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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 바른 나쁜 인간 - 도덕은 21세기에도 쓸모 있는가
이든 콜린즈워스 지음, 한진영 옮김 / 한빛비즈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한때, 도덕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며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 큰 일을 하겠다던 정당이 부도덕한 방법으로 권력을 휘두르다 온갖 부정부패로 망신살을 당한 일이 있었다. 딴에는 맞는 말이었다. 도덕군자로 행세하면서 경제적 부를 쌓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까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경제적 부를 쌓으면서 '최소한의 도덕'을 지키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상상조차 하기 싫은 비인간적인 사회가 되고 말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인간은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얼마나 도덕적이어야 하는 것일까? 욕심껏 살다보면 부도덕한 짓도 서슴지 않게 될 것이고, 자본주의 사회속에서 도덕적으로만 살다보면 자기 앞가림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사람이 되고 말 것인데 말이다. 과연 적절하고 균형잡힌 선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이 있기는 한 걸까?
이 책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자 '도덕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책이다. 물론, 종교적인 율법은 걷어내고, 오직 '과학적인 방법'으로 증명하고자 할 뿐이다. 우리는 흔히 윤리와 도덕을 '종교'와 연관짓는 오류를 범하곤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종교적인 관점에서 읽으면 안 된다. '인간은 선한 존재인가'라는 물음에 종교적인 답변을 기대했다면, 안타깝게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과학적인 접근 방법'을 사용하여 인간 행동에 대한 깊은 고찰을 할 뿐이다. 그리고 '같은 행동'이라도 동서고금에 따라, 사회문화에 따라, 세대에 따라 도덕적으로 보기도 하고, 부도덕하게 보기도 하는 '관점의 차이'를 서로 비교해볼 뿐이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글쓴이는 그저 나열할 뿐이니 말이다.
가장 흥미로운 내용은 '도덕과 섹스'를 다룬 단원이었다. 흔히 '예술과 외설은 한 겹 차이다'라고 말하곤 하는데, 그만큼 애매하고 모호한 분야가 바로 '섹스'에 관한 내용인 탓이다. 그렇다고 야한 이야기를 상상하면 곤란하다. 그보다는 '판단'해보길 권한다. 인간이 타고난 '성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바람직한 '인간 행동'에 대해서 말이다. 과연 불륜은 나쁜 일인가하고 말이다. 우리는 '사랑의 결실'을 섹스로 표현하곤 한다. 그리고 '종의 번성'을 위해서 이성간의 섹스는 필요불가결한 조건이다. 그런데 누구하고는 되고, 누구하고는 안 되는 '도덕적 기준'을 과연 '누구'를 위해서 정했느냔 말이다. 막장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궤변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불과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처첩제'에 대해 관대한 우리였고, 신분이 높은 남자, 권력(힘)을 가진 남자, 경제적 능력이 뛰어난 남자가 여러 여자를 거느리는 것에 대해 눈 감아주던 사회에서 살았음을 알고 있고, '여성인권'이 향상된 지금까지도 '능력자의 성욕구'에 너그러운 여성들이 많음을 인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비해 '여성의 성욕구'에 대한 우리의 시선은 어떤가? 성에 대한 자유분방한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불합리한 기준을 내세우고 남성에게 너그러운 분위기에 반해서 여성에겐 까다로운 기준을 들이밀기 일쑤일 것이다. 더구나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들이밀면서 '여성에게만 까다로운 성도덕 기준'을 마련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남성의 경우엔 '결혼 유무'와는 상관없이 자유롭게 성욕구를 분출하고 해소하는 것에 관대하면서, 여성의 경우엔 '결혼 전'엔 무작정 엄격하고, '결혼 후'엔 강력한 출산의무를 지우는 사회분위기도 이해할 수 없는 처사인 셈이다. 더구나 '성매매'나 '성상품'의 대상의 거의 대부분은 남성은 구매자, 여성은 판매자라는 사실도 놀라울 뿐이다. 도덕을 넘어서 법적으로도 막는 일인데도 버젓이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더구나 '섹스비디오'로 인한 성범죄 피해자는 여성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여성들이 이런 기준에 더 엄격하게 적용하며 '주홍글자'를 남긴다는 점이다.
이쯤 되면, 도덕에 대한 판단 기준이 모호하게 될 것이다. 과연 시대와 세대를 넘어선 만고진리의 '도덕기준'은 있기나 한 것일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도덕기준'을 과연 우리가 꼭 따라야만 하는 걸까?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는 이토록 유연한 도덕기준이기 때문에 잘 지키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단다. 식탁예절이 그렇고, 손님이 예절을 지킬 때 우리는 흐믓해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딱히 식탁예절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손님이 지켜야 할 예법이 때와 장소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정성스런 마음을 담아 공손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감동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도덕'이 가장 장점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덕은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로 확대해서 '판단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비록 문자로 기록되어 있는 법조항 같은 것이 없어도 '선한 마음'으로 행하는 '반듯한 몸가짐'을 보면 우리 가슴은 따뜻해지기 때문이다. 이는 AI(인공지능)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도 통용될 것이다. 인공지능에게 도덕적 판단기준을 가르칠 수는 없겠지만,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도덕적인지, '어떤' 말을 해서는 안 되는지는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모순된 인간의 말과 행동을 보며 헷갈리겠지만 말이다.
따라서 도덕은 미래사회에서도 꼭 필요하다. 딴에는 겉으로만 도덕적인 체하고 속으로는 제 잇속만 챙기는 못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법조항의 빈틈을 악용해서 '합법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비일비재하겠지만, 그런 그들을 처벌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도 바로 '도덕'이 될 것이다. 비록 도덕, 그 자체는 힘이 없어서 아무런 영향을 미칠 것 같지 않아 보일지라도 우리 마음속에 자리잡은 '도덕기준'은 불매운동과 같은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비양심적인 사람을 단죄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그때그때 다른 '도덕기준'일지라도 모두가 공감하는 '도덕기준'을 세우고 따르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예의 바른 나쁜 인간>에게 따끔한 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