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의 인류 탐험 보고서 1 : 위대한 모험의 시작 - 어린이를 위한 호모 사피엔스 뇌과학 정재승의 인류 탐험 보고서
정재승.차유진 지음, 김현민 그림, 백두성 감수 / 아울북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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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승의 인간탐구보고서>에 이어 <정재승의 인류탐험보고서>가 출간되었다. 뭐, 어린이책이 집중호우처럼 쏟아져 나오는 시대이니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니지만, '인간탐구'를 마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인류탐험'으로 시리즈를 확장시킨 것을 보면 뭔가 깊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드라마도 '시즌1'이 끝난 뒤에야 '시즌2'가 나오는 법인데 말이다. 책의 서문에서는 '인간탐구'는 뇌과학을 다룬 과학책이고, '인류탐험'은 고고생물학을 다룬 역사책이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크게 뭉뚱그려서 과학과 역사를 합친 [빅 히스토리]적 관점으로 보아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바야흐로 '학문의 경계'를 허무는 통섭의 시대에 발맞춰서 어린이책 출판에서도 그 경계가 무색할 정도로 다양한 책이 등장하는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일이긴 하다.

 

  본격적인 인류탐험의 시작에 앞서, 아우레 행성에 살고 있는 외계인들이 지구, 그것도 먼 옛날의 지구로 찾아와 모험을 떠나는 사연이 1권 전체의 줄거리다. 호모 사피엔스일 것으로 보이는 '쿠'라는 인류의 조상 때문에 아우레인들이 살고 있는 아우레 행성이 박살이 나고 말았는데, 아우레 행성을 예전처럼 살기 좋은 환경으로 바꾸기 위해 그 '쿠'라는 인류가 아우레 행성에 도착하지 못하도록 '과거의 시간'으로 되돌아가서 '사건을 조작'하는 것이 이번 탐험대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그렇다면 아우레 행성은 왜 박살이 나게 되었을까? 여기에 중요한 과학적 단서가 두 가지 등장하는데, 하나는 '인공지능'이고, 다른 하나는 '인공태양'이다. 우주의 모든 행성은 스스로 밝게 빛나는 항성의 주위를 돌고 있다. 그리고 행성이 '생명'을 품기 위해서는 '골디락스'라고 하는 항성과 행성 사이의 적당히 떨어져 있는 안정적인 궤도를 돌아야만 한다. 물론 '골디락스 궤도'를 돌고 있는 행성이라고 모두 생명체가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생명체가 있더라도 '고도의 지식'을 갖춘 영장류가 살고 있어야 우주 여행이 가능할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지구인들이 우주의 다른 곳에서 살고 있는 외계인을 만나기 위해서는 위와 같은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주 여행이 가능할 정도로 과학이 발전한 외계종족에겐 현재의 지구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이미 겪었을 것이다. 바로 지구온난화로 인한 대멸종 시나리오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아우레 행성인들도 갈수록 척박해지는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인공태양'을 띄워서 아우레인들이 살기에 쾌적한 행성환경을 조성하려고 했으나, 사소한(?) 조작 실수로 인해서 '인공지능'이 오작동을 일으켰고, 그로 인해 '인공태양'이 아우레 행성으로 추락하고 만 것이다. 그 때문에 아우레의 고도문명은 고작해야 '문명의 쓰레기'나 주우며 근근히 먹고 사는 초라한 행성으로 박살이 나고 말았다.

 

