모할 준비를 하는 나라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반드시 AI 강국으로 발돋움 할 것이다. 그 시대에 걸맞게 어릴 적부터 독서습관으로 '생각하는 힘'을 기른 인재를 만드는 것, 그것이 새로운 K-컬쳐로 전세계의 귀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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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금지! - 2026 볼로냐 국제 아동도서전 라가치상 CrossMedia 스페셜 멘션 수상 함께 그린 책
이경국 지음, 이경국과 아이들 그림 / 로이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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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금지! : 2026 볼로냐 국제 아동도서전 라가치상 CrossMedia 스페셜 멘션 수상> 이경국 / 로이북스 (2025)

[My Review MMCCXLVI / 로이북스 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흔다섯 번째 리뷰는 그림책 작가와 아이들이 함께 그려 국제도서전에서 수상을 한 그림책 <상상 금지!>다. '스페셜 멘션'의 뜻을 몰라 검색을 좀 해봤다. 정식 수상작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작품에 대해 '특별 언급'을 한다는 의미에서 수여하는 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특별상'인 셈이다. 거기에 '크로스미디어'라는 것도 함께 검색을 해보니, 다양한 매체를 결합한다는 의미로, 이 그림책에서는 한 명의 작가와 600명의 어린이가 힘을 합쳐서 그려냈다고 한다. 그 아이디어가 참신해서 특별상을 수상했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상상 금지!> 관점 포인트 : 아이들의 상상력이 무한하다는 것은 너무 잘 압니다. 하지만 막상 아이들의 상상력을 꺼내려 들면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면 아이들은 '표현력'이 상상하는 것만큼 따라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들을 본격적으로 '훈련'을 시켜서 표현을 잘 할 수 있게 교육을 시키고 나면 어떨까? 그때는 '상상력'이 능숙한 표현력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제대로 표현해낼 수 없게 된다. 정말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이 어릴 적에 '상상력'을 충분히 발휘할 때, 그 상상력이 위축되지 않도록 어른들이 잘 이끌어줘야 한답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어떤가요? 아이들이 상상력을 무한하게 발휘할 때 어떤 말과 행동을 했나요? 예의범절에 어긋나니 그런 상상은 하면 안 된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칠 수 있는 상상도 해서는 안 된다. 그건 너무 이기적인 상상이니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서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이렇듯 '인위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아이들을 훈육시키기에도 벅차서 아이들이 상상을 하는데 '제약'을 주곤 한다. 물론 혼자 사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꼭 필요한 예절이고 도덕이고 규율이니 반드시 '훈육'해야 할 내용이긴 하다. 그런데 아이가 왜 그런 상상을 했는지는 묻질 않는다. 그저 '어른들의 기준'에 맞지 않으니 '아이들의 기준'은 무시한 채 그저 어른들의 말을 잘 따르는 '착한 아이'가 되길 바란다. 이게 바로 아이들의 무한한 '상상력'을 망치는 가장 큰 원인이다.

그렇다면 아이가 되바라진 말과 행동을 해도 냅두고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방치'하라는 말인가? 그건 아니다. 그러니 아이에게 물어보라는 것이다. 왜 그런 상상을 했느냐고 말이다. 어른들이 보고 듣기에 썩 바람직하지 않은 '상상력'을 아이가 발휘한 것 같다면 차분하고 궁금하다는 말투로 아이에게 되물어 보라. 그러면 아이들은 '나름의 표현력'으로 왜 그런 상상을 했는지 이야기할 것이다. 그걸 충분히 들은 뒤에 혼낼 일이면 혼내도 늦지 않고, 가르칠 일이면 옳게 가르쳐도 절대 늦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상상력'과 '표현력'이 함께 발휘될 수 있도록 자연스러운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 어릴 적에는 자녀가 조금만 잘못을 해도 윽박을 지르고 큰소리로 꾸중부터 하는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탓에 '세 살'이 될 때까지 그 흔한 "엄마"라는 옹알이도 하지 않아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당신의 엄격한 잣대는 아무런 부작용도 없는 것으로 철떡같이 믿고 계셨던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세 살'이 넘자 옹알이 수준을 바로 뛰어넘어 입에서 봇물 터지듯이 '문장'을 쏟아내자 한 시름 덜었다고 말씀하셨단다. 그래도 일곱 살까지는 철딱서니 없이 굴어서 혼나기도 많이 혼났다는데, 일곱 살에 크게 혼난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어 그때부터 입을 닫고 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서 나는 어릴 적에 심한 '말더듬이'가 되었고, 50살이 넘은 지금도 살짝 그런 증세가 남아 있을 정도다.

