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 충족이유율의 네 가지 근원에 관하여 서양 철학 클래식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누리번역 옮김 / 루미너리북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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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너리북스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 충족이유율의 네 가지 근원에 관하여>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 누리번역 / 루미너리북스 (2026) [원제 : Uber die vierfache Wurzel des Satzes vom zureichenden Grunde]

[My Review MMCCLV / 루미너리북스 1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여든네 번째 리뷰는 염세주의 철학으로 유명한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박사논문작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다. 사실 쇼펜하우어의 저작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일 것이다. 우리 나라에 수없이 많은 '쇼펜하우어 자기계발서'도 거의 대부분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중점적으로 여러 저작들에서 발췌를 할 정도로 그렇다. 그런데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는데,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기 전에 이 책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를 먼저 읽어야 한단다. 왜냐면 쇼펜하우어가 이 책을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서문'에 해당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책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를 먼저 읽고 개념을 이해하지 않고는 그의 대표작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단언할 정도였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 '쇼펜하우어 저작들' 가운데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를 제대로 뒤친(번역한) 책은 이 책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루미너리북스, 2026)이 유일했다. 그렇다면 그동안 우리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관점 포인트 : 솔직히 나는 '철학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1차 사료에 해당하는 '철학 원전'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다. 다시 말해 철학자 본인이 직접 쓴 '원전'을 읽는다는 것은 '철학자와의 대담'을 나누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게 부담스럽다. 철학자가 직접 쓴 글을 읽는 것은 철학책을 읽고 드는 '내 생각'을 철학자에게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것인데, 그에 대한 '답변'을 독자인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두번 세번 반복해서 읽다보면 얼추 이해까지는 되지만, 이제는 '그 이해'가 제대로 된 것인지 누군가에게 확인받고 싶은 충동에 휩싸여서 자꾸 '다른 책'을 뒤적거리게 된다. 철학자의 '원전'을 2차적으로 '해석'을 가미해서 나름대로 저술을 한 책들을 즐겨 읽는 까닭이 바로 이 때문이다. 적어도 이런 '해설서'를 읽을 때면 '삼자대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철학자와 독자, 그리고 철학자의 논거를 풀어낸 해설가, 이렇게 3명이 나누는 대화이기에, 조금은 쉬이 풀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철학자의 원전이었다. 약간의 '주석'이 달려 있긴 하지만, 오로지 원전의 내용을 충실히 뒤쳐낸 내용만을 읽고 쇼펜하우어의 깊이를 가늠해야만 했다.