  그런데 그렇게 박살이 나게 된 원인이 바로 '쿠'라는 인류의 오판 때문이었고, 그로 인해 '인공지능'의 오작동과 '인공태양'의 추락으로 이어지는 대재앙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들은 '아우리온'이라는 타임머신을 타고서 '웜홀'을 지나 과거의 지구행성으로 '쿠'를 찾아 탐험을 떠났고, 이후의 이야기는 '쿠'를 찾아 시간탐험을 하면서 '초기 인류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훌륭한 탐험일지를 써나가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렇게 <정재승의 인류탐험보고서>라는 시리즈가 또 하나 등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말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공상과학적인 내용'이 그저 상상의 산물이기만 할까? 그건 아니다. 가까운 미래에는 인간보다 훨씬 똑똑한 '인공지능'이 탄생할 것으로 이미 예약이 되었고, '인공태양'을 만들기 위한 실험은 이미 성공적(?)인 결과를 확인했으므로 얼마든지 필요하면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를 차갑게 식히기 위해 태양과 지구 사이에 거대한 차단막(!)을 만들자는 계획도 진행중이라고 한다. 벌써 지구인들이 과학기술이 이만큼이나 발달한 셈이다. 그런데 왜 안 만들고 있냐고? 그건 '천문학적인 액수'가 필요한 초거대 프로젝트이기 때문이고, 동시에 그걸 실제로 '실현'했을 경우에 벌어질 예상치 못한 치명적인 실수가 있을 수도 있다는 '위험성' 때문에 조심, 또 조심히 실행여부를 검토, 또 검토하며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한 가지도 엄청난 돈이 필요하고, 그로 인한 영향이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며, 결정적으로 단 한 번의 실수나 오류로도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을 위험천만한 일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류는 이미 되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지구환경을 황폐하게 만들버리고 말았다. 과학자들이 그토록 경고했건만, '기후변화'는 경고를 넘어 '기후위기'라고 불리며 하루라도 빨리 '탄소중립'을 넘어 '탄소배출제로'를 달성해야만 지구온난화로 인한 자연재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고, 다시 살기 좋은 환경으로 되돌리는데 걸리는 시간을 하루라도 더 빨리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인간은 앞서 말한 '초거대 프로젝트'들을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실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 들어 '인류 절멸', '여섯 번째 대멸종' 같은 끔찍한 시나리오에 대해서 언급을 자주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인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먼 과거로 떠난 아우리온 탐험대의 모험를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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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클 모닝 미라클 모닝
할 엘로드 지음, 김현수 옮김 / 한빛비즈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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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살면서 기적을 종종 바란다. 이를 테면 로또 1등 당첨금으로 10억을 받아 꿈에도 그리던 내집마련을 달성하던가, 건강을 잃은 당신이 100년 묵은 산삼 따위를 먹고 말끔히 질병을 떨쳐버리고 건강을 되찾거나...그런 일들 말이다. 하지만 로또 1등 당첨의 확률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고도 죽지 않고 또다시 두 번째 벼락을 맞고도 멀쩡히 살아날 정도로 희박하다고 한다. 또한, 한 번 잃어버린 건강은 그 어떤 만병통치약이나 의료행위로도 다시 회복될 수는 없다고 한다. 이런 일들처럼 정말로 '기적'이 필요한 일들 말고, 누구나 쉽게 따라하고 누구나 반드시 성공하는 '기적'이 일어나는 일은 없을까? 아니, 있다. 바로 이 책 <미라클 모닝>의 저자 할 엘로드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하루 6분만 투자하면 누구나 성공하게 되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이다.

 

  정말이지 '하루 6분'만에 기적과도 같은 성공에 이를 수 있다면 마다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기적을 실천에 옮기기도 전에 '의심'부터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정말 6분이면 충분하냐고 말이다. 할은 그렇다고 말한다. 자, 이제 할이 말하는 기적의 6분을 알아보자. 처음 1분은 '깨어나기'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는 순간부터 1분 간, 고용히, 평화롭게, 그리고 천천히, 깊이 호흡하며 앉아 있으라고 말한다. 명상을 하든, 기도를 하든, 정신을 깨우는 순간부터 1분간 마음을 차분하게 가다듬으라고 조언한다. 그렇게 몸을 이완시키고 온갖 스트레스를 녹여서 없애버릴 정도로 깊숙히 내면으로 빠져들라고 말이다.

 

  자, 1분이 지났으면 또 하나의 1분동안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큰 소리로 읽으라고 말한다. 물론 하루 전에 짜놓은 일과표나 계획표를 읽어도 좋다. 그런 것이 없는 초창기에는 '자기 긍정적인 마인드'를 상기시켜 줄 수 있는 좋은 글귀를 따로 마련해 놓아도 좋다고 한다. 그렇게 큰 소리로 자신의 긍정 에너지를 일깨우면, 자신이 바라는 삶을 만들기 위한 행동들을 실천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성된다고 한다.

 

  다음 1분에는 '이미지 트레이닝'이다. 미리 짜놓은 '비전보드'가 있다면 그것을 바라보고 머리에 각인시켜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 머릿속에 생생하게 '이미지'가 그려지게 되면, 눈을 감고 그 이미지를 생생하게 떠올리는 것이다. 이를 테면,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모습과 느낌을 떠올리며 승리의 쾌감을 온몸에 전율이 일듯 전달하거나, 그때에 자신이 짓고 있을 미소와 환희에 찬 표정을 떠올리며 실제로 있었던 일처럼 기쁨을 만끽해보라고 권한다.