이런 내 경험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이들에게 '독서지도'를 할 적에 되도록 차분한 분위기로 아이들의 상상력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려 무던히도 노력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남자선생님'이라는 제약 때문에 아이들이 처음에는 낯설어하고 무서워하는 것이 없지 않아 있기 때문이다. 뭐, 나중에는 '종이호랑이 선생'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아서 머리꼭대기에 기어올라서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건 나중 문제다. 암튼,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그걸 아무런 부담없이 표현할 수 있는 사회와 가정 환경을 만드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의 무한한 상상력이 충분히 발휘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 책 <상상 금지!>를 읽고 있으니 흐믓했다. 처음에는 '한 작가의 그림'치고 너무 이상야릇한 그림들이 등장을 해서 의아해했는데, 다 읽고 나니 그 이상야릇한 그림들의 정체가 순수한 아이들이 직접 그린 작품들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이들의 '표현력'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무려 600명의 어린이가 함께 참가해서 이경국 작가와 협업을 해서 펴낸 그림책이었던 것이다. 정말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텐데 대단하다.

나가는 글 : 아이들의 상상에 '어른들의 잣대'를 강요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아이들은 '자기만의 기준'으로 상상을 하기 때문에 섣불리 '그 기준'에 인위적인 잣대를 들이대면, 아이들의 상상력에서 '독창성'은 단번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마치 에덴 동산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던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난 뒤에 '세상의 잣대'를 자신에게 들이대고 부끄러움을 배우고 누리던 자유를 누리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고 난 뒤에 '자기만의 기준'이 세상의 잣대에 비해서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과 '자존감'을 키우고 난 뒤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테지만, 그런 '자아정체성'이 완성되기도 전에 어른들의 개입과 강압이 작용하면, 상상력은 '표현력'이란 날개를 달기도 전에 와르르 무너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보여준 아이들의 상상력을 감상해보면 그것이 얼마나 '순수하고 연약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어른들의 잣대로 보면 아이들의 그림이 매우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좀더 예쁘게 그렸으면 좋겠고, 좀더 구도와 비율이 맞게 그리면 좋겠고, 알록달록한 강렬한 색감보다 파스텔톤의 부드러운 색감으로 표현했으면 더욱 생동감과 사실감이 살아나서 '실재'와 거의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완벽한 그림을 그렸을 거라는 '욕심'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만약 아이들이 그런 어른들의 욕심을 완벽하게 살려냈다면 이 책 <상상 금지!>가 수상작이 되었을까?

고사리 같은 손으로 색연필과 크레파스를 들고 하얀 도화지에 자신만의 그림을 표현한 노력에 어른들은 먼저 감동해야 한다. 그리고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져라. 아이가 그린 그림이 '무엇'을 그린 그림이고, '무슨 상상'으로,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아이들의 목소리(표현력)에 귀를 기울여보아야 한다. 처음에는 옹알이는커녕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 있다. 앞서 말한 상상력에 미치지 못한 표현력 부족 때문이다. 아쉬워 할 것은 전혀 없다. 적당한 '표현방법'을 부모님이 가르치면 되기 때문이다. "이건 아빠가 보기에 호랑이 무늬처럼 보이는구나. 그런데 잠자리 날개가 달렸네. 그럼 하늘을 나는 호랑이구나. 맞니? 그럼 이름은 뭘로 지으면 좋을까? 호랑이와 잠자리니까 '호랑잠자리'라고 지어볼까? 아니면 호랑이는 영어로 '타이거', 잠자리는 '드래곤플라이'니까 '타이곤플라이'라고 지어볼까?" 아이의 상상력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어른들도 이해할 수 있는 '표현력'을 가르치면 아이들은 그 나름의 방식과 기준으로 '표현력'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다음에 상상했을 때에는 '아이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상상을 표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림책은 아이의 상상력을 키워주는 아주 훌륭한 교재다. 그러니 많이 읽히고 스스로 읽을 수 있을 때까지 늘 가까이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가장 좋은 독서교육법이다. 엄마아빠가 먼저 읽고 '좋은 그림책'이라 생각되면 자녀에게 '권해줘도' 좋고 말이다. <상상 금지!>는 어떻게 읽혀주는 것이 좋은지도 한 번 고민해보는 것도 독서교육에 관심이 많은 부모님이라면 꼭 해봐야 할 도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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