그래서 이 책을 간략히 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 책을 그대로 읽고 감명을 받기에는 너무 어려운 글로 설명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참을 읽고 또 읽어야 겨우 실오라기 하나를 끄집어 낼 정도의 조잡한 실력을 소유한 '문외한'인 탓이다. 먼저 마주하는 핵심은 다름 아닌 '충족이유율의 네 가지 뿌리에 대하여'다. 뭐, 사실 이것만 이해를 해도 전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어려운 말도 아니니 간단히 정리하고 넘어간다. 충족이유율이란 '모든 학문의 기초'라고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쇼펜하우어는 '인식의 체계' 차원에서 학문을 이해했기 때문에, 충족이유율은 '그 자체로 확실한 진리'라고 말을 바꾸어도 같은 말일 것이다. 쇼펜하우어가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 근거는 이미 많은 철학자들이 위의 사실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물론 앞선 철학자들은 '단편적으로'만 언급했을 뿐이고, 쇼펜하우어가 본격적으로 주장한 것이 사실이란다. 암튼 그 결과, 충족이유율의 본질은 바로 '왜?'라고 물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 여기서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충족이유율이 중요한 까닭은 알았는데, 그 중요성에 대한 근거가 되는 내용들이 하나하나 열거될 때마다 '철학 비전공자'로서 무지함을 절실히 느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까닭조차 간단히 설명하자면, '쇼펜하우어 철학의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서 '철학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먼저 '플라톤'의 이데아를 만나게 되고, 그 다음으로 '아리스토텔리스'의 형이상학을, '데카르트'의 자기원인을, '스피노자'의 범신론을, '라이프니츠'의 근거율을, '볼프'를 스쳐지나가며 궁극적으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서 다뤘던 선험적 관념론까지 아울러 '상식'으로 갖추고 있어야 겨우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서 주워 들은 기억은 나지만 나에게 '철학'은 상식이 아니었던 탓에 쇼펜하우어의 '직접적인 설명'이 그리 와닿지 않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염치 불구하고, 이후부터는 내 느낌대로 '이해'한 내용으로 최선을 다해 정리해보려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 이유가 모두 같은 필요는 없다는 말로 귀결이 된다. 서양 철학에서 '사유'를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 데 반해서, '왜 사유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를 제시한 적이 없었고, 근본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은 사유는 엄밀하게 말해서 '진정한 사유'라고 볼 수 없다고 쇼펜하우어는 강조했다. 특히, 쇼펜하우어는 '헤겔 철학'을 크게 비판했는데, 그의 '유물론'이 바로 근본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은 사유의 결과였기 때문에 헤겔의 주장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가짜'라는 극단적인 비판까지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헤겔의 '유물론'이 그토록 엉망이었던가? 엉망인 것치고는 '유물론'이 등장하던 그 시대에 너무나도 히트를 쳤기 때문이다. 실제로 헤겔이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 너무 인기가 많아서 쇼펜하우어는 시샘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왜냐면 헤겔과 '동시간'에 강의실을 열었는데, 헤겔 덕분에 쇼펜하우어는 강의를 들으러 들어오는 수강생이 거의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란다. 그렇게 인기가 없었기에 결국 쇼펜하우어는 대학에서도 쫓겨나고 말이다. 그래서 쇼펜하우어가 헤겔 철학을 비판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실제로 헤겔 철학은 근대철학을 완성하고 현대철학을 연 공로를 인정받으면서도, 오늘날 헤겔이 칸트 철학을 잘못 해석한 탓에 철학사에 큰 오점을 남겼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비록 쇼펜하우어가 사망한 이후에 벌어진 일이지만, 그로 인해 쇼펜하우어는 사후에 크게 인정 받으며 오늘날까지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널리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나가는 글 : 사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정점을 찍었다. 그런데 그 '의지'를 완벽히 이해하기 위해서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를 꼭 이해해야 한다고 앞서 말했다. 그럼 거꾸로 '표상'을 이야기하면서 쇼펜하우어 철학을 정리해보자. 사실 쇼펜하우어 철학의 핵심은 '칸트', '플라톤', 그리고 '불교(인도 베단타)'의 융합이라고 보아도 좋다. 쇼펜하우어의 '표상'을 이해하려면 칸트의 '현상(물자체)', 플라톤의 '가상(이데아)', 베단타의 '마야(삼신)'에 해당하는 쇼펜하우어의 '의지'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표상'이 실재하기 위해서는 '의지'라는 관념적 결정체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서로 상충하는 개념인 '실재론(표상)과 관념론(의지)'이 불교적 해석이 가미된 '물아일체(?)'의 경지를 선보여야 했던 것이다. 사실 '물아일체'는 장자가 말한 개념이지만, 쇼펜하우어는 이런 물아일체의 개념을 인도 불교 베단타를 통해서 개념이해를 한 모양이다. 암튼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 '혼연일체'가 되는 경지에 다다를 때 비로소 '의지는 표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지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바로 '사유'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고, 그 사유는 바로 '확신할 수 있는 이유', '그 자체로 확실한 진리'의 결과인 것이다. 이제 다시 '충족이유율'로 이어지게 된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주요저서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를 먼저 읽으라고 확신한 것이다. 내가 이해한 것은 여기까지다. 나중에 쇼펜하우어의 저작을 비롯해서 다른 철학자들의 저작을 탐독하면서 이해한 내용이 있다면 다시 첨부하도록 하겠다.

그런데 쇼펜하우어는 서양 철학의 오류를 '이유'에서 찾았던 것일까? 결과가 있으면 원인이 있고, 원인이 발생하면 반드시 결과가 따르게 되는 것처럼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인데, 서양 철학에서는 '그 이유'를 너무 가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이며, 관념적으로 따지고 들다보니 '실재하지 않은 근거'를 앞세워서 억지로 '이유'를 껴맞추려 했고, 그런 까닭에 '그 결과'조차 엉뚱하게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쇼펜하우어가 유독 비판했던 헤겔 철학도 '변증법'이란 이해하기 쉬운 개념을 내세워서 '모든 것'에 억지로 껴맞추려 했고, 그 결과로 내놓은 것들에 오류투성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증명한 셈이다.

그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완벽한 이유'를 제대로 분석하며 '확실한 결과'를 도출해야 할 것이다. 여기저기서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거짓'을 앞세워서 '혐오와 차별'을 일삼는 행태는 근절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심지어 잔혹한 전쟁조차 '정확한 이유'를 들어서 벌이는 것이 아닌 현실은 정말 참혹할 수밖에 없다. 이따위 전쟁이 과연 누구를 위해서 벌어지는 것인지 명명백백히 밝혀내야 할 것이다. 여러 모로 이 책을 읽은 덕분에 눈이 떠진 것 같다. 읽기 힘든 책이었지만 나름 보람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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