 

  그 다음 1분에는 평상시 감사할 대상과 자랑스런 기억, 그동안 노력해서 얻어낸 결과물들을 '기록'으로 남기는데 써보라고 한다. 그렇게 대견스런 경험들을 손수 적어가면 자기 스스로 자신감이 벅차오르게 되며 늘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 된다고 말한다.

 

  그 뒤에는 '자기계발서' 같은 책을 한 권 뽑아들고 한두 쪽을 읽는데 1분을 투자하라고 권한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도 있고, 인간관계를 새로 정리할 수도 있으며, 더 잘 생각하고, 더 잘 느끼고, 더 잘 사는 데 활용할 수 있는 교훈적인 문구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제 마지막 1분이 남았다. 앞선 5분간 자신을 가득 채운 '긍정에너지'로 직접적으로 움직이는데 쓰는 시간인 것이다. 제자리뛰기,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어떤 것이라도 좋다. 앞선 5분간은 침대에 누운 자세로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잠에서 깨어나는 즉시, 머릿속을 맑게 만들고, 큰 소리로 하루일과표나 해야 할 일따위를 상기시켜주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성공하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이미 이뤄낸 자랑스런 일들을 직접 적으며 자신감을 끌어올리고, 자기계발서에서 좋은 문구를 읽힌 뒤에는, 침대에서 일어나 '긍정마인드'를 '긍정에너지'로 바꾸는 전환의 시간을 가지라는 말이다. 이렇게 '아침마다 기적의 6분'을 보내고서 남은 하루를 보내는 일상을 반복하면 당신은 <미라클 모닝>을 맞이할 준비가 모두 끝났다고 할은 말한다.

 

  어떤가? 아침을 시작하는 방법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는 말에 공감이 되는가? 물론 '기적의 공식'은 당신이 기적을 이룰 때까지 꾸준히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하지만 기적을 바라고 억지로 하는 것은 크게 효과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하기만 하면' 분명 기적은 일어날 거라고 할은 확신한다. 왜냐면 당신은 이미 '성공에 한 발짝 다가선 위치'에 있기 때문이란다.

 

  물론, 당신의 성공을 방해하는 요소는 아직 남아 있을 것이다. 아침잠에서 깨어나기 버거울 정도로 녹초가 된 현대인들이 수두룩 빽빽이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작심삼일'도 같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당신은 다시 '성공과 멀어지는 일상'으로 되돌아가고 말 것이다. 해봤는데, 안 되더라고 핑계를 늘어놓으면서 말이다. 그래서 할은 '큰 소리'로 자신의 목표를 읊어보라고 권한다. 아침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명상'을 하게 되면 다시 잠에 빠져드는 일이 흔할 것이다. 그렇게 5분, 10분, 30분을 꿀 같은 잠을 자고나면 <미라클 모닝>은커녕 지옥같은 지각을 경험하고 하루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게 '바쁜 일상'속으로 빠져들고 말테니 말이다. 그렇기에 '기적의 1분'이 버거운 당신이라면 '기적의 2분'부터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큰 소리로 기적을 외친 당신이라면, 이제 성공에 이르는 길은 그리 멀지 않다. 그렇게 성공에 도달한 당신이 지을 표정과 환호, 그리고 기쁨의 세리머니를 상상해보라. 혹시 1분으로 모자르지 않은가? 충분히 '성공의 기쁨'을 만끽한 뒤에는, 자신감 상승을 위한 '기록'을 남겨보자. 그동안에 실패만 거듭하느라 성공한 경험이나 자랑스런 느낌을 느껴볼 새도 없었다면, '쓸 내용'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적당한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가장 눈에 띄고, 가슴이 뜨거워지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귀를 뽑아서 써보아도 좋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인생책>으로 고른 책도 생기게 될 것이다. 그 책으로 새로운 지혜와 지식을 차곡차곡 쌓아나가길 바란다. 그러면 '인생'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책속에 길이 있다]는 말은 결코 괜한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긍정마인드'를 갈고 닦았다면, '긍정에너지'를 뽑아낼 요량으로 '몸을 움직여 보라'. 하루 일과동안 쓸 에너지를 다 쏟으란 얘기가 아니다. 하루를 긍정적으로 보낼 수 있는 '활력에너지'가 되도록 워밍업을 하듯 몸을 움직이란 말이다.

 

  이렇게 '아침마다 기적의 6분'을 보낸 당신에게는 이제 성공할 일만 남았다. 언제까지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성공'할 때까지라고 말할 수도 있다. 또는 '습관'이 될 때까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부담만 될 것이다. 강박적인 스트레스가 새로 생겨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딱 하나다. 틈날때마다, 생각날때마다, 그리고 성공하고싶을때마다 '기적의 6분'을 실행해보라고 말이다. 사실 성공에 이르기까지 험난한 난관을 거쳐야 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공하기도 전에 '부담감'만 잔뜩 늘어나게 된다면 '기적의 6분'은커녕 '부담의 6분', '억지로 6분', '하기싫은 6분'이 될 뿐이다. 그러니 부담은 내려놓고 즐겁고 재미나게 실천해야 한다. 그러면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레 '기적의 6분'은 여러분들에게 삶의 활력소가 될 것이 틀림없다. 그때부터 진정한 <미라클 모닝>이 시작하게 될 것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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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인류 탐험 보고서 6 : 지구 최고의 라이벌 - 어린이를 위한 호모 사피엔스 뇌과학 정재승의 인류 탐험 보고서
정재승.차유진 지음, 김현민 그림, 백두성 감수 / 아울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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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고고학적으로 '동시간대'에 두 종의 인류가 존재한 것은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와 '호모 사피엔스'의 발굴이 최초다. 그 가운데 '현생인류'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것을 확인했고,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는 멸종하고 말았다. 다시 말해, 호모 사피엔스가 현존하는 유일한 인류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왜 사피엔스는 살아남고 네안데르탈인은 살아남지 못했던 것일까? 인류고고학적으로 남겨진 수수께끼인 셈이다. 물론 여러 가설이 세워졌고 널리 알려진 바다. 하지만 그 가운데 무엇을 '정설'로 삼아야 할지 '결정적 증거'는 아직 발굴하지 못했다. 그러면 가장 최근에 밝혀진 인류고고학적 사실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렌시스보다 육체적으로 현저히 왜소했다. 심지어 뇌의 총용량도 훨씬 작았기에 '피지컬'적인 면이나 '사이코'적인 면, 모두에서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렌시스보다 훌륭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객관적인 정설이다. 그런데도 '현생인류'로 살아남은 것은 더 월등한 네안데르탈렌시스가 아니라 사피엔스였다. 많은 학자들은 그 까닭으로 '사회성'을 들고 있다. 두 종의 뇌를 비교해보니 '시력'에 해당되는 후두엽은 네안데르탈렌시스가 훨씬 컸다. 이는 사냥 따위에 매우 출중한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볼 수 있고, 실제로도 더 많은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는 '육류고기'를 섭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에 사피엔스는 후두엽은 비교적 작았지만, 상대적으로 감각기능을 담당하는 두정엽이 컸으며, 특히, 언어능력과 사회성에 관여하는 소뇌는 네안데르탈렌시스보다 8배나 더 컸다고 한다. 이는 사피엔스가 '사회성'이 두드러지게 뛰어났다는 결정적 증거가 보여진다.

 

  이를 바탕으로 네안데르탈렌시스는 개개인의 능력은 뛰어나지만 10명 이상의 부족단위를 형성하지 못하였고, 이는 사냥이나 채집 등에서도 그리 뛰어난 결과를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새로 얻은 '지식축적'도 활발하게 이어나갈 수 없었을 것이라 짐작케 한다. 반면에 사피엔스는 개개인의 능력은 뛰어나지 않더라도 30~100명 단위의 부족을 형성하며 매우 활발한 집단생활을 했으며, 이들 사이에 축적된 지식이 발달한 '언어능력'으로 인해 더욱 활발하게 전파되고 전승되었을 것이고, 심지어 더 멀리 떨어져 있는 동족에게도 전파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는 증거가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단순히 '뇌용량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훨씬 더 똑똑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면, 인간보다 더 뇌가 큰 생물이 현생인류보다 더 번성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후두엽과 소뇌가 크기 때문에 사피엔스가 생존에 유리했다는 결론을 내리면, 전체 용적이 더 큰 네안데르탈렌시스가 사피엔스보다 훨씬 더 똑똑했다는 결론을 내려야 하는데, 결과는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사회성'이 낳은 잔인한 결론을 추론했는데, 인류의 문화가 덜 발달한 초기 인류에 너무 많은 '비관적 상상력'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기에 역시나 정설로 삼기에 부족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동시대를 살았던 두 인류에게 닥친 결과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한 쪽은 번성했지만, 다른 한 쪽은 멸종하게 된 까닭을 말이다. 물론 더 많은 연구를 해야 할 것이고, 미래의 인류고고학자인 어린이들이 풀어야 할 숙제일 것이다.

 

  이렇게 풀리지 않은 숙제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앞으로 어떠해야 할까?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아닐 때에는 우리보다 앞선 연구를 해온 '결과물'을 베껴오면 그뿐이었다. 투자 대비 회수비용이 턱없이 부족한 '기초학문'보다는 이미 밝혀진 연구를 결과를 토대로 '응용학문'에 투자하는 것이 손실을 줄이고 이익을 많이 챙길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발전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엄청난 비용을 감수하고 '기초학문'을 연구했던 나라들이 핵심기술을 허투루 알려줄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알려주어도 거의 손실이 없을 지식나부랭이만 찔끔찔끔 흘려줄 뿐, 진짜 알짜배기를 공짜로 알려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은 그런 '나부랭이' 지식을 가지고 지금의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기적을 선보였다. 그런데 그 기적을 이룬 뒤에도 여전히 '남의 나라 기초학문'을 엿보면서 성장발전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단언컨대 '기초학문'에 대한 연구 없이는 '대한민국'이란 선진국을 성장발전시킬 도리가 없게 된다.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어린이들이 그 어려운 학문에 도전해야만 하는 까닭이다. 그리고 국가는 그 어려운 학문에 도전하는 어린이들에 대한 지원과 격려를 아껴선 안 될 것이고 말이다. 그렇기에 어린이들에게 학문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책이 많이 선보여야만 할 것이다. 과학분야에서 정재승은 바로 그런 인물이다. 이제 과학을 넘어 '인류고고학', '인류생물학'이라는 분야에 대한 호기심 충전을 시도하는 이 책이 기대가 되는 까닭이다. 과연 10년 뒤에 주인공이 될 대한민국 어린이들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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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인류 탐험 보고서 5 : 용감한 전사 네안데르탈인 - 어린이를 위한 호모 사피엔스 뇌과학 정재승의 인류 탐험 보고서
정재승.차유진 지음, 김현민 그림, 백두성 감수 / 아울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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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현생인류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가 이야기 속에 등장했다. 심지어 이들은 '호모 사피엔스'와 동시대에 살았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피엔스는 현생인류로 현재까지 살아남았는데, 네안데르탈인은 살아남지 못하고 멸종하고 말았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인류고고학적으로 풀리지 않은 비밀이다. 물론 여러 가설은 존재한다. 그 가운데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현생인류의 조상을 '동족살해자'로 소개하며 네안데르탈인을 비롯해서 아직 발견되지 못한 '동족들'까지 사피엔스가 멸종시켰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 가장 그럴싸한 추측일 것이다. 허나 이를 증명할 인류고고학적 증거가 더 보충되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먼저 네안데르탈인은 사피엔스보다 더 거친 환경에서 살았다. 그래서 몸집도 더 컸고, 근력도 더 좋았으며, 후두엽이 더 큰 것으로 보아 '시력'도 매우 좋았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래서 이렇게 훌륭한 체력조건으로 사냥도 더 잘했을 것이고, 채집과 어로 활동 따위도 더욱 활발하게 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리고 만약 사피엔스와 '경쟁'을 했을 때에도 매우 유리했을 것이 틀림없다. 왜냐면 네안데르탈인의 '뇌용량'이 사피엔스보다 훨씬 더 컸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뇌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더 영리하고 똑똑했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도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하고 말았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에 대한 비밀은 다음 권에서 밝혀지게 될 것이다.

 

  한편, 책의 이야기를 살펴보자면, 아우레인들은 자신들의 행성을 파괴한 '쿠(호모 사피엔스) 종족'을 찾기 위해 '시간탐험'을 거슬러 올라 인류의 먼 조상부터 살피는 '인류 탐험'을 떠나게 된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호모 하빌리스 아파렌시스', '호모 에렉투스'를 거쳐 이번 책에서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까지 인류고고학적인 발견을 이룰 수 있었다. 결국 이 책의 시리즈는 '고대 인류의 관찰자'로 외계인을 등장시켜 좀 더 객관적인 관점에서 인류의 조상에 대해서 서술하는 스토리라인을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한 '우주인들의 모험담'을 펼쳐보여 주면서 어린이 독자들에게 한층 광대한 '지식세계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거기다 '우주선으로 떠나는 항해 방식'을 소개하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타임머신여행', 그리고 '미지의 물질로 만든 신비한 오라클의 기능'까지 선보이며 과학적인 탐구심도 불러일으고, 동시에 과학적 호기심까지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를 선보였다. 이렇게 어렵기만한 '인류고고학'과 '우주과학지식'까지 한데 아우른 스펙타클한 이야기를 읽은 어린이 독자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허나 어린이 독자를 위한 배려가 그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청소년 독자'까지 아우르는 배려가 되지 못하는 것이 살짝 아쉬운 점이다. 거기다 요즘 학부모들은 자녀의 독서지도를 위해 '먼저 읽고, 권해주는 방식'을 선호하기도 하는데, 이런 스토리라인이 학부모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올런지 살짝 의심스럽기도 하다. 특히 학부모들이 중요시 여기는 '교육적 감동', 다시 말해 '교훈적인 내용'보다는 그저 '재미와 즐거움'만 치중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어린이 독자들에겐 너무나 바라는 점이겠지만, 책값조차 비싼 요즘시대에는 '가격대 효율'이라는 가성비를 따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부모님의 주머니사정'까지 따진다면 초등시절을 넘어 청소년 시절까지 유익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으면 더할 나위가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는 말이다. 어차피 '인류고고학적인 전문지식'은 중고등 역사와 과학 교과까지 아우르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류진화적인 관점'까지 살필 수 있다고 평가받게 되면 금상첨화가 따로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책이 되었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 책만의 장점은 '스토리라인'이 인류고고학적인 새로운 발견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 담겨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각 권에 등장했던 '초기 인류의 발자취'가 스토리라인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에 책의 줄거리만 따라가도 각 인류의 특징을 쉽게 떠올릴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단 말이다. 이 책에서도 '네안에나'라든지 '모.로.코' 같은 이름의 유래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네안데르탈인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고, 튼튼한 체력으로 용감하게 곰사냥을 하는 장면연출만으로도 네안데르탈인들의 특징을 충분히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야기' 속에서 지식을 배우는 학습방식을 '스토리텔링'이라고 하는데, 단순지식을 암기하는 학습방식보다 훨씬 더 오래 기억하고,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지식을 축적해나갈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재승의 인류탐험보고서> 시리즈는 어린이 독자를 위한 재미와 더불어서 청소년 독자를 위한 학습효과까지 꼼꼼히 배려한 훌륭한 책이란 얘기다. 물론, 직접적으로 언급한 '교과연계'가 불분명하고, 미흡한 '학습분량'과 깊이가 부족한 듯한 '덜 심화된 내용'이 아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스토리라인을 잘 따라가다보면 독자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인류고고학적 지식'을 쏙쏙 이해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시리즈는 매우 유익한 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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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 형이하학적 성찰
기욤 르 블랑 지음, 박영옥 옮김 / 인간사랑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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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달리기'를 소재로 삼고 있지만 '달리기 예찬' 같은 내용은 없다. 또한 이 책은 '철학책'이지만 저 높은 이상(이데아)을 품고 쉼없이 달려야만 하는 책도 아니다. 오히려 아무런 부담감 없이, 그저 '달리기'에 대한 글쓴이의 생각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편한 책이다. 그러니 여타의 '철학책'처럼 지혜를 사랑하는 의무감 따위는 과감히 벗어던지고 그냥 읽으면 된다. 그리고 누군가는 평범한 '달리기'를 이렇게까지 생각해볼 수 있구나..하는 느낌만 가지면 된다. 외워야 할 구절도 하나 없으니 편하게 읽길 바란다.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프랑스는 대입시험으로 '바칼로레아'라는 논술시험을 치룬다. 물론 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아주 중요한 시험이긴 하지만 학생들만 시험에 참가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도 참가한다는 것이 특기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이 시험에서 1등을 차지한 사람의 글은 신문에 대서특필이 되며, 전국민이 다 함께 읽으며 논평을 일삼는다고 한다. 이처럼 프랑스 국민들은 모두가 '철학자'인 셈이다.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점은 다름 아니라 프랑스 국민들이 '답안지'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바로 '바칼로레아 시험문제'에 더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문제에 답을 저마다 나름대로 작성하며 온 국민이 열린 토론을 벌이곤 한단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대학입시시험에 지대한 관심을 쏟는 것은 '세계1등' 못지 않지만, 그 시험이 끝나면 그저 '결과'에만 관심을 둘 뿐, 무슨 문제가 출제되었는지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저 '불수능'이었는지, '물수능'이었는지, '시험점수'는 몇 점인지, 몇 점 정도가 되어야 '인서울'할 수 있는지...이런 결과물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하긴 수능시험이 전부 객관식이고, 간단한 주관식 문항만 있을 뿐이니, 문제가 궁금할 턱도 없다. 하지만 우리도 '수능논술시험'을 치루고 있는데, 논술문제가 이슈가 된 적이 없는 것에는 의아하지 않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하긴 우리나라 논술은 '찬반서술'이 고작이라서 '주어진 지문'에 대한 '논리적사고력'만을 평가할 뿐이라서 논술답안지가 천편일률적일 수밖에 없다. 조금이라도 논점에서 벗어나면 고득점을 얻을 수 없으니, 애초에 '창의적인 답안'이 나올 수 없는 환경이다. 그러니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처럼 '천차만별의 답안지'가 온 국민들에게 공개되며, 온 국민이 논술문제를 풀어내며 저마다 다양한 의견을 교환하는 대축제를 벌이는 즐거움 따위를 우리가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하긴 우리는 '철학하는 분위기'를 좀처럼 느낄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높은 자리에 앉은 양반들은 체면을 중시하느라고 '남의 의견'에는 날선 비판을 날리다 못해 비난마저 아낌없이 퍼부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의견'은 두루뭉술하게 피력하며, 술에 물 탄듯, 물에 술 탄듯, 그저 비난 받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기 바쁘다. 자그마한 권력이라도 손에 쥐게 되면 더욱더 '철학'하고 멀어진다. 그 힘쎈 권력으로 세상살이 좀 나아지게 만들려는 궁리보다 어느 땅을 사들여 투기를 일으키고 그 덕분에 호주머니 좀 두둑하게 불리려는 속셈밖에 부릴 줄 모르기 때문이다. 부정부패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아주 위인 소리 들을 지경이다. 하지만 이제는 좀 깨달으셨으리라고 본다. 우리 국민들이 '철학'도 없는 사람에게 권력을 쥐어주면 어떤 꼴을 당하는지 직관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철학'인 셈이다.

 

  이 책 <달리기>를 보라. 우리가 일상에서 늘 마주하는 '걷기'와 '달리기'에 대한 철학적 글쓰기를 말이다. 우리는 걸을 때 그냥 '걷기'만 하고, 뛸 때 그냥 '달리기'만 하려 든다. 걷기와 달리기의 결정적인 차이점도 생각지 않고서 말이다. 걸을 땐 '목적지'가 없어도 걷게 된다. 하지만 달릴 땐 없던 '목적'도 생기기 마련이다. 왜냐면 '목표'가 없으면 달릴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걸을 때도 '목표'를 정할 수 있고, '목적'을 정해 착착 나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걷기는 아무 생각도 목표도 없이 걸을 수가 있다. 정처없이 걷고 또 걸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달리기는 다르다. 우리는 달리는 행위를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웬만한 '목적'이 없으면 절대 달리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아무런 목적도 없이 달려본 적이 있는가? 건강을 위해서 달리고, 목적지까지 빠르게 도착하기 위해 달리고,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달리기도 하고, 버스나 지하철, 그리고 항구를 떠나기 직전의 배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달린 적도 있을 것이다. 공항에서도 마찬가지다. 또는 누군가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달린 적도 있을 것이다. 정반대로 반드시 잡기 위해서 죽어라 달린 적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걷기'와 '달리기'는 목적지향적의 유무라고 하는 차이점이 두드러지는 행위인 것이다.

 

  여기에 철학을 더해 보면 어떨까? 달리기를 통해서 숭고한 업적을 남긴 역사자료를 들춰보면, '마라톤전투'의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40여킬로미터를 쉼없이 달렸던 사실을 말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마라톤의 유래'다. 여기에 제1최 올림픽 개최지였던 그리스 아테네에서 승리한 선수가 '그리스 선수'였다는 사실로도 우리는 철학적 관점을 펼쳐낼 수 있다. 쿠베르탱 남작이 근대올림픽을 성사시키면서 과거 그리스에서 열렸던 대축제를 재현해서 세계 평화를 이바지하려 했다는 숭고한 업적 또한 철학을 해보잔 말이다. 우리나라의 손기정선수가 히틀러가 개최한 베를린올림픽에서 마라톤 경기에 참가해서 우승을 했고, 1등을 했음에도 가슴에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를 달고 있어 '승리자의 포즈'를 취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던 사연도 철학하기 딱 좋을 것이다. 이쯤 되면 누구라도 '철학'을 해봄직하지 않은가?

 

  굳이 유명한 일화를 소개하고, 누구의 이야기를 소재삼아 쓰지 않아도 좋다. 그저 자신만 알고 있는 이야기도 얼마든지 철학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의 철학은 '형이상학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건 플라톤이나 칸트 따위에게 맡겨 두고, 우리는 그냥 '형이하학적인 철학적 담론'을 이야기하면 그뿐이다. 난 이래저래해서 어떻게저떻게 '달렸어'. 그랬더니 이런저린 일이 벌어지게 된거야. 그래서 난 깨달았지. 나에게 달리기란 이런 거라고 말이야. 어떤가? 어려운가? 되게 쉽지 않은가. 이런 것도 철학인 것이다. 이 책의 내용 또한 그렇고 말이다. 이 책이 괜히 [프랑스청소년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던 철학책]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것이 아니다. 청소년도 이해할만한 쉬운 철학이란 얘기다.

 

  그런데도 난 이 책을 읽고서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겠어..라고 말한다면, 철학책이라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간 '철학'과 담을 쌓고 살다보니 '철학적 사유'에 대해 굉장히 낯설게 느끼고 있는 것일 뿐이다. 이 책에서 비유하고 있는 '철학책'들은 모두 프랑스청소년이라면 학창시절에 한 번쯤 읽거나 들어봤던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에 주눅들 필요는 전혀 없다. 프랑스 청소년들은 이렇게나 어려운 책들을 읽었고, 다 이해하고 있구나...싶어서 위축될 필요가 전혀 없다. 그 청소년들도 철학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철학적인 내용은 '전문가'에게 맡겨두고 그냥 즐기면 된다. 철학책에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어. 그래서 난 '이렇게' 생각해. 그런데 넌 '어떻게' 생각해? 하고 말이다. 이 책은 절대 '그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부러웠다. 어려운 철학을 언급하며 주절거리는 저자의 박식함이 부러운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나의 철학'은 이런데, '너의 철학'은 어떠니? 라고 부담없이 묻고 답하는 분위기가 말이다. 경험이니 관념이니 어려운 철학은 '전문가'에게 떠넘겨주고, 우리는 일상에서 '철학'을 하면 된다. 그리고 그런 일상적인 철학을 바탕으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해주면 된다. 정치이야기도 좋고, 경제이야기도 좋고, 사회, 문화, 이슈 등등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는데 난 저렇게 돌아가면 좋다고 생각해. 넌 어떠니? 라고 가볍게 묻고 답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 말이다.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분위기가 아닐까 하고 좀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다시,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로 되돌아간다면, 난 '달리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목표와 목적 뚜렷하게 두다보니 '방향'은 옳게 잡았고, 촌각을 다툴 정도로 급박한 것이 아니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늘 '여유'를 두고 일찍 서두르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보니, 나는 뚜렷한 목적과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부지런히 걷는 편이다. 그리고 걸을 땐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고 똑바르게 곧장 걷곤 한다. 걷다가 지칠 우려도 있으니 늘 손에는 책을 들고서 읽으며 걷는다. 책을 읽으며 걸으면 '집중력'이 향상되고, '잡념'이 별로 생기지 않으니 참 좋다. 물론 여유롭게 걷다보니 주위의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휘뚜루마뚜루 빠른 속도로 걷는 것이 아니다보니 풍경조차 '주의깊게' 볼 수 있어서 좋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면서 걷는 것을 난 참 좋아한다. 그래서 난 '달리는 법'이 거의 없다. 필요할 땐 누구보다 빠르고 힘차게 뛰어가겠지만 말이다. 이런 나와 '철학적 사유'를 함께 할 분은 없으신가요? 진지한 분이면 환영입니다.

 

인간사랑